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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글스의 싱어 수잔나 홉스가 정말 오랜만에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 오는 7월 21일 발표할 그녀의 세 번째 솔로 앨범 [Someday]는 거의 16년만의 신작인 셈. 새 앨범 발매를 기념하면서 여러 관련 사이트들을 통해 그녀는 앨범 속 신곡 일부를 미리 맛배기로 듣고 다운로드 받아갈 수 있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 여기 그 두 곡을 포스팅 해놨으니, 들어보시고 맘에 드시면 엠베딩한 창의 'Download Now'를 힘차게 클릭하시기 바란다. 작년 뱅글스 새 앨범도 괜찮았는데,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는 언제나 맘에 들 뿐더러 곡도 괜찮은 것 같다.

 

Always Enough



Pictur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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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년 엘에이 리드-베이비페이스 콤비의 프로듀싱으로 완성한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을 통해서 단숨에 스타덤에 올라 <Superwoman>, <Secret Rendezvous>, <Romantic> 등을 히트시켰던 여성 보컬리스트 캐린 화이트의 17년 만의 새 앨범. 여전히 그녀 목소리는 듣기 좋구나. 
 


Karyn White - Carpe Diem Pl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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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프로파일 17탄 - Prince
 
  사실 1980년대 초, 중반까지만 해도 프린스라는 뮤지션은 (우리에게는 물론이고) 서양에서도 조금은 왜곡된 인식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성적 자극이 강조된 노랫말, 뮤직비디오에서 느껴지는 퇴폐적인 이미지는 그를 단순히 시각적 이미지로 어필하려는 ‘연예인’으로 보게 만들기 충분했으며, 특히 ‘사전 심의’라는 이름으로 음악의 표현의 자유에 무자비하게 칼을 휘둘러대던 대한민국의 1980년대에서 그의 앨범들은 매번 최소 한 두 곡 이상의 금지곡을 삭제한 채 불완전한 모습으로 발매되는 경우가 많았다(그 금지곡들까지 듣고 싶어 중학생 때 서울 세운상가까지 상경(?)하여 기어이 [Purple Rain]의 낡은 수입 원판 LP를 구했던 개인적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또한 당시 국내 음악 매체들에서까지도 프린스는 음악 분석의 대상이기보다는 항상 ‘그가 또 누구를 유혹했다’는 가십들로 더 많이 지면을 장식한 스캔들 메이커였다.

  그러나 프린스가 그런 단편적 가십들로는 결코 평가할 수 없는 탁월한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임은 분명하다. 당시 음악 기사들에서 그에 대해 언급할 때 항상 상투적으로 등장했던 "스물 몇 가지의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뮤지션"이라는 표현은 (물론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임에도) 지금 생각해보면 좀 손발이 오그라들긴 한다. 하지만 그는 (이제 30년을 훌쩍 넘긴) 화려한 커리어 속에서 소울과 훵크와 블루스의 전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백인 록의 감각까지도 당의정(糖衣錠)으로 입힐 줄 아는 사운드의 미학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프린스를 제외하고 당대에 과연 누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처럼 무대에서 블루지한 록 기타를 휘두르는 동시에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이 부럽지 않은 무대 위의 ‘Sex Machine’으로 빙의할 수 있었던가. 사실, 이런 비유들 따위로 왈가왈부할 것 없이 대표곡 ‘Purple Rain’의 8분이 넘는 풀 버전을 한 번 감상해 보면 그의 음악이 가진 기본적 뼈대를 잘 파악할 수 있다. 백인들도 반했던 선이 분명한 멜로디 속에 그만이 낼 수 있는 독특한 끈적함이 담긴 섹시한 보이스, 그리고 진한 기타 선율 속에서 현대 대중음악의 본류는 분명 흑인들에게서 왔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될 것이다. 

  미네아폴리스를 여전히 영원한 고향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프린스가 약관의 나이로 메이저 레이블 워너 브러더스와 계약을 맺고 데뷔한 것이 1978년이다. 그는 데뷔작 [For You]에 이어 나중에 샤카 칸(Chaka Khan)
의 커버 트랙이 더 히트했던 ‘I Feel for You’가 수록된 셀프 타이틀 앨범 [Prince](1979)로 흑인 음악 씬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긴 했지만, 결국 그가 현재와 같이 음악적 추앙을 받는 아티스트로 인정받게 된 앨범은 당연히 1980년대에 발표한 3장 - [1999](1983), 사운드트랙 [Purple Rain](1984), 그리고 [Sign O' The Times](1987)이라고 말할 수 있다.

  먼저 ‘Little Red Corvette’과 ‘1999’를 통해 제대로 스타덤을 맛보게 해준 [1999]에서 프린스는 소위 ‘일렉트로 훵크(Electro-Funk)’라고 정의할 만한 자신만의 트레이드마크 사운드를 확고하게 구축했다. 그리고 흑인 아티스트가 남긴 기막힌 록 필름으로 기록된 영화 [퍼플 레인]의 사운드트랙 성격의 앨범 [Purple Rain]은 그를 최강의 팝 아티스트로 평가받게 만든 역작이었다. ‘When Doves Cry’, ‘Let's Go Crazy’ 등 5곡의 톱 40 히트곡을 양산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마이클 잭슨과는 다른 관점에서 백인 팝의 말랑함에 허리를 굽히지 않는 크로스오버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것이 이 앨범의 핵심적 매력이었다. 그리고 당시 앨범이 국내에 소개되지 못해 기억 속에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Sign O' The Times]는 프린스가 1980년대에 선사한 모든 음악적 실험의 스펙트럼들을 펼쳐 보이면서도 대중적 매력도 잊지 않았던 멋진 더블앨범이었다. 시나 이스턴(Sheena Easton)과의 듀엣 ‘U Got the Look’과 ‘I Could Never Take the Place of Your Man’의 훵키 록 비트의 매력은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물론 프린스는 항상 자신의 음악적 기반을 바탕으로 꾸준한 사운드 실험을 했고, 그에 따라 원 맨 밴드의 형태로 활동하기도 했었고, 1980년대에는 레볼루션(Revolution)이라는 백밴드를,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는 뉴 파워 제너레이션(New Power Generation)이라는 백밴드를 대동하는 변화도 시도했었다. 그가 'Cream'과 타
이틀 트랙을 히트시켰던 [Diamonds and Pearls](1991)와 또 하나의 명곡 '7'을 낳았던 [Love Symbol](1992)를 발표한 이후, 그러니까 확고한 음악적 자유를 쟁취한다는 목표로 때늦은 투쟁을 하느라 1980년대의 화려한 기운을 1990년대에 놓쳐버린 이후, 과거의 탁월한 창작력이 많이 소진한 느낌도 있긴 하다. 그러나 자신의 레이블 NPG로 음반을 배급하는 2000년대로 넘어와 발표했던 [Musicology](2005)가 더블 플래티넘이라는 인기와 그래미 2개 부문 수상이라는 영예를 얻게 해주었던 걸 생각해보면, 프린스가 정말 칼을 갈고 만든 음반은 언제든 걸작으로 등극할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인기라는 측면에서는 화려했던 1980년대를 더 이상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프린스가 지난 30여 년간 흑인음악 원류의 정통성을 자신만의 독창성으로 체득해 이후 흑인 음악의 변화를 이끈 1980년대의 진정한 아이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 힙합이 서서히 주류로 진입해 들어오고, 말랑한 크로스오버 알앤비 히트곡들이 사라진 자리에 훵키 리듬의 매력이 다시 돌아오는 데에 그의 음악이 미친 영향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마이클 잭슨이 흑인음악을 1980년대에 주류 팝 시장에서 외형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세계 음악 시장에서 주류가 되도록 기여한 아티스트라면, 프린스는 그렇게 세계화된 흑인음악의 뿌리와 줄기가 무엇인지를 가장 쉽게 대중에게 알려주고 후대 뮤지션들의 존경 속에 계승되도록 만든 아티스트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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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핫트랙스 매거진을 읽다가 문득 낯익은 앨범 커버가 눈에 띄었다. 바로 데이빗 리 로스의 솔로 앨범 1집의 커버였다. 이 앨범 때만해도 그는 자신이 있던 밴드에게 나름 위협이 될 만큼 강한 포스를 보여주었는데... 이제 한참을 방황하다 간신히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그의 잘나가던 80년대를 이번 기회에 함 정리해 보고자 한다.

밴 헤일런의 원년 보컬리스트로서 밴드의 1984년 앨범 [1984]와 넘버 원 싱글 [Jump]로 상업적으로 그들에게 최고의 전성기를 안겨줄 그 무렵, 리드 보컬 데이빗 리 로스(David Lee Roth)는 멤버들과 상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4곡이 담긴 EP [Crazy From the Heat]를 발표하고 독자 활동을 하면서 서서히 밴드 멤버들과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가 밴드 멤버들에게 방출되었다는 식으로 내용이 알려졌지만, 이미 1984년 투어때부터 데이빗과 에디의 갈등은 시작되었으며, 에디는 자꾸 록스타 쇼맨쉽을 강조하는 데이빗의 태도에, 그리고 데이빗 역시 알코올에 취해 모든 일정을 만만디로 끌고가는 밴 헤일런 형제들에게 질렸던 것이다. (그는 솔로 EP 이후에 영화 제작까지도 당시에 생각했는데, 밴드의 신작 작업이 늦어지면서 그는 애가 탔던 것이다.)



David Lee Roth - Just A Gigolo / I Ain't Got Nobody
 (Videoclip)



결국 밴 헤일런에서 나와 자신의 밴드를 꾸리면서 그는 확실한 테크닉과 쇼맨쉽을 동시에 보여줄, 그래서 밴 헤일런의 콧대를 납작하게 해줄 밴드를 구상했고, 그 결과 기타에 프랭크 자파 밴드와 알카트라즈(Alcatrazz)를 거친 스티브 바이(Steve Vai), 자신의 밴드 탈라스(Talas)를 포함해 메이저 밴드들의 라이브 투어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던 베이시스트이자 훗날 미스터 빅(Mr.Big)의 주축이 되는 빌리 시헌(Bily Sheehan), 그리고 무대에서의 쇼맨쉽도 뛰어난 신예 드러머 그렉 비쇼네트(Gregg Bissonette)를 모아 백 밴드를 완성했다.  그리고 1986년 초에 발표한 [Eat 'Em and Smile]은 빌보드 앨범 차트 4위에 오르면서 선전했지만 뒤 이어 새미 해거를 새 멤버로 받아 발표한 밴 헤일런의 신작 [5150]에는 약간 모자라는 성적이었다. 그래도 첫 싱글 <Yankee Rose>는 정말 훌륭한 팝 메탈 트랙이었으며, 빌리 시헌의 시그너쳐 송 <Shy Boy>역시 이 앨범을 통해 다시 들을 수 있다.

 

David Lee Roth - Yankee Rose (Videoclip)

 


2년 후인 1988년에는 일단 동일한 라인업으로 그의 2집 앨범 [Skyscraper]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에서도 <Just Like Paradise>(싱글 차트 6위), <Stand Up>과 같은 트랙들이 록 차트에서 상위권에 올랐고, 비록 앨범 발매 직후 빌리가 밴드를 탈퇴했으나 투어는 그렉의 형제인 매트(Matt Bissonette)가 메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여전히 앨범 차트에서의 반응은 밴 헤일런에게는 조금 밀렸으나, 그의 화려한 무대 매너는 관객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David Lee Roth - Just Like Paradise (Videoclip)

그러나 1991년 발표했던 그의 3집 [A Little Ain't Enough]는 그에게는 불운의 음반과도 같았다. 앨범 차트 18위, 그리고 골드 레코드를 기록했음에도 일단 판매량이 전작들에 못미쳤고, 스티브 바이의 탈퇴로 야심차게 영입한 약관의 기타 신동 제이슨 베커(Jason Becker)마저 앨범 녹음 직후 류게릭병 진단을 받으면서 투어 합류가 불가능했다. 결국 조 홈즈(Joe Holmes)를 대타로 세워 공연을 가졌지만, 갑자기 터진 그런지의 열풍은 그의 인기가도에 치명타를 가했다. 그런지의 등장은 결국 80년대식 쇼맨쉽이 가득한 헤비메탈의 시대의 종말을 예고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서서히 그의 인기는 시들해져갔고, 1993년 레게, 컨트리, 일렉트로닉 사운드까지 다양한 시도를 했던 4집 [Your Filthy Little Mouth]는 미국에서조차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채 묻혀버렸다. (그래도 그의 충직한 팬들 덕분에 투어는 그럭저럭 유지되었다.) 결국 1990년대의 데이빗 리 로스의 커리어는 96년 말 잠시 밴 헤일런의 베스트 앨범에 담길 신곡의 보컬로 컴백했던 때를 제외하고 별로 영양가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그가 다시 2007년 밴 헤일런과 화해하고 팀에 복귀할 때까지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David Lee Roth - A Little Ain't Enough (Videoclip)


(비운의 기타리스트 제이슨 베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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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부터 책상 주변에 87년 당시에 구입했던 엑스포제(Exposé)의 1집 [Exposure]의 카세트 테이프가 굴러다녔다. 이제는 LP로 업그레이드가 되었고, 베스트 앨범을 CD로 갖고 있기 때문에 버리거나 누구에게 주려고 담아놓은 종이 백 한 구석이 오래되어 터진 것 땜에 바닥에 나딩굴던 것을 주워 올렸던 것이었다. 그러다 오늘 아침에는 오랜만에 이걸 들으며 출근해야겠다는 생각에 차로 갖고 가서 들었다. 정말 그리운 80년대식 라틴 프리스타일(Freestyle) 댄스 팝 사운드였다. 추억이 새록새록....ㅋㅋ

   사실 지금 엑스포제라는 3인조 여성트리오에 대해 과연 기억하시는 음악 팬들이 올드 팬들 중에도 몇이나 있을까 싶기는 하다. 하지만 이들이 너무나 오랜동안 음악계 밖으로 사라져있었기에 그렇지, 이들은 엄밀히 말해서 '원 히트 원더'로 부르기에 무리가 따르는 80년대 최고 인기 여성 보컬 그룹 중 하나였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 시장에서 말이다. 신서사이저의 시대답게 당시 마이매미-플로리다를 배경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80년대식 프리스타일 댄스 팝은 86년 정도를 기점으로 주류에서 서서히 히트곡을 내기 시작했고, 이 트렌드가 미국의 댄스 플로어를 강타한 이후, 지금 돌이켜보면 비로소 영국식 신스 팝 스타일의 사운드에 대적하는 미국식 클럽용 댄스 뮤직이 확립되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그 가운데 엑스포제의 등장은 미국에서  거의 흑인에게 있었던 여성 트리오의 주도권을 백인들로 끌어왔었던 유일한 시기의 시작을 열었던 성격도 갖고 있다. 이후 커버 걸스(The Cover Girls), 스위트 센세이션(Sween Sensation) 등 다양항 여성 백인 댄스 팝 보컬 그룹들이 한 5-6년 정도 득세를 했었으니까. 그러나 이 대표적인 세 팀들 가운데도 이들의 커리어는 짧지만 확실한 족적을 남겼다. 이들의 베스트 앨범에 수록된 히트곡이 거의 모두 댄스 차트 Top 10 싱글이나 빌보드 Top 40 히트곡이었으니, 1987년부터 1992년까지 이들의 주류에서 꾸준히 히트 행진을 이어갔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Exposé - Point of No Return
(Original 1985 12' Ver. with Sandeé, Alé, Laurie)

 
  물론 이들의 등장에는 루이스 마티니(Lewis Martineé)라는 당시 마이매이의 인기 DJ겸 프로듀서의 역량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사실 그가 처음 엑스포제를 기획했을 때는 산드리에(Sandeé), 알레(Alé), 로리 밀러(Laurie Miller)가 구성원이었다. 루이스는 이들로 첫 싱글 <Point of No Return>을 발표해 클럽 차트에서 히트시키면서 아리스타(Arista) 레이블과 계약을 맺었고, 두 번째 싱글 <Exposed to Love>를 히트시킬 때쯤에는 정식 앨범 발매 계획까지 세우는 단계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초기 멤버들은 하나 둘씩 탈퇴했고, 그 결과 현재 우리가 기억하는 엑스포제의 멤버들 - 자넷 주라도(Jeanette Jurado), 앤 컬리스(Ann Curless), 지오아 브루노(Gioia Bruno) - 가 멤버로 확정된 것이다.

  1987년 마침내 발매된 데뷔 앨범 [Exposure]에서는 첫 싱글 <Come Go With Me>(5위)를 시작으로 4연속 Top 10 싱글이 이어졌는데, 데뷔 싱글이었던 곡을 이들이 다시 녹음한 <Point of No Return>(5위)<Let Me Be The One>(7위), 그리고 이들에게 유일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의 기쁨을 안겨준 팝 발라드 <Season's Change>(88년 1윌 2주간 1위)가 이 앨범에 모두 담겨있었다. 특히 곡에 따라 리드 보컬이 바뀌는 색다른 그룹 내 시스템은 싱글마다 독특한 보이스의 매력을 선사했다. (물론 주요 히트곡에서 자넷의 위상이 약간 더 강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결과 이 앨범은 (마돈나같은 대형 팝 스타급을 빼고) 댄스 뮤직 전문 앨범 역사상 거의 최고의 판매고에 가까운 3백만장에 근접하는 상업적 히트를 올렸다.

  조금은 불리하게 짜여졌던 계약 관계를 갱신한 후, 1989년 가을 발표된 2집 [What You Don't Know]는 1집에 못지않게 여전히 그들의 인기가 건실함을 보여주었다. 타이틀 트랙 <What You Don't Know>(8위)를 시작으로, <When I Looked At Him>(10위), <Tell Me Why>(9위), <Your Baby Never Look Good In Blue>(17위)가 꾸준히 히트했고, 앨범은 골드 레코드를 기록했다. 1집의 전자 사운드가 신선했지만 약간 단순했다면, 2집에서는 훨씬 리듬과 비트가 다양하게 구성된 점이 장점이었다. 

  하지만 1990년 투어 이후 지오아의 목상태에 문제가 생기면서 그녀는 팀에서 자진해서 나갈 수 밖에 없었고, 그녀를 대체하기 위해 '제 4의 멤버'인 켈리 머니메이커(Kelly Moneymaker)가 가입하면서 2년간의 공백 후 1992년 셀프타이틀 앨범 [Exposé]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이 앨범은 조금은 90년대 클럽 비트를 받아들인 곡들과 당시 정상의 가도를 달리던 팝 보컬 트리오 윌슨 필립스(Willson Phillips)의 영향이었는지는 몰라도 미디움 팝-발라드의 비중이 더 높은 결과물로 완성되었다. 그래서 또 하나의 Top 10 싱글이자 명곡 <I'll Never Get Over You (Getting Over Me)>(8위, 다이앤 워렌의 작품)을 끝으로 이들의 히트 행진은 마감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1995년 베스트 앨범 [Greatest Hits]와 여기에, 그리고 [Free Willy 2] OST에 수록된 싱글 [I'll Say Goodbye for the Two of Us]의 발표 이후, 아리스타 레이블마저 이들을 방출해 버리면서 그룹은 거의 공중분해되다시피 되었고, 멤버들은 이후 각자의 솔로 활동들에 전념했지만 그리 눈에 보이는 성과는 얻지 못했다.

 

Exposé Jukebox 
(그들의 히트곡들을 들어보세요...^^;)

  거의 8년간의 해체기 이후, 2003년 자넷, 앤, 켈리는 어느 자선 공연 행사를 위해 임시로 다시 뭉쳤고, 목 때문에 한동안 음악계를 떠났던 지오아도 건강을 회복해 2004년에는 솔로 음반을 낼 정도로 열의를 회복했다. 그 이후 3년 뒤인 2006년에 자넷은 자신의 마이스페이스 홈피를 통해 엑스포제의 재결합 활동을 공식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는데, 이 때부터 지오아가 다시 켈리 대신 멤버로 복귀했고, 켈리도 경우에 따라 무대에 함께하기로 약속했으며, 자신들의 공연을 예약해줄 프로모터를 구하면서 클럽 라이브를 중심으로 서서히 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나 이들이 엑스포제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예전 기획사에서 소유권 소송을 제기하면서 2년간의 법정 공방끝에 세 멤버는 2009년 6월에 마침내 그룹의 이름을 완벽하게 되찾았다.


아래의 2006년 이후 라이브 동영상들을 보면 몸매는 세월의 흐름을 어쩔 수 없게 만들지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멤버들의 보컬의 매력은 여전하다는 것이었다. 아직 신보에 대한 소식은 들리지 않지만, 이렇게 계속 라이브 활동을 이어가다보면 언젠가 그들의 새 음원을 만나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하여간 엑스포제도 다시 현역에 복귀해 열심히 공연하는 것을 보면, 음악 팬들이 가진 80년대 팝음악에 대한 향수가 여전함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여성 걸 그룹들이 정말 본받았으면 하는 것이 이들의 모습 속에 들어있기에, 개인적으로는 이들을 추억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덧붙인다.

Expose's Discography:
1집: [Exposure] (1986) / 2집: [What You Don't Know] (1989)
3집: [Exposé] (1992) / 베스트앨범; [Greatest Hits] (1995)

 

 




Exposé - Expose Megamix Videoclip



Exposé - Come Go With Me
(2009년 5월 Freestyle Jam Las Vegas 실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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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히트한 노래들 가운데 해외에서의 인기를 넘어서 생각보다 장기간 국내에서 오래 들려진 싱글 중 하나가 애니모션(Animotion)의 싱글 <Obsession>이 아닐까 생각한다. MBC의 주말 쇼 [토토즐]의 시그널 송으로 한동안 쓰였고, 기타 여러 방송 시그널에서 이 인트로를 써먹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지만, 마치 듀란 듀란[The Reflex]이나 휴먼 리그[Don't You Want Me]처럼 인트로가 멋진 80년대 대표적 신스팝 트랙으로 80년대 팝 매니아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곡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 곡의 주인공이자 남-녀 혼성보컬, 그리고 기타와 신시사이저가 적절히 조화를 이뤄야 제맛인 80년대 팝음악에 가장 적합했던 사운드를 구사했던 애니모션은 도데체 어떤 그룹일까?

밴드 결성 이전에 이미 레드 존(Red Zone)이라는 그룹에서 활동했었던 여성 보컬 애스트리드 플레인(Astrid Plane)과 키보디스트 폴 안토넬리(Paul Antonelli), 베이시스트 찰스 오타비오(Charles Ottavio), 그리고 드러머 프렌치 오브라이언(Frenchy O'Brien)은 함께 밴드를 그만두고 나서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 빌 왜드햄(Bill Wadhams)과 리드기타리스트 돈 커크패트릭(Don Kirkpatrick)을 영입해 6인조로 애니모션을 결성했다. 1984년 머큐리(Mercury)레이블과 계약을 맺은 이들은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을 통해 첫 싱글 <Obsession>을 미국차트 6위까지 올려놓으면서 성공적인 데뷔를 이뤄냈지만, 두 번째 싱글 <Let Him Go>는 곡이 괜찮았음에도 불구하고 40위권에 턱걸이하는 성과밖에 거두지 못했다.


 



Animotion - Obsession (Videoclip -1984)

  그 후 키보디스트가 그렉 스미스(Greg Smith)로 교체되고, 드러머도 짐 블레어(Jim Blair)로 교체된 다음에 나온 2집 앨범 [Strange Behavior]의 성과는 1집에 비해서는 미국 내에서는 너무나 초라했다. 두 곡의 싱글 <I Engineer> <I Want You>는 모두 Top 40에도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여러 신스팝 밴드들의 오프닝 뮤지션으로 유럽 시장을 겨냥해 활동했고, 해당 지역에서는 <I Engineer>가 10위권에 오를 정도의 인기를 거두기도 했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클럽용 12인치 싱글이 빽판으로 돌기도 했다.)



Animotion - I Engineer (Videoclip - 1986)

  하지만 결국 인기의 하락은 밴드의 팀워크의 문제를 가져왔고, 결국 3집 녹음 작업을 하던 중에 3명의 주요멤버(빌, 애스트리드, 찰스)가 모두 탈퇴함으로서 밴드의 중심은 흔들려버렸다. 다행히도 그 자리에 댄서-배우-가수의 1인 3역이 가능했던 신시아 로즈(Cynthia Rhodes : 그 후 우리가 잘 아는 리차드 막스(Richard Marx)의 아내가 되었다.)폴 엥게만(Paul Engemann)을 영입해 3집 [Animotion](1988)을 완성했다. 이 앨범에서는 영화 [My Stepmother is An Alien(새 엄마는 외계인)]의 OST로 쓰인 <Room to Move>가 Top 10 히트를 기록하면서 새로운 순조로운 출발이 되는 듯했지만, 결국 그게 밴드의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Animotion - Room to Move (Videoclip - 1988)

  그 후 10년이 넘는 침묵이 이어진 뒤, 2001년에 한 FM방송국의 제안으로 86년 이후 탈퇴했던 3명의 오리지널 멤버들이 다시 무대에 서기 시작했고, 그 후 애니모션은 그들의 주도로 간간히 투어 활동을 재개했다. 그리고 2005년에는 80년대의 아티스트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었던 TV쇼 [Hit Me Baby One More Time]에 등장해 그들의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2008년 드러머를 제외하고 2집 발표 당시의 5인조 원년 라인업이 그대로 재결합한 애니모션은 공식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최근인 2009년 3월에도 플로리다에서 공연을 할 만큼 자신들의 음악적 활동에 대한 열의를 다시 키우고 있다. 이중 애스트리드와 찰스는 80년대 말부터 부부의 연을 맺고 함께 활동중이라고. 그들에게서 신곡이 다시 나올지는 아직 알 길이 없지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새도 가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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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디스? 팝 음악을 매우 좋아해서 매주 주말 AFKN FM을 90년대-2000년대 초반에 열심히 들었다면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이름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차트 쇼 프로그램 [Rick Dees Weekly Top 40]의 DJ로 이미 팝 매니아들에겐 알려질 만큼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히트곡이, 그것도 빌보드 Hot 100의 1위곡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까? 

본명이 Rigdon Osmond "Rick" Dees III인 릭 디스는 1950년생으로 플로리다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인 1966년부터 그린소보로 지역의 WBGB에서 DJ로 활약을 시작했다. 그는 졸업 이후에는 미국 내의 다양한 방송국에서 활약했고, 남부 지역에서는 나름 인기 DJ가 되었다. 그러다 1976년 그가 테네시 주 멤피스 지역의 WMPS 방송국에 근무할 때, 백밴드 캐스트 오브 이디오츠(Cast of Idiots)와 함께 싱글 <Disco Duck>을 녹음했다. 놀랍게도 이 곡은 디스코 시대의 인기곡으로 떠올랐고, 결국 200만장이라는 기록적인 싱글 판매를 거두면서 1976년 10월 16일자 빌보드 Hot 100 차트 1위에 등극했다. 하지만, 그는 불행히도 자신의 곡을 방송에서 틀지 못했는데, 라이벌 방송국이 이 곡의 방송을 금지하면서 경계의 신호를 보내자 릭의 소속 방송국도 같은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한다. 그러나, 그 후 그가 자신의 방송에서 곡에 대해 언급하자, 그는 해당 방송국에서 해고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Disco Duck>은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 속에 디스코 덕 캐럭터와 노래가 등장했지만, 불행히도 사운드트랙 속에는 담기지 못하여 그가 받을 수 있었던 수많은 인세를 놓쳤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Rick Dees & The Cast of Idiots - Disco Duck (Part 1) 

  그는 80년대부터 비로소 전국망 FM 방송의 DJ로서 자신의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배급하기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 1983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지는 프로그램이 바로 [Weekly Top 40]다. 현재는 미국 전역의 350개 방송국에서 이 방송을 배급받아 방송중이며, 세계 37개국에서도 방송되고 있다. (불행히도 이제 AFKN FM은 아메리칸 아이돌의 사회자 라이언 시크레스트(Ryan Secreast)가 진행하는 [American Top 40]를 방송하고 있어서 전파로 들을 수는 없다. 단, 그의 사이트 www.rick.com 에서 인터넷으로 감상이 가능하니, 이 사이트를 통해 들으시라.) (방송 듣기 별도창은 이 링크 클릭!) 그리고, 가수로서도 그는 코미디 송 전문 뮤지션으로 틈틈이 음반을 내기도 했었다는 사실도 덤으로 밝혀둔다.

개인적으로는 84-5년에 그를 TV 쇼 솔리드 골드(Solid Gold)의 진행자로 처음 봤었는데, 그의 히트곡 <Disco Duck>은 그 프로그램에서 여러번 희화화된 기억이 있어 이 곡에 대해 친숙했다. 오랜만에 이 곡과 그 기억이 다시 떠올라서 그의 이야기를 이번 기회에 정리해 보았다. 아직도 우리나라의 전문 DJ들 가운데 몇 분이 살아 있긴 하지만, 예전과 같은 포스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데, 맨날 연예인들 중심으로 도배된 현재 방송 DJ의 한계를 넘어줄 그런 DJ의 탄생이 불가능한 대한민국의 현실은 정말 슬프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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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유니버설 뮤직 라이선스 음반 해설지를 위해 작성된 글입니다. 음반 속에 잘 들어있는지는 아직 제 손에 라이선스반이 안들어와서 알 길이 없네요. 저는 영국 아마존에 LP버전을 주문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Chapter 1 : My Memories of Guns 'N' Roses 

  건즈 앤 로지스의 음악을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이 아마도 중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동창으로 현재까지 가장 친한 친구이자 음악 지인에게서 건네 받은 (영어회화 테이프를 재활용하여 녹음한) 어느 카세트테이프 속에는 AFKN FM에서 그가 맘에 들었던 팝송들(특히, 록 음악들)을 녹음한 음원들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그 속에서 그 친구가 추천했던 음악이 바로 <Welcome to the Jungle>이었던 것이다. 본 조비(Bon Jovi)가 한창 빌보드 팝 차트를 누비고 다닐 그 시절, 사실 FM 라디오와 형님이 구입해온 음반들을 통해서 헤비 메탈에 대해 기본 지식은 쌓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 때는 AFKN의 ‘American Top 40’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댄스 팝 속에 종종 섞여있었던 팝 메탈(Pop Metal), 또는 LA 메탈(LA Metal)이라고 불리던 음악들에 귀가 더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 트랙에 담겨 있었던 밴드의 연주는 당시 한창 주류로 떠오르던 메탈 음악들과 사뭇 달랐다. 기존 메탈 밴드들의 조금 차가운 연주보다 훨씬 끈끈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블루지한 느낌의 기타 연주, 그리고 그 위에 흘러나오는 기존 메탈 보컬들의 고성(高聲)과는 뭔가 다른 원초적인 분노의 보컬, 그리고 뭔가 덜 다듬어 진 듯하지만 자연스럽고 그루브를 가진 리듬까지 딱 제목에서 언급한 그대로였다. ‘정글에 온 것을 환영함’이라는....... 다시 말해 헤비하지만 매끈하게 편곡과 녹음이 이뤄진 기존 메탈 음악과 차별화된 사운드였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이들의 음악이 그 후 1년도 안되어 빌보드 싱글 차트와 앨범 차트의 정상을 차지하리라고는 감히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러던 1988년 여름, 그들의 또 다른 싱글 <Sweet Child O' Mine>이 차트에 등장, 마침내 팝 차트 정상에 깃발을 꽂았던 그 시점부터 건즈 앤 로지스는 마침내 당시의 메탈 키드들에게 새로운 유행의 폭풍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3곡이나 금지곡으로 묶였음에도 (미국에서도 금지된) 그 충격적 재킷을 일부만 가린 채 공개된 라이선스 LP, 그리고 그 금지곡을 다 듣기 위해 청계천 세운상가에 가서 구입했던 컬러 빽판, 그리고 기다리고 기다려도 음반이 국내발매가 되지 않아 형님이 구해온 수입 CD를 닳도록 들었던 앨범「G'n'R Lies」, 입시를 앞두고 심신이 지치면 야간 자율학습까지 도망치면서 (당시 인천에서 특히 유행
했던) 영상 음악 감상실에 가 즐겨 들었던 발라드 <Patience>, 그리고 그 곳에서 지겹도록 봤던 <You Could Be Mine>으로 시작해 한 편 한 편이 모두 영화보다 재미있었던「Use Your Illusion 1, 2」시절의 비디오 클립들....... 뒤돌아보니  90년대 중반까지 건즈 앤 로지스에 대한 개인적 추억은 이렇게 꾸준히 이어진 것 같다. 그리고 그 사이 너무나 많은 록 팬들에게 그들은 어느덧 하나의 아이콘(Icon)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들에 대한 소식과 관심은 (개인적으로나 주변 음악 팬들 모두)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다. 액슬 로즈(Axl Rose)를 제외하고 멤버들이 하나 둘 씩 대열에서 이탈하고, 그 자리를 낯선 인물들이 채웠다는 소식들 이외에 밴드에 대한 반가운 소식은 거의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5년이라는 그 기나긴 공백 동안 발매된 라이브 앨범과 베스트 앨범 같은 것들은 그리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딱 한 가지, 액슬이 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발매하겠다고 계획은 내놓고 계속 감감 무소식이었던 ‘예정된 신보’「Chinese Democracy」가 나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 같았다. 그런데, 어느덧 그 마음마저 기다림에 지쳐 서서히 시들어가는 것 같아 스스로 못내 아쉬웠다. 음료수 회사 닥터 페퍼(Dr. Pepper)가 이들이 2008년 안에 새 앨범을 발표한다면 전 미국인에게 무료로 음료수를 1개씩 돌리겠다는 광고를 낼 때, 이제 밴드가 완전히 사방에서 ‘양치기 소년’이라는 조롱을 받는 것 같은 느낌도 받았으니까........

한 때 전 세계를 주름잡았던 헤비메탈 밴드가 17년 만에 발표하는 대망의 정규 앨범 해설지에 지금까지 왜 이렇게 개인적인 회고담을 주르륵 늘어놓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데뷔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들을 아꼈던 팬들이 각자 가진 추억들이 이 개인적 상념의 기록들과 그리 큰 차이가 없을 것이란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만큼 록 음악을 들으며 성장한 한국의 팝송 팬들에게 건즈 앤 로지스는 메탈리카(Metallica) 만큼이나 전설이 되어 가슴 속에 맺혀있었다. 그리고 상당수가 거듭되는 실망 속에서도 그들의 재기를, 그들의 신보를 목이 빠지도록 기다려 왔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결국 애타게 기다린 것은 그 소망을 포기 할 때 즈음에 다가온다고 했던가. 놀랍게도 닥터 페퍼가 그들의 농담 같은 약속을 실천에 옮길 수밖에 없을 순간이 드디어 다가왔다. 바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마침내 대망의 새 앨범이 이렇게 실물로 다가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이제 신보를 플레이어에 걸기 전에 한 번 그들이 록 음악의 역사 속에 남긴 발자취를 되돌아보는 것도 우리가 밴드에게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예의’가 아닐까 생각한다.

Chapter 2 : The History of Guns 'N' Roses 1985-2005 

  건즈 앤 로지스의 탄생이 궁금하다면 그 전신이었던 헐리우드 로즈(Hollywood Rose)에 대하여 먼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이 밴드가 액슬 로즈(본명 William Bruce Rose, Jr.)가 그의 친구 이지 스트래들린(Izzy Stradlin)과 함께 처음 프로 뮤지션으로서 이름을 알린 밴드이기 때문이다. 2살 때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양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으며 성장했던 액슬 로즈에게 교회에서 접한 피아노와 음악은 그에게 영적 위로는 못되었더라도 그의 진로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그는 운전면허 교육을 통해 이지를 처음 만났는데, 서로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의 일치를 이룬 두 사람은 이지가 먼저 LA로 건너가자 액슬도 혼란스러운 가정에서 도망쳐 마침내 LA에서 다시 의기투합했다. 결국 두 사람은 ‘제 2의 고향’ LA에서 여러 로컬 밴드들을 전전하며 경력을 쌓았는데, 그 가운데 두 사람이 최종으로 안착했던 팀이 바로 헐리우드 로즈였던 것이다. 

  액슬과 이지, 그리고 기타리스트 크리스 웨버(Chris Weber), 드러머 자니 크레이스(Johnny Kreis) 등으로 결성된 이 밴드는 1983년 이후 로컬 클럽에서 활동하며 여러 데모 트랙들을 녹음하며 정식 음반 데뷔를 노렸다. 하지만 두 사람을 제외하고 멤버가 자꾸 변동되는 상황이 반복되자, 결국 액슬이 잠시 몸담았던 밴드이자 같이 지역 클럽에서 활약하던 엘에이 건즈(L.A. Guns)의 리더 트레이시 건즈(Traci Guns)와 그 밴드의 베이시스트 올리 베이치(Ole Beich), 드러머 롭 가드너(Rob Gardner)와 의기투합 해 두 밴드의 이름을 합친 새 밴드, 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를 탄생시켰다. 그런데, 트레이시와 올리는 그 후 얼마되지 않아서 다시 엘에이 건즈를 재결성하러 떠나버렸고, 롭도 결국 떠나버리자 그 자리를 헐리우드 로즈 시절 녹음에서 잠시 활약했던 슬래쉬(Slash), 그리고 그의 친구인 드러머 스티븐 애들러(Steven Adler), 그리고 두 사람과 함께 로드 크루(Road Crew)라는 팀에서 활약했던 더프 멕케이건(Duff McKagan)을 영입해 현재 우리가 기억하는 건즈 앤 로지스의 정식 라인업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참고로 헐리우드 로즈 시절의 음원을 듣고 싶은 분들에겐 데모 음원들을 모아 2004년에 발표한「The Roots of Guns 'N' Roses」가 있음을 알려드린다.)

결국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그들은 1985년에 건즈 앤 로지스는 활동을 시작했고, (멤버들의 표현을 빌려) ‘지옥 여행(Hell Tour)’ 이라 불린 강행군 투어를 시작했다. 매니저도 없는 상태에서 자신들이 직접 악기를 차에 싣고 시애틀로 가 그 곳 로컬 클럽들을 돌며 공연했다고 하니, 정말 얼마나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였을지는 상상이 간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시절 함께한 친구들이 끈끈해 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밴드 멤버들 모두 그 시기가 밴드의 음악적 결속력을 다지는 데 중요한 기간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이들의 공연을 지켜본 게펜(Geffen) 레이블의 담당자는 다른 프로모터들에게 (그들이 형편없다는) 헛소문을 퍼뜨리면서 그들과의 계약을 성사시켰고, 그 후 밴드가 음반 작업에 전념하는 조건으로 라이브 EP의 성격을 띄는「Live ?!*@ Like a Suicide」(1986)을 자신들이 세운 인디레이블 우지 수이사이드(Uzi Suicide)를 통해 내도록 해주었다. 이 EP에는 에어로스미스(Aerosmith)<Mama Kin>과 그들의 헐리우드 로즈 시절 작품인 <Reckless Life> 등 4곡이 담겨있었는데, 나중에G'n'R Lies」CD버전에 함께 실려 우리에게 알려졌다. 

  1년간의 작업 끝에 1987년 7월, 그들의 첫 정규 앨범인「Appetite for Destruction」이 (로봇이 여성을 성폭행하고, 이들 괴상한 기계 괴물이 응징하는 일러스트가 그려진) 기괴한 초반 커버로 공개되었고, 첫 싱글로 앞에서 언급한 <Welcome to the Jungle>이 커트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재킷의 문제로 가계에 진열을 거부하는 바람에 커버가 교체되었고, MTV에서는 발매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이 곡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독특한 사운드에 대해 록과 펑크 팬들은 서서히 반응을 보였고, 두 번째 싱글인 <Sweet Child O' Mine>에서 그 기운은 일순간에 폭발했다. 당시 액슬의 연인이었던 에린 에벌리(Erin Everly, 그 후 3년간 액슬의 아내였음.)에게 바친 이 곡은 결코 가벼운 곡이라 단정할 수 없음에도 사랑의 향기를 가득 머금은 가사의 힘과 슬래쉬의 수려한 기타 솔로의 조화로 80년대를 대표할 만한 록 싱글의 지위를 얻었다. (현재까지 유일한 팝 싱글 차트 1위 곡이다.) 그리고 그 시점부터 이들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는 <Paradise City>까지가 히트 싱글이었으나, 실제로 앨범에 수록된 전곡이 히트곡이라 말해도 틀린 게 아니었다. 그 당시의 LA메탈/팝 메탈 히트곡들이 점점 대중의 입맛에 맞게 자신들의 헤비 사운드를 대중적으로 윤색한 타입이었다면, 이들은 오히려 클래식 록 시대의 사운드의 힘을 부활시키면서 대중의 취향을 끌어갈 수 있는 대중적 멜로디로 승부했기에 그들이 메탈 씬의 새로운 영웅으로 부각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들은 단숨에 ‘Monsters of Rock’ 등 대형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지위가 격상되었고, 가는 곳마다 팬들은 밴드에 열광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이들의 흐트러진 모습들(공연 무대에 약물 복용이나 만취 상태로 서서 연주했던 일, 심지어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시상식에서 슬래쉬는 술에 취한 채로 수상 소감을 말하다 욕설을 섞는 바람에 방송국이 진땀을 뺐다.)도 동시에 여과 없이 대중에게 전달됐다. 결국 그들은 1980년대 초반 머틀리 크루(Motley Crue)가 듣던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록 밴드’ 라는 호칭을 넘겨받기도 했지만, 그게 이들의 인기 행진에 장애가 되진 않았다. 향후「Use Your Illusion」연작을 구상하고 녹음을 진행할 시간을 벌기 위해 제작된 2집「G'n'R Lies」(1988)은 노래는 낭만적이지만 뮤직비디오는 여전히 그들다웠던 싱글 <Patience>와 인종적 편견을 담아 논란이 되었던 <One In A Million>, 그리고 원곡보다 어쿠스틱한 편곡이 더 매력적이었던 <You're Crazy> 등을 담은 4곡 EP와 데뷔 이전 라이브 EP를 결합한 ‘팬 서비스’ 성격의 작품이었다. 이 앨범 역시 빌보드 앨범차트 2위에 오르면서 밴드의 인기 기반은 더욱 공고해졌다. 

 
이처럼 엄청난 스타덤을 쾌속으로 획득했음에도 아직 그들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이들의 생각마저 돌려버리며 이들의 90년대 최고의 록 아이콘으로 만든 작품은 바로 CD 2장으로(LP로는 더블 앨범 2세트로) 분리되어 발매된 ‘메탈 블록버스터 앨범’「Use Your Illusion 1」,「Use Your Illusion 2」였다. 이에 앞서 이들은 루마니아 난민 고아 자선기금 마련을 위한 컴필레이션「Nobody's Child: Romanian Angel Appeal」<Civil War>를 수록했고, 영화 ‘Days of Thunder’ 에는 라이브에서 자주 연주해왔던 밥 딜런(Bob Dylan)의 고전 <Knockin' on Heaven's Door>의 리메이크를 수록했다. 그 동안, 스티븐 애들러는 약물과 알코올 문제로 결국 밴드에서 퇴출당했고, 그 자리에 컬트(Cult) 출신의 드러머 매트 소럼(Matt Sorum)이 들어왔다. 그리고 건반 연주를 도와줄 디지 리드(Dizzy Leed)를 보강한 뒤 1991년 9월 17일, 두 앨범은 동시에 발매되어 1, 2위에 동시 랭크되었다. 그 후 2년간 두 앨범을 합쳐 총 8곡의 모던 록 차트 히트곡이 탄생했는데, 그 중 영화 ‘터미네이터 2(Terminator 2)’의 삽입곡 <You Could Be Mine>(29위), 007 영화 주제곡의 훌륭한 리메이크였던 <Live and Let Die>(33위), 그리고 록 팬의 범위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이들의 음악을 잊혀지지 않게 만들었던 원동력이었던 양대 록발라드인 <Don't Cry>(10위), <November Rain>(3위) 등은 팝 싱글 차트에서까지 선전했다. 히트곡들 외에도 2장에 담긴 총 30곡의 트랙들 모두 데뷔작보다 훨씬 유연해지면서도 대중음악이 선보일 수 있는 넓은 스펙트럼을 총괄해 헤비메탈의 르네상스를 빛낸 최후의 앨범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음악적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투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지 는 견해 차이로 밴드를 탈퇴했고, 그 자리는 길비 클락(Gilby Clarke)으로 채워졌다.) 

  한창 ‘Use Your Illusion’ 세계 투어를 마무리할 1993년 말, 그들은 독특한 펑크 록 커버앨범 「Spaghetti Incident?」를 발표했다. 스투지스(The Stooges), 티 렉스(T-Rex) 등 펑크와 글램 록 선배들의 곡을 커버한 작품들로 이뤄진 앨범 속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뿌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선명하게 보여주었으나, 평단의 평가는 엇갈렸었다. 게다가 싱글로 발표된 곡은 50년대 팝 그룹 스카이라이너스(Skyliners)의 히트곡 <Since I Don't Have You>였으니, 이 앨범을 당장 신보를 낼 수 없는 상황에서의 팬 서비스로 보는 견해도 존재할 만 했다.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 롤링 스톤스의 커버곡인 <Sympathy for the Devil>을 수록한 것을 끝으로 밴드는 대외활동을 접고 94년부터 96년 사이에 신보를 위한 곡 작업을 시도했다. 불행히도 커버 앨범의 소소한 성적이 밴드에 가한 압박감은 멤버들 사이의 갈등을 심화시켰고, 액슬의 독재(?)에 반기를 든 멤버들은 하나 둘씩 밴드를 떠났다. 결국 1998년이 된 이후 액슬과 디지를 빼고는 아무도 오리지널 멤버가 남아있지 않게 되었고, 다음 해에 전성기의 실황 녹음을 편집한「Live Era 87-92'」가 발표되었지만, 그들의 명성은 서서히 옛 기억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해체 일보직전의 우여곡절을 지나서 90년대 후반부터「Chinese Democracy」로 제목이 확정된 밴드의 신보 작업이 정말로 시작되었다는 얘기가 들려왔고, 역시 아놀드 스와제네거가 주연한 영화 ‘End of Days’의 삽입곡으로 <Oh My God>이 흘러나왔을 때, 팬들에게는 새로운 기대감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1년 ‘Rock in Rio’ 의 무대에 섰을 때, 과거와 90% 결별한 새로운 모습의 밴드의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출신의 기타리스트 로빈 플릭(Robin Flick), 러브 스핏 러브(Love Spit Love) 출신의 기타리스트인 리차드 포터스(Richard Fortus), 그리고 리플레이스먼츠(Replacements) 출신의 베이시스트 토니 스틴슨(Tommy Stinson)와 잠시 밴드에 참여했던 기타리스트 버켓헤드(Buckethead)와 함께 들어와 눌러앉은 브라이언 맨티아(Brian Mantia) 등이 그 멤버들인데, 새 멤버들과 함께 액슬은 해마다 여름 페스티벌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택하면서 이번 새 앨범을 녹음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런데, 올해 로빈은 자신의 고향인 나인 인치 네일스의 투어에 참여하면서 향후 밴드 잔류 가능성에 의문을 갖게 만들고 있다. - 해설지엔 요 말이 빠졌을 겁니다..--;;)

  비록 새 앨범이 시작부터 완성되어 대중에게 공개되기까지 10년 남짓의 시간이 소요되었고, 그간 앨범에 수록될(또는 실제 수록된) 다량의 음원의 데모 버전, 또는 라이브 버전이 유출되었다. 게다가 슬래쉬, 더프, 매트는 자신들의 밴드 벨벳 리볼버(Velvet Revolver)로 액슬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아직 대다수의 팬들이 이들의 신보에 대해 작게나마 기대를 품고 있는 것은 그들이 그 기나긴 침묵과 잠행의 시기에 비해 지난 날 엄청난 음악적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이제 그 결과물이 현실로 공개된 지금, 평가는 분명 냉정히 대중에 의해 내려질 것이다. 그러나 ‘New Guns N' Roses’ 의 시작은 바로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영예로움을 쌈짓돈으로 소모만 할 밴드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자신들을 ‘전설’로만 기억하는 새 세대 팬들을 끌어들이는 ‘회춘’한 밴드로 환골탈태할 것인지는 100% 그들의 노력에 달려있다.

2008. 11 글/ 김성환

원래 해설지의 파트 2(신보 리뷰)는 다른 분이 작성하셨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제 나름의 신보 리뷰를 달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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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중고음반으로 그간 구하고 싶었던 애니메이션 '마크로스(Macross)' 의 모든 시리즈의 OST 중에서 하이라이트만 추린 베스트 앨범 [Macross Song Collection 2002]를 입수했다. 10여년전, 형님이 구해오셔서 들었던 마크로스 원편과 극장판 OST의 총합본 [Macross Complete]보다 분량은 적을지 몰라도 그 후에 나온 속편 OVA들과 극장판, 관련게임 속 음악들 중 대표곡만 모았기 때문에, 마크로스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는 괜찮은 자료다. 그런데, 이 앨범을 걸고 오랜만에 (예전에 뮤비를 포스팅했던) 극장판 주제곡 [愛..おぼえていますか?(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를 들으며 다시금 린 민메이의 목소리가 참 좋다... 라고 생각하다가,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검색에 돌입, 다음과 같은 자세한 결과들을 확인하게 되었다.



Iijima Mari - 愛..おぼえていますか?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84년 TV Live)


린 민메이의 목소리 역할을 맡았던 이지마 마리(Iijima Mari)는 사실 이 시리즈에 참여하기 이전에는 아직 데뷔도 제대로 못한 신인 여성 가수였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수로서의 데뷔 이전에 먼저 애니메이션 성우 제의가 들어왔고, 그녀도 이를 수락하면서 '민메이 스타덤'과 그녀의 가수로서의 성공적 커리어가 동시에 시작되었다. 83년 데뷔작 [ROSE]를 발표한 이후, 80년대 중반까지 그녀는 앳띤 외모와 고운 보이스로 청소년들은 물론 성인 팬들한테도 절대적 지지를 받았으나, 보다 넓은 범위에서의 음악 활동을 위해, 그리고 자신과 린 민메이를 혼동하는 팬들 속에서 그 캐릭터 속에 자신이 갇히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 미국으로 근거지를 옮기게 되었고, 89년에 미국인과 결혼해 2명의 자녀를 두고 살다 2001년에 혼자가 되었다.
 
현재까지 그녀는 총 20장의 앨범을 발표했으며, 다수의 베스트 앨범을 내놓기도 했는데, 2000년대 들어와서는 그녀의 80년대 초기작 4장이 모두 CD로 재발매되기도 했다. 아래의 동영상을 봐도 알겠지만, 그녀는 현재 미국 인디씬에서 활동하면서 피아노를 중심으로 미국식 여성 싱어-송라이터 계열의 음악으로 변신했으며, 그 결과 VH1에서 주관하는 <Song Of The Year> 컨테스트에서 4개월간 월 장원을 차지했었고, 그와 동시에 2007년 그래미 시상식 후보 선정 리스트 속에서 일본 뮤지션으로서는 드물게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 부문과 '최우수 보컬
포함 연주 편곡 부문'에 포함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특히, 2006년도 앨범인 [Uncompromising Innocence]는 완전히 영어 앨범으로 기획되어 미국 시장에서도 그녀의 존재를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한편, 린 민메이의 보이스 역할을 그녀는 2000년대에 한 번 더 하게 되는데, 바로 미국 시장에서 영문 더빙판으로 [마크로스]가 DVD재발매 되었을 때, 그녀는 영어 대사로 자신의 역할을 다시 녹음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영어로 인터뷰를 자유자재로 할 정도로 그녀는 높은 영어 구사력을 갖고 있다.) 미국에 진출한다고 굳이 요란을 떨지 않아도 이렇게 꾸준히 자기의 한계를 넘으려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은 현재 미국 시장 진출을 '홍보전략'처럼 여기는 국내 뮤지션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은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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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로스 OST에서의 그녀의 노래들:
내 남자친구는 파일럿 Pt. 1 / 소백룡 / 천사의 그림물감

P.S. 그녀의 비디오 속 저 토실토실한 얼굴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같은 시기를 살다가 먼저 사라져버린 여성 싱어-송라이터 장덕의 모습이 스쳐간다.


 
Iijima Mari - 天使の繪の具(천사의 그림물감)
(84년 TV Live)




Iijima Mari - 愛..おぼえていますか?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 2000년대 어쿠스틱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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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확히 84년 1월달이었을 것이다. 그때 즈음부터 FM라디오를 끼고 살기 시작하면서 주말마다 [두시의 데트]에서 소개해주는 빌보드 차트 순위를 경청할 무렵, 상위권에서 자주 들렸던 매우 흥겨운 신시사이저 팝 댄스 트랙에 반했었다. 바로 매튜 와일더(Matthew Wilder)의 싱글 <Break My Stride> . 통통 튀는 신시사이저 연주의 매력이 돋보이는 트랙이었다. 하지만, 그 후 후속 싱글인 <The Kid's American>을 한 두번 들은 이후에는 그에 대한 소식을 들을 기회가 전혀 없었고, 나도 그를 그냥 80년대의 원 히트 원더의 대열에 넣어버렸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그냥 팝 씬에서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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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3년생으로 70년대에는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포크 듀오 매튜 & 피터(Matthew & Peter)로 활동했던 매튜 와일더는 듀오가 해체하자 TV광고 음악을 노래하면서 동시에 리키 리 존스(Ricky Lee Jones)베트 미들러(Bette Middler)의 백업 보컬로 활동했다. 하지만 자신의 솔로 계약은 83년 CBS산하의 Private Eye레이블과 따내면서 데뷔 앨범 [I Don't Speak The Language]를 발표했다. 이 앨범에서 싱글 커트된 <Break My Stride>가 싱글 차트 5위에 오른 것이 그에게는 차트에서의 최고 기록이었고, 위에서 언급한 두 번째 싱글 이후 그는 84년 말 2집 [Bouncing Off The Wall]을 내놨지만, 타이틀곡의 뮤직 비디오에 공을 들여놓고도 앨범과 싱글의 반응이 시원치않아 결국 레이블에서 방출당했다.


Matthew Wilder - Break My Stride
(Solid Gold 83' 출연분)

  하지만, 그 후에도 그는 작곡가와 프로듀서로서의 활동은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그런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은 그 후 13년이 지나 제작된 록 밴드 노 다웃(No Doubt)의 메가 히트 앨범 [Tragic Kingdom]이었다. 그는 애초에 자신의 솔로 앨범에서도 신스 팝 사운드를 바탕으로 래게, 스카, 펑크적 요소를 살짝 가미했던 경력이 있고, 기본적으로 그루비한 리듬감을 즐기는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초기에 좀 더 강성 스카 펑크였던 이 밴드의 사운드를 더욱 팝퓰러한 방향으로 다듬어 줄 수 있었고, 그 결과 앨범의 대 히트로 인해 그의 프로듀서로서의 입지도 음악계에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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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그의 진가가 다시 한 번 빛이 났던 작품은 98년에 발표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Mulan]의 OST에서였다. 앨범의 전곡을 그가 작곡했던 이 사운드트랙은 디즈니의 그간의 알란 멘켄(Alan Menken)식 사운드를 탈피해서 엘튼 존(Elton John)에 이어서 좀 더 로큰롤의 필이 가미된 스타일의 곡들로 디즈니 애니메이션 음악의 성격을 변화시켰고, 이후 필 콜린스, 스팅 등 대중 뮤지션들에게 곡을 맡기는 견인차 역할을 해주었다. 그 이후에는 아직까지 어떤 대 히트 음반을 만들어내고 있지는 못하지만, 현재 2명의 신인 뮤지션들의 앨범을 작업하고 있으니, 앞으로 그의 작곡자-프로듀서로서의 행보는 꾸준히 계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의 앨범 2장은 LP시대에 만들어 진 후에는 1999년 1-2집 수록곡 모두를 한 데 모은 [I Don't Speak The Language/Bouncin' Off The Wall] 합본 CD가 리이슈되어있으니, 아마존 등을 통해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Matthew Wilder's Discography:

1st: I Don't Speak The Language (1983)
2nd: Bouncing Off The Wall (1984)

 

Matthew Wilder
 음악듣기
 
(Break My Stride / The Kid's American (From 1st Album)
Mad For You / Cry Just A Little (From 2nd Al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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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음악계에서 '부부듀오'는 그들의 사랑의 힘으로 멋진 히트곡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대부분이 (서구 사회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인기가 시들거나 불화가 생긴 뒤에는 꼭 '파경'이라는 결말을 맞는 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캐롤 킹(Carole King)과 게리 코핀(Gerry Goffin) 콤비나 소니 앤 세어(Sony & Cher), 아이크 앤 티나 터너(Ike & Tina Turner), 캡틴 & 테닐(Captain & Tennill : <Do That To Me One More Time>이란 곡으로 잘 알려졌었다.), 그리고 2쌍의 부부가 되었다가 헤어지면서 밴드까지 풍지박산난 아바(ABBA)의 두 커플까지... 뭐 우리 보다야 결혼 생활에서 개인의 자유가 우선되는 동네니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이와 반대로 연인관계를 청산하고 친구로 남는 과정을 통해 음악적으로 성장한 몇몇 경우들 - 유리스믹스(Eurythmics)애니 레녹스(Annie Lennox)와 데이브 스튜어트(Dave Stewart), 매트 비앙코(Matt Bianco)시절부터 한 솥밥을 먹고 탈퇴 후에도 한 배를 탔던 바시아(Basia)와 대니 화이트(Danny White) 콤비 등 - 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 글에서 소개할 (우리는 근황을 몰라 아직도 '부부듀오'라 부르는) 보이 미츠 걸(Boy Meets Girl)의 두 남녀는 현재 어떤 모습일까?

키보드와 보컬을 담당하는 죠지 메릴(George Merril)과 보컬과 작곡을 그와 함께 하는 세넌 루비컴(Shannon Rubicam)은 모두 시애틀 출신으로, 76년에 우연히도 둘 다 웨딩 싱어로 고용되어 온 어느 결혼식 자리에서 서로 처음 만난 뒤 음악에 대한 합의가 일치해 함께 작곡 팀과 보컬 듀오로서 활동하게 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랑이 싹텄고, 정식 데뷔하기까지 10년의 동거 기간을 거쳤다.) 이들은 일단 85년에 A&M 레이블을 통해 데뷔 앨범 [Boy Meets Girl]을 발표했는데, 이 앨범에서 싱글 <Oh Girl>이 Top 40까지 드는는데는 성공을 했으나, 불행히도 앨범은 76위에 그치는 저조한 성과를 내며 사람들의 기억에서 빨리 지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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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렸다. 그러나, 이 때 그들에게 찾아왔던 행운은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데뷔 앨범에 수록될 백인 취향의 팝 댄스 넘버에 그들이 작곡한 <How Will I Know>가 선택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이 곡이 86년 벽두에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자, 휘트니 측에서는 다음 앨범을 위한 트랙을 한 곡 더 써달라는 요구가 들어왔고, 그 결과 만들어 진 곡이 2집의 첫 싱글이자 역시 1위 싱글이었던 <I Wanna Dance With Somebody>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그룹명으로 성공하고 싶은 욕구가 계속 남아있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 갈등을 겪으며 결별도 했다가 다시 1년만에 만나 결국 부부로서의 연을 시작함과 동시에 레이블을 RCA로 옮겨 2집 [Reel Life]를 발표하게 된다. 이 앨범에서 발표된 첫 싱글이자 영화 [Three Man And A Baby(프랑스 영화 '세 남자와 아기바구니'의 미국판 리메이크작)]의 삽입곡인 <Waiting For A Star To Fall>이다. 싱글 차트에서는 최고 순위 5위에 오른 이 히트곡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그간의 꿈을 성취했고, 앨범도 준수한 판매를 거두었다. 그런데 90년에 만들어진 3번째 앨범 [New Dream]은 음반사의 발매 계획 취소로 창고에 묶여버리고 말았고, 홍보용 CD만이 2004년 그들에 의해 재발매되기 이전까지는 휘귀품으로 팔렸다고 한다.


Boy Meets Girl - Waiting For A Star To Fall (Videocl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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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그들은 자의반 타의반 평범한 필부필부의 삶으로 돌아가버렸고, 그렇게 10년 가까운 세월을 육아와 가정생활에 전념하다, 2000년대 초반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곡 커플로서의 관계는 유지하기로 하면서 그들의 음반 레이블 boymeetsgirlmusic을 설립하고 4집 [The Wonderground]를 2003년 자신들의 사이트를 통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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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 발매, 유통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의 팝 트렌드도 적절히 수용해 편곡 면에서는 모던 록적 요소도 살짝 첨가하고, 한편으로 새비지 가든(Savage Garden)식의 A/C Pop 사운드와도 맥락이 닿아있는 (어쩌면 역으로 그들이 이들의 80년대 분위기와 닿아있는것인지도 모르겠다.)이 앨범은 히트하고는 영 거리가 멀었지만, 올 뮤직 가이드에서도 별 3개 반 정도의 준수한 평가를 받은 만큼 수록곡들은 귀에 끌릴 만큼 괜찮은 트랙들이 많다. (국내에 정식 발매될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 당분간 전곡을 듣게 해드리겠다. 하지만 언제 삭제될 진 며느리도 모른다....... ^^;)  현재 이들은 그들의 홈페이지(www.boymeetsgirlmusic.com)을 운영하면서 자신들의 블로그 겸 음반 판매 사이트로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데, 그들의 각종 데모곡 샘플과 그들의 근래의 사진들이 여럿 있다. 그리고 최근 앨범 [The Wonderground]를 비롯해 이들의 모든 앨범들을 배송료 포함 16달러 정도에(아마존보다 싼 가격이다) 국제 우편으로 빠른 시일에 구입할 수 있으니 이들의 음원을 찾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단, 신용카드로 Paypal 계좌를 만들어야 한다는 약간의 번거로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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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앨범 [The Wonderground]는 우리가 음악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겪은 이혼과 자신에 대한 교정, 가족관계와 친구관계의 지속, 그리고 서로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사랑과 존중을 배운 것까지 그 과정에서 얻은 것들, 그 신비한 감정으로의 회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동양적 관점에선 쉽게 이해되지는 않지만, 오히려 고정된 관계의 틀을 벗어남으로서 더 깊은 관계의 의미를 알게 된 이들의 현재 모습은 웹 페이지에 나온 이러한 세넌의 말에서 충분히 감지되는데, 이들은 지금도 꾸준히 작곡 작업을 해서 새로운 곡들로 대중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고등학생 시절 이들의 음반을 들으며 이렇게 서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끼리 커플이 되기를 꿈꿨던 기억을 되새겨보면서 앞으로도 그들이 서로 보이 미츠 걸의 이름 아래 더욱 좋은 음반을 들고 찾아 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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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y Meets Girl's Discography:

1st : Boy Meets Girl (1985, A&M)
2nd : Reel Life (1988, RCA)
3rd : New Dream (1990, RCA - Officially Releases in 2004)
4th : The Wonderground (2003, Boymeetsgirlmusic)

 


음악듣기: Waiting For A Star To Fall / Bring Down The Moon (From [Reel Life])

 


4집 [The Wonderground] 전곡 듣기 (한시 운영, 트랙리스트는 주크 박스를 열어볼 것.)

<Bonus Track>
그들의 [Wating For...]를 샘플한 일렉트로니카 곡인 Cabin Crew[Star2Fall] 뮤비 (2005)
=>이 링크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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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원 히트 원더(One-Hit Wonder)'는 한 곡 정도의 빅 히트곡을 남기고 그 이후에는 이렇다할 상업적 성과를 남기지 못한 채 주류 무대에서 사라져버린 팝 뮤지션들을 가리키는 서구 언론의 용어입니다. 어느 시대든 다 적용이 가능하지만, 특히 80년대에 그런 경우가 여럿 있었다는 점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칼럼 시리즈는 그렇게 80년대를 풍미했지만 너무나 빨리 사라져 간 그 뮤지션들이 지금도 어디선가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사례를 찾아 그들의 노래를 추억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정보를 제공하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제 추억을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구요...^^;;
 
Chapter 1: Billy Vera & The Bea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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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말, 우리 나라 음악 팬들 입장에선 정말 요즘 표현으로 '듣보잡(듣보도보못한 잡것)'에 해당하는 아티스트의 싱글 하나가 순식간에 빌보드 차트를 강타하더니, 87년 1월 2주에는 기어이 정상에까지 올랐다. 바로 빌리 베라 & 더 비터스(Billy Vera & The Beaters)의 싱글 <At This Moment>였다. 스튜디오 녹음도 아닌 라이브 원 테이크 녹음인 덕분에 마치 우리가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데이빗 레터맨(David Letterman)의 쇼의 백밴드가 연주하는 스탠더드 재즈 팝 발라드 성격의 트랙이 신스 팝과 댄스 팝, 팝 메탈이 득세하던 그 시절 차트 1위에 올랐다는 것이 사실 그 순간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동네 음반점에 컴필레이션 테이프를 제조(?)해달라고 할 수 있던 그 시절, 그 경로를 통해 입수한 이 곡을 들을 때마다 항상 묘한 아늑함을 느끼곤 했었다. 그리고 20년이 지났다.... 과연 그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라는 궁금증에서 한 번 그의 자료를 인터넷으로 뒤졌더니, 의외로 팔팔하게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상업적 히트와는 무관하게 말이다.)

  빌리 베라(Billy Vera)는 1948년 캘리포니아 태생으로 방송국 아나운서였던 아버지와 레이 찰스 앨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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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백업 보컬을 하고 페리 코모의 TV쇼에도 출연했던 경력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일찌기 뮤지션의 꿈을 키웠다. 10대 시절부터 작곡을 하기 시작한 그는 릭키 넬슨(Ricky Nelson - 우리가 90년대에 만났던 넬슨(Nelson) 쌍동이 형제의 아버지이자 60년대 유명 컨트리 가수였음.)에게 <Mean Old World>을 제공하며 처음으로 저작권을 인정받았고, 바바라 루이스(Barbara Lewis)에게 준 <Make Me Belong to You>가 히트하면서 어틀랜틱 레이블과 처음 계약을 맺게 되었다. 첫 싱글은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의 사촌이었던 주디 클레이(Judy Clay)와의 듀엣 <Storybook Children>이었는데, 이 곡과 자신의 솔로곡 <With Pen in Hand>가 어느 정도 히트를 하면서 대중에게 슬쩍 알려졌지만, 60년대 후반 이후 그의 성향과 같은 음악이 사양길에 접어들자 그도 한 동안 주류에 떠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 돌리 파튼(Dolly Parton)이 그의 곡인 <I Really Got The Feeling>을 발표해 컨트리 차트 1위에 오르자, 그는 이에 자신감을 얻어 자신의 밴드 빌리 앤 더 비터스(Billy & The Beaters)를 결성하고 서부 지역의 클럽에서 인기 공연 밴드로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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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81년 일본에 본사를 두고 막 미국 시장에 진출했던 알파(Alfa)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이들의 클럽 공연 실황을 그대로 녹음해 발표한 [Billy & The Beaters]를 내놓는데, 여기서 <I Can Take Care Of Myself><At This Moment>가 연이어 싱글 컷이 되었으나 모두 하위권 차트 성적으로 만족해야 했다. 결국 알파 레이블은 2집 [Billy Vera] 이후 이들과의 계약을 종료했고, 이들은 한 동안 다시 무명의 시기로 돌아가야했다. 하지만, 행운은 언제나 의외의 곳에서 찾아온다고 했던가? 마이클 제이 폭스(Michael J. Fox)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80년대의 인기 시트콤 [Family Ties] 프로듀서가 어느날 그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의 곡 <At This Moment>를 드라마에 사용하겠다고 한 이후, 이 곡의 인기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결국 워너 뮤직 산하의 라이노(Rhino)레이블은 그들의 알파 시절의 음원을 넘겨받아 1,2집의 대표곡을 합친 [By Request]라는 편집앨범을 내놓았고, 여기서 다시 싱글로 발표한 <At This Moment>가 정상을 차지한 것이었다. (한편, 이 음원의 소유주였던 알파 레이블은 이 싱글을 머릿곡으로 한 일본판 베스트 앨범을 내놓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예음사가 이 음반을 라이선스화하여 당시 공급했었다.)



Billy Vera & The Beaters
- At This 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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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후 빌리는 브루스 윌리스와 킴 베이싱어가 출연했던 영화 [Blind Date]의 OST에 참여함과 동시에 영화에도 직접 출연했으며, 드라마 [Empty Nest]의 테마송 작업, 베이와치(Baywatch), 베버리힐즈 90210(Beverly Hills 90210)에도 출연하는 등 TV와 영화 관련 활동을 주로 했지만, 이는 차트에서의 인기와는 역시 거리가 멀었기에 그는 졸지에 80년대 원 히트 원더 대열에 합류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80년대 말부터 자신의 라디오 쇼인 [Billy Vera's Rock & Roll Party]를 진행했고, 그의 목소리의 개성을 파악한 광고주들은 그를 성우로서 기용해 버커 킹, 혼다, 머큐리, 도요다 광고에 등장시키기도 했었다. 그리고 90년대 후반에도 카툰 네트워크의 [King Of Queens]의 테마 송을 작업했으며 현재까지 꾸준히 캘리포니아 클럽 씬에서 계속 자신들의 음악을 계속 연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좋아했던 선배 뮤지션들의 리이슈 앨범들에 라이너 노트(Liner Note)를 쓰는 칼럼니스트로서도 활약하고 있는데 레이 찰스(Ray Charles), 샘 쿡(Sam Cooke), 리틀 리차드(Little Richard) 등 그가 쓴 라이너 노트만 200여편에 달한다.

  언제나 5-60년대 스탠더드 팝-소울-재즈 성향의 작곡을 하는 그의 성격상 앞으로도 주류에 돌아올 확률은 극히 미미하지만, 이렇게 자신만의 영역을 지켜가면서 다방면으로 활약하는 뮤지션들이 기저에 많이 있기 때문에 미국의 음악 시장은 항상 그 나름의 역동성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Discography Of Billy Vera (& The Beaters) :

   
   

Storybook Children
- Duet Album with Judy Clay (Atlantic)
With Pen In Hand (Atlantic)
Out of the Darkness (Atlantic material reissued on Macola, 1987)
Billy & the Beaters - with the Beaters (Alfa)
Billy Vera (Alfa)
Mystic Sound of Billy Vera (Mystic)
By Request (1st & 2nd Album Best Compilation) (Rhino)
Blind Date Soundtrack (3곡 참여) (Rhino)
The Atlantic Years (Compilation) (Rhino)
Retro Nuevo - with the Beaters (Capitol)
You Have To Cry Sometime - with Nona Hendryx (Shanachie)
Oh, What a Nite - with the Beaters (Pool Party Records)
At This Moment: A Retrospective - with the Beaters (Compilation) (Varese-Saraba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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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공지한 대로 이 포스팅에서는 데비 깁슨(Debbie(or Deborah) GIbson)의 2006-2007년도의 소식들을 그녀의 공식 사이트와 기타 자료를 근거, 소개해 보고자 한다. 관심있으시면 읽어주시고, 아님 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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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보라 깁슨(Deborah Gibson)에게는 올해가 나름대로 의미있는 해가 되고 있는것 같다. 먼저 작년 9월에는 80년대 시절의 동료 조던 나이트(Jordan Knight)[Love Songs]앨범에서 함께 부른 싱글 <Say Goodbye>가 실로 오랜만에 그녀를 (비록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였으나) 빌보드 순위에 들게 만들어주었다. 아래 사진들은 두 사람의 녹음 관련 장면들을 조던 측에서 찍은 사진들인데, 마치 오랜 친구처럼 함께 작업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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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엇보다 그녀에게 가장 명예로운 순간은 올해 5월 10일부터 공연되기 시작한 뮤지컬 [Electric Youth : The Musical]의 탄생이었다. 아시다시피 그녀의 대표적 히트곡 제목을 단 이 뮤지컬은 (마치 맘마미아(Mamma Mia!)와 같은 포맷으로) 그녀의 전성기 시절 히트곡들을 레파토리로 하여 한 편의 뮤지컬로서 완성 것인데, 뉴욕 출신의 어느 약혼한 커플이 시댁이 있는 미네소타의 Fern Hill이란 시골 마을에 도착해서 파산으로 인해 대지주에게 농장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겪는 우여곡절 스토리를 가진 이 뮤지컬은 일단 본토에서는 준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3, 그리고, 지난 8월에는 미국에서 MTV가 탄생하기 이전에 가장 인기있었던 음악 프로그램인 '아메리칸 밴드스탠드'의 50주년을 기념하는 12CD 박스 세트인 [American Bandstand - 50th Anniversary Box-Set]의 발매를 홍보하는 프로그램에서 프랭키 아발론(Frankie Avalon)과 함께 홍보대사(?)로 나섰다는 점이다. 어쩌면 아메리칸 밴드 스탠드의 완전 끝세대(80년대 중반까지 이 프로그램은 버텼다.)였던 그녀가 그 초창기를 대표하는 프랭키와 함께 진행을 한 것은 이 박스세트 홍보에 나름대로 도움이 되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4. 그럼, 그녀의 가수로서의 커리어는? 최근 모 인터넷 잡지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녀는 몇 곡의 새 노래를 일본 레이블 측의 지원으로 제작중이라고 한다. 그 곡들이 해당 레이블에게서 합격점을 받으면 빠르면 내년에는 그녀의 신보를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그녀의 공식 웹 페이지(www.deborah-gibson.com)를 통해서 그녀의 신곡 [Famous]를 무료 다운로드 받을 수 있으니, 참조하시길 바란다. (여기서 한 번 듣고 맘에 드심......^^;)

 
Deborah Gibson - Fam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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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1‘: 각 멤버들의 솔로 활동기에서 재결성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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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로 넘어가면서 뱅글스의 이름은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듯 했으나, 네 명의 멤버들은 밴드의 해체 이후 각자 (양지에서건 음지에서건) 꾸준한 음악활동을 해왔다. 먼저 (자의반 타의반으로) 밴드에서 주목을 받았던 수재너 홉스는 밴드 해체 후 90년에 첫 솔로 앨범 [When You're A Boy]를 내놓았지만, 싱글 [My Side Of The Bed]를 제외하고는 그리 큰 히트를 하지 못했다. 뱅글스 시절에 곡 작업에 참여했던 작곡자들이 많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뱅글스의 음악보다 밋밋하고 팝적이기만 한 앨범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음악적 방향을 찾아 고심하다가 96년에 들어서 셀프타이틀로 된 2번째 앨범을 내놓았는데, 당시의 포크-록 계열의 여성 싱어 송 라이터들의 인기 행진 속에서 그녀도 포크 록적인 싱글 [All I Want]를 히트시키며 자신이 그들의 선배격임을 보여주며 자신의 위상을 지켜나갔다. 그리고, 비키 피터슨은 처음에는 솔로 앨범을 구상하다가 친구 수전 카우실(Susan Cowsill)과 함께 Continental Drifters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그 후에는 여러 여성 아티스트들의 앨범에 참여함과 동시에 고고스의 재결성 투어에 당시 임신중이라 참여못한 샬롯을 대신하여 기타리스트 자리에 서기도 했었다.



 Susannah Hoffs - My Side Of The Bed
(Live on 'David Letterman')



Susannah Hoffs - All I Want (Acoustic Live) 


  한편, 데비 피터슨은 밴드 해체 이후 가족에만 전념하다가 잠시 고고스의 지나 쇽과의 프로젝트를 결성하기도 했지만, 지나의 탈퇴로 다시 혼자서 음악작업을 하던 중 시오반 마에르(Siobhan Maher)라는 여성 뮤지션을 만나 새로운 작업을 거쳐 Kindered Spirit이라는 듀오를 결성해 활동하게 된다. 이들의 앨범은 95년에 발매되는데, 두 사람이 영국과 미국으로 떨어져 살고 있던 관계로 이들의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하고, 게다가 I.R.S.레이블마저 96년에 페업하는 바람에 듀오는 자연 해체된다. 마지막으로 마이클 스틸은 해체 이후 솔로 활동이 예정되었으나 계약문제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대신에 비키의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활동을 이어왔으며, 한 때는 Eyesore라는 밴드에도 참여했었지만, 외형적으로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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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다양한 솔로 활동 속에서 네 사람은 가끔씩 서로 연락을 취하며 과거 해체 당시에 얽혔던 감정들을 서서히 풀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98년 가을에 수재너와 데비는 다시 함께 모여 곡을 쓰기 시작했고, 이 세션이 잘 진행되는 과정에서 비키가 다시 합류하면서 뱅글스의 재결성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 영화 ‘오스틴 파워’를 제작하던 마이크 마이어스(Mike Myers)와 제이 로치(Jay Roche)는 이들에게 사운드트랙을 위한 곡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고, 세 사람은 마침내 마이클까지 합류시켜서 거의 9년만에 뱅글스의 이름으로 [Get The Girl]이라는 싱글을 제작한다. (그리고 현재 그와 수잔나는 부부사이다.) 이 곡은 그들의 초창기 사운드와 오히려 닮아있는 곡으로 히트곡은 아니지만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이후 99년 8월에 뱅글스를 재가동 할 것을 결심하고 명 프로듀서 조지 마틴 경(Sir George Martin)이 주최한 비틀즈 트리뷰트 공연에서 최초의 재결성 무대를 가졌다. 이후 각자의 프로젝트를 정리하면서 함께 모여 곡 작업을 한 이들은 작년 7월에 공식적인 재결합을 공표하고 9월부터 클럽 투어를 시작, 연말까지 투어를 진행했고, 마침내 2002년 재결성이후 첫 앨범인 [Doll Revolution]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서는 싱글 [Something That You Said]가 조금 반응을 얻었으나, 차트상에서는 큰 반향은 얻지 못했다. 그래도 그 후 지금까지 (작년에 마이클이 다시 탈퇴했지만) 꾸준히 투어를 지속하고 대중과 소통중이며, 최근 아이튠즈에 신곡을 공개하기도 했다.
 



Bangles - Something That You Said

나가는 글: 고고스와 뱅글스가 90년대 여성 뮤지션들에게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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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고스와 뱅글스는 남성적인 록/헤비 메탈 밴드들이 그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80년대의 록 신에서 여성들로만 구성된 록 밴드로서 전-후반기를 양분하며 스타덤을 얻었던 밴드들이다. 사실, 다양한 장르에서 여성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활발하게 발휘하고 있으며 많은 록 밴드에서 (마치 80년대에 블론디의 데보라 해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여성 보컬의 카리스마가 밴드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위치에 서있는 90년대 이후의 팝 계에서도 의외로 완전히 여성으로만 구성되어 스타덤에 오른 밴드들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굳이 넣어봐야 커트니 러브의 홀(Hole)정도? 근데 거기도 남자 멤버가 있다.)에서 고고스와 뱅글스를 능가할만한 스타덤을 얻을 여성밴드가 언제 새로 등장할 것인지 사못 궁금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러한 희소성과는 별개로 우리는 그들이 존재했음으로 인해 90년대의 음악 신에서 여성 뮤지션들이 록을 한다는 것이 대중들에게 어떤 인식으로 작용했는가에 대해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두 밴드는 록음악을 하기 위해 여성들이 이전 시대처럼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틀에서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려했던 것과는 달리 여성으로서의 장점을 존중하고 오히려 부각하면서 이후 여성뮤지션들이 자신들의 ‘여성성’을 지키며 록음악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작사-작곡과 연주 등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해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90년대의 많은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에게도 음악을 하는 데 있어 여성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넣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의 좋은 예시가 되어 주었기에 이들의 존재는 단순히 80년대에 잠깐 ’반짝 떴던‘ 아이돌 스타들과는 분명 구별되어야 할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제 어쩌면 그들과 (더 멀리는 선구적인 여성 선배 뮤지션들)을 보며 성장해 온 90년대의 ’릴리스 페어 군단‘들의 대열에 고고스와 뱅글스도 ’선배‘ 대접을 받으며 복귀, 합류했다. 이들이 과거의 스타덤을 재현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겠지만, 분명 40이 넘은 나이에도 자신들의 음악을 계속 하고 싶어하는 이 ’맹렬여성‘들의 노력이 다음 세대의 여성들이 아티스트를 향한 꿈의 자양분이 되어 줄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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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 The Bangles

  80년대 전반기 여성 록 밴드의 대표주자가 고고스였다고 한다면 그 바통을 이어받아 80년대 후반기를 풍미했던 존재는 바로 뱅글스였다. 물론 이들이 86년에 싱글 [Manic Monday]로 차트 2위를 차지하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때, 많은 음악팬들은 이들을 단지 고고스의 빈자리를 채워준 ‘대타‘ 또는 심지어는 ’복제품‘ 정도로 이들을 받아들였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밴드의 성격과 고고스와 같이 여성으로만 구성된 밴드라는 점 때문에 흡사하게 느껴지는 선입견을 버리고 이들의 사운드에 귀를 기울여 본다면 분명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고고스가 다분히 영국에서 건너온 펑크의 영향 아래에서 캘리포니아 팝 사운드를 접목했다고 한다면, 뱅글스는 그와는 달리 기반을 ’포크 록‘에 두고 그 위에 팝적인 멜로디 감각과 보컬 하모니를 강조한 록 밴드였다. 밴드 멤버들이 어린 시절부터 즐겨 들었고 지향했던 사운드가 비틀즈, 홀리스(The Hollies), 버즈(The Byrds),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였다는 것에서 그런 사실은 명백하게 확인되는데, 이들이 남긴 3장의 음반 속에는 록 밴드가 지닌 강인함보다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더욱 많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89년을 끝으로 밴드가 해체되어 많은 팬들의 아쉬움 속에 사라져갔던 이들이 지난 2000년 여름에 공식적인 재결합을 선언하고 다시 활동에 들어가면서 다시 팝 계에 돌아왔다. 그 사실을 상기하며 이들의 음악이 당시에는 어떤 의미로 대중들에게 인식되었는가를 되돌아보도록 하자.

80~89‘: 뱅글스의 결성부터 전성기, 그리고 해체까지
  뱅글스라는 밴드의 결성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2월 9일, 당시 보컬리스트 수재너 홉스(Susanna Hoffs)는 우연히 한 달이나 지난 LA의 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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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The Recycler'에 나온 광고를 보고 당시 밴드를 구성할 멤버를 찾으며 자기 집 창고에서 음악에 빠져있던 데비 피터슨(Debbie Peterson:드럼)비키 피터슨(Vikki Peterson:기타)을 찾아가게 된다. 그 날은 마침 뉴욕에서 존 레논(John Lennon)이 피살된 다음 날이어서 세 사람은 그 비극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 그들이 서로 음악적 취향이 일치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 모두 포크 록과 관련된 밴드들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 사람은 트리오를 조직하기로 하는데, 처음에는 데비가 드럼, 비키가 베이스, 수재너가 기타를 담당하고 함께 노래를 불렀는데, 함께 곡 작업을 하던 이들은 멤버 보강의 필요을 느껴서 아네트 제일린스카(Annette Zailnska)를 베이시스트로 영입하고, 비키가 리드 기타의 자리로 옮기면서 우리가 아는 뱅글스의 4인조 구성의 토대가 되었다.
  이제 라이브 공연을 할 수 있게 된 밴드는 처음에는 ‘The Colors', 'Supersonic Bangs'등의 표현을 떠올리다가 마침내 밴드의 이름을 Bangs로 정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이들은 클럽가에서 60년대 풍으로 보컬 하모니가 강조된 인디적 록앤롤을 연주하면서 팬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이에 힘입어 처음으로 자체 제작한 싱글인 Getting Out Of Hand가 괜찮은 반응을 얻고 몇몇 라디오 방송국에서도 전파를 타게 되었다. 그런데, 밴드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당시 뉴저지 주에서 활동하던 밴드인 The Bangs가 이들이 자신들과 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네 사람은 결국 밴드의 이름을 우리가 아는 The Bangles로 개명하게 된다. 이후 82년에 들어 뱅글스라는 밴드는 LA의 클럽가에서 한창 ’뜨는‘ 밴드로 성장했으며, 이러한 이들의 재능을 눈치챈 I.R.S.레코드사의 사장 마일즈 코플랜드는 그가 고고스를 전세계적인 인기 밴드로 키웠던 자신감으로 이들을 키우려고 계약을 제의했다. 하지만 밴드는 그의 권유를 처음에는 거북해했는데, 비키는 당시의 생각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그는 우리를 하층계급의 고고스로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난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래도 결국 이들은 코플랜드의 제의를 수락했고, 82년 5월에 뱅글스는 5곡이 들어있는 셀프 타이틀 EP를 만들어서 정식으로 데뷔했다. 이 앨범은 당시 4만장정도가 팔렸는데, 영국 밴드 The English Beat의 오프닝 밴드로 무대에 서면서 다른 대형 음반사들의 구미를 당기는 존재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83년에 들어서 뱅글스는 그들의 음반을 발매하던 I.R.S.사의 서브 레이블인 Faulty사가 도산하고, 베이시스트 아네트마저 탈퇴하여 Blood On The Saddle이란 밴드로 옮겨가자 밴드 활동의 재정비가 필요함을 느끼고 새로운 베이시스트를 물색했는데, 그렇게 해서 밴드에 가입하게 된 인물이 바로 마이클 스틸(Michael Steele)이었다. 그는 놀랍게도 70년대 여성 하드록 밴드 런어웨이즈(The Runaways)의 탄생 초창기 데모 녹음 때까지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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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뮤지션으로, 전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음악적 지향도 밴드의 다른 멤버들과 일치하여 밴드에 쉽게 동화될 수 있었다. 바로 그해 말에 뱅글스는 Columbia 레이블과 새로운 계약을 맺는데 성공하고 프로듀서 데이빗 케인(David Kahne)과 팀을 이루어 메이저에서의 첫 앨범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 결과물이 84년 4월에 발매된 이들의 첫 정식 앨범인 [ALL OVER THE PLACE]였는데, 이 앨범은 비록 상업적으로 이들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이 되지는 못했지만 평론가들에게는 호평을 얻었으며 거칠면서도 목가적인 기타음과 뛰어난 하모니 감각으로 인해 주목을 받았다. 그 결과 이들의 앨범 수록곡들은 대학 라디오 방송국들의 지지를 받으며 집중적으로 방송 전파를 탔고, 뒤이어 막 스타덤에 오른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공연의 오프닝 밴드로 전국 투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안겨주었다.
  첫 앨범의 소폭의 히트로 자신감을 갖게 된 이들은 이후 새 앨범의 작업을 하면서 팝적인 감각을 더 강화한 앨범을 만들게 되는데, 그러기 위해 밴드는 자신들 이외에도 다양한 작곡가들을 앨범의 곡 제작에 참여시키게 된다. 그 결과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이들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던 2집 [DIFFERENT LIGHTS]였는데, 이 앨범에서 처음으로 발표된 싱글 [Manic Monday]는 이들의 재능을 인정한 프린스(Prince)가 크리스토퍼(Christoper)라는 가명으로 만들어 준 곡으로 당시 차트 2위까지 오르며 일순간에 뱅글스를 스타급 록 밴드의 자리에 오르는데 결정타 구실을 했다. (프린스가 작곡했다는 사실로 인해 항간에는 그가 리드 보컬 수재너를 유혹하기 위해 곡을 준 것이 아니냐는 루머까지 나돌았었다.) 그리고, 이 곡 이외에도 뒤이은 싱글 [If She Knew What She Wants], 그리고 그들의 노래 가운데 최초의 1위곡(4주 연속)이자 특이한 안무(?)가 담긴 뮤직비디오가 코믹함을 더해준 흥겨운 록/댄스 트랙인 [Walk Like An Egyptian]까지 연이어 히트한 [DIFFERENT ......] 앨범은 이전에 고고스가 세웠던 히트 기록을 경신하면서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싱글상‘, 최우수 MTV 비디오 퍼포먼스 상, 그리고 브릿 어워드에서의 최우수 국제 아티스트 상 등 다수의 수상을 휩쓸며 명실공히 당대에 최고의 상업적 인기를 얻는 여성 록 밴드로서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The Bangles - Manic Monday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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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Review: DIFFERENT LIGHTS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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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뱅글스의 메이저 레이블에서의 두 번째 앨범이자 이들에게 전세계적인 스타덤을 안겨준 앨범인 본작은 대중적인 팝/록 사운드의 전통에 가장 충실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는 앨범이다.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의 조화, 60년대 이후 수많은 팝/록 밴드들이 그들의 음악에서 중시했던 보컬의 3-4부 화음에 대한 집착까지 이들의 음악에는 팝/록 사운드가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많은 요소들이 고루 갖추어져 있는데, 이러한 이들의 기질은 이미 전작 [ALL OVER THE PLACE]에서도 드러났지만 프로듀서인 데이빗 케인은 이 앨범에서 더욱 치밀하고 세련된 프로듀싱으로 라디오에서까지 어필할만한 ‘가장 팝적인’ 뱅글스의 앨범을 만들어놓았다.
  먼저,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Manic Monday]는 비록 프린스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가 작곡에 공을 들인 수고에 버금가는 멤버들의 깔끔한 연주와 수재너의 부드럽게 감기는 허스키 보컬이 매력적인 트랙이며, 타이틀곡인 [In A Different Light][Let It Go], [Walking Down Your Street]에서는 록 밴드로서의 뱅글스의 매력이 잘 묻어나는 스트레이트하면서 경쾌한 기타 사운드를 보여준다. 한편, [Walk Like An Egyptian]에서는 퍼켜션 이펙트를 적절히 활용한 이국적인 분위기와 적절한 기타 솔로 등이 어우러져 대중적으로 귀를 자극할 신선한 팝 트랙을 만들어냈고, Jules Shears의 곡인 [If She Knew What She Wants]는 연주보다는 멜로디와 보컬 하모니 자체에 중점을 둔 상큼한 트랙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 앨범에서의 가장 큰 수확은 이들이 결성이전에 좋아했던 포크적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난 [Following]으로 베이시스트 마이클의 작곡 능력과 보컬까지 책임지고 수행해낸 앨범의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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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ngles - If She Knew What She Wants (86)



The Bangles - Walk Like An Egyptian (87)

  87년에 들어 뱅글스는 당시 랩과 메탈 전문 레이블이었던 Def Jam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이 사장으로 있었음.)에서 준비한 영화 [Less Than Zero]의 사운드트랙에 들어갈 트랙을 작업했는데, 이들은 함께 사이몬 앤 가펑클(Simon And Garfunkle)의 포크 록 고전 [Hazy Shade Of Winter]를 훨씬 하드한 느낌으로 리메이크하여 수록했고, 이 곡은 싱글로 커트되어 당시 차트 2위까지 오르는 대 히트를 기록했다. 한편, 리드 보컬 수재너 홉스는 잠시 연기에 눈을 돌려 같은 해에 (그녀의 어머니 Tamar Hoffs가 감독한) 영화 [The Allnighter]에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으나, 영화 자체는 그리 큰 히트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들은 투어를 계속하면서 그 사이에 준비된 신곡들을 청중들에게 들려주었으며, 투어가 끝난 후 바로 스튜디오로 돌아와서 새 앨범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레코딩에 들어가기 전에 이들은 프로듀서를 데빗 시거슨(Davitt Sigerson)으로 교체하고 모두가 전작보다는 더 록음악다운 앨범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앨범 작업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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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범을 작업하며 이들은 다른 작곡자들(예를 들어 마돈나의 [Like A Virgin]으로 명성을 날린 Billy Steinberg와 Tim Kelly 콤비 등)과 공동작업을 하면서도 멤버들의 작곡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노력을 펼쳤으며, 그러한 작업의 결실은 그 해 10월에 3번째 앨범 [EVERYTHING]으로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전체적으로 더 하드한 곡들과 더 팝/블루스적인 트랙들이 공존했던 이 앨범에서는 첫 싱글이자 경쾌한 록 넘버인 [In Your Room]이 10위권에, 그리고 지금도 팝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오케스트레이션이 담긴 팝 발라드 [Eternal Flame]이 차트 정상에 오르며 전작에 못지 않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된다.


The Bangles - Hazy Shade Of Winter
(88' Saturday Night Live Performance)


The Bangles - In Your Room (88)

  이들은 앨범 발표 후 ‘Everything Everywhere Tour’란 이름의 공연을 펼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으나, 이 때부터 그룹 멤버들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밴드의 리드 보컬인 수재너가 지나칠 정도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존재가 되어버려서 나머지 멤버들의 밴드에서의 공헌도가 간과된다는 인식이 밴드 안에 퍼지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멤버들 사이의 대화가 줄어들면서 우정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새롭게 밴드의 매니지먼트를 맡은 Stiffel-Phillips사는 뱅글스를 밴드로 인정하기 보다 수재너에게만 모든 투자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갈등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이후에 계획된 모든 투어는 취소되었고, 89년 가을에 들어와서 수재너와 마이클이 밴드가 다 모인 자리에서 그룹을 탈퇴할 것을 선언하면서 뱅글스는 더 이상 그 동안의 모습으로 존속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언론을 통해 밴드가 ‘활동중단’을 공식 선언하면서 밴드의 해체는 기정 사실화되었다. 그들의 해체 발표이후 소속사는 90년 5월에 [GREATEST HITS]앨범을 발매했는데, 이 앨범 안에는 [Hazy Shade Of ......]처럼 비(非)앨범 수록곡 3곡이 추가되어 이들의 히트곡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편집음반이 되어 영-미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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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Review: GREATEST HITS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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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뱅글스의 정규 앨범들을 CD로 일일이 구한다는 것이 워낙 힘든 현실에서 이 베스트 앨범은 그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팬들에게 하나의 일목요연한 ‘가이드 북’ 구실을 하는 작품이다. 그들의 해체 이후 발표된 이 앨범에는 그들의 ‘히트 싱글’들이 연대기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데, [ALL OVER THE PLACE] 앨범에서 2곡, [DIFFERENT LIGHTS] 앨범에서 5곡, [EVERYTHING] 앨범에서 4곡이 실려 있고 이에 영화 [Less Than Zero]에 수록되었던 사이몬 앤 가펑클의 리메이크 [Hazy Shade Of Winter] 등 비 앨범 수록곡 3곡이 추가되어 있기에 이 앨범 한 장만 소장해도 뱅글스의 상업적 ‘히트곡’들은 다 챙길 수 있는 메리트가 있다. 특히, 이런 편집 앨범의 재미는 아티스트의 음악적 스타일의 변화를 짧은 시간에 간파할 수 있다는 점인데, 첫 앨범의 싱글들인 [Hero Takes A Fall]이나 [Going Down To Riverpool]에서는 초기 비틀즈를 연상시키는 60년대풍 록앤롤의 재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DIFFERENT ... ]앨범을 거쳐 [EVERYTHING]앨범에 와서는 전작에서 팝적으로 기울었던 사운드를 자신들이 음악적 지향과 맞춰보려는 노력들이 드러나는데, [In Your Room]과 당시 제인스 애딕션 출신의 기타리스트 데이브 나바로(Dave Navaro)가 참여한 [Everything I Wanted]는 그러한 노력이 두드러졌던 3집의 수작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뱅글스라는 밴드의 연주력이 최고로 표현된 작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Hazy Shade Of Winter]로서, 그 하드 록 적인 어레인지와 어우러진 완벽한 보컬 하모니는 이 곡을 원곡보다 멋진 리메이크를 꼽으라면 반드시 거론되어야 할 작품의 대열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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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ngles - Eternal Flame (2001 Top Of The Pops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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