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Wave/Synth Pop의 생존자들 (2회) - Chapter 1. Duran Duran (Part 1)
Chapter 1. 80년대 '아이돌'밴드', '뉴 로맨틱스'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다
- Duran Duran
신스팝과 MTV시대의 영웅으로서의 80년대
첫 싱글 이후 이들은 셀프 타이틀 앨범 ‘Duran Duran'을 내놓게 되는데, 여기에 수록된 곡들은 그들의 음악 여정에서 가장 펑크적 요소가 많이 묻어난 것으로서 이들이 Punk와 Funk의 묘한 경계를 달리며 ('Girls on Film, Careless Memories') 거기에 신서사이저 사운드의 전위성('Telaviv')을 첨가하고자 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앨범이었는데, 이 작품으로 그들은 영국 앨범차트 3위를 기록하며 차트에서 총 118주 동안 머무는 인기를 모았다. 이들은 곧이어 82년 봄에 두 번째 앨범 ’Rio'를 발표하고 ‘Hungry Like the Wolf'와 ’Save A Prayer'등의 싱글을 10위권에 올리며 유럽 지역에서의 그들의 인기를 다졌다. 하지만, 이들에게 아직 미국은 진출해야 할 대상으로 남아있었는데, 그들에게 그 길을 열어준 것이 다름아닌 MTV였다. 지금 보아도 뛰어난 스타일과 작품성을 과시하는 'Hungry Like the Wolf', ‘Rio'의 뮤직비디오는 83년도 MTV의 단골 메뉴가 되어 미국 시장을 강타했으며, 그 결과 두 싱글 모두 미국 시장에서 10위권에 오르는 인기를 구가했다. 이 인기의 여세를 몰아서 새로운 싱글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를 수록해 미국용으로 다시 내놓은 ’Duran Duran'앨범의 미국시장 10위권 진출은 그들의 당시의 인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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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Review: Rio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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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983년 연말에는 이들의 세 번째 앨범 ’Seven and the Ragged Tiger'가 발표되었다. 이 앨범은 영국 차트 1위, 미국 차트 8위까지 오르는 성적을 거두며 ‘Union of The Snake', 'New Moon on Monday', 그리고 이들의 첫 번째 미국시장 1위곡인 ’The Reflex'와 같은 싱글을 연달아 히트시켰고, 이들의 미국시장에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하며 나아가 전 세계시장에서 그들의 명성을 확인시킨 앨범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인기는 당대 뉴웨이브/신스팝 계열의 밴드들 중에서는 단연 으뜸이었는데, 당시 이들과 다수의 영국밴드들의 미국에서의 인기를 가리켜 언론이 이른바 ‘제 2의 British Invasion'이라고 불렀던 것에는 어쩌면 어느 정도 듀란듀란의 공헌이 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보컬리스트 Robert Palmer(이 앨범의 참여로 인해 이후 86년부터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함)와 Chic 출신의 드러머 Tony Thompson의 참가로 4인조 구성을 갖춘 Power Station은 마치 듀란듀란에서 록적인 요소만을 뽑아낸 듯한 사운드를 들려주며 ’Some Like It Hot', 그리고 T-Rex의 리메이크인 ‘Get It On'으로 큰 인기를 모았고, Arcadia도 앨범 ’So Red The Rose'를 통해 싱글 ‘Election Day'를 히트시키며 팽팽한 인기 대결을 벌였다.
하지만, 이러한 그룹의 분화는 결국 로저 테일러의 탈퇴(그는 밴드를 떠난 이후 다시는 음악계에 돌아오지 않았다.)와 뒤이은 앤디의 솔로 전향으로 이어졌고, 결국 그들은 3인조로서 86년작 ’Notorious'를 제작하게 되었다. 이 앨범에서 그들은 프로듀서 나일 로저스와 함께 기존의 음악적 틀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여유 있는 음악적 시도들을 보여주며 그 동안 그들을 눌러 온 아이돌 스타 그룹의 이미지를 서서히 벗어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타이틀 트랙과 당시 국내 금지곡이었던 ‘Skin Trade', 그리고 우리에게는 정감 있게 다가왔던 발라드 ’A Matter of Feeling'의 히트로 이 앨범은 영-미 양측에서 비교적 성공작이 되었으며, 그들을 일단 위기에서 건져준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일단 이들의 인기는 80년대 초-중반만큼 뜨거워지기에는 이미 한 시기를 넘겼으며, 88년 말에 나온 앨범 ‘Big Thing'에서는 ’I Don't Want Your Love', 'All She Wants Is'같은 괜찮은 히트 싱글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앨범 자체의 인기는 그리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89년에 이들은 자신들의 10년간의 싱글을 담은 베스트 앨범 ‘Decade'를 내놓으며 80년대의 활동을 정리하고 그 해 (한국 팬들에게는 기쁨 그 자체였던) 내한 공연 때 다녀가기도 했던 2명의 세션 멤버 워렌 쿠쿠룰로(Warren Cuccurullo:기타), 스털링 캠벨(Sterling Cambell: 드럼)을 정식멤버로 맞아 90년에 앨범 ’Liberty'를 내놓지만, 이 앨범은 일반 대중들은 물론 듀란듀란의 팬들에게마저도 ‘졸작’으로 취급받는 어정쩡함으로 인해 쉽게 대중에게 잊혀진 앨범이 되고 말았다.
성인 취향의 성숙한 사운드로 재기한 90년대
사실 ‘Liberty'앨범의 실패로 많은 팬들은 이제 듀란듀란도 그 당시의 다른 신스 팝 밴드들처럼 몰락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닌가하고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전작의 ’실패‘는 단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음악을 성숙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들의 사운드는 90년대에 와서 확연히 전시대와는 달라졌음을 보여주는데, 그 실체를 처음으로 확연하게 드러낸 작품이 바로 93년에 내놓은 'Duran Duran’ (필자주: 1집과 앨범명이 동일하여 일단 자켓 사진에서 따온 ’The Wedding Album', 또는 ‘Duran Duran 2'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이었다. 이 앨범은 보다 어쿠스틱한 면모를 띄면서 성인 취향의 프로듀싱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잊을 뻔했던 전 세계 팬들에게 ’Ordinary World', 'Come Undone'과 같은 신선한 트랙들을 선보였고, 그 결과 차트상에서도 그들의 명성에 어느 정도 걸맞은 히트를 기록했으며, 그들에게 80년대에 별로 우호적이지 않았던 평론가들에게도 괜찮은 반응을 얻었던 작품으로 기록되며 이들을 80년대의 아이돌 스타에서 진지한 뮤지션으로서 재평가 받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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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Review: Duran Duran (The Wedding Album) (1993)
(Music Video : Ordinary World - 2005년 공연 실황 (원년 멤버 라인업으로 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