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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소니뮤직의 해설지가 될 뻔한 글이었으나, 라이센스 발매 계획이 취소되고 수입으로 돌려지면서 과연 종이에 찍힐 지 미지수가 되어버렸습니다. ㅠㅠ


1970~1980년대를 대표했던 여성 록의 기수, 앤-낸시 윌슨(Ann-Nancy Wilson),
두 자매가 이끌어온 집념의 밴드 하트(Heart)의 2012년 최신작, [Fanatic]


  2012년의 대한민국 홍대의 여러 인디 록 밴드에서도 여성 멤버들이 보컬리스트는 물론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에 이르기까지 주요 멤버로 활약할 정도로, 이제 여성이 록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절대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서구 대중음악 씬에서도 1990년대 이후부터는 수없이 많은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록 음악을 택했고, 이제 여성이 프론트 우먼, 또는 밴드에서 음악의 중심, 즉, 작사/작곡의 중심에 서서 활약하는 밴드들은 부지기수가 되었다. 

  그러나 40년 전만 해도 여성 뮤지션들이 남성 중심의 록계에 뛰어들어 자신들의 지분을 갖고 활약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1970년대 이전에도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과 그레이스 슬릭(Grace Slick)과 같은 여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70년대로 넘어오면서 록 씬의 주류가 블루스/사이키델릭 사운드보다는 더욱 강한 하드 록/헤비메틀로 이동하자 다시 록계에서 여성 뮤지션들의 활약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도 몇몇 여성 뮤지션들은 남성들에게 뒤지지 않는 그들만의 파워 속에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배합해 그 견고한 벽을 뚫고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 가운데 가장 선봉에 섰던 두 명의 여성 록커들이 바로 이 앨범의 주인공인 하트(Heart)의 영원한 안방마님들인 앤 윌슨(Ann Wilson), 낸시 윌슨(Nancy Wilson) 자매였다. 

  한 명은 보컬리스트로서, 한 명은 작곡에도 참여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로서, 두 자매가 1970년대 데뷔 초기에 보여준 뮤지션으로서의 카리스마는 이후 등장하는 하드 록 씬의 여성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들의 초기 음악 속에서 두 자매 스스로도 가장 큰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들 음악의 뿌리 속에 들어있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영향력은 그들의 음악을 설명할 때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실제로 앤 윌슨은 한동안 ‘여성 로버트 플랜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레드 제플린이 외형적으로는 직선적인 하드 록의 전형을 선사한 것으로 기억되지만 그들의 음악 속에는 분명 진한 블루스와 포크 록의 감성이 녹아 있었던 것처럼, 하트의 음악들도 1970년대의 음악들에서는 그 특색이 가장 두드러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하트는 1970년대 말의 슬럼프를 딛고 1980년대 주류 팝 씬에서 제 2의 전성기를 보내던 무렵에는 그 초기의 특색을 잃어버렸던 것처럼 기억될 수도 있다. 그들의 1970년대는 잘 모른채 1980년대의 히트곡인 ‘These Dreams’(1985)나 ‘‘Alone’(1987)과 같은 팝/록 발라드, 그리고 그 당시의 히트 앨범들만으로 하트를 기억한다면 당연한 추론이자 귀결이다. 그러나 헤비메틀 씬이 대중화를 일으키기 시작하기 전, 이 당시 록 밴드들이 주류에서 생존하는 데 있어 신시사이저의 적극적 활용, 그리고 대중적 히트곡을 위한 주류 작곡가들과의 협업과 같은 명제는 피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런 메이저 레이블의 압박이라는 조건 속에서도 나름 팝/록의 근간을 제대로 지켰던 음반을 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얼터너티브 록이 다른 모든 록 장르를 ‘구식처럼’ 만들었던 시대가 지나가고, 다양한 록 장르들이 이젠 주류부터 인디까지 고유의 개성을 지키며 각자의 생존법을 모색하는 2010년대에 그들이 지난 앨범 [Red Velvet Car](2010)로 자신들의 생존과 음악적 기개가 저물지 않았음을 보였을 때, 미국 음악 팬들은 빌보드 앨범 차트 10위 등장이라는 화답으로 그 복귀를 반겨주었던 것이다. 비록 우리는 한동안 하트를 잊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하트의 위상은 그만큼 클래식 록, 올드 팝 팬들에게 절대적이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순간이었다.


40년 가까이 미국 록 씬에서 두 번의 전성기와 함께 그 이름을 지켰던 하트의 음악 여정
  물론 하트의 역사가 두 자매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맞지만, 이 밴드의 전신이었던 디 아미(The Army)는 사실 1963년에 워싱턴 주에서 처음 결성된 팀이었다. 이 밴드는 이름을 호커스 포커스(Hocus Pocus), 화이트 하트(White Heart) 등으로 개명해 활동하다가 결국 1970년대 하트로 밴드 이름을 줄이면서 새 보컬리스트를 뽑는 오디션을 실시했다. 여기에 시애틀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프로 보컬리스트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던 앤 윌슨이 응해 최종 선발된 것이 현재

우리가 아는 하트의 진정한 출발점이라 봐도 무방하다. 앤은 밴드 가입 후 당시 기타리스트였던 마이크 피셔(Mike Fisher)와 사랑에 빠졌고, 마이크가 베트남전 군 징집을 피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도피하자 앤이 나머지 멤버들을 설득해 아예 밴드의 활동 근거지를 밴쿠버로 옮겨버렸다. 이 때가지도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던 앤의 여동생 낸시 윌슨은 대학생이 된 이후 일단 솔로 포크 싱어로 활동을 시작했으나, 1974년에 본격적으로 밴드에 합류했다. 그녀가 기타리스트로 가입을 하면서 마이크는 그룹 활동의 일선에서 물러났고, 그 후 두 자매는 밴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존재로 부각되며 밴드를 밴쿠버 지역의 인기 밴드로 올려놓았다. 

  이 때, 그들의 활동을 지켜봤던 프로듀서 마이크 플리커(Mike Flicker)가 데모 테이프를 만드는 것을 지원해주면서 그는 결국 밴드의 전담 프로듀서로 하트의 활동을 지원해 주기 시작했다. 결국 1975년 머쉬룸/캐피톨(Mushroom./Capitol)레이블과 계약을 맺고서 첫 앨범 [Dreamboat Annie](1976)을 제작했고, 이 앨범에서 ‘Crazy on you’, ‘Magic man’, ‘Dreamboat Annie’가 연이어 히트를 거두면서 단숨에 캐나다를 넘어 고국인 미국 시장에서까지 스타덤에 올랐다. 강력하지만 멜로디가 강조된 하드 록 트랙들과 컨트리 포크의 감성도 포함된 음악들이 섞인 이 앨범은 현재까지도 음악적으로 그들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명반이자 1970년대 록의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캐나다에서 더블 플래티넘, 미국에서 플래티넘 디스크를 기록했다.) 1년 후 레이블을 소니뮤직(당시는 CBS) 산하 포트레이트(Portrait)로 옮겨 발표한 2집 [Little Queen](1977) 역시 그들의 성공을 계속 이어주었는데, 그들의 곡 가운데 가장 헤비한 리프를 가진 싱글이었던 ‘Barracuda’와  ‘Little Queen’ 등이 히트를 거두며 미국 내에서만 3백만 장 이상을 파는 대 히트를 거뒀다. 

  하지만 팝 음악계에는 한창 디스코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었고, 모든 클래식 록 밴드들이 그 때문에 휘청대던 시기에 하트는 계속 기존 남성 멤버들의 탈퇴와 새 멤버들의 가입이 이어지는 어지러운 내부 사정을 겪었다. 이전 레이블이 그들이 남긴 음원으로 만든 애매했던 3집 [Magazine](1978), 싱글 ‘Straight On’과 타이틀 트랙이 준수한 히트를 거두었던 4집 [Dog & Butterfly](1978)까지는 그래도 사정이 좋았다. 하지만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발표한 5집 [Bebe Le Strange]는 싱글 ‘Even It Up’과 골드 레코드 히트에 그쳤고, 1981년에 발표한 첫 라이브 앨범 [Greatest Hits Live]에 이어 내놓은 두 장의 앨범들 – [Private Audition](1982), [Passionworks](1983)은 각각 싱글이었던 ‘This Man Is Mine’과 ‘How Can I Refuse’ 정도를 빼고는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실패의 기간으로만 치부될 수는 없었던 시간이었다. 83년 앨범부터 레코딩에 참여한 새 멤버 두 사람이 밴드의 색깔에 좀 더 메인스트림 록의 기운을 넣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새 베이시스트와 드러머가 된 마크 안데스(Mark Andes)와 데니 카마시(Denny Carmassi)는 각각 팝/록 밴드 파이어폴(Firefall)과 몬트로즈(Montrose)에서 활약했던 멤버들로, 더욱 안정되고 스트레이트한 1980년대 주류 AOR분위기의 사운드로 밴드의 음악을 바꿔 놓았다.

  포트레이트에서 방출된 후 다시 첫 번째 앨범을 냈던 캐피톨 레이블로 돌아간 하트는 ‘심플하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로 8집 [Heart](1985)를 셀프 타이틀로 발표했다. 바로 여기서부터 그들의 제2의 전성기가 펼쳐졌다. 그들은 다른 주류 록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좀 더 적극적으로 MTV를 공략했다. 당대의 뉴 웨이브/신스 팝 밴드들의 원색적 분위기를 뮤직비디오에 가미했고, 사운드 역시 로킹함은 리듬 파트의 탄탄함으로 유지하되 건반 사운드를 강조하여 싱글 트랙들에선 과거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의 하트를 연출한 것이다. ‘What about love(10위)’, ‘Never(4위)’ 등 오랜만에 그들에게서 Top 10 싱글들이 터져나왔고, 세 번째 싱글이자 낸시가 리드 보컬을 맡았던 정말 부드러운 록 발라드 ‘These dreams’가 최초로 밴드에게 빌보드 Hot 100 1위의 영예를 안겨주면서 그들은 확실하게 후배 팝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화려한 메인스트림 복귀에 성공했다.

  이어서 발표된 두 장의 앨범들 – [Bad Animals](1987), [Brigade](1990) – 은 그들의 당대의 인기를 지속하게 해준 작품들이었고, 전자에 담긴 록 발라드 ‘Alone’이 싱글 차트 3주 1위와 함께 세계적 히트를 거두면서 지명도 역시 최고조로 올라갔다. 후자에서도 ‘All I Wanna Do Is Make Love to You(당시 국내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라이선스 음반에 담기지 못했으나, 라디오 방송에서는 꾸준히 소개되었다는 것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음)’가 2위를 기록하며 팝 메탈/헤비메탈의 중흥기였던 1990년대 벽두까지 그들의 인기도 지속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20년 이상 지혜로운 생존법을 터득했던 하트에게도 시련은 닥쳐왔다. 한동안 극악의 체중관리로 겨우 유지했던 앤의 몸은 점점 불어가기 시작했고, 1993년 앨범 [Desire Walks On]은 싱글 ‘Will You Be There (In the Morning)’이 40위권에 진입한 것 외에는 전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모두가 자신들의 고향 후배들인 그런지 록밴드에 빠진 시기였기 때문이었고, 80년대에 그녀들을 보좌한 멤버들이 하나 둘씩 곁을 떠나던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낸시마저 결혼 후 육
아를 위해 시간을 갖기로 결심하면서 몇 년간의 휴식을 가지면서 하트의 역사는 어쿠스틱 라이브 앨범 [The Road Home](1995)으로 끝을 맞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낳았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 두 자매는 비정기적으로 자신들의 어쿠스틱 프로젝트 팀 러브몽거스(Lovemongers)를 통해 가끔씩 얼굴을 비추었고, 90년대 말에는 투어를 다닐 수 없는 낸시의 상황을 감안해 낸시가 없는 라인업으로 하트의 투어를 앤 혼자서 이끌기도 했다. 

  그 후 낸시가 돌아오고 다시 밴드가 새 멤버들로 정비되어 밴드가 세 번째 출발점에 선 것은 지난 2002년부터였다. 그 후 2년 뒤에 공개한 12번째 정규 앨범인 [Jupiter’s Darling](2004)은 그들의 인기를 바로 회복시켜주진 못했지만, 아직 두 자매의 보컬과 송라이팅 능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그리고 ‘Oldest Story in The World’등 강력한 트랙들로 다시 포크 록에 기반한 하드 록으로 회귀하는 방향성을 처음 제시한 음반이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소니 레거시(Legacy) 레이블로 복귀해 처음 발표했던 13번째 앨범 [Red Velvet Car]는 ‘There You Go’나 ‘WTF’ 등 더욱 그룹 음악의 초기 원류로 돌아간 듯한 자연스럽고 빈티지한 사운드, 어쿠스틱 사운드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더 이상 라디오에서의 반응을 의식하지 않는, 진정한 록 팬들을 위한 밴드로 돌아온 하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2년 현재 두 자매의 곁을 지키는 멤버들은 2000년대부터 그들과 함께 했던 드러머 벤 스미스(Ben Smith), 기타리스트 크렉 바톡(Craig Bartock), 키보디스트 데비 세어(Debbie Shair), 그리고 올해 새로 가입한 베이시스트 댄 로스차일드(Dan Rothchild)다.


앤-낸시 자매의 오랜 음악적 내공이 더욱 강렬하고 원숙하게 진화하고 있는 신작
[Fanatic]


  두 자매와 밴드에게는 통산 14번째 정규 앨범이 되는 새 앨범 [Fanatic]은 지난 앨범 발표 후 가진 투어 속에서 그들이 묵었던 호텔 방에서, 그리고 캘리포니아 지역의 여러 스튜디오를 거치며 그래미를 수상한 바 있는 프로듀서 벤 밍크(Ben Mink)의 손으로 다듬어졌다. 수록곡은 요새 대부분의 새 앨범의 분량을 생각한다면 달랑 10곡에 불과할 지 모르지만, 이 음반은 1990년대를 끝으로 하트에 대한 정보를 접하지 못했거나, 2000년대 이후의 그들의 음반을 전혀 듣지 못했던 음악 팬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안겨줄 작품이다. 물론 여기서 ‘충격’이라 함은 ‘긍정적 충격’을 말한다. 그들의 1970년대 음악적 뿌리인 포크 록과 블루스에 기반한 하드 록에 충실한, 그러나 자신들이 나이를 먹었음을 잊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운드 면에서 ‘날것과 같은 거친 매력’을 선사한다. 후배 밴드들의 개러지 무브먼트를 통한 선배들의 트리뷰트와는 질적으로 다른 진짜 ‘클래시컬한 하드 록’이 무엇인지 목소리와 음악으로 시범을 보인다, 

  인트로부터 범상치 않은 타이틀 트랙이자 첫 곡 ‘Fanatic’은 사랑과 예술, 진실, 그리고 믿음 등 그들이 마음을 두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항상 ‘광적이었던’ 윌슨 자매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린 곡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모두의 예상을 깨는 이런 블루지 리프 중심의 파워풀한 하드 록 트랙을 2012년에 듣는다는 것도 반갑지만, 그리 과거에 뒤처지지 않는 파워를 선보이는 앤의 보컬 역시 매력적이다. 군인 가정에서 태어난 자신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시선으로 전쟁에서 귀향한 군인의 마음을 그려낸 ‘Dear Old America’는 로버트 플랜트나 지미 페이지가 듣는다고 해도 만족할 만한 스트링과 기타-드럼 연주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마치 하트가 제작한 제플린의 ‘Kashimir’의 트리뷰트이자 속편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신들의 투어 버스 운전사의 깡마르고 노쇠한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Skin And Bones’는 루츠/블루스 록의 기초 위에서 강한 기타 사운드와 드럼 비트의 거친 매력이 잘 살아있는 매력적인 트랙이며, 일렉트로닉적 감각을 살짝 더했지만, 사운드와 비트는 헤비 록에 가까운 응집력을 보여주는 ‘Million Miles’, 다시 한 번 제플린의 향기를 강하게 내뿜으며 파워 코드 연주와 스트링의 격정을 동시에 들려주는 드라마틱한 트랙 ‘Mashallah’, (마치 1980년대 어떤 한국 헤비 록 밴드의 음반에 쓰여있었던 문구에 빗대어 말하자면) ‘블랙 키스(The Black Keys)와 화이트 스트라입스(The White Stripes)를 지옥으로 보내주마!’를 외치는 것 같은 원초적 하드 록의 에너지를 들려주는 ’59 Church’까지 앨범의 하드한 트랙들은 그간 쉽게 맛보지 못했던 밴드의 초창기의 마력을 21세기 버전으로 선사한다.

대표곡 들어보기



  한편, 캐나다를 대표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새라 맥라클란(Sarah McLachlan)을 초대해 함께 듀엣으로 노래하는 포크 록 트랙 ‘Walkin’ Good’, 어쿠스틱 밴드 세팅을 근간으로 오직 낸시의 일렉트릭 연주만을 곁들여 자신들의 초창기 밴쿠버 시절을 회상하며 노래하는 하드 록 발라드 ‘Rock Deep (Vancouver)’, 앤의 보컬부터 모든 파트가 일렉트릭 기타의 잔잔함에서 묵직한 긴장감으로 점층되는 흐름을 뒷받침하며 한 편의 송가적 분위기를 만들어낸 ‘Pennsylvania’, 그들의 1970년대 대표곡들의 위엄에 그리 뒤지지 않는 스케일 큰 대미를 장식하는 어쿠스틱 사운드 중심의 헤비 슬로우 록 ‘Corduroy Road’ 등 밴드의 부드러운 면을 대변하는 곡들도 2000년대의 앨범들을 능가하는 거칠고 고전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물론 이런 사운드의 앨범이 갑자기 젊은 음악 팬들의 반응을 일으켜 하트를 세 번째로 메인스트림의 정상에 올려줄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이것은 유행에 따른 음악이 아닌, 정말 고전적 사운드의 본질에 충실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음악은 40년 내공을 지닌 앤과 낸시 자매만이, 아니, 하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운드였기에, 그런 하트의 신곡들을 2012년에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클래식 록 팬들에겐 올해 최고의 선물 중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하다.


2012. 9 글/ 김성환 (Music Journalist – Hottracks/Paranoid/100Beat Contributor)

 

Posted by mikstipe


여성 멤버들로만 구성된 일본식 일렉트로닉 펑크/비주얼케이 록을 추구하는 가차릭 스핀은 핑크 판다(THE PINK☆PANDA) 출신의 베이시스트 F. 쵸파 코가(F. Chopa Koga), 기타리스트 토모조(Tomozo), 드러머 하나(Hana)로 구성된 이들은 현재까지 각자 파트별 악기 레슨 DVD를 출시했을 만큼 연주력 면에서도 남성 연주자들에 뒤지지 않는 기본기를 갖고 있다. 걸그룹 AKB48의 록 싱글 <Give Me Five>의 연주와 안무 지도를 담당하기도 했다. 최근 새 싱글 <ヌーディリズム(누디리즘)>을 발표했고, 아직 주류 밴드 스캔들(Scandal)에 비해서는 지명도가 약하더라도 좀 더 자유분방하고 펑크 록의 느낌에 충실한 연주를 들려준다. 이번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그들의 무대를 직접 보면서 느낀 것은 스캔들의 딱 짜여진듯한 느낌보다 훨씬 자유롭고, 라이브에서도 괜찮은 연주력을 보여주더라는 것. 끝나고 현장에서 이 싱글 사서 싸인회 줄 서서 베이시스트 아가씨 사인도 받았다. 펜타포트의 감상은 이 블로그와 핫트랙스 매거진 기사로 정리하겠지만, 내 눈에 올해의 즐거운 발견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Gacharic Spin - Nudirism (PV)

아래는 펜타 2012 현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들...



기타리스트 토모조(Tomo-Zo)


드러머이자 보컬리스트 하나(근데 왜 파란 머리 하니까 서태지같아 보이냐..ㅋ)


베이시스트 F. 쵸파 코가(F. Chopa Koga)


올해 새 보컬리스트이자 키보디스트로 가입한 오레오레오네(オレオレオナ)


현장 사인회 장면



라이브도 잘 했음.. (이건 유튜브에 올라온 이들의 라이브 실황)

P.S. 이런거 보고 일빠니 아이돌빠니 비꼬는 취향의 상대주의조차 인정하지 않는
몰지각한 국수주의자 XX들은 다 덤벼. 내 글빨로 죽여버릴테니까.

Posted by mikstipe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역사상 최초로 무대에 서는 대만의 록 밴드 고 칙은 아리엘 징(Ariel Zheng: 보컬), 소니아 래(Sonia Lai: 기타/신시사이저), 사라 웬(Sarah Wen: 베이스)라는 세 명의 열혈 여성 록커들과 드러머 윈스터 리(Winston Li)로 구성된 일렉트릭 펑크 록 밴드다. 라이옷 걸의 에너지와 탄탄한 그루브를 바탕으로 하는 이들의 음악은 이미 대만을 넘어 일본 팬들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으며, 이번에 섬머소닉 페스티벌과의 연계를 통해 한국 인디 밴드들과 맞교환 무대를 서게 되었다. 

  사실 고 칙의 음악을 이번 핫트랙스 기사를 쓰면서 처음 접하고 들었음을 먼저 솔직히 인정해야겠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을 듣는 순간, 그 옛날 비욘드(Beyond)가 그랬듯 타이완의 록 씬에도 확실히 개성 있는 밴드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해서 흐뭇했다. 기본적으로 이들의 사운드는 서구적 언더그라운드 걸 펑크에 기반을 두고 있긴 하지만, 일렉트로닉 비트를 거칠게 사용하는 것으로 댄서블한 느낌을 살리는 것이 장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마치 1990년대에 스타덤에 올랐던 가비지(Garbage)의 사운드도 살짝 연상된다.



   학원 폭력의 문제를 뮤직비디오로 정면으로 담아낸 <Culture Supervisor> <Hard Date>, <P.O.D> 등 몸을 흔들며 즐길 댄스 펑크들이 가득하다. 흥겹지만 거친 사운드의 매력을 이번 펜타포트에서도 직접 느껴볼 수 있기에 기대가 된다. 제발 더 라이크(The Like) 때처럼 어처구니없는 사운드 세팅으로 날 실망시키지 말기를.

 




Posted by mikstipe


재능 있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집단 고고스의 역사

흔히 여성 멤버로만 구성되어 주류에 등장했던 최초의 록 밴드를 꼽으라면 작년에 영화로도 국내에 소개되었던 밴드이자 조운 제트(Joan Jett), 리타 포드(Lita Ford)라는 여성 로커들을 배출했던 런어웨이즈(Runaways)를 언급한다. 물론 정답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의 폭발적 인기에 비해서는 미국 본토에서의 앨범 성적은 너무 초라했다.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너무 강력한 언더그라운드 하드 록-펑크를 구사했고, 뒤로 갈수록 사운드는 더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가 헛된 것은 아니어서, 그 이후 미국의 대중음악 매니지먼트는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록 밴드도 상품성의 가치를 가짐을 확인하고 뉴욕의 언
더그라운드 클럽을 뒤져 제 2의 런어웨이즈가 될 팀을 찾았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1980년대의 전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빌보드 Top 200 앨범 차트 역사 이래 최초로 전원 여성 멤버로 구성된 록 밴드가 1위를 기록하는 이변을 연출했던 재능 있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집단 고고스(Go-Go's)가 세계에 알려졌다.

1978년 보컬리스트 벨린다 카라일(Belinda Carisle), 기타리스트 샬롯 캐피(Charlotte Caffey)와 제인 위들린(Jane Wiedlin)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고고스는 걸스쿨(Girlschool)과 텍스톤즈(Textones)와 같은 당시 언더그라운드 여성 하드 록 밴드들을 거친 베이시스트 캐시 발렌타인(Kathy Valentine), 드러머 지나 쇽(Gina Schock) 등으로 멤버를 정비하고 1981년 데뷔작 [Beauty And the Beat]를 히트시키면서 주류 입성에 성공했다. 다음 해 발표된 2집 [Vacation]까지 연이어 히트행진은 이어졌지만, 역시 20대 초반에 성공을 맛본 젊은 처녀들은 런어웨이즈 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돈과 환락의 맛에 빨리 빠져 들어버렸다(특히 보컬리스트 벨린다는 당시에 스케줄조자 제대로 지키기 힘들 만큼 술과 약물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3집 [Talk Show](1984)를 끝으로 밴드는 해체했고, 그 후 벨린다와 제인은 솔로로, 샬롯은 자신의 밴드 지레이시즈(G'Races) 등으로 활동하다 1990년대 초반 지금 소개하는 이 베스트 앨범을 위해 한정 재결합했다. 이후에도 서로의 소중함을 확인한 이들은 재결합 투어 활동을 이어갔고, 2000년대에는 4번째 앨범 [God Bless The Go-Go's]로 그들의 건재함을 과시한 후, 올해로 데뷔작 발매 30주년을 맞는 투어 'Ladies Gone Wild'로 미국 팬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이 베스트 앨범은 발매 당시 주요곡만 담은 1CD 버전, 2CD 버전으로 각각 발매되었다. 그 가운데 그들이 단순한 로큰롤 밴드가 아니라 1970년대 후반 뉴욕 언더그라운드 여성 펑크 록 씬에서 출발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 2CD 버전이 더 우수하다. 'Johnny Are You Queer', 'Remember (Walking In The Sand)'와 같이 그들이 지금도 라이브에서 자주 연주하지만 정규 앨범에선 찾을 수 없는 곡들이 여기 라이브 버전으로 담겨 있으며, 물론 앞서 언급한 그들의 싱글 히트곡들-'We Got the Beat', 'Our Lips Are Sealed', 'Vacation', 'Head Over Heels' 등-은 당연히 모두 수록되어 있다. 특히 그들 곡 가운데 가장 우울하고 강한 이미지를 가진 'Lust to Love'와 멤버들의 탄탄한 연주력을 보여주는 서프(Surf) 펑크 록 트랙 'Get Up And Go' 등은 꼭 챙겨 듣기를 바란다. 맨 마지막 세 곡은 당시에 새로 작곡, 녹음해 수록한 곡들이다.

그들과 뱅글스(Bangles) 이후에 아직도 주류에서 성공한 전원 여성 멤버 록 밴드가 없기에 데뷔 30년이 넘은 지금도 고고스의 록 역사에서의 가치는 빛난다. 50대 아줌마가 되어서도 여전히 로큰롤을 연주하는 이들이 정말 '나는 전설이다!'라 외칠 자격이 있지 않을까?


[글: 김성환 대중음악 저널리스트, Hottracks Magazine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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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인디 펑크 록을 대표하는 밴드로 미국 시장에서도 고정팬을 갖고 있는 쇼넨 나이프(Shonen Knife)를 처음 알게되었던 것은 1994년 발표된 카펜터스 트리뷰트 앨범 속에 담긴 <Top of The World>였다. 그리고 영어로 만들어진 탓에 (Mnet이 MTV를 하루 5시간 소개하던 시절에) 일본음악 금지 시절에도 국내 TV로 보게된 [Happy Hour] 앨범의 <Daydream Believer>, <Cookie Day> 등 재미있는 뮤비들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데 벌써 이들이 결성 30주년이라니... 그리고 최근 미국 시장에 그들의 2010년작 [Free Time]이 발매되었다. 여기 소개하는 이 곡은 2008년 앨범 [Super Group]의 타이틀 트랙인데, 역시 이들만의 유아적인 즐거운 상상력이 재밋게 녹아있다. 하지만 가사는 돈과 명예를 위해 이합집산하는 주류 록 뮤지션들의 모습을 비꼬는 듯하다.



Shonen Knife - Super Group (PV)

A Super Group was born
All members are rock stars from 70's band
Their recordings are the best
Super pop songs touch everybody's heartstrings

Chorus:
Million seller, fame and fortune
It's a rock'n'roll equation
Everything is going with the intention
Everybody's feeling satisfaction
Everything is going with the intention
Everybody's feeling satisfaction now

The Super Group is perfect
Masters of rock music make fantastic sound
Waiting for their tour
They are going to come to play in my town

Chorus Repeat

They were broken up
Only one album was left

Chorus Repeat

추억의 Shonen Knife 음악 더 듣고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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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1‘: 각 멤버들의 솔로 활동기에서 재결성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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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로 넘어가면서 뱅글스의 이름은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듯 했으나, 네 명의 멤버들은 밴드의 해체 이후 각자 (양지에서건 음지에서건) 꾸준한 음악활동을 해왔다. 먼저 (자의반 타의반으로) 밴드에서 주목을 받았던 수재너 홉스는 밴드 해체 후 90년에 첫 솔로 앨범 [When You're A Boy]를 내놓았지만, 싱글 [My Side Of The Bed]를 제외하고는 그리 큰 히트를 하지 못했다. 뱅글스 시절에 곡 작업에 참여했던 작곡자들이 많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뱅글스의 음악보다 밋밋하고 팝적이기만 한 앨범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음악적 방향을 찾아 고심하다가 96년에 들어서 셀프타이틀로 된 2번째 앨범을 내놓았는데, 당시의 포크-록 계열의 여성 싱어 송 라이터들의 인기 행진 속에서 그녀도 포크 록적인 싱글 [All I Want]를 히트시키며 자신이 그들의 선배격임을 보여주며 자신의 위상을 지켜나갔다. 그리고, 비키 피터슨은 처음에는 솔로 앨범을 구상하다가 친구 수전 카우실(Susan Cowsill)과 함께 Continental Drifters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그 후에는 여러 여성 아티스트들의 앨범에 참여함과 동시에 고고스의 재결성 투어에 당시 임신중이라 참여못한 샬롯을 대신하여 기타리스트 자리에 서기도 했었다.



 Susannah Hoffs - My Side Of The Bed
(Live on 'David Letterman')



Susannah Hoffs - All I Want (Acoustic Live) 


  한편, 데비 피터슨은 밴드 해체 이후 가족에만 전념하다가 잠시 고고스의 지나 쇽과의 프로젝트를 결성하기도 했지만, 지나의 탈퇴로 다시 혼자서 음악작업을 하던 중 시오반 마에르(Siobhan Maher)라는 여성 뮤지션을 만나 새로운 작업을 거쳐 Kindered Spirit이라는 듀오를 결성해 활동하게 된다. 이들의 앨범은 95년에 발매되는데, 두 사람이 영국과 미국으로 떨어져 살고 있던 관계로 이들의 관계는 오래 가지 못하고, 게다가 I.R.S.레이블마저 96년에 페업하는 바람에 듀오는 자연 해체된다. 마지막으로 마이클 스틸은 해체 이후 솔로 활동이 예정되었으나 계약문제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대신에 비키의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활동을 이어왔으며, 한 때는 Eyesore라는 밴드에도 참여했었지만, 외형적으로 두드러진 활동을 보여주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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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다양한 솔로 활동 속에서 네 사람은 가끔씩 서로 연락을 취하며 과거 해체 당시에 얽혔던 감정들을 서서히 풀어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98년 가을에 수재너와 데비는 다시 함께 모여 곡을 쓰기 시작했고, 이 세션이 잘 진행되는 과정에서 비키가 다시 합류하면서 뱅글스의 재결성의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때, 영화 ‘오스틴 파워’를 제작하던 마이크 마이어스(Mike Myers)와 제이 로치(Jay Roche)는 이들에게 사운드트랙을 위한 곡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고, 세 사람은 마침내 마이클까지 합류시켜서 거의 9년만에 뱅글스의 이름으로 [Get The Girl]이라는 싱글을 제작한다. (그리고 현재 그와 수잔나는 부부사이다.) 이 곡은 그들의 초창기 사운드와 오히려 닮아있는 곡으로 히트곡은 아니지만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이후 99년 8월에 뱅글스를 재가동 할 것을 결심하고 명 프로듀서 조지 마틴 경(Sir George Martin)이 주최한 비틀즈 트리뷰트 공연에서 최초의 재결성 무대를 가졌다. 이후 각자의 프로젝트를 정리하면서 함께 모여 곡 작업을 한 이들은 작년 7월에 공식적인 재결합을 공표하고 9월부터 클럽 투어를 시작, 연말까지 투어를 진행했고, 마침내 2002년 재결성이후 첫 앨범인 [Doll Revolution]을 발표했다. 이 앨범에서는 싱글 [Something That You Said]가 조금 반응을 얻었으나, 차트상에서는 큰 반향은 얻지 못했다. 그래도 그 후 지금까지 (작년에 마이클이 다시 탈퇴했지만) 꾸준히 투어를 지속하고 대중과 소통중이며, 최근 아이튠즈에 신곡을 공개하기도 했다.
 



Bangles - Something That You Said

나가는 글: 고고스와 뱅글스가 90년대 여성 뮤지션들에게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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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고스와 뱅글스는 남성적인 록/헤비 메탈 밴드들이 그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80년대의 록 신에서 여성들로만 구성된 록 밴드로서 전-후반기를 양분하며 스타덤을 얻었던 밴드들이다. 사실, 다양한 장르에서 여성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활발하게 발휘하고 있으며 많은 록 밴드에서 (마치 80년대에 블론디의 데보라 해리가 그러했던 것처럼) 여성 보컬의 카리스마가 밴드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위치에 서있는 90년대 이후의 팝 계에서도 의외로 완전히 여성으로만 구성되어 스타덤에 오른 밴드들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굳이 넣어봐야 커트니 러브의 홀(Hole)정도? 근데 거기도 남자 멤버가 있다.)에서 고고스와 뱅글스를 능가할만한 스타덤을 얻을 여성밴드가 언제 새로 등장할 것인지 사못 궁금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러한 희소성과는 별개로 우리는 그들이 존재했음으로 인해 90년대의 음악 신에서 여성 뮤지션들이 록을 한다는 것이 대중들에게 어떤 인식으로 작용했는가에 대해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두 밴드는 록음악을 하기 위해 여성들이 이전 시대처럼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틀에서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려했던 것과는 달리 여성으로서의 장점을 존중하고 오히려 부각하면서 이후 여성뮤지션들이 자신들의 ‘여성성’을 지키며 록음악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작사-작곡과 연주 등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해내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은 90년대의 많은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에게도 음악을 하는 데 있어 여성으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넣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의 좋은 예시가 되어 주었기에 이들의 존재는 단순히 80년대에 잠깐 ’반짝 떴던‘ 아이돌 스타들과는 분명 구별되어야 할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제 어쩌면 그들과 (더 멀리는 선구적인 여성 선배 뮤지션들)을 보며 성장해 온 90년대의 ’릴리스 페어 군단‘들의 대열에 고고스와 뱅글스도 ’선배‘ 대접을 받으며 복귀, 합류했다. 이들이 과거의 스타덤을 재현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겠지만, 분명 40이 넘은 나이에도 자신들의 음악을 계속 하고 싶어하는 이 ’맹렬여성‘들의 노력이 다음 세대의 여성들이 아티스트를 향한 꿈의 자양분이 되어 줄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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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 The Bangles

  80년대 전반기 여성 록 밴드의 대표주자가 고고스였다고 한다면 그 바통을 이어받아 80년대 후반기를 풍미했던 존재는 바로 뱅글스였다. 물론 이들이 86년에 싱글 [Manic Monday]로 차트 2위를 차지하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때, 많은 음악팬들은 이들을 단지 고고스의 빈자리를 채워준 ‘대타‘ 또는 심지어는 ’복제품‘ 정도로 이들을 받아들였던 사람들도 많았지만, 밴드의 성격과 고고스와 같이 여성으로만 구성된 밴드라는 점 때문에 흡사하게 느껴지는 선입견을 버리고 이들의 사운드에 귀를 기울여 본다면 분명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고고스가 다분히 영국에서 건너온 펑크의 영향 아래에서 캘리포니아 팝 사운드를 접목했다고 한다면, 뱅글스는 그와는 달리 기반을 ’포크 록‘에 두고 그 위에 팝적인 멜로디 감각과 보컬 하모니를 강조한 록 밴드였다. 밴드 멤버들이 어린 시절부터 즐겨 들었고 지향했던 사운드가 비틀즈, 홀리스(The Hollies), 버즈(The Byrds),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였다는 것에서 그런 사실은 명백하게 확인되는데, 이들이 남긴 3장의 음반 속에는 록 밴드가 지닌 강인함보다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더욱 많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89년을 끝으로 밴드가 해체되어 많은 팬들의 아쉬움 속에 사라져갔던 이들이 지난 2000년 여름에 공식적인 재결합을 선언하고 다시 활동에 들어가면서 다시 팝 계에 돌아왔다. 그 사실을 상기하며 이들의 음악이 당시에는 어떤 의미로 대중들에게 인식되었는가를 되돌아보도록 하자.

80~89‘: 뱅글스의 결성부터 전성기, 그리고 해체까지
  뱅글스라는 밴드의 결성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2월 9일, 당시 보컬리스트 수재너 홉스(Susanna Hoffs)는 우연히 한 달이나 지난 LA의 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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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The Recycler'에 나온 광고를 보고 당시 밴드를 구성할 멤버를 찾으며 자기 집 창고에서 음악에 빠져있던 데비 피터슨(Debbie Peterson:드럼)비키 피터슨(Vikki Peterson:기타)을 찾아가게 된다. 그 날은 마침 뉴욕에서 존 레논(John Lennon)이 피살된 다음 날이어서 세 사람은 그 비극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다가 그들이 서로 음악적 취향이 일치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 모두 포크 록과 관련된 밴드들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세 사람은 트리오를 조직하기로 하는데, 처음에는 데비가 드럼, 비키가 베이스, 수재너가 기타를 담당하고 함께 노래를 불렀는데, 함께 곡 작업을 하던 이들은 멤버 보강의 필요을 느껴서 아네트 제일린스카(Annette Zailnska)를 베이시스트로 영입하고, 비키가 리드 기타의 자리로 옮기면서 우리가 아는 뱅글스의 4인조 구성의 토대가 되었다.
  이제 라이브 공연을 할 수 있게 된 밴드는 처음에는 ‘The Colors', 'Supersonic Bangs'등의 표현을 떠올리다가 마침내 밴드의 이름을 Bangs로 정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이들은 클럽가에서 60년대 풍으로 보컬 하모니가 강조된 인디적 록앤롤을 연주하면서 팬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이에 힘입어 처음으로 자체 제작한 싱글인 Getting Out Of Hand가 괜찮은 반응을 얻고 몇몇 라디오 방송국에서도 전파를 타게 되었다. 그런데, 밴드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당시 뉴저지 주에서 활동하던 밴드인 The Bangs가 이들이 자신들과 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네 사람은 결국 밴드의 이름을 우리가 아는 The Bangles로 개명하게 된다. 이후 82년에 들어 뱅글스라는 밴드는 LA의 클럽가에서 한창 ’뜨는‘ 밴드로 성장했으며, 이러한 이들의 재능을 눈치챈 I.R.S.레코드사의 사장 마일즈 코플랜드는 그가 고고스를 전세계적인 인기 밴드로 키웠던 자신감으로 이들을 키우려고 계약을 제의했다. 하지만 밴드는 그의 권유를 처음에는 거북해했는데, 비키는 당시의 생각을 이렇게 술회하고 있다. “그는 우리를 하층계급의 고고스로 만들려고 했어요. 그런데 난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래도 결국 이들은 코플랜드의 제의를 수락했고, 82년 5월에 뱅글스는 5곡이 들어있는 셀프 타이틀 EP를 만들어서 정식으로 데뷔했다. 이 앨범은 당시 4만장정도가 팔렸는데, 영국 밴드 The English Beat의 오프닝 밴드로 무대에 서면서 다른 대형 음반사들의 구미를 당기는 존재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83년에 들어서 뱅글스는 그들의 음반을 발매하던 I.R.S.사의 서브 레이블인 Faulty사가 도산하고, 베이시스트 아네트마저 탈퇴하여 Blood On The Saddle이란 밴드로 옮겨가자 밴드 활동의 재정비가 필요함을 느끼고 새로운 베이시스트를 물색했는데, 그렇게 해서 밴드에 가입하게 된 인물이 바로 마이클 스틸(Michael Steele)이었다. 그는 놀랍게도 70년대 여성 하드록 밴드 런어웨이즈(The Runaways)의 탄생 초창기 데모 녹음 때까지 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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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뮤지션으로, 전력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음악적 지향도 밴드의 다른 멤버들과 일치하여 밴드에 쉽게 동화될 수 있었다. 바로 그해 말에 뱅글스는 Columbia 레이블과 새로운 계약을 맺는데 성공하고 프로듀서 데이빗 케인(David Kahne)과 팀을 이루어 메이저에서의 첫 앨범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 결과물이 84년 4월에 발매된 이들의 첫 정식 앨범인 [ALL OVER THE PLACE]였는데, 이 앨범은 비록 상업적으로 이들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이 되지는 못했지만 평론가들에게는 호평을 얻었으며 거칠면서도 목가적인 기타음과 뛰어난 하모니 감각으로 인해 주목을 받았다. 그 결과 이들의 앨범 수록곡들은 대학 라디오 방송국들의 지지를 받으며 집중적으로 방송 전파를 탔고, 뒤이어 막 스타덤에 오른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공연의 오프닝 밴드로 전국 투어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안겨주었다.
  첫 앨범의 소폭의 히트로 자신감을 갖게 된 이들은 이후 새 앨범의 작업을 하면서 팝적인 감각을 더 강화한 앨범을 만들게 되는데, 그러기 위해 밴드는 자신들 이외에도 다양한 작곡가들을 앨범의 곡 제작에 참여시키게 된다. 그 결과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이들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렸던 2집 [DIFFERENT LIGHTS]였는데, 이 앨범에서 처음으로 발표된 싱글 [Manic Monday]는 이들의 재능을 인정한 프린스(Prince)가 크리스토퍼(Christoper)라는 가명으로 만들어 준 곡으로 당시 차트 2위까지 오르며 일순간에 뱅글스를 스타급 록 밴드의 자리에 오르는데 결정타 구실을 했다. (프린스가 작곡했다는 사실로 인해 항간에는 그가 리드 보컬 수재너를 유혹하기 위해 곡을 준 것이 아니냐는 루머까지 나돌았었다.) 그리고, 이 곡 이외에도 뒤이은 싱글 [If She Knew What She Wants], 그리고 그들의 노래 가운데 최초의 1위곡(4주 연속)이자 특이한 안무(?)가 담긴 뮤직비디오가 코믹함을 더해준 흥겨운 록/댄스 트랙인 [Walk Like An Egyptian]까지 연이어 히트한 [DIFFERENT ......] 앨범은 이전에 고고스가 세웠던 히트 기록을 경신하면서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싱글상‘, 최우수 MTV 비디오 퍼포먼스 상, 그리고 브릿 어워드에서의 최우수 국제 아티스트 상 등 다수의 수상을 휩쓸며 명실공히 당대에 최고의 상업적 인기를 얻는 여성 록 밴드로서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


The Bangles - Manic Monday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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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Review: DIFFERENT LIGHTS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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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뱅글스의 메이저 레이블에서의 두 번째 앨범이자 이들에게 전세계적인 스타덤을 안겨준 앨범인 본작은 대중적인 팝/록 사운드의 전통에 가장 충실한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는 앨범이다.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의 조화, 60년대 이후 수많은 팝/록 밴드들이 그들의 음악에서 중시했던 보컬의 3-4부 화음에 대한 집착까지 이들의 음악에는 팝/록 사운드가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많은 요소들이 고루 갖추어져 있는데, 이러한 이들의 기질은 이미 전작 [ALL OVER THE PLACE]에서도 드러났지만 프로듀서인 데이빗 케인은 이 앨범에서 더욱 치밀하고 세련된 프로듀싱으로 라디오에서까지 어필할만한 ‘가장 팝적인’ 뱅글스의 앨범을 만들어놓았다.
  먼저,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Manic Monday]는 비록 프린스의 작품이기는 하지만, 그가 작곡에 공을 들인 수고에 버금가는 멤버들의 깔끔한 연주와 수재너의 부드럽게 감기는 허스키 보컬이 매력적인 트랙이며, 타이틀곡인 [In A Different Light][Let It Go], [Walking Down Your Street]에서는 록 밴드로서의 뱅글스의 매력이 잘 묻어나는 스트레이트하면서 경쾌한 기타 사운드를 보여준다. 한편, [Walk Like An Egyptian]에서는 퍼켜션 이펙트를 적절히 활용한 이국적인 분위기와 적절한 기타 솔로 등이 어우러져 대중적으로 귀를 자극할 신선한 팝 트랙을 만들어냈고, Jules Shears의 곡인 [If She Knew What She Wants]는 연주보다는 멜로디와 보컬 하모니 자체에 중점을 둔 상큼한 트랙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이 앨범에서의 가장 큰 수확은 이들이 결성이전에 좋아했던 포크적 성향이 가장 잘 드러난 [Following]으로 베이시스트 마이클의 작곡 능력과 보컬까지 책임지고 수행해낸 앨범의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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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ngles - If She Knew What She Wants (86)



The Bangles - Walk Like An Egyptian (87)

  87년에 들어 뱅글스는 당시 랩과 메탈 전문 레이블이었던 Def Jam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이 사장으로 있었음.)에서 준비한 영화 [Less Than Zero]의 사운드트랙에 들어갈 트랙을 작업했는데, 이들은 함께 사이몬 앤 가펑클(Simon And Garfunkle)의 포크 록 고전 [Hazy Shade Of Winter]를 훨씬 하드한 느낌으로 리메이크하여 수록했고, 이 곡은 싱글로 커트되어 당시 차트 2위까지 오르는 대 히트를 기록했다. 한편, 리드 보컬 수재너 홉스는 잠시 연기에 눈을 돌려 같은 해에 (그녀의 어머니 Tamar Hoffs가 감독한) 영화 [The Allnighter]에 출연하여 화제를 모았으나, 영화 자체는 그리 큰 히트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들은 투어를 계속하면서 그 사이에 준비된 신곡들을 청중들에게 들려주었으며, 투어가 끝난 후 바로 스튜디오로 돌아와서 새 앨범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레코딩에 들어가기 전에 이들은 프로듀서를 데빗 시거슨(Davitt Sigerson)으로 교체하고 모두가 전작보다는 더 록음악다운 앨범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앨범 작업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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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범을 작업하며 이들은 다른 작곡자들(예를 들어 마돈나의 [Like A Virgin]으로 명성을 날린 Billy Steinberg와 Tim Kelly 콤비 등)과 공동작업을 하면서도 멤버들의 작곡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노력을 펼쳤으며, 그러한 작업의 결실은 그 해 10월에 3번째 앨범 [EVERYTHING]으로 대중들에게 공개되었다. 전체적으로 더 하드한 곡들과 더 팝/블루스적인 트랙들이 공존했던 이 앨범에서는 첫 싱글이자 경쾌한 록 넘버인 [In Your Room]이 10위권에, 그리고 지금도 팝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오케스트레이션이 담긴 팝 발라드 [Eternal Flame]이 차트 정상에 오르며 전작에 못지 않은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된다.


The Bangles - Hazy Shade Of Winter
(88' Saturday Night Live Performance)


The Bangles - In Your Room (88)

  이들은 앨범 발표 후 ‘Everything Everywhere Tour’란 이름의 공연을 펼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으나, 이 때부터 그룹 멤버들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밴드의 리드 보컬인 수재너가 지나칠 정도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존재가 되어버려서 나머지 멤버들의 밴드에서의 공헌도가 간과된다는 인식이 밴드 안에 퍼지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멤버들 사이의 대화가 줄어들면서 우정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새롭게 밴드의 매니지먼트를 맡은 Stiffel-Phillips사는 뱅글스를 밴드로 인정하기 보다 수재너에게만 모든 투자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 갈등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이후에 계획된 모든 투어는 취소되었고, 89년 가을에 들어와서 수재너와 마이클이 밴드가 다 모인 자리에서 그룹을 탈퇴할 것을 선언하면서 뱅글스는 더 이상 그 동안의 모습으로 존속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언론을 통해 밴드가 ‘활동중단’을 공식 선언하면서 밴드의 해체는 기정 사실화되었다. 그들의 해체 발표이후 소속사는 90년 5월에 [GREATEST HITS]앨범을 발매했는데, 이 앨범 안에는 [Hazy Shade Of ......]처럼 비(非)앨범 수록곡 3곡이 추가되어 이들의 히트곡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편집음반이 되어 영-미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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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Review: GREATEST HITS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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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뱅글스의 정규 앨범들을 CD로 일일이 구한다는 것이 워낙 힘든 현실에서 이 베스트 앨범은 그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팬들에게 하나의 일목요연한 ‘가이드 북’ 구실을 하는 작품이다. 그들의 해체 이후 발표된 이 앨범에는 그들의 ‘히트 싱글’들이 연대기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는데, [ALL OVER THE PLACE] 앨범에서 2곡, [DIFFERENT LIGHTS] 앨범에서 5곡, [EVERYTHING] 앨범에서 4곡이 실려 있고 이에 영화 [Less Than Zero]에 수록되었던 사이몬 앤 가펑클의 리메이크 [Hazy Shade Of Winter] 등 비 앨범 수록곡 3곡이 추가되어 있기에 이 앨범 한 장만 소장해도 뱅글스의 상업적 ‘히트곡’들은 다 챙길 수 있는 메리트가 있다. 특히, 이런 편집 앨범의 재미는 아티스트의 음악적 스타일의 변화를 짧은 시간에 간파할 수 있다는 점인데, 첫 앨범의 싱글들인 [Hero Takes A Fall]이나 [Going Down To Riverpool]에서는 초기 비틀즈를 연상시키는 60년대풍 록앤롤의 재연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DIFFERENT ... ]앨범을 거쳐 [EVERYTHING]앨범에 와서는 전작에서 팝적으로 기울었던 사운드를 자신들이 음악적 지향과 맞춰보려는 노력들이 드러나는데, [In Your Room]과 당시 제인스 애딕션 출신의 기타리스트 데이브 나바로(Dave Navaro)가 참여한 [Everything I Wanted]는 그러한 노력이 두드러졌던 3집의 수작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뱅글스라는 밴드의 연주력이 최고로 표현된 작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Hazy Shade Of Winter]로서, 그 하드 록 적인 어레인지와 어우러진 완벽한 보컬 하모니는 이 곡을 원곡보다 멋진 리메이크를 꼽으라면 반드시 거론되어야 할 작품의 대열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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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angles - Eternal Flame (2001 Top Of The Pops Live)
Posted by mikst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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