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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Wave/Synth Pop의 생존자들 (4회) - Chapter 2. Howard Jones (Part 1)

80팝/80년대 팝 아티스트

by mikstipe 2006. 9. 2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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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 원맨밴드 신스 팝의 기린아, 전자음에 휴머니티를 교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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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ard Jones


신스 팝에 인간미를 불어넣은 원 맨 밴드 뮤지션으로서의 80년대

  하워드 존스(Howard Jones)라는 뮤지션을 가리키면서 항상 따라 다녔던 수식어는 바로 ‘신스팝 속에 따뜻한 인간미를 담는 뮤지션’이라는 문구였다. 사실 신시사이저가 처음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현악기나 타악기처럼 인간의 손에 의해 연주되는 것이 아닌 기계가 기억해놨다가 ‘재생하는’ 소리들에 대해 (초기 신시사이저의 하드웨어상의 한계(?)인지는 몰라도) 차갑다는 반응들을 보였었고, 대부분의 70년대 말-80년대 초반 신스 팝 밴드들의 음악들에는 거의 공통적으로 그런 냉랭함이 공존했다. 즉, 자신들이 컴퓨터로 만들어 낸 사운드를 모두 저장했다가 공연에서도 그대로 ‘재생(replay)’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기 마음대로 사운드를 창조해 낼 수는 있지만 사실 ‘인간다운 맛’이 결여되기 쉽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등장하기 이전의 대표적인 솔로 신스 팝 뮤지션들 - Gary Numan이나 Laurie Anderson등과 심지어 그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해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 Thomas Dolby의 초기 사운드까지 - 의 음악들에서도 그러한 ‘기계적 차가움’의 잔재는 남아있었다. 그러나 하워드 존스에게는 그러한 약점을 극복해 낼 능력, 다시 말하면 따뜻한 정감과 풍부한 선율을 뽑아 낼 수 있는 능력이 다른 뮤지션들에 비해 뛰어났고 동시에 타 신스 팝 아티스트들보다 훨씬  낙관적인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해왔다. 그 결과 80년대의 솔로 신스 팝 아티스트들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호응을 얻은 인물로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워드 존스는 1953년 2월 23일, 영국의 Southamton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는 7살에 처음 피아노를 연주하는 법을 배웠는데, 그 이후 거의 14년 동안 클래식 피아노 연주에만 매달렸다. 그런데, 청소년기에 그의 가족이 캐나다로 이주를 하자 그는 대중음악 쪽에도 관심을 돌려 처음으로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인 Warrior에 가입해 활동을 했고, 다시 영국으로 이주해서는 여러 다른 밴드에서 키보디스트를 담당했었다. 사실 70년대 중반에 그는 왕립 북부 음악 학교에 입학했지만 결국에는 중퇴를 하고 고향에서 여러 재즈나 펑크(Funk)계열의 밴드들을 전전했고, 심지어는 부업으로 아내와 함께 리어카를 끌고 야채 행상까지도 하는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교통사고에 대한 보상으로 그가 받은 신시사이저는 그의 삶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즉, 밴드의 일원이 아닌 혼자서 모든 원하는 사운드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인데 이를 기점으로 그는 솔로 아티스트로서 작곡과 연주를 시작했고, 사람들 앞에서 드럼 머신과 신시사이저로 공연을 펼쳤다. 그런 그를 주목한 사람이 바로 John Peel이라는 인물인데 그는 하워드의 연주에 감탄해 그를 BBC에서 연주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했고, 영국 전역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83년에 그는 숙원이었던 레코드 계약을 맺게 되었는데, 영국과 유럽에서는 WEA(현재의 워너뮤직)과, 그리고 미국시장에서는 그쪽 자회사인 Elektra레이블과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나서 발표한 첫 싱글 [New Song]은 영국에서 3위까지 오르는 큰 히트를 거두고 몇 달 뒤에 발표된 두 번째 싱글 [What Is Love?]도 차트 2위까지 올라 매우 성공적인 데뷔를 장식한다. 이에 힘입어 84년 초에 발표된 그의 정식 데뷔 앨범 [HUMAN'S LIB]는 색소폰을 제외한 사운드의 거의 모든 파트를 그의 키보드 플레이와 시퀀스 데이터를 이용하여 연주했으며, 다른 당시 신스 팝 아티스트들보다 인간적인 멜로디와 그의 부드러운 보컬로 그를 주목받게 해준 작품이 되었는데, 영국 차트에서는 발매 첫 주에 정상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고 톡톡 튀는 키보드 선율을 보여준 싱글 [Pearl In The Shell]과 정적이며 사색적인 트랙인 [Hide And Seek] 등이 연이어 히트했으며 MTV에서의 빈번한 뮤직비디오 방영으로 인하여 그는 미국 시장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앞의 두 싱글 모두 미국 시장에서 Top 40에 드는 히트를 거두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도 당시 그래미 시상식에서 기타 신시사이저와 와이러리스 헤드 셋을 이용해 펼친 그의 원맨쇼(?)와 허비 행콕(Herbie Hancock), 토마스 돌비(Thomas Dolby)와 함께 펼친 잼 세션이 TV를 통해 방영되어 그의 존재를 이 땅에도 최초로 알려주는 기회가 되었다.

(Videoclip : New Song )

  85년에 들어서 그는 두 번째 앨범인 [DREAM INTO ACTION]을 전 세계 시장에 내놓게 된다. 그의 앨범들 가운데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앨범으로 기록된 이 작품에서 그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거의 모든 파트를 그의 신시사이저 연주로 도배하면서도 훨씬 더 세련되고 인간미 넘치는 대중적인 멜로디라인을 담아 내었는데, 차트 상의 성적으로만 봐도 [Things Can Only Get Better]와 [Life In One Day], [Look Mama] 등의 히트 싱글들이 연이어 터져 나왔고 그 결과 그를 단연코 신스 팝 신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인물로 만드는데 견인차 역할을 수행한다. 이어서 86년 초에는 EP형식의 [ACTION REPLAY]를 발표하는데, 여기에는 원래 DREAM INTO...... 앨범 속에 수록되어 있었으나 새 버젼으로 녹음된 그의 최고의 히트곡 [No One Is To Blame]이 담겨있었다. 조금은 담담했던 발라드를 시퀀스 이펙트를 많이 사용하여 더 깔끔하게 채색한 이 버젼은 미국 시장에서는 4위까지 오르는 히트를 거두었고, 지금도 하워드의 팬들은 물론 일반 대중들도 가장 오래 기억하고 있는 트랙으로 기록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닉하게도 본국에서의 최고 순위는 16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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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Review: DREAM INTO ACTION (85)

  아직까지도 이 앨범은 하워드 존스라는 뮤지션이 만든 일련의 앨범들 가운데 가장 대중성과 음악성이 집약된 작품으로 기억된다. 데뷔작 [HUMAN'S LIB]에서부터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 루퍼트 하인(Rupert Hine)이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가 이 앨범을 발표할 당시 원 맨 밴드 식의 투어에서 탈피하여 나름의 투어 밴드를 구성해 공연을 시작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라이브에서 밴드와의 연주에서의 앙상블을 고려한 편곡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 앨범까지는 아직 모든 연주를 주도하는 것은 그의 신시사이저라고 할 수 있는데, (LP 초판 당시에) 12곡인 모든 트랙에서 단지 브라스 파트와 현악단을 기용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 곡의 연주는 모두 그의 힘으로 만들어 낸 소리들이다. 인상적인 인트로와 그의 Funk밴드에서의 전력을 노출시키는 펑키한 리듬이 매력적인 [Things Can Only Get Better], 브라스 섹션으로 경쾌하고 밝은 분위기를 극대화한 [Life In One Day], 그리고 [Like To Get To Know You Well], [Is There A Difference?]와 같이 명랑한 분위기의 트랙들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에 반하여 동명의 타이틀곡과 [Bounce Right Back]은 그의 음악스타일치고는 상당히 어둡게 채색된 편이며, 그의 음악의 큰 축인 따뜻한 인간미가 그대로 드러나는 발라드 트랙들은 이후 그가 걸어갈 음악적 행보를 작게나마 암시하고 있다.

  특히 염세주의적인 사(死)의 찬미곡인 [Elegy]까지도 그의 키보드와 보컬을 듣고 나면 오히려 (아이러니컬하게도) 따뜻한 카타르시스를 주고 있으며, 그의 영원한 대표곡(!)인 [No One Is To Blame]이 주는 안락한 분위기와 사랑에 대한 진지한 질문은 왜 그가 당대의 다른 신스 팝 아티스트들보다 더 빨리 대중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던가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되어주고 있다. (사족: No One...... 은 개인적으로는 나중에 [ACTION REPLAY]에서 싱글커트 된 버전보다는 단순하지만 더 정적인 오리지날 버전을 구해 들으실 것을 권한다. 그리고 이 앨범은 한 번도 국내에 라이센스 된 적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Videoclip : No One Is To Blame (Single Remix - 드럼은 필 콜린스가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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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앨범의 전세계적인 히트 이후, 하워드는 라이브 에이드 참가, 그린 피스의 자선 앨범 참여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86년 말에 세 번째 앨범 [ONE TO ONE]을 내놓게 되는데, 여기서는 이전 프로듀서 루퍼트 하인과 결별하고 컬쳐 클럽이나 스크리티 폴리티(Scritti Polliti)와 작업했던 미국인 프로듀서 아리프 마딘(Arif Mardin)을 맞아 앨범작업을 해 냈는데, 미국인 프로듀서의 어레인지 때문인지 이전 앨범들보다 더욱 미국적인 색채를 보여주는 작품이 되었으며 특히 신시사이저에만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사람의 연주를 대폭 도입하여(필 콜린스, 나일 로져스 등의 게스트 세션이 가미되었음) 그의 기존의 이미지를 변화시키기 시작한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여기에서는 싱글 [You Know I Love You ...... Don't You?] (실사와 만화가 재치 있게 합성된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임)가 세계적인 히트를 했지만, 앨범 전체의 인기는 전작에는 조금 못 미치는 결과를 보였고, 이후에 영국에서는 당분간 Top 40 히트곡을 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역시 그 다운 따뜻함이 돋보이는 [Will You Still Be There?]와 어쿠스틱 피아노 연주를 중심으로 깔끔하게 꾸민 [Little Bit Of Snow]는 기억되어야 할 트랙들이다.)



( Videoclip : You Know I Love You ... Don't Yo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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