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음악 감상 습관에서 개인적으로 유별나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는 때로는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로 세상에 인식되어있는 뮤지션에게 지대한 관심을 쏟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의 커리어가 짧거나 드러나지 않아도 그 때 그 노래의 감동이 좋아서 '지금은 뭘하지?'하고 궁금해하거나 가끔 그의 음반을 꺼내서 턴테이블에 걸거나 mp3를 찾아 헤매이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80년대 록커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뮤지션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에겐 영화
[St.Elmo's Fire]의 주제가를 부른 것 이외에 사람들이 기억조차 못하는(?)
존 파(John Parr)라는 아티스트이다. 그의 주류에서의 활동기간은 그의 차트 히트곡 숫자 만큼이나 무지 짧았고, 팝 뮤직 씬은 이제 그를 거의 잊어버린 것 같지만, 이 영화 주제곡 이외에는 그의 앨범을 공식 라이선스로는 접할 수 없었던 당시의 기억 속에서 그의 데뷔 앨범의 단색 빽판 LP를 중학교때 우연히 청계천에서 구한 것이 어쪄면 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지금까지 키워온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그의 노래들과 뮤직비디오를 차근차근 수집해 이 포스트에 한 번 정리해본다.
John Parr's Biography
54년 11월 18일생인
존 파는 영국 노팅햄시어에서 태어났다.
(사실 이거 알고 좀 놀랐다. 그는 항상 성조기가 그려진 기타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 삼아 다녔고, 지금도 그 기타를 사용하고 있기에 난 한동안 그를 미국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2세때 두 명의 학교 동창들과 함께
더 사일런스(The Silence)라는 그룹을 결성하고 북부 잉글랜드의 클럽가에서 인기를 얻었고, 그 결과 졸업 후 이름을
쓰리 포 올(Three For All)로 바꾸고 2년간 유럽 지역 투어를 다니기도 했다. 그 후 그는 새로운 밴드인
폰더스 엔드(Ponder's End)를 결성하고 활동하게 되는데, 그 때 아직 데뷔 이전의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와 함께 활발한 라이브 활동을 벌였으나, 다이어 스트레이츠와 달리 이들은 음반 계약을 따 내지 못하고 좌초하고 말았다.
결국 83년에
Carlin Music의 송라이터로 계약을 맺고 작곡가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려던 존은 같은 해
미트 로프(Meat Loaf)에게 작곡 의뢰를 받고 그 인연으로
더 후(The Who)의 매니저였던
존 울프(John Wolfe)를 만났다. 결국 84년에 미국으로 처음 건너가 미트 로프의 앨범
[Bad Attitude]의 작업에 참여한 그는 솔로 싱어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그 결과
아틀랜틱(Atlantic)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솔로 데뷔작
[John Parr]를 발표하면서 바로 싱글
[Naughty Naughty]를 차트 23위에 올려놓았다. (그 때
American Top 40를 들었던 기억을 회고해보면 참 재미있다. 이 곡이 처음 프로그램에서 소개될 때, DJ인
케이시 케이슴(Casey Casem)에게도 그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그가 기억상실증에 걸렸던것 아닌가'하는 농담(!)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대중에게 알려지기도 했다.)
John Parr - Naughty Naughty (Videoclip)
John Parr의 대표곡들 듣기
(Naughty Naughty / Love Grammar / St.Elmo's Fire / Two Hearts / Restless Heart)
다음 해인 85년, 그는 자신의 백밴드
더 비즈니스(The Business)를 결성하고, 전미 순회공연에 올랐으며 동시에 프로듀서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로부터 영화
[St. Elmo's Fire]('세인트 엘모의 열정'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비디오로만 소개되었음. 당시 신인이었던 데미 무어(Demmie Moore) 등 그 시절 청춘 스타들이 총 출동한 대학졸업생의 사회진출기를 다룬 영화. 주제 면에서 80년대판 [Reality Bites]라 할까?)의 주제곡을 노래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이미 데이빗은 휠체어로 캐나다 일주 마라톤을 해낸 것으로 당시 유명해진 장애인 마라토너
릭 한센(Rick Hansen)을 기념하는 가사의 노래를 써 놓았는데, 존도 그 메시지에 공감하여 이 곡을 녹음했고, 결국 싱글
[St Elmo's Fire (Man In Motion)]은 그에게 최초이자 최후의 전미 차트 1위의 영에를 선사해 주었다.
그 후 존 파는
티나터너(Tina Turner), 하트(Heart),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 브라이언 아담스(Bryan Adams)와 함께 투어를 이어갔고,
로저 덜트리(Roger Daltry: 더 후(The Who)의 보컬)에게
[Under A Rasing Moon]이라는
키스 문(Keith Moon: 역시 더 후의 드러머) 추모곡을 작곡해 주었으며 86년에는 영화
[퀵실버(Quicksilver - 제너시스(Genesis)의 토니 뱅크스(Tony Banks)가 음악을 담당)]와
[아메리칸 앤섬(American Anthem) 실제 84년 LA 올림픽 대표팀 체조 선수가 주연을 맡았던 체조 대표팀을 다룬 영화]에 참여해
[Through The Night (마릴린 마틴(Marylin Martin)과의 듀엣곡)], [Two Hearts]를 각각 수록해 영화 흥행에 기여했다. 그리고 펩시 콜라가 기획한 두 번의 공연을 위성 방송으로 영국, 일본, 호주에 동시 중계해서 그의 공연을 5000만명이 동시에 관람할 수 있게 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