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팝 음악 팬들에게 마틴 페이지(Martin Page)라는 이름은 거의 기억조차 되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가끔 '배철수의 음악캠프' 를 우연히 듣다보면, 그의 유일한 솔로 Top 40 싱글인 [In The House Of Stone And Light]를 들려달라는 리퀘스트가 올 때가 가끔 있는 걸 보면, 나 말고도 이 곡을 그 당시에 좋아했던 사람들이 국내에도 조금은 있었을지 않을까 생각한다. 1994년 발표한 동명의 데뷔 앨범 속의 타이틀곡이었던 이 싱글은 차트에서야 20위 안에 겨우 드는 정도였지만, 그 독특한 리듬감과 그의 시원한 보컬의 힘으로 미국 팝 팬들에게는 크게 사랑받았던 곡이었다.
영국 출신으로 전직 프로 축구 선수였던 마틴 페이지는 83년 신스 팝 밴드 Q-Feel의 멤버로서 [Dancing In Heaven]을 히트시키긴 했지만, 밴드는 셀프 타이틀 앨범을 끝으로 해체한 뒤, 가수로서보다 작곡자로서 음악계에서 활동했다. 그가 작곡해서 처음으로 히트한 싱글은 바로 1985년에 버니 토핀(Bernie Taupin)과 함께 만들어 그레이스 슬릭(Grace Slick)이 복귀한 스타쉽(Starship)에게 준 No.1 싱글<We Built This City>였다. 그 후 다시 한 번 버니와의 작업으로 만들어진 그룹 하트(Heart)의 No.1 싱글 <These Dreams>도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그 후 90년대 초반까지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 배드 잉글리쉬(Bad English), 스타쉽, 폴 영(Paul Young) 등에게 곡을 주었으며 92년에는 신스 팝 밴드 고 웨스트(Go West)의 재기를 성공시킨 영화 [Pretty Woman]의 OST 수록곡 [King Of Wishful Thinking]을 밴드 멤버들과 함께 작업해 히트시켰다. 그러다가 자신의 솔로로서의 첫 보컬이 담긴 영화 [Gladiator](로마시대 배경 영화가 아닌 권투 관련 영화. 워런트가 리메이크한 퀸의 <We Will Rock You>가 담긴 OST이다.)의 사운드트랙에 <Count On Me>를 수록한 것이 계기가 되어 머큐리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94년에 첫 앨범 [n The House Of Stone And Light]를 발표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타이틀 곡의 히트 이후 후속작품을 내놓지 못해 결국 레이블에서 방출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최근 그는 인터넷 마이스페이스(Myspace)에 자신의 홈피를 개설하고, 올해 안으로 새 앨범을 발표할 것이라는 발표를 했다고 하니, [Temple of the Muse]라고 제목이 지어진 13년만의 그의 2집이 과연 어떤 음악을 담게 될 것인가 사뭇 기대를 갖게 한다. 역시 어학연수 때 중고 음반점에서 포장 안뜯은 중고 테이프로 간신히 구입해서, 가끔씩 들었던 이 음반을 예전에 포노시절 장터에서도 손에 들까 하다가 포기했는데, 이제야 CD버전으로 손에 들어온 이 음반을 다시 들어보면, 베이시스트인 그의 역할에 충실하게 베이스-드럼이 주도하는 리듬 중심의 80년대 후반 영국 팝의 느낌을 강하게 주는 (그래서 일부분은 살짝 스팅의 솔로 앨범 색깔도 나는) 깔끔한 사운드가 나름의 매력을 선사한다. (물론 어떤 부분에선 스팅이, 피터 가브리엘과 필 콜린스마저 떠오르는 건 부인하기 힘들다. 그도 그럴것이, 세션으로 필이 직접 참여했고, 로비 로버트슨이 기타를, 그리고 친구 버니 토핀도 2곡의 가사에 참여했다.) 히트 싱글 [In The House Of Stone And Light]와 [Keeper Of The Flame]은 그가 추구하는 음악적인 색깔을 가장 확실히 드러내주는 베스트 트랙들이며, 80년대 신스 팝의 느낌이 강한 [Monkey In My Dream], 세련된 미디움 템포 팝 발라드 <[Shape The Invisible], 그리고 피아노 연주와 그의 보컬만으로도 잔잔한 감흥을 주는 [Broken Stairway]는 이 앨범에서 주목해봐야 할 곡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