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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처럼 만들어져 불편한, 아니 슬픈 두 앨범...

mikstipe 음악넋두리

by mikstipe 2009. 3. 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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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과 겨울, 참 특이한 패키지로 이뤄진 두 장의 앨범이 내 손에 들어왔다. (물론 돈 주고 산거다.) 그 첫 번째는 내가 90년대에 그렇게도 애정을 갖고 좋아했으며, 내가 대학시절 음악 동아리를 할 때, 그 롤 모델로 삼았던 그룹, 여행스케치의 새 EP였다. [2009 Diary & Mini Album]이라고 붙여진 이 '음반이 끼워진 다이러리'는 처음엔 발표된다는 사실에 기뻤음에도 막상 실물이 나왔을 때 정말 내 맘에 비를 내리게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그들은 팬 서비스에 대한 의미로 이렇게 만들었을 지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이렇게라도 음반의 패키지를 특성화해야 이 음원들이 판매 가치를 부여받는구나... 하는 데서 온 슬픔이었다. 결국 여행스케치의 신곡들을 음반으로 내주려는 음반사가 한 군데도 없다는 소리이지 않은가?


시드 페이퍼라는 팬시 전문 제조 업체가 이 다이어리 음반의 제조사다. 그런데, 이 책에 적힌 홈페이지 링크를 쳐보면 엉뚱하게도 BC카드 레인보우 광고 사이트가 떠버린다..허걱.... 하여간... 조병석남준봉이 몇 년 전 '대학로 컴백쇼' 라는 초라한 2만원짜리 공연을 한 것을 보고 대략난감 실망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조병석의 작곡 능력을 믿기에 들어본 신곡들은 그리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My Friend Good Friend]는 싸이월드 이미지 송의 재수록이었고, 김정은을 보컬로 넣은 [별이 뜬다네][별이 진다네]의 후렴구를 레게풍의 신곡에 접목시킨 트랙이었다. (물론 그 시도가 나쁘단 얘긴 아니다.) 여치 홈페이지에다가 관람기를 올리면서 '여자 멤버를 새로 영입하던지, 백 코러스라도 제대로 하는 여자 둘만 고용하라'고 성질도 내 봤지만, 그들은 요지부동, 두 사람만의 길에 만족하는 것 같다. 그래서 두 사람의 현재 기분을 노래한 듯한 [눈물이 난다]가 내겐 가장 공감이 가는 노래였다.







[디스크의 보관에 치명적인 구조를 이 다이어리 부클릿(?)은 갖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 이 음반을 갖고 나서 짜증나는 건, 디지팩속 꽂이 같은 틀이라도 붙여놓던가, 아니면, 종이 커버 속에 쏙 집어넣던가.. 그렇게 만들었어야지, 다이어리 속에 어정쩡하게 음반 꽂는 자리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사진을 함 보시라. 이래서야 어디 제대로 CD 알판이 보관되겠는가? 게다가 더 슬픈 것은 이 다이어리는 그냥 들고 다니면서 써도 될 만큼 구성도 공들여 잘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음반을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다이어리를 사용하지도 못하고 영영 전시해놔야 한다면, 도데체 이 다이어리의 기능은 무엇인가? (여행스케치의 팬이라면 이 다이어리를 들고다니면 기록하는 낙서는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다이어리의 정체성도, 음반의 정체성도 잃어버린 2008년의 가장 '애매한' EP라 감히 부를 만 하다.


자, 그럼 작년 연말에 나온 이와 구성이 비스므레한(?) 다른 CD한 장을 보자. 바로 이소라의 7집 앨범이다. 보라색 커버의 메모 북 형태의 패키지 속 한 가운데에 CD알판을 담아둘 마분지 페이지가 있다. 그 속에서 알판을 꺼내어 음반을 들으면 된다. 이 앨범에는 사실 제목도 없다. <Stairway to Heaven>이 든 음반을 그냥 [Led Zeppelin 4]라고 부르듯, 그녀의 정규 7집 앨범이니까 '7집' 이라 부를 뿐이다. 방송에서는 <Track 8>이라고 하는 수록곡이 뮤직비디오와 함께 홍보되고 있다. (그나마 유통망이 엠넷 미디어이기에, 뮤비가 방송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가사가 엘리엇 스미스(Elliot Smith)를 기리는 추모라 한다. 이한철의 작품이다.) 이 부클릿이 패키지가 되어버린 앨범의 디자인은 정말 멋지다. 점점 자신의 앨범을 '아티스트쉽'으로 다듬고 싶은 그녀의 의지는 충실히 반영된 패키지다. 그러나, 이 앨범 속에 담긴 그 '괜찮은, 만족스런' 음원에도 불구하고, 이런 패키지는 내게 여전히 불편하다. 그나마 여행스케치처럼 '다이어리'란 제목을 안붙이고 CD몰에서만 팔리게 했으니 정말 다행이다. 이건 사람들이 분명 음반 패키지라 공식적으로 인정해 줄 테니. 그러나 내게는 음반의 정체성을 좋은 디자인으로 굳이 흔들 이유가 있을까 싶었던 2008년의 가장 '애매한 CD앨범'이다.

나름대로 공들여 잘 만든 음반 패키지에 왜이리 불만이냐고, 나를 욕해도 좋다. 근데, 난 왠지 불편하다. 장기하는 지가 직접 구운 공시디 싱글도 잘 팔았는데, 대한민국 음악 씬에서 잔뼈가 굵은 이 두 뮤지션들이 왜 이런 패키지를 사용해서야 음반을 내야 하는 걸까.. 라는 그 삐딱한 궁금증 때문이다. 대중이 알판의 음원만 좋다고 음반을 사지는 않음을 이제 깨닳았기 때문일까? 그걸 알고 이런 식으로 대처하고 있음이 개인적으로는 슬프다. 적어도 1990년대에는 이럴 일은 없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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