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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 La Tengo - Popular Songs

Review 저장고/팝

by mikstipe 2009. 11. 1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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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강앤뮤직에서 발매한 본 앨범 라이선스 음반에 제가 쓴 해설지입니다.

20년 이상 미국 인디 록의 대표적 밴드로 인정받아온 요 라 텡고(Yo La Tengo),
그들이 새롭게 다듬어낸 대중성과 실험성을 모두 담아낸 신보 [Popular Songs]

요 라 텡고(Yo La Tengo)라는 록 밴드는 인디 록을 집중적으로 듣는 음악 팬들에게는 ‘인디 록의 대표자’로서 그들의 뮤직 라이프를 지배하는 존재일 수도 있지만, 주류 팝-록 음악에만 관심이 있는 음악 팬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밴드일 지도 모른다. 외지(外紙)에서마저도 그들을 소개할 때 종종 사용하는 ‘전형적인 비평가들의 밴드(quintessential critics' band)’라는 표현이 그들의 골수 팬들에겐 매우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이 주류 싱글 차트에서 그리 큰 인기를 얻은 적도 없었고, 전작인「I Am Not Afraid of You And I Will Beat Your Ass」(2007)가 그들 커리어에서 최초로 빌보드 200 앨범 차트에서 100위권 내에 진입한 것에서 보듯, 아직 이들은 (올해로 데뷔 25년째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모든 대중에게 환호를 받는 밴드라는 명성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요 라 텡고의 음악이 더욱 그들의 진가를 아는 음악 팬들에게 특별한 것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 수도 있다. 대중적인 히트를 억지로 의도하지 않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해 꾸준히 한 우물을 파고 있는 그 뚝심, ‘인디 록’이 갖는 ‘스피릿’이란 바로 이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록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 밴드의 음악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던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 역시 활동하던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명예를 얻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컬트 밴드였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소프트 트랙 [Pale Blue Eyes]가 한국 영화의 OST로 사용되면서 그들의 ‘바나나 커버’ 앨범도 본 적 없는 한국 음악 팬들의 애청곡이 되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결국 좋은 뮤지션과 음악이라는 것은 언제, 어느 순간이건 대중과 조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으며, 그 결과 우리는 다른 주류 밴드들에게서는 맛볼 수 없는 색다른 감흥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인디 음악이라고 해서 그 씬에서 움직이는 모든 뮤지션들이 음악적으로 신선하고 매력적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가운데 탁월한 음악성을 지닌 아티스트들은 있게 마련이고, 음악 팬들과 평론가들은 요 라 텡고의 음악을 바로 그렇게 ‘인디의 바다’에서 건져 올렸다. 20년이 넘도록 메이저 레이블에 소속된 적이 없어도 그들은 이제 전 세계에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진정한 ‘매니아’들을 다수 확보했다. 그 결과 한국에서도 단순히 인디 록 매니아들의 인기를 넘어 이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 층이 늘어났다. 이것은 그만큼 이들의 음악이 ‘실험적’이란 평가를 받으면서도 또한 글로벌한 대중성도 존재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이들의 음악 속에는 60년대 록의 전위적인 요소도 많지만, 60년대 포크 록이 가진 경쾌한 찰랑찰랑함도 동시에 내포되어 ‘장르 초월’의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으니, 그야말로 ‘실험성과 팝퓰러한 감성의 절묘한 혼합’은 이들의 음악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60년대 록의 숨겨진 매력을 인디 록의 매력으로 승화시킨 요 라 텡고의 음악 여정

요 라 텡고의 탄생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뉴저지 주(州) 호보켄(Hoboken)출신인 아이라 케플란(Ira Kaplan, 기타-보컬)과 조지아 허블리(Georgia Hubley, 드럼-보컬)는 서로 자주 가는 음반점과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이 같았다는 이유로 자주 조우하게 되었고, 야구 팀 뉴욕 메츠에 대한 애정까지 똑같아 결국 연인-부부 사이로 발전하면서 함께 잼 연주를 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결성된 밴드인데도 이들이 요 라 텡고라는 이름을 정하게 된 것도 바로 이들이 응원했던 뉴욕 메츠의 유격수였던 베네주엘라 출신의 선수 엘리오 차콘(Elio Chacon)을 위해 필드에서 다른 야수들이 충돌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던 스페인어(‘내가 (공을) 잡을게’ 정도의 의미)에서 따온 것이었다. 그리고 영어에서 나올 수 있는 다른 의미 해석을 일부러 피하려는 의도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여간 두 사람은 야구 외에도 음악적으로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킹크스(Kinks), 버즈(Byrds) 등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요 라 텡고라는 이름 아래 뉴 저지 클럽 씬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2년간의 ‘실전 경험’을 쌓은 이들은 코요테(Coyote)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1986년 데뷔 앨범 「Ride The Tiger」를 발표하면서 마침내 인디 록 씬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는데, 보스턴 출신의 펑크 밴드 미션 오브 버마(Mission Of Burma)의 베이시스트 클린트 콘리(Clint Conley)가 프로듀스를 맡은 이 앨범은 에서 보여지듯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뉴욕 언더그라운드 펑크의 결합 같은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이 당시에는 데이브 슈람(Dave Schramm)이 리드 기타를, 마이크 루이스(Mike Lewis)가 베이스를 담당해서 4인조의 구성을 취하고 있었으나, 첫 앨범 활동 이후 모두 팀을 떠나고 카플란이 직접 리드 기타를 담당하게 되었다. (베이스 자리에는 스테펀 위히네브스키(Stephan Wichnewski)가 들어왔다.)

이후 이들은 2집 「New Wave Hot Dogs」(1987)을 통해 쟁글 팝(Jangle Pop) 스타일의 포크 사운드를 그들의 표현 리스트에 추가했고, 3집 「President Yo La Tengo」(1989)를 통해 이들의 송라이팅 능력의 향상을 보여주었다. 이 때부터 인디 씬의 평론가들은 이들에 대해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으며, 코요테를 떠나 듀오의 형태로 활동을 이어나가면서 발표한 4집 「Fakebook」에서는 자신들이 존경했던 뮤지션들의 음악을 특유의 절충주의 스타일로 커버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제외하고는 계속 변동이 심했던 멤버 구성을 드디어 3인조 체제로 완성한 것은 1992년이었는데, 투어에 임시 멤버로 참여했던 베이시스트 제임스 맥뉴(James McNew)가 완전히 밴드의 일원으로 눌러앉아버린 것이었다. 이렇게 팀워크를 공고히 하며 만들어진 작품이 5집「May I Sing With Me」(1992)였다.

다음 해에는 요 라 텡고의 비즈니스에서도 행운이 찾아왔다. 페이브먼트(Pavement)라는 당시 인디 씬의 대표적 밴드를 배출한 마타도어(Matador) 레이블과 계약을 맺게 된 것이었다. (현재까지 이들은 이 레이블
소속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발표된 6집 「Painful」(1993)은 멤버들 스스로도 ‘이 앨범을 만들 때 우리 밴드는 정말 시작한 것과 같다’고 설명할 만큼 그들 음악의 고유 정체성을 확립해낸 음반으로 꼽혔다. 특히, 다양한 노이즈 실험 효과가 보여준 이 앨범의 사운드는 당시의 그런지 록과는 또 다른 ‘얼터너티브’의 매력을 선사했다. 이러한 기조를 이어간 7집 「Electr-O-Pura」(1995)에 이어 2년 뒤에 발표된 8집 「I Can Hear the Heart Beating as One」(1997)은 ‘밴드 음악의 완성판’이라는 찬사를 받으면서 이들을 인디 록계의 정상으로 올려놓았다. 모든 미국의 음악지들이 이들에게 찬사를 쏟아냈고, 음악 역시 그들이 여태껏 섭렵했던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이 모두 믹서기에서 섞인 것처럼 쟁글 팝과 노이즈, 슈게이징의 완벽한 결합을 이뤄냈다.

이렇게 90년대 인디 록의 총아로 떠오른 요 라 텡고는 2000년대에 와서는 확립한 자신들의 음악에 관조적 성찰을 더한 9집「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Out」(2000), 연주곡만으로 이뤄진 심해 다큐멘터리 사운드트랙인 「The Sounds of the Sounds of Silence」(2002), 그리고 노이즈의 무거움보다 차분함을 강조했던 10집「Summer Sun」(2003), 그리고 이들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가장 크게 공헌했던 최근작이자 어쿠스틱한 면도 다시 강조된 「I Am Not Afraid of You And I Will Beat Your Ass」(2007)를 통해 깔끔하고 리드미컬한 그루브, 그리고 스트링과 혼 섹션까지 자신들의 영역으로 확실하게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대중적일 수 있는 노래들에 대한 그들의 음악적 방향의 실험, 신보 「Popular Songs」

이번 요 라 텡고의 새 앨범의 제목과 커버는 기존 이들에게서 느껴지던 이미지나 관점을 약간 뒤집는다. 일단 제목부터 ‘대중적인 노래들’이라 지었으니, 뭔가 단단히 결심을 하고 대중적 사운드를 보여주겠다고 작정이라도 한 것일까. 그리고 앨범 커버 역시 심플하지만 의미심장하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LP, CD가 부럽지 않게 음악을 듣는 서민들의 애용품이었던 카세트 테이프가 잔뜩 표면이 녹슬고 망가진 채로 놓여있는 커버 디자인에서 ‘과거 매체의 종말’을 상징하고, 이제 그들도 생존을 위해서 아이튠즈에서 쉽게 다운로드할 MP3 포맷에 맞춰 ‘후크 송’이라도 만들겠다는 의지를 뒤에 깔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앨범 전체의 음원을 처음 들으면서, 위에서 언급한 개인적 예상처럼 노골적인 ‘상업성’은 결코 아님에도 ‘대중적 노래’에 대한 고찰이 이 앨범의 주된 테마가 되었다는 생각은 분명히 들었다. 일단 앞서 언급한 대로 지난 앨범에서 이들이 보여주었던 좀 더 리드미컬하고 스트링도 활용한 '기타 노이즈를 배제한 어레인지'는 이번 앨범에서 더욱 강화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음악이 ‘어렵다’라고 생각했었던 리스너들에겐 이건 정말 편하게 듣고 심지어 몸까지 흔들만한 ‘대중적인’ 요 라 텡고의 음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60년대 블루스 록이나 프로그레시브 밴드들이 즐겨 사용했던 추억의 하몬드 B-3 오르간 연주, 그리고 펑키한 베이스 라인이 넘실대는 첫 싱글 [Periodically Double or Triple]을 들어보라. 도어스(Doors)가 울고 갈 정도로 대중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조지아가 보컬을 맡은 [Avalon Or Someone Very Similar]와 요 라 텡고식 펑크 팝인 [Nothing to Hide]는 기타 노이즈가 있음에도 과거에 이들의 보여준 쟁글 팝적 감성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모타운 시대를 자신들의 방식으로 해석한 스트링 섹션 가득한 소프트 팝 튠 [If It's True], 진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Pale Blue Eyes]를 부드럽게 오마주한 듯한 멜랑콜리 발라드 [I'm On My Way], 철저한 어쿠스틱 포크 송 [When It's Dark], 그리고 가사가 아닌 조흥구(?)로 후크 송의 기질을 발휘하는 60년대식 팝송 [All Your Secrets] 등, 앨범의 절반의 러닝 타임을 차지하는 9곡의 노래들은 기존 이들의 사운드에서 아주 크게 벗어난 것도 없지만 곡의 멜로디와 리듬의 구성, 그리고 2000년대 이후 그들이 섭렵하고 있는 어레인지 감각을 총동원하여 정말 ‘대중적일 수 있는(Possibly Popular)’ 곡들의 집합체로 앨범의 성격의 절반을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의 음악에서 대중적으로 비춰질 수 있는 요소가 송라이팅의 감각임을 잘 잡아내, 아예 이를 앨범의 주된 테마로 내세웠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앨범의 나머지 절반의 러닝 타임(약 37분 정도)을 차지하는 후반부 3곡에서 보여주는 이들의 음악에 대한 진지하고 실험적 자세는 여전하다. 9분 동안 큰 격정 없이 흘러가지만 소닉 유스(Sonic Youth)가 부럽지 않을 미니멀 노이즈 록의 매력을 표출하는 [More Stars Than There Are In Heaven],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의 연주가 몽환적으로 결합한 11분짜리 프로그레시브 포크 연주곡 [The Fireside], 그들의 노이즈가 그리웠을 팬들에게 앨범의 최장시간(15분 54초)으로 봉사하는 사이키델릭 록 연주곡 [And The Glitter Is Gone]까지 이들의 초창기에 비해서는 살짝 여유로움이 묻어나긴 해도 이들의 음악의 고유한 매력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

이번 앨범에서 이들이 보여준 ‘대중적 방향으로의 실험’은 기존 이들의 팬들에게는 ‘이들이 이렇게 흥겹게, 매끈하게 갈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색다른 음악적 쾌락을, 그리고 아직까지도 이들의 음악에 다가가기 왠지 낯설었던 음악 팬들에겐 ‘오, 충분히 즐겨볼 만 한 걸?’ 하는 음악적 발견의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이와 같이 양측에 어필할 수 있을 매력을 갖췄다고 개인적으로 확신하는 이유는 이들의 정체성인 ‘장르 초월’의 근육이 그들을 단단히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탄탄한 근육이 셔츠를 벗었을 때 더 멋지게 드러나는 것처럼, 이들도 자신들의 음악적 근육을 더욱 잘 가다듬어 음악 팬들에게 다가가려 하는 것이다.

2009. 10 글/ 김성환 (Music Journalist - 뮤직 매거진 ‘Hot Tracks'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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