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딜런이 드디어 한국에 왔다. 가야겠다는 의무감(!)은 넘처 흘렀으나, 내가 정말 이 뮤지션을 완벽하게 알고 공연을 보러 갈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정말 부끄러운 내 내공에 두려움도 들었다. 그의 중요 음반들과 대표곡 몇개는 제대로 알고 있지만, 어느 정도 디스코그래피의 순서는 꿰고 있지만, 그의 음악을 평소에 반복 청취할 정도로 애청하는 팬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가 한국 땅을 찾는데, 영접해야 한다는 그 특유의 의무감은 공연 3일 전까지 이어졌고, 결국 1층 맨 구석자리 11만원짜리 표를 샀다.
그런데, 막판에 일이 꼬이고 있었다. 4월호 핫트랙스 기획 기사 작업이 너무 늦게 진행된 것이다. 항상 본업과 함께 진행되는 일이긴 했지만, 집안 사정 등과 겹쳐 결국 공연날 오후 6시 50분에서야 내 일이 끝났다. 결국 그 날 밤까지 최종 교정원고를 다 넘겨야 했던 편집장님은 그렇게 보고 싶으셨던 밥 딜런을 보지 못하셨다. 죄송한 마음에 메신저로 "이거 돈 주고 산 표라 포기할 수도 없고..."라고 날린 내 말에 "그래도 봐야죠, 밥 딜런이잖아요."로 답하시고 장렬히 마감 속에 묻히셨다.
6시 50분부터 차를 몰고 인천에서 올림픽공원까지 출발.. 밥 딜런 에센셜 앨범을 들으며 달렸다. 그래도 1시간 10분만에 골인 성공... (외각 순환 고속도로의 힘은 역시...ㅋ) 공연장에 들어가니, 이미 공연은 시작된 상태였다. 첫 곡 <Rainy day Woman>은 놓쳤다. 원래는 1층의 완전 구석자리여서 (아래 글 내용대로 멀티스크린 없는 상황에서) 처음에는 밥 딜런의 얼굴을 깨알만하게 보였다. 그래서 주변을 살피고, 근처에 앞쪽에 빈 자리로 몰래 점프... 그 곳에서 앵콜 전까지 공연을 지켜보았다. 전날에도 4시간밖에 못자고 원고 작업을 했던 탓일까? 노래도 좋고, 밥 딜런의 목소리도 좋고, 다 좋은데도 결국 후반부에서는 나도 모르게 졸렸다...--;;
아... 이래서는 안돼... 밥 딜런이야... 내 자신을 자책할 무렵, 공연장 경비라면 그 누구보다 철저하게 한다는 '강한 친구들'의 경비가 약간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One More Cup of Coffee>는 커녕, <Knockin' On Heaven's Door>조차 들을 수 없어 답답해한 올드 팬들이 자리를 뜬 탓에 플로어 자리에 서서히 구멍이 뚫리기 시작할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앵콜 첫 곡으로 <Like A Rolling Stone>이 흐를 때, 플로어로 뛰어내렸고, 경비들을 피해 과감히 무대 앞쪽으로 최대한 파고들어갔다. 이제서야 딜런 할아버님의 얼굴과 멤버들의 연주가 제대로 보이는군... 하여간 앵콜 4곡의 감상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다. 물론 다 아는 곡이기에 그랬겠지만, 카리스마 넘치게 걸걸해지신 그 목소리로도 <Jolene>, <All Along The Watchtower>, <Blowin' In The Wind>의 새로운 편곡과 느낌은 모두 황홀했다.
거장의 공연을 너무 정신없는 상황에서 본것이 아닌가 하는 나도 모를 아쉬움도 있긴 했지만, 편협한 히트곡 몇 개로 그를 기억하지 않는 진정한 밥 딜런의 팬들과, 그리고 팝계의 거장을 영접하겠다고 작정하고 나온 음악 팬들에게는 정말 의미있고 뜻깊은 공연이었다. 끝으로 이번 공연에 대한 제 생각의 양면을 담은 기사 하나를 덤으로 아래 첨부한다.
31일 밤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밥 딜런 내한공연'에 두가지 시선이 엇갈렸다. 좋게 본 시선, 안좋게 본 시선이다.
<좋게 보는 시선 - '밥 딜런 스타일' 역시 영감을 줬다>
국내팬이 설렌 것은 물론 매체로만 듣던 '전설' 밥 딜런을 처음 직접 보고 듣고 같이 호흡했다는 사실 자체. 6천명 관중이 운집한 공연은 예상한대로 오프닝 밴드는 없고 검은 장막만 친 채, 오후 8시 시작돼 예정된 2시간동안 그의 음악만 이어졌다. 첫곡 '레이니 데이 우먼(Rainy Day Woman)'부터 앵콜 끝곡 '블로윈 인 더 윈드(Blowin' In The Wind)'까지 그는 특유의 읊조리고 내뱉는 목소리로 관중을 이끌었다. '레이 레이디 레이(Lay Lady Lay)', '더 멤피스 블루스 어게인(The Memphis Blues Again), '저스트 라이크 어 워먼(Just Like A Woman)', '어니스트 위드 미(Honest With Me)' 등등 블루스, 재즈록, 컨트리록 등을 섞어 불렀고, 앵콜곡으로는 우리에게 귀익은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과 '선더 온 더 마운틴(Thunder On The Mountain)', '블로윈 인 더 윈드'를 불러주었다.
감동받은 것은 내년이 칠순인 그가 아직도 목소리 기력을 갖고 있었다는 점. 그가 포크 음악을 시작한 1960년대부터 읊조리다 쏟다 했지만, 그래도 힘이 딸릴 것이란 생각은 공연전 기우였다. 매 곡을 부를때마다 그는 때로는 웅얼거리고 지르고 흘리기도 하며 멜로디파괴 박자파괴 소절파괴를 했던 음악적 선구자의 면모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딴은 밥 딜런은 60년대 그것으로 이제와서 유행하고 있는 랩의 창시자이기도 했다.
그의 밴드도 훌륭했다. 세계 각지서 얼마나 많은 공연을 했을까마는 키보드를 치고 기타를 치고 때로는 하모니카를 불며 노래하는 주인공에 맞춰 폭발적인 드럼과 콘트라베이스, 그리고 기타 사운드는 정말 훌륭했다. 밥 딜런은 이날 지루하게(?) 노래만 부르다가는 공연 시작한지 1시간 넘어서야 이윽고 밴드를 소개했다. 보통 서너곡 끝나고 세션맨 소개하는데, 처음 관객들은 '밥 딜런이 밴드 소개 말고 무슨 말을 할까' 기대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가 말을 했다.
31일 밤은 올림픽공원서 열린 '밥 딜런'의 종교 집회였다. 신봉자인 6천팬은 어떤 이는 조용히 박수치고 턱 괴고 감상했고, 어떤 이는 일어나 열광했다. 관객을 거의 안 보고, 앵콜 받을때 딱 두번 멤버와 함께 인사하고 나간 그는 2시간동안 팬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었다. 역시 지난 2002년 데뷔 40주년 기념공연때, 동세대 조지 해리슨, 에릭 클랩턴, 밥 겔도프, 닐 영 등이 병풍으로 나와 기타치고, 코러스까지 해준 그였다.
<안 좋게 보는 시선 - 불친절한 공연, 불편했던 공연>
그의 행각, 음악사, 노래스타일, 괴벽 등으로 보아 '재밌는 공연'은 기대하지 않았다. 전인권이 30분동안 스탠딩 의자에 앉아 '노래 지르듯이' 밥 딜런도 1시간 넘게 노래만 했다. 객석은 거의 쳐다보지도 않았다. 음악 평론가도 잘 모를 록 레퍼터리를 1시간 넘게 불러나가다가 이윽고 마이크를 잡은 것도 그나마 밴드 소개였다.
관객은 앉자마자 요즘 익숙한 '멀티스크린'이 없는 데 당황했다. 밥 딜런이건 말건, 2,3층에 앉은 관객에게 공연은 음질좋은 라디오일 뿐이었다. 점점이 선 기타 세명과 콘트라베이스, 키보드, 드럼 중 드럼 빼고 누가 밥 딜런인지도 몰랐다. 나중에 하얀 중절모 쓴 이가 하모니카 부니까 그가 밥 딜런인 줄 알았다. 아마 스크린 설치 안한거는 밥 딜런의 조건이자 스타일이었을 터이지만, 그의 나이 든 얼굴을 대형스크린에 보여주기 싫었음일까? 관객에게 음악만 보고 듣고 가라는 명령이었을까? 2,3층의 실망한 관객들은 공연 도중 일부 나가기까지 했다.
해외가수들 내한공연에는 스크린이 있더라도 또 대부분 곡목 소개가 안 나온다. 그 가수를 좋아해도 잘 모르는 노래가 있고, "이 노래 뭐지?' 하며 새 노래에 곡목을 알고 싶은게 있을텐데 인색하게도 전혀 소개가 없다. 이튿날 정통한 매니아가 올려놓는 인터넷 블로그의 공연리뷰를 찾아야 한다.
이날에는 또 중년 관객들이 꽤 많았다. LP시절, 밥 딜런의 음반을 샀고 추억의 노래를 들으러 갔던 근 반 가까이 되는 사오십대 관객들은 틀림없이 실망했을 것이다. 새로운 록을 한다는 밥 딜런의 음악적 고집을 누가 뭐랄 수 없었겠지만, 온 김에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나 '포레버 영(Forever Young)' 같은 쉽고 아름답고 그나라가 잘 아는 노래를 들려줄 수는 없었을까. 귀에 익은 노래 '라이크 어 롤링 스톤'과 '블로윈 인 더 윈드'도 역시 스타일대로 꺾어 불러, 원어 잘 모르는 우리들은 뒤늦게서야 "그게 그노래야" 했다.
2시간동안 밥 딜런을 음반으로만 들었던 향수에 젖은 팬들은 밥 딜런이 내는 시험문제 풀듯이 곤혹스러웠다. 또 좀 안다하는 팬도 불편했을 것이 틀림없다. 노래를 몰라 같이 흥 날 수 없었던 팬은 이날 앉아 보고 듣기만 하는 극장쇼를 본 느낌일 테고, 호기심 많은 밥 딜런 팬은 공연 직후 이날 많이 온 미국관객들한테 오늘 밥이 무슨 노래를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을 것이다.
Setlist 1 Rainy Day Women # 12 & 35 (Blonde On Blonde) 2 Lay, Lady, Lay (Nashville Skyline) 3 I'll Be Your Baby Tonight (John Wesley Harding) 4 Stuck Inside Of Mobile With The Memphis Blues Again (Blonde On Blonde) 5 The Levee's Gonna Break (Modern Times)
6 Just Like A Woman (Blonde On Blonde) 7 Honest With Me (Love And Theft) 8 Sugar Baby (Love And Theft) 9 High Water (for Charlie Patton) (Love And Theft) 10 Desolation Row (Highway 61 Revisited) 11 Highway 61 Revisited (Highway 61 Revisited) 12 Shelter From The Storm (Blood On The Tracks) 13 Thunder On The Mountain (Modern Times) 14 Ballad Of A Thin Man (Highway 61 Revisited)
Encore 15 Like A Rolling Stone (Highway 61 Revisited) 16 Jolene (Together Through Life) 17 All Along The Watchtower
(John Wesley Harding)
Encore II 18 Blowin' In The Wind
(The Freewheelin' Bob Dyl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