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모든 세계의 리얼리티 스타 발굴 프로그램의 최고의 자리에 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의 출연자들은 대체로 이 쇼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삼아 (그들이 이미 프로 뮤지션의 길을 걷고 있었건, 아니면 이 프로그램이 그들의 경력의 시작이 되었건) 프로의 세계에서 그들의 재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미 첫 내한공연과 국내의 유사 프로그램에서 1일 심사위원 역할까지 맡아 우리와 친숙해진 시즌 1의 우승자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 이미 이 프로그램 출신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컨트리 뮤직 씬의 디바로 우뚝 선 캐리 언더우드(Carrie Underwood),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 가운데 록커로서 가장 큰 인기를 얻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크리스 도트리(Chris Daughtry), 그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안정된 인기를 누리고 있는 흑인 여성 보컬리스트 판타지아(Fantasia)와 조딘 스팍스(Jordin Sparks)에 이르기까지 이미 여러 명의 아티스트들이 스타덤에 오르면서 2000년대 팝 음악 씬에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새겨두었다.
이제 시즌 9를 마치고 오는 10월 15일 시즌 10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과연 앞서 언급한 스타들 이후에 어떤 인물들이 아메리칸 아이돌이 만든 아티스트의 계보를 이을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고 있는데, 일단 가장 눈에 띄는 뮤지션들은 데뷔 앨범부터 화려한 보컬 테크닉과 독특한 음악 컨셉으로 팬들을 사로잡고 있는 아담 램버트(Adam Lambert), 시즌 7의 우승자 데이빗 쿡(David Cook),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재능을 보여주는 10대 여성 뮤지션 앨리슨 이라헤타(Allison Iraheta) 등이 그 물망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뮤지션은 바로 이제 막 20대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는 남성 보컬리스트 데이빗 아츌레타라 할 수 있다. 여태껏 여러 10대 뮤지션들이 이 프로그램의 상위권에 올라갔지만, 언제나 백인 남성 팝 스타들에 대한 갈망이 있는 미국 팝 씬에서 그는 이미 10대들에게는 음악과 청소년용 드라마 출연 등으로 확고한 지지를 받은 틴 팝 스타이며, 이제 성인 뮤지션으로 발돋움해야 할 시점에서 두 번째 앨범을 들고 그의 커리어를 한 단계 끌어올리려는 야심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노래뿐만 아니라 연기 분야까지 노리며 멀티 엔터테이너의 기질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 역시 앞으로 다방면의 활동을 기대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Pop Star’의 소질을 타고난 데이빗 아츌레타의 현재까지의 커리어
1990년생으로 미국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태생인 데이빗 아츌레타는 살사 가수와 댄서로 활동했던 부모의 피를 물려받아 어린 시절부터 일찍 노래를 부르는 데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일찍이 집안에 가스펠부터 소울 음악들의 훌륭한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었고, 어머니는 데이빗이 누나들과 함께 라틴 전통 춤을 추도록 가르쳤기에, 그가 노래와 춤을 배우는 데는 사교육의 힘(?)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솔트 레이크 시티로 이사를 온 6살 때, 비디오로 보았던 뮤지컬 ‘레 미제러블(Les Misérables)’은 데이빗 스스로도 “그 순간에 제 커리어의 모든 게 시작되었어요.”라고 회고했을 정도로 그가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 후 데이빗은 10살 때 유타 주 연예 경연대회에 출전하여 돌리 파튼(Dolly Parton)과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의 곡으로 잘 알려진 <We Will Always Love You>를 불러 어린이 경쟁자들을 가운데 최고상을 수상하면서 지역에서부터 그의 재능을 대중에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12살 때 그는 미국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TV 일반인 탤런트 경연대회인 ‘스타 서치(Star Search)’에 출전해 주니어 부문 2위에 해당하는 주니어 보컬 챔피언 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당시 수상 직후 출연했던 ‘제니 존스 쇼(Jenny Jones Show)’에서 당시 아메리칸 아이돌의 첫 우승자가 된 켈리 클락슨과 다른 시즌 입상자들 앞에서 뮤지컬 ‘드림걸즈(Dreamgirls)’의 삽입곡 <And I Am Telling You I'm Not Going>을 무반주로 완벽하게 소화해 출연자들 전체의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 후 목에 이상 증세를 보여서 몇 년간 노래를 부르는 것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그는 이 기간을 작사와 작곡을 연습하는 기회로 삼았는데, 그 당시에 만든 곡들이 <Dream Sky High>나 <Don't Tell Me>와 같은 트랙들이었다.
몇 년간의 휴식을 마친 후 다시 그는 전국으로 그의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꿈의 무대인 아메리칸 아이돌에 본격적으로 도전했다. 2007년 샌디애고 지역 예선에 출전한 그는 존 메이어(John Mayer)의 <Waiting on the World to Change>를 불렀는데, 그의 노래에 심사위원인 랜디 잭슨(Randy Jackson)마저 흥이 나서 코러스를 맞춰줄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한다. 결국 16살의 나이로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7 본선에 진출한 데이빗은 브라이언 아담스(Bryan Adams)와 비틀즈의 록 음악부터 미러클즈(Miracles)의 소울 음악, 그리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Phantom of the Opera)’의 삽입곡에 이
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레퍼토리를 매주 선사하면서 심사위원과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한 단계씩 정상의 자리를 오르던 그는 최종 결승에서 경쟁자 데이빗 쿡(David Cook)에 밀려 아깝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러나 그의 투표율은 무려 44%에 육박했었다.)
비록 2위였지만 우승자에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게 된 데이빗은 2008년 자이브(Jive)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그 해 11월에 셀프 타이틀 데뷔작 「David Archuleta」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프로 뮤지션의 행보를 시작했다. 첫 싱글 <Crush>는 비록 리아나의 싱글 <Disturbia>에 밀려 빌보드 Hot 100 싱글 차트 2위에 머물렀지만, 그 순위로 핫 샷 데뷔를 했기에 충분히 화려한 신고식을 치른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싱글의 인기는 다운로드 차트에서 특히 강세를 보였는데, 첫 주에 16만 6천장을 팔더니, 현재까지 총 192만번의 다운로드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러한 놀라운 성과에 경제지 포브스(Forbes)는 그를 ‘2008년의 벼락 신인’으로 선정했고, 10대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들을 선정하는 ‘틴 쵸이스 어워즈(Teen Choice Awards)’의 진행자를 맡을 정도로 빠른 스타덤을 얻었다. 그 후 데뷔 앨범에서는 <Let's Talk About Love (The Build-A-Bear theme song)>, <Zero Gravity> 등이 연이어 히트했고, 2009년 한 해를 영국에서는 맥플라이(McFly)와, 미국에서는 ‘캠프 록(Camp Rock)’의 히로인 데미 로바토(Demi Lovato)와 함께 투어를 돌면서 바쁜 한 해를 보냈다. 그리고 10월에는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시즌 앨범 「Christmas from the Heart」를 발매하면서 인기의 흐름을 이어나갔다.
점진적 변화로 성인 뮤지션으로의 변신을 꾀하는 정규 2집 「The Other Side of Down」
2년 만에 발표되는 그의 2집 「The Other Side of Down」은 셀프 타이틀 데뷔작에 담겼던 그의 음악들의 분위기에서 갑작스러운 큰 변화를 시도하려고 한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대체로 R&B의 감성이 살짝 가미된 미국식 주류 틴 팝-록 사운드의 최근 경향을 반영한 편곡 방식 역시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분명히 달라진 부분도 있다. 1집에서 그의 목소리나 곡들의 느낌이 소울과 록의 감성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그의 타고난 보이스와는 별개로 약간 ‘어린’ 느낌이 남아 있었다면, 이번 앨범의 그의 목소리는 확실히 성인 보컬리스트의 영역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인 풍의 사운드로 급격하게 변신을 시도했다가 오히려 빨리 인기 곡선이 하향해버렸던 틴 팝 선배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기존의 그의 팬들을 천천히 어덜트 팝 수용층으로 인도하려는 그의 시도는 일단 합격점을 줄만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앨범에서 중요한 것은 그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역량도 점점 향상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이번 앨범에서 2곡을 제외하고는 모든 트랙에서 작곡에 참여했고, 멜로디 라인은 1집의 퀄리티를 넘어설 만큼 명쾌하고 매끈하게 완성되었다. 이번 앨범이 그의 대중적 인기에 더욱 큰 도움을 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David Archuleta - Something 'Bout Love (Videoclip)
이미 앨범 발매 전부터 공개된 첫 싱글 <Something About Love>에서 보여주는 대중적이며 명쾌한 멜로디 라인은 자신의 보컬의 장단점을 잘 인식한 가운데 만들어진 것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일렉트로닉 팝-록 사운드로 매끈하게 포장해내고 있다. 역시 비슷한 편곡 포맷을 지닌 앨범의 첫 트랙이자 타이틀 트랙 <The Other Side of Down>도 칼칼한 기타 스트로크의 효과가 그의 보컬과 멋지게 어우러지며,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가 주도하는 어덜트 록 트랙 <Elevator>와 나름 로킹한 보컬을 구사하려 애쓰며 1980년대 AOR(Adult Oriented Rock)의 2010년대식 변용을 전하는 <Stomping The Roses>, 그간의 그의 보컬 스타일과 살짝 다른 창법을 선보이는 미디움 템포 댄스 록 트랙 <Who I Am>와 과거 1990년대 영국 주류 팝 보이 밴드들의 분위기가 엿보이는 <Parachutes And Airplane>, 클럽지향적인 일렉트로닉 비트가 춤을 추는 가운데 블루 아이드 소울 성향의 보컬을 선보이는 <Look Around> 등이 그의 신곡들을 기다려온 팬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해 줄 것이다.
한편, 록 성향의 곡이지만 전반부의 차분한 진행을 통해 서정성을 강화한 <Falling Stars>과 앨범에서 가장 로킹한 느낌을 주지만 동시에 드라마틱한 구성을 보여주며 그의 가창력의 힘을 받쳐주는 <Good Place>, 그가 존경하는 존 메이어의 성향이 살짝 엿보이는 <Complain>, 그리고 앨범의 마지막 부분을 부드럽게 장식하는 두 곡의 발라드 성향 트랙들 - <Things Are Gonna Get Better>, <My Kind of Perfect> - 은 여성 팝 음악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적합한 곡들이다.
이미 그의 탁월한 기본기는 미국과 영국의 음악 팬들에게 인정받은 것이기에, 이제 데이빗 아츌레타는 이번 새 앨범을 통해 그 능력이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큰 과제를 안았다. 다행히도 이 앨범은 그에게 주어진 이 미션을 성공적으로 돌파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언제나 대중은 가장 ‘팝적인’ 기본기를 가진 아티스트에게 환호를 보내게 되어 있고, 데이빗은 그 기본에 충실한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2010. 9 글/ 김성환(Music Journalist - 뮤직 매거진 ‘Hottracks’ 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