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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Blunt - Some Kind Of Trouble

Review 저장고/팝

by mikstipe 2010. 11. 1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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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국 워너뮤직에서 발매된 본 앨범의 해설지로 제가 쓴 글입니다.

2000년대 영국 남성 싱어송라이터 씬의 대표주자
제임스 블런트(James Blunt)의 2010년 최신작,
경쾌함을 추가하면서 멜로디의 아름다움을 유지한 세 번째 정규 앨범
「Some Kind of Trouble」

제임스 블런트의 새 앨범의 발매 소식을 들으면서 과거 그의 출세작이었던 [You're Beautiful]를 처음 듣게 되었을 때의 느낌을 회고해 보았다. 물론 그 곡이 우리나라에서는 자동차 광고 배경음악으로 히트를 쳤던 것이 그의 국내 인기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광고에 실리기 전에 그 곡을 처음 접했었기에, 오히려 그의 전형적인 영국적 감성의 건조한 듯해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목소리, 그리고 겉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남성이라면 누구나 내면에서 떠올려 볼 수 있는 판타지적 욕망을 서정적(?)으로 우회해 표현한 가사의 매력이 더 와 닿았었다. 게다가 어쿠스틱 포크 록적인 반주로 사색의 정서를 노래하는 남성 싱어송라이터는 한국의 음악 매니아들에게도 은근히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편이니, 분명히 국내에서도 반응이 좋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어떤 이유를 찾아 설명을 붙이는가와 상관없이 싱글 [You're Beautiful]과 데뷔 앨범 「Back to Bed1am」이 그를 현재의 스타덤에 이르게 한 건 분명하다. 하지만 단 한 곡의 힘이 그를 현재까지 2000년대의 대표적 남성 포크 록 싱어송라이터로 평단의 인정을 받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사실 그의 성공은 궁극적으로 남성 싱어-송라이터들이 갖춰야 할 가장 큰 미덕인 ‘이야기꾼(Storyteller)’으로서 재능을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엘튼 존(Elton John)-버니 토핀(Bernie Taupin)이 그랬고 그가 존경하는 70년대의 남성 싱어-송라이터들과 엘리엇 스미스(Eliott Smith)가 그랬듯, 그는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자신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어 그럴듯한 이야기로 살을 붙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를 아름답게 들리는 멜로디에 얹어 서빙할 수 있는 기술마저 갖고 있으니, 그는 대중이 원하는 메뉴들을 어느 식당에서도 차려낼 수 있는 우수한 ‘세프(Chef)’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2000년대의 대표적 인기 남성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해온 제임스 블런트의 음악 여정

1974년 영국 윌트셔 티드워스(Tidworth)에서 태어난 제임스 블런트는 영국 육군 항공대에서 복무했던 아버지를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영국 외에 독일, 키프로스 등 영국군 기지가 있는 지역을 옮겨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항상 친구들과 갑작스레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 외로움을 그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을 배우며 해소했다. 그리고 14살 때 친구에게 기타 연주하는 법을 배운 후, 더욱 본격적으로 음악
에 빠져들게 되었다. 대학 시절에는 ‘팝 아이돌의 탄생 - 이미지의 거래’라는 주제로 졸업 논문을 작성할 만큼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강했다. 하지만 영국 육군이 자신의 학비를 지원해주었기 때문에 그는 4년간의 의무 군복무를 해야 했고, 그 기간 중 2년이란 시간 동안 NATO 평화 유지군으로 코소보(Kosovo)전쟁에 참여하며 세상에 대한 더 다양한 시선을 획득할 수 있었다.

결국 2002년에 육군을 떠난 그는 고향에 돌아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꿈이었던 뮤지션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 프로듀서 톰 로스록(Tom Rothrock)과 함께 그의 스튜디오에서 데뷔작을 위한 곡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2004년에 데뷔작 「Back to Bed1am」이 발매되긴 했지만, 첫 싱글 [High]는 영국 시장에서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고, 거의 1년간 그는 조용히 공연을 통해 자신을 알려야 했다. 하지만 서서히 평단에서 그의 음반을 주목하고 높은 평가를 내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You're Beautiful]이 대히트를 거두면서 후속곡 [Goodbye My Lover]까지 연이어 히트를 치면서 2000년대 주류 팝 씬에서 그는 가장 빨리 대중적 지명도에서 1순위로 올라서게 되었다.

하지만 2집 「All The Lost Souls」부터는 그는 서서히 자신이 만들어놓은 ‘히트곡의 덫’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1집에 못지않은 상업적 히트(10개국 차트에서 발매 즉시 1위에 올랐고, 세계적으로 500만장 이상 팔렸다.) 물론 이 앨범에서 그가 벗어나려고 했었던 것은 음악적 스타일 그 자체라기보다 좀 더 내면적인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좀 더 그루비해진 사운드를 보여주었던 <1973>처럼 사운드에 점진적 변화를 준 곡도 있었고, [Same Mistake]처럼 아예 더 클래식 포크 풍으로 흘러서 내면의 서정성을 끌어내는 트랙들이 주종을 이뤘다. 그렇게 자신이 대중성에 연연해서 음악을 하는 것이 아님을 역설하는 듯한 방향으로 만든 음반이지만, 그 점이 오히려 미국 시장 이외의 공간에서의 대중에게는 잘 먹혔다. 물론 1집만큼의 기록적인 판매고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확고한 포크 팝-록 싱어송라이터 본연의 길을 가겠다는 선언과도 같았기에, 여전히 다음 앨범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의 작법의 매력은 유지하면서 업비트의 매력을 추가한 3집「Some Kind of Trouble」

오랜 기다림 끝에 대중적 멜로디의 힘으로 스타덤을 이뤄낸 1집, 그리고 그 대중적 성향에서 조금 벗어나려 했던 2집의 경험들은 이번 그의 세 번째 앨범 「Some Kind of Trouble」을 스스로 그의 음악에 다시 한 번 새로운 변화를 주도록 자극한 것 같다. 이미 방송이나 인터넷을 통해서 접했을 그의 새 앨범 첫 싱글인 [Stay The Night]에서 들려오는 그 업비트의 경쾌함은 여태껏 그의 음악에서는 쉽게 느끼기 힘들었던 요소이기 때문이다. 분명히 멜로디는 제임스 블런트의 그것이 맞는데, 조금은 시니컬한 가사로 어렴풋이 느꼈던 그의 정신세계 속에 어떤 변화라도 있는 것일까? 그의 말 속에서 약간이나마 그 해답을 찾아보자.

“지난 앨범은 매우 내향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앨범의 이야기는 제 주변에서 느끼는 현실의 모습들을 담으려 했어요. 명예나 유명해지는 문제와 같은 거창한 주제는 아니죠. 전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그냥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해, 우리가 가고 싶은 곳들에 대한 이야기를 노래로 썼어요. 그 느낌은 마치 1980년대 초반, 우리가 어떤 것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던 서구 사회의 분위기와도 일치해요. 마치 우리가 10대 시절에 가질만한 그런 낙관론 말이죠. 이번 앨범은 그런 자유로움과 흥분과 순수함의 감정들을 담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프로듀서 스티브 롭슨(Steve Robson)의 지휘 아래 혼자만의 힘이 아닌 여러 명의 다른 작곡가들과의 협동 작업을 통해 한 자리에서 머리를 맞대고 구상한 곡들이 더 많이 수록되었다. 과거에는 스튜디오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곡들을 거의 다 완성한 상태에서 갔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다. 원 리퍼블릭(One Republic)의 리더이자 이제는 잘 나가는 작곡자 역할도 겸하고 있는 라이언 테더(Ryan Tedder), 버드 앤 더 비(The Bird & the Bee)의 멤버인 그렉 커스틴(Greg Kurstin), 베터 댄 에즈라(Better Than Ezra)의 케빈 그리핀(Kevin Griffin), 웨인 헥터(Wayne Hector), 그리고 2집에서도 곡 작업에 함께 했었던 에그 화이트(Eg White) 등 다양한 송라이터들이 그를 지원하기 위해 기꺼이 함께 런던에 있는 녹음 스튜디오에서 시간을 보냈다. 제임스 자신도 이렇게 ‘소란을 피우며’ 작업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럽고, 에너지 넘치는 곡을 만들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James Blunt - Stay The Night (Videoclip)

그 결과 앞서 말한 대로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변화는 업비트의 트랙들이 과감하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컨트리 풍의 포크 록 [Stay The Night]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낭만보다 활기가 넘친다. 얼핏 들으면 <1973>의 분위기를 계승한 것 같지만, [Dangerous]의 베이스-드럼 리듬 위에 깔린 곡의 훅 파트는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밝은 정서가 지배한다. 기존 그의 음악과 미국식 주류 어덜트 록의 비트가 안정감 있게 섞인 [So Far Gone], 마치 1970년대 포크 록 그룹이 1980년대 AOR의 시대로 넘어와 적응하는 듯한 사운드를 표출하는 [Superstar]와 [These Are The Words]의 깔끔한 코러스의 임팩트, 그의 곡들 가운데 아마 가장 하드할 [Turn Me On], 다시 한 번 [Stay The Night]의 음악적 분위기를 끄집어내는 후반부의 대표적 트랙 [I'll Be Your Man]의 매끈한 경쾌함까지 지금까지 제임스 블런트의 음악을 사색적이고 낭만적이어서 좋아했던 팬들은 약간 어리둥절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금방 친숙해지게 될 음악들이 앨범의 뼈대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때문에 오히려 과거 스타일의 음악들이 그리운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을 위해 제임스는 자신이 이번 앨범에서 가장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발라드 [No Tears]를 준비했다. 인생을 마무리하는 한 사람의 시선을 담은 가사와 그의 애절한 보이스가 국내 팬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끌어낼 것 같다. 블루지한 감성을 가진 록발라드 [Best Laid Plans],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 조합과 그의 보컬 음역의 다채로움을 느낄 수 있는 스케일 있는 발라드 [Calling Out Your Name], 과거에도 가끔씩 느꼈던 엘튼 존(Elton John)과의 공유점을 강하게 드러내는 [Heart of Gold] 등 슬로우 트랙들에서는 여전한 그의 멜로디 메이커의 장점들이 더욱 원숙하게 드러난다.

세 번째 앨범을 통해 제임스 블런트는 마침내 자신이 음악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더 많은 카드를 꺼내들었고, 그것을 그의 음악의 근본적 뼈대와 잘 붙어있도록 능숙하게 주조했다. 바로 그 부분이 더욱 많은 음악 팬들이 새 앨범을 통해 그의 음악에 더 많은 매력을 느끼게 만들 힘으로 작용할 것임은 분명하다.

2010. 11. 글/ 김성환 (Music Journalist - 뮤직매거진 ‘Hottracks’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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