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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rl Jam - Live on Ten Legs (한국 유니버설 뮤직 발매반 해설지)

Review 저장고/팝

by mikstipe 2011. 2. 23.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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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터너티브 록의 살아있는 전설 펄 잼(Pearl Jam)의 2010년 실황 앨범,
그들의 20년 역사의 대표작들이 한 장에 집약된 열정의 라이브 「Live on Ten Legs」

  서구 팝 음악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들은 1994년 5월 너바나(Nirvana)의 리더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쏘아 목숨을 끊은 그 순간, 시애틀 그런지(Grunge)의 역사는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비틀즈(The Beatles)라는 세기의 록 밴드가 해체한 후에도 그들의 숙명의 라이벌로 통했던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가 2000년대에도 여전히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하는 저력을 보여줬듯, 너바나와 함께 시애틀 록의 영광의 시절을 함께 보냈던 펄 잼(Pearl Jam) 역시 지금까지 그들에게 주어진 밴드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두 밴드와 함께 시애틀 그런지의 4대 밴드로 통했던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와 사운드가든(Soundgarden)마저 레인 스탤리(Lane Staley)의 사망과 크리스 코넬(Chris Conell)의 긴 방황으로 인해 너무 먼 길을 돌아 얼마 전에야 돌아온 상황을 볼 때, 언제나 변함없이 대중과 호흡하는 록 밴드, 음악적으로 높게 평가받는 밴드로서 자리를 지켰다는 것만으로도 펄 잼은 록 역사의 위대한 밴드가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또한 그들이 꾸준히 지금까지 활동을 해왔기에 1990년대 초반 시애틀 그런지를 시발점으로 불어온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이 표방한 ‘과거 록 정신으로의 복귀’는 커트의 산화(散華) 이후에도 단지 한 줌의 재로 끝나지 않고 작은 불씨를 지켜갈 수 있었다. 그들이 90년대에 공연 요금의 인하를 위해 티켓마스터(Ticketmaster)와 한바탕 전쟁을 치렀던 것으로 시작해 사회적인 이슈에서는 항상 진보적 사고의 편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했던 펄 잼의 행적들은 뜻과 열정을 함께하는 수많은 팬들을 꾸준히 공연장으로 끌어 모았다.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 에디 베더(Eddie Vedder)가 2000년 어느 인터뷰에서 남긴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무엇을 필요로 했을 시절, 그것을 주었던 록 밴드들이 우리 모두 있었기에 우리도 역시 사람들에게 믿고 의지할 무언가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앨범을 내놓은 후 그것은 우리에겐 큰 도전이었지만, 우리는 팬들에게 응답을 내놓아야 했다. 해답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스스로 그 방법을 찾아냈던 것 같다.” 그의 말처럼 방황하는 당대의 청춘들에게 펄 잼은 절대 선동가의 모습은 아니었음에도 음악으로, 행동으로 길잡이의 역할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정신적 인도를 따르는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세계 록 팬들의 지지로 그들은 이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얼터너티브 록의 살아있는 전설’과 같은 존재로 우리 곁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펄 잼과 라이브 공연,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그들의 존재의 이유

  기타리스트 스톤 고사드(Stone Gossard)와 제프 아멘트(Jeff Ament)가 1980년대 후반 시애틀 언더그라운드 하드 록 밴드 마더 러브 본(Mother Love Bone)의 멤버로 활동했던 인연에서 출발한 펄 잼의 역사는 밴드의 보컬이었던 앤드류 우드(Andrew Wood)가 헤로인 중독으로 사망한 후 새로운 밴드를 규합하며 샌디애고 출신의 에디 베더를 받아들이며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1991년 데뷔작이자 얼터너티브 록의 부흥을 알렸던 걸작 「Ten」을 기점으로 폭발한 그들의 에너지는 상업적-음악적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던 초기 대표작들 - 「Vs.」(1993),「Vitalogy」(1995) - 과 음울함으로 침잠했던 「No Code」(1996), 그 음울함을 하드 록적 방법으로 극복하려 했던 「Yield」(1998), 아예 실험주의적 시도로 돌파구를 모색했던「Binaural」(2000) 등의 중기 앨범들의 분투를 거쳐 자신들의 초기의 에너지를 다시 회복하는 기점이 된 「Riot Act」(2002), 초기작들 못지않게 활기를 드디어 완연히 되찾으면서도 동시에 노련함을 추구한「Pearl Jam」(2006)과 최근작 「Backspacer」(2009)까지 비록 대중의 호응에서는 기복을 거치긴 했어도 꾸준한 열정과 음악적 고민 속에서 그 깊이를 더해갔다. 
 
   그러나 해외 록 밴드들의 음악을 공연보다는 음반과 영상으로 접할 기회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우리 입장에서 펄 잼에 대해 간과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시애틀 그런지 록을 대표했던 밴드들 가운데 정통 아메리칸 록의 유산과 가장 가까운 공유점을 가진 그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사실 음반보다 그들의 라이브 무대라는
사실이다. 메이저 데뷔 이후 현재까지 한 해도 투어를 거른 적이 없는 그들의 엄청난 양의 공연 기록을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겠지만, 실제 그들은 공연장을 통해 자신들의 음악을 아껴주는 팬들과 만나고 그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모습이 가장 매력적인 록 밴드다. 그리고 많은 공연을 펼치는 팀답게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 이후에 는 DVD외에 음반으로는 생각보다 흔히 만나기 힘든 라이브 앨범들의 숫자만 해도 공식 작품으로만 CD로 5장, 아이튠즈에만 공개한 2007년도 롤라팔루자(Lollapalooza) 실황 앨범까지 합치면 6장이다. 그리고 역사상 어느 록 밴드도 세우지 못한 펄 잼만의 독특한 기록이 하나 있다. 마분지 페이퍼 슬리브 형태 패키지로 미국과 유럽 지역에 한정 발매된 ‘Official Bootleg(공식 해적판)' 라이브 앨범만 지난 10년간 벌써 282장이나 된다. 이렇게 라이브 공연 기록에 애착을 갖고 혹시 여유가 없어서 자신들의 공연장에 오지 못한 팬들까지 그 현장의 열기를 전하고자 애쓰는 록 밴드를 당신은 이전에 본 적이 있는가? 그야말로 펄 잼에게 라이브 공연은 그들의 존재의 이유와 마찬가지이고, 그들이 여태껏 남겼던 수많은 라이브 음원들은 바로 그 숨길 수 없는 증거들이다.

밴드의 2000년대 투어의 베스트 실황들을 모은 2011년판 공식 라이브 앨범

  이번에 발표되는 「Live on Ten Legs」의 제목을 보고 펄 잼의 팬들이라면 왠지 낯이 익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들이 발표했던 첫 공식 라이브 음반의 제목이 「Live on Two Legs」(1998)였기 때문이다. 그 앨범의 경우는 1998년 여름에 가졌던 3개월간의 북미 투어의 하이라이트를 모은 것이라면, 이번 새 라이브 앨범은 지난 2003년부터 작년까지 이들이 가진 방대한 라이브 음원들 가운데서 선곡이 이뤄졌다. 그리고 더욱 재미있는 것은 두 라이브 앨범 사이에 겹치는 트랙이 한 곡도 없다는 점이다. 결국 이 두 장을 함께 소장하고 있다면 이들의 유일한 팝 차트 넘버 원 싱글인 <Last Kiss>를 제외하고 펄 잼 역사의 중요 히트곡들은 거의 다 라이브 버전으로 듣게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이 앨범 트랙리스트를 보면서 ‘어, 왜 이렇게 중요한 트랙이 빠졌지?’라는 의문을 가졌던 펄 잼의 팬들은 이 사실을 꼭 인지해 주시기 바란다.

  결국 「Live on Two Legs」에서 빠졌던 그들의 과거 베스트 트랙들은 이 앨범에 모두 실려 있다. 데뷔작 「Ten」에서는 그들의 시그니쳐 싱글 중 하나인 <Jeremy>와 <Alive>, 그리고 6분으로 러닝타임을 늘여 라이브의 현장감을 더한 블루스 얼터너티브 록 <Porch>가 선곡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비사이드 앨범 「Lost Dogs」에 실린 <Yellow Ledbetter> 역시 처음에는 <Jeremy> 싱글의 뒷면에 실렸던 곡이다. 어쿠스틱한 면모를 가진 연주 위에 에디 베더의 호소력 있는 보컬은 언제라 라이브 무대에서 이 곡을 베스트 파트 중 하나로 만든다. 2집 「Vs.」에서는 기타-베이스의 펑키함이 잘 살아있는 트랙들인 <Animal>과 <Rearviewmirror>가, 3집 「Vitalogy」에서는 그들의 싱글 중 가장 빈티지하고 개러지 록 느낌이 가득한 사운드를 보여준 <Spin The Black Circle>이, 그리고 지난 라이브 앨범의 발매 시점 직전에 나왔던「Yield」에서는 미디움 템포의 블루지 하드 록 트랙 <In Hiding>이 선곡되었다. 특히「The Singles」OST에 담긴 <State of Love and Trust>가 라이브 버전으로 수록된 것은 펄 잼의 골수팬들에게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2000년대 이후에 진행된 공연 실황들이 베이스가
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의 2000년대 앨범 수록곡들의 양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Binaural」에서는 에디의 보이스와 멤버들의 연주가 우수를 자아내는 펄 잼식 록 발라드(?) <Nothing As It Seems>가,「Riot Act」에서는 아메리칸 루츠-포크에 대한 밴드의 애정이 가득 담겼던 트랙인 <I Am Mine>이, 그리고 「Pearl Jam」앨범에서는 초기작들의 파워를 완벽하게 복원한 스피디한 곡 <World Wide Suicide>가 선곡되었기에 일단 각 앨범의 중요 트랙들은 모두 라이브로 감상하는 게 가능하다. 한편, 최근작답게「Backspacer」에서는 첫 싱글이었던 <The Fixer>와 두 번째 싱글이자 서정적인 어쿠스틱 포크 트랙 <Just Breathe>, 함께 A사이드에 수록되었던 스피디한 그런지 록 트랙 <Got Some>, 그리고 펄 잼 특유의 분위기를 가진 루츠 록 트랙 <Unthought Known>까지 4곡이 선택되었다. 

  라이브에서 항상 다른 아티스트들의 곡들을 커버하는 것 역시 펄 잼의 공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다. 커버의 소재는 자신들에게 어린 시절 영향을 주었던 밴드들의 곡에서 찾아왔고, 이번 라이브 앨범 속에는 조 스트러머(Joe Strummer: 펑크 록 밴드 클래쉬(The Clash)의 보컬/기타리스트)가 1990년대 말에 이끌었던 밴드 메스카렐로스(The Mescaleros)의 2003년 싱글 <Redemption Song>의 뒷면에 수록되었던 <Arms Aloft>가 오프닝 트랙으로 자리잡고 있다. 오리지널 버전이 조금 얌전한(?) 펑크-개러지 록이라면, 펄 잼의 버전은 훨씬 자신들의 색깔에 맞게 기타 파트를 강조하고 거친 드럼 터치로 그런지 시대의 분위기를 덧입혔다. 또 한 곡의 커버 송 역시 펑크 록의 아이콘이었던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의 리드보컬이었던 존 리든(John Lydon : 우리는 흔히 조니 로튼(Johnny Rotten)으로 그 이름을 기억한다)이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이끌었던 밴드인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ublic Image Ltd.)의 곡을 택했다. 그들의 데뷔 싱글이자 그룹 송인 <Public Image>이 선곡되었는데, 전형적인 고전 펑크 록에 해당하는 원곡을 더욱 경쾌한 펑크 에너지로 채워놓았다.



Pearl Jam - Arms Aloft (Live At Rock Werchter 2010)

  사실 펄 잼의 라이브 음원들은 앨범 버전과 확연히 다른 엄청난 즉흥 연주나 화려한 솔로의 향연 같은 것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스튜디오 녹음에서는 아무리 원 테이크로 거칠게 녹음해도 담기 힘든 탄탄한 연주력의 록 밴드가 보여주는 생동감이 잘 살아있다. 이번 새 라이브 앨범 역시 그들이 현장에서 보여준 활력과 에너지를 충실히 담아낸 결과물이라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블 앨범이 풍성함이 아님을, 기대했던 트랙이 빠져있음을 아쉬워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부분은 CD장에 잘 보관해 두었던 「Live on Two Legs」CD를 다시 꺼내어 함께 감상한다면 충분히 해소될 것이라 믿는다. 언젠가 그들이 처음으로 한국 땅에서 공연을 여는 그 날을 꿈꾸며, 이 앨범으로 비행기 표도 없이 펄 잼 공연장으로 날아 가보자.

2011. 1 글/ 김성환(Music Journalist - ‘핫트랙스 매거진’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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