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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i Hendrix - Winterland

Review 저장고/팝

by mikstipe 2011. 9. 3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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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소니뮤직에서 발매한 본 앨범의 해설지 원고입니다.

일렉트릭 기타 연주 역사의 혁신을 이뤄냈던 기타 히어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그의 밴드 익스피리언스(Experience)의 결성 2주년을 기념했던 3일간의 공연 실황,
드디어 완전한, 그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빛을 보는 기념비적 라이브, 「Winterland」

 

  서구 로큰롤의 역사는 적어도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물결이 몰려오기 전까지는 결국 일렉트릭 기타 연주 진화(?)의 역사와 어느 정도 맥을 같이 했다 말해도 그리 허튼 소리는 아닐 것 같다. 드럼과 베이스도 로큰롤의 강한 에너지를 표출하는 데 있어서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 록 밴드의 연주에서 보컬의 목소리를 제외한 악기 파트의 연주에서 가장 전면에 나서는 악기는 기타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보컬이 잠시 숨을 고를 동안 화려한 솔로 연주와 애드리브를 통해 전면에 설 때도 있을뿐더러, 때로는 다양한 스트로크로 베이스와 드럼 못지않게 곡의 리듬감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체로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들은 그 팀의 핵심 송라이팅 담당자로서 보컬리스트 못지않은 유명세와 인기를 끌어 모았고, 초기 로큰롤 시대부터 헤비 메탈이 주류에서 정점의 인기를 구가할 때까지 수많은 기타 히어로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록의 트렌드를 변화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렇다면 그 가운데 구세대와 신세대를 아울러 누구나 공감하는, 그리고 록 역사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최고의 록 기타리스트가 누구인가를 묻는다면 록 팬들의 대답은 어떠할까? 오랜 동안 록 음악을 청취해왔던 전 세계의 모든 리스너들이라면 평론가들이건 대중이건, 심지어 뮤지션들까지도 입을 모아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이름을 외칠 것이다. 예를 들어,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하드 록-헤비메틀 기타리스트들, 그리고 심지어 이탈리안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면 거의 대부분이 어린 시절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언급을 종종 보게 된다. 아마도 그렇게 대답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음악을 통해 보여주었던 그의 연주가 그 이전 시대의 기타 연주 스타일과 분명히 달랐고 신선했기에, 그래서 모두들 일종의 ‘음악적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그는 그 이전 시대까지의 일렉트릭 연주자들이 단순히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앰프로 확장했던 수준을 보여준 것에 비해 피드 백(feedback), 와와(wah-wah), 퍼즈(fuzz), 디스토션(Distortion) 등 당대에 새로 도입된 기타 페달과 앰프를 활용한 음향 효과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페달까지 제작하면서 타 기타리스트들과 분명히 다른 소리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 결과 그의 연주를 다양한 장르의 후배들이 받아들이면서 이후 1970년대의 록의 다양한 서브 장르로의 분화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특히 후대 블루스 록 뮤지션들과 펑키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록 장르 뮤지션들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심지어 재즈 록(Jazz Rock), R&B, 힙합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향이 뻗어있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을 보면, 왜 사후 40년이 넘도록 여전히 그를 록 팬들이 ‘영원한 기타 히어로’로 떠받드는 지 충분히 이해가 갈만 하다고 생각한다. 

27년 생애 동안 짧지만 기념비적인 음악 궤적을 남겼던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 여정 

  1942년생으로 워싱턴 주 시애틀(Seattle) 출신인 자니 앨런 헨드릭스(Johnny Allen Hendrix, 훗날 그의 아버지가 James Marshall로 그의 이름을 개명했다.)는 어린 시절부터 비비 킹(B.B. King),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하울린 울프(Howlin' Wolf),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 같은 블루스의 거장들의 음악들을 들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그의 감상 레퍼토리에는 그와 함께 당대에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던 버디 홀리(Buddy Holly)와 같은 로큰롤 뮤지션들의 음악에도 함께 심취했다. 어린 나이에도 기타를 치고 싶다는 생각에 침실을 청소할 때 쓰던 빗자루를 들고 기타를 치는 시늉을 하며 놀았던 그가 1958년 5달러짜리 중고 어쿠스틱 기타를 구했을 때의 기쁨은 하늘로 날아갈 듯한 것이었다. 그는 당장 기타 연주를 독학으로 마스터했고. 그의 첫 밴드인 벨베톤스(The Velvetones)를 결성했다. 몇 개월 후 아버지는 다시 그에게 수프로 오작(Supro Ozark) 1560S형 기타를 선물했고, 이 기타를 들고 그는 로킹 킹즈(The Rocking Kings)라는 새 밴드에 가입했다.  
  1961년 군복무를 위해 고향을 떠난 지미는 낙하산 부대에서 활약했고, 켄터키 주 포트 캠벨(Fort Cambell)의 군부대에서 복무하던 시절에 나중에 그의 두 번째 밴드인 밴드 오브 집시스(Band of Gypsys)에 합류하는 베이시스트 빌 콕스(Bill Cox)와 함께 킹 캐주얼즈(King Casuals)를 결성해 부대 내 클럽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낙하산 하강 때의 사고로 전역을 하게 된 그는 지미 제임스(Jimmy James)라는 예명으로 세션 기타리스트 활동을 하며 본격적 직업 뮤지션 활동을 개시했다. 그리고 1965년에는 아이크 앤 티나 터너(Ike & Tina Turner), 샘 쿡(Sam Cooke), 아이슬리 브라더스(Isley Brothers), 리틀 리차드(Little Richard) 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백 밴드에서 기타 연주자로 활약했다. 그러다 리틀 리차드의 밴드에서 나와 처음 그의 프로 밴드인 지미 제임스 앤 블루 프레임즈(Jimmy James and the Blue Flames)를 결성했고, 주로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클럽가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그런데, 지미에게 행운은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찾아왔다. 이미 영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었던 애니멀즈(Animals)의 베이시스트 채스 챈들러(Chas Chandler)가 그의 공연에 강한 인상을 받고서 1966년 9월에 그에게 런던으로 거처를 옮겨 새 밴드를 결성할 것을 제안한 것이었다. 그렇게 런던으로 건너 온 지미는 예명을 ‘Jimi’로 수정하고 드러머 미치 미첼(Mitch Mitchell), 베이시스트 노엘 리딩(Noel Redding)과 함께 우리가 현재 기억하고 있는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Jimi Hendrix Experience)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재빨리 런던의 클럽가에서 인기몰이에 성공했고, 1967년 초 데뷔 싱글 <Hey Joe>가 영국 차트 6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뒀다. 여기에 이어 발표한 정식 데뷔 앨범인 「Are You Experienced?」는 <Purple Haze>, <The Wind Cries Mary>, <Foxey Lady>, <Fire> 등 앨범의 전곡이 히트곡이 되는 대중의 찬사 속에서 당시 서서히 불어오던 사이키델릭 록의 대중적 인기를 앞당긴 앨범으로도 평가받았다.  
  타향에서의 큰 성공이후 그는 1967년 다시 미국에 금위환양하며 몬트레이 팝 페스티벌(Monterey International Pop Festival)에 참가해 트록스(Troggs)의 히트곡 <Wild Thing>을 그만의 방식으로 커버하는 무대로 단숨에 미국 록 팬들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1968년 발표된 2집 「Axis: Bold As Love」는 전작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스튜디오에서 보내며 작곡과 사운드에 투자한 작품으로 비록 공식 싱글은 <Up from the Skies>밖에 내놓지 않았지만, 오히려 앨범 속에 수록된 <Spanish Castle Magic>과 <Little Wing>은 지금도 그를 대표하는 명곡으로 록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후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들의 상업적 성과를 바탕으로 지미는 자신만의 스튜디오를 만드는 계획을 실천에 옮겼고, 그것이 바로 3집의 제목으로도 사용된 「Electric Ladyland」스튜디오였다. 뉴욕에 만들어진 이 스튜디오에서 그는 다시 스튜디오 안에서 새로운 곡들의 작업에 몰두했고, 그 결과 <Crosstown Traffic>, <Voodoo Chile>, 밥 딜런(Bob Dylan)의 커버인 <All Along the Watchtower>, <Voodoo Child (Slight Return)> 등의 명곡들을 낳으며「Electric Ladyland」는 현재도 그의 아티스트로서의 최고의 노력이 담긴 걸작으로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 앨범을 끝으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노엘 리딩의 탈퇴로 인해 결국 해체하고 말았다. 원래 기타리스트였으나 지미와 함께 하면서 베이스를 잡았던 노엘은 밴드 활동이 이어질수록 더욱 기타 파트에 대한 미련이 강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69년 지미는 이제는 전설로 기억되는 우드스톡 페스티벌(The Woodstock Music & Art Fair)에 집시 선 앤 레인보우즈(Gypsy Sun & Rainbows)라는 임시 밴드를 결성해 참가했다. (이 라이브 무대에서 그가 연주한 미국 국가 ‘The Star Spangled Banner’는 이 페스티벌 실황 앨범 전체의 하이라이트와 같은 구실을 했다.) 그리고 그 해 겨울에는 옛 전우 빌리 콕스와 일렉트릭 플랙(Electric Flag)의 드러머였던 버디 마일즈(Buddy Miles)와 함께 새 트리오 밴드 오브 집시스로 1969년 12월 31일, 그리고 1970년 1월 1일로 이어지는 송년(?) 공연을 뉴욕 필모어 이스트(Fillmore East)에서 가졌다. 이 실황의 음원들을 바탕으로 발표된 앨범이 실질적 그의 생전 마지막 발표 앨범으로 기록되는 「Band of Gypsys」(1970)였다. 이후 그는 빌리와 미치와 함께 익스피리언스를 재건하고 새 음반을 녹음하기 위해 스튜디오 세션을 계속 해나갔지만, 이 작업들은 불행히도 당시에는 잦은 해외 투어로 인해서 자꾸 완성이 지연되었다.  
  그러던 1970년 9월 18일, 그는 런던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부검 결과 수면제 과다복용과 구토로 인한 질식사로 판명되었지만, 여전히 그가 왜 수면제를 그렇게 한꺼번에 복용해야 했는가에 대한 이유는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여성인 모니카 데네만(Monika Dannemann)에서 사망 전날 그가 수면제를 몇 알 가져갔다는 증언이 전부였다. 지난 2009년에는 지미의 매니저였고, 지미의 사망 이후 2년 뒤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마이크 제프리(Mike Jeffery)가 지미가 그와의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말에 강제로 그 수면제를 와인과 함께 먹여 살해했다는 고백을 생전에 자신에게 했다고 애니멀스의 로디였던 제임스 라이트(James "Tappy" Wright)가 자신의 저서에서 밝혔지만, 이미 당사자들이 모두 고인(故人)인 상황에서 그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최고 실황 연주로 평가받는 1968년 실황의 완전한 복원, 
그리고 그 음원의 하이라이트를 알차게 담아낸 1CD 라이브 앨범 「Winterland」 

 
지미 헨드릭스가 세상을 떠난 이후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그가 생전에 가졌던 수많은 연주 실황이나 미발표곡들은 꾸준히 공개되었지만, 당시에는 유족들의 의지보다는 음원을 소유한 음반사들의 이해관계가 더 많이 작용했었다. 다행히 1990년대 중반에 유족들이 그의 모든 음원에 대한 권리를 되찾고 설립한 Experience Hendrix LLC가 MCA레이블과 배급 계약을 맺고서 오리지널 정규 스튜디오 앨범 3장의 확장판과 함께 사망 전 그가 제작하고 있었던 미발표작 「First Rays of the New Rising Sun」(1997)을 완성해 내놓으며 공식적인 그의 카탈로그 정리 작업은 본격화 되었다.  
  그리고 지난 2009년 유족들이 소니뮤직과 새로운 배급 계약을 맺은 후부터 현재까지 총 4차례에 걸쳐서 ‘지미 헨드릭스 카탈로그 프로젝트(Jimi Hendrix Catalogue Project)는 진행되고 있다. 1차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3장의 정규 앨범 스페셜 확장 버전과 여러 사후 앨범에 발표되었거나 미공개 되었던 스튜디오 레코딩만을 모은 두 번째 사후 스튜디오 앨범 「Valleys of Neptune」이 함께 공개되었고, 2차로 2010년에는 1970년대 이후 공개되었던 라이브 앨범들인「BBC Session」과 「Live At Woodstock」의 완전한 풀버전, 그리고 블루스 컴필레이션 「Jimi Hendrix: Blues」, 희귀 크리스마스 EP였던 「Merry Christmas & A Happy New Year」, 그리고 미발표 트랙들이 몇 곡 포함된 새 박스 세트 「West Coast Seattle Boy」를 내놓았다. 뒤이어 3차분으로 올해 초 2004년 한 번 발표된 바가 있는 그의 트리뷰트 앨범 「Power Of Soul: A Tribute to Jimi Hendrix」의 스페셜 에디션, 그리고 그의 사망 직전 녹음했던 미완성 데모들과 음반에 실리지 못했던 얼터너티브 테이크 등이 들어간 「South Saturn Delta」, 그리고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Fire>의 CD 싱글 버전,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던 필모어 이스트 실황 전체를 기록한 DVD 「Band of Gypsys : Live At Fillmore」가 발매되었다.    
  지금 여러분의 손에 있는 이 음반은 바로 그 네 번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1년 9월 새롭게 발매되는 라이브 앨범으로, 1968년 10월 10일부터 12일까지 총 6회에 걸쳐 가졌던 샌프랜시스코 윈터랜드 볼룸(Winterland Ballroom)에서의 실황의 하이라이트을 담고 있다. 사실 이 음원은 1987년에 해외에선 라이코디스크(Rycodisc) 레이블을 통해 「Live At Winterland」라는 2LP-1CD형태의 음반으로 일부 음원이 발표된 적이 있긴 하다. (현재 이 버전은 오래전에 절판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되는 「Winterland」는 그 때와는 분명히 차원이 다르다. 바로 이 3일간의 공연을 기록해놓은 음원 전체를 음반으로 최초 공개하는 것이 엄밀히 말해서 ‘궁극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이 한 장의 CD로 그 음원을 다 감상할 수는 없지만, 이 1CD 하이라이트 버전의 공개와 함께 4장의 CD형태의 박스 세트, 그리고 8LP+ 1CD형태의 LP버전 박스 세트까지 총 3종으로 공개되는 것이다. (나머지 버전들은 국내에 아마 수입 음반으로라도 판매 될 것 같다.) 
   그래서 총 11곡이 담겨 있는 이 1CD 하이라이트 앨범의 수록곡 순서는 1987년에 발매된 버전과는 트랙리스트가 완전히 다르게 짜여졌다고 보는 것이 현명하다. 일단 첫 날인 8월 10일 1회 공연에서는 데뷔 앨범의 타이틀 트랙이자 사이키델릭적 느낌의 인트로 파트에 이어 끈끈한 블루지한 기타 톤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Are You Experienced?>와 특유의 반복적 연주로 시작하는 인트로와 블루지 하드 록 기타 연주의 표본이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Voodoo Child (Slight Return)>이 선곡되었고, 같은 날 2회 공연에서는 서로 존경하고 친구로 여겼던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결성했던 트리오 크림(Cream)의 대표곡을 커버하면서 중반부의 솔로잉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자유롭게 풀어헤쳐버린 <Sunshine of Your Love>와 생전에 라이브 무대에서는 종종 연주되었지만 사망 전까지는 한 번도 스튜디오 버전을 공개하지 못했던 진정한 지미 헨드릭스표 블루스 트랙인 <Hear My Train A Comin'>이 11분 44초의 긴 편곡으로 선곡되었다. 그리고 둘째 날인 8월 11일 공연에서는 2회 공연에서만 데뷔 앨범의 대표곡들인 <Hey Joe>와 <Purple Haze>를 밴드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컨디션이 발휘된 연주가 녹음된 트랙들로 선곡되었다.  
   한편, 셋째 날인 8월 12일 공연에서는 공연의 오프닝이기에 멤버들을 소개하고 바로 신나게 휘몰아치는 연주로 이어지면서 세 멤버의 환상적인 연주 궁합이 듣는 이를 사로잡는 <Fire>와 「Are You Experienced?」앨범 수록곡으로 그의 음악에 대한 광적인 열정과 집착이 가사와 기타 솔로로 표현되었던 <Manic Depression>, 그리고 밥 딜런의 대표적 포크 록 명곡을 블루지 발라드 버전으로, 그것도 10분 45초라는 대곡으로 변화시킨 <Like A Rolling Stone>이 선곡되었으며, 같은 날 2회 공연에서는 들을 때마다 그의 우수에 찬 보컬과 슬픔을 가득 먹은 긴 블루스 솔로잉이 가슴을 울려대는 명곡 <Little Wing>과 그의 모든 곡들 가운데 어쩌면 가장 끈끈하고 에로틱한 감성을 뿜어내는 트랙인 <Foxy Lady>가 선곡되었다.  
   지미 헨드릭스는 로큰롤의 역사에서 또 하나의 형식미의 다양화, 그리고 혁신적 변화를 가져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테크니션이기도 하지만, 그 음악이 대중에게 감동을 준 것은 어쩌면 그가 치밀하게 계산된 사운드 이펙트와 화려한 손놀림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닐 지도 모른다. 대중은 그가 기타 연주를 통해 뿜어내는 삶과 음악에 대한 애환과 열정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그 감흥은 라이브 무대에서 극대화 되었기에, 이번에 공개되는 이 실황 앨범 「Winterland」는 이미 그를 보낸 지 40년이 지난 후에도 그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2011. 9. 글/ 김성환(Music Journalist - 핫트랙스 매거진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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