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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 - [꿈을 꾼 후에/이별 - 여진의 노래 모음 제1집]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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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stipe 2020. 12. 1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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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MRC에서 2020년 12월 발매한 여진의 정규 1집 재발매 LP를 위해 작성한 해설지입니다. 8월에 보낸 원고의 음반이 이제야 선을 보였다는데.... 벌써 1차 제작반(530매 넘버링)은 순식간에 매진되어 2차 제작을 고려중이라고 합니다. 

시대를 넘어 사랑받은 히트곡 <그리움만 쌓이네>를 통해 다시 주목받은 여성 싱어송라이터, 
여진의 데뷔작 [꿈을 꾼 후에/이별 - 여진의 노래 모음 제1집] (1979)

여진 1집 앞면 커버

  한국 대중가요 역사에서 여성 음악인들 가운데 다른 작곡가들의 곡을 받아 노래한 보컬리스트로서의 영역을 넘어 스스로 작사-작곡까지 담당하면서 ‘싱어송라이터’의 능력을 보여준 이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부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혼성 듀엣 ‘뚜아에무아’ 출신으로 <모닥불> 등의 곡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박인희, 1972년에 창작곡으로만 꾸민 독집 앨범을 내놓았으나 유신정권의 탄압 속에서 음반이 모두 폐기당했던 비운을 겪은 <불나무>의 주인공 방의경 등이 그 대표주자였다. 그 외에도 양희은의 대표곡 <세노야>를 작곡했고 <나 돌아가리라>를 직접 만들고 불렀던 김광희, <기다리는 아이> 등으로 자작곡을 쓰기 시작해 훗날 <목로주점>이라는 대표곡을 남기는 이연실 등도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적극적 창작 활동을 펼쳤던 여성 뮤지션들이었다. 

  이후 1970년대 후반에도 주목할 만한 2명의 대학생 출신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등장했다.  그 가운데 MBC 대학가요제를 통해 화려하게 등장했고, 이후 입상의 결과로 스플릿 앨범 형태의 데뷔작을 발표했다가 10.26 사건의 여파로 인해 힘든 시기를 겪었던 심수봉은 그래도 빠르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중에게 각인된 편이었다. 한편, 같은 해인 1979년에 데뷔했음에도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노래만 알려지고 무대에 선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던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바로 이 음반의 주인공인 여진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녀가 음악계를 떠나 있었던 시기에도 그녀가 만든 몇몇 노래들은 대중의 입과 귀를 통해서 계속 인기를 얻었고, 1990년대 중반 노영심이 커버한 <그리움만 쌓이네>의 대히트는 그 흐름의 절정을 보여주며 원작자인 그녀의 가치를 재조명했다. 이렇게 시대를 넘어 대중에게 꾸준히 소환되었기에 우리는 발매 후 40년이 넘은 이 음반을 다시금 오리지널 디자인을 복원한 재발매 LP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고생 싱어송라이터로 출발, 음반 한 장만을 남기고 가요계를 떠나다

  본명이 남궁은영인 여진은 가수로 정식 데뷔하기 이전부터 이미 여성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재능을 선보였다. 그녀는 이화여고 2학년이었던 1973년,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개최한 노래 콘테스트에 3곡의 자작곡을 응모했고, 이 노래들이 모두 입상하면서 당시 개그맨 고영수가 진행하던 이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도 했다. 당시 이 방송을 들었던 관계자들은 트로트나 당시의 포크 분위기와 다른 팝적인 분위기의 곡을 쓰고 직접 노래할 수 있는 그녀의 능력에 주목했다. 

  그러나 그녀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기 위해 서울대 성악과에 진학했다. 대중음악과는 거리를 둔 진로였지만, 그녀는 대학 시절에도 틈틈이 노래를 작곡하여 그 노래들이 앨범 한 장을 만들어도 될 만큼 쌓였다. 바로 그때, 그녀의 방송 출연 모습을 기억하고 있던 MBC의 한 PD가 그녀에게 음반을 내 볼 것을 제의했다. 당시 졸업 후 음악 교사 교직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던 여진은 기념 음반 차원에서 가요 음반을 내는 것도 괜찮을 것으로 판단하고 응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완성된 음반이 바로 1979년 8월 20일 발매된 이 앨범, [꿈을 꾼 후에/이별 -여진의 노래 모음 제 1집]이었다. 그러나 음반 발매 후 3일 뒤에 그녀는 중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고, 제작자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가수 활동을 포기했다. 

  이후 그녀는 교직에 16년간 전념했다. 그러나 교사로 근무하는 시간 동안에도 그녀는 종종 새로운 곡들을 만들어두었으며, 1987년에는 그녀가 아직도 가수의 꿈을 버리지 않았음을 알고 있던 한 친구의 권유에 힘입어 신곡과 기존 히트곡을 포함한 두 번째 음반 [여진2](1987, 한국음반)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앨범 역시 방송 활동이나 공연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결국 조용히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이후 그녀는 1988년과 1990년 발표된 유익종의 솔로 앨범들에 자신의 곡들을 제공하는 등 본업에 있으면서도 작곡 활동은 꾸준히 이어갔다. 

  그러던 1990년대 중반, 둘째 아이를 출산하고 학교에 사직서를 냈던 시점에, 노영심이 다시 부른 곡 <그리움만 쌓이네>가 전국적 히트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 곡의 히트로 대중이 다시 여진의 원곡에 관심을 두고 미디어에서도 주목하게 된 후, 여진은 조금씩 노래를 부르러 세상에 다시 나가게 되었다. 1996년 권진원의 콘서트에 게스트로 선 것으로 공식 무대 활동을 재개했고, 이은미의 4집 음반 속에서 <기억 될거야>라는 곡에 듀엣으로 참여하면서 보다 그녀의 활동 범위는 넓어졌다. 그 결과 2000년에는 3집 [여진03]을 공개하면서 <이별할 수 없는 이유>를 포함해 그간 꾸준히 작곡해 두었던 11곡의 새 노래를 음반에 담았다. 더 세련되고 정갈한 어덜트 컨템포러리 팝 사운드를 담은 작품이었다. 2000년대에도 그녀는 노사연, 계은숙 등에게 곡을 제공했고, 2009년에는 자신의 음악적 커리어의 대표곡들을 재녹음하고 신곡 <사랑에게>와 <강변연가>를 담았던 셀프 타이틀 베스트 앨범을 공개했다.   

트로트, 포크와 차별화된 가창력과 훌륭한 악곡들을 담아낸 여진의 데뷔작

  비록 앨범 발매 직후 아무런 가수로서의 활동을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여진의 데뷔 앨범은 당시 관계자들과 대중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방송과 다운타운 DJ들에 의해 앨범의 여러 곡들이 소개되면서 이후 대중은 이 ‘얼굴을 볼 수 없는 가수’의 노래들을 꾸준히 리퀘스트했다. 그래서인지 1979년 초반 LP(성음 발매)의 출시 이후 1985년(서라벌 레코드)에서 재반이 발매되기도 할 만큼 일종의 ‘조용한 스테디 셀러’가 되었다. 

  여진은 데뷔 앨범에 수록된 총 11곡 중 <이별>(김중순 작사, 작곡)을 제외한 전곡을 작사, 작곡하며 싱어-송라이터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포크 계열의 일부 가수를 제하면 여성 가수가 자기 앨범을 자작곡으로 채운 경우는 매우 드물다. 트로트와 디스코 댄스 풍이 주류였던 대중가요계에서 여진은 스탠더드 팝을 지향하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녀가 쓴 곡은 성악과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사람답게 기존 대중가요의 트로트 멜로디와 분명한 거리가 있었고, 전형적인 1970년대 포크 가요와도 달랐다. 오히려 베이스와 드럼의 리듬감을 적절히 가미한 서구식 소프트 팝/록 사운드를 음반에 담아냈다. 1970년대 캄보 밴드와 오르간 세션 등을 하던 뮤지션이자, 1980년 혼성 밴드 ‘이종식과 사랑의 샘’의 리더였던 이종식이 앨범 전체 편곡을 맡은 것도 이러한 앨범 사운드의 방향에 한몫했다. 힘과 울림이 있는 여진의 보컬은 특정 장르의 창법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애상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해냈다. 

  이 앨범의 대표곡은 단연 <꿈을 꾼 후에>와 <그리움만 쌓이네>라 할 수 있다. <꿈을 꾼 후에>는 앨범 발표 직후부터 대중에게 사랑받은 첫 히트곡이다. 비록 당대에 TV나 공연으로 공식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과 다운타운 DJ들이 계속해서 그녀의 곡을 선곡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는 이정봉, 적우 등이 자신의 앨범에 이 곡을 커버했다. 한편, <그리움만 쌓이네>는 1995년 피아노 연주자이자 변진섭의 <희망사항> 등을 작곡한 노영심이 자신의 2집 앨범에 이 곡을 커버하면서 재조명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가 선물해준 녹음테이프를 듣고 이 곡에 반한 노영심은 오랫동안 여진의 행방을 수소문해 사용 허락을 받아냈다. 노영심 버전이 인기를 얻으면서 대중과 언론은 원작자 여진도 다시 주목했다. 이 곡은 지금도 각종 음악 예능 프로그램과 라디오에서 지속적으로 다시 불리고 있다. 

  이 두 곡 외에도 슬픈 멜로디로 진행되다 각 절의 마무리에서 갑자기 밝은 멜로디로 전환되는 독특한 구성을 보여주는 <목련꽃>, 밝고 경쾌한 리듬감과 역동적 베이스 라인을 가진 악곡이 후반부에서 3박자 왈츠 리듬으로 변하는데도 그 흐름에 뒤지지 않고 곡을 주도하는 보컬이 매력적인 <그대를 못잊어>, 서구 팝 발라드에 영향받은 80년대 이후 가요들이 전혀 부럽지 않는 파워 발라드 <나를 사랑해줘요>와 <사랑의 기쁨>, 노래 제목처럼 전통적인 정서를 담은 보컬과 리듬을 구사하는 포크 팝 <뱃노래>, 앨범에서 가장 경쾌한 멜로디와 가창을 보여주는 <첫 사랑의 꿈>, 입체적 편곡을 통해 수려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팝 발라드 <바람따라 구름따라>까지 앨범 전체가 지금 들어도 편곡과 레코딩, 보컬 모든 면에서 당시로서는 매우 고급스러운 완성도를 가진 결과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이 앨범은 초반과 재반 LP는 물론 1995년과 2005년에 CD 포맷으로 재발매된 버전들까지도 음악 팬들의 성원 속에 지금은 모두 품절상태가 되었다. 그렇기에 2020년 드디어 LP 포맷으로는 최초로 재발매되는 이 앨범의 재발매는 한국 대중음악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역사에서 선구적 존재로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여준 여진의 아티스트로서의 매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2020.08 글/ 김성환(Music Journalist)

1집 전곡 듣기 플레이리스트 (이건 LP추출 음원같습니다.) 

youtube.com/playlist?list=PLmHtCQv5oXZfWW2cKPmfk6QDs_bLY1ik4

 

여진1집

 

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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