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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ie Lennox - Bare (03)

Review 저장고/팝

by mikstipe 2006. 4. 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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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스믹스(Eurythmics) 출신의 영국의 베테랑 팝 디바,
애니 레녹스(Annie Lennox)의 솔직한 자아를 담은 세 번째 솔로 앨범 「Bare」

80년대 영국 신스 팝이 낳은 최고의 디바, 애니 레녹스의 음악적 발자취
  80년대에 청소년기와 청춘을 보냈던 전 세계 팝 음악팬들에게 애니 레녹스(Annie Lennox)라는 보컬리스트는 처음에는 그녀가 속했던 듀오 유리스믹스(Eurythmics)의 <Sweet Dreams>라는 곡의 뮤직 비디오(와 그들의 공연 모습)를 통해 비춰진 독특했던 헤어스타일과 의상(짧은 스포츠 머리와 남성 정장 차림)으로 강렬한 첫 인상을 남겼다. 그것은 당시 여장 남성의 대표적 인물로 부각되었던 보이 조지(Boy George)와 정 반대의 이미지를 창출했으며, 초창기 앨범(「Sweet Dreams」(83),「Touch」(84))에서 보여준 기계적이고 차가운 듯한 신시사이저 팝 사운드는 그 패션과 함께 팬들에게 어필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었다.
  그러나 팬들은 그 후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만이 애니와 유리스믹스를 규정하는 전부가 아니었음을 그들의 음악을 통해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애니와 현재까지 그녀의 커리어에서 최고의 음악적 동반자였던 데이브 스튜어트(Dave Stewart), 이 두 사람은 보컬리스트와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을 철저히 분담하면서도 공동 작곡 체제를 통해 서로의 개성을 조율했다. 그 결과 이들의 음악은 80년대 초창기 남성 신스 팝 듀오들이 들려준 차갑고 건조한 음악들과 달리 더욱 소울풀하고 팝적인 요소가 강화되었다. 결국 중-후기 앨범들(「Be Yourself Tonight」(85), 「Revenge」(86) 등)로 갈수록 대중에게 따뜻함을 주는 신스 팝-소울 사운드로 변화되어 갔고, 특히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그녀의 보컬의 역량은 더욱 빛을 발했다. 마치 흑인 소울 보컬을 연상케 하는 풍부한 성량을 바탕으로 고유의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저음부터 어린 시절 받은 클래식 교육(그녀는 대중 음악계에 투신하기 전에 왕립음악 학교 재학생이었다.)속에서 터득한 성악적 느낌의 하이 톤을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보컬 테크닉은 분명 듀오의 색깔을 규정하는 데 절반 이상의 몫을 차지했던 그녀만의 개성이었다. 
  이와 같이 유리스믹스의 일원으로 구축한 이미지가 그녀의 80년대를 채우고 있다면 89년작「We Too Are One」이후 서로의 사생활로 잠정적 해체기를 가졌던 90년대 이후의 애니 레녹스는 이전 시대에 보여준 중성적 이미지의 잔재를 청산(?)하고 더 '여성적인(feminine)'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90년대 동안 발표했던 두 장의 솔로 앨범(「Diva」(92), 「Medusa」(95))을 통해 그녀는 자신이 80년대까지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여성성을 음악 속에서 강조하기 시작했다. 특히 1집의 첫 싱글 <Why>의 뮤직비디오(와 앨범 자켓)에서 그녀가 화장대 앞에서 화려하게 자신을 꾸미는 디바의 모습으로 분한 것은 어쩌면 그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이벤트였다. 그리고 중년 여성으로서 본 세상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가사와 예전보다 더 유연하고 대중적이며 어쿠스틱 사운드를 살린 편곡과 작곡을 통해 굳이 유리스믹스의 이름에 의지하지 않고도 90년대 여성 팝 보컬리스트로서의 자리를 확고하게 하는 성공을 거둔다.
  특히, 국내 팬들에게 조용히 인기를 얻었던 2집「Medusa」의 경우는 전곡이 남성 아티스트들의 리메이크 곡들로 꾸며져 있는데, <A Whiter Shade Of Pale>
(Procol Harum이 원작), <No More I Love You's>(The Lover Speaks가 원작) 등의 곡들을 통해 그녀가 남성적인 곡들을 얼마나 여성적으로 소화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99년에 발표된 유리스믹스의 재결합 앨범「Peace」에서까지 그러한 변화는 그대로 투영되어 <I Saved The World Today>와 같이 더욱 따뜻한 서정이 담긴 유리스믹스의 음악들을 팬들은 기쁘게 들을 수 있었다.

연륜과 함께 성숙해 가는 그녀의 가식 없는 모습이 담긴 새 앨범 「Bare」
  데이브와 함께 유리스믹스의 'Peace Tour'를 강행군으로 펼친 그녀는 투어에 의한 허리 질환으로 한동안 휴식을 취해야 했고 한편으로는 지난 2000년 이스라엘 출신 영화감독 유리 프룩트만(Uri Fruchtmann)과의 12년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혼자서 자녀들을 돌보며 공연을 제외한 상당한 시간을 사색과 곡을 쓰는 일로 보냈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자신이 느꼈던 복잡하고 미묘했던 감정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노래들이 하나씩 완성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첫 솔로 앨범「Diva」이후 10년만에 자신이 작사, 작곡을 모두 담당한 11곡의 신선한 트랙들이 담긴 앨범 「Bare」가 마침내 우리 앞에 놓여지게 되었다. 사실 본 앨범은 음악들의 형식 그 자체로만 분석하자면 (특히 90년대 이후 그녀의 이전 솔로 음반들을 기억하는 팬들의 입장에선) 급진적인 스타일의 변화 같은 것은 발견하기 어렵다. 그녀의 수려한 보컬과 소울(Soul)과 포크(Folk)에 기반을 둔 대중적이며 서정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팝 사운드의 기조는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창백하고 '헐벗은(Bare)' - 앨범 제목을 상징하는 듯한 - 그녀의 이미지 사진이 담긴 앨범 자켓과 부합하는 듯한 첫 트랙 <1000 Beautiful Things>부터 앨범의 분위기는 왠지 이전 두 장보다 훨씬 듣는 이의 감성적인 면을 자극한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당신 주변의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감사하라'는 그녀의 메시지는 서정적인 피아노 터치와 섬세한 편곡으로 그녀가 최근 겪은 삶의 굴곡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자연스럽게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녀가 겪은 아픔들은 앨범 수록곡의 대부분에서 가사와 선율에 잘 표현되고 있다. <The Hurting Time>은 부드럽게 배경을 채우는 신시사이저와 키보드 연주가 인간 관계의 종결에서 오는 아픔을 그린 노랫말과 완벽하게 일치된 애상(哀想)을 전하며, 잔잔한 기타 아르페지오로 시작해서 메인 보컬과 오버 더빙된 코러스가 혼합되는 <Honestly>는 과도한 생각에서 오는 혼돈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도 느껴지는 공허함을 신시사이저의 현란한 효과음과 강한 기타 스트로크로 표현한 <Loneliness>, 그녀의 보컬이 곡 전체를 휘감는 <The Saddest Song>에도 이러한 정서는 연장되어 있다.
  물론 과거 유리스믹스 시절이 연상되는 트랙인 <Pavement Cracks>나 가스펠 분위기의 후렴구가 인상적인 <Wonderful>, 리듬감 넘치는 비트가 흥겨운 <Bitter Pill>처럼 조금 밝게 파워를 입힌 곡들도 있지만, 그것도 전체적 정서를 넘어서지 않기에 앨범의 색채를 통일시켜준다. 하지만 그러한 정서가 단지 좌절의 메시지가 아니라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자전적 고백들이기에 이 앨범이 주는 서정적인 힘은 그 동안 그녀의 어느 작품들보다 막강하다.  
  90년대 이후 꾸준히 자신의 여성스러움을 강조해오긴 했지만, 그녀는 이번 앨범을 통해 일정부분의 자기 포장도 없이 중년 여성으로서 겪은 아픔과 깨달음을 숨김없이 드러낼 줄 아는 성숙한 자아를 우리에게 마치 자신의 일기를 공개하듯 펼쳐놓았다. 그래서 본 앨범은 그녀 자신에게나 그녀의 음악과 함께 20년을 함께 나이를 먹어온 팬들 모두에게 만족스런 작품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녀 자신에게는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음악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는 보다 진실한 내공을 터득했다는 결과물로서, 그리고 그녀의 오랜 팬들과 (90년대 이후솔로활동을 통해 발생한 신세대 팬들에게는) 마치 고향과 같은 아늑함과 친근한 누이의 목소리와 같은 편안함을 주는 선물로서......                              
                                      

2003. 5. 글 / 김성환(80s Pop Music Journ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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