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브릿 팝 매니아들에게는 조금 부끄러운(?) 고백이 될 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오아시스(Oasis)의 음악을「Definitely Maybe」(1994)를 통해 처음 접하지 못했던 불행한(!) 기억을 갖고 있다. 결국 싱글 <Wonderwall>이 빌보드 차트에서 히트를 치고 나서야 2집「(What's The Story) Morning Glory」(1995)를 통해 그들을 제대로 처음 접했는데, 그렇게 아직 당시 영국에서 '뜨고 있었던' 브릿 팝의 기초조차 제대로 습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들었음에도 너무나 '비틀즈같은(Beatle-like)' 그 곡조와 멜로디 때문에 금방 앨범과 친숙해졌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Roll With It>, <Don't Look Back In Anger> 등을 듣고 비틀즈의 곡들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했으리라. (아니면 비틀즈를 전혀 모르던가.)
이런 그들의 음악적 특성이 오아시스라는 밴드를 오늘날 스타덤에 오르게 만들어 준 원동력이 된 게 분명하지만, 반면 항상 그들에게는 따갑게 되돌아오는 부메랑이 되기도 했다는 것은 그들을 어느 정도 아는 음악 팬들이라면 대체로 알고 있을 것이다. 항상 자기들이 세상에서 가장 최고의 음악가인양 떠벌이기 좋아했던 리암(Liam)과 노엘(Noel), 바로 갤러거(Gallagher) 형제들의 거만함(?)에 대한 뭇사람들의 비판보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의식했던 부분은 바로 그 점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3집「Be Here Now」(1996)까지는 (비록 스케일을 크게 가져간 곡들도 있었지만) 그들 스스로도 즐겨오던 '비틀즈의 향기'를 4집「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로 와서는 조금씩 걷어내려는 의도를 내비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오히려 서서히 그들 앨범의 상업적 판매고를 깎아 내리는 데 일조했고, 매 앨범마다 좋은 트랙들이 2-3곡 정도는 있었음에도 전체적으로 1, 2, 3집이 좋아서 오아시스에게 빠졌던 음악 팬들에게는 어딘가 부족한 느낌을 준 것도 사실이다. 결국 그들의 팬들은 5집「Heathen Chemistry」(2002), 6집「Don't Believe The Truth」(2005)가 나올 때마다 '2집의 부활'을 꿈꾸며 발매 전부터 설왕설래를 벌여주었으나, 그들의 행보가 어딘가 '오아시스 답지 않다'라는 판단을 내리며 서서히 지쳐갔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편에서는 '진보하기보다는 자신들의 틀 속에 갖혀있다'는 비판도 여전히 흘러나왔으니, 밴드 입장에서는 양쪽으로 '카운터 펀치'를 맞는 기분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갤러거 형제들이 그런 세인들의 입방아에 언제 흔들리기나 할 인물들이었던가. 예전에 그들은 5집을 발표하면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오아시스의 음악은 발전이 없다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진보를 원한다면 가서 라디오헤드나 들어라. 허나 진정한 삶의 호흡을 느끼고 싶다면 우리의 쇼를 봐라. 우리는 스스로를 믿는다. 1994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듯 우리는 절대로 사기꾼들이 아니다.” 맞다. 그들은 적어도 '사기꾼'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만큼 자신들이 모색해야할 또 다른 음악적 발전 방향에 대해 그들은 비교적 오랜 시간동안 '앨범'이라는 실험을 통해 고민을 해왔다. 이를 통해 비틀즈 풍의 멜로디 라인에 의지하지 않고도 그들이 록 역사에 길이 남을 데뷔작「Definitely Maybe」에서 패기있게 표현해냈던 그 영국식 고전 로큰롤의 현대화의 매력을 다른 방식으로 구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그들의 의도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는 최초의 음반이 이제 우리들 앞에 선을 보였다. 바로 3년만에 발표하는 신보「Dig Out Your Soul」이 그 결과물인 것이다.
진정한 활기를 되찾은, 그럼에도 스스로의 과거에 거의 기대지 않은 새 앨범
만약 앨범을 손에 넣고 처음 플레이어에 CD를 걸고 재생 버튼을 누른다면, 첫 곡 <Bag It Up>의 활기찬 전주를 접하면서 "오, 이 친구들 오랜만에 원기 회복 좀 했네?"라는 생각을 할 확률이 99.9%임을 확신한다. 곡 구성에 특별한 허세를 부린 흔적이 이 노래에는 전혀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능숙하고 세련되게 들린다. 결국 그들이 초기부터 추구하고자 하
는 방향성에 전혀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이제 굳이 비틀즈의 멜로디가 금방 떠오를 일은 없게 적절히 자신들을 조절하는 능력을 이제 터득한 것 같다.
두 번째 트랙인 <The Turning>으로 넘어가면 곡의 1절만 들어도 분명히 이들의 '브리티쉬 록의 적자'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주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들을 수록 그들이 펼치는 세심한 곡 전개의 매력에 빠지게 하는 강한 흡입력을 선사한다. 게다가 거침없이 반복하는 리드미컬한 드럼 비트와 건반 연주가 이들의 초기의 앨범에서 이렇게 물흐르듯 조화를 이뤘던 것 같은 기억은 별로 없었으니, 또 한 단계의 성숙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Oasis - The Turning (Alternative Version.)
사실 유일하게 이번 앨범을 감상하면서 떠오른 유일한 비틀즈의 곡이 있다면 바로「Abbey Road」앨범에 담겨 있었던 명곡 <Come Together>였다. 그런 연상을 갖게 만든 곡들이 바로 <Waiting For The Rapture>와 <(Get Off Your) High Horse Lady>일텐데, 언급한 비틀즈의 곡이 엄밀히 말하면 정통적인 그들의 작곡 스타일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본다면, 이것 역시도 비틀즈와 굳이 관련지을 필요는 없다. 다만 '60년대 스타일'이라고 보면 될 뿐이지 않은가. 밴드의 초기 사운드가 기타에 상당히 의존한 감이 있었다면, 이런 곡들은 (이번 앨범의 전반적 성향이지만) 리듬 파트에 더 공을 들여주고 있다.
그리고 문제의 트랙이자 첫 싱글인 <The Shock Of The Lightning>을 들어보자. 기존에 (그들 음악의 평균적 빠르기에 비하면) 바쁘게 '달려주는' 곡들에서 질주감은 살아있으면서도 좀 더 세련된 파워를 갖고 있다. (2집을 갖고 있다면 한번 <Roll With It>과 비교해 들어보라.) 노엘 스스로도 '작곡하자마자 즉각 녹음 작업만 거친, 데모 곡 정도의 절차만 거친 곡'이란 표현에 적합하게 에너지가 넘치지만, 이런 방식으로 녹음으로도 원숙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이들의 노련함이 얼마만큼 축적되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다.
또한 캐번 클럽(Cavern Club)보다는 60년대 후반 사이키델릭 클럽에 빚을 진듯한 (세컨 기타리스트 젬(Gem)의 아이디어가 빛나는) <To Be Where There's Life>와 베이스, 건반을 담당하는 앤디 벨(Andy Bell)이 작곡한 하드 블루스의 감성을 가득 먹은 브릿 팝 <The Nature Of Reality>에서는 이제 갤러거 형제들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의 작곡 능력에서도 멋진 아이디어가 넘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I'm Outta Time>과 같은 발라드에서는 콜드플레이(Coldplay)와 트래비스(Travis)도 흠칫할 (3집의 발라드 <Stand By Me>, <Don't Go Away>보다 거품이 훨씬 빠진) 담백함을 선보이는데, 기존의 오아시스 팬들에게 틀림없이 사랑받을 만한 낭만적 매력을 선사한다.
이렇게 '내실있는 성숙' 을 이루면서도 음악적으로 매력을 진하게 느끼는 오아시스의 사운드를 만난 건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뭔가 다른 방식으로 듣는 이를 빨아들일 수 있는 곡을 쓰고 싶었다. 처음 듣는 순간부터 그루브가 느껴지고, 몰아치는 소용돌이에 최면적으로 빨려들어가는 곡을 원했다."라는 노엘의 말이 이번에는 '자화자찬'이 아니라 '진심'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