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는 솔직히 고기 등 기름진 안주와 함께하지 않으면 일정량을 넘으면 항상 부담스럽다. (그래도 킬러군과의 술자리로 인한 지속적 트레이닝의 결과로 인하여 옛날에 비해서 정말 향상됐다. 1차에서 1병을 넘길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 숙취의 결과가 딱 2일은 간다.) 그에 비해서는 맥주가 쉽게 배부를 수 있다는 단점은 있지만, 식사를 미리 안하고 안주와 함께 마신다면 그게 더 기분이 좋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에서는 아무리 빈 속이라도, 안주가 좋아도 피쳐 하나도 다 못마신다. 오직 밖에서만 제 속도가 나온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맥주에 치킨도 좋아하는 조합이긴 하지만 금새 배불러서 맥주가 더 안들어가는 이상한 상황이 된다. 결국 현재까지 개인적으로 맥주와 최고의 조합으로 생각하는 것은 바로 모두가 별로 안 좋아할 '감자튀김'이다. 물론 마트에서 뻔히 파는 감자튀김으로 나온다면 조금 재고해봐야겠지만, 그것도 적절한 온도로 잘 튀겨 갓 나온 따끈한 상태라면 얼마든지 상대해 줄 용의가 있다. 일단 빈 속에서 맥주를 마실 때 한 번에 많은 양이 들어가지도 않고 야금야금 먹을 수 있고, 술 마신 뒤에 속이 얹히지 않는 적절한 기름기를 제공하여 속을 편하게 해준다. 게다가 케첩, 머스타드 말고 독특한 소스를 제공받아 찍어 먹을 수 있다면, 다양한 모양으로 변형되어 튀겨진 디자인을 즐길 수 있다면 더욱 금상첨화다.
그럼 개인적으로 가장 편하고 즐거운 내 맥주 주량과 안주 조합은? 아마 생맥주 500CC 세 잔과 감자튀김! 이렇게 하면 딱 적당하다. 서울에서 그렇게 마시고 인천으로 내려간대도 오줌 마려운 것 빼고는 부담은 전혀 없다. 그런데, 왜 이게 딱 정량처럼 된 것일까? 아마도 대학 시절의 기억 때문이리라. 그 당시 학교 앞에 [통일광장]이라는 호프집이 있었다. 중간고사 같은 시험이 다 끝나면 과 사람들과 낮술을 마셨던 기억이 나는데, 그 당시는 500cc가격이 1000원이었고, 그 곳 감자 튀김 가격이 3000원이었으니, 둘이서 500 한 잔씩 하고 감자를 안주로 시키면 5000원으로 분위기를 만들 수 있었다. 하여간, 그 시절에 항상 세 잔을 다 마실 때 즈음에 취기가 밀려오기 시작했기에 그게 내 주량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던 모양이다.
이렇게 구구절절한 술과 안주 얘기를 한 것은 어제 약속이 있어서 홍대 쪽에 나갔다가, [코스모스]라는 뮤직 바에 들어가 술을 한 잔 했기 때문이다. 안주로 오랜만에 감자 튀김을 시켰는데, 위에 허브를 뿌려서 느끼함도 덜했고, 같이 나온 소스가 맛있어서 정말 신나게(?) 먹고 마셨다. 그리고 딥 퍼플(Deep Purple)의 <April>부터 제프 벡(Jeff Beck)의 <Cause We've Ended As Lovers>까지 벽 가득 꽃힌 LP들의 음원도 들을 수 있었으니 그 아니 즐거우랴...!! 요새 정해진 회식 자리나 집에서 그냥 있는 안주 갖고 마시는 경우에서는 이런 행복을 누릴 기회가 없는 듯하여 아쉽긴 하지만, 뜻 맞는 이들과, 설사 혼자 간다고 해도 이렇게 작은 조합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나에 대해 아직 '안썩었구나'하고 다행스러워 할 수 있음이 좋았던 일요일이었다. (아니면 내가 아직 유아적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