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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 차트를 '손으로 적어야 했던' 그 시절 이야기....

mikstipe 음악넋두리

by mikstipe 2010. 4. 11.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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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0Beat에 팝 칼럼니스트 이민희씨가 쓴 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 내 삶을 바꾼 10곡의 노래'를 읽고 (사실 그 분과의 대면 경험은 비욘세의 첫 내한공연에서 우연히 함께 입장해서 근처에서 공연을 관람한 것이 전부고, 한동안 거의 그 분이 일을 도맡아했던 프라우드의 기획 원고 섭외 땜에 통화한 것 빼고는 없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 글 올라왔다고 반가움에 댓글을 좀 달았다. 그 후 1주일 정도 지난 즈음인 어제 밤에 민희씨의 댓글이 달렸고, 그 내용 땜에 이 포스팅을 쓸 생각이 처음 들게 되었다. 사실 내가 음악을 들으며 갖고 있는 소중한 추억인데도, 왠지 모르게 일종의 쪽팔림이 있었던 그 일... 그것을 오늘 과감히 공개해본다. (어쩌면 내 버전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칼럼 시리즈의 제 1탄인지도 모르겠다.)

2. 팝 음악을 처음 만났던 것이 1984년 초인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때였을 것이다. 그 때 몇 가지 사건들이 겹쳐서 터졌다. 요새는 거부하는 이들도 많지만 그 시절에는 남자라면 당연히 받아야 하는 수술이라고 인식되었던 어떤 수술로 인해 (부모님의 강제로) 내 몸에 의사가 칼을 처음으로 대도록 허락했던 그 시기에, 당시 중학생이었고, 먼저 팝송에 대한 인식을 터오고 있었던 형님은 친구들에게서 '월간팝송'이라는 잡지를 한 권 빌려왔다. 마침 그 잡지의 '책속의 책(Artist Discography 칼럼 정도 될 것이다)'의 주인공은 비틀즈(The Beatles), 그리고 연초였기에 '2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 가 한창 10일간에 걸쳐서 들려주던 1983년 빌보드 연말 차트 소개 방송(100위부터 1위까지를 하루 1시간씩 10일간 틀어줬다면 지금 10대-20대이신 당신은 믿겠는가??)이 팝송에 대한 내 감성을 완전히 깨워버렸다. 동요보다도, 당시 '가요톱텐'으로 인식되던 가요와도 다른 이 사운드상으로 더 화려한 이 음악에 난 취해버릴 수 밖에 없었으니까.
 
3. 그런데, 더 큰 사건이 생겼다. 마침 마이클 잭슨으로 인한 팝의 글로벌 인기와 함께, 당시 KBS는 DJ김광한을 앞세워 케이시 케이슴(Casey Casem)이 진행했던 (현재는 라이언 시크레스트가 진행하는) 4시간짜리 차트 프로그램 'American Top 40' 를 수입해다가 편집과 수정을 거쳐 AM 라디오에서는 2시간 30분짜리, 2FM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에서는 2시간짜리로 편집해서 방송했다. (결국 원본 방송 사운드 위에 국내 DJ가 해설을 더 입히는 형태라고 보면 될 것이다.) 여기서 난 완전히 '돌아버리고' 말았다. 밤 10시면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 사고를 이 방송은 완전히 뒤집어 버렸고, 최초로 라디오를 방 안에 놓고 형과 함께(때로는 나 혼자) 매주 토요일 밤마다 이 프로그램을 애청하게 되어 버린것이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2시의 데이트' 에서도 일요일마다 빌보드 차트를 언급해주긴 했지만, 불행히도 1주일 지난 차트였거나, 아니면 20위-10위권까지만 소개해 주었기 때문에 그걸로는 만족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American Top 40 방송 샘플 (70년대 방송 /80년대 방송)

하여간
'American Top 40'
의 매력은 당시로선 내게 '별천지'였다. 그 방송 내용 자체를 들으며 기록하면 그게 바로 그 주의 빌보드 Hot 100 싱글 차트 상위 40위를 아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심지어 바캉스로 토요일에 타지를 놀러가게 되면 어머니가 쓰시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꼭 지참해 갔다. (그래서 지금도 아버지 친구분들 중 몇몇은 내 별명을 '마이클 잭슨'으로 부른다.) 순위의 변동을 듣는 그 자체가 마치 드라마 다음편 줄거리가 어떻게 될까를 예상하는 것같은 재미를 주었고, 중간 중간에 들려주는 팝 소식이 내 머리속을 가득가득 채웠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 때까지는 일단 '듣고 기억하기'에 만족했다. 굳이 적기까지 해야 할 필요가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당시 양대 월간 팝 매거진으로 통했던 '월간팝송(1986년 폐간)'과 '음악세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잡지들이 권말 부분에 항상 빌보드 싱글 차트 원본을 한 두장은 실어주었기에, 자료 체크에는 그리 큰 문제는 없었기 때문이다.


4.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에 들어와 나도 모르게 야심(??)이 생겼다. 3년 이상 팝송을 들었으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점점 외워야 할 아티스트 숫자도 늘어나고, 청소년기답게 뭔가 나만의 은밀한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 등이 겹쳤다. 그리고 아메리칸 Top 40가 국내 FM방송이 중단되고 AFKN FM을 통해서만 청취가 가능해진 것도 영향을 주었다 할 것이다. 그 결과, 문방구에서 하드 커버 다이어리를 구입해서 그 위에 매주 방송을 청취한 결과를 그대로 적기 시작했다. 삼색 하이테크포인트 펜을 구해 순위를 적고, 그걸로 모자라 옆 공간에 스포츠 신문 등에서 나오는 아티스트 사진들도 구해다 붙이고, 영어 청취 능력이 향상되면서 방송에서 언급했던 최신 팝 소식도 직접 들어 옮기기 시작했다. 결국 내겐 이 모든 것이 하나의 '놀이'이자 '유희'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료를 주말이 지나면 그 시기 처음 우정을 맺은 친구 모 군(이 블로그 자주 오시는 분이면 저랑 댓글로 반말 트는 사람 딱 한 명을 알 것이다.)과 공유했다. 음악 잡지에선 여전히 빌보드 차트를 1달에 1장씩 소개해주고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차트 북을 만드는 것이 더 재미있게 되어버렸다. (아, 음악 시간에 이 다이어리를 보다가 걸린 적이 있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그 때 그 마귀할멈같은 노처녀 여선생님이 그걸 찢거나 하지 않은 것에 난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5. 고등학교 1학년이 되자 어느덧 다이어리는 2권까지 완성되고 있었는데, 이 때 엄청난 비보이자, 대한민국 팝 매니아들의 암흑기가 찾아왔다. 유일하게 남아있었던 대중음악 잡지 '음악세계''뮤직시티'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변신한지 딱 8개월만에 폐간되어버린 것이다. 그 후 핫뮤직 창간호가 1990년 11월에 나왔(고 핫뮤직이 빌보드 차트를 싣기 시작한 건 1991년 2월호 정도부터였)으니, 1년 정도 빌보드 차트를 프린트된 버전으로 접한다는 것은 고등학생으로서는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아, 그러나 한 가닥 구세주가 있긴 했다. 바로 각 지역 레코드 점들에서 무료로 배부했던 '뮤직 박스(Music Box)' 차트 전단지에 빌보드 싱글 차트 중 일부(처음엔 50위, 나중엔 20위만)가 실린 것이다. (아래 사진을 보라) 그런데 이 전단지를 고등학생으로 매주 챙기고 수합한다는게 (당시 아무리 레코드점을 뻔질나게 다녔어도) 쉽지는 않아 빠뜨리는 게 종종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이제 다이어리 시대를 지나 '나만의 뮤직 매거진'이라는 말도 안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6. 1989년 12월, mikstipe가 편집과 제작을 겸하는 'Billboard Top 40 Magazine' 제 1호가 드디어 완성되었다. A5 모조지를 문방구에서 구입해 5-6장을 중앙 분철해 반 접으면 제본은 끝이었고, 거기에 매주 방송 청취와 신문 기사 스크랩을 통해 순위와 팝 소식을 추가했다. 꼴에 어떤 부분에서는 내 관점의 '비평(?)'까지 들어가는 부분도 있었다. (정말 그 때부터 음악으로 글 쓰고 싶어 안달이 났던 모양이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 겨울인 1990년 12월까지 '내가 만들고 나만 보는' 이 전무후무한 매거진은 지속되었다. 다행히 핫뮤직 창간 이후 1991년부터는 1달치 빌보드 싱글 차트, 앨범차트를 모두 실어주면서 더 이상 내가 이런 작업을 해야 할 이유는 사라졌다. 그리고 메탈리카<Enter Sandman>이 처음 싱글 차트에 올라올 무렵, 이미 세도우 스티븐스로 DJ가 넘어간 'American Top 40' 는 Hot 100중에서 에어플레이 순위로만 방송을 진행하기 시작했기에, 그 때부터는 이 프로그램을 적는 건 의미가 없어지기도 했다. 만약 고3 막판에도 이런 차트 적기를 반복했다면 과연 내 입시 결과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7. 물론 고3이라고 'American Top 40'나 음악을 안 들은건 아니었다. 토요일 오후나 평일 저녁에 '야자'시간에도 난 친구에게서 2만원을 주고 구입한 뚜껑도 없는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라디오로 조용히 음악을 들으며 공부했다. (결국 부모님은 지금도 이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난 당장 지식을 암기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문제지 풀며 라디오 듣는 것에 대해선 반대하지 않는다. 물론 지금처럼 수다떠는 FM이 아니던 그 시절이니 가능했던 사항이다. 특히 수학 문제 풀때는 많이 풀 때 '능률적이다'라고 생각한다.)


8. 결국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핫뮤직GMV가 빌보드 차트 전달의 역할을 잘 해주었으니, 더 이상 내가 차트를 손으로 적을 일은 없어졌다. 그리고 내 음악 감상의 범위가 더욱 넓어지면서 팝 차트가 대중음악의 전부가 아님은 더욱 확실해졌다. 게다가 지금은 인터넷만 켜면 언제든지 Billboard.com에 가서 차트를 볼 수 있고, (PC통신 시절부터도 그랬지만) 또 친절한 누군가가 저작권법까지 어겨가면서 다른 웹공간에 순위를 퍼나르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정말 장기간의 차트 데이터를 보고 싶다면 빌보드에서 만든 순위 아카이브 관련서적을 온라인으로 해외구매하면 되는 편리한 세상이다.) 하지만 나는 내 손으로 적은 이 자료들을 버리고 싶지 않다. 이 자료들은 정말 내 땀과 정성이 어린, 내가 10대 시절에 (비록 공부와 상관없다 해도) 이렇게 뜨거운 열정(아니면 광기?)를 갖고 있었음에 대한 징표다. 조엘 휘트번(Joel Whitburn - 빌보드에서 발행하는 아카이브 서적 편집자)의 책들보다 내겐 이 자료가 앞으로도 더 소중할 것이다.


P.S. 그런데 그거 아는가?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American Top 40' 방송분은 미국 전역, 그리고 세계 방송국에 이렇게 LP형태로 배급되었다는 사실을. 그래서 AFN에서 이 방송을 틀 때, 가끔 '판이 튀는' 효과가 그대로 방송 전파를 탔던 것은 이 음반 상태 불량 탓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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