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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Profile] Legend Profile No.17 - Prince (Daum 뮤직 Music Bar 기획 연재 원고)

80팝/80년대 팝 아티스트

by mikstipe 2011. 12. 20.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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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프로파일 17탄 - Prince
 
  사실 1980년대 초, 중반까지만 해도 프린스라는 뮤지션은 (우리에게는 물론이고) 서양에서도 조금은 왜곡된 인식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성적 자극이 강조된 노랫말, 뮤직비디오에서 느껴지는 퇴폐적인 이미지는 그를 단순히 시각적 이미지로 어필하려는 ‘연예인’으로 보게 만들기 충분했으며, 특히 ‘사전 심의’라는 이름으로 음악의 표현의 자유에 무자비하게 칼을 휘둘러대던 대한민국의 1980년대에서 그의 앨범들은 매번 최소 한 두 곡 이상의 금지곡을 삭제한 채 불완전한 모습으로 발매되는 경우가 많았다(그 금지곡들까지 듣고 싶어 중학생 때 서울 세운상가까지 상경(?)하여 기어이 [Purple Rain]의 낡은 수입 원판 LP를 구했던 개인적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또한 당시 국내 음악 매체들에서까지도 프린스는 음악 분석의 대상이기보다는 항상 ‘그가 또 누구를 유혹했다’는 가십들로 더 많이 지면을 장식한 스캔들 메이커였다.

  그러나 프린스가 그런 단편적 가십들로는 결코 평가할 수 없는 탁월한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임은 분명하다. 당시 음악 기사들에서 그에 대해 언급할 때 항상 상투적으로 등장했던 "스물 몇 가지의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뮤지션"이라는 표현은 (물론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임에도) 지금 생각해보면 좀 손발이 오그라들긴 한다. 하지만 그는 (이제 30년을 훌쩍 넘긴) 화려한 커리어 속에서 소울과 훵크와 블루스의 전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백인 록의 감각까지도 당의정(糖衣錠)으로 입힐 줄 아는 사운드의 미학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프린스를 제외하고 당대에 과연 누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처럼 무대에서 블루지한 록 기타를 휘두르는 동시에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이 부럽지 않은 무대 위의 ‘Sex Machine’으로 빙의할 수 있었던가. 사실, 이런 비유들 따위로 왈가왈부할 것 없이 대표곡 ‘Purple Rain’의 8분이 넘는 풀 버전을 한 번 감상해 보면 그의 음악이 가진 기본적 뼈대를 잘 파악할 수 있다. 백인들도 반했던 선이 분명한 멜로디 속에 그만이 낼 수 있는 독특한 끈적함이 담긴 섹시한 보이스, 그리고 진한 기타 선율 속에서 현대 대중음악의 본류는 분명 흑인들에게서 왔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될 것이다. 

  미네아폴리스를 여전히 영원한 고향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프린스가 약관의 나이로 메이저 레이블 워너 브러더스와 계약을 맺고 데뷔한 것이 1978년이다. 그는 데뷔작 [For You]에 이어 나중에 샤카 칸(Chaka Khan)
의 커버 트랙이 더 히트했던 ‘I Feel for You’가 수록된 셀프 타이틀 앨범 [Prince](1979)로 흑인 음악 씬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긴 했지만, 결국 그가 현재와 같이 음악적 추앙을 받는 아티스트로 인정받게 된 앨범은 당연히 1980년대에 발표한 3장 - [1999](1983), 사운드트랙 [Purple Rain](1984), 그리고 [Sign O' The Times](1987)이라고 말할 수 있다.

  먼저 ‘Little Red Corvette’과 ‘1999’를 통해 제대로 스타덤을 맛보게 해준 [1999]에서 프린스는 소위 ‘일렉트로 훵크(Electro-Funk)’라고 정의할 만한 자신만의 트레이드마크 사운드를 확고하게 구축했다. 그리고 흑인 아티스트가 남긴 기막힌 록 필름으로 기록된 영화 [퍼플 레인]의 사운드트랙 성격의 앨범 [Purple Rain]은 그를 최강의 팝 아티스트로 평가받게 만든 역작이었다. ‘When Doves Cry’, ‘Let's Go Crazy’ 등 5곡의 톱 40 히트곡을 양산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마이클 잭슨과는 다른 관점에서 백인 팝의 말랑함에 허리를 굽히지 않는 크로스오버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것이 이 앨범의 핵심적 매력이었다. 그리고 당시 앨범이 국내에 소개되지 못해 기억 속에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Sign O' The Times]는 프린스가 1980년대에 선사한 모든 음악적 실험의 스펙트럼들을 펼쳐 보이면서도 대중적 매력도 잊지 않았던 멋진 더블앨범이었다. 시나 이스턴(Sheena Easton)과의 듀엣 ‘U Got the Look’과 ‘I Could Never Take the Place of Your Man’의 훵키 록 비트의 매력은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물론 프린스는 항상 자신의 음악적 기반을 바탕으로 꾸준한 사운드 실험을 했고, 그에 따라 원 맨 밴드의 형태로 활동하기도 했었고, 1980년대에는 레볼루션(Revolution)이라는 백밴드를,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는 뉴 파워 제너레이션(New Power Generation)이라는 백밴드를 대동하는 변화도 시도했었다. 그가 'Cream'과 타
이틀 트랙을 히트시켰던 [Diamonds and Pearls](1991)와 또 하나의 명곡 '7'을 낳았던 [Love Symbol](1992)를 발표한 이후, 그러니까 확고한 음악적 자유를 쟁취한다는 목표로 때늦은 투쟁을 하느라 1980년대의 화려한 기운을 1990년대에 놓쳐버린 이후, 과거의 탁월한 창작력이 많이 소진한 느낌도 있긴 하다. 그러나 자신의 레이블 NPG로 음반을 배급하는 2000년대로 넘어와 발표했던 [Musicology](2005)가 더블 플래티넘이라는 인기와 그래미 2개 부문 수상이라는 영예를 얻게 해주었던 걸 생각해보면, 프린스가 정말 칼을 갈고 만든 음반은 언제든 걸작으로 등극할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인기라는 측면에서는 화려했던 1980년대를 더 이상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프린스가 지난 30여 년간 흑인음악 원류의 정통성을 자신만의 독창성으로 체득해 이후 흑인 음악의 변화를 이끈 1980년대의 진정한 아이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 힙합이 서서히 주류로 진입해 들어오고, 말랑한 크로스오버 알앤비 히트곡들이 사라진 자리에 훵키 리듬의 매력이 다시 돌아오는 데에 그의 음악이 미친 영향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마이클 잭슨이 흑인음악을 1980년대에 주류 팝 시장에서 외형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세계 음악 시장에서 주류가 되도록 기여한 아티스트라면, 프린스는 그렇게 세계화된 흑인음악의 뿌리와 줄기가 무엇인지를 가장 쉽게 대중에게 알려주고 후대 뮤지션들의 존경 속에 계승되도록 만든 아티스트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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