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rious Artists - 같은 맘으로(1998)
그것이 자선이든, 계몽이든, 어떤 목적이든 특정 목적을 위해 발표되는 노래들은 그런 것 없이 보편적으로 발표되는 노래들에 비해 핸디캡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일단 그 목적이 이뤄지고 나면 발표 시점 만큼의 화제성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그 메시지가 너무 강하면 거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나 반감을 가진 사람들에겐 접근성을 기대할 수 없다. 수많은 1980년대의 건전가요들이 그 음악적 퀄리티가 어떠하든 결국 ‘전두환 시대의 협조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도 존재한다. 일단 가사에 좀 더 보편성과 추상성을 가미하며, 곡의 퀄리티가 그 설왕설래를 극복할 만큼 나름 탄탄하다면 해당 목적의 시기가 지나도 (비록 그시기만은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가질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믿고 있다. 에티오피아 난민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한 곡이지만 이제는 하나의 캐롤처럼 사람들의 곁에 있는 Band Aid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나 이라크 파병 미군들을 위한 응원가이지만 그래도 지금도 어느 정도는 곡 자체로 어딘가에서 가끔 리퀘스트되는 ‘Voices That Care’같은 곡이 그런 사례일 것이다.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이 1998년 발표곡 ‘같은 맘으로’는 따지고 보면 ‘묻힌 곡’이라 불릴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들어도 그렇게 촌스럽지 않은 ‘잘 만든 올스타 합창곡’이라고 할 만큼 퀄리티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20년간 주류 작곡가들 중에서는 그래도 꾸준히 좋은 퀄리티의 곡을 만들어온 김형석의 작품이며, 참가자의 면면도 (물론 젝스키스라는 당시의 상업적 요소도 포함되었지만 그들은 파트를 담당하고 있지 않고 합창에만 참여했다.) 대체로 가창력을 중시한 라인업 구성은 한국판 ‘Voices That Care’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김광진-유리상자-이현도-엄정화-이적-윤도현-김동률-김현정-박정현-김현성-진주-임창정-김민종-조트리오(조규만-조규찬-조규천), 김조한-정재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어느 정도는 가요 팬들이 처음 정보를 접했을 때 들어보고 싶은 욕구는 나게 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조앤(김형석이 키워서 2000년대 초 데뷔했던 소녀 가수)의 어린이 시절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지금 듣는 입장에서는 1990년대식 고급 발라드의 전형이라는 비판도 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참여한 라인업의 보컬들이 노래를 깔끔하고 고급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IMF시대의 힘겨움을 극복하고 서로 힘을 합치자는 주제는 잘못 표현하면 매우 작위적이고 촌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가사로 표현되기 쉽상이나, 이 곡은 그런 함정에서 꽤 잘 벗어나고 있다.
“ (김광진) 내가 당신을 믿지 않는다면 누가 당신을 또 믿겠나요
(유리상자) 우리 서로가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미 세상은 끝났을텐데
(이현도) 폐허 속에서도 꽃을 피운 우리 지금 모든 걸 잃었다 해도
(엄정화) 나를 믿는 당신의 따뜻한 눈 속엔
(이적) 벌써 나의 시작이 있죠
(윤도현) 당신의 희망은 약속 나를 일으켜 깨웠던 힘이죠
(김동률) 서로 손 잡아도 부끄럽잖게 같은 맘으로 눈물 흘리게
(박정현) 둘러보면 나는 혼자가 아니죠 당신 또한 혼자 아닌 걸요
(김현성) 함께 있어야만 살아낼 수 있듯이 감싸 안고 용설 받듯이
(진주&임창정) 당신의 희망은 약속 나를 일으켜 깨웠던 힘이죠
(김민종) 서로 손잡아도 부끄럽잖게 같은 맘으로 눈물 흘리게
(이적) 이젠 제자리로 돌아가요 / (조트리오) 처음부터 천천히 해봐요
(김조한) 지금길이라고 믿었던 건 / (합창) 다만 함정이었죠 흔들려도 건너야해요
(All) 당신의 희망은 약속 나를 일으켜 깨웠던 힘이죠
서로 손 잡아도 부끄럽잖게 같은 맘으로 눈물 흘리게
(전아름: 고 조앤의 본명) 이젠 정말 같은 맘인거죠”
같은 주제를 가졌지만 1년 뒤에 발표된 연제협 주관 자선 싱글인 Now & New 의 ‘하나되어’(동영상 링크)보다는 이 곡이 지금 듣기에 덜 촌스럽고, 여전히 나름 가치를 지닐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앞에서 언급된 그런 적당한 추상성과 꼭 해당 목적에만 대입하지 않고도 가까이 있는 우리 서로의 협동에서 희망을 갖자는 메시지로 시대를 넘어서도 해석될 수 있으니까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누가 이 곡을 홍보해야 한다고 민 것이 아니었음에도 당시 각종 (특히 심야) 라디오 방송에서 PD들이 알아서 이 곡을 선곡했었던 건 바로 그런 이유였다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