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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대학 신문에 기고된 음악 칼럼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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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페이스북 소통도 하고 있는 한동윤 칼럼니스트의 글을 (그 분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했길래) 읽게 되었다. 일단 일본 음악에 대한 부분이고, 시티 팝 이야기를 꺼내셨길래 잘 읽어보았다. 그런데 글이 내리고자 하는 결론적 방향에 대해 조금 의아함이 느껴졌다. 무엇인가 역사 의식, 반일감정이 이상하게 음악 트렌드 비평에 녹아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 물론 이제 아래에 쓰는 글은 동윤님의 칼럼에 대한 나의 '개인적' 반론이며, 나는 애초에 필자의 생각과 주장은 기본적으로 '존중'한다. 읽으시는 제 3자 분들은 본인의 관점에서 판단해주시면 좋겠다. 일단 원문 링크부터 아래에 달아보겠다. 

원문: [고대신문] - [타이거 살롱] - 여전히 깊게 뿌리내린 일본 음악 (by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

1. 위의 기고 글은 기본적으로 일본 시티 팝 스타일의 현재 국내에서의 리바이벌 유행, 그리고 한국의 당대 대중음악에서 그런 특성을 찾고자 하는 일부의 작업에 대한 비평을 담고 있습니다. 중반부까지는 분명 괜찮은 흐름이었고, 아래와 같은 부분을 말씀하신 것에는 매우 공감합니다. 당연히 하셔야 할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아 듣긴 해도 불매운동을 의식해 시티팝을 평소처럼 마음 놓고 즐기기가 조심스럽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불매운동과 마찬가지로 시티팝 노래를 청취하든가 배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다. 아무리 숭고한 일이라고 해도 이런 민간 활동은 자발적으로 벌여야 의미가 있다. 애국심의 강요는 파시즘과 다를 바 없다."

2. 그러나 아래의 이 두 부분에는 좀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싶은 욕구가 이 글을 읽고 생겼습니다. 그래서 적어봅니다.

2-1.(원문)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많은 가수가 일본 노래와 가수를 모방했다.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의상, 춤, 심지어 멤버 구성까지 따라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한국 대중음악, 특히 댄스음악과 아이돌 산업은 철저히 일본에 빚을 지고 있다. 이 부끄러운 역사를 잊은 채 정성스럽게 일본산 음악을 복원하고 있으니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 2000년대 초반, 1세대 아이돌전성기가 끝나가는 시점까지는 저도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한국 대중음악사의 부끄러운 부분이겠죠. 그러나 그 때의 '모방'과 지금의 '모방'을 동일한 관점에서 놓고 재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때의 모방이 비판 받아야 하는 것은 단지 '일본 것을 따라해서'가 문제가 아니라 '(법적으로 일본 대중음악 개방이 아직 되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 사람들이 그 원전을 알거나 들어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뻔뻔하게 '표절에 가까운 모방'을 해서'입니다. (이 사안에 대해선 제가 출간했던 일본 음악 관련 서적에서 짧지만 다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방의 문제를 국내에서 항상 지적해왔던 사람들은 음지에서 누구보다 일본 음악을 열심히 들어왔던 사람들에 의해서입니다.

이후 이런 문제는 2000년대 중반부터 고 김대중 대통령께서 추진하신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정책의 여파로 대중이 원전에 대해 더 쉽게 알수 있게 되자 (그들에게 감히 엄청난 저작권 폭탄을 맞기 싫고, 일본걸 배꼈다면 더욱 비난받는 국내 정서상)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비해서 현재의 한국의 시티팝 유행에서의 말씀하신 '일본산 음악의 복원'은 일본 것임을 감춰 장사를 위해 써먹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그 음악적 스타일의 본산이 일본임을 정확히 전제하고 하는 소위 '해외 과거 대중음악 특정 장르의 레트로 작업'의 일환일 뿐이죠.

2019년 현 시점에서 어떤 과거의 음악적 스타일을 대중음악 아티스트들이 레트로를 지향하며 모방/오마주/리바이벌 한다는 것은 결국 해당 아티스트 스스로가 그런 음악들에서 음악적 영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또는 한 마디로 그들에게 그 음악이 '쿨하게 느껴져서' 그런 작업을 하는 것이라 전 생각합니다. 지금의 시티 팝 리바이벌 무드 역시 그 흐름의 한 갈래일 뿐이라 봅니다. 멜로디와 악곡 전개에서의 의도한 표절이 보이지 않는다면 전 별로 문제를 삼고 싶지 않고, 그들이 정성스럽게 일본산 음악의 스타일을 한국에서 복원하는 것에 대해 전혀 '개탄스럽게'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혹시 우리가 과거의 아픈 역사로 인해 민족적 감정을 갖고 있는 국가의 대중음악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그 곳에서 유행한 스타일을 따라한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개탄스럽게' 여기시는 건 아니시겠죠? 어떤 아티스트가 시티 팝 리바이벌 흐름에 동참해 그런 스타일의 새 노래을 발표한다는 것은 어떤 홍대 인디 아티스트가 파두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그 스타일의 음악을 새로 작곡해 신보에 싣거나 싱글로 발표하는 경우와 다를 게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스텔라장 - [아름다워](윤수일 원곡의 시티 팝 스타일의 cover version)의 커버 이미지


2-2. (원문) "시티팝을 표방한 다수의 노래가 음반 커버나 뮤직비디오에 19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을 흉내 낸 그림을 내건다. 시티팝이 일본에서 생겨났기에 그 나라의 느낌을 내기 위함이다. 이렇게 시티팝은 시각적으로도 일본을 되새긴다. 근래의 시티팝 유행은 가요계에 일본 문화를 숭배하는 태도가 만연함을 보여 준다. 주체성 확립과 창의성 확보가 절실하다."

-> 숭배라... 어떤 과거 대중음악 장르의 '레트로'는 그 자체가 어느 정도 '숭배'의 마음을 깔고 가는 것 아닐까요? 예를 들어 21세기에 여전히 1980년대식 헤어메탈/글램메탈을 연주하는 밴드가 있다면 그건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죠. 하나는 UV같은 친구들이 하는 '패러디'의 목적이거나, 아니면 해당 장르의 사운드를 워낙 좋아해서 그걸 현 시점에서도 자신들의 음악 속에서 구현하고 싶은 '지향점'으로 삼은 경우입니다.

K-POP이 너무 잘나가서 이제는 한국의 뮤지션들은 어느 나라의 음악도 '숭배하지 않는' 레벨에 이르렀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한국 대중음악을 포함해 영-미를 제외한 나머지 세계 현대 대중음악의 역사는 당대의 영-미 대중음악들 가운데 그들이 듣고 너무 좋아해서 자동으로 '숭배하게 된' 음악들을 따라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자국의 전통 음계, 리듬과의 퓨전 과정을 통해서 발전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본 시티 팝의 사운드를 지금 따라한다고 해서 그게 새로운 21세기의 음악적 혁명이 되진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뮤지션이든, 자신들이 좋아하고, 숭배하는 과거 아티스트들의 시그너쳐 사운드를 자신들의 새 음악 속에 녹이는 방법론은 허락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해외의 20-30년 전 유행 대중음악 장르 스타일을 오마주/리바이벌한다면, 그 이미지를 음반 커버나 뮤직 비디오에 투영하는 전략은 하나도 잘못된 것이 없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70년대 소울/훵크의 분위기를 내는 음악을 만든다면 그런 시대의 복장을 입고, 그 시대의 춤을 추며, 음반 커버의 로고나 폰트도 '소울트레인' 시대의 문양을 따라하는 것, 물론 진부한 클리세라 비판받을 수 있지만 충분히 할 수 있는 선택입니다. 그 자리에 일본 시티팝을 그대로 대입한다면 19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을 흉내 낸 그림, 당대 시티 팝 주요 앨범들의 특징적 색채와 그림 이미지 - 야마시타 타츠로 음반들에서 주로 많이 드러나는 - 를 도입하는 것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선택이라는 것이죠.

때로는 과거 장르가 갖는 이미지의 복제적 클리세 활용이 오히려 이 아티스트가 이 곡에서 어떤 음악을 들려주고자 하는가를 더 명확하게 광고할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렇게 만든 음악적 결과물이 비평의 관점에서 잘만들었냐, 못만들었냐, 음악적 가치가 있냐에 대한 평가는 이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이걸 자꾸 '주체성 확립과 창의성 확보'라는 명제에 강제 대입해 옳고 그름의 문제로 치환하는게 전 합당한지 도저히 모르겠네요. 제가 J-POP 매니아라서 그런 건진 모르겠지만...

때로 음반 커버의 이미지는 해당 음악 스타일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해주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시티 팝 음반 커버들이 바로 그 대표적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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