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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를 제대로 기억하기 위한 10가지 장면들(1)

mikstipe 음악넋두리

by mikstipe 2019. 12. 1.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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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기사에 자꾸 나오는 영정사진 싫어요. 제게 하라는 이렇게 무대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될거에요. (사진: 디스패치)

지난 11월 24일 저녁, 믿고 싶지 않은 비보가 날아왔다. 당시 개인 페이스북 계정에 썼던 대로 '믿을 수 없어. 아니라고 해줘!'라는 마음 속 외침을 반복했지만,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구하라가 28살이라는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그 사실은... 오랜 카라의 팬으로서, 항상 멤버 모두를 아낀다고 주변에 말했지만 맘 속에 그래도 가장 많이 생각할 수 밖에 없었고 걱정해왔던 그녀의 부고는 분명 내게 충격이었다. 며칠간 주변에 티를 내지는 못했지만 내 가족도, 친지도 아닌 사람의 죽음 앞에 이렇게 멍해지고, 멘붕이 온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어지러운 한 주가 지나면서 어느 정도 맘을 진정시키긴 했지만, 아직도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녀의 부고 이후 온 세상이 그녀가 데뷔한 이후 가장 많이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그녀의 사인에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1년 전 그 사건의 여파, 그리고 그녀보다 40일 전에 먼저 세상을 등진 설리의 기억들이 맞물려 인터넷 포털의 악성 댓글들, 케이팝 시장에서의 아이돌들의 성상품화 문제와 정신 건강 관리 문제, 그리고 사회 전반에 아직 영향력을 행사하는 여성 혐오적인 시선과 발언들에 페미니스트 분들을 포함해 다양한 분들이 칼럼을 쓰고 의견을 보태고 계신다. 물론 당연히 필요한 말들이다. 두 여성 아이돌의 비극적 죽음이 우리 사회에 상존하는 문제들에 대해 대중을 각성하게 하고 사회 시스템 개선에 일조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한 명의 '카라의 팬, 구하라의 팬'으로서 조금 아쉬운 것은 그녀는 분명히 이 땅에서 어떤 '음악인'이었고, 어떤 '인간'이었는가에 대해 제대로 설명해주는 글을 만나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남들이 안 쓰면 내가 써보자...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좀 더 많은 분들이 알기 쉽게 그녀의 생애와 연예 활동에서 꼭 기억에 남겼으면 하는 장면들, 그녀의 삶과 활동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을 유튜브 영상 10가지로 뽑아, 이야기와 함께 풀어가보도록 하겠다.   

1. 광주에서의 중학생 시절

광주 KBS에서 방송한 다큐 프로그램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꿈]에 출연했던 하라의 데뷔 이전 중학생 시절의 모습이다. 나중에 카라로서 데뷔하고 활동한 이후 덕후들의 발굴로 많은 이들에게 이 영상이 알려졌다. 영상 속에서 겨우 14살, 중3이었던 그녀가 보여주는 자신의 꿈에 대한 열정은 개인적으로 처음 봤을 때 맘을 숙연하게 했고, 이후 데뷔하고 그녀가 보여준 열정적인 태도에 대한 해답을 이 영상을 통해 처음 찾을 수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많은 덕후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친오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언급된 대로) 마태복음 7장 7절에서 그녀의 이름을 받은 구하라. 부모는 이혼과 함께 각자 재혼을 했고, 부계의 보호자 호적에 있긴 했지만 고모할머니와 성장하며 친척집에 더부살이를 하며 성장했다. 어쩌면 의기소침해질 수도 있는 청소년기에 이렇게 자신의 꿈과 목표에 적극적일 수 있었다는 건 이후의 그녀의 성공이 절대 우연에만 기초한 것은 아님을 확인시켜준다.  

광주KBS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꿈] 출연 분량 일부

2. 카라의 '꿀(Honey)' 하라로의 데뷔

광주에서 연기학원, 댄스학원을 다니며 자신을 트레이닝한 하라는 전남중학교 졸업 후 전주예고에 입학했지만 연예인 데뷔를 위해 서울로 결국 올라왔다. SM엔터테인먼트와 JYP엔터테인먼트의 오디션을 각각 통과했지만 보다 빠른 데뷔를 원했던 그녀에게 DSP의 걸그룹 카라의 새 멤버 캐스팅 오디션 제안이 들어왔다. 당시 리드싱어 김성희가 탈퇴하면서 그룹의 멤버 보강이 절실했던 카라에게는 보다 큐티한 아이돌 걸그룹으로의 변화가 필요했고, 그 조건에 강지영과 함께 구하라는 적격이라고 고 이호연 대표는 판단했던 것 같다. 그렇게 DSP와 계약을 맺은 지 3개월 만에 그녀는 [Rock U]가 들어있는 카라의 두 번째 음반부터 본격적인 멤버로 활동을 시작했다. 소녀시대보다 몇 개월 먼저 데뷔했지만 첫 음반의 실패로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카라에게 하라의 합류는 기존에 그룹의 인지도를 이끌던 한승연에 이어서 해당 그룹의 '비주얼 센터'의 역할을 든든하게 해줄 호재였다. 그리고 전작과는 다른 포맷과 이미지 변신이 주효하고, 새로운 팬덤이 모여들면서 원더걸스, 소녀시대와 함께 카라는 대한민국의 2세대 아이돌 걸그룹 시대의 삼두마차로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분명 당시 새로운 팬들의 유입, 그리고 미디어의 주목에 있어 그녀가 그룹에 기여한 부분은 상당했다. 어쨌든 전문 작곡팀 스윗튠(Sweetune)과의 만남, 작업을 통해 카라는 꾸준히 히트곡을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2010년 2월 싱글 'Honey'가 방송 가요 쇼 첫 1위를 차지하면서 그룹 활동의 첫 기쁨을 제대로 맛보았다. 아래 영상은 바로 이 시기의 방송 가요쇼 무대들 19편을 어떤 유튜브 유저가 종합해 편집한 영상이다. 아직 앳띤 모습이 남아있지만 분명히 요정 컨셉트의 복장 속에서 그녀의 이미지는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이 곡의 안무 '꿀찍어먹는 춤'이 유행하던 무렵 각자 멤버들이 방송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그녀는 '안녕하세요, 카라의 꿀, 하라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 이후 그룹 팬덤 내에서 그녀를 더 아끼는 팬들은 자신들을 '꿀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KARA - Honey (19가지 방송무대 편집영상)

3. '구사인볼트'라는 이름을 얻은 어느 추석 특집 예능

2009년은 K-POP 2세대 아이돌계에 본격적으로 걸그룹들의 물결이 밀려들기 시작한 해였다. 원더걸스와 소녀시대, 카라가 차레로 성공을 거두며 연예계에서 S.E.S.와 핑클 시대에 뒤를 이을 화두로 '걸그룹'이 떠오르자 방송계는 당연히 이 흐름을 놓치지 않고 그들을 통해 어떻게 예능프로그램을 만들지를 고민했다. 앞선 세 그룹의 대중적 성공이 이어지는 가운데 기존에 활동했던 브라운 아이드 걸스는 보컬 R&B그룹의 노선에서 과감히 아이돌계 댄스 팝 그룹의 노선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세 그룹의 데뷔를 보며 다른 기획사들이 준비한 아이돌 걸그룹들도 이 시기에 막 데뷔를 진행했기에, MBC의 예능국은 이들을 모아 어떻게 시선을 끌어볼까를 고민한 끝에 오늘날의 '아육대'의 프로토타입 모델이 되는 '달콤한 걸'이라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추석 기간에 내보냈다. 바로 여기서 구하라는 단숨에 (겨우 '미스터'라는 노래만 알고) 카라라는 팀을 몰랐던 대중에게까지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여러 순간들을 제공했다. 작고 가녀린 외모와 다르게 다른 카라 멤버들보다 더 많이 몸으로 트럭을 끌었고, 마지막 달리기 시합에서는 비록 넘어지긴 했지만 모두를 놀라게 한 달리기 실력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녀는 중학생때 육상부 활동까지도 할 만큼 운동감각에는 소질이 있었지만, 항상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악바리'라고 할 만큼 열정과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는 그녀의 태도가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여기서 그녀는 '구사인볼트'라는 이름을 얻었고, 2세대 여성 아이돌들 가운데 가장 대중의 주목을 빠르게 받은 존재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2009 추석특집 [달콤한 걸] 후반부 영상 (MBC TV)

4. '청춘불패'에서 '하라구'가 보여준 모습들

'달콤한 걸'의 성공에 자극받은 것인지, 그 전부터 이미 구상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KBS TV는 농촌 예능과 아이돌 걸그룹이라는 서로 상반되는 느낌의 소재를 묶어 '청춘불패'라는 이전에 보기 힘들었던 예능 프로그램을 런칭했다. 써니와 유리(소녀시대), 하라(카라), 나르샤(브아걸), 현아(포미닛), 효민(티아라), 선화(시크릿)으로 구성된 이 여성 아이돌 7인의 농촌 적응기는 무대 위에서의 화려한 모습과 다른 보다 편안하고 친근한, 농촌 어르신들과도 어울리려 노력하는 10대-20대 젊은 신세대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면에서 다른 걸그룹 멤버들이 출연한 예능들보다는 그나마 '공익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속에서 하라는 단연 시즌 1의 히로인과 같았다. 해외 진출 계획과 맞물려 소녀시대는 중간에 팀에서 이탈했지만, 하라는 (가뜩이나 일본활동을 왔다 갔다 하는 정말 지옥같은 스케줄 속에서도) 시즌 1이 종영할 때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이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다. 계속 '농촌 과업'과 만나는 상황에서 그녀는 (~를) '하라구'라는 닉네임을 얻었고, 처음 화장실 터를 파는 일에서부터 추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녀는 항상 과업의 전면에서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다들 이 환경에서 어떻게 유머러스한 부분을 만들어야 할까를 남희석과 김태우도 고민하던 초창기에 몸개그, 유치개그 등을 스스로 만들면서 웃음분량을 보탰다. 그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유치리의 어르신들과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어른들을 편하게 만들어드리는 하라의 모습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이 아래 영상 속에 있다. 앞서 말했듯 그녀는 할머니와 친척들 손에서 컸고, 어르신들과 소통하는 법을 자연스레 터득한 것이었다. 다들 할머니께 전화하는 이 코너에서 '아름다운 최루탄'을 선사하는 그녀와 할머니의 대화는 언제 다시 봐도 참 뭉클하다. (이후 100일간의 계약분쟁으로 모든 멤버들이 일본 활동 외에 두문불출할 때 할머니께서 돌아가셨고, 이 부고를 접한 하라는 언론의 시선에 아랑곳 없이 바로 광주로 내려갔다.) 어쨌든 '청춘불패'는 그녀에게 '예능돌'이라는 확실한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그녀는 2010년 KBS연예대상에서 쇼오락 MC부문 여자 우수상을 받았다. 

[청춘불패 시즌 1] 중에서 하라와 고모할머니와의 전화 통화

5. 카라의 일본 진출 후 [도쿄 프렌즈파크]의 한 장면

흥미롭게도 2009년 카라가 열심히 한국내 활동으로 많이 인지도를 높혔던 그 시점에 한국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은 일부 유명 일본인들 가운데 자발적 '카라 덕후'들이 생겨났다. 개그맨 게키단 히토리같은 인물이 대표적이었다. 아마도 소녀시대의 타이트하고 세련되게 짜여진 분위기보다 카라가 일본 사람들이 아이돌에 대해서 원하던 이미지와 꽤 닮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하여간 이런 흐름을 감지한 DSP 이호연 대표는 일본 팬들과의 이벤트 등을 마련하면서 현지 활동 진출 계획을 세웠고, 카라는 2010년 유니버설 뮤직 저팬(유니버설 시그마)과 계약을 맺고 그 해 8월 '미스터'의 일본어 버전을 첫 싱글로 공식 데뷔했다. 이 싱글이 일본 시장에서 폭발적 인기를 구가하면서 카라는 단숨에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국인들은 잘 모르지만, 이 곡은 2010년 가을, 겨울까지 일본에서는 하나의 신드롬과 같았다. 이미 한국에서 화제가 된 '엉덩이춤'이었지만 이 쪽에서는 아이돌에 관심 적은 일반인들까지 이걸 어설프게 따라할만큼 화제가 되었고, 이 곡은 그 해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가라오케에서 부른 노래 Best 10 속에 랭크되었다.

사실 소녀시대보다 카라가 더 빠르게 일본 대중에게 파고들게 된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아마도 데뷔 당시 훨씬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가한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뒤에 통역 한명만 대동하고 일본인들의 질문을 자신들이 외우고 익힌 일본어로 어쨌든 재미있게 받아치며 나름의 예능감각을 보여준 카라에 일본인들은 더 친근감을 느꼈던 것이다. 특히 아래의 영상은 카라가 출연한 영상에서 꽤 기념비적인 예능 출연작인 [도쿄 프렌즈 파크 2]의 카라 출연 방영분이다. '출발드림팀'같은 느낌의 방송을 스튜디오 내에서 하는 이 운동 예능에서 2시간 가까이 카라는 미션 수행을 위해 노력하는데, 여기서도 결정적 순간에 하라는 자신의 노력을 그룹을 위해 쏟아붓는다. 동물 복장을 하고 곡선 비탈을 올라가서 자석을 붙이고 내려오는 미션에서 나머지 멤버들이 아직 많은 점수를 못 딴 상황에서 미션 통과를 위해 해 '곰사인볼트'가 되어 가장 높은 자리에 자석을 붙이는 그녀의 달리기는 다시금 강한 그녀의 승부욕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나머지 멤버들도 정말 열정을 다해 참여하고 있지만, 역시 운동신경이 뛰어난 그녀의 모습이 그룹의 이미지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를, 그녀가 항상 챙겼던 것은 자신보다는 카라라는 그룹이 우선이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생각한다.

도쿄프렌즈파크 2 - 후반부 동물복장 게임 속 하라의 액션!

P.S. 이렇게 모든 카라의 멤버들이 한국과 일본을 쉴틈없이 오가는 '빡센' 일정 속에 지치면서 결국 2011년의 '계약분쟁'이 발생하긴 하지만, 이렇게 카라를 지지하는 팬들의 세력이 한국을 넘어 일본까지 확장되면서 분쟁은 긍정적 방향으로 마무리되면서 카라는 일본의 방송과 광고, 모든 영역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어갔다. 그리고 그녀들이 주연이 된 판타지 코미디 드라마 [우라카라],  그리고 일본 시장을 겨냥했던 [KARA: THE ANIMATION] 등 카라와 관련된 프랜차이즈 상품들은 점점 더 늘어갔다. 흥미로운 것은 하라를 포함하여 일본에서는 정말 5인의 멤버들이 거의 치우침없이 고르게 팬층을 확보하고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의 걸그룹 시장에서는 거의 이뤄지기 어려운 일로서, (계약분쟁기의 팬들의 경험이 추가되어) 카라 팬덤의 'KARA 5=1'이라는 인식이 더 강화되는 상황을 낳았다. 물론 이것은 나름 양날의 검으로 이후 다가오긴 하지만...... (장면 6-10은 파트2에서 이어갑니다.)

[보너스 영상] 하라 질풍가도 (그녀의 운동과 관련한 모습들의 편집 영상)

하라 - 질풍가도 ( 곡: 유정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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