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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레코드페어'를 통한 한정반 릴리즈, 이제는 바뀔 필요가 있다

mikstipe 음악넋두리

by mikstipe 2022. 1. 28.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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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2일 서울레코드페어 한정반 구매 번호표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직접 촬영) 

1. 현재 한국 음반업계에서 LP 한정반 판매가 갖는 문제점

LP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과거/현재 음반의 한정반 LP포맷의 발매가 늘어가고 결국 그 한정된 공급으로 인해 소위 '구매한 한정반 LP의 재판매를 통한 재테크'가 성행하고 있다. 한 두장을 사건, 10장을 사건, 나중에 값이 올라갈만한 음반을 매점매석해놓고 당근마켓-알라딘/YES24 중고샵 등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비싼 값에 파는 것이다. 그것도 구매한 지 몇 년 뒤도 아니고 정식 판매가 진행된지 1-2일만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것은 분명히 올바른 상거래 문화와는 거리가 먼 일이며, 음반에 담긴 음악적 가치를 발굴하는 것과 달리 자꾸 '희소가치'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물론 제조한지 오래된 LP의 경우야 당연히 내용물의 질에 따라 '골동품'의 가치가 생길 가능성이 크지만, 방금 새로 찍어낸 새 음반 갖고서 '게임 아이템 거래'하듯이 놀고 있는건 솔직히 너무하지 않은가.

2. 서울레코드페어, 되팔기용 한정반 구매의 성지(?)로만 남으려는가

한국에 아직 제대로 된 '레코드 페어' 문화가 형성되기 전, '서울레코드페어'(이하 '서레페'로 표기)는 서양에서 진행되었던 그 페어의 분위기와 목적을 어느 정도는 충족시켜주는 첫 번째 행사로서 음악 매니아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그 호응에 발맞춰 서레페는 행사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하겠다는 목적으로 '레코드페어 공식 한정반' 제도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현재의 서레페를 꾸준히 참석자들이 바글대게 하는데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여기서 파는 한정반들이 소위 '되팔렘'들의 타겟이 되면서 자신이 원하는 음반들을 레코드 페어의 셀러들 속에서 찾겠다가 아니라, 서레페 한정반을 사러가는 것이 모든 행사 참가의 주목적이 되어버리는 기현상을 초래한 것이다. 뭐 개인이 줄 서서 그걸 사고 집에서 잘 듣고 소장하겠다면야 무슨 문제랴. 그러나 결국 여기에 줄서서 음반을 사가져 가서 또 다른 곳에 가서 비싸게 팔아먹는 사람들이 '음악 매니아'의 얼굴을 하고 그 자리에 줄 서 있는 것은 분명 문제다. 물론 이것을 원해서 서레페가 한정반을 만든게 아님은 잘 안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만을 낳으리라는 법은 없다는 것도 주최측도 잘 아시리라 생각한다. 

오전 9시 10분부터 줄을 선 내가 352번 번호표를 받았지만, 100장을 판매한다고 공지한 이 타이틀들은 구매할 수 없었다.

3. 개인적 대안 제시

지난 며칠간 이 문제에 대해 몇몇 페친들이 어떤 이는 매우 과격하게, 어떤 이는 적당히 완곡하게 비판하는 글들이 꾸준히 올라온 것을 읽었다. 문제가 있다면 뭔가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겠지. 이 문제를 어찌 해결해야 할까. 두 가지를 제시해본다. 

(1) 개인적으로는 이제 서울 레코드 페어를 기점으로 판매를 시작하는 '한정반'은 더 이상 제조하지 않는 것으로 하거나, 굳이 해야겠다면 '전 물량 사전 주문제'를 실시했으면 한다. 레코드 페어의 기획 단계에서 이미 2022년 행사가 끝나자마자 2023년 한정반 제조 계획을 수립하고 최소 6개월, 최대 8-9개월 전에 미리 한정반 리스트를 공개한 후 (백예린의 음반이 그랬던 것처럼) 사전 주문을 받는 것이다. 그 데이터를 쌓아 음반을 제작하고, 선주문한 사람들이 음반을 수령하려면 레코드페어가 진행되는 시간에 언제든지 와서 음반을 받아가면 되게 하는 것이다. (애초에 예약시 선결재이며 우편수령은 불가능하게 하라. 그정도 페널티 필요하며 1ID 1매만 구매는 필수다. 행사기간에 현장에 와서 안받아가면 해당인에게는 환불처리하고 이후 레코드페어와 연대한 각 지역 특정 레코드점들에 분배하여 잔량 판매를 진행한다.) 그럼 새벽부터 줄을 서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올해는 개별 레이블들의 최초 공개 한정반까지 포함하면 총 30종에 가까운 음반들이 공개되었는데, 이런 방식보다 레코드페어가 직접 기획한 재발매반만 딱 최대 5종 이내로 릴리스해야 한다고 본다. 

(2) 레코드 페어의 한국적 상황에서의 또 하나의 중요한 목적은 음반 시장의 고사로 고생해온 각 지역의 중고 음반 매장들, 신보도 취급하는 레코드점들이 이 기회로 새로운 수요자들과 만나는 기회를 열어주는 데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이제 어느 정도 레코드 페어가 정착을 했다고 본다면, 이번에는 현재 미국과 일본이 하는 것처럼 '한국식 레코드 스토어 데이'라는 행사를 기획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레이블들의 최초 공개 한정반LP들은 레코드 페어 선공개보다는 차라리 이럴 때에 맞춰서 함께 공개하는 게 좋다고 본다. 예를 들어 7월 7일은 레코드 스토어 데이!! 라고 정하고 그 날자에 30-40종의 신작-리이슈 한정반 타이틀을 이 기획에 동참한 전국의 소매 음반점들(신나라, 핫트랙스, 알라딘, 예스24 등 대형 유통쪽은 반드시 제외한다)에 지역별로 물량을 골고루 안배하여 배급하게 하는 것이다. (인천이라면 부평 소리그림이나 배다리 형제 레코드 같은 곳이 참여하는 거다) 그러면 서레페처럼 한 곳에 모이는 게 아니라 해당 매장으로 음악 팬들이 찾아가는 효과를 줄 수 있고, 그 기회에 그 곳에 있는 다른 중고음반들도 구경할 수 있으니 좋은 효과 아닐까. 그리고 제발, 아무리 적게 찍어도 500장은 기본으로 깔고 가자. 그거 안 팔려 재고 남을까 고민하지 마시고. 이 방식으로 한다면 전국에 5백장 깔리는 거 절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인기 있는 음반은 최소 1000장은 기본으로 깔아주시고. (요새 분위기에선 2000장 해도 다 나감.)

4. 결론

레코드 페어나 한정반 LP 발매 등의 요새 한국 음반 시장에서 기획되는 일들에는 나름의 장점도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위에 파리가 꼬일 수 있는 것처럼 여러가지 문제점이 발견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이제는 보다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런 이벤트를 교정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레코드페어 내부에 있었던 신세계레코드(예, 과거의 그 음반사 맞습니다) 판매 부스. 참고로 이날 판매한 음반들은 새로 찍은 것이 아니라, 해당 레코드사 창고에 30년간 묵어있던 미개봉반 재고들을 판매한 것이다. 미개봉이었기 때문에 가격이 꽤 비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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