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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대학로 컴백쇼...2004.5.29

Concert Reviews

by mikstipe 2006. 4. 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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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라는 팀을 처음 알았던 것이 대학교 1학년이었던 92년이었다. 당시 라디오에서도 밤만 되면 열심히 틀어주던 <별이진다네>는 그 인트로의 기타소리와 배경으로 들리던 귀뚜라미 소리로 여러 사람들의 센티멘탈리즘을 자극했고, 나도 분명 그 중의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기타를 처음 배우던 나도 틈만나면 (전주 다 빼고) 그 곡을 연주하며 불렀으니까..... (그러고보니 과방에서 기타치며 노래부르던 시절이 그 언제였었나 싶다.... 그립당....^^;)

그리고 그들이 방송에는 거의 안나온다는 부류라는 것을 알고, 그들의 공연이 그렇게 재밋대더라는 입소문만 들은 상태에서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본 그들의 공연은 정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8인조라는 대구성에, 당시 신보였던 3집에서는 <옛친구에게> 한곡만 접한 상태로 갔음에도 공연의 모든 레파토리가 훌륭했던, 또 무엇보다 멤버들이 보여준 완벽한 화음은 그들과 낯선사람들(90년대 잠시 활동한 퓨전취향의 보컬팀, 고찬용, 이소라가 그 멤버였음)을 '한국의 맨하탄 트랜스퍼'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었다. 바로 다음 날 집에 오는 길에 여치의 1,2,3집을 한꺼번에 LP로 구입했고, 그 날부터 엄청나게 여치를 들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3집 <세가지소원> LP가 지금은 잡음이 제일 심하다....--;)

그 후 나는 그들이 앨범을 낼때마다 적어도 한 번씩은 혼자서라도 그들의 공연을 보러갔었다. (5집 후반에 보러간것 한 번, 7집활동 후반기 단체관람 한 것은 아마 나만의 기억이 아닌 여러 식구들의 기억일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공연을 본 횟수가 열 손가락을 거의 채워갔지만, 2001년 여름 예술의전당 야외무대에서 동물원과 가졌던 공연을 본 것을 마지막으로 그들의 공연을 보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 우연히 '여치 대학로 컴백쇼' 공지를 보고 20000원이란 싼 가격에 "오랜만에 가볼까" 생각했다가 마침 5월 모임을 이 이벤트로 잡은 덕에 다시 그들을 만날 기회를 얻게되었다.

대학로 질러홀...태진이 노래방 기계 사업으로 돈 빵빵하게 벌더니 그래도 음악을 위해 투자를 좀 했군...하는 생각으로 공연장에 들어갔을 때, 예매상황에서 확인했듯 자리는 이미 만원이었다. 좁은 통로를 비집고 간신히 자리로 들어와 앉은지 5분 뒤, 4시 10분에 공연은 80년대 히트팝송인 Gazebo의 <I Like Chopin>으로 시작되었는데, 사실 이 순간 왠지 모를, 그동안의 공연과는 사뭇 다른 낯설음을 느꼈다. 한 번도 그들 공연의 첫 곡으로 팝송이 연주된 역사가 없었는데.... 그리고, 무대 위에서 낯익은 얼굴이 남준봉과 조병석 둘 뿐이라는 것에 '도데체 나머지 멤버들은 어디 간거지?'라는 궁금증만 증폭되었다. 장난 아님 초반부의 설정이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앞의 두 곡이 끝나고 들어간 멘트에서도 아무 언급이 없자, '아, 그럼 2장짜리 베스트 앨범의 신곡 이후 여치멤버는 둘만 남은건가?'하는 에피파니가 뇌리를 강타했고, 그것은 확실한 사실이었다. (오늘 아침 다음카페에 들어가 지난 게시물을 뒤적인 결과 우리가 알던 근래의 5인조에서 현정호, 이수정, 이선아는 모두 그룹을 떠났다고 한다. 결국 조-남 콤비는 작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둘이서 공연을 해왔다고 한다.)

바로 이 사실이 3시간 30분동안 공연을 보면서 내가 (어제 대부분의 우리 OB가 공감하신 바이지만) 예전과 같은 꽉 짜여진 감흥을 전혀 받지 못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사실 두 사람의 공연에서의 재치있는 말솜씨와, 야유회를 온듯한 다채로운 공연 구성, 다년간의 공연으로 다져진 그들의 능숙한 보컬과 세션들의 군더더기 없는 연주들.... 그런 부분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비록 <왠지 느낌이 좋아>가 담긴 8집부터 이미 그 전조를 보였지만) 여행스케치 음악의 핵심이었던 남녀 혼성 멤버체제가 보여주는 최고의 장점인 화음의 미학은 더 이상 이들의 공연에서 느낄 수 없었다.

물론 여행스케치의 음악적 리더는 조병석이고 (그가 3집부터 지금까지 여치의 모든 곡을 작곡했다.), 그의 능력이 있었기에 그룹은 15년이상 장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결정적 히트곡들에서 훌륭한 가창력을 보여준 남준봉도 분명 밴드의 리더 자리에 서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여치의 타 멤버들이 각각의 곡들에서 보여준 풋풋한 보컬솜씨와 7명이건 5명이건 화음을 통해 기존 가요와 격이 다른 곡의 아름다움을 창출했던 이들의 능력을 공연에서 맛볼 수 없다는 건 여치를 10년이상 아껴왔던 팬의 입장으로 볼 때도 최초의 좌절감을 느낄 정도였다. 이들의 공연이 단지 중간 이벤트들과 화려한 멘트들만이 강조된다면 그게 다른 여타 콘서트들과 어떤 차별이 있을까? (그리고 후반부에 등장한 나훈아 메들리는 이들의 이벤트가 초기의 풋풋함을 많이 잃은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배가되었다.)

물론 예전에도 그랬듯 여행스케치는 몇명으로 구성되었든지간에 분명 기본 실력을 갖춘 팀이고, 자기 팀 이외에는 거의 다른 가수에게 곡을 주지 않는 조병석의 스타일상 앞으로도 여행스케치의 이름으로는 좋은 곡들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들을 보려고 오는 새로운 관객들도 계속 생길 것이다. (아마 공연장에 있는 사람들의 일부, 아니 반수는 과거의 여치 공연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밴드도 그럴거라고 약간 전제를 한 듯하다.) 그러나, <어린시절로>,<시종일관>등 멤버들의 화음이 있을때 그 느낌이 살아날 수있는 이들의 과거 히트곡과 <운명>, <난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어>와 같은 남녀 듀엣곡들을 더이상 공연에서 옛모습대로 만나볼 수 없거나 아예 들을 수 없다는건 '추억이 무너진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 (<산다는 건...>,<초등학교 동창회 가는날> 등을 남자 멤버들 둘이서 부르는 모습은 정말 '애처로왔다'.)

여치에게 앞으로 바라는 한 가지, 앞으로 둘만을 중심으로 계속 활동을 하겠다면 제발 공연 시에는 여성 백 보컬(실력있는 사람들로) 둘만 대동하고 공연하기를 바란다. 주어진 현실은 안타깝지만, 팬들은 둘만의 고분분투를 바라기보다는 예전의 추억도 되살리고 싶기 때문이다. 여성보컬이 빠져버린 여치의 음악은 과거의 그들과 너무 급격한 단절이 아닐까? 아님 조금 더 내실을 다지고 여성 멤버들을 포함한 새 라인업을 두 사람이 오디션을 해서라도 모았으면 한다. 과거 윤사라의 탈퇴로 인한 공백을 이수정의 가입으로 어느정도 회복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그들이 여건만 허락한다면 새 멤버를 못 구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 가요계의 불황이 이들을 구조조정 시켜버린 숨은 이유일 수도 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공연이라 기대도 많이 했는데, 현재로 인해 과거를 더 추억하게 만드는 공연이었단 생각이 드는 것은 참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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