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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제가 웹진 100비트에 기고하고 다음 뮤직에 컨텐츠 제공된 내용입니다.


80년대에는 새로웠고, 여전히 로맨틱한 ‘뉴 웨이브’ 시대 아이콘의 대표작

  1980년대의 초반부와 중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뉴 웨이브(New Wave)의 물결 속에서 현재까지 과연 몇 팀의 밴드가 해체 과정 없이 꾸준히 주류 레이블에서 생존했는지 체크해 본 적이 있는가? 만약 이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면 그 시대를 거친 음악 팬들은 가장 먼저 듀란 듀란(Duran Duran)을 거론할 것이다. 현재의 10대에게는 이들의 현재 모습은 단지 얼굴에 화장을 진하게 하는 50대 초반 중년 아저씨들이 구닥다리 일렉트로닉 팝을 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1980년대에 청소년기와 청춘을 보낸 그대들의 이모들이나 어머니들께 한 번 여쭤보라. 그들에게 듀란 듀란은 아직 한국에서 전영록 정도가 가장 젊은 스타로 불리던 시절, 대륙 건너 이 땅의 여심까지 흔들었던 꽃미남 아이돌(!)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당시엔 존 테일러(John Taylor)나 사이먼 르 봉(Simon Le Bon)의 사진이 동네 문방구에서 코팅되어 여학생들의 가방 속에 모셔졌다.) 그러나 그들을 당시의 에프티 아일랜드나 씨 앤 블루같은 밴드였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들이 다른 동시대 라이벌들-저팬(Japan), 스팬다우 발레(Spandau Ballet) 등-이 다 사라진 후에도 그들의 색깔을 유지한 어덜트 록으로 ‘Ordinary World’를 차트 상위권에 올려놓았던 것, 원년 멤버들로 재결합했을 때 세계의 팬들이 열광했던 것, 그리고 데뷔 30년째를 맞은 현재도 팀바랜드(Timbaland), 마크 론슨(Mark Ronson) 같은 현 시대 프로듀서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들은 그간 철저히 대중적인 곡들을 만들어냈지만, 단지 유행의 틀을 넘는 탄탄한 연주력과 작곡 능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점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앨범 한 장을 뽑아야만 한다면, 바로 1982년 5월 발매된 2집 [Rio]가 모범답안이 되어야 한다.

대표곡 듣기

  발매된 지 30년이 다 되어가도 결코 질리지 않는 세련된 앨범 커버처럼, 이 앨범의 음악들은 누구도 쉽게 세월의 촌스러움을 언급하기 힘든 사운드의 향연이다. 볼륨을 올리고 첫 곡 ‘Rio’에서 넘실대는 존의 베이스 라인의 촘촘한 구성을 느끼고, 그 위에 깔리는 밴드의 실질적 리더 닉 로즈(Nick Rhodes)의 건반 연주력을 음미하면 5분이 넘는 러닝타임이 순식간에 지난다. 이들의 대표 싱글이었던 ‘Hungry Like The Wolf’와 ‘My Own Way’ 같은 곡에서 강하게 울리는 앤디 테일러(Andy Taylor)의 글램 록 타입 기타 연주와 로저 테일러(Roger Taylor)의 무난한 비트가 선사하는 로킹한 리듬의 흥이 전편에서 일관되게 흐른다. ‘Save A Prayer’와 ‘The Chauffeur’와 같은 1980년대가 아니면 듣기 힘든 신스 팝 발라드의 매력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당대를 기준으로 새로운(New) 느낌의 사운드이면서 도 동시에 낭만적(Romantic)이었던, 시대를 넘어 좋은 팝음악이 갖춰야 할 모든 미덕이 담긴 음반이다. [글: 김성환 교보문고 ‘핫트랙스 매거진’ 필자]

 

Posted by mikstipe

Chapter 1. 80년대 '아이돌'밴드', '뉴 로맨틱스'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다
              - Duran Duran

신스팝과 MTV시대의 영웅으로서의 80년대

  듀란듀란이라는 밴드의 시작은 1978년의 버밍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키보디스트 닉 로즈(Nick Rhodes), 처음엔 기타에서 나중에는 베이시스트로 전환한 존 테일러(John Taylor)를 주축으로 4명의 멤버가 함께 잼을 하면서 그룹의 탄생은 준비되었는데, ‘바바렐라(Barbarella)’라는 로저 바딤 감독의 공상과학 영화 속의 인물 이름을 따서 그룹의 이름을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초기 멤버 스테픈 더피(Steffen Duffy:보컬), 사이몬 콜리(Simon Colley:베이스)등의 탈퇴로 인해 고민하던 존과 닉은 드러머 로져 테일러(Roger Taylor), 그리고 멜로디메이커 잡지광고를 통해 선발한 기타리스트 앤디 테일러(Andy Taylor)를 합류시켜 팀을 정비하고 마지막으로 버밍엄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펑크 밴드 Dog Days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던 보컬리스트 사이몬 르봉(Simon Le Bon)을 80년에 팀에 합류시키면서 완전한 밴드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이들은 그 해 영국을 대표했던 레이블 EMI(Capitol)와 계약을 맺어 81년 3월에 데뷔 싱글 ‘Planet Earth'(영국 차트 12위)를 내놓게 되는데, 그들은 당시 탄생 후 얼마 되자 않아 다양성에서 빈곤함을 보이던 뮤직 비디오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그들의 패션감각과 수려한 용모를 팝 팬들에게 확실히 노출시킴으로써 신스 팝적 감각과 록앤롤의 리듬감을 적절히 융합한 그들의 사운드에 튼튼한 ’날개‘를 달고 전세계에 그들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첫 싱글 이후 이들은 셀프 타이틀 앨범 ‘Duran Duran'을 내놓게 되는데, 여기에 수록된 곡들은 그들의 음악 여정에서 가장 펑크적 요소가 많이 묻어난 것으로서 이들이 Punk와 Funk의 묘한 경계를 달리며 ('Girls on Film, Careless Memories') 거기에 신서사이저 사운드의 전위성('Telaviv')을 첨가하고자 함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앨범이었는데, 이 작품으로 그들은 영국 앨범차트 3위를 기록하며 차트에서 총 118주 동안 머무는 인기를 모았다. 이들은 곧이어 82년 봄에 두 번째 앨범 ’Rio'를 발표하고 ‘Hungry Like the Wolf'와 ’Save A Prayer'등의 싱글을 10위권에 올리며 유럽 지역에서의 그들의 인기를 다졌다. 하지만, 이들에게 아직 미국은 진출해야 할 대상으로 남아있었는데, 그들에게 그 길을 열어준 것이 다름아닌 MTV였다. 지금 보아도 뛰어난 스타일과 작품성을 과시하는 'Hungry Like the Wolf', ‘Rio'의 뮤직비디오는 83년도 MTV의 단골 메뉴가 되어 미국 시장을 강타했으며, 그 결과  두 싱글 모두 미국 시장에서 10위권에 오르는 인기를 구가했다. 이 인기의 여세를 몰아서 새로운 싱글 'Is There Something I Should Know'를 수록해 미국용으로 다시 내놓은 ’Duran Duran'앨범의 미국시장 10위권 진출은 그들의 당시의 인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라고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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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Review: Rio (1982)

  듀란듀란의 80년대 앨범들 가운데 어떤 앨범을 가장 좋아하냐는 질문을 던진다면 팬들이라도 서로 다른 대답을 들려줄 것이다. 그래도 필자는 이들의 80년대 앨범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단연코 82년 가을에 발표된 비로 이 앨범 ‘Rio'을 꼽고 싶다. 전체적으로 뉴 웨이브 사운드의 전형에 록앤롤의 리듬감이 적절히 융합된 이 작품은 존 테일러가 보여주는 펑키하면서도 역동적인 베이스 라인을 밑바탕으로 펑크 록적 기반을 갖춘 앤디 테일러의 직선적 기타 톤과 그 위세에 눌리지 않고 신서사이저를 통한 다양한 ’소리의 향연‘를 펼쳐내는 닉 로즈의 키보드가 연출하는 팽팽한 연주의 조화로 댄서블한 대중적 작품이면서도 동시에 ’감상용‘으로 전혀 손색없는, 뉴 웨이브/신스 팝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타이틀 곡 ’Rio'를 지금 다시 들어보면 존 테일러의 베이스 테크닉이 왜 당대의 다른 명 연주자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뤄 평가받는가를 감지할 수 있다. 한편, ‘Hungry Like the Wolf', ’My Own Way'나 ‘Last Chance on Stairway'같은 스트레이트한 작품들은 록음악 팬들의 귀에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며, 80년대식 신스 팝 키보드 연주의 향연을 접하고 싶은 이라면 ’Arena' 라이브 앨범을 통해 재평가된 ‘Save A Prayer'의 애잔함과 'The Chauffeur'의 전위적 사운드에서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Music Video : R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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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후 1983년 연말에는 이들의 세 번째 앨범 ’Seven and the Ragged Tiger'가 발표되었다. 이 앨범은 영국 차트 1위, 미국 차트 8위까지 오르는 성적을 거두며 ‘Union of The Snake', 'New Moon on Monday', 그리고 이들의 첫 번째 미국시장 1위곡인 ’The Reflex'와 같은 싱글을 연달아 히트시켰고, 이들의 미국시장에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하며 나아가 전 세계시장에서 그들의 명성을 확인시킨 앨범이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이러한 인기는 당대 뉴웨이브/신스팝 계열의 밴드들 중에서는 단연 으뜸이었는데, 당시 이들과 다수의 영국밴드들의 미국에서의 인기를 가리켜 언론이 이른바 ‘제 2의 British Invasion'이라고 불렀던 것에는 어쩌면 어느 정도 듀란듀란의 공헌이 컸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앨범 발매 후 약 1년 반 이상의 세계 투어를 감행한 이들은 그 해 11월 새 싱글 ‘Wild Boys'와 이 곡이 수록된 라이브 앨범 ’Arena'를 내놓으면서 자신들의 인기를 확인한다. 그러나, 85년에 이르러 이들에 대한 열기는 진정국면을 맞으며 007 영화의 주제가인 ‘A View to A Kill'의 녹음을 마치고 밴드는 앤디와 존이 주축이 된 Power Station과 나머지 3명의 멤버로 이루어진 Acadia라는 프로젝트로 2분화되는 사태를 겪는다. 이러한 상황은 밴드로서는 큰 변화의 신호탄이 되었는데, 이들 음악의 양대 축을 이루던 펑크 록과 전자 음악의 지향이 융화에서 균열로 전환된 첫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보컬리스트 Robert Palmer(이 앨범의 참여로 인해 이후 86년부터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함)와 Chic 출신의 드러머 Tony Thompson의 참가로 4인조 구성을 갖춘 Power Station은 마치 듀란듀란에서 록적인 요소만을 뽑아낸 듯한 사운드를 들려주며 ’Some Like It Hot', 그리고 T-Rex의 리메이크인 ‘Get It On'으로 큰 인기를 모았고, Arcadia도 앨범 ’So Red The Rose'를 통해 싱글 ‘Election Day'를 히트시키며 팽팽한 인기 대결을 벌였다.
  하지만, 이러한 그룹의 분화는 결국 로저 테일러의 탈퇴(그는 밴드를 떠난 이후 다시는 음악계에 돌아오지 않았다.)와 뒤이은 앤디의  솔로 전향으로 이어졌고, 결국 그들은 3인조로서 86년작 ’Notorious'를 제작하게 되었다. 이 앨범에서 그들은 프로듀서 나일 로저스와 함께 기존의 음악적 틀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여유 있는 음악적 시도들을 보여주며 그 동안 그들을 눌러 온 아이돌 스타 그룹의 이미지를 서서히 벗어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타이틀 트랙과 당시 국내 금지곡이었던 ‘Skin Trade', 그리고 우리에게는 정감 있게 다가왔던 발라드 ’A Matter of Feeling'의 히트로 이 앨범은 영-미 양측에서 비교적 성공작이 되었으며, 그들을 일단 위기에서 건져준 작품으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일단 이들의 인기는 80년대 초-중반만큼 뜨거워지기에는 이미 한 시기를 넘겼으며, 88년 말에 나온 앨범 ‘Big Thing'에서는 ’I Don't Want Your Love', 'All She Wants Is'같은 괜찮은 히트 싱글들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앨범 자체의 인기는 그리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89년에 이들은 자신들의 10년간의 싱글을 담은 베스트 앨범 ‘Decade'를 내놓으며 80년대의 활동을 정리하고 그 해 (한국 팬들에게는 기쁨 그 자체였던) 내한 공연 때 다녀가기도 했던 2명의 세션 멤버 워렌 쿠쿠룰로(Warren Cuccurullo:기타), 스털링 캠벨(Sterling Cambell: 드럼)을 정식멤버로 맞아 90년에 앨범 ’Liberty'를 내놓지만, 이 앨범은 일반 대중들은 물론 듀란듀란의 팬들에게마저도 ‘졸작’으로 취급받는 어정쩡함으로 인해 쉽게 대중에게 잊혀진 앨범이 되고 말았다.

성인 취향의 성숙한 사운드로 재기한 90년대

  사실 ‘Liberty'앨범의 실패로 많은 팬들은 이제 듀란듀란도 그 당시의 다른 신스 팝 밴드들처럼 몰락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닌가하고 우려를 표시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전작의 ’실패‘는 단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음악을 성숙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들의 사운드는 90년대에 와서 확연히 전시대와는 달라졌음을 보여주는데, 그 실체를 처음으로 확연하게 드러낸 작품이 바로 93년에 내놓은 'Duran Duran’ (필자주: 1집과 앨범명이 동일하여 일단 자켓 사진에서 따온 ’The Wedding Album', 또는 ‘Duran Duran 2'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이었다. 이 앨범은 보다 어쿠스틱한 면모를 띄면서 성인 취향의 프로듀싱을 보여주면서 그들을 잊을 뻔했던 전 세계 팬들에게 ’Ordinary World', 'Come Undone'과 같은 신선한 트랙들을 선보였고, 그 결과 차트상에서도 그들의 명성에 어느 정도 걸맞은 히트를 기록했으며, 그들에게 80년대에 별로 우호적이지 않았던 평론가들에게도 괜찮은 반응을 얻었던 작품으로 기록되며 이들을 80년대의 아이돌 스타에서 진지한 뮤지션으로서 재평가 받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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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Review: Duran Duran (The Wedding Album) (1993)
 

  듀란듀란에게 있어 이 앨범은 80년대 내놓은 다른 어떤 앨범 못지 않게 큰 의의를 가진다. 일단 이들의 대중적 인기를 회복시켜준 것도 그 이유가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의 사운드 지향이 80년대와는 확실하게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90년대에 새로 가입한 기타리스트 워렌 쿠쿠룰로는 이 앨범에서 비로소 듀란듀란의 1/4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데, 앨범 전편을 통해 그가 들려주는 기타 사운드는 3인조로 편성될 시절에 어딘가 빠져있던 이들의 록앤롤 감각을 강화하면서도 다양한 이펙트와 어쿠스틱 사운드의 활용으로 좀 더 성인취향의 성숙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전체적 앨범의 사운드는 80년대에 구사하던 스트레이트함이 감소하면서도 록 음악의 영역에서 보여줄 수 있는 다채로움이 ‘듀란듀란식’으로 소화되고 있는데, ‘Too Much Information'의 박진감 넘치는 진행은 듣는 이들에게 이 밴드의 연주력이 분명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됨을 증명하며, 'Come Undone'과 같은 미디움 템포의 신스 팝 트랙들에서 이들이 과거에는 담지 못했던 연륜에 기반한 우수(憂愁)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90년대의 듀란듀란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트랙이 되어버린 ’Ordinary World'는 단연 앨범의 백미로 왜 이 밴드가 90년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의 해답을 제시한다.



(Music Video : Ordinary World - 2005년 공연 실황 (원년 멤버 라인업으로 연주))===============================================================================================
Posted by mikstipe

사족: 'New Wave/Synth Pop의 생존자들'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이 칼럼들은 이미 2000년 12월부터 2001년 3월까지 음악잡지 GMV에 제가 연재했던 'Into The 80s'칼럼 내용 일부의 확장판입니다. (그 시기 이후의 내용까지 더 추가해서 실으려 합니다.)

이 시리즈 칼럼을 시작하며...

  1980년대 팝 음악을 기억하는데 있어 우리가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음악 장르가 있다. ‘뉴웨이브(New Wave)’, 또는 ‘신스 팝(Synth Pop)'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온 이 음악 장르는 당시에는 영국과 미국 등 전 세계의 팝계에 등장한 많은 신진 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업(業)으로 삼았고, 그 결과로 상당수는 짭짤한 재미를 봤으며, 분명 어느 정도는 ’주류 음악‘ 장르의 위치에 올라섰었음에도 당시 국내 음악팬들에게는 몇몇 아티스트들만이 그 존재를 (어쩌면 그 아티스트가 보여준 이미지 덕분에) 인정받고 인기를 모았으며, 평론가들에게도 그렇게 중요한 팝 역사적 ’정리의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그나마 90년대에 들어서야 몇몇 음악잡지에서 이 장르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글들이 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이 시리즈 칼럼에서는 본격적으로 80년대 팝 음악사를 정리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앞으로 3-4회 정도에 걸쳐 80년대 주류 뉴웨이브/신스팝 시장을 주름잡았고, 90년대를 넘겨 2000년대에 오는 이 시점에서도 아직까지 자신들의 이름을 지키고 있는 몇 팀의 아티스트들을 한 회에 두 팀씩 묶어 소개하고자 한다.

New Wave라는 장르에 대한 용어 정의 및 간단한(?) 이해

  뉴웨이브 (New Wave)라는 용어는 70년대 말과 80년대 초에 펑크 록에 바로 이어졌던 음악적인 사조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처음에는 Post Punk New Wave라는 두 용어로 쓰여지기 시작했으나, 결국 두 용어의 장르적 특성에 대한 구분은 명확해졌다. Post Punk가 예술적이고 어렵고 도전적이었다면, 뉴웨이브는 대중적인 음악이었으며, 순수하고 간결한 음악이었다. 이 계열의 음악들은 펑크 시대의 활기차고 반항적인 느낌을 유지하는 듯 하면서도 70년대부터 서서히 유행한 신서사이저를 활용한 전자음악과 스타일, 예술적인 이미지에 대한 동경을 음악 속에 담아내어 이전의 펑크 록과는 명확한 선을 그었다. 그와 함께 뉴 웨이브라는 이름 속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사조가 만연하게 되었는데, 대중적 팝 멜로디에 치우쳤던 밴드에서부터 신서사이저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록커들, 그리고 거기에 래게(Reggae), 스카(Ska), 복고적인 록앤롤 등을 곁들인 아티스트들에 이르기까지 그 다양함은 몇 마디 문장으로는 다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아티스트들 모두 팝적 감각과 현대적인 사운드 메이킹을 추구하고자 했으며, 신서사이저를 기반으로 한 음악 구성을 했다는 점에서는 한 길을 가고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러한 New Wave라는 사조 안에서 가장 서브 장르로서의 위력을 보여준 것이 New RomanticsSynth Pop인데, Duran Duran이나 Spandau Ballet등의 밴드들이 대표하는 New Romantics는 신서사이저를 활용한 록음악 속에 스타일과 글래머러스(glamorous)한 이미지를 중시한 음악이었으며, New Wave와 이제는 거의 동등하게 언급되는 Synth PopKraftberk등 선구적 전자음악 밴드들의 굴곡 없는 사운드를 더욱더 댄서블한 비트로 포용해낸 사운드로 표출한 밴드들을 언급할 때 사용된 용어로 Human League, Eurythmics, Howard Jones등이 이 호칭에 어울렸던 아티스트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80년대 초반까지는 사실 New Wave라는 용어는 거의 모든 팝/록 아티스트들을 묘사하는데 쓰여졌으며, 특히, 신서사이저를 많이 사용한 아티스트들에게는 예외 없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MTV라는 영상 음악 채널의 등장은 이러한 아티스트들이 붐을 이룰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되어 주었으며, 이 채널에서 수없이 틀어댄 뮤직비디오들의 힘으로 82년과 83년을 기점으로 뉴웨이브는 확실한 전성기를 맞게 된다. 물론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The Smith, R.E.M.과 같은 새로운 기타 중심의 밴드들이 대학 라디오나 언더그라운드 록 팬들의 호응을 얻기 시작하면서 그 열기는 조금씩 식어갔고, 신서사이저가 어떤 음악에서나 만연하게 된 그 이후에는 뉴웨이브 계열의 아티스트들의 음악은 완전히 대중적 팝과 동일선상에 놓여져 더 이상의 신선함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펼쳤던 사운드의 본질, 즉 대중적인 곡 구성과 전자음의 활용은 이후 여러 장르의 음악에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현재 브릿 팝이나 일렉트로니카 계열의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80년대부터 음악을 쭉 들어온 음악팬들이 가만히 듣게 된다면 이들의 향취를 느끼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90년대를 거쳐 소수의 매니아들을 위한 인디(?) 장르로 퇴색(?)한 뉴웨이브/신스팝 계열 아티스트들 가운데 아직도 명성을 잃지 않는 팀이라면 누구를 가장 먼저 꼽을 수 있을까? 몇몇 아티스트들이 떠오르겠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그 중에 가장 오랜 역사와 음악적 커리어를 유지해온 몇 팀들의 경우를 통해 그 생존의 사례를 점검해 보고자 한다.

Chapter 1. 80년대 'Idol 밴드', '뉴 로맨틱스'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다 - Duran Duran

Chapter 2. 원맨밴드 신스 팝의 기린아, 전자음에 휴머니티를 교배하다 - Howard Jones

Chapter 3. 생각할 줄 아는 'Wham!', 신스 팝의 정통 교주로 살아남다 - Pet Shop Boys

Chapter 4. 전자음에서 소울 팝으로, 세월 속 온기를 우정으로 흡수한 두 남녀 - Eurythmics

Chapter 5. 차갑게, 무겁게, 진지한 외골수 길이 그들을 정상에 올려놓다 - Depeche Mode

Chapter 6 . 즐겁게, 그러나 정교하게, 댄스 플로어를 위한 신스 팝에 20년을 바치다 - Erasure

Chapter 7. 80년대 유니 섹스 아이콘, 21세기 DJ로 돌아오다 - Boy George & Culture Club

Chapter 8. 신스 팝의 심리치료사 콤비, 끊어졌던 우정의 다리를 다시 잇다 -
Tears For Fears

Chapter 9. 컬트 밴드의 후신이 아닌, 신스 팝 시대의 산 증인로 살아남기 25년 - New Order

Chapter 10. Who's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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