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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사 베스트 앨범 100 (31위-65위) - 카페 음악취향Y 선정

스크랩칼럼+etc...

by mikstipe 2007. 4. 1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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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송창식 『사랑이야 / 토함산』, 서라벌, 1978

 1970년대 중반 대마초 파동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송창식이 3년여의 준비 끝에 내놓은 이 앨범은 말 그대로 송창식 음악세계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송창식은 이미『바보들의 행진 OST』(1975)에 실린「왜 불러」와 「고래사냥」과 같은 빼어난 자작곡을 통해 이미 싱어송라이터로 인정받은 바 있었다. 하지만 본작에 이르러 그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음악적 개성과 완성도를 겸비한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국악의 리듬과 창법으로 훵크, 포크 등 서구의 팝 형식을 감싸 안는 시도가 이 음반에서 처음 시도되었으며, 상당한 성과를 얻고 있다. 「토함산」,「돌돌이와 석순이」는 바로 이 새로운 방향성이 극에 달한 통쾌한 작품이다. 「사랑이야」와 「잊읍시다」는 송창식의 시원한 발성과 섬세한 정서가 빛을 발하는 대목이며, 「나의 키타이야기」는 포크에 기초한 곡 위에서 훵키한 베이스가 수를 놓으며 송창식의 목소리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명곡이다. 이호준, 조원익, 배수연, 김석규, 그리고 사브르를 비롯한 이태리와 필리핀인으로 구성된 밴드가 곡에 따라 적절하게 세션으로 배치된 본작은 자신의 음악을 완전히 장악한 송창식의 음악감독으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 소탈하면서도 아름다운 노랫말도 서정적인 악곡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나 “태극기 새겨놓은 가슴”을 노래하는 「병사와 향수」(병영국가 속에서도 낭만을 찾는 송창식의 낙천성도 함께 느껴진다)와 송결이라는 가명과 부인의 이름을 작사, 작곡자로 표기한 것을 보면서 우리는 그 시절이 음반 속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가장 암울한 시기였음을 조심스럽게 짐작할 수 있다. 유신 말의 업압된 분위기 속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음악이 존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헤비죠]
  
 

32. 김현철 2집 『32℃ 여름』, 동아기획, 1992


 89년의 데뷔 앨범으로 일약 ‘천재 키보디스트’가 된 김현철이 대형 교통사고의 악재를 딛고 발표한 두 번째 앨범이다. 데뷔 앨범에 수록된 「오랜만에」 「춘천 가는 기차」 「동네」의 따뜻한 감성을 기억했던 사람들에겐 본 앨범의 「그런대로」 「누구라도 그런지」의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다소 차갑게 느껴졌겠지만, 사실 그건 어느 정도 시대의 부름이었다. 윤상, 신해철, 정석원 등과 마찬가지로 김현철 역시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새로이 발굴하고자 했던 신세대 뮤지션이었다. 「그런대로」에서 후렴이 마지막으로 변주되기 전에 등장하는 키보드 솔로와 프로그래밍 사운드의 조합을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선진적인 뮤지션이었는지 알아챌 수 있다. 흥미로운 건 어쿠스틱의 활기로 가득한 「32℃ 여름」이 음산한 「그런대로」와 똑같이 내러티브 없는 가사, 김현철 특유의 보컬 애드립, 개성이 뚜렷한 키보드 연주를 공유하면서 하나의 김현철표 음악으로 동질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까만 치마를 입고」의 유려한 보컬라인을 들어보면 그 종합은 보다 분명해진다. 이건 재즈이기도 하고 팝이기도 하고 발라드이기도 하며 데뷔 앨범의 따뜻한 감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김현철이다. 청춘의 고뇌를 담은 노래에 「나나나」라는 싱거운 제목을 붙여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당시의 김현철은 음악적 생기로 충만해 있었다. 조동익, 함춘호, 손진태와 함께 퓨전 연주 프로젝트 야샤(Yasha)의 일원이었으며 영화 『그대 안의 블루』의 사운드트랙을 진두지휘하기도 했던 92년의 김현철은 명실상부한 ‘돌아온 천재 키보디스트’였다. [호떡바보]
  
 

33. 크래쉬 2집『To Be Or Not To Be』, Metal Force, 1995


 『Endless Supply Of Pain』은 음악도 음악이려니와 콜린 리차드슨(Colin Richardson)이라는 이 바닥 최고의 프로듀서와 함게 작업하며 한국 메탈의 격을 올려놓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To Be Or Not To Be』라는 타이틀에 어울리게 이 앨범은 전작과는 판이하게 다른 환경에서 작업을 해야만 했다. 우선 팀의 보컬이자 베이스인 안흥찬이 당시 공익요원으로 복무 중이었고, 더 이상 콜린과 함께 엘범작업을 할 수도 없었으며, 대중들의 관심과 데뷔엘범의 어마어마한 판매량으로 인해 생기는 심리적 압박감까지... 많은 적들과 싸워야만 했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노파심은 「Machine Of Silence」의 강력한 리프와 비트에 의해 부셔져버린다. 전작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강력한 스래쉬(Thrash)사운드는 고막을 따가울 정도로 때려댄다. 본작의 주를 이루는 것은 역시 강력한 메탈사운드다. 지난 엘범 만큼이나 레코딩 역시 정교하고 훌륭하게 작업되어 있고 윤두병의 날카로운 기타플레이와 미칠 듯이 울부짖는 안흥찬의 목소리, 그리고 정용욱의 정확하고 파워풀한 드러밍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다.  음악적인 실험을 과감히 시도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Really Discord」에선 거친 그로울링 창법이 아닌 나래이션만으로 곡을 전개하고 있고, 전작에 수록되어 있던 「My Worst Enemy(War Mix.)」는 더 빠르고 전자음을 많이 사용하여 마치 하드코어 테크노를 듣는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거기에 「Dead Point」의 뒤에 숨어있는 보너스 히든트랙은 랩음악이다. 이런 음악적 실험은 후에 인더스트리얼(Industrial) 사운드에 가까워지는 그들의 행보를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미고]
 
  

34. 김현식 3집 『김현식 Ⅲ』 동아기획, 1986


 한국대중음악사에서 김현식이 차지하는 위치는 매우 이례적이다. 70년대를 주름잡던 한국 포크의 마지막 세대이면서, 매체에 거의 노출되지 않는 상황에서 대단히 훌륭한 팝 발라드 넘버(블루스에 가깝긴 하지만)로 대중의 인정을 받는 거의 첫 사례인 동시에 안타까운 요절에 따른 신화화과정까지. 어떻게 보면, 그 자신이 시현했던 음악보다도 더욱 불꽃처럼 타오르는 삶의 궤적이 그의 음악을 가릴지도 모른다. 동시대의 어떤 보컬리스트보다 ‘열창’의 근원적 의미로 다가오는 그 자신만의 보이스컬러는 본작을 기점으로 정착단계에 이른다. 본인의 명의를 내걸고 발매된 음반이지만, 뒤를 받쳐주는 밴드 봄여름가을겨울 - 김종진, 전태관 (봄여름가을겨울), 장기호, 박성식(빛과소금), 故유재하 - 는 팝 성향의 작품 전반에 걸쳐 블루스의 질감을 한층 돋보이게 해주는 거름과 같은 역할을 한다. 특히, 「빗속의 연가」, 「비오는 어느 저녁」, 「떠나가 버렸네」 등은 독특한 심상을 지닌 블루스 보컬리스트 김현식과 그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기민하게 포착하는 작곡가로서의 김현식이 갖는 능력을 잘 보여준다. 더불어, 박성식이 만든 메가히트싱글 「비처럼 음악처럼」의 성공은 동아기획으로 대표되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입지를 일반 대중들에게 까지 넓히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김현식이라는 가객의 최전성기를 알린 본작은 과잉된 에너지를 발산하진 않지만, 80년대의 한국 팝이 지나온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을 떠올리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마이너]
 
  

35. 이정화(덩키스) 『싫어/봄비』, 킹/신향, 1969


 1964년 심혈을 기울인 ‘애드4’가 대중에게 외면받자 신중현은 다시 미8군으로 돌아간다. 자신의 음악이 통용되지 않는 한국 음악계를 떠나 베트남을 통해 서구 음악계로의 진출을 계획하고 있었다. 신중현의 발목을 잡은 것은 펄 시스터즈였다. 1968년 펄 시스터즈의 센셔이션은 한국대중음악계의 판도를 뒤바꿔 놓은 사건이었다. 여기에 힘입어 신중현은 보다 밴드 중심의 앨범을 발표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같은 해 김추자의 성공에 철저히 가려지게 되지만, 이정화를 전면에 내세운 덩키즈의 데뷔 앨범은 초기 신중현 음악의 가장 높은 봉우리다. 이정화는 5인조 사이키델릭 록 밴드 덩키즈의 리드보컬이다. 즉, 이 앨범은 이정화라는 가수의 앨범이라기보다 덩키즈의 앨범이라고 보는 편이 더 옳다는 이야기다. 첫 곡 「싫어」는 당시 소울&사이키 음악이라 불리던 보컬 중심의 흥겨운 곡이다. 곧바로 이어지는 「봄비」부터는 놀랄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이후 ‘퀘션스’ 박인수의 목소리로 많이 알려지게 되지만 「봄비」는 신중현 특유의 한국적(?) 송라이팅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곡이다. 펄 시스터즈나 김추자와는 다르게 미성의 편안한 보컬리스트인 이정화는 신중현의 음악을 있는 그대로 재현해내는 데 적합한 인물이었다. 이어지는 「먼길」과 「내일」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이 앨범이 대중적으로 실패하면서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못했는데, 신중현식 작법이 뛰어난 트랙들이다. 특히 「먼길」의 아련한 가사들과 대위법으로 얽히는 현 세션, 오르간 연주의 조화는 신중현 음악의 뛰어난 감각이다. 그리고 우리는 16분 34초 동안 펼쳐지는 사이키델리아, 「마음」에 이르게 된다. 와와와 딜레이를 활용한 화려한 기타연주, 오르간 터치의 매력, 드럼 솔로로 기나긴 즉흥연주를 마감하고 보컬 멜로디에게 바톤은 넘기는 이 고요한 환타지는 신중현 음악의 한 정점이자 당대 한국대중음악이 성취해 낸 커다란 봉우리였다. [전자인형]
 
 

36위. 신해철 『Jungle Story』, 대영AV, 1996


 황금기라고 해야겠다. 넥스트의 이름으로 나온 2장의 컨셉 앨범은 평단의 관심과 팬층이라 불리는 교도들을 형성하였고, 밴드의 이름으로는 같은 해 라이브 앨범이 나왔으며 대한민국에서 락 밴드가 누릴 수 있는 최대한의 수혜를 누렸던 시기였다. 밴드의 브레인이었던 신해철의 창작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고 '다소간 거대한 기름기'가 빠져나간 개인적인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으며 결과물은 영화 사운드트랙이라는 명분을 띈 의외의 솔로작이었다. 물론 그 과정은 여유로움보다는 급조의 강박함이 있었지만 결과물은 실로 알차다. 메인 테마가 3번 반복되는 구성상의 얄팍함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그 사이를 구성하는 한국현대사에 대한 조심스럽고 소탈한 언급(「70년대에 바침」)과 오마쥬의 감각(「내마음은 황무지」), 무한궤도-신해철-넥스트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일관된 가사의 문제 의식(「그저 걷고 있는거지」)은 실로 감동적이다. 그 무엇보다 세상이라는 길에 들어선 입문기의 청년이 30대가 되어 내뱉는 처절한 실존의 버거움이 오르간과 백보컬이라는 장치와 섞여 「절망에 관하여」로 표현되는 순간은 이 앨범의 백미. 우리가 이 앨범을 그의 경력 중 가장 중요한 넥스트의 앨범들 보다 수위에 선정한 이유는 여기에 기인한다.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의 블럭버스터적 감수성과 음악적 야심이 덜 표면화된 이런 솔로작들에서 되려 그의 역량과 일관된 세계관의 확장을 재발견하는 순간, 「Jungle Strut」 같은 실험작과 「아주 가끔은」같은 팝넘버까지 실은 그가 모두 껴안고 있었던 가능성이었고 이 앨범은 그들을 담은 좋은 그릇이었던 것이다. [렉스]
 
  

37. 조용필 4집 『못찾겠다 꾀꼬리』, 지구, 1982

 조용필은 1980년대 대적할 가수가 없는 절대적 슈퍼스타였다. 그러나 조용필이라는 이름이 지금까지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단순히 그의 막강한 인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음악적 완성도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완벽에 가까운 한국적 ‘주류’ 대중음악을 완성해 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조용필은 「창 밖의 여자」가 담긴 1집으로 가요계에 복귀할 때부터 실험성과 대중성의 조화에 있어 탁월함을 보여줬다. 음반 녹음에 참여하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은 한 번씩 조용필의 밴드 “위대한 탄생”을 거쳐 갔다. 최고의 프로페셔널 연주자들과 교감하며 앨범이 쌓여갈수록 조용필의 음악은 점점 더 단단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1기 위대한 탄생(곽경욱(기타), 이건태(드럼), 김청산(무그, 피아노), 김택환(베이스))과  이룩한 최고의 음반이 바로 본작이다. 훵키한 「못찾겠다 꾀꼬리」, 절절한 조용필의 목소리가 빛나는 대곡 지향의「생명」, 한국적 리듬과 록의 접점을 찾은 「자존심」, 1980년대 ‘발라드’라는 장르의 단초가 된 「비련」등이 포진한 앨범은 가히 한국적 스텐다드 팝의 견본시라 할 만 하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스텐다드 팝이란 이미 검증된 스타일의 안전한 차용이지만, 조용필에게 스텐다드 팝은 서구적 악기와 음계를 가지고 한국적인 음악으로 완전히 재해석하는 고독한 길이었다. 라이브 버전으로 실린 「민요메들리」는 이러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노력이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지 단적으로 들려준다. 민요, 트로트, 록, 훵크, 발라드 등 물과 기름 같은 다종다양한 장르가 조용필이라는 이름과 만나면 하나가 된다. 암울하던 시절 한국 주류 대중음악계에 조용필과 그의 완성도 높은 음악이 있었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었다. [헤비죠]
  
 

38. 리쌍 2집『재, 계발』, 서울음반, 2003


 힙합이 언제부터 대세가 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수많은 힙합 뮤지션들의 노력이 있었고 그것이 결과로 나타난 것. 그중에서도 리쌍이 친근하게 다가온 건 바로 '정인'과 같은 매력적인 여성보컬의 피쳐링을 제대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남성의 거친 랩과 여성의 부드러운 보컬이 서로 대비효과를 이루며 더욱 귀에 잘 들어오는 가장 대중적인 형식의 팝에 가까운 힙합. 비슷한 예로 성공한 이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리쌍은 돋보이는 존재다. 매니아와 대중을 동시에 사로잡기란 쉽지 않은 법인데 이들은 분명 매니아들의 지지를 얻으면서도 상업적으로 성공한 케이스다. 독특한 랩과 직설적이면서도 서정적인 가사를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는 개리와, 한국인이 좋아하는 멜로디를 잘 알고 이를 만들어내는 능력 또한 훌륭한 길. 이 둘은 이런 면에서 분명 최고의 듀오다. 이미 1집『Leessang Of Honey Familly』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선보였고 2집『재, 계발』을 통해 그것을 확고히 했다. '그들은 결코 랩과 노래 중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는다. 양자가 한쪽에 치우칠 경우 매니아와 대중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사로잡기 어렵지 않나 싶은데 리쌍은 그렇지 않다. 개리의 랩은 분명 독특하지만 튀지 않고 길이나 다른 싱어들의 보컬, 그리고 멜로디와 멋들어지게 조화를 이룬다. 이것이 리쌍의 장점이 아닐까. 또 하나 장점은 그들의 노래에 적절한 보컬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아닐까 싶은데... 정인, BMK, 김범수 같은 걸출한 보컬리스트들의 피쳐링으로 이 앨범은 더욱 빛날 수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 『재, 계발』이라는 멋진 작품을 만들어 내며 자신들만의 색깔을 완성시킨 것이다. [편지]
 
  

39. 이장희 『그건 너 』 ,성음, 1973


 70년대의 우리가요는 그야말로 황금기중에 황금기였다. 물론 외국의 영향을 많이 받긴 했지만 그 속에서도 나름대로 자신의 삶이나 사랑을 음악에 담아내려는 노력과 시도들은 청년문화 라는 하나의 긍정적인 사회현상까지도 만들어 냈다. 이장희 라는 사람은 그 70년대 청년문화의 한 가운데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발군의 실력과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이 앨범은 그런 그의 인간적인 매력이 포크 라는 음악 장르 속에 깊이 녹아 든 음반이라고 할수 있다. 물론 71년 「겨울이야기」 로 데뷔 했을 때부터 그는 특유의 감수성을 자랑하며 듣기에 전혀 거북하지 않은 사랑노래를   불렀지만 이 앨범이 유난히 더 돋보이는 이유는 이 앨범부터 사랑만으로는 채워지기 힘든 직설적인 감정들을 노래 속 에 담기 시작 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  앨범 에 수록된 「그건 너」 와 역시 70년대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영화 「별들의 고향」에 삽입되었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이 두곡 은 실제 연인에게 바치는 곡이었다고 하니 직설적이지만 따스한 알짜배기 감성이 넘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 라고도 볼수 있겠다. 이렇듯 약간은 껄렁하고 터프 하지만 따뜻한 감성이 제대로 살아 날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오랜 친구이자 『골든포크』 음반을 통해 알려졌고 이 앨범에 전체적인 밑그림을 그렸던 기타리스트 강근식의 역할이 지대했다고 말할수 있다. 그는 이 앨범을   과거에 활동했던   프로그레시브 (progressive) 그룹 동방의 빛 팀들과 함께 작업했는데 특히 피아노처럼 정확하게 들리는 배수연의 베이스를 듣고 있노라면 친구와 소근소근 비밀 이야기라도 하는듯한 정겨움이 느껴진다 지금까지도 이 정서는 계속 진행중이다. [폴린]
 
  

40. 한대수 2집 『고무신』, 신세계/힛트, 1975

 한국대중음악에서 한대수의 존재는 각별하다. 남의 곡을 받아 부르는 ‘가수’를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 부르는 ‘아티스트’로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1968년 드라마센터에서 가진 한대수의 데뷔 공연은 그래서 역사적인 사건이다. 비록 그것이 그리니치빌리지의 모던 포크에게서 유래한 것일지라도 한국음악사에서의 위상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다. 또 한 가지 역사는 개인의 감수성이 권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혀진 사건 때문이다. 철조망에 고무신 두 짝이 포박되어 있는 이 앨범의 커버 아트는 70년대라는 시대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직관이 한대수 음악의 특징이다. 70년대 발표한 두 장의 앨범 중에서 데뷔 앨범이 아닌 이 앨범을 명반으로 선정한 이유는 전적으로 「고무신」과 「여치의 죽음」 두 곡 때문이다. 「여치의 죽음」은 음악만이 표출할 수 있는 다면적 의사표현방식을 증명한다. 절규에 가까운 목소리, 스피커 좌우를 오가며 정신을 고양(혹은 이완)시키는 낯선 음계, 톱날 소리, 유복성이 연주하는 아프리카적 즉흥성 은 한국대중음악의 가장 뛰어난 혁신이다. 이 낯선 소리들은 권위주의 시대에 대한 개인의 반항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인간 내면의 어두운 곳을 파헤치는 곡이라는 해석도 가치 있다. 「여치의 죽음」의 파격이 당대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반영이라면, 「고무신」을 바라보는 음악적 입장은 조금 더 복잡하다. 즉흥적으로 흥얼거리는 한대수의 퍼포먼스는 말과 노래의 경계를 허물어 듣는 이에게 무한한 자유를 선사한다. 질박한 토속성이 내포되어 있는 로큰롤이라고 할까?  명태와 아버지, 고무신과 만수무강같은 낱말들이 뼈 속 깊이 한국인인 한대수를 드러내지만 록적인 편곡과 악기들의 자율성은 지극히 영미 포크의 것이다. 이런 경계적 역설은 한대수 음악의 핵심이며 어느 관습에도 속하지 않은 디아스포라로서 한대수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전자인형]



41. 나윤선 『So I am…』, Bis Music/EMI, 2004


이 앨범은 2004년 프랑스와 한국에 동시에 발매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차트 5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고, 다음해 참가한 앙티베스-주앙-뺑 페스티벌(Antibes Juan-les-Pins Festival) 콩쿨에서 나윤선 퀸텟은 그랑프리를 차지한다. 유럽의 모든 장르 음악 중에서 1위를 뽑고 각 장르별 1위중에서 그랑프리를 가리는 유럽 최고 권위의 시상식이었다. 나윤선의 음악은 현대 재즈가 지향하는 탈장르적 성격을 가장 모범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보컬 재즈의 천편일률을 거부하고 새로운 접근법을 들려줌으로서 보컬 재즈의 영영을 무한히 확장시켰다고 평가받는다. 퀸텟의 멤버들은 한국과 이스라엘, 영국, 프랑스의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모두 프랑스 재즈 학교 CIM 동료들이다. 이런 다국적 감성이 장르의 경계를 허무려는 재즈의 속성과 잘 맞아 떨어졌다. 실제로 이 앨범을 재즈라고 명명할 수 있는 것은 앨범 전반에 녹아 있는 즉흥성 때문이다. 그만큼 파격적이다. 나윤선은 무엇보다 소리의 뉘앙스에 집중한다. 침묵에서 속삭임을 이끌어내고 미니멀한 악기들이 이를 뒷받침하는 방식을 취하며, 감정을 끌어 올려 폭발시키거나 생경한 이미지로 소리들을 직조해내기도 한다. 세 번째 앨범 『Down By Love』까지는 익숙하게 들어왔던 곡들을 리메이크함으로써 자신의 독특한 사운드를 소개하는 수준이었다. 네 번째 앨범 『So I Am …』에 이르러 비로소 나윤선은 자신만의 사운드를 확고히 한다. 모두 퀸텟 멤버들의 자작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주의 긴장감도 가장 뛰어난 앨범이다. 여전히 척박한 한국 재즈계에서 나윤선의 글로벌한 성공은 일종의 평지돌출이다. 퀸텟의 멤버들이 다국적 감성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면도 있다. 하지만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나윤선의 목소리는 한국에 본격적인 재즈 붐을 촉발시켰고, 아울러 재즈라는 음악의 무한한 창조력을 무참히 각인시켜주었다. [전자인형]
  
 

42. 시나위 8집 『Sinawe 8』, 도레미 미디어, 2001


 시나위는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초로 전면적인 헤비메탈 음반을 발매한 것으로 유명하다. 데뷔하던 시절부터 신대철의 기타 연주는 헤비메탈 키드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뛰어난 것이었으며, 이 밴드를 거친 수많은 뮤지션들이 한국 대중음악판에 굵직한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임재범, 김종서, 김성헌, 손성훈, 김바다, 달파란, 서태지, 김영진, 김민기, 오경환, 신동현 등 이름만으로도 무게가 느껴지는 멤버들이 시나위의 이름 아래 활동 했었다. 시나위는 뛰어난 밴드임에 틀림없으나 결과물은 언제나 통시적 관점에서 볼 때, 즉 시대적 흐름 속의 명작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신대철의 음악적 취향은 블루스에 기반한 하드록/헤비메탈이었며, 그런 점에서 5집 『수레바퀴 밑에서』(1995)이후의 음악들이야 말로 뿌리로의 회귀이며 본령이라 할 수 있다. 카리스마 넘치던 김바다가 탈퇴한 이후, 불안해보이던 시나위가 내놓은 8집은 세간의 우려를 뒤집는 회심의 걸작이었다. 두툼한 기타 연주와 완벽한 댓구를 이루는 드럼 연주(신동현) 위로, 멜로디적 감수성과 거친 샤우트를 모두 소화해내는 새로운 보컬리스트 김용이 맘껏 활보하고 있다. 무엇보다 화려한 수식이나 군더더기는 모두 사라지고 풍성한 톤 감각 아래 핵심만 짚어내는 연주를 내세운 편곡은 공시적으로 보나 통시적으로 보나 한국 하드록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 앨범을 끝으로 신대철-신동현-김경원 트리오 시대 역시 막을 내린다는 사실이다. 시나위라는 밴드가 내놓은 음반 중, 곡쓰기에서 멤버들의 호흡까지 가장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명작이다. 이 음반에 함께 들어있는 5집 이후의 베스트 영어 재녹음 버전 역시 시나위의 팬이라면 반가운 선물. [헤비죠]
  
 

43. Toy 『A night in Seoul』, 삼성뮤직, 1999


 3집의 성공과 이문세(조조할인), 윤종신(환생), 이승환(애원)의 프로듀서로서 그가 이룬 대중적인 업적은 유희열이라는 뮤지션을 어느 순간 기대받는 위치로 격상시킨 것이 분명했다. 그는 작가의 책임감과 대중뮤지션으로서의 부담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고 이러한 복잡한 상황들은 결국 토이를 보다 세련된 프로젝트로 변모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희열이라는 뮤지션이 가진 위상은 묘한 구석이 있었는데, 그는 유재하 가요제와 하나뮤직을 거친 언더그라운드의 총아였지만 결국 015B의 대중적 방법론을 따랐고, 작풍에서는 언더그라운드의 감수성과 대중가요의 맛깔스러움을 반반씩 공유하고 있었으며, 게다가 라디오  DJ에서의 부드러운 취향은 흡사 80년대 별밤지기 이문세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었다. 바로 그런 면에서 그의 음악 만들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히트곡이 없어서는 곤란하고, 그렇다고 노골적인 대중적 접근은 독이 된다. 주 청취타겟인 소녀취향을 버릴 수는 없지만, 더 이상 그것만으로 머무를 수는 없는 위치에 서 있었다. 그의 네 번째 앨범은, 이러한 딜레마를 아주 긍정적인 방향으로 승화시킨, 그야말로 센스넘치는 한장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유희열은 그간 자신이 지켜온 독특한 세련미-매우 도시적이지만 결코 따뜻함을 잃지 않는 감성-를 극대화 시켰는데, 『A night in seoul』이라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듯 서울의 밤이 가진 도회적이면서 건조한 서정을 세련된 팝튠으로 풀어낸 감각은 주목할 만 했다. 「길에서 만나다」등 일렉트로니카 사운드를 시도, 보다 현대적으로 마무리한 사운드 톤이라든지, 「거짓말 같은 시간」, 「우리는, 어쩌면, 만약에」에서 들리는 서정은 유희열의 장점을 느끼게 한다. 당시 그의 음악에는 평범한 뮤지션들이 가진 클리쉐가 거의 없었고, 키취라는 비판을 들어도 억울하지 않을 장르에 대한 즉각적인 이해와 소화능력을 느끼게 했다. 프로젝트 '토이'가 들려줄 수 있는 절정의 사운드이자 90년대 한국팝의 잊지못할 수작이다. [투째지]
 
  

44. 마그마 1집 『MAGMA』, 힛트레코드, 1981


 한국 록음악의 시초를 떠올리면 굳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많은 아티스트들이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마그마가 한국 록음악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어디쯤인지에 대해 질문해보자. 「누구?’라는 반문을 하는 청자들이 부지기수일 게다. 그들의 최대 히트 넘버 「해야」를 떠올린다면 음악에 매우 관심이 많은 (혹은 많았던) 청자들일 터. 록과 팝이 4곡씩 고루 포진된 본작의 어디에서도 1981년이라는 시대적 배경과 한국이라는 공간적 배경은 이들의 음악을 결코 적확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알 수 없어」, 「잊혀진 사랑」, 「해야」에서 보여주는 몽환적인 분위기에 더해진 조하문의 가공할 폭발력은 「이럴 수가 있을까」, 「우린 서로 사랑하니까」, 「그날」에서는 흥겨운 싱얼롱 분위기를 연출한다. 더구나, 섬세함이 가득한 팝발라드 「기다리는 마음」까지. 하이톤에서의 불안정한 듯이 들리는 조하문의 보컬은 의외로 어떠한 장르를 갖다 대어도 잘 녹아들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덧붙여 연주곡 「탈출」에서의 연주는 이 밴드의 정체성이 조하문에게만 집중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본작의 가장 백미는 시종일관 음울하고 처절한 샤우팅으로 일관하는 「아름다운 곳」이리라.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 정도의 힘을 가진 한국의 하드록넘버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오버에서는 트로트고고, 언더에서는 포크가 여전히 득세하던 시절, 동시대에 존재한 어떤 음악들보다도 록이 가지는 미학의 일반론에 충실한 이 데뷔음반은 한국에서 등장한 ‘가장 충격적인 데뷔음반’이라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들에게 한국의 ‘아무개’라는 진부한 수식어로 성찬하는 것은 당대의 거인들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행위일 뿐이다. [마이너]
 
  

45. 윤상 2집 『Part Ⅱ』, 지구레코드, 1993

때로 그의 지나칠 정도로 ‘정형화’된 음악을 두고 정체나 진부와 같은 단어로 평가절하해온 점이 없지는 않지만, 그 모든 비판들을 전부 감안한다고 할지라도 그의 독특한 음악세계는 그 빛을 조금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를 흔히 전자 음악의 효시라고 부르고는 하는데 이는 그의 음악세계의 깊이를 제한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일 것이다. 그는 베이스 연주자였지만 그룹음악의 매너리즘과 밴드체제의 한계를 미디(Midi)로 대표되는 컴퓨터 음악으로서 돌파하고자 한 대표적인 뮤지션이었고, 기계음과 리듬 프로그래밍 그 자체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각 음원의 소리(Sonic)들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Atmosphere)에 보다 많은 노력을 할애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2도 하향의 마이너 코드 체인지 속에 담긴 그만의 독특한 작풍은 실로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의 보컬과 맞물려 ‘윤상표’ 음악의 확립에 결정적인 팩터로 자리잡는다. 93년(!)에 발표된 그의 세번째 앨범은 앞으로 진행될 윤상 음악의 대략적인 실마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스타일을 선보였던 수작이다. 이 앨범은 비록 「가려진 시간 사이로」 등으로 규정되어버린 그의 전작들과는 그 경계를 달리함으로써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지만 이후 약 10년이상 등장하게 되는 일렉트로니카 계열의 방향을 제시함과 동시에 지극히 이른 시기에 하나의 완결된 스타일과 양식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놀라움을 준다. Papermode라 불리던 프로젝트 팀의 구성원들-손무현, 김범수(bk!와 Astro bits로 알려진 또 한명의 천재 뮤지션), 김학인등-이 들려주는 뛰어난 어레인지와 함께 앨범의 사운드적 실험성과 완성도는 지극히 훌륭했다. 음과 음 사이의 공간이 자아내는 분위기(ambient)를 이용할 줄 알고, 교묘히 고려되고 섬세하게 재단되어 배치된 전자음원에 대한 깊은 이해는 쉽게 흘려 들어버려서는 찾아낼 수 없는 매우 ‘내밀한’ 경지이다. [투째지]
 
  

46. DJ Soulscape 『180g Beats』, Master Plan, 2000


 힙합이란 용어가 대한민국에 유입되고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고 음악적으로 작은 씬을 탄생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이름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아무도 선점하지 않은 그곳에서 서로 최고임을 확신했다. 결과물이 따라주지 못한채 끊임없이 지속된 말뿐인 이기주의가 낳은 공허함이 깊어져만 갈때 발언권을 갖지 못했던 한 프로듀서가 조용히 작품을 진행해나갔고 마침내 그것이 발표되었을때 우리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름으로부터 최초의 동의가 이루어졌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가 바로 DJ Soulscape이었고 그를 증명한건 [180g Beats]였다. 이미 발표된 그해부터 최초의 클래식이란 소리를 들었던 [180g Beats]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까지 동일하다. 이전까지 비트에 있어 별다른 혜택을 받지 못했던 MC들은 DJ Soulscape가 나와주었음에 처음으로 따뜻한 옷을 입을 수 있게 되리란 기대감을 품게 되었고 작업하고 싶은 뮤지션으로 손꼽히게 되었음은 결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그만큼 [180g Beats]에서의 DJ Soulscape는 인상적이었고 힙합 앨범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주었던 기념비적인 앨범이었다. 프로듀서가 주체가 되어 참여 MC의 선택과 함께 구상했던바를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지켜본 사람들로부터 감독은 훌륭한데 배우들의 역량이 부족한게 아니냐며 수근거리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서구의 힙합만을 들어오며 우리의 힙합을 조롱했던 사람들에게 자랑스러움을 선사하는 등 당시의 모든 상황을 한순간에 역전시켜버렸던 [180g Beats]를 힙합이란 틀을 넘어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의 명반 반열에 올림은 시기상조도 무엇도 아니다. [아놀드]
  
 

47. 조동진 『5집』, 킹레코드, 1996


 조동진이 ‘느림의 미학’ 또는 ‘관조’의 상징으로 회자되는 건 순전히 그의 천성 때문이다. ‘천재’와 ‘천성’은 한 끝 차이지만 눈을 사로잡는 속도감 때문에 천재가 조금 더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그는 오직 천성과 약간의 시간(대략 30년!!)만으로 대가의 반열에 오른 뮤지션이다. 그의 음악은 그저 한없이 밋밋하여 열정적인 애착을 갖기엔 어려운 면이 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매번 들을 때마다 신선한 기운이 그대로 보존되는 신통력을 지니고 있다. 96년에 발표한, 공교롭게도 10년 넘게 계속 그의 마지막 앨범이 되고 있는 5집은 이러한 신통력이 절정에 달한 작품이다. 세상과 마주한 그의 환멸과 애정, 허무와 낭만, 체념과 사랑, 이 모든 심상들이 그의 전 작품을 통틀어 음악적으로 가장 극적이면서도 섬세하게 두루두루 새겨진 앨범이다. 아마 디지털 사운드로 아트록 특유의 음산한 엠비언스를 뿜어내는 「새벽안개」와 흥겹고 친숙한 포크록으로 치장한 「우린 헤어져 멀리 있어도」의 공존이 어색하지 않은 건, 사운드를 주도적으로 디자인한 동생 조동익이 형의 목소리가 품은 가능성과 뚝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핵심은 언제나 하나다. 조동진 자신의 기타 아르페지오가 흐르는 가운데 제목과 똑같은 구절을 심심하게 반복하는 「눈부신 세상」을 들어보건대, 간결하면서도 깊고 넓은 그의 철학은 매 작품마다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장필순의 서늘한 보이스와 호흡을 맞춘 「넌 어디서 와」, 그리고 끝도 없이 그윽한 「멀고 먼 섬」과 「바람 부는 날이면」까지 생각해보면 본 작품의 가치는 더 이상 의문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그의 최근작은 언제나 그의 최고작이다. [호떡바보]
 
  

48. 신윤철 3집『명태』, 삼성뮤직, 1994

신윤철은 기타리스트로 이해하기에 너무도 다재다능한 음악인이다. 작, 편곡은 물론이고, 음반 전체를 조율하는 프로듀서일 뿐 아니라 감각있는 프로그래머로서의 능력 역시 빛난다. 이러한 그의 장점이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순도 높게 증명되는 음반이 바로 3집인『명태』다. 이 음반에는 블루스, 모던록, 하드록, 일렉트로니카, 발라드가 골고루 들어있는데, 놀랍게도 전혀 이질감 없이 하나의 결로 읽히는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후의 신윤철의 행보는 모두 이 음반에서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송홍섭의 송 스튜디오에 모이던 수많은 뮤지션들이 참여하며 송 스튜디오의 음악적 정체성도 함께 드러내는 작품이라 볼 수도 있다. 「명태」의 읊조리는 블루스는「나의 길을 갈 뿐이야」로 확대되고 「얼마전까지만 해도」에서 폭발하지만, 각 곡 사이로 발라드가 배치되어 일방적인 기승전결을 피하고 있다. 대신 강약강약의 구성으로 청자와 뮤지션이 함께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치밀하고 대담한 곡배치를 선보인다. 블루스에 바탕을 둔 끈적하면서도 매끄럽게 빠지는 톤과 화려함보다 음 하나하나의 내실을 추구하는 진득한 기타 연주 역시 귀 기울이게 만드는 포인트이다. 송 스튜디오를 드나들던 뮤지션들이 총출동한 「우리가 이곳에 모인 이유」의 가사에서 말 하는 것처럼 “음악 속에서 모든 걸 얘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음반 전체에 넘실댄다. 이러한 음악적 자신감은 신윤철이 참여한 모든 프로젝트를 통털어 가장 직선적인 편곡과 연주로 드러난다. 삼성뮤직(나이세스)이 사업을 접으면서 절판된 상태이기 때문에 희귀 앨범이 되었지만 1990년대 한국 록음악을 논함에 있어 절대 비켜나갈 수 없는 명작이다. [헤비죠]
 
  

49. 낯선 사람들 1집 『낯선 사람들』, 하나뮤직, 1993


 '낯선 사람들'이라는 타이틀은 이 팀, 그리고 고찬용이라는 걸출한 뮤지션, 그리고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의 모든 것을 너무도 절묘하게 드러내고 있는듯 하다. 그들은 결코 익숙하지 않은 않는, 아니 익숙해질 수 없는 장르와 스타일, 창작방식으로 대중음악계에 발을 딛었고, 그 시점에서 그들은 결코 주류가 될 수 없는 위치를 이미 인정하고 있는것인지 모른다.  리더 고찬용은 매우 진취적인 뮤지션이며 뻔한 방식을 답습하거나 쉬운 통로를 뚫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타 90년대의 음악감독들과는 현저히 다른 방법론을 취하고 있었다. 비록 이 한장의 결과물만을 놓고 그의 능력이나 혹은 낯선 사람들이라는 팀이 가지는 무게감을 웅변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이 한번의 시도가 내 뿜은 신선한 창작의 기운에 대한 변명이라고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앨범은 결국 다음의 세가지 단어로 요약이 된다. // 1. 고찬용 : 이 점에 대해서라면 의문의 여지가 없다. 최근에 발표된 10년만의 솔로앨범에서도 확인되듯이 그의 독특한 음악적 재기와 진지한 접근은 그 빛을 잃지 않고 요동치고 있다. 2. 이소라 : 낯선 사람들이, 그리고 고찬용이 발굴하고 김현철이 완성한 이 시대 가장 중요한 여성 보컬리스트중 하나. 마치 그녀의 솔로 앨범을 방불케 하듯 이 앨범의 모든 사운드는 그녀의 목소리 안에서 수렴되고 있다. 3. 맨하탄 트랜스퍼 : 진부한 지적이지만 사실이다. 이 팀은 결국 한국의 맨하탄 트랜스퍼를 의도했고, 또 그 의도는 매우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 악곡의 창의성, 편곡의 유니크함, 그리고 화성과 합창의 대범함까지 나무랄 데가 없는 수작이다. 정말 유일한 문제라면, 본작은 이 라인업의 유일한 작업이었다는 것. 그리고 바로 저 이름처럼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많은 대중들에게 낯선 음악으로 남게 되었다는 것. 그 뿐이다. [투째지]
  
 

50. 김수철 1집 『못다핀 꽃 한송이』, 신세계, 1983

 좀 유치한 표현이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김수철의 이미지는 에너자이저 그 자체였다. 그가 있었던 그룹 「작은거인」은 이름만 그랬을 뿐 거인이라는 단어가 유치하게 들릴 만큼 진하고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정신이 나가 버린듯한 기타, 정돈된 듯 하지만 현란한 오르간 사운드. 그의 음악은 작은거인 이라기 보다는 신들린 거인 쪽에 더 가까웠다. 이뿐이 아니다. 김수철은 솔로로 전향하고 1년뒤 「고래사냥」에 출연 그 해 신인상을 받아서 영화에 목숨 거는 사람들을 열받게 만든 전력이 있다. 이규형 감독은 87년도에 쓴 인터뷰집 「이규형이 만난 남과 여」 라는 책에서 김수철에 대해 ‘음악을 잘하는 것만도 질투나 죽겠는데 어느 순간 자기 영역을 넘어와 자존심을 뭉게놓았다’ 라고 쓰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재능이 얼마나 폭 넓은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넘치는 에너지와 다양한 재능으로 무장한 그가 83년에 처음 발표한 솔로 앨범은 그룹시절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우선 하드락 을 지향했던 예전과는 달리 마치 악기를 조율하는 것처럼 차분하고 관조적인 발라드 포크를 선보인다. 앨범에서 두 곡을 제외하고는 「작은거인」 시절 발표했던 곡들을 다시 포크로 편곡해 들려 주고 있고 특히 「별리」 같은 곡의 경우에는 포크 버전과 약 10여분이 넘는 간 버전 이렇게 두곡이 실려있는데 긴 버전의 경우 타악기와 보코더, 신디사이저가 서로가 술래잡기를 벌이는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결과 김수철의 첫 솔로 앨범은 그룹생활을 끝내고 그가 어떤 장르의 음악을 어떻게 방향을 잡아서 갈 것인가? 하는 고민과 모색이 들어가있는 앨범이다. 자신이 잘했던 장르의 음악이 아니라 평생을 지고 가야 할 음악의 색깔을 그는 이 앨범을 통해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자신과 미래를 만나게 하는 일은 언제나 어려우니까. [폴린]



51. 모하비 - 『Machine Kid』, 노스탈지아, 2003


모하비는 1988년의 『테크노전자음악잡동사니』와 2000년의 『MO BEATS ALBUM』에 이어, 국내 일렉트로니카 계열 뮤지션으로는 처음으로, 2003년 솔로 아티스트로서 세 번째 정규음반을 발표한 뮤지션이 되었다. 원음에 대한 환상보다는 기계가 만들어내는 ‘당연한’ 왜곡을 사랑한다는 모하비. 첫 곡 「Hi-Fi for the animels」부터 잡음의 연속인데, 유럽의 멋스러운 테크노를 생각했던 리스너를 당혹시킬만한 것들이다. 춤을 추기 적당한 것도 아니고, 몽환적으로 몰입하기 좋은 것도 아니다. 다만 잡음이 만들어내는 비트의 연속인 것이다. 여기서 모하비가 추구하는 음악의 정체성이 들어나는 것이 아닐까. 어이지는 타이틀곡 「Machine kid」도 지극히 단순한 힙힙비트에 반복적인 멜로디를 담고 있다. 「Bisector switch」, 「Utput」, 「A dead fly」등의 곡에서도 여과 없이 노출되는 노이즈들은 이 앨범에서 모하비가 들려주고자 하는 테크노 음악에 대한 정의를 느낄 수 있다. 바로 기계가 줄 수 있는 ‘인간적인’ 소리가 바로 그것인데, 앨범에서 가장 예술적인 ‘소리’를 담고 있는 「Loop that stratocaster」에서도 이 부분이 감지된다. 거장 기타리스트들의 연주를 샘플링하고 있다. 가장 인간적인 그 연주들을 아주 기계적으로 풀어내고 있음에도, 모하비 자신의 인간적인 고민을 느낄 수 있다. 모하비는 스스로의 음악을 ‘감상용’이라고 규정한다. 모하비가 들려주는 기계의, 가장 인간적인 소리를 느껴보자. [쏭구]
 
 
 

52. 허클베리핀 『18일의 수요일』, 강아지문화예술, 1998

 
세기말의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추억이다. 장밋빛 미래가 환상처럼 세상을 지배하고는 있으나, 정작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것. 그게 세기말과 젊음이 교차하던 시절의 어두운 기억의 전부를 차지한다. 그리고, 허클베리핀의 데뷔앨범은 그 어두움의 극단적 위치에서 내게 손짓을 한다. 한국 ‘인디’신이 봇물처럼 터졌던 1998년, 그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하면 바로 본작을 떠올릴 수 있다. 본작은 여타의 다른 아티스트에 대한 박제된 기억을 굳이 들추지 않더라도, 이는 한국에서 생산해낼 수 있는 그런지(Grunge) 정서 바로 그 자체이다. 이기용의 가사는 대단히 음울하면서도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감성을 겹겹이 쌓아두고 있으며, 이 에너지를 오롯이 이어받아 강인한 생명력을 불어넣는 남상아의 폭발적인 소리는 은유와 상징으로 감추어둔 정서를 역설적으로 강력히 설파하는 하모니를 이룬다. 시일이 지난 후 이기용이 자신들을 평가하면서 언급한 ‘감정의 분수’라는 단어는 특히나 본작의 감수성에 맞닿는다. ‘보도블럭’에서의 조용한 곱씹음, ‘첫번째 곡’에서의 혼돈스러운 감정. ‘불을 지르는 아이’의 절규는 분수를 넘어선 폭포수 그 자체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좀 더 다른 시선을 지닌 본작은 10년이 지나더라도 한국 대중음악신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존재감을 가질 것이다. [마이너]
 
 
 

53. 동물원 [2집], 서울음반, 1989

 
단언하건데, 동물원이 아니었다면 순식간의 욕망이 우리를 그물처럼 옥죄던 90년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삭막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 친구에게 들려주는 소소한 일기장 같은 노랫말, 결국 서랍장 안으로 밀어 넣었지만 신열을 앓던 시절이 생생하게 잡힐 것 같은 지난 꿈을 담은 동물원의 노래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분명 지금보다 조금 더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동물원의 이러한 시대적 효용은 ‘투쟁적 혁명 세대’라 불리는 386 세대에게만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보편에 대한 이야기가 연예인이 아닌 보통사람의 목소리로 설득력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동물원은 음악적으로 포크의 마지막 계승자라는 타이틀로 기억된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에 녹아 있는 배경들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김광석과 박기영이 노찾사와 민중가요라는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면, 김창기는 「사랑의 썰물」을 만들었던 주류 작곡가였으며, 유준열은 아마추어 언더그라운드를 증명하는 인물이었다. 또한 이들을 처음 기획한 김창완은 한국 록의 평지돌출로 평가되는 산울림의 좌장이었다. 이런 다양한 음악적 배경과 진실한 노래를 견지해 내려는 초심이 동물원을 세련된 대중음악의 각축장 90년대를 지나 오래도록 꾸준한 팀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역사에 변하지 않는 초석으로 기억될 아름다운 시작이 여기 있다. 데뷔앨범 역시 「거리에서」, 「변해가네」, 「말하지 못한 내 사랑」같은 명곡들을 담고 있는 중요한 작품이지만 연주와 노래에서 아마추어의 거친 질감을 함께 드러내고 있는데 반해, 이 음반에 이르면 아마추어의 순수한 열정은 그대로 남겨둔 채로 프로페셔널한 세련을 더해 8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또 다른 진경을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이런 독특한 출사표는 서정과 열정을 오가는 두 번째 트랙 「동물원」에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김창기의 「혜화동」은 그 감성 그대로 동물원의 정체성이 되었으며, 유준열이 작곡한 「새장 속의 친구」의 재지한 분위기는 팀에 활기를 불어 넣는 제2의 심장이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김광석의 맑은 샤우트로 앨범을 마감하는 「흐른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에 있다……. 다시 들어도 아름다운 음반이다. [전자인형]
 
 
 

54. 김정호 1집, 『이름모를 소녀』, 서울음반, 1983

1985년은 실로 귀한 사람 한 명을 저 세상으로 떠나 보낸 한 해가 되어버렸다. 김정호의 음악을 포크라고 하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들은 딱히 어느 장르와 스타일로 설명될 수 없는 실로 오묘한 맛을 풍겨 냈는데, 혹자는 이를 두고 ‘한국적 포크’, 또는 ‘한(恨)의 포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50-60년대 고전가요의 멜로디를 상당부분 답습하고 있고, 거의 독보적이라 해야 마땅할 ‘끊어질 듯 애절하게 부르짖는’ 그의 음색은 차라리 국악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실제로 그는 짧은 그의 마지막 생의 자락에서 국악에 대한 깊은 애정과 헌신의 의지를 밝힌 바 있었다). 그의 노랫말에는 하나같이 슬픔과 애잔함, 고뇌가 담겨 있었고 멜로디를 감싸는 바스라질 듯 연약한 서정이 예의 그 떠도는 우울을 발산해 내었다. 하얗고 힘없는 얼굴과 애수어린 표정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과장 섞인 의미부여를 해보자면 현재 대중음악계의 가장 유력한 장르로 자리잡은 ‘발라드’의 실마리를 김정호가 제시했다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김정호의 음악은 훌륭했지만 소위 말하는 세련미와는 거리가 있었고 이는 좋게 보자면 한국적인 어프로치였다. 그것은 당시의 포크나 스탠더드 팝, 그리고 록의 스타일과도 분명히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 74년에 내놓은 그의 데뷔 앨범은 사실상 그의 최고작이자 이제껏 이야기 해 온 그의 모든 매력과 음악적 문법이 담긴 완결판으로 불러 마땅하다. 「이름 모를 소녀」, 「보고싶은 마음」, 「외길」, 「저별과 달을」, 「밤은 가고」 등 그를 떠올릴 때 함께 떠올릴 수많은 명곡들이 담겨 있다. 포크, 스탠더드 팝, 심지어는 컨츄리의 편곡 방식까지 적용하고 있으나 그 창법과 멜로디는 신기할만큼 개성적이며 또 매우 ‘한국적’이다. [투째지]
 
 
 

55. 윤종신 5집 『愚』, 대영에이브이, 1996

 
『愚』도 전작 『共存』과 마찬가지로 복고의 감성이 가득 묻어나는 다수의 노래와 리듬이 강조된 소수의 업템포 노래, 그리고 부클릿에 실린 수더분한 윤종신의 사진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점이라면 설레임으로 시작해 이별의 회한으로 끝을 맺는 한 편의 러브 스토리가 앨범 전체를 관통한다는 것과, 윤종신이 스토리와 개별 곡들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위해 유희열이라는 뮤지션과 집중적으로 협업했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다른 점 때문에 유희열은 90년대 최상의 발라드 작곡가로 거듭났고 윤종신은 90년대 최상의 발라드 작사가이자 영민한 앨범 프로듀서 중 한 명이 되었다. 이러한 영민한 전략의 결과물이 바로 이별 후의 심경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차례로 담아낸 「아침」 「일년」 「오늘」 3부작이다. 이 세 곡은 짧은 소절의 훅 하나만 바라보고 나머지 악곡 전체를 대충 들러리세우는 통속적인 ‘사랑타령’의 愚를 범하지 않는다. 전성식, 정원영, 이병우가 연주한 어쿠스틱 악기의 복고적인 질감은 과거를 지향하는 이별의 슬픔과 정확히 일치하며, 하프와 현악 세션의 고풍스러움은 이별을 앓는 자의 아련한 정서와 연결된다. 무엇보다 유행가의 과장된 언사와는 거리가 먼, 실연 이후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윤종신의 가사가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환생」과 「여자 친구」의 유치한 멜로디가 대중을 포섭하기 위한 손쉬운 상술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자의 진심 어린 내면으로 다가오는 것도 대부분 솔직 담백한 가사 덕분이다. 한마디로 말해 『愚』는 ‘괜찮은 발라드 앨범’이라는 뻔한 정의를 넘어서는 작품이다. 이것은 사랑과 이별을 겪어나가는 청춘남녀 모두의 신실한 사운드트랙이다. [호떡바보]
 
 
 

56. 해바라기 『해바라기 노래모음 제1집』, 지구레코드, 1977

해바라기란 처음부터 느슨한 노래 공동체를 지칭했다. 김의철, 이광조, 이주호, 한영애, 이정선, 김영미 등이 이 공동체를 거쳤다. 이 앨범이 녹음된 시기의 해바라기는 이정선, 이주호, 한영애, 김영미 네 명이다. 누구는 초창기 멤버로 어떤 이는 지인의 소개로, 또 다른 이는 음악적 욕심으로 모인 해바라기가 추구했던 것은 명료한 화음의 어울림이었고 보다 근본적인 노래의 즐거움이었다. 이 앨범이 발표된 1977년이 1975년 저 악명 높은 대마초 사건 이후 2년이 흐른 시기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청년문화를 이끌었던 젊음은 노래의 특권을 강제로 박탈당하고 맘대로 우울할 수조차 없는 성인문화의 매너리즘으로 깊숙이 빠져들었다. 이런 시기에 해바라기의 데뷔앨범이 맡은 역할은 포크의 자연주의적 감성을 육성의 아름다움으로 재현해 내는 것이었다. 음악감독을 맡은 이정선은 남자 둘 여자 둘의 각기 다른 색깔의 보컬들을 치밀한 화음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구름, 들꽃, 돌, 연인」의 건강한 전원성, 「내 마음」과 「하늘 가득히」에서 들려주는 절창의 화음은 분명 70년대 한국 포크 음악을 몇 단계 진화시킨 예술적 성취이다. 여성 멤버인 김영미와 한영애가 각각 선두에 서고 다른 멤버들의 화음은 뒤편에서 덤덤히 서정을 돕는 「하늘」과 「내 마음 깊은 곳에」 역시 오랫동안 기억되어야 할 한국대중음악의 즐거움이다. 통기타 하나와 목소리 하나로 일면 평면적이었던 한국 포크는 이 앨범을 통해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을 제공받았으며, 당대의 매너리즘을 통과할 일종의 구원이었고, 80년대라는 프로페셔널한 아마추어리즘에게 바통을 건네는 튼튼한 다리였다. [전자인형]
 
 
 

57. 넥스트(N.Ex.T) 2집 『The return of the NEXT pt.1: Being』, 대영AV, 1994

 
1992년에 발매된 『Home』은 여전히 신해철의 과거 스타일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평이한 선택이기도 하였다. 물론, 당대의 다른 뮤지션들과는 차별화된 스타일이긴 하나, 불과 2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이처럼 충격적인 변신으로 청자들에게 다가오리라는 것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며, 그만큼 본작은 기존의 한국 헤비메틀신을 직접적으로 강타한 문제적 작품이 된다. ‘록밴드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리라’던 신해철의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으나, 동시대에 활동하던 한국 헤비메틀 밴드들이 외면받던 주요 요인이던 조악한 수준의 녹음과 유치한 가사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본작이 갖는 역할은 그야말로 지대하다. The Destruction of the shell에서의 긴장감 넘치는 1분여의 키보드 솔로는 ‘키보디스트 신해철’의 역량이 총집결해 있는 부분이며, 뒤따르는 정통 헤비메틀 리프와 절묘하게 어울려 들어가는 (당시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분노에 찬 신해철의 보컬, 10여분의 러닝 타임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꽉찬 구성은 과거 한국 대중음악에서 결코 구현해 내지 못한 대단히 이례적인 넘버임에는 틀림이 없다. 정통 스래쉬메틀 「이중인격자」, 작품에 숨어있는 또 다른 대곡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 일렉트로니카 넘버 「Life Manufacturing」 등 앨범을 구성하는 모든 곡들이 단 하나도 허투루 들어넘길 수 없는 킬러 싱글로 즐비하다. 이처럼 앨범 전 곡에서 넘실거리는 신해철의 장악력은 후속작에서 나타나는 그것과는 질적인 차이가 나며, 작품 전체에서 발현되는 카리스마는 여전히 유효하다. [마이너]
 
 
 

58. 더블유(W) 『Where the story ends』, 플럭서스, 2005

 
2001년 코나(Kona)의 배영준이 인디 레이블 문라이즈(moonrise)에서 일렉트로니카 유닛 웨어 더 스토리 엔즈로 부활한 사건은 갑작스런 반가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2005년 신생 레이블 플럭서스(fluxus)에서 팀명을 더블유로 약칭하고 보컬 김상훈을 정식 멤버로 맞아들여 발표한 본 앨범은 사정이 달랐다. ‘노래’라는 형식을 온전히 가져가면서 그 주변을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촘촘히 두른 곡들이 댄스가요와 전자음악의 울타리를 각각 넘어 일렉트로닉 팝의 지점에 훌륭히 안착했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대 타이틀곡「Shocking pink rose」를 포함한 앨범의 초반부는 한국 일렉트로닉 팝 최상의 결과물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더블유는 하우스의 빠른 템포, 훵키한 기타와 그루브 넘치는 베이스, 은은하면서도 중독적인 훅을 지닌 보컬, 이 세 가지 요소를 화학적으로 융합시켜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또한 더블유는「거문고 자리」에서 세련된 디스코 사운드와 토속적인 가사를,「경계인」에서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메시지를 예쁘장한 여성 백 보컬과 잔잔한 기타 아르페지오와 아무렇지 않게 섞음으로써 내일의 센스를 지금 여기에 재현하는 어얼리 어답터가 되었다. “경직된 진실 유연한 위선” “짙은 어둠 속에서 파랗게 날 선 정역학의 법칙” “뛰는 너의 심장은 강철 아가미” 이런 조각난 시어(詩語)들은 또 얼마나 그럴듯한지! 더블유의 본 앨범은 지나치게 보편화된 주류의 타성과 보편화 되기 어려운 언더의 감성을 동시에 뛰어넘으려는 플럭서스의 이념, 그 이념의 첫 번째 구체화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호떡바보]
 
 
 

59. 부활 2집 『Remember』, 서울음반, 1987

 
1980년대 중반부터 거세게 일기 시작한 헤비메탈의 폭풍 속에서 유독 굳건하게 서 있는 앨범이다. 당대의 수많은 밴드들이 서구적인 사운드를 전범으로 삼아 강력하고 파괴적인 스타일을 지향했던 반면, 이들은 보다 멜로디어스하면서도 서정적인 방법론을 취했다. 단순히 듣기 좋은 멜로디를 삽입해 넣는다는 기계적인 특징이 아니라 기타의 솔로를 만들어 내는 데에서부터 시작해 송라이팅의 아이디어, 노래와 연주를 잇는 편곡의 양태 등, 거친 질감의 사운드 속에서도 솟아오르는 부활만의 독특한 개성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것은 기타리스트이자 송라이터인 김태원의 색깔이기도 했다. 1986년 데뷔 앨범이 직선적 헤비메탈과 부활 특유의 서정이 혼재된 양상이었다면, 두 번째 앨범인 『Remember』는 김태원이 주도권을 쥐고 완성해 낸, 부활의 개성이 처음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지배하고 있는 앨범이다. 이런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 있는 곡이 「회상Ⅱ」이다. 육중한 드러밍으로 포문을 연 뒤 김태원의 펜타토닉 프레이즈로 곡을 이끌어 나가는 데, 요소요소 변주를 통해 구성에 변화를 주고 있음에도 기타가 주도하는 서정적인 악상은 8분 30초 동안 탄탄하게 중심을 잡고 전진해 간다. 「천국에서」 역시 자기표현에 대한 자신감과 그것을 실현시키는 연주력이 듣는 이를 압도한다. 이러한 ‘거대한 서정’에 이승철의 여린 목소리는 신이 내린 선물이다. 헤비메탈 보컬리스트로서 거친 남성성이 거세되어 있는 치명적인 핸디캡을 가진 목소리이지만 부활과의 조합은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완벽한 것이다. 모든 트랙에서 이승철과 김태원의 이중주가 빛을 발한다. [전자인형]
 
 
 

60. 정원영 1집 『가버린 날들』, 하나뮤직, 1993

 
대중들은 끊임없이 팝이나 재즈에 버금가는 세련미를 음악가들에게 강요하고 또 그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가요의 역사는 그 요구가 종종 매우 모순적이어 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실제로 한국적인 정서에서 훌쩍 떨어져 새로운 사운드와 정서를 모색하려고 했던 뮤지션들에게 대중들은 예외 없는 차가운 시선을 던졌는데, 이를테면 정원영, 고찬용, 그리고 이한철과 같은 뮤지션이 그 명확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정원영이 그의 주전공인 건반으로 재즈를 수학하고 돌아와서 피아노 음반이 아닌 가요음반을 내놓았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물론 연주 음반이 가지는 시장의 한계를 감안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쪽이 설득력 있는 설명일 테지만 음악을 들어보면 그게 그리 단순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매우 정확히 컨템포러리 재즈 라인을 연주하고, 또 멜로디를 부르고 있다. 심지어는 펑크(funk)(「강 건너 거리」)나 보사노바(「파라다이스」), 에쓰닉한 어프로치(「그대 이야기」)까지도 눈에 띈다. 「가버린 날들」을 예외적인 곡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당대의 다른 가요를 살펴볼 때 이 곡에서의 코드 체인지 역시 결코 가요적인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말하자면 이 앨범은 가요 뮤지션이 시도해 본 재즈적 접근이 아니라 재즈 뮤지션이 가요라는 장르에 던지는 헌사인 셈이다. 키보드 연주에는 여지없이 매우 정통적인 임프로바이징이 따라붙고, 어렵지 않은 멜로디 뒤에 숨어 있는 화성은 결코 쉽지 않은 것들이다(「흐린날, 텅빈 하늘」). 유학파였던 정원영은 물론이거니와, 이 모든 것을 전혀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당대 하나음악/동아기획 소속의 뮤지션들, 이를테면 전태관, 송홍섭, 조동익, 낯선 사람들의 묵직한 존재감은 그 시절의 음악들이 단순히 ‘그리워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투째지]




61. 양희은 2집 『고운노래 모음 2집』, 유니버샬(KLS-40), 1972
 
몇 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줄기에 통기타를 든 인물이 걸터앉아 있다. 아주 맑은 소리로 노래를 하고 있으며 게다가 맨발인 채인 이 앨범 커버는 양희은이라는 목소리가 상징하는 70년대 포크 음악의 명료한 자연주의, 과장하지 않는 단출함, 현실과 이격하고 픈, 혹은 현실과 꿈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고픈 젊음의 갈망을 대변하고 있다. 1971년 9월 「아침이슬」이 수록된 데뷔앨범(『고운노래 모음 1집』)이 발표되었을 때부터 양희은은 본인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시대를 대변하는 목소리가 되었다. 1972년에 발표된 이 앨범은 음악적으로 김민기의 데뷔 앨범과 연장선상에 있다. 김민기와 강근식의 어쿠스틱 연주는 물론이고 정성조 쿼텟이 맡은 유려한 편곡이 녹아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플롯과 피아노, 가벼운 스트링 섹션을 활용한 정성조의 관여는 통기타를 기초로 한 포크의 아마추어리즘을 깨지 않으면서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세련미를 더해준다. 70년대 이후 김희갑, 김의철, 이병우, 하덕규 등의 작곡가와 함께 한 노래들도 양희은의 대표곡으로 손색이 없지만 대부분 김민기의 곡을 부른 이 앨범을 양희은의 대표작으로 선정함에 있어서 이견은 없는 듯하다. 「작은 연못」, 「백구」등 김민기의 영롱한 우화들은 양희은의 목소리를 통해서 본격적으로 시대를 대변하는 생명력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양희은은 김민기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이 앨범의 실질적 가치는 양희은이 가진 목소리의 아우라에 있다. 맑고 청아한 노래와 한없이 높은 데서 임하는 영롱한 바이브레이션은 유신시대라는 암울한 현실에 대한 보상으로도 읽어도, 낭만적 순수성을 쫒는 포크 세대의 꿈으로 읽어도, 이지적 분위기로 차별화하려는 엘리트주의적 관점으로 읽어도 모두 합당하다. [전자인형]
 
 
 

62. 언니네 이발관 2집 『후일담』, 신나라뮤직, 1999

 
우리는 지극히 첫번째스러웠던 앨범들을 기억한다. 그것은 정확하게는 기술적인 완성도가 아니라 뮤지션의 순수한 창작력에 따른 놀라움을 지니고 있었던 첫번째 앨범들을 의미한다. 이후 어떤식으로든 변질될 수 밖에 없는 순결함을 담아낸 그 앨범들은 결코 재현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음악적인 영역을 벗어나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언니네 이발관의 『비둘기는 하늘의 쥐』(1997)도 그와 동일 선상으로 분류할만한 첫번째 앨범이다. 물론 밴드명에서부터 태도에 이르기까지 당시 매체가 관심을 보였던 홍대를 중심으로한 새로운 문화가 지니고 있던 가벼움과 독특함으로 치장된 저열함의 대표주자로 불릴만한 소지가 있었다. 그러나 언니네이발관은 악기를 처음 배우자마자 바로 작업한듯한 첫번째 앨범에서조차 차별되는 송라이팅을 선보인바 있었고 주목해야할 점은 그 무엇과도 바꾸기 힘들 그 첫번째 앨범의 의미를 뛰어넘는 음악적 성취를 이루어낸 두번째 앨범 『후일담』을 발표함으로써 그러한 오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새롭게 체제를 재편하고 연주력이 기본적으로 받쳐주는 맴버들이 아니면 불가능할 뮤지션으로서 작품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역력한 『후일담』은 「어제 만난 슈팅스타」와 같은 빛나는 싱글 트랙을 완성함과 동시에 앨범의 구성과 수록곡들의 배치에 있어서도 매우 훌륭해 감상함에 있어 전혀 무리를 주지 않는다. 즉 『후일담』은 기록적인 근거에 의해 감탄을 강요할뿐 다시 꺼내듣기 힘든 류의 문자상의 명반이 아닌 아무때나 꺼내 들어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음악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고 여기에 음악적 성취가 합쳐짐으로써 비로소 명반의 대열에 합류됐다 하겠다. [아놀드]
 
 

63. 조규찬 8집『Guitology』, EMI, 2005

 
물론 아티스트로서의 인기, 또는 상당수의 팬과 대중들의 관심이 그의 초기작들에 쏠려 있는 엄연한 사실을 애써 부인할 생각은 없다. 많은 사람들이 조규찬을 거론할 때 단연코 첫손가락에 꼽는 앨범들도 사실은 그것들이라는 것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명작의 의미와 가치는 늘 변할 수도 있고 특히나 현재진행형인 뮤지션들에게는 더욱더 그렇다고 생각한다. 전성기에서 조금은 멀리 떨어져 있거나 대중적인 환호도 예전만은 분명히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필터에 거를 이유는 없다. 그의 여덟번째 앨범에는 그러한 편견들을 뒤로 하고 음악인 조규찬의 오랜 내공과 뛰어난 작품 생산 능력이 곳곳이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자신의 제자리 찾기에 조금은 방황한 듯, 부담스런 보이스 컬러와 이리저리 무리수를 두는 그의 모습이 담겼던 5집이후의 음반들을 명반이라 부르기는 힘든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은 다르다. 멋진 곡을 쓰고, 소름이 돋을만큼 감동적인 목소리를 선사하는 조규찬만이 다시 오롯이 남아 있는 것이다. 얼마나 오래 기다려왔던 그의 개성인가. 또 얼마나 고대하던 아티스트쉽이란 말인가. 『Guitology』라는 제목에 한치의 부끄럼이 없다. 그야말로 컨템포러리한 모던 록과 고전적인 리듬 앤 블루스, 최신 팝을 넘나들며 기타와 보컬의 현란한 인터플레이를 들려주는 그의 감성은 그 어느때보다도 날이 살아 있다. 섬세하고 미니멀한 보컬의 느낌을 잘 살려낸 「잠이 늘었어」, 가녀린 떨림의 공명이 감동을 극대화시키는 「Don’t」, 누구도 모방하기 힘든 다채로운 보컬의 매력을 담뿍 담아낸 올디스풍의 「부르고 싶지 않은 노래」에서 확인되는 그의 뚜렷한 목표의식과 존재감은 흔히 그의 전성기라 ‘생각되어졌던’ 90년대 중반의 그 어떤 앨범에 뒤지지 않는다. 아니, 음악의 해석이라는 면에만 한정 짓는다면 그의 '최근작'은 그의 '최고작'일지모른다. [투째지]
 
 
 

64. 장사익 『하늘 가는 길』, 예원레코드사, 1995


잊어보자. 잊고 들어보자. 노래를 하기 전에 장사익이 걸었던 길은 굳이 잊고 그의 노래를 들어보자. 그가 40대가 되기까지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것도, 태평소라는 악기로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장원을 하였던 것도, 서태지의 콘서트에서 태평소 피쳐링을 하였던 것도, 독일의 재즈 밴드 ‘살타첼로(Saltacello)’와의 협연도 모두 잊어보자. 그리고 그의 데뷔 음반 『하늘 가는 길』을 들어보자. 「빛과 그림자」, 「열아홉순정」, 「님은 먼곳에」 등처럼 한국 대중음악의 굵직한 히트곡들이 많이 포함되어있다. 장사익의 세대를 산 사람에게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선곡이다. 어쩌면 특별할 것이 없는 선곡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장사익의 노래는 특별하다. 이렇듯 누구나 다 아는 노래로 지극히 한국적인 것을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한(恨)’이라는 한 마디에 가둬둔다면 더 억울할 한국의 정서를 담아내는 것이다. 앨범의 마지막 곡 「봄비」를 듣고 그 정서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이가 있을까. 왜색 짙은 신파조의 소리도 아니요, 지나치게 국악적이지도 않다. 퓨전 국악 운운할 것도 아니다. 그저 ‘이 맛이 한국이로구나.’ 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 애써 그가 걸었던 국악 명인으로서의 행보는 잊어도 그는 가장 한국적인 노래를 부르는 사람인 것이다. 또한 자신이 사랑하는, 혹은 스스로 쓴 시에 붙이는 그의 가락은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장사익의 절정을 느끼게 한다. 「찔레꽃」, 「섬」, 「하늘 가는 길」등, 그의 음악 친구들과 함께한 모든 트랙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곡들이다. [쏭구]
 
 
 

65. 애드 훠 『The Add4' First Album』, LKL, 1964
 
이 앨범은 키보이스, 코끼리 브러더즈와 함께 한국 록음악의 시작을 알린 애드 훠의 역사적인 데뷔 앨범이다.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비틀즈(The Beatles)의 열풍이 거세게 불 때였고 이미 한국에서도 미8군 무대를 통해 악기를 직접 연주하고 노래하는 록 그룹이 탄생되어 단련되고 있었다. 아직 록음악이 미8군 무대에 국한하고 있을 때부터 신중현은 이 분야의 최고 기타리스트였다. 애드 훠는 미8군 무대에서 일반무대로 록음악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신중현이 만든 그룹이었다. 서정길(보컬, 리듬기타)과 권순근(드럼), 한영현(베이스) 모두 미8군 무대 출신이었다. 이 앨범이 역사적인 이유는 한국 록음악의 시작이라는 태생적인 면보다 외국 곡들을 카피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던 당시 한국 록음악 풍토와는 달리 100% 자작곡을 담고 있다는 내용적인 측면 때문이다. 연주는 물론 작사, 작곡과 편곡까지 밴드 내에서 담당했다는 점이 이 앨범을 한국 대중음악의 기념비로 만든다.음악적 스타일은 철저히 벤처스(The Ventures)의 서프 록과 비틀즈의 스키플 사운드를 따르고 있다. 스타일의 유사성을 비판하기 전에 척박한 한국대중음악사의 이른 시기, 당대 세계적인 음악 조류를 완벽하게 체현해 내고 있다는 점에 놀라움이 앞선다. 더군다나 마이크 하나를 놓고 라이브로 연주해 낸 음원들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들에게 ‘오래된’이라는 수사 보다는 ‘뛰어난’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더군다나 「빗속의 여인」, 「커피한잔」, 「바닷가」등의 트랙들에서 이미 신중현 고유의 한국화 된 록음악 작법을 확인할 수 있어 더욱 가치가 높다. 「소야 어서 가자」, 「고향길」처럼 토속적인 뉘앙스가 캄보 밴드의 연주로 불려 졌다는 사실도 이 음반이 가진 미덕이다. [전자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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