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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사 베스트 앨범 100 (66위-100위) - 카페 음악취향Y 선정

스크랩칼럼+etc...

by mikstipe 2007. 4. 1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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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안치환 4집 『너를 사랑한 이유』, 킹레코드 ,1995

 
아직도 「내가 만일」이라는 노래 하나로 안치환을 싫어하거나 혹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주절거리는 탁성에 그의 치열한 고뇌가 담긴 「수풀을 헤치며」, 삶에 대한 기운찬 긍정을 가장 진솔한 언어로 토로하는 「당당하게」가 같은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안치환은 새롭게 거듭난 자기 노래에 자신이 있었으며, 그 자신감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조동익을 음악감독으로 맞이했다. 「수풀을 헤치며」의 바스락거리는 기타와 「당당하게」의 압도적인 후반부는 그렇게 탄생했다. 안치환이 가사를 쓴 「고향집에서」가 김남주의 「물따라 나도 가면서」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여기에 더해 텁텁한 80년대식 사랑을 포근한 리듬으로 감싸 안는 「평행선」까지 받아들이고 나면, 본 앨범은 90년대의 중심에 우뚝 선 록의 모범이자 포크의 모범이 된다. 대한민국 사회주의 운동에서 발원한 음악 중 이처럼 시대와 적극적으로 교감하며 폭넓은 시선을 견지한 음악이 있었던가! 「겨울나무」의 풍성한 사운드는 괜한 겉멋이 아니라 안치환의 본심과 그것을 읽어낸 조동익의 해석이 완벽하게 반응하여 일구어낸 시너지 효과로 봐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시너지 효과는 그의 다음 신보가 발매될 때마다 매번 반감된다. 무엇보다 진짜 불행인 것은 그가 당시에 내뱉은 고뇌의 언어들이 지금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는 사실이다. 그것들은 끔찍하도록 유효하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자신의 안위를 즐기는가” “살고싶소 당당하게 살고싶소” “우린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 “자신이 없었네 세상에 서있는 나” [호떡바보]
 
 
 

67. 이병우 기타독집1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 航海』(서울음반, 1991/재발매 뮤직도르프, 2001)


팻 메쓰니(Pat Metheny)의 기타 세계를 테크닉이 아닌 상상력의 무한 확장이라고 이야기 한다면 이병우의 기타 세계는 감수성의 무한 확장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어떤날”에서 이미 드러나기 시작하던 감성을 표현하는 연주는 그의 첫 솔로 음반부터 만개한 상태였다. 이 음반에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수많은 세션을 통해 세련되게 가꿔진 스타일, 팻 메쓰니의 음악적 상상력과 테크닉, 그리고 어떤날을 통해 검증된 감수성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 특히 연주를 통해 연주자가 상정한 음악적 그림을 상상하게 만드는 회화적 감각은 이병우가 훗날 영화음악가로 성장할 것임을 암시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영화음악이나 다른 아티스트와의 작업 속에서 드러나는 통속적이지 않으면서도 선이 분명한 멜로디 감각은 이병우라는 아티스트를 독보적인 음악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든다. 이 음반에는 이러한 이병우의 음악적 특성이 짙게 배어있다. 전 곡이 일렉트릭, 어쿠스틱, 클래식 기타와 기타 신디사이저를 이용해 연주되었기 때문에 순수한 의미의 기타 앨범(그래서 스스로 ‘기타독집’이라는 타이틀을 걸었다)이라 할 수 있는데, 녹음의 질감도 이러한 기타의 특성을 살리는 데 치중되어 있다. 순수한 기타 소리만을 담기위해 들인 공은 언제 들어도 상당히 만족스런 수준의 녹음 퀄리티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 음반은 시간을 초월하여 현재성으로서의 감동을 전해준다. 연주 뿐 아니라 녹음에 있어서 순수한 소리에 대한 집착은 훗날 이 음반에서 이병우가 내세운(당시에는 1인 프로덕션이었던) Musikdorf 프로덕션을 통해 발매되는 음반들을 규준하는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된다.  [헤비죠]
 
 
 

68. 푸른하늘 3집『푸른하늘 Ⅲ』, 동아기획, 1990

 
「눈물 나는 날에는」으로 팝 발라드의 절대 강자 된 푸른하늘은 10대 소녀 팬들을 동아기획에 끌어들인 장본인이다. 피아노를 기반으로 하여 차근차근 진행되는 이들의 발라드는 세간의 그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사랑을 네게」에서 드러나듯 호락호락하지 않은 멜로디와 여리게 떨리는 유영석의 목소리, 그리고 젊음의 고민을 담은 순백의 단어들에 당대의 10대와 20대 모두 매료되었다. 뭐니뭐니해도 푸른하늘의 매력은 수준 높은 팝튠을 들려주고자 하는 장인정신과 80년대 언더그라운드 특유의 노래 공동체 유산을 동아기획으로부터 동시에 물려받았다는 점이었다. 파격적인 곡 구성에 기타와 베이스의 훵키함이 돋보이는 「이 밤이 지나도록」과 장필순, 박학기, 오태호가 참여한 감성 충만한 화합의 노래 「우리 모두 여기에」가 앨범의 맨 앞에 자리잡은 것이 이를 증명한다. 한편, 복잡한 조바꿈 속에서 뮤지컬 넘버의 내음을 풍기는 「푸른하늘」과 시시콜콜한 가사를 잔뜩 늘어놓은 「그녀의 전화벨2」은 동아기획 막내둥이만이 보유한 재치였다. “우리가 알고 싶어한 모든걸 느낄 수 있는 푸른 바람이 되는 날”을 궁금해하고, 당신의 생일을 축하하면서도 “장미빛 입술로 떨어지는 고운 눈물”을 볼 줄 알았던 유영석과 송경호 두 사내는 어떤날과 시인과 촌장의 뒤를 이어 독특한 남성 2인조의 계보를 훌륭히 지켜내었다. 공일오비 역시 노래 공동체였고 김현철은 순수의 시대에 머물러 있던 시절에, 8곡 만으로도 자신의 실력과 감수성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었던 90년 전후 시절에, 푸른하늘은 세련된 팝의 옷으로 갈아입은 80년대 키드로서 자신의 지분을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호떡바보]
 
 
 


69. 이정선 7집 『30대』, 한국음반, 1985
 
이정선이란 아티스트가 가지는 위치는 언제나 톡특한 것이었다. 70년대 싱어롱이 가능한 편안한 포크 팝이 대세였을 때에도 그의 음악은 그만이 표현할 수 있는 개성 넘치는 코드 진행과 깊고 화려한 화음, 기술적으로 뛰어난 기타 연주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일면 아마추어리즘이 특징이었던 대중음악 문화에 프로 뮤지션, 혹은 테크니션으로서 존재감을 빛냈으며, 음악감독으로서 편곡과 사운드 디자인에까지 심혈을 기울이면서 예술적 완성도를 지켜내기도 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정선은 블루스에 더욱 천착하게 되는데 바로 이 앨범에서 그 절정의 실력을 담아내기에 이른다. 첫 곡인 「우연히」는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로서 각인된 이정선의 자신감이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완결함이 녹아 있는 명곡이다. 「건널 수 없는 강」의 심화된 블루스 색채와 이 곡 간주에서 들려주는 어쿠스틱 솔로 또한 이정선 음악의 백미로 기록되어야 한다. 본격적으로 일렉트릭 기타를 활용한 블루스 록 넘버 「바닷가에 선들」은 오랫동안 한국 블루스 록의 전형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울지 않는 소녀」의 과감하면서도 균형을 잃지 않는 편곡은 음악감독으로서 이정선의 재능을 증명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이렇게 이정선의 일곱 번째 앨범 『30대』는 블루스라는 장르적 관점에서 이야기되는 것이 상식이지만 당대 팝음악의 감수성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높다. 상기한 트랙들은 블루스의 전통이 전무하다시피 한 한국에서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토착화된 작품들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것은 이정선이라는 음악인이 가지고 있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뛰어남이다. 모방이 불가능한 고유한 예술성과 그것을 세련되고 독창적으로 표현하는 뛰어난 연주력을 두루 겸비한 훌륭한 앨범이다. [전자인형]



70. 김동률, 『歸鄕』, 대영에이브이, 2001

 
단언하건대, 90년대 이후의 그 어떤 뮤지션도 김동률만큼의 대중적 성공과 음악적 완성도와, 그리고 대중의 신뢰를 동시에 획득하지 못했다. 이 진지하고, 실력 있고, 또 성실한 뮤지션에게 ‘대중가요’라는 통속적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김동률의 음악은 그 위력적인 빛을 더한다. 그는 알아듣기 쉬운 어프로치를 구사하며, 우회적이기 보다는 직선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선율은 마음의 한가운데로 파고 들어와 울려내는 힘이 있으며 목소리에는 듣는 이를 안심시키는 묘한 설득력이 있다. 장난스럽고 유치한 것과는 거리를 두지만 어렵거나 난해한 방법론을 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측면이다. 사실상 그의 작곡 스타일을 규정지어버린 전람회 시절 이후, 김동률은 뮤지컬이나 영화음악, 그리고 월드 뮤직 등의 요소를 통해 자신의 음악적 정체(停滯)를 차단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나름의 부침(浮沈)을 거쳐 이제 세 번째 솔로 앨범인 『귀향』에서 그 정점의 멋을 풍겨낸다. 앨범을 여는 두 곡, 「사랑한다는 말」과 히트곡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에서 전람회 시절에 기초를 닦은 클래시컬한 작곡방식에 더한 성숙미, 그리고 안정감을 느끼게 되며 「하소연」, 「망각」에서는 그의 관심이 멜로디 그 자체가 아니라 전체적인 소리가 전해주는 조화와 감동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감히 그의 음악 여정을 통틀어 최고의 노래 중 하나라고 말하고픈 「귀향」은, 그가 슬로우 템포의 곡을 만들 때 그것은 단순히 몇 사람을 울리기 위해 존재하는 발라드가 아니라 한 시절, 한 세대의 추억과 상실감, 그리고 희망과 애수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임을 너무도 벅차 오른 목소리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투째지]

 

71. 김목경 3집 『Living with the Blues』,삼성뮤직, 1998

 
1980년대 영국서 음악활동을 하다가 귀국한 김목경은 1990년 영국서 녹음한『Old Fashioned Man』을 통해 데뷔했다. 두 번째 음반『Blues』(1995)까지 그는 대중성과 정통적인 블루스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세 번째 음반인 본작에 이르러 자신이 하고 싶던 바로 그 일렉트릭 블루스를 맘껏 펼쳐놓는 쪽으로 과감히 방향을 선회했다. 자신이 운영하던 클럽에서 적잖은 시간 호흡을 맞춰온 밴드와 녹음한 앨범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연주가 빛난다. 「내일 속의 어제」는 진솔한 삶의 태도가 블루스, 컨트리, 트로트가 절묘하게 섞인 곡조 사이로 펼쳐지는 김목경식 블루스의 진수이고,「여의도 우먼」과 「언덕 위의 여자」는 한글 가사로 부른 정통 블루스곡이다. 영어 가사의 「Guitar Man」과 「Fix Your Love on Me」는 시카고 블루스맨의 음악이라고 해도 의심치 않을 정도로 진한 모던 블루스 기타 연주와 감각을 들려준다. 연주곡 「외로운 방랑자」는 슬로우 록 취향의 블루스 곡으로 한국서 가장 소외된 장르 중 하나인 블루스만을 바라보고 연주하며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와 느낌을 기타라는 악기를 통해서 감동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순수하게 벤딩을 통해 만들어내는 깊은 울림에서 블루스 기타리스트의 고독, 태도, 삶이 청자에게 전달되는 경험을 선사하는, 앨범 제목 그대로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순도 높은 블루스 음반이다. [헤비죠]
 
 
 

72. 장필순 5집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하나뮤직, 1997

 
겉으로는 큰 움직임이 없어 보이지만 자기자신을 그야말로 꾸준히 움직이는 아티스트들이 있다. 장필순이 그런 아티스트들 중 한명일 것이다. 영화 ‘굿모닝 대통령’ 사운드 트랙을 위해 뭉쳤던 프로젝트 그룹「오장박」(오석준, 장필순,박정운)  에서부터 대중들과의 교감을 시작했던 그녀는 90년대 초반 첫 앨범을 발표한 이후 줄곧 포크 라는 장르를 통해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칼 같은 감정을 조용하게 노래에 담았다. 97년도에 발표한 5집앨범 은 전작들에 비해 조금은 눈에 띄는 변화를 보여준다. 물론 음악적인 뼈대가 완전히 방향을 바꾼 것은 아니지만 조용하고 내성적인 스타일로 일관했던 과거와는 달리 비트가 강조된 발랄한 사운드가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것 같았던 보컬도 이젠 좀 용기를 얻은 사람처럼 조금은 힘있게 들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렇게 뭔가 밝아진 것처럼 보이는 이 앨범의 내면은 전혀 밝지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좀더 시니컬하다. 이런 분위기는 앨범이 발표되었던 97년의 사회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인디밴드 의 약진이 시작되고 있었고 잘 모르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말 하기에는 세상이 쉽게 굴러가 주지 않을 거라는걸 사람들은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던 때였다. 그래서 되든 안되든 속에 있던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들을 「스파이더맨」, 「TV 돼지 벌레」, 「사랑해봐도」같은 노래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이런 변화는 과거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포크의 정신을 고스란히 계승하고 있는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폴린]
 
 
 

73. 서태지와 아이들 1집 『난 알아요』, 반도음향, 1992


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의 지형을 바꿔놓은 뮤지션인 서태지의, 그러니까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앨범이다. 발라드와 트로트 일색이었던 한국 대중음악에 ‘댄스’를 포방하며 ‘랩’을 전방에 내세운, 그래서 순위 프로그램에서 17주 동안 1위를 차지한 「난 알아요」가 있는 음반. 그런 까닭에 80년대의 반작용으로, 개인을 주목하기 시작한 시대정신이 선택한 앨범이라는 거대한 평가까지도 어색하지 않은 음반인 것이다. 정작 이 음반의 사회적, 시대적 의미에 밀려 음악적으로 그다지 평가 받지 못한 앨범이 아닌가 한다. 이 음반에 대한 적절한 음악적 평가라는 것이 최초의 히트한 ‘랩’ 음악 라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타이틀곡인 「난 알아요」는 ‘랩’이라는 음악적 요소와 함께 헤비메탈에 쓰일 법한 디스토션이 가득 찬 기타연주와 ‘뽕끼’라고 불릴만한 멜로디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너와 함께한 시간속에서」와 「이 밤이 깊어가지만」 등의 트랙에서는 ‘랩’과는 또 다른 지점의 흑인음악인 Soul, R&B 등의 장르가 확연히 들어난다. 2000년대에 들어서 한국 대중음악을 잠식한 R&B와는 전혀 다른 맛이지만, 당시의 시각으로는 상당히 컨템펄러리한 흑인음악임을 부정할 수 없다. 데뷔 음반 이후 꾸준하게 록음악에 대한 정체성을 들어내는 서태지임을 상기한다면 다소 괴리가 느껴지는 지점도 있지만, 어찌하였든 92년의 한국 대중음악은 서태지를 선택했다. 그리고 서태지는 이 음반을 발판으로 90년대를 통틀어 한국 대중음악에 가장 영향력 있는 뮤지션 중의 한 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쏭구]
 
 
 

74. 시인과 촌장 2집 『푸른 돛』, 동아기획, 1986

 
아무리 시간의 흐름과 새로운 사람들이 변화의 필요성을 요구하더라도 변하지 않을 가치를 대상으로 하면서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 그를 대신할 결과가 진보도 뭣도 아닌 한순간의 얕음을 담아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명반이라 불리워지는 가치에 대한 동의는 그렇게 시간적 간극을 뚫고 탄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과촌장의 [푸른돛]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쉽게 변할 성질이 아니다. 이미 명반의 반열에 올려진 작품이고 그 이유는 오늘날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직 신앙에 완전히 몸을 의지하지 않은 하덕규의 상상력은 함춘호를 만남으로써 보다 자유롭게 표출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은 동시대의 어떤날과도 달랐고 들국화와도 다른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다. 녹음 방식에서부터 노래 만들기, 가사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특별하지 않았던 구석이 없었던 이 결과물을 듣는다는 것은 여전히 놀랍다. 갈구의 대상을 동물과 꽃 등으로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변하는 감정의 불안전함을 이처럼 하나의 앨범에 온전하게 담아낸 예는 다시 찾기 힘들만큼 독보적이다. 냉소적임과 따뜻함으로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시도되어진 각종 음악적 실험과 극적인 곡 구성으로 대표되는 곡들 외에도 <진달래>의 가슴시림과 한편의 동화인 <얼음무지개>에서 들려주었던 근본적인 송라이팅의 우수함은 들춰서 얘기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이때의 하덕규는 절실함의 대상이 어디에 있는지 확신하지 못한듯하며 그렇기에 표현함에 있어 폭을 보다 넓게 가져갈 수 있었을것이다. 이후 하덕규가 그 원천을 신앙으로 잡음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음악만 놓고 본다면 다시는 이때와 같은 광범위한 여지를 재현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이 시기는 소중함과 동시에 애뜻하게 남는다. [아놀드]
 
 
 

75. 박정현 『Op.4』, T-Entertainment, 2002

 
박정현의 전작들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세상에 기억할만한 유려함으로 만들어준 동지와 선배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윤종신, 노영심, MGR, 이규호 등등. 우리가 박정현의 『Op.4』를 특징적인 앨범으로 기억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정석원'의 존재감에 기인한다 하겠다. 앞서 말한 이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감수성의 소유자이자 한국대중음악계의 장르 탐식가 명단 중 분명 상단을 차지할 정석원이라는 이름, 이미 '이가희'의 앨범에서의 '실패'를 경험한 그이라 더욱 대중들의 시선은 모아졌다. 그 시선은 사실상 우려감이기도 했으며 앨범의 주인공인 박정현의 존재감이 흐릿하게 지워지는 것이 아닌가하는 조바심이기도 했다. 오케스트레이션과 김세황의 기타까지도 대동한 공습형 파워발라드 「Plastic Flower(상사병)」로 청자들을 얼하게 만든 이들은 「꿈에」로 - 마치 이승환이 『HUMAN』의 「천일동안」에서 그랬듯 - 발라드라는 음악장치가 감정을 고양케하는 어떤 극단의 전형을 보여준다.  「Plastic Flower(상사병)」가 우려의 영역에 아슬아슬하게 걸친다면, 「꿈에」는 역시나 걸출한 보컬의 소유자가 음악(또는 음반)의 주인됨을 보여주는 감동의 순간을 확인케 한다. 가사의 측면에서 보자면 정석원의 역량은 주청자인 '여성'의 감수성을 빼어나게 훔치는 수준이며, 노래의 측면에서 보자면 박정현은 발라드 뿐만 아니라 비트 있는 넘버들은 물론 모던락 '여성 보컬'의 어떤 경향을 표방하는 다채로운 모습도 보여준다. 뒷선의 지원병이 되었지만 윤종신의 조력(「이별하러 가는 길」)도 여전하며, 이런 라인업은 황성제까지 가세한 『On&On』(05)에서도 재현된다. [렉스]
 
 
 
 

76. 롤러코스터 2집 『日常茶飯事』, T-Entertainment, 2000


세기말, 각자 가요계에서 잔뼈가 굵었던 조원선과 이상순, 지누는 하나의 팀으로 탄생했고, 비교적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뤘다. 『日常茶飯事』를 듣고 있노라면 딱 월요일 아침부터 시작해 일요일 오후까지 내가 느끼는 일상을 45분짜리 CD 1장에 압축해 놓았음을 느낀다. 펑키한 음악이 흘러나오지만 힘겹고 우울한 시작... 그리고 점점 비트나 멜로디, 보컬의 목소리는 밝아지며 「일상다반사」에 이르러선 이보다 더 여유롭고 평화로울 수 없다. 지누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빠르고 느리고 신나고 차분하게 듣는 이에게 애시드팝의 매력을 조목조목 가르쳐주고 있다. 이상순이 연주하는 기타는 깔끔하고 세련된 맛을 내주며 조원선의 보컬은 때론 세상에 미련이 없는 듯 너무도 담담하고 건조하게, 때론 너무 훵키(Funky)하고 생동감이 넘치게 곡에 스며들며 곡이 가진 그루브를 제대로 살려주고 있다. 홈레코딩으로 작업한 음반이라곤 믿겨지지 않을 만큼 녹음상태도 썩 괜찮고, 데뷔엘범부터 고수해오던 DIY제작으로 밴드의 독자적 정체성을 확립하며 확실히 국내에선 보기드문 유니크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믹싱을 하며 아쟁이나 테크노리듬을 샘플링하는 센스도 돋보이고,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연주곡들 역시 듣는 재미를 배가시켜주는 훌륭한 장치로써 역할을 다하고 있다. 듣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 강한 훅과, 자연스레 공감하게 되는 진솔함이 잔뜩 묻어나는 가사의 매력도 무시할 수 없다. 소포모어징크스를 멋지게 극복해내며 롤러코스터의 마니아층을 단단히 다져놓음과 동시에 보다 많은 이들에게 그들의 이름을 알리게 하였고, 자신들만의 아이덴티티를 놓치지 않은 채 가요계의 멋진 대안이 되어주었다. [아미고]
 
 

77. 조용필 14집『CHO YONG PIL 14』, 서울음반, 1992
 
조용필의 14번째 앨범은 전작 『The dreams』의 음악적 열정을 차분히 마무리하는 덤덤한 에필로그로서, 당연히 『The dreams』와 한 쌍으로 언급되어야 한다. 비록 「장미꽃 불을 켜요」와 같은 모험은 없지만, 그가 7집에서 완벽히 틀을 잡은 ‘가요록 사운드’는 본 앨범의 「흔적의 의미」와 「Jungle city」에 와서야 비로소 제대로 부활한다. 물론 그는 「슬픈 베아트리체」와 「이별의 인사」를 통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뮤지션이란 사실도 드러낸다. 두 곡의 환상적인 현악 편곡은 그가 고전음악의 작법을 치밀히 연구한 결과물이다. 특히 「이별의 인사」는 트로트와 국악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타기하는 보컬과 고급스런 현악 세션을 접붙여놓은, 더할 나위 없는 아이디어 작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두 곡의 발라드 「추억에도 없는 이별」과 「슬픈 오늘도, 기쁜 내일도」가 가진 숨은 매력을 무시할 수 없다. 평이하게 작곡한 것 같지만 왠지 모를 유치함과 소박함과 낭만이 서린, 도시에 사는 중년 뮤지션의 풋풋한 정서가 일품이다. 두 곡의 버스verse 부분이 들려주는 훅에서 노장의 ‘소박한 관록’을 감지한다면 너무 지나친 것일까? 이렇듯 은근한 실험과 단단한 록 사운드와 푸근한 발라드가 덤덤히 공존하는 모양새가 진짜 조용필이다. 온갖 찬사에 둘러싸인 작품들을 앞에 두고 있기에, 그곳에서 한발 물러서있는 작품이기에, 그 가운데에 볼록하게 솟아있는 「고독한 runner」는 더욱 신실한 제스처로 다가온다. 앨범 전체를 자신만의 음악을 채우기로는 본 작품이 마지막이었던 조용필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폭풍 속에서 홀로 조용히 달리고 있었다. [호떡바보]
 
 
 

78. 한영애 2집『바라본다』, 동아기획, 1988

 
70년대 후반 이후 지금까지 한영애가 쏟아내는 음악적 성취와 태도는 매우 모범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했는데, 그것은 포크(해바라기), 블루스(신촌블루스), 국악과의 크로스 오버등으로 이어졌다. 그녀의 반쯤은 쉰듯한 허스키 보이스가 시도할 수 있는 음악의 가짓수를 제한할 것이다라고 생각되어질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그는 단 한번도 자신의 보컬 스타일을 버리거나 크게 바꾸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목소리들은 음악과 매우 잘 어울렸고, 또 대중들과의 교감에서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그녀는 다른 길로 새는 법이 없었으며, 누구보다도 꾸준히 음악, 또는 음악관련 분야에서 활동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료와 선후배 모두에게 큰 존경을 받을만 했다. 물론 후대의 평론가들은 그녀를 어떻게 기록할지 알 수 없으나, 감히 나는 여기에서 70년대 이후 가장 존재감 있는 여성 뮤지션으로서 그녀의 이름을 올리고자 한다. 한영애라는 솔로 아티스트의 지위획득에는 다른 많은 활동이 그 영향을 끼쳤겠지만 가장 대표적이고 또 가장 강력했던 한장을 꼽으라면 바로 그녀의 두번째 앨범일 것이다. 「코뿔소」「누구없소」등이 담긴 이 앨범을 두고 동아기획의 김영사장은 ‘치마를 두른 가수의 음반중 가장 성공한 음반’이라며 그 당시를 회고하기도 했다. (사실 지금의 기준에서 이 앨범의 성공의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 앨범은 매우 스트레잇한 블루스 록을 한국적으로 해석하고 있었으며, 아주 심각한 부분에서조차 감각과 재기를 잃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했다. 그녀는 슬로우 넘버에서도 특유의 그루브를 잃지 않았고, 음과 공백의 위치를 상투적으로 처리하지 않는 등 보컬적인 면에서도 독창적 어프로치를 획득하고 있었다. [투째지]
 
 
 

79. 바세린 1집『The Portrait Of Your Funeral』, GMC, 2002

 
비장함과 아름다움, 바세린의 정규 1집 『The Portrait Of Your Funeral』을 설명할 수 있는 두 단어라 하겠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고마운 대한민국 '좁디좁은' 헤비니스씬은 참으로 기적같은 데뷔반을 배출하곤 했는데 『Endless Supply Of Pain』의 크래쉬가 그랬고, 『Noizegarden』의 노이즈가든이 그랬듯 바세린의 본작 역시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면 모든걸 보여주자'라는 절박함과 치열한 가투의 사운드가 담겨져 있다. 어쿠스틱한 분위기의 서정적인 연주가 앨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두번째 트랙 「Crane」의 파장공세로 본격적인 바세린의 인자를 발산하는데, 길어도 4분을 채 넘지 않는 유수의 트랙들은 선명한 멜로디 감각과 영화상의 보이스 트랙을 인용하는 등의 장치로 개개의 드라마를 형성하고 있다. 이 드라마들은 제각각 노도하는 분노(「Good Life」, 「Missing Link」, 「Pure」, 「Boredom In The Pressure」 등)를 앞세우기도 하고, 서정적 인트로로 열다 이윽고 바닥의 감성을 노출「(Pierce A Knife In My Heart With Your Hands」, 「In This Madness」등)하기도 하는데 이런 경향은 전작 EP 『Bloodthirsty』의 강화형이자 이어지는 2집 『Blood of Immortality』(04)의 완숙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어떤 곡이든간에 기억할만한 아름다움을 아로 새기는 작법은 바세린만의 주효한 강점이다. 각 파트의 선명함을 보여주는 출중한 사운드 마스터링과 메틀팬과 코어팬들은 물론 목마른 음악팬들을 수용할 수 있게 한 밴드의 성실함은 21세기초 기억할만한 헤비니스계의 명반을 만들어냈다. [렉스]
 
 

80. 빛과소금 2집, 『내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동아기획, 1990

 
객관적인 측면에서,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까지가 한국 대중음악의 창작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데, 바로 빛과 소금 같은 팀들이 그것을 확신시키기 때문이다. 이 즈음에 이루어진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도약은, 조금 애매하게 표현하자면 ‘세련미’의 획득이었다. 풀어서 이야기해보자. 그 이전시기의 음악들도 보컬, 연주, 가사 등 대중가요의 근간이 되는 요소들에서 그 나름의 영역을 구축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우리의 가요는 팝이나 재즈처럼 세련된 음악으로 인식되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편곡, 화성의 다양함, 스튜디오 녹음의 기교 등에 있어서 영/미 팝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들국화나 어떤날, 그리고 빛과 소금 같은 팀이 등장하면서 그러한 간극이 상당 부분 좁아지게 된다. ‘위대한 탄생’, ‘김현식과 봄 여름 가을 겨울’에서 연주와 작곡에 대한 노하우를 획득했던 장기호, 박성식과 한경훈으로 이루어진 빛과 소금은 아마도 당대에 가장 세련된 어프로치를 구사하는 팀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현철, 봄여름가을겨울 등은 흔히 이제는 ‘동아기획’ 사운드라 불리는, 재즈와 팝의 형식미 위에 한국적인 감수성을 공존시키는, 가요계 역사를 통틀어서도 극히 독창적인 사운드 미학을 확립시켰다. 「TV Talent(샴푸의 요정 Ⅱ)」나 「모터 사이클」에서의 연주를 들어보자. 아쉽게도 이제는 그 대가 끊긴, 한국식 퓨전재즈의 효시이며 그러한 세련된 연주와 화성의 접합 속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던 신선하고 감미로운 멜로디의 구현이었다. 이제는 클래식이 되어버린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그리고 「귀한 건 쉽게 얻어지지 않아」와 같은 곡들에서 느껴지듯, 그 이전의 대중가요의 조금은 투박하고 ‘뽕스러운’ 멜로디의 그늘을 완전히 벗어났지만, 그 방식은 여전히 매우 친근하고 아름답다. [투째지]




81. 유앤미블루 2집 『Cry.... Our Wanna Be Nation!』, LG미디어, 1996


방준석과 이승열. 이 다재다능한 두 사람의 의기투합체 유앤미블루. 분명 두사람이 추구하는 음악세계는 확연히 다르다. 그러나 시너지효과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한다. 「지울수 없는 너」로 대표되는 감성적이고 연약한 방준석의 음악과 「그대 영혼에」로 말할 수 있을 선과 스케일이 굵직굵직한 이승열의 음악은 얼핏 느끼기에 어울리기 힘들 것 같지만 서로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고 장점을 잘 살려주는 것이 이 밴드의 미덕이다. 우정을 기반으로 한 유앤미블루의 조화는 수줍고, 우울하며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직설적이고, 솔직담백한 정서를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게 잘 표현해 내고 있음이다. 혹자는 이승열이 맡은 기타부분에 있어선 U2의 멤버인 에지(The Edge)의 플레이와 비슷하다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에서 U2에 비견될만한 음악을 만들어 낸 누군가가 있었던가? 분명 이승열의 플레이는 에지의 플레이와 동일선상에 놓고 봐도 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수려했으며, 메인보컬 방준석의 감수성 역시 보노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레벨을 보여주었다. 비록 음악 외적인 성과에 있어서는 그리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이후에 팀이 해체를 하고 각자의 활동을 하게 되었지만, 음악의 실험성이나 전달하려는 메시지, 그리고 뮤지션의 마인드 모두 더 진보적이고 다른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노력한 그들의 등장은 한국음악사에 진정한 얼터널티브음악의 개막을 알리는 축포였으며, 『Cry.... Our Wanna Be Nation!』은 그 쏘아올린 축포가 정상에서 불꽃으로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감히 말할 수 있다.  [아미고]
 
 
 

82. 이승철 4집 『The secret of color』, 지구레코드, 1994

 
주어진 음악적 재능과는 별개로 가장 굴곡진 시기를 보내던 이승철은 대단히 모험적인 시도를 한다. 이승철 자신이 밝힌 대로 ‘소리에 대한 획을 긋고자’한 이 작품은 발매 즉시 평단의 격찬으로 인정을 받았다. 훌륭한 세션에 의한 연주 및 코러스, 후반 작업이 일체화된 본작은 상업적으로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지만, - 단지 이 작품에는 킬러 싱글이 없었을 뿐이다. - 이승철이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다양한 장르적 실험이 하나로 엮어져 ‘작품’으로서의 앨범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흥미로운 것은 록 보컬리스트로 출중한 역량을 발휘하던 그가 의외로 정원영과 함께 한 퓨전 재즈곡 「겨울그림」이나, 김홍순과 함께 한 블랙뮤직 스타일의 「착각」, 「흑백논리」에서도 정말 잘 어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과거에도 「발레리나 걸」등과 같은 댄서블한 곡이나, 박광현과 함께 했던 「잠도 오지 않는 밤에」 등에서도 이미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기에 놀라워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승철과 서로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 사이에서 본작을 관통하는 하모니는 보컬리스트로서의 ‘이승철’에서 음악감독으로서의 ‘이승철’의 능력이 만개하였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참, 이전의 이승철을 느끼고자 한다면, 「웃는 듯 울어버린 나」와 「소나기」를 들어보시길 권한다. 경력 20년이 넘은 뮤지션이 여전히 가장 만족스러운 작품으로 기억한다면 거기엔 다 이유가 있는 셈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때, 한 뮤지션이 진정으로 추구하던 소리에 대한 열정의 모든 것을 후회없이 내지른 것이므로. [마이너]
 
 
 

83. 키보이스 1집『그녀의 입술은 달콤해』, 신세기 레코드, 1964

한국 록 최초의 음반은 '신중현'의 록그룹 애드 훠(Add 4)의 『빗속의 여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비틀즈’를 표방하며 애드 훠와 함께 그룹사운드의 대표주자로 활동했던 키보이스의 『그녀의 입술은 달콤해』가 그 이전이다. 1964년 7월 4일 발매된 것. 애드 훠의 『빗속의 여인』이 1964년 12월쯤 발매되었으니 발매시기로만 본다면 한국 최고(古)의 록 음반인 셈이다. 매년 여름이면 들을 수 있는 ‘국민가요’라 할 만큼 유명한 곡 「해변으로 가요」의 주인공들. 지금 시점에서 보면 비틀즈와 비치보이스의 곡들을 부르며 활동해왔고 앨범 수록곡들도 번안곡들이 주를 이루며 밴드의 구성자체도 비틀즈와 비슷한 카피 혹은 이미테이션 밴드로 그 존재 가치를 깎아내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의 데뷔음반은 최고(古)의 록 음반이라는 점에서 분명 존재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 우습게도 타이틀인 「그녀의 입술은 달콤해」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금지가요로 지정되어 널리 알려지지 못했지만 최초로 전자오르간을 도입한 「정든 배는 떠난다」나 I wanna hold your hand를 번안한 「그녀 손목 잡고 싶네」같은 곡이 수록된 그들의 데뷔앨범 발매는 분명 이미자가 동백아가씨로 가요계를 평정했던 그 시절 한국 음악계에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으며 그렇기에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라도 재평가되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편지]
 
 
 

84. 김두수 3집 [Kim Doo Soo], 현대음향, 1991

 
사진만이 시간을 정지시키는 예술이 아니다. 음악은 기본적으로 시간의 예술이지만 좋은 음악은 때때로 그 자신의 한계인 시간을 정지시킴으로써 형언하기 힘든 감동을 준다. 두 가지 방법이 있겠다. 하나는 빛의 속도로 달려 시간개념을 소실시키듯 멜로디로, 기타의 리프로, 다변화하는 그루브로, 또는 다른 어떤 무엇으로 음악 감상에 물리적 역학을 부여하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의 방법은 정신적인 것이 있겠다. 최면이나 마법을 부리듯이 초현실적인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다. 김두수는 두 번째 방법으로 시간을 정지시키는 능력을 가진 음악가이다. 그리고 그 정점이 바로 1991년 발표된 세 번째 앨범이다. 이 앨범은 우리가 포크, 혹은 아트록이라고 말할 때 연상 되는 이미지들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 무엇도 아닌 김두수의 음악으로서 고결한 완결성을 보여준다. 「청보리밭의 비밀」과 「보헤미안」은 고결함의 진경이다. 복잡한 인간 정신을 탐구하는 구도자를 따라가는 것처럼 예상치 못한 폭발이 곳곳에서 일어난다. 노래 속에 포함된 감수성과 표현이 지나치게 세밀해서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다. 포크의 작법에 비교적 충실한 「강변마을 사람들」이나 토속적인 멜로디의 「나무그늘」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때문에 이 앨범을 진중히 청취했을 때 시간이 멈춘 듯 초현실적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상품과 예술이라는 이중적인 대중음악의 속성 중에서 예술 쪽으로 부등호를 크게 열게 하는 앨범이다. 한국대중음악사상 이렇게 탐미적인 앨범은 몇 장 존재하지 않는다. 그 중에서도 단연 첫 손에 꼽히는 앨범이다. [전자인형]
 
 
 

85. 이소라 6집『눈썹달』, T-Entertainment, 2004

 
자신의 앨범에 음표 하나 새기지 않고도 음악적 비전만으로도 세계관을 조성하는 경우가 있다. 이소라의 『눈썹달』이 그런 경우다. 개인적 경험을 가사로 수놓고 음악 친구(이한철, 김민규, 스토리의 이승환, 강현민, 정지찬, 정재형, 신대철)들을 초대하고 자신의 음반에 프로듀서로서 감독직을 맡는다. 그녀를 둘러싼 가장 많은 수사였던 '재즈적 창법'이니 하는 것들은 이미 『슬픔과 분노에 관하여』(98)에서 벗어던진지 오래였다. 98년작에서 보컬과 장르 장벽을 진작에 넘어선 이소라의 선택은 각 노래마다 곁들인 비애와 아픔의 정서를 다른 색채로 물들이는 것이었다. 끝간데없는 바닥까지 내려간 우울보다는 슬픔을 관조의 경지로 이끈 대표작 「바람이 분다」가 보여준 대중적 성취 외에도, 이미 다른 행성에 다다른 몽환의 경지 (「듄」,「쓸쓸」)가 앨범 표제와 어우러져 색다른 대지의 감각을 보여준다. 슬픈 감정의 바닥에 존재하는 허밍의 소름끼침 「세이렌」, 옆자리 친구에게 전하는 술잔 사이의 대화 같은 - 또는 밤전화 같은 - 「시시콜콜한 이야기」, 텁텁한 담배 연기 속의 자욱함 같은 「fortuneteller」등 이 모든 것들은 '특정 감정'을 지닌 2.30대 여성들에게 폭넓은 공감을 끼쳤으리라 짐작된다. 그것이 전작의 제목처럼 'Diary' 속의 속내든 지구 저편 외행성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의 힘'이든간에 이소라가 이 앨범에서 보여준 뮤지션으로서의 성취도는 그녀 디스코그래피 최상의 것이 된다. 이는 뒤에 거론할 박정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탁월한 보컬리스트'가 앨범의 진정한 주인공이 되는 감동적 순간의 확인이며, 한국대중음악계의 은둔형 여성 실력파의 신작을 기대하게 하는 확고한 근거가 된다. [렉스]
 
 
 

86. 노래를찾는사람들 2집『노래를 찾는 사람들 2』, YBM, 1989
 
간혹 내용이 형식을 압도하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의 옹골참에 누구 하나 형식의 잣대를 들이대기 힘든 경우가 있다. 노래를찾는사람들의 음반을 대할 때가 그렇다. 고운 손바닥 안에 결심한 듯 묵직한 것을 움켜쥐었던 대학신입생의 자취방에서부터 제도 내에서의 직장인, 지식인, 그리고 입소문을 들은 호기심 가득한 숱한 이들의 구매목록이었던 전설의 음반. '파일 공유' 시대가 무색하게도 닳고 닳은 복제테이프로 생명을 이어간 '어떤 시대'의 유효한 증거품이다. 이름값이 담고 있는 편견(?)에 비추어 본다면 다소 뜻밖에도 어떤 선동성이나 운동성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시대상에 지친 사람들을 위무하는 기능이 더욱 강한 본작은, 소박함이 숭고함에 닿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작은 기적을 보여준다. 대체로 가사는 강직함과 온건함을 강조하는 남성적 어조와 모든 것을 껴안는 대자적 자연의 여성적 어조가 배합되어 있으며, 잘 알려진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와 「광야」같이 장엄함의 경지에 닿은 곡부터 「마른잎 다시 살아나」, 「잠들지 않는 남도」와 같이 처연한 정서를 보여주는 곡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무엇이든 간에 현장의 이들이 고민했던 대목이 '서정성'과 '대중적 설득력'이었음은 쉬이 짐작이 가능한 대목이다. 시대상이 만들어낸 각박한 처지의 아마추어리즘이 이룬 가장 극적인 경지로써 노찾사는 지금도 간혹 인구에 화자되고 있다. 때로는 젊은 가수들의 리메이크 선곡으로, 때로는 다시금 곱씹는 '그때 당시의' 안치환과 권진원의 존재감으로... 혹자는 본작을 두고 '신화화'를 우려하기는 하지만 앨범 내용이 담고 있는 진솔함과 침착하게 누그러진 가투의 에너지를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렉스]
 
 
 

87. 푸른새벽 『Bluedawn』, Cavare Sound, 2003

 
푸른새벽은 The The의 Dawn과 Demian의 Sorrow에 의해 결성된 그룹으로 Dawn은 이미 The The에 소속되어 세번째 정규 앨범 [Main In The Street](2001)를 발표한 뮤지션이었다. 그러나 The The는 어디까지나 김영준의 송라이팅에 의해 주도되었던 그룹이었고 마침 곡을 쓰기 시작하였던 Dawn은 푸른새벽 활동을 병행하며 메이저에서 활동함에 따라 생기는 제약적인 부분과 회의감들을 The The와는 별개의 창구를 통해 표현하게 되었다. 그렇게 완성된 [Bluedawn]에 그러한 과정이 소년소녀적인 감성에 녹아들었던건 필연이었고 결과물은 같은 해에 발표되었던 The The의 [The The Band](2003)보다 오히려 사람들의 가슴에 깊이 박혀 현재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이는 [Bluedawn]이 테크닉적인 완성도로써가 아니라 살아오면서 비슷한 이유로 상처 받아온 사람들과 감성적으로 소통하는데 성공했고 상징성을 부여 받았음을 의미하고 10대에서 20대가 되고 그속에 머무르면서 느끼게 되는 생각이나 감정들이 여리게 스며든 노래로 하여금 위로 받은 사람이 적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기술적인 부분과 앨범의 프로듀싱을 YJRoom이란 이름으로 참여한 The The의 김영준으로부터 받으며 마치 아직 독립하지 못한 아이와도 같았던 이때의 음악은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가능했을지 모르고 그래서 소중한 의미로 남겨져있는건지도 모른다. 그뒤 아이들은 독립하여 보다 원래 의도했던 장르에 보다 경도된 음악을 선보이나 이때만큼의 소통을 이루진 못한다.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지만 아련함으로 남는것이 다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인것처럼. [아놀드]
 
 
 


88. 현미 『히트 시리즈(보고 싶은 얼굴)』, 오아시스, 196?
 
1960년대는 본격적인 대중음악 시스템이 시작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SP에서 LP로 음반 매체가 이동하였고 무엇보다 상업민방이 속속 개국하면서 방송의 역할이 대중음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서구화를 근대화의 롤 모델로 삼던 당시, 미8군에서 서구 대중음악을 연마하던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문화계 전면으로 부상하게 되는데 이때 손석우를 비롯해서 이봉조, 김인배 등 새로운 세대의 작곡가들과 최희준, 한명숙, 현미, 패티김 등 스탠더드 팝 가수들이 등장했다. 패티 페이지(Patti Page)나 냇 킹 콜(Nat King Cole)류의 편안한 팝음악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음악은 공통점을 가지지만 그 중에서도 이봉조와 현미의 음악은 유별난 구석이 있었다. 백인적인 스탠더드 팝의 울타리 안에서 블루스와 소울의 영향력을 짙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밤안개」에서 들려주는 풍성한 허스키 보이스나 「보고 싶은 얼굴」의 끈끈한 블루스의 느낌은 당대 스탠더드 팝 뮤지션들 중에서도 구별되는 독특한 음악적 스펙트럼으로 자리 잡고 있다. 히트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오아시스(일련번호 OL 12438)에서 발매된 이 앨범은 이봉조 악단의 짙은 블루스적 색채와 절정기 현미가 들려주는 성량 큰 소울 보컬이 잘 어우러진 음반이다. 이미 커다란 히트곡이었던 「밤안개」와 박춘석의 편곡으로 김치캣이 불러 히트했던 「검은 상처의 블루스」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독집 성격은 아니지만 이봉조와 현미의 60년대 절정기 호흡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이후 이봉조는 스타 작곡가로 많은 가수들을 발굴하고 많은 히트곡도 가지게 되지만 (현재까지 발굴된 음반들 중에서)이 음반에서의 작업이 가장 진한 블루스 필을 내보이고 있다. [전자인형]
 
 
 

89. 패닉 2집 『밑』, 신촌뮤직, 1996

 
패닉의「달팽이」는 라디오헤드(Radiohead)의「Creep」과 공통점이 있다. 시장논리에 의해 사장될 뻔 했던 그룹을 구해낸 노래라는 점이 그렇고, 각각 그들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노래임에도 그들의 음악성을 대표할 수 없는 노래라는 것이 그렇다. 이 곡을 통해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뤘지만, 그들은 만족할 수 없었다. 애당초 이적의 솔로엘범으로 기획되던 패닉의 1집에서 김진표의 존재감은 이적이 노래를 부를 때 옆에서 색소폰을 부르며 가오를 잡아야 할 만큼 너무도 미미한 것이었으니... 비로소 팀 작업에 의해 이뤄진 이 엘범의 작업은 진정한 데뷔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의 헐떡이는 숨소리로 그루브를 만드는 독특한 방식의 인트로「냄새」로 포문을 여는 『밑』은 그 저돌적인 정서의 표출과 함께 실험적인 사운드로 전개될 것임을 일찌감치 예고한다. 현악과 꽹과리, 피아노의 앙상블이 돋보이는「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와 삐삐밴드의 이윤정이 질러대는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인상적인「불면증」에서 그 음악적 실험을 절정에 이른다. 김진표가 만든 「벌레」와 「Mama」에서는 갱스터랩(Gangster Rap)이나 랩메탈(Rap Metal)의 기운마저 감도는 어둡고 거친 분위기에 직설적으로 쏟아내는 랩 역시 인상적이다. 「혀」에선 직접적이진 않지만 그간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잡설들을 싸잡아 ‘잘라버리겠다’고 선언한다. 데뷔엘범으로 인해 뿌리내린 고정관념에 의해 2집은 파격으로 느껴졌고, ‘반사회적그룹’이라는 낙인까지 받아야 했지만, 그들의 날카로운 사회를 향한 외침, 그리고 끊임없는 실험은 이후에도 이어져 패닉으로써 잠시 활동을 중단하고 각자 따로 활동을 하면서도 계속되어 패닉과 이적, 김진표 모두를 굴지의 뮤지션으로 성장시킨 계기가 되기도 했다. [아미고]
 
 
 

90. 어어부 프로젝트사운드 『개, 럭키스타』, 펌프/디지탈미디어, 1998

 
EP 『손익분기점』에서 유쾌하면서도 씁쓸한 아이러니를 선보였던 어어부 프로젝트밴드. 원일이 세션으로 물러나면서 장영규와 저자(백현진)의 듀오가 된 어어부 프로젝트사운드는 18곡이라는 엄청난 물량공세로 한국 대중음악 사상 유례가 없는 기괴하고도 음침한 실험적 음반을 만들었다. 송도순의 아기사탄 같은 내레이션이 잔뜩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개」에서 “제발이지 당신은 이 상황을 인정해야 한다”라는 울부짖음이 등장하는 순간, 누구든 이 앨범의 마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후에 비싼 실수」의 음울하기 짝이 없는 반주와 한 마리 괴물을 연상시키는 저자의 섬뜩한 보컬 앞에서 모두 압도당하고 만다. “나는… 일말의 양심을 도려내고 있었다”는 저자의 고백이 강타한 다음부터 이 음반은 더 이상 아방가르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저자가 뿌려놓은 초현실적이고 정신분열적인 가사 속에서 “농담 섞인 음식 보건위생법에 저촉” “나는 기억하지 않기로 하였다”와 같은 구절을 따라가다가 “인스턴트 꿈: 복지, 건강, 희망” 이라는 결말 앞에서면 마침내 우리는 울적해진다. 아이러니와 부조리로 점철된 우리네 삶에 대한 통찰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국악과 양악을 총망라하는 각종 타악기, 이인(방준석)의 기타와 원일의 피리, 모던록과 댄스의 뒤섞임, 일상생활의 각종 소음, 이 모든 것들이 어어부에겐 통찰에 필요한 소스들이다. 인용된 한대수와 트위스트 킴에서 알 수 있듯, 이 앨범은 대한민국의 반골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송홍섭, 강산에, 달파란, 김형태 등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건 이 앨범이 삐삐밴드로부터 출발한 ‘작전 펑크’의 완성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호떡바보]




91. H2O 『오늘 나는』, 로얄레코드, 1993

 
1990년대 초는 록의 어법과 태도 등이 모든 면에서 전환점을 맞이했던 시기다. 그리고 그것은 대세라 해도 좋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동시대에 문화적 충격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부터 맞이했던 경우에 속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러한 전환점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을까. 아니다. 우리에게도 거의 동일한 시기에 록의 모던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H2O로부터였고 1980년대에 시작때부터 타밴드와는 뭔가 다른 독특한 이미지를 풍겼던 그들은 1990년대로 넘어오면서 보컬리스트 김준원을 제외한 나머지 연주 파트에서 대대적인 체제 개편을 단행했고 그렇게 재탄생된 음악은 이 땅에 존재하던 록 음악과는 그 출신 성분부터가 다른 것이었다. 헤비메틀부터 모던록, 펑크, 일렉트로니카까지 당대의 음악을 하나의 앨범에 일관적으로 담아내었고 결과물의 함량이 시도의 가치를 무색하지 않게 만들었던 유일무이한 뮤지션인 강기영의 송라이팅을 바탕으로 새로운 체제의 H2O는 리듬이 두각을 나타내는 음악을 선보였는데 『오늘 나는』으로 접어들면 맴버 각자의 송라이팅과 연주, 앨범의 녹음 상태까지 모든 것이 최상인 상태로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멋진 보이스, 묵직한 베이스, 간결한 기타, 군더더기 없는 드럼을 하나의 놓침 없이 잡아낸 세밀한 녹음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며 완벽한 창작력이 갖춰진 록 밴드의 살아있는 연주를 담아낸 증거물로 내놓기에 한치의 망설임도 느낄 수 없게 만든다. 철저하게 완성도에 입각한 명반의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면 이 앨범부터 들어두길 권한다. [아놀드]
 
 
 

92. 솔리드 2집『꿈』, Music Design, 1995

 
첫 트랙 「꿈」이 시작되면 귀를 쫑긋 세우며 놀라게 된다. 성가대의 음악에 가까운 아카펠라로 진행되며 소울풀한 보컬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한국적이지 않은 Made In Korea R&B음반의 서막을 연다. 한국의 R&B 시대를 열어재낀 본작의 시작은 이토록 웅장하다.  팀의 리더이자 거의 모든 곡을 작사작곡하고 프로듀스까지 해낸 정재윤의 다재다능함, 포켓볼 8번공이 박혀있는 지팡이를 유행시킨 이준의 카리스마 넘치는 저음랩, 그리고 한국인의 성대로도 이렇게 소울풀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음을 몸소 증명해낸 김조한. 이 세명은 모두 재미교포 출신이라 자연스레 많이 듣고 접했던 미국의 음악스타일에 가까워 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흑인음악을 흉내내기에 그치지 않고 한국적인 스타일로 발전시켰다. 한국 R&B음악의 효시로 불리는「이 밤의 끝을 잡고」라는 메가히트곡이 수록되어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수록된 모든 슬로우 넘버를 들고 있노라면 보이즈 투 멘(Boyz II Men)이 부럽지 않다. 멜로디와 하모니는 출중하고 노래는 환상적이다. 하지만 결코 한국사람들이 받아들이기 힘들만큼 기름지지 않다. 그리고 앨범의 중간중간 들어가 있는 하우스댄스나 힙합댄스에서도 솔리드의 센스는 빛을 발한다. 본토에서 배운 영어와 그루브를 앞세운 그들의 노래는 의외로 쉽게 받아들여진다. 시작은 ‘동양인도 흑인의 그루브와 목청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도전의식이었지만 결과적으론 화합의 길로 연결된 바람직한 앨범이라 하겠다. 결과적으로 한국인의 흑인음악에 대한 콤플렉스를 뛰어넘은 작품이 되었지만, 후배들에겐 솔리드라는 또 다른 벽을 만들어 버리기도 한 작품이다. [아미고]
 
 
 

93. 윤수일밴드 『2집』, YBM, 1982
 
1970년대 초반 밴드 골든그레입스를 통해 활동을 시작한 윤수일은 밴드들에게 철퇴가 내리던 197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 솔로 가수로 변신, 안치행 작곡의 「사랑만은 않겠어요」로 가요계에 데뷔한다. 1981년, 그는 다시 밴드를 결성하고 4장의 음반을 윤수일밴드의 이름으로 발표하며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윤수일이 작곡한 음악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선진적이던 뉴웨이브의 색채를 띠고 있었으며, 이러한 스타일을 스스로 ‘시티뮤직’이라 명명했다. 윤수일밴드의 음악은 헤비메탈/하드록의 색깔로 도배된 것도 아니었고, 흔히 뽕짝록이라 불리는 트로트고고에 리듬만 강화한 스타일도 아니었다. 한국 대중음악의 관점에서도 뉴웨이브라 할 수 있는 윤수일밴드의 음악은 당대의 히트곡 정도로 치부하기에 너무도 개성과 완성도가 높은 곡들이다. 문제는 앨범에 담긴 모든 곡이 동일한 완성도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인데, 이는 고질적인 한국 대중음악의 숙제이기도 하다. 오히려 윤수일밴드는 모든 곡을 스스로 만들고 연주하는 가운데 대중성과 완성도를 모두 놓치지 않는 빼어난 싱글을 계속 내놓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재평가할 필요를 느낀다.「아파트」,「제 2의 고향」,「떠나지마」,「아름다워」,「환상의 섬」등의 멜로디 감각과 편곡은 시대를 초월해 유효하다.「환상의 섬」과 같은 완벽한 트랙은 없지만「제 2의 고향」(1집에 이어 재수록)과 윤수일 최고의 히트곡「아파트」가 수록된 윤수일밴드『2집』은 트랜드였던 디스코를 차용하면서도 드라이브감이 살아있는 노련한 록이 잘 버무려진 윤수일밴드의 감각적인 노래 만들기가 제대로 구현된 양질의 음반이다. [헤비죠]
 
 
 

94. 미선이『Drifting』, 라디오뮤직, 1998

 
어떤날의 모던록 버전? 분명 조윤석이 써 내려간 멜로디는 쉽고 어린 아이들 같고 아름다우며 목소리 또한 조동익만큼이나 여리다. 심지어 「진달래 타이머」는 김소월의 ‘진달래꽃’마저 넘어서는, 한반도가 겪었던 20세기의 파노라마를 한데 응축해 놓은 듯한 본토 감성의 절정을 들려준다. 하지만 미선이는 어떤날처럼 마음껏 가슴 시리지 못한다.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다. 조윤석의 목소리는 어딘가 불안하고 그 불안함 뒤에는 자기주장을 펼치지 못하는 왜소한 기타 노이즈들이 있다. 「진달래 타이머」의 어설픈 트레몰로가 있으며 왼손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발가벗겨진 「시간」의 어쿠스틱 기타가 있다. 이런 장애 요소들이 단정하고 풋풋한 김정현의 드럼과 섞이면서 미선이 고유의 내면을 보여준다. 그토록 예쁜 선율 속에서, 그토록 예쁜 부클릿 속에서 “개 같은 세상”을 이야기하고 “악인에게 저주를” 내리다니! 어쩌면 이 역설은 순간의 충동일지도 모른다. 평범한 피아노 발라드 「Drifting」과 특색 없는 얼터너티브 「섬」도 본 앨범의 어엿한 일원인 것을 생각한다면 이들에겐 “정의로운 분노”도, “나를 싫어하세요?”란 투정도 모두 같은 다이어리의 다른 페이지일지 모른다. 어쨌든 조윤석은 「시간」이란 노래에서 어느 것으로도 뻗어나갈 수 있는 감성의 무한한 가능성을 풍부한 여백을 통해 증명해 보였고, 그대로 루시드 폴(Lucid fall)로 나아갔다. 물론 그 가능성이 제대로 실현된 사례는 같은 『Drifting』에 실린 다른 노래들이다. 「Sam」, 「송시」, 「진달래 타이머」의 정말 미선이란 아이의 슬픔 같은 노래. [호떡바보]
 
 
 

95. 노이즈 2집『Noise2』, 라인음향, 1994

 
90년대 수많은 댄스그룹들 중 하나. 노이즈. 이들을 단순한 댄스그룹으로만 볼 수 없는 건 천성일이라는 존재 때문이다. 노이즈의 앨범 전체를 프로듀싱 한 그의 음악적 감각은 다른 댄스그룹들과 차별화 할 수 있는 큰 이유였다. 그들의 음악은 당시 댄스음악 = 빠른 템포라는 편견을 깨버리는데 한 몫을 했다. 비교적 느린 템포의 음악에 춤을 곁들인다는 건 당시엔 생각하기 힘들었던 것. 물론 이전에도 이런 음악들이 종종 선보이긴 했었지만 '주'가 아닌 '부'였을 뿐이었고 노이즈는 이런 스타일의 댄스음악을 주무기로 다른 댄스그룹과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너에게 원한 건」의 연장선이자 업그레이드판인 「내가 널 닮아갈 때」는 제대로 된 노이즈를 대표하는 곡이 아닐까 싶다. 어찌보면 느끼한 하지만 다른 댄스음악들과는 차별화되는 부드러움과 고급스러움. 그것이 노이즈의 매력이었다. 댄스그룹임에도 불구하고 발라드 곡이 상당수 수록된 이 앨범은 단순히 댄스그룹 노이즈가 아니라 천성일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한 팝그룹 '노이즈'의 가장 '노이즈'다운 앨범이었다고 본다. 안타깝게도 '소포모어 징크스'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지만 그 시도와 결과물은 지금 들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깔끔하다. 이후 그들은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였던 김창환의 영향으로 자신들만의 색깔을 잃어갔지만 그들의 두 번째 앨범은 그들만의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보여준 마지막 앨범이며 노이즈의 앨범 중에서도 가장 잘 만들어진 앨범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그 가치가 있다고 본다. [편지]
 
 
 

96. 아시아나 『Out On The Street』, 서라벌 레코드사, 1990 / 재발매: 레드케슬, 2002

 
1980년대 한국 헤비메탈을 갈무리하는 의미를 지닌 음반이다. 임재범, 김도균, 김영진, 유상원으로 구성된 라인업은 가히 시대를 초월한 한국 헤비메탈 최고의 멤버들이라 할 만하다. 영국 매트릭스(Matrix)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에는 화제가 되기도 했던 본작에는, 소위  ‘본바닥’ 느낌이 물씬 풍기는「Breaking Out」,「Struggle」,「Out On The Street」과 같이 격렬하고 빠른 헤비메탈이 포진되어 있다. 이러한 곡들의 리프에서 느껴지는 김도균의 후끈한 얼터네이트 피킹은 한국 헤비메탈사에서 다시 보기 힘든 강렬한 순간이며, 빈틈없는 김영진의 베이스 연주나 파워 넘치는 유상원의 드러밍도 일품이다. 임재범은 헤비메탈 보컬리스트로서 최고의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는데, 쇳소리 두성과 비음을 적절히 섞어 만들어 낸 고음은 당대 외국의 어떤 보컬리스트와 견줘도 손색없는 빼어난 실력을 선보인다. 흥미롭게도 음반 후반부에 배치된 두 곡(「Asiana」, 「Dancing All Alone」은 향후 아시아나의 두 축(김도균, 임재범)의 나아갈 길을 암시하고 있다. 이미 국악과 록을 접목하는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던 김도균은 그룹송인 「Asiana」를 통해 한국적 가락의 록적인 실천을 상당 수준 완성한 모습을 보여준다.「Dancing All Alone」에선 임재범의 허스키한 보컬과 세련된 슬로우 팝-록 스타일의 곡이 어우러져 멋진 조화를 들려주는데, 1991년 솔로 앨범을 통해 좀 더 팝적인 색채를 더한 모습으로 구체적인 실체가 드러난다. 믹싱과 마스터링 등 프로덕션 과정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가장 순도 높은 헤비메탈 음반 중 하나다. [헤비죠]
 
 
 

97. 김광민 3집『보내지 못한 편지』, 난장, 1999

 
솔직히 고백하자면, 한국 뮤지션의 연주 음반을 사려고 지갑을 열기가 여간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음반이라면 좋아하는 외국 뮤지션의 명반들을 뒤로 미루고라도 먼저 구입해서 뜯어보고 싶어질 수밖에 없다. 김광민의 세 번째 앨범 『보내지 못한 편지 』말이다.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은 오랫동안 여러모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해왔다. 버클리 재즈 유학파 1세대, 담백하면서 재치 있는 입담의 진행자, 좋은 인상의 실용음악과 교수님. 실력에 아울러 운도 좋은, 말하자면 타고난 성공형 뮤지션인것만 같다. 하지만 단순히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음악적 성취는 상대적으로 가려져왔다. 누구의 책임일 것이 없고 그렇기에 반드시 억울해만 할 일은 아니지만 음악만을 차분히 듣고 이야기하고픈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재즈의 어프로치를 완벽히 구사한 상태에서 그 위에 뉴에이지, 영화음악, 클래식 등의 요소를 자유자재로 엮어내는 그의 스타일은 한두 마디로 결정짓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의 음악에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 한가지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보편 타당함’이다. 실력자들이 범하기 쉬운 과장된 테크닉 위주의 연주에서 벗어나 유명 피아니스트들의 터치와 작곡법을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고, 또 대중들이 결코 싫어하지 않을만한 평범하면서도 감수성 짙은 멜로디를 써내는 이런 능력은 결코 흔치 않은 것이다. 세 번째 앨범에 이르러 그는 한국인들이 가진, 그리고 공감할 수 있는 세련된 서정의 감성을 완전히 이해하기 시작했고, 예의 그 연주는 차분하고 안정적이다. 「설레임」, 「어느 날 오후」,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 「보내지 못한 편지」를 들을 때마다 한편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이런 음악, 그리고 뮤지션을 가질 수 있어서. [투째지]
 
 
 

98. 전인권/허성욱『1979-1987 추억 들국화』, 동아기획, 1987

 
이 앨범은 들국화 시절, 뛰어난 보컬리스트이자 좋은 곡도 가끔 쓰던 존재였던 전인권을 완성된 싱어송라이팅 아티스트로 보여주기 시작한 음반이다. 앨범 제목 그대로 허성욱과 전인권이 들국화가 해체된 후 다시 만난 결과물이면서 최성원(베이스)과 주찬권(드럼)마저 참가하여 (전인권 중심의) 들국화 3집으로 보아도 무방한 작품이다. 다양한 분위기의 곡이 들어있지만「시작곡」이 마지막 곡「사노라면」의 테마를 가져오는 것과 같이 음반 전체가 유기적인 흐름이 느껴지도록 곡이 배치되어있다. 하나하나 곡들의 완성도와 함께 완결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던 전인권과 허성욱의 욕심이 느껴진다. 「북소리」의 간결함 사이로 흐르는 긴장감은 전인권 특유의 뜨거운 분위기가 가득한 번안곡「사랑한 후에」로 배가되고, 허성욱의 아름다운 건반 연주를 한껏 즐길 수 있는 「머리에 꽃을」에서 아름답게 승화된다. 「어떤…」의 처연한 아름다움은 들국화에서 맛보기 힘들었던 전인권식 서정성을 극대화하고 있으며 마지막의 꺼질 듯한 외침은 백미로 남는다. 최구희의 록의 정서 가득한 리드기타 연주는 전인권의 거친 보컬과 서로 시너지 작용을 일으키며 짧지만 거친 서정 속에 불꽃같은 감성을 던져 넣는다. 「사노라면」은 오래 전부터 구전되던 곡이지만 전인권의 날이 선 목소리와 허성욱의 포근한 피아노와 코러스를 만나 완전히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이 곡을 지금까지 젊음의 찬가로 남을 수 있게 해 준 전인권, 허성욱의 다시 만날 수 없는 짙은 감수성은 1990년대 인디 음악에게 정신적 지원군과도 같은 존재로 작용한다. [헤비죠]
 
 
 
99. 해바라기 2집 『그날 이후』, 한국음반, 1985
 
80년대 후반 이후 가장 ‘유명한’ 포크 듀오였다는 말로는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의 음악이 큰 의미를 갖게 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음악만큼 모든 이들에게 폭넓게 사랑 받은 ‘가요’는 전무후무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정선, 한영애, 김영미등과 함께 전설적인 포크그룹 ‘해바라기’의 원년멤버였던 이주호는 80년대 중반, 유익종과 함께 제2의 해바라기를 결성한다. 이름을 빌어오긴 했지만 그는 이전에 들려주었던 정통의 포크의 색을 버리고 그 자리에 소프트 팝의 문법을 적용시켰다. 물론 이것은 그의 넘쳐나던 멜로디 감각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미성(美聲) 유익종의 절묘한 화음과 백킹은 특유의 서정성을 부여했고, 이주호만의 호소력 있는 음색이 어울린 음악들은 소리소문 없이 대학가 최고의 인기가요로 떠올랐다. 이들의 음악은 실로 그 청취타겟이 불분명했다. 「모두가 사랑이에요」, 「어서 말을 해」, 「사랑의 시」, 그리고 해바라기의 최고 명곡이라 불러 아깝지 않을 「행복을 주는 사람」등, 이 앨범의 거의 모든 곡들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인기를 모으는 동시에 주부애창가요 목록에도 전혀 위화감 없이 오르내리는 곡이 되었던 것이다. 80년대 후반, 신촌 대학가 주변에서 졸업식 마다 애잔하게 울려 퍼지던 「그날 이후(졸업)」와 청바지에 통기타를 들쳐 멘 자켓의 옷차림에서 분명 이들은 스스로 대학가 출신의 포크 뮤지션임을 설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즈음에서 이들의 음악은 매우 대중적이며 전방위적인(?) 대중가요로서 완전히 거듭나고 있었던 것이다. 몇 년 후, SG Wannabe의 리메이크로 익숙해져 버린 「내 마음의 보석상자」가 ‘가요 톱10’에 오르고, 6집 앨범의 수록 곡 「사랑으로」가 한국 가요 역사상 가장 널리 불리는 애창곡이 되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투째지]
 
 
 

100. 새바람이 오는 그늘 『새바람이 오는 그늘』, 아세아레코드, 1990

 
다들 말하듯이 9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였다. 언더와 오버의 장벽이 모호했던 그 시절에는 90년대식 정서가 있었다. 그 정서라는 것을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표현은 ‘실험’일 것이다. 감당이 안 될 정도로 파격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거를 답습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어서, 대중적인 성공으로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시기였다. 유재하가요제를 통해 이름을 알린 조규찬과 기타리스트 이준, 베이시스트 김정렬의 조합인 ‘새바람이 오는 그늘’은 지극히 대중적인 멜로디와 서정적인 가사를 기본으로 재즈적인 편곡을 더하는 실험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는데, 「소풍가는 날」의 인트로에서 들리는 조규찬의 스캣처럼 생경하면서도 거부감이 없이 감상할 수준의 것들이었다. 건반의 최태완과 ‘봄여름가을겨울’의 드러머 전태관이라는 지원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멤버들의 작곡이라고 하겠다. 모든 멤버들이 고르게 작곡과 작사를 분담하고 있으며, 모든 곡이 ‘새바람이 오는 그늘’이라는 커다란 틀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특히나 이준과 김정렬의 작곡은 가벼운 듯하면서도 음악적 기본기가 탄탄한, ‘새바람이 오는 그늘’의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훌륭한 작품들이다. 김정렬이 작곡한 「좋은 날」은 이후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곡이 되었다. 단 한 장의 앨범으로 끝나버린 이들의 음악이기에 대중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겨주었고, 그만큼 아름답고 순정한 음악을 들려준 ‘새바람이 오는 그늘’은 「에필로그」의 가사처럼 마음 편하게 잊히기에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음악이다. [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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