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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중음악사 베스트 앨범 100 (1위-30위) - 카페 음악취향Y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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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stipe 2007. 4. 12.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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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사족: 오늘 향뮤직에 음반사러 들어갔다가 우연히 이 리스트를 보게 되었다. 사실 이 친구들도 2000년대 초반 당시 여러 평론가들이 박준흠이 편집장을 했던 서브(Sub)에서 집계한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을 엄청 많이 참고했으리라 싶다. (거기서 거론된 앨범은 거의 다 들어갔다.) 하지만 그것이 1990년대 후반부 이후 앨범에 대한 부분은 별로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리스트는 2005년까지를 커버하고 있다는 것이 그 매력포인트다. 그리고 되도록 대중이 인지하는, 대중적으로도 어느정도 당대에 좋은 반응을 얻은 앨범들이 선정되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음악취향Y BEST 100 -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선

○ 인트로

혹자들은 말할 것이다. 음악은, 예술은, 문화는 1위부터 100위라는 숫자의 액자 안에 가둘 수 없는 것이라고. 그렇긴 하다. 같은 음반이라도 어제 들었을 때와 오늘 들었을 때의 감상이 같을 수 없고, 취향별로 즐기는 음악도 천지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국대중음악 앨범을 대상으로 1위부터 100위까지의 위계를 세우는 모순을 저지른다. 사람들은 이야기 할 것이다. 어떻게 김민기가, 서태지가, 조용필이, 들국화가 그 순위에 머물 수밖에 없는가? 기필코 기억해야만 하는 명반이 누락되었다거나, 1위와 100위의 순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내비칠 수도 있다.

이 차트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런 이야기들을 발생시키고 싶은 갈망이다. 음악이란 그저 사용하고 폐기해버리는 교환품에 지나지 않는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진실이라고 할지라도 80여년에 걸친 인간의 창조 행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마저도 함께 용도폐기 된다는 점에서는 유감을 금할 길 없다. 차트에 대한 사소한 의문에서부터 대중음악의 역사를 다시 세우는 일까지 차트에 대한 모든 논쟁들은 새롭게 등장하는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주고, 음악을 즐기는 건강한 시민의 일상을 조금 더 풍성하게 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작 100장의 음반을 고르고 순위를 따지는 일은 매우 즐거운 작업이었다. 음악웹진 [음악취향Y(http://cafe.naver.com/musicy)]의 음악블로거들이 각각 50장씩 총 330장의 앨범을 추천하고 선정회의를 열어 100장을 추린 뒤 최종순위를 선정하였다. 다섯 번에 걸친 열띤 토론에서 한국대중음악사를 관통하는 많은 주제들이 거론되었다. 결국 이 토론과 논쟁이 이 차트를 보는 여러분들과 함께 다시 한 번 확대 되고 재생산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정 범위는 LP라는 매체가 등장해 본격적인 앨범 콘텐츠가 나오기 시작한 1960년대부터 2005년까지로 국한하였다. 그 전 시대는 SP라는 매체의 희귀성과 앨범이 아닌 음원중심의 시대였기 때문에 제외했고, 2005년 이후의 음반들은 이 차트가 매해 업데이트 되면서 꾸준히 반영될 것이다. [음악취향Y 부시삽 전자인형]

* 음악취향Y는 전문 음악웹진입니다. http://cafe.naver.com/musicy


1. 어떤날 『어떤날 Ⅱ』, 킹레코드, 1989


 이 작품들을 만들던 이병우와 조동익은 자신들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또 그것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울림을 전해줄지, 그리고 나중의 음악인들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받고 자라나게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련됨’이라는 말로는 그 깊이를 온전히 드러내기 모자란 우아함과 명징함, 그리고 재즈와 포크, 록의 언저리에서 독특하게 구현한 지극히 한국적이고 꽉 찬 퓨전 사운드. 가볍고 순간적인 의미와 감정들이 오가는 흔하디 흔한 대중가요의 한계를 극복한 곡 쓰기와 노랫말의 깊이는 듣는 이들을 흥분시키고 또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이들의 음악은 모든 이에게 동일하고 즉각적인 감정의 반응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그렇게 기억 속에 얼마간을 잠자고 있던 이들의 음악은 문득 나의 삶 어느 한가운데에서 표현하기 힘든 미묘한 감정의 순간을 만나면 다시금 전혀 다른 깊이로 다가오게 될지 모른다. 아름다운 멜로디, 세련된 연주, 좋은 편곡. 이 것에 부합되는 음악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의 감동을 세대를 건너 전해 줄 수 있는 음악이 몇이나 될 까. 「취중독백」, 「초생달」, 「그런 날에는」, 「11월 그 저녁에」는 감히 내 친구, 그리고 내 아이에게 전해 줄 수 있는 음악들이다. 음악에 순위를 부여하고픈 것이 우리의 본심은 아니다. 누가 더 잘났고, 누구의 음악이 더 중요하고 멋있는가를 말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좋은 음악은 알려져야 하고 그 과정에서 숫자를 매겨 그 중요도를 보다 힘있게 표현하고자 한다면, 수많은 후배 뮤지션들을 자극시켰고 또 그들을 닮고 싶게 만들었던 이 음반이야 말로 우리의 이 힘든 작업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 [투째지]
 

2. 조용필 7집 『조용필 7집』, 지구레코드, 1985

 조용필 음악의 본령이 록이었던 것은 최종적인 지향점도 록임을 암시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6집까지의 그것은 밴드의 형태로 록음악을 연주하고는 있으되, 감성의 측면에서 쉽게 동화되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물론, 그의 과거 히트 넘버에는 「단발머리」 등의 팝 스타일이 다수 존재하지만, 앨범을 아우르는 감성은 트롯에 보다 더 가까운 경향이 있다. 하지만, 7집에서는 최첨단에 해당하는 음악 조류를 누구보다도 완벽하면서도 세련되게 소화한다. 훌륭한 조력자였던 위대한 탄생은 역대 최강의 멤버 - 정원영, 김광민, 유재하, 송홍섭 등 - 로 구축되어, 앨범에 수록된 모든 싱글이 장르를 불문하고 일정 이상의 수준을 보장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곡 전반을 감도는 신디사이저가 인상적인 록 넘버 「어제, 오늘, 그리고」, 「그대여」, 「아시아의 불꽃」과 하드록의 매력을 제대로 보여주는 「미지의 세계」, 「여행을 떠나요」, 그리고 당시의 최신 조류인 뉴웨이브(「프리마돈나」)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물론, 보사노바 스타일의 미디엄 넘버 「내가 어렸을 적에」, 유재하의 곡으로도 널리 알려진 「사랑하기 때문에」등 그가 진정 하고 싶었던 음악의 성찬이 어떤 것인지를 이 한 장의 앨범으로 증명해준다. 그를 논외로 하고 80년대의 대중음악을 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아니 불가능하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바로 이 앨범이 존재한다. [마이너]
 

3. 들국화 『1집』, 서라벌레코드, 1985


80년대를 조용필과 들국화의 시대라고 규정한다면 오만한 이야기일까? 사실 두 아티스트의 비교는 주류와 언더그라운드라는 대중음악 시스템에 대한 환유이다. 그리고, 이 비교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미디어라는 전달 장치 때문이었다. 경제호황과 함께 음악산업도 나날이 매출을 늘려가던 80년대,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의 관심은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형성했다. 75년 대마초 파동 이후로 미디어는 자유로운 음악정신을 기피하는 현상을 보인다. 들국화의 신화는 미디어의 소외 속에서 형성되었다. 지하 녹음실과 열악한 소극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란 말이다. 언더그라운드의 탄생이다. 그러므로 조금 더 애틋한 애정을 가지게 된다. 순수한 음악지상주의자들에 가까웠던 들국화의 ‘행진’은 결국 많은 예술가들과 대중들에게 음악의 명징한 감동을 선사한다. 들국화의 폭발적 성공은 주류와 비주류라는 경계는 모호한 것으로 만들고야 말았고, 그렇게 들국화는 한국대중음악 ‘순수의 시대’(혹은 순수의 공간, 언더그라운드)를 대표하게 되었다. 1985년 들국화의 데뷔앨범은 당대의 가장 세련된 팝음악이며, 연주가 뛰어난 뮤지션쉽의 역량을 뽐낸 음악이었고 포크의 서정과 록음악의 파격까지 탑재한 앨범이다. 이런 다면적인 특성이 들국화로 대변되는 언더그라운드의 역량이었다. 여전히 영미 팝음악에 대한 열등감을 지울 수 없었을 때, 이 앨범이 있어서 어깨를 당당히 펼 수 있었다. 역사에 가정법은 의미 없는 상상일 뿐이지만 만약 80년대 한국대중음악이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로 구분지워지지 않았더라면, 혹은 더 거슬러 올라 75년 이 땅에서 청년문화의 자유가 거세되지 않았더라면 들국화는 진정한 슈퍼스타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역사적인 데뷔앨범을 내 놓고 부침 심한 멤버교체의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어찌되었건 이 앨범은 한국대중음악사에서 가장 빛나는 별 중의 별이다. [전자인형]
  

4.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컴백홈』, 반도음반, 1995



 서태지는 대단한 존재다. 그의 음악은 분명 팬이 아니더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그의 뛰어난 음악적 능력은 물론 영리함까지 갖춘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1집『난 알아요』와 2집『하여가』두 장의 앨범을 통해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하며 수많은 팬들을 확보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3집『발해를 꿈꾸며』부터는 대중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던 음악들을 발표하며 그것들을 주류로 끌어 올리는데 한 못을 했다. - 혹자들은 시나위 시절부터 추구했던 록음악으로의 회귀라고도 표현하기도 했다. - 4집『컴백홈』은 그런 면에 있어서는 분명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3집『발해를 꿈꾸며』에서 보여준 모습도 좋았지만 보다 대중적이면서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 4집『컴백홈』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특히나 4집에서 보여준 그의 역량은 분명 동시대 다른 가수들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 무언가가 있었다. 「시대유감」, 「필승」등 록을 기본으로 「Come Back Home」,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같은 힙합은 물론 마지막임을 암시했던 팝적인 사운드의 「Goodbye」까지 그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그 어느 때보다 대단했다고 본다. 4집은 어찌보면 잡탕스러운, 하지만 그동안 그가 해온 음악들의 집합, 결정체가 아닐까 싶다. 확실히 대중적인 음악과는 거리가 먼 낯선 음악들이었지만 이런 음악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것은 서태지였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Come Back Home」의 이미지가 훗날 H.O.T와 젝스키스 같은 아이돌스타들에게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시대유감」을 통해 사전심의까지 폐지시킬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 컴백소식이 9시 뉴스의 메인을 장식했던 점을 봐도 그는 분명 가수 이상의 존재였다. 그가 당대 문화적 아이콘이었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으리라. [편지]
 
 

5. 신중현과 엽전들 1집 『미인』, 지구, 1974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는 한국적 록을 완성한 이름 신중현, 그리고 그의 대표곡「미인」. 바로 「미인」이 처음으로 선보인 음반이 본작 신중현과 엽전들의 첫 앨범이다. 1974년 작품이라 믿기 힘들만큼 간결한 구조와 독특하고 세련된 멜로디가 가득한 이 음반은 분명 강렬한 록 음반이다. 록이지만, 한국 음악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는 록 음악이다. 저열한 녹음 상태가 내내 맘에 걸리지만 이는 197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녹음 기술의 한계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우리가 흔히 접해온 판본, 즉 재판의 경우 기타 더빙이 시도되어 나름대로 안정적인 수준의 음질을 제공하지만, 흔히 초판이라 불리는(2003년 재발매 되었다) 신중현-이남이-김호식 버전은 오버 더빙 없이 단 한 번에 녹음을 마친 것이다. 초판은 즉흥성과 정제되지 않은 힘에 비해 답답한 음질의 한계가 청자들에게 벽으로 작용한다. 신중현 본인은 초판에 담긴 5분에 가까운「미인」을 진정한 자신의 작품으로 인정하는데, 잘 알려진 재판의 버전에서 느껴지는 헨드릭스(Jimi Hendrix) 스타일의 리프가 좀 더 텁텁하고 개성있게 연주되고 있다. 어느 버전을 듣건 엽전들의 첫 음반은 본인들은 물론이고 여타 한국의 록 밴드, 그리고 음악팬들에게 록에 대해 다시 생각할 계기를 던져준 중요한 ‘터닝 포인트’다. 이 음반이야 말로 댄스 클럽(소위 고고장)에서 춤추기 알맞은 음악에 머물던 한국의 록음악을 실험적인 시도와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는 수준으로 한 단계 격상시킨 장본인이다. 비슷한 시기 등장했던 또 다른 슈퍼밴드 검은나비도 이러한 흐름에 동참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나는 너를 사랑해」,「저 여인」, 재판에만 수록된 「떠오르는 태양」의 싸이키델릭한 실험은 이 음반이 한국 록 음악 전성기의 정점이 서있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이러한 음악인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우리의 음악은 어떤 모습이 되었을까 공상하게 만드는 절대 명반. [헤비죠]
  

6. 산울림 『2집』, 서라벌, 1978


 산울림은 괴물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괴물이다. 산울림처럼 국내외의 어떤 족보도 통하지 않는 록 음악은 대한민국 음악사를 통틀어 오직 산울림 하나뿐이다.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삼형제는 그 어떤 기존 음악도 카피하지 않고 집구석에 처박혀 무작정 곡을 써대고 무작정 연주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집에서 가장 가까운 레코드사를 찾아가 무작정 음반을 내달라고 했다. 그렇게 아무런 맥락도 없이 세상에 불쑥 등장한 노래가 데뷔 앨범의 「아니 벌써」와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다. 대중의 폭발적인 반응 속에서 삼형제는 얼렁뚱땅 1년도 안 되어 3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고, 어설픈 연주와 어설픈 노래와 어설픈 레코딩으로 점철된 이 3장의 앨범은 한국의 록 역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결과물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두 번째 앨범은 산울림표 아마추어 사이키델리아가 가장 광범위하고 농밀하게 녹아있는 걸작이다. 중독적인 베이스 라인과 저만치 뒤에서 긁어대는 퍼즈톤의 기타 전주가 장장 3분이나 펼쳐지다가 돌연 김창완의 잠이 덜 깬 듯한 목소리가 등장하는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는 백 번이면 백 번, 들을 때마다 최상의 쾌감을 제공한다. 지구 상에 둘도 없는 능청맞은 프로그레시브록 넘버 「안개 속에 핀 꽃」, 역시 지구 상에 둘도 없을 것이 분명한 「어느 날 피었네」의 리듬워크, 구수한 타령을 몽환적 경지로 전환시킨 「떠나는 우리님」에 이르기까지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랴. 나른한 발라드 「둘이서」와 가녀린 포크송 「기대어 잠든 아이처럼」까지 생각한다면 삼형제가 처박혀있던 작은 골방에 혹 도깨비 방망이라도 있던 건 아니었을까? [호떡바보]
  

7. 이문세 5집  『시를 위한 시』, 킹레코드, 1988


오동식, 신중현 등의 노래를 부를 당시의 이문세는 지금으로 치면 그저 입담 좋은 가수로 불리는게 타당하다. 게다가 그들에 의해 구축되어진 이문세의 음악적 노선은 이후와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관심의 대상일뿐 시도에 의해 격상시킬 이유는 없는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작곡:이영훈, 편곡:김명곤'이라는 체제가 확립되어진 세번째 정규 앨범 『난 아직 모르잖아요/휘파람』(1985)부터의 이문세를 말하게 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단지 외견상 보편적이고 음악적 평가가 결여되기 쉬운 발라드라 해서 평가절하될 수 없고 흔히 대한민국 발라드의 완성이고 향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기록적 사실이 뒷받침된 유재하의 단 한장의 정규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1987) 이전에 이문세가 존재하고 있었다는게 때때로 간과되어지고 있다는건 아쉬운 일이다. 물론 유재하의 극적인 삶이 반영된 천재적인 음악성을 두고 오늘날에 와서 재고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이문세가 이영훈을 만나 보컬리스트로서의 역량을 만개하고 절정에 오른 기간동안에 만들어진 음악들은 비평적으로나 감성적으로 1980년대를 대변해주고 있는 다름 아니다. 이영훈과 김명곡은 따로 또 같이 놓더라도 이미 증명되어진 대중성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평적으로도 언제든지 재발견할만한 결과물을 그 당시에 발표하였고 무엇보다 이문세의 출중한 노래 솜씨는 마찬가지로 소흘함 없이 다뤄져야한다. 이문세의 5집(1988)은 전작 『사랑이 지나가면/깊은 밤을 날아서』(1987)보다 다소 복잡한 구성과 쉽게 와닿지 않는 가사 등으로 쉽게 손이 가지 않을 수 있으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붉은 노을」과 같은 성찬이 여전히 존재하는 가운데 최고 수준의 함량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아놀드]

  

8. 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서울음반, 1987


 오히려 우려되는 것은 요절로 인한 '신화화'의 기운이다. 정말 듣고서야 확인할 수 있는 본작의 투명함과 음악적 진실성이 요절이라는 거대한 그늘 아래서 가려진 것은 아닌지 매번 대하면서 체감하게 된다. 작사-작곡-편곡까지 혼자서 해낸 젊은 음악 장인의 탄생,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흔적으로써 유작의 내용물이 보여주는 성과들. 이런 본연의 사실에 집중하는 것이 본작을 대하는 가장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발라드라는 장르가 '감히' 자신에 대한 성찰의 경지를 보여줄 수 있음을 보여주는「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가리워진 길」, 「지난날」등은 투명한 거울 같은 트랙들이다. 그리고 그 투명한 정서를 전달하는데 있어 유재하의 보컬색이 큰 강점이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물론 그 특유의 보컬색과 유작이라는 기정사실이 어우러져 앨범에서 비극의 기운을 운운하는 축들도 있음은 사실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그의 본작은 유재하 자신이 창출해낸 자신만의 소우주라고 칭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한 나라의 대중음악사 반 세기를 압축하는 리스트의 상위에 위치하는 것은 어떤 계보도 없이 클래식 작법을 기초로 한 고급스러운 성과물, 걸작 앨범이 가지는 미덕 중 하나인 수록곡들 간의 균형감각에 기인한다. 대중적인 호소력에 있어 「우리들의 사랑」, 「사랑하기 때문에」가 보여준 흡족함과 더불어  「그대 내품에」, 「우울한 편지」가 남기는 뒷 여운의 애상함은 그야말로 유재하라는 이름의 인상적인 문체다. 수년 후 발매된 헌정반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97)에서 음악 동지들이 밝힌 헌사는 결코 허언들이 아니었을 것이다. [렉스]
 

9. 015B 5집 『Big 5』, 대영AV, 1994


 서태지가 「하여가」나 「교실 이데아」를 통해 이룬 것이 신세대의 전격적인 세대교체 선언이라고 한다면 015B의 음악은 그 근간을 흐르는 신세대들의 새로운 정서에 대한 욕구의 반영이었다. 바로 그 점에 있어서 90년대의 대표적인 감수성을 담지한 뮤지션으로 015B와 그 리더 정석원을 꼽는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들의 독특한 점은 투박함을 통해 세련미를 드러내려고 했으며, 지나간 것을 적극 활용해 새로운 감수성을 드러내려고 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모순된 태도는 다양한 찬반을 불러일으켰으나 그럴 때마다 던져놓는 정석원의 새로운 사운드와 집착에 가까운 완벽주의는 이들의 창작력과 아이디어가 당대 대중의 듣는 귀를 상당부분 앞서 나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들의 다섯번째 앨범은 90년대 신세대 음악의 선두주자인 015B가 가진 위치, 리더 정석원의 천재적인 음악성, 그리고 이들의 방향성과 성격을 극명하게 확인시켜주는 대표적인 음반이라 할 수 있다. 두 곡의 리메이크(「슬픈인연」, 「단발머리」)를 타이틀로 들고 나온 과감성이나(당시에는 거의 금기시 되었던), 스튜디오 레코딩의 상당 부분을 개인 작업실로 끌고 내려온 시도(결국 이것은 사실상 홈 레코딩의 효시가 되었다) 등은 이들이 내세운 실험적 면모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아주 오래된 연인들」을 통해 댄스 뮤직의 바람을 몰고 왔던 이들이 다시금 제시한 것은 무한속도경쟁이나 지루한 샘플들의 Cliché가 아닌 사운드의 다변화(「그녀의 딸은 세살이에요」)와 룰을 파괴한 편곡의 독창성(「Netizen」)이었다. 바로 이 점에서 이들은 당대의 뮤지션들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으며, 오히려 2000년대 등장한 인디계열의 음악적 성향과 닮아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90년대의 평단은 ‘당연하게도’ 이들에게 호의적이지 못했지만 분명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가치를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투째지]

  

10. 노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 문화사기단/쿠조,  2000

 
1990년대 중반, 홍대 부근은 한참 술렁거리고 있었다. 문화에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면 손에 만져질 듯 생생한 물결이었다. 유속이 빠르고 힘차게 굽이를 치는 물결, 거기에 가만히 손을 넣고 있으면 따뜻하게 살랑거려 온 감각을 일깨웠다. 소위 ‘인디 음악’, ‘클럽 문화’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진앙지가 정확히 어디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많은 젊음들이 그 정서를 공유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권위주의 시대를 끝내고 소비시대로 이행하던 시기, 가장 예민한 감각을 가진 청년들은 새로운 표현과 솔직한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펑크라는 장르는 억압된 뚝을 허무는 가장 직설적인 도구였다. 그리고 노브레인은 그 정중앙에 위치했다. 성대가 찢어지도록 외쳐대는 괴성, 한없이 파괴적인 리듬의 연타, 단순하고 명료한 멜로디……. 마침 같은 시기 영미 록음악계에도 펑크가 재림해 인기를 얻고 있었지만(그리고 어느 정도 그 흐름을 받아들인 현상이었지만), 노브레인과 그의 동지들이 이뤄놓았던 ‘조선펑크’라는 브랜드는 독특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였다. 정치적 지향에서 자유로운(그러나 기댈 이데올로기를 상실한) 세대, 무섭게 밀려드는 신자유주의 경쟁사회로 내던져진 세대, 쇼윈도우의 욕망이 체념과 좌절로 번역되기 시작한 세대……. 모던 록이 그들의 불안한 내면 풍경이었다면 펑크는 그것보다 더 불안한 외적 발현이었다. 노브레인의 정규 1집 『청년폭도맹진가』는 새로운 세대의 불안을 고스란히 기록해 놓고 있다. 그들이 예찬하는 청춘은 「성난 젊음」이고, ‘시계 불알처럼 정처 없이 왔다갔다’하는 일상의 환멸 때문에 「제발 나를」‘사정없이 난자해’ 달라고 보챈다. 그러므로 이 펑크 키드들은 세상과 난투전을 벌여야 했다. 그들에게 난투전은 곧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위한 슬픈 싸움이었다. -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음악적인 부분이다. 펑크는 연주보다 태도가 우선시 되는 음악으로 생각되는 면이 있는데 이 앨범은 그렇지 않다. 특히 블루스의 튼튼한 기초 위에 세워진 리듬 기타의 도발은 태도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명반으로 치켜세우게 된다. [전자인형]



11. 블랙홀 4집 『Made In Korea』(EMI, 1995)


한국적 헤비메탈이라는 절대명제를 데뷔시절부터 쫓아온 밴드 블랙홀의 첫 번째 음악적 쾌거가 바로 본작 『Made In Korea』다. 블랙홀은 이 전에도 굴곡진 이 땅의 역사에 대한 꾸준한 관심을 표명하며「녹두꽃 필때에」,「잃어버린 신화」등을 발표해왔다. 하지만 이 앨범에 이르러 전곡에서 대한민국이라는 시공간적 상황 아래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태도에 대해 토로하며 이러한 관심을 전면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연주곡인「서곡」의 무거운 테마로 시작된 앨범은 호쾌하고 직선적인 헤비메탈 「공생관계」를 통해 폭발하기 시작한다. 또한「마지막 일기」, 「고란초의 독백」, 「잊혀진 전쟁」으로 이어지는 후반부의 세 곡은 밴드 블랙홀이 만들어 낸 음악적 성과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서정성 넘치는 멜로디와 헤비메탈다운 강렬함과 스피드의 조화는 다시 찾기 힘든 독특한 감상을 남긴다. 영미 밴드 같은 사운드와 멜로디를 만드는 것이 지상과제이던 한국의 헤비메탈판에서 헤비메탈의 작법과 톤을 유지하면서 한국적인 정서를 성공적으로 담아낸 블랙홀의 본작은 헤비메탈/록 씬 전체에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다. 추가적으로 송필원 기사가 담당한 두터운 사운드는 순수한 한국 기술로 뽑아낸 헤비메탈 녹음의 쾌거이기도하다. 이 음반에 코러스로 참여한 이원재는 이후 블랙홀의 기타리스트로 참여 현재까지 주상균-정병희와 함께 블랙홀의 주축이 되고 있다. 한국적 정서가 살아있는 강렬한 헤비메탈에 대한 집착은 이후로도 계속되어 『City Life Story』(1996),『Hero』(2005)라는 멋진 작품들로 이어진다. 블랙홀의 음악적 성취의 시작과 완성은 바로 여기『Made In Korea』에 뿌리내리고 있다. [헤비죠]
  
 

12. 듀스 3집 『FORCE DEUX』, 월드뮤직, 1995


 1995년 3월에 발표된 듀스의 3집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인 『FORCE DEUX』. 이 앨범은 이현도가 서태지와 함께 90년대 최고의 뮤지션으로 평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현도는 이미 『DUEX』,『Deuxism』,『Rhythm Light Beat Black』세장의 음반을 통해 독특한 사운드와 빠른 랩은 물론 랩에 있어 라임의 시도, 그리고 비트박스와 스크래치 등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함을 보여주며 한국적인 힙합을 구축해가기 시작했고 그것은 상업적으로도 충분한 성공을 거두었으며 『FORCE DEUX』를 통해 그것을 결집시키며 자신만의 음악을 완성시켰다. 이 앨범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듀스의 색깔이 완성된 「굴레를 벗어나」와 「상처」를 비롯, 오리지널 힙합에 가까운 「의식혼란(意識魂亂)」이나, 자메이칸 랩의 「Nothing But A Party」, 재즈가 가미된 「반추(反芻)」등 그들의 음악적 틀 안에서 시도된 다양함은 『FORCE DEUX』가 듀스의 음반들 중에서도 최고라 평가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비록 상업적인 결과로는 이전 앨범들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수많은 듀스 매니아들을 만들어 내며 한국힙합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틀림없는 사실. 『FORCE DEUX』는 분명히 ‘아, 이건 이현도의 음악이구나!’라고 느낄 만큼 이현도만의 독특한 음악적 색깔을 보여준 음반이다. 듀스 해체 이후에도 김성욱, 룰라, 힙합구조대등 다양한 앨범들을 제작하며 뛰어난 음악적 센스를 보여주었지만 『FORCE DEUX』안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건, 아니 넘어서지 못한 건 이현도가 자신의 능력이 최고조에 있을 때 최고의 기량을 발휘해 만든 앨범이기 때문은 아닐까. [편지]
  
 

13. 김민기 『1집』, 대도레코드, 1971


 역사에는 왜소한 개인이 크나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대중음악사에서 김민기의 존재가 그렇다. 선배들의 말에 의하면 87년, 광화문에서 신촌까지 들어찬 군중들이 한목소리로(기나긴 시위행렬 때문에 돌림노래가 될 수밖에 없었지만) 「아침이슬」을 불렀다고 한다. 김민기는 한국 역사에 다시없을 노래의 저작권자인 것이다. 그러나 김민기는 결코 투사가 아니었다. 「아침이슬」의 시작은 기타를 잘 치던 약관의 미대생이 가진 섬세한 감수성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아침이슬」이 역사의 장관을 만들어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 앨범에 대한 가장 적절한 설명이 될 것이다. 맥없는 대답인 것 같지만 그것은 진실성이었다. 외국 팝송과 그것을 모방하던 가요, 애상에 젖은 트로트가 노래의 전부일 때, 김민기의 데뷔앨범은 전혀 다른 식으로 노래할 수 있음을 알려주었다. 이 땅에 싱어-송라이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부른다는 싱어-송라이터의 의미는 일면 단순한 것 같지만 커다란 파장을 몰고 왔다. 약관의 감수성이 바라본 세계를 담은 것인데 그 행간 어딘가에 불온한 시국(72년 유신의 직전상황)을 살아가는 젊음의 분노, 패배감, 슬픔 따위의 감정들이 녹아 있었나보다. 이런 진실함이 사람들에게 노래를 전염시켰다. 이 강력한 ‘전염’의 또 한 가지 이유는 영롱한 모국어 활용법에 있다. 말과 선율이 절묘한 지점에서 일치하고 있다. 김민기의 모든 곡들이 그렇지만 오랜 심사숙고 끝에 노래를 만드는 모습이 연상된다. 이 앨범으로부터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노래의 힘을 깨달았고 조금 더 진실한 음악이 보다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노래하지 않는 김민기가 여전히 거장의 대우를 받는 이유이다. [전자인형]
 
 
 

14. 노이즈가든 1집, 『nOiZeGaRdEn』, Bay, 1996


 80년대를 관통하던 언더그라운드를 대체하는 ‘인디’라는 개념이 갓 생겨날 즈음에 이미 태산과 같은 공력으로 관조하는 밴드가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노이즈가든이라 하겠다. 이 가공할 데뷔음반의 위력은 그들이 대한민국 록음악의 어느 계보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자적 흐름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가치를 발하며, 대중의 눈높이가 아닌 자신들의 목표 지점을 탐색해나가는 장인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더욱 소중한 작품이기도 하다. 밴드의 음악적 지향성을 이끄는 윤병주가 지휘한 사운드 톤의 관점은 이전의 어떤 밴드도 이루지 못한 진정한 의미의 헤비니스를 창출해낸다. 이는 윤병주 자신이 언급하기도 했던 ‘연주자’이기 이전에 ‘매니아’라는 큰 틀에서의 정체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블루스에 기초를 둔 감성의 소유자로 연주의 테크닉에 대한 집중적인 탐구 이외에도 최종적인 소리를 밴드가 원하는 대로 ‘주무르는’ 방법을 이미 깨달은 상태였다는 것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본작 전체에서 일정 이상의 질적 수준을 담보해주고 있다. 본작의 성격을 규정해주는 「기다려」가 발산하는 무게감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곡 「타협의 비」에서나, 가장 스피디한 「말해봐」까지 넘침도 부족함도 없이 일관된 수준으로 전체를 관통한다. 하이테크 기타연주와 초 고음역의 보컬로 상징되던 당대 헤비메틀의 고정 관념을 일거에 바꾼 본작은 과거, 현재, 미래를 불문하고 대한민국 록이 낳은 최고의 작품 중 한 자리에 영원히 위치할 것이다. [마이너]
 
  

15. 송골매 2집 『어쩌다 마주친 그대』, 지구레코드, 1982


 송골매는 캠퍼스 그룹 출신(항공대의 활주로와 홍익대 블랙테트라의 결합)으로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밴드다. 이 앨범은 구창모가 가세한 새로운 라인업이 만들어낸, 송골매 역사상 가장 에너지 넘치는 음반이다. 캠퍼스 그룹 출신이라고 하지만 이 앨범에서 보여주는 송골매의 음악은 젊은 패기 못지않게 프로페셔널리즘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개성 있는 톤을 가졌지만 아마추어적 느낌의 지덕엽과 달리, 김정선의 기타 연주는 전곡에 걸쳐 거침없이 화려한 솔로를 내지르며 밴드 사운드의 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오승동과 김상복의 드럼-베이스 배터리는 「어쩌다 마주친 그대」,「내 마음의 꽃/길지 않은 시간이었네」와 같은 훵키한 업비트를 능숙한 필인과 슬래핑으로 매끄럽게 소화하고 있다. 이봉환의 키보드는「빨리빨리」의 훵키한 피아노 솔로에서 「모두 다 사랑하리」의 무드 넘치는 배킹까지 적절하게 변신한다. 이러한 밴드 위로 구창모는 소울과 록을 오가는 감각적인 창법으로 음악을 완성한다. 소녀팬들의 가슴을 녹이던 구창모의 보컬과 대조적인 텁텁하면서 거친 배철수의 보컬 역시 밴드의 연주와 딱 떨어지는 궁합을 자랑한다. 송골매의 2집은 산울림에 이어 캠퍼스 사운드의 주류화를 이끌었다는 면에서도 중요한 지점에 놓여있다. 이 앨범의 성공이 있었기에 김수철(작은거인), 조하문(마그마) 등이 연이어 가요계에 안착할 수 있었다. 하드록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훵크를 소화할 수 있던 송골매는 두 보컬리스트의 카리스마가 교차하면서 대중성과 실험성의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었다. 「우리들」과 「내 마음의 꽃/길지 않은 시간이었네」는 바로 이러한 송골매의 음악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숨겨진 명곡이다. [헤비죠]
  
 

16. 신촌블루스 2집『신촌 블루스 II』,동아기획/서라벌, 1989


 사실 신촌블루스는 블루스를 좋아하던 음악인들의 동호회적인 성격이 짙은 프로젝트였다.  따라서 1집은 뛰어난 음반이었음에도, 엄인호와 이정선의 색깔 차이만큼이나 정제되지 못한 감상을 남겼다. 하지만 두 번째 음반에 이르러 신촌블루스 밴드가 정식으로 조직되고, 비로소 완성된 형태의 음악적 성과물을 내놓는다. 이정선과 엄인호는 각자의 곡에서 연주하고 있지만, 곡  배치, 기타 톤과 연주 수위 조절에 이르기까지 완결된 작품으로서의 앨범을 위해 서로 배려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새롭게 시도된 혼 섹션도 (섹소폰, 트럼펫, 트럼본) 이정선의 뛰어난 편곡에 힘입어 자연스럽게 밴드에 녹아들고 있다. 엄인호와 가장 잘 어울리는 보컬리스트인 김현식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환상」과 「골목길」을 뿜어낸다. 이정선은 「산위에 올라」를 통해 전작의 「Overnight Blues」를 능가하는 날카로운 선이 살아있는 일렉트릭 블루스를,「아무말도 없이 떠나요」에서는 대가다운 여유와 관조가 담긴 연주를 들려준다. 엄인호의 곡쓰기는 좀 더 드라마틱하고 정제되었으며 기타 연주 역시 테마를 중심으로 프레이즈를 풀어내고 있다. 엄인호 본인은 감성에 충실한 연주를 즐기는 스타일이라고 밝힌 바 있으나 최소한 이 음반에서만큼은 곡 자체의 완성도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1집에 이어 참가한 여성 보컬리스트 정서용은 전작의 맑은 목소리에 관능적이면서 힘 있는 개성을 더해 한영애 못지않은 뮤지션으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음반의 커버처럼 푸르스름한 차가움과 냉정한 듯 뜨거운 블루스의 정서가 가요와 만나 이상적인 타협점을 찾은 것이 바로 신촌블루스 2집이다. 블루스를 가요에 접목시키고자 열기를 불태웠던 이들의 정열은 어떠한 평가 잣대를 들이대도 만족스런 수준의 음반을 주조해냈다. [헤비죠]
 
 

17. 델리스파이스 1집 『Delispice』, Music Design, 1997


 ‘U2나 R.E.M을 좋아하고 편견없이 음악할 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하이텔 소모임의 구인광고로부터 시작된 이 밴드의 등장은 작게는 이 글을 쓰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았고, 조금 더 크게는 마니아층에게 ‘우리나라에서도 저런 음악을 할 수 있구나!’하는 자부심을 심어주었으며, 더 크게는 한국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 중 하나였다. 락스피릿과 은근한 문화사대주의로 똘똘 뭉쳐있지만 스스로는 가장 개방적인 귀를 가졌다 자부했던 락마니아층... 소위 빡쎈음악이라 불리는 음악들만이 진정한 락이거나, 혹은 브릿팝이나 모던락은 국내에서 흉내조차 낼 수 없을 것이라는 그들의 생각은 이 작품 앞에서 여지없이 부셔졌다. 「챠우챠우」로 대표되는 세련된 사운드는 정말 그들이 꿈꾸던 U2나 R.E.M, 스미쓰(The Smiths)의 그것과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깔끔하고 약간은 사이키델릭하게 느껴질만큼 훵키(Funky)한 기타플레이와 키보드의 사용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작품속에 잘 녹아들어있다. 거기에 곁들여지는 시니컬하고 폐부를 사정없이 찌르는 날카로운 가사는 결코 이 쉽고 듣기 편한 멜로디를 가볍게 들을 수 없게 한다. 90년대 중반, PC통신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한국형 모던락, 브릿팝에 목 말라있던 마니아층은 더 이상 그들이 원하는 음악을 기다리지 않고, 능동적으로 진보적인 음악을 만들어 보고자 노력했다. 많은 음악인들이 PC통신을 통해 세상밖으로 나왔지만 그 중 가장 성공적인 활약을 펼친 팀이 다름 아닌 델리스파이스였다. 그들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고자 했던 젊은이들의 선택은 결국 한국음악사의 전설이 되었다. [아미고]
 
  

18. 이승환, 『Cycle』, 드림팩토리, 1997


 90년대 중반 압도적인 물량과 프로페셔널한 프로듀싱, 그리고 세계적인 스탭을 앞세워 가요사에 길이 남을 수작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이승환의 커리어에서『Cycle』은 그 정점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얼핏 보기에 이러한 시도들은 단순히 ‘더 좋은 환경’에서 만들어진 가요쯤으로 치부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그가 듣고 자라난, 우리게에는 하나의 ‘벽’이었던 ‘팝’의 수준을 따라잡기 위한 의지이자 오랫동안 품어왔던 열등감 지우기의 한 결실이었던 것이다. 이미 전작 『Human』에서 그 첫단추를 성공적으로 끼워낸 바 있는 그는 조금 더 능숙해진 방식으로, 조금 더 역량있는 사람들과, 조금 더 세련된 미학의 텍스트를 선보이게 된다. 앨범을 여는 대작풍의 모던록 넘버 「붉은 낙타」를 시작으로, 그의 전매특허로 인정받기 시작한 고풍스러운 발라드 「애원」, 세련된 리듬 앤 블루스 넘버 「푸념」, 80년대 스타일의 팝을 디즈니 스타일로 재해석한「사자왕」등, 그 우열을 가리기 힘든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이 모아져 있다. 분명 이런 시도들은 ‘백화점식 나열’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무엇을 의도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파고다 계보에서 끝자락에 위치한 세대로 록을 지향하고 있지만, 80년대 말랑말랑한 팝의 음악들을 동경하며 자랐고, 90년대를 수놓은 흑인음악과 얼터너티브에 귀기울일 줄 아는 열린 귀를 가진 아티스트였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취향과 음악적 욕심을 매우 간결하고, 또 쉽게 풀어낸 감각과 재치이다. 앨범 크레딧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공동 프로듀서 유희열의 기량이라던가 압도적인 음의 홍수를 전해주는 엔지니어들의 활약을 충분히 감안한다고 할지라도 그러한 ‘꿈’을 현실로 바꾸어 버린 이승환의 집념과 의지는 소름 돋도록 강렬하다. [투째지]
  
 

19. 장필순 『Sonny 6』, 하나뮤직, 2002


 전작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로 홍대 앞의 그 어떤 밴드보다 완성도 높은 모던록 앨범을 만들었던 장필순은 『soony6』에서 또 한번의 기적을 일군다. 하나뮤직의 재정적인 압박 속에서, 작업의 절반을 폐기처분하고 새로 곡을 만든 완벽주의의 진통 끝에 선보인 사운드는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일렉트로니카였다. 전작에서 환상의 라인업을 이뤘던 함춘호, 김영석, 박용준이 모두 빠지고 조동익 혼자서 모든 편곡과 악기와 프로그래밍을 해치웠지만 앨범의 중량감은 오히려 곱절로 늘어났다. 새로 만들었다는 1~3번 트랙, 8~10번 트랙은 실로 21세기 내내 회자될 소리의 진경(眞景)이다. 황홀경에 다름 아닌 「헬리콥터」와 [신기루]의 사운드 중첩,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조화가 눈부신 「고백」과 「햇빛」, 그리고 인공의 사운드에서 왠지 모를 자연미를 느낄 수 있는 「Soony rock」에 이르기까지 조동익은 조동익만이 들려줄 수 있는 소리를 창조해냈다. 여기에 장필순의 목소리가 전해주는 독특한 질감, 스산하고 황량하지만 한편으론 포근하고 나른한 기운이 더해지고 나면 이 앨범은 어느 순간 어쿠스틱과 일렉트릭의 경계를 넘어서는, 두 영역의 구분을 무화시키는 절대적인 소리의 바이블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21세기의 현대인만이 갈망할 수 있는 궁극의 복음이 아닐까? 물론 앨범의 가운데에 포진한, 전작의 감성을 계승한 곡들도 하나같이 뛰어나다. 장필순과 윤영배는 좋은 곡을 썼고 조동익은 빈틈없이 소리의 풍광을 둘렀다. 『soony6』은 한국 대중음악의 소용돌이에서 항상 비껴 서있던 자들, 이름하여 하나뮤직이라는 천진난만한 관조의 언덕이 전해준 가장 값진 선물이다. [호떡바보]
 
  

20. P-Type 『Heavy Bass』, Hungry School, 2004


 P-Type의 『Heavy Bass』(2004)는 발표된지 이제 3년째에 접어들었을뿐인 근작이다. 명반을 말함에 있어 시간의 흐름이 깊이를 증명해준다고 했을때 분명 이 앨범을 명반의 반열에 올린건 다소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 그러나 힙합의 개념 정리와 교과서 편찬과도 같은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훌륭한 결과물이 현재성과 역사성을 동시에 부여 받을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P-Type은 이미 4WD나 Verbal Jint 등과의 작업을 통해 정규 앨범이 가장 기대되는 MC로 분류되었고 Keeproots로부터 공수받은 비트를 통해 이를 증명하였다. 메세지적인 측면에서 가볍게 흘려 듣는다면 지금까지 지겹도록 반복되었던 상대적인 비교에 따른 우월함을 과시의 동어 반복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P-Type은 결코 그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았고 체계를 정립하고자 하는 의지를 분명히 전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동어 반복 차원이 아니라 비교적 뒤늦은 작업이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바라본적 없었기에 시도될 수 없었던 곳에 최초로 깃발을 꽂을 수 있었고 P-Type은 그와 같은 역사적인 순간에 뮤지션으로서 요구되는 진정성과 MC로서 요구되는 기술적인 측면을 손색없이 담아냄으로써 가치는 더욱 빛난다. 따라서 업적을 남기고자 수없이 고민한 흔적이 그대로 녹아들어있는 이 역사적인 앨범에 수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기록에 기뻐하라. 그리고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에게 들려주어라. P-Type이 남긴 이 기록을 기억한 아이들이 자라나 이 땅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게끔. [아놀드]



21. 봄여름가을겨울 4집「I photograph to remember」, 동아기획, 1993


본 앨범의 부클릿에 이런 글씨가 적혀있다. ““아직도 떨고 있을 동아기획 식구들””. 김영 사장이 대중적 호소력이 미미한 앨범의 최종결과를 두고 적잖이 난감했던 모양이다. 실제로 당시 대중들은 타이틀곡 「영원에 대하여」의 내공이 예전만 못하다며 투덜거렸고 봄여름가을겨울은 이 앨범으로 인해 스타로서의 위치를 상당부분 상실했다. 팬들마저 이들의 음악적 과욕을 나무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에 와 돌이켜보건대 당시의 냉대는 모두 틀렸다. 이 앨범 전까지 봄여름가을겨울이 쌓아놓은 퓨전 가요는 단지 기나긴 서막에 지나지 않았건만, 사람들은 말랑말랑하고 쾌활한 과거의 히트곡들이 이들이 도달한 최고의 모습이라 착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판매고와 명성이 최고조에 도달해있던 시점에 봄여름가을겨울은 착각에 도전했다. 「알 수 없는 질문들」을 들어보라! 곡의 전체적 맥락에 과도하게 끼어드는 브라스, 키보드의 건조한 그루브, 김종진의 시니컬한 목소리는 의식적으로 대중의 밀착을 거부한다. 「잃어버린 자전거에 얽힌 지난 이야기」는 보컬이 사라진 뒤 중독적인 밴드의 합주를 보란 듯이 길게 늘어뜨리고, 「디밥」은 남이야 듣든 말든 생경한 로커빌리를 끌고 와 과거 속에서 진탕 논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마스코트라 할 연주곡에도 일말의 배려가 없다. 「이성의 동물, 감정의 동물」은 너무 과(過)하고 「기억을 위한 사진들」은 너무 불급(不及)이며 「페르시아 왕자」는 너무 화려하다. 그런데 바로 이 모든 것들이 김종진과 전태관 두 남자가 진정으로 완성하고자 했던 자신들의 소리였고 예술이었다. 이것을 미국의 녹음 기술과 세션을 빌어 드디어 현실화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역사에서 가장 밴드적이고 (상대적인 관점에서) 가장 블루지하고 가장 풍부하고 농밀한 이 앨범을 한국의 관성은 외면해버렸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앞날을 맥 빠진 중견밴드로 예약해놓은 채로. [호떡바보]
  
 

22. 정태춘/박은옥 『1992년 장마, 종로에서』, 삶의 문화, 1993


「시인의 마을」, 「탁발승의 노래」로 시작한 정태춘의 음악은 지극히 서정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87년 민주화항쟁을 만났을 때 그는 더 이상 개인의 서정만을 노래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시대의 아픔이야 어느 누구에게나 공통된 것이었고 정태춘은 보다 적극적으로 현실 변혁에 가담하기로 결정한다. 80년대는 민주주의를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시대였다.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조차도 핏발선 투쟁으로 얻어내야 하는 시대였다. 그는 불의와 싸우는 사람들을 노래했다. 전국의 시위 현장을 발로 뛰었고, 시대를 고발하는 격문을 불렀고, 슬픔에 허덕이는 사람들을 위로했다. 노래의 메시지가 강렬하다보니 현실 변혁을 이야기 하던 시기 정태춘 음악의 미학적 성취에 대해서는 소홀히 다루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앨범,『92년 장마, 종로에서』의 예술적 가치는 분명히 재평가 받아야 한다. 이 앨범에는 묘한 회한이 녹아 있다. 90년대 초반, 내분과 외압으로 피폐해져 가는 운동권의 모습이 겹쳐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변화시켜야 할 숙제들을 남긴 상황에서 흐트러지는 연대를 목격한 음유시인은 슬픔 가득한 바이브레이션으로 회한(悔恨)을 노래한다. 이 회한이 메시지와 음악 사이에서 황금비율을 선사한다. 현실에 대한 한탄을 타고 정태춘의 서정이 올곧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 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 이런 가사는 결코 머리만으로 쓰지 못한다. 뜨거운 가슴으로 체화된 경험이 아니면 쓸 수 없는 내용이다. 또한 가슴 저미는 서정이 아니었다면 노래가 이토록 감동적일 수 있을까? 이 앨범은 민중가요의 단선적 주장도 아니고 개인의 서정만을 담은 노래도 아니다. 암울한 시대와 재능 있는 예술가, 그리고 선한 의지가 우연히 만난 극적인 순간이다. 이 앨범으로 음반사전심의 제도라는 몰상식이 폐기되었다는 사실은 교과서에 실려야 할 기본적인 상식이기에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다. [전자인형]
 
  

23. 사랑과 평화 1집  『한동안 뜸했었지』, 서라벌, 1978


 2000년대의 우리는 흑인음악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주류 음악은 R&B라는 장르가 접수했고, 언더그라운드 문화마저도 Hiphop이 대세이다. 하지만, 진정한 흑인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은 흔치 않다. 어떤 이들은 동양인과 흑인의 차이를 지적하며, 우리가 낼 수 있는 흑인적 사운드의 태생적 한계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1978년에 발표된 사랑과 평화의 데뷔 음반 『1집(한동안 뜸 했었지)』는 이러한 의문이 잘못된 것임을 단박에 깨닫게 해준다. 대중적으로 가장 히트한 「한동안 뜸 했었지」는, 오리지널 멤버인 이철호와 이남이의 공백에도, 완벽한 ‘밴드 사운드’를 바탕으로 ‘그루브’란 무엇인지 들려준다. 이들의 음악이 리듬에만 집중된 것이 아니란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노래여 퍼져라」와 「어머님의 자장가」가 이어진다. 블루스와 레게, 재즈 등이 절묘하게 믹스된 이 노래들은 리듬은 말할 것도 없고, 멜로디로서도 완벽한 음악이다. 비-사이드(B side)에 위치한「저 바람」과 「달빛」은 기타리스트 최이철의 작곡으로 궁극의 훵크(funk)음악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 음반에 대해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클래식을 흑인적 감성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베토벤의 「운명」과 「여왕벌의 행진」은 신시사이저와 기타로 마치 애초에 훵크 넘버인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는 키보디스트 김명곤의 편곡으로 서정적인 슬로우 블루스곡이 되기도 했다. 음반의 어느 한곡이라도 ‘사랑과 평화’의 오리지널리티와 흑인적 감성을 느끼지 못할 노래가 없다. [쏭구]
 
 

 24. 코코어 3집 『Super Stars』,Ssamzie/T엔터테인먼트, 2003


 1997년 거친 그런지 사운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밴드로 등장한 코코어는 어느 순간도 한 곳에 머물지 않는 끊임없이 자기변신을 해나가는 노력파 밴드다. 그리고 변신 혹은 진화의 결과물은 언제나 일정 수준을 상회하는 수준을 보이며 팬과 평단 모두를 만족 시키고 있다. 이우성과 황명수는 일렉트로니카, 제 3세계 음악 등 다양한 음악적 자양분을 끊임없이 흡수하여 코코어로 재생산한다. 이 음반에서 처음으로 곡쓰기를 시작한 김재권 역시 일렉트로니카에 경도된 개성 있는 작품들을 내놓았다. 단 하나의 틀로 규정지을 수 없지만, 이 음반은 1970년대 다양한 록, 훵크의 기초(1970년대는 그런지와도 일맥상통하는 뿌리다) 위에 다양성과 세련됨이 이상적으로 조합된 음악적 결과물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우성이 만든 「오늘밤에 우리 둘이 나쁜 일을 벌이자」,「슬픈노래」,「속삭여줘」등은 좀 더 거칠면서 끈적하고 내면적인 록의 밑바닥에 접급하는 스타일이며, 황명수는 「Jungle Fever」,「축복」,「부머랭」과 같이 다양한 리듬과 악기가 혼란스럽지만 묘한 조화를 이루는 스타일이다. 본작은 이전의『Boyish』(2000)나 『Odor』(1997)처럼 음반 전체를 규정짓는 하나의 스타일은 없지만, 오히려 그 점이 매력으로 작용한다. 이 음반을 듣다보면 마치 라디오헤드(Radiohead)처럼 음악적 촉수를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이후 『Fire Dance With Me』(2006)에 이르면 거의 각자의 작업물로 음반 하나를 완성할 수 있는 수준까지 멤버 개개인의 능력이 확대된다. 코코어를 마주하면 따로 또 같이 함께 커나가는 21세기에 어울리는 이상적인 밴드의 모습을 마주하는 기분에 흐뭇해진다. [헤비죠]
  
 

25. 크라잉 넛 3집『하수연가』, KM Culture, 2001


 「말 달리자」는 말 그대로 핵폭탄이었다. 이들은 1000장도 팔기 힘든 인디씬에서 무려 7만장의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며 진정한 락스타로 급부상했으며, 『서커스 매직 유랑단』으로 사람들의 뇌리속에 인디음악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하수연가』는 이런 그들의 아성이 거품이 아님을 증명해 주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우선 무조건 쓰리코드(Three Code)로 만들어내는 강렬한 펑크음악으로 대중들을 선동하던 모습을 찾기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대신 다양한 장르와의 하이브리드를 시도하는 실험적인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다소 모던한 느낌마저 드는 타이틀 곡 「밤이 깊었네」를 비롯하여 크라잉 넛 스타일의 트로트 「붉은 방」외에도 스카(Ska), 폴카(Polka), 포크(Folk)에 심지어 뉴메탈(Nü Metal)의 냄새까지 풍기는 곡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지만, 그들만의 재기발랄함으로 한데 잘 묶여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펑크음악이 죽었느냐? 그렇지도 않다. 「만성피로」,「지독한 노래」는 이전의 그들의 노래와 맥을 같이하며 무게중심을 확실히 잡아주고 있다. 당시 음악적으로나 그들에 인생에 있어서나 과도기에 들어서있는 때라 그런지 이 작품에선 세상에 불만만 가득했던 철없던 악동들은 이제 세상의 풍파에 조금 길들여지며 자아성찰로 그 관심의 시선을 돌려놓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이 가지는 의의는 그들이 대중들을 선동하는 자리에서 내려와 같이 호흡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델리스파이스와 함께 인디음악을 주류로 끌어올렸지만 정작 그들의 음악성에 관해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말 달리자』가 제도권에 날린 스트레이트 펀치라면 『하수연가』는 대중음악계에 날린 카운터어택이라 말할 수 있겠다. [아미고]
  
 

26. 배호 『스테레오 힛트 앨범 No.1』, 아세아, 1969


인기 절정이던 60년대 후반에 발명한 신장염, 휠체어에 앉아 노래를 불러 갈채를 받는 장면, 고풍스러운 중절모와 검은 뿔테 안경을 벗을 줄 몰랐던 이미지. 우리가 배호하면 연상하는 것들이다. 그의 이른 죽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트로트란 장르가 오랜 생명력을 얻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향유되는 음악이긴 하지만 그 중에서 배호의 위상은 어떤 파괴력이 느껴진다. 그것은 우선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저음의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깊은 저음에는 분명 60년대 근대화의 이면을 살아가던 도시서민들의 비극성이 담겨 있다. 당대의 트로트의 소재들이 ‘섬마을 선생님’이나 ‘동백 아가씨’ 등 근대화의 반발로 인한 추억의 제제들에 치우친 반면 배호는 지독한 도시의 슬픔을 노래했다. 환타지가 아닌 일상의 트로트였던 것이다. 이것이 당대의 그에게 열광한 이유이고, 스물 아홉의 죽음이 더 가혹한 이유이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똑같은 슬픔의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이유이다. 배호의 첫 녹음은 1963년(『김광빈 작곡집』, 오리엔트 LO-1003)에 확인되지만 이 앨범이 최초의 독집 앨범이다. 그 전까지는 다른 가수들의 음악과 함께 실린 스플릿 음반이었다. 독집으로 발표되었다는 것은 최고의 인기 가수임을 알 수 있는 서지이며, 아이러니하게도 신장염의 투병 중에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시점이었다. 첫 히트곡인「돌아가는 삼각지」를 비롯해서 대표곡인 「안개낀 장충단 공원」등 기발표곡이 5곡이고 「초가삼간」, 「남강의 비가」등 5곡은 이 앨범을 통해 발표되었다. [전자인형]
  
 

27. DJ D.O.C(디제이디오씨) 『The life... Doc blues 5%』 , DMR, 2000


 그야말로 '와신상담'이었다. 인트로 넘버 「Intro(와신상담)」을 필두로 「포조리」, 「D.O.C Blues」, 「Alive」등의 넘버는 전작 4집(97) 이후 이들이 경험한 다사다난함을 다루고 있었다. 그것은 지나치게 솔직하고, 격한 철없음의 젊음의 모습이 감당해야 했던 한국적 상황의 압력이었는데 이것들을 디오씨는 일종의 '양아치어조'로 풀어내고 있다. 이런 기미는 사실상 전작에서부터 슬슬 보였던 것이지만, 경제적 압박으로 인한 개인적 상황들과 수년후 발매하는 17개의 트랙의 정규작이라는 음악적 야심이 뒤섞인 어떤 뜻밖의 소득이었다. TV 무대에서 가장 익숙했던 힙합 장르 차용 파티 댄스팀이 본작으로 보여준 이 반골과 심술투성이의 비전이 이후의 씬(Scene) 후배들에게 끼친 영감은 당사자들에게조차도 뜻밖이었을 것이다. 직접적으로는 싸이(Psy)류의 '양아치어조'의 후배격에서부터 간접적으로는 '랩하는 하늘이형' 등에 대한 존경심으로 이어졌을 본격적인 연원의 앨범. 물론 TV 무대에서 위세를 떨친 「Run To You」같은 트랙과 「Boogie Night」의 감각은 출중했으며, 「기다리고 있어」, 「아무도 모르게」,  「비」같이 김창렬의 비중이 중요한 넘버들도 좋은 조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역시 중핵은 문제의 트랙들이 아닐런지. 「L.I.E」,  「알쏭달쏭」등이 시원했던 이유는 그것이 비단 '악다구니'가 아닌 '말이 되는' 즉 아귀가 맞는 작품이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양아치어조'의 후신들이 보여준 위악들과 디오씨 자신들의 후속작 『Love &Sex &Happiness』(04)의 성과가 본작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렉스]
  
 

28. 김광석 『다시 부르기 2』, 킹레코드, 1995


 김광석의 노래를 듣는 것은 아주 소중한 인생의 한 부분을 조용히 음미해 보는것과 같다. 비록 저 당차고 정감있는 목소리를 살아 있는 목소리로 다시 들어볼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크나큰 슬픔일테지만, 먼지 쌓인 레코드는 우리에게 수백번이고 수천번이고 똑같은 목소리와 감동을 다시 전해줄테니, 이것이야 말로 음악과 레코드라는 취미가 전해주는 커다란 기쁨이 아닐까. 언뜻보기에『다시 부르기2』라는 제목은 너무도 소박하여 차라리 겸손한 인상을 준다. 솔직히 '다시 부르기'라는 말로는 이 음반이 가진 힘과 깊이를 온전히 표현해 내기는 힘들다. 그것은 이 작업에서 그는 단순히 '다시 부르기'만 한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광석은 생명력이 다해가던 이 노래들에 다시금 힘을 불어 넣었으며 동시에 그 맥을 잃어가던 한국 포크 음악의 계보를 더듬어 가면서 그 음악들이 가진 변치 않는 매력과 중요성을 이야기 해주고 싶어했다. 그가 직접 고르고, 조동익의 뛰어난 음악적 감수성으로 재단되어 나온 이 열한곡은 그 자체만으로도 물론 손색없는 한장의 훌륭한 포크 음반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김광석의 목소리에는 '가수'라는 직업의 한 사람이 목소리 하나로 대중들에게 호소하는 가장 극한의 감수성이 담겨 있다. 거기에 더해 조동익이 편곡과 프로듀싱을 맡은 음악파트는 김광석의 디스코그래피를 통틀어서도 가장 정제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정선의 「그녀가 처음 울던날」과 한대수의 「바람과 나」, 김의철의 「불행아」, 그리고 동물원의 「변해가네」로 이어지는 이 매력적인 선곡은 김광석 스스로가 정립한 한국 모던 포크의 짧은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음악적 뿌리에는 더없는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그 마지막 자락에 자연스레 자신의 이름을 올려 놓음으로써 그의 음악생활에 중요한, 그리고 잊지 못할 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투째지]
 
  

29. 이상은 『공무도하가』, 폴리그램 ,1995


 『공무도하가』는 충격이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그녀의 도약에 모두 숨을 죽였고 ‘아티스트’라는 칭호를 기꺼이 헌납했다. 1991년 자신을 옭아맸던 「담다디」의 사슬을 끊고 뉴욕의 망망대해로 떠난 후 괜찮은 팝송 앨범을 몇 장 내는가 싶더니만, 어느 날 돌연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영토를 가슴에 새긴 코스모폴리탄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코리안이었고 아시안이었고 뉴요커였으며, 또한 「보헤미안」이었으며 「새」였다. 『공무도하가』의 방대한 스펙트럼은 기획에 의거한 퓨전이 아니라 순전히 세계 속에서 자아의 길을 찾으려 했던, 내면의 방랑자가 남긴 흔적의 결과물이다. 바로 이 점이 본 앨범을 ‘한국적인 무엇을 담은 기특한 대중음악’으로 쉽게 규정할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은 그녀가 거닐었던 길의 일부일 뿐이다. 「삼도천」의 풍류를 뒷받침하는 것이 다케다 하지무가 이끈 일본 세션맨들의 리듬워크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그녀는 무한히 자유롭다. 「보헤미안」과 「September rain song」에선 각각 모던록의 거침과 매끄러움을 느낄 수 있고, 「Come, the children do」에선 엠비언트 테크노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으며, 「Don’t say that was yesterday」와 「Summer clouds」에선 뉴욕의 어느 구석에 몸을 웅크린 인디 뮤지션의 애상과 마주할 수 있다. 그리하여 「Spring」으로 대변되는,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자연과 우주를 향한 그녀의 시선은 마침내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든」이라는 마지막 노래를 만들기에 이른다. 한국의 대중음악사를 통틀어 한 뮤지션의 예민한 내면 답사가 이처럼 넓고 완벽하고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으로 형상화된 경우는 없었다. 그녀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다른 누구에게도 찾아오지 않을 경지다. [호떡바보]
  
 

30. 강산에 - 『강영걸』, 다음기획, 2002


 앨범 타이틀에 아티스트 스스로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을 ‘셀프 타이틀’ 앨범이라고 한다. 자신의 음악적인 것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담아냈을 때, 그만큼 자신 있을 때 하는 행동일 것이다. 그리고 강산에는 자신의 여섯 번째 앨범에 셀프 타이틀의 개념을 넘어서, 아티스트로서의 이름이 아니라, 본명을 사용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 ‘강영걸’을 드러내고자하는 것은 아닐까. 포크와 록을 아우르며, 90년대와 2000년대를 관통하는 음악적 에너지, 그리고 ‘자유로운’ 뮤지션의 모습을 보여 주었던 강산에. 1996년의 『삐따기』에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1998년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에서는 이상향을 좇아 사는 삶의 고독을 보여주었다. 본작에서는 이러한 강산에의 고민들이 정점에 올랐다는 느낌을 준다. 아니, 이제는 그러한 고민들을 초월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솔직한 ‘강영걸’의 모습을 들려주는데 초점을 맞춘 것 같다.「명태」의 재치와 「와그라노」의 재치 이상의 그 무엇이 있는 앨범이며, 「영걸이의 꿈」, 「이해와 오해 사이」와 같은 곡에선 다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하다가, 정작 「나」라는 곡에선 ‘natural born dancer and singer’라는 가사로 너무나 쉽게 대답해버리는 ‘강영걸’인 것이다. 「Moon Tribe」의 평화로운 공존(共存)의 메시지처럼, 질문과 해답이 공존하며, 포크와 록, 그리고 팝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앨범이다. [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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