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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 스크랩] 2007년, 밴드의 목소리는 여성을 통해 나온다... 한국의 우먼 프론트 밴드를 말하다

스크랩칼럼+etc...

by mikstipe 2007. 4. 1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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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인적으로 '멜론','도시락','뮤직온' 등의 사이트가 진정한 음악의 보급보다 통신업계의 배를 불리기 위한 '음악 장사꾼'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막연한 거부감이 항상 존재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사이트들의 웹진들 속에 보면 나름대로 읽어볼만한 글들도 가끔씩 보인다는 점이다. 지나친 비아냥이나 냉소보다는 결국 다양한 음악들을 듣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이런 뮤직 포털 속 웹진은 잘 가꾸어져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걱정이 드는 것은 이 사이트에 다운받으러 오는 10대들이 이 정도 글이라도 열심히 읽고 있을까 하는것이 문제지만... 개인적 생각과 어느정도 일치하는 바가 있어 이 글을 스크랩 해봤다. (태터 블로그는 HTML을 있는대로 복사해 붙이지 못한다는 면에서는 오히려 기존 웹페이지보다 불편한 점도 있다. 그거 개선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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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럼블 피쉬(Rumble Fish)의 신곡인 “Smile Again"을 듣고 있다. 쿵짝거리는 브라스 섹션과 ‘귀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만 거칠게’ 조율된 기타가 단순한 코드를 밟으며 이인삼각처럼 사이 좋게 앞으로 전진하고, 거기에 맞춰 힘찬 목소리의 여성 보컬이 ‘힘들어도 다시 한 번 웃어 봐’라는 내용의 가사를 만화 주제가 비슷한 느낌의 멜로디에 실어 보낸다.

만약 당신이 일정 정도 이상의 ‘진지한’ 그룹(그러니까, 음악 장르에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고 국내 뿐 아니라 해외 아티스트도 유행에 뒤쳐지지 않게 챙기는 그룹)에 속하는 음악 팬이라면, 당신은 ‘썩소’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중얼거릴지도 모르겠다. 모던 록이네. 그렇다. 이런 음악은 한국에서 흔히 ‘모던 록(modern rock)’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된다. 어떤 음악? 록 밴드의 편성을 취하고 있고, 사운드의 구성에서 기타가 ‘보통 가요’에 비해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으며, 멜로디는 보통의 경우 밝고 화창한, 그리고 무엇보다, 보컬의 위치에 여성이 자리하고 있는 음악 말이다.

이 자리에서 이런 음악이 ‘정말’ 모던 록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도 나름대로 흥미로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자리는 그런 일을 하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그러니 ‘모던 록’이라는 말이 영미권에서는 이른바 ‘클래식 록(classic rock)’, 즉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록 음악 이후에 나온 록 음악을 가리키는, 다소 ‘얼렁뚱땅한’ 개념이라는 것만 간단히 지적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내 관심은 다른 곳에 있다.

그래서 나는 12년 전으로 잠시 돌아가 보려 한다. 12년 전이면 1996년이다(아니, 11년 전이었던가). 1996년 가을쯤이었고, 나는 오토리버스 워크맨(당시로서는 아이팟(iPod) 급의 물건이었다)에 한 그룹의 노래가 든 카세트 테이프를 집어넣고 거기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뚜 뚜 뚜 뚜 뚜 뚜 뚜 뚜/ 뚜 뚜 뚜 뚜 뚜 뚜 뚜/왜 내가 아는 저 많은 사람은/사랑의 과걸 잊는 걸까/좋았었던 일도 많았을 텐데/감추려 하는 이유는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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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룹은 주주클럽 (Juju Club)이라는 3인조 그룹이었고, 노래의 제목은 “ 나는 나 ”였다. “ 16/20 ”으로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야 야 야 야 쇼킹 쇼킹). 한때는 ‘포스트 서태지 시대’의 선봉장 격으로 평가받기도 했던 그룹이다. 표절 문제 때문에 말도 많았던 그룹이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이는 주다인이었으며, 비음이 강한 독특한 창법을 구사했던 보컬이었다.

만약 럼블 피쉬의 음악을 ‘모던 록’이라 부른다면 주주 클럽의 음악도 ‘모던 록’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위에 설명한 ‘모던 록’의 특징과 거의 일치하며, 무엇보다, 보컬의 성별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모던 록’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거의 모든 음악들의 목소리를 담당하는 것은 여성이다. (Nell)이나 피터팬 컴플렉스 의 이름을 대고 싶은 사람들은 잠시만 참아 주시라).

내가 주주 클럽의 노래를 따라 부르던 때부터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과연 이런 형태의 그룹이 얼마나 많이 나타났다 사라졌거나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까? 이름과 대표곡만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이 원고의 절반 정도는 너끈히 채울 수 있다(‘삐삐밴드가 주주클럽보다 더 먼저 나왔다’고 항의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 얘기는 조금 뒤에 하자).

맛보기로 조금만 나열해 보자: 자우림 , 러브홀릭 (Loveholic), 롤러코스터(Rollercoaster), 더더(The The), 럼블피쉬, 상상밴드, 한스밴드, 네스티요나(Nastyona), 클래지콰이 (Clazziquai), 허밍 어반 스테레오 (Humming Urban Stereo), 스웨터(Sweater), 익스(Ex), 뷰렛 (Buret), 푸른새벽, 미스티 블루 (Misty Blue), 3호선 버터플라이, 허클베리 핀 (Huckleberry Finn), 라이너스의 담요(Linus' Blanket), 체리 필터(Cherry Filter), 캐스커 (Casker), 그 외 내가 당장 떠올리지 못하는 수많은 밴드들과 프로젝트 팀, 혹은 그룹들.

여기에 언급한 모든 팀이 ‘록 밴드’인 것은 아니며, 따라서 모두가 ‘모던 록’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그룹들 모두는 자신들의 멜로디를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내보내고 있다. 그건 때로 굉장한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때로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황망한 결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그룹 혹은 밴드 음악의 영역에서 이른바 ‘우먼 프론트(woman-front)’라 불릴 만한 현상이 한국 대중음악계의 주류로 자리잡았다는 것은 분명하고, 이것이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만약 재작년 정도에라도 이런 원고를 쓸 기회가 있었다면 나름대로 ‘음악 사회학적’ 썰을 어중간하게나마 한 번 풀어보려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2007년이다. 이런 종류의 흘러간 옛 이야기를 필요 이상으로 쓰는 것은 읽는 사람에게 실례가 되는 시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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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하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이야기를 통해 생각해 볼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음악적 결정권’의 문제 같은 것은 분명 지금도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위에서 언급한 팀의 보컬 중 ‘음악적 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 과연 얼마나 될까? 혹시 여성은 보컬‘을’ 맡는 것이 아니라 보컬‘만’ 맡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주장은 객관적 근거는 별로 없는, ‘경험적인 추측’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을 미리 밝히지 않고서는 악의적인 비난처럼 들릴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이른바 ‘모던 록 밴드’나 ‘프로젝트 팀’에서 여성 보컬이 음악적 통제력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주주클럽의 경우 주다인은 맨 나중에 오디션을 거쳐 합류했다. 이는 그녀의 역할이 노래에 한정되어 있었다는 점을 의미한다. 박혜경 이 있던 당시의 더더에서 박혜경의 역할은 ‘곡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몇 곡의 작사를 하긴 했지만 그것을 ‘음악적 참여’라 부를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따라서 이 경우, 여성 보컬은 (남성) 프로듀서의 음악적(혹은 상업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뽑히는’ 것이다. 이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쉽게 선례를 찾을 수 있는 일이다. 비교적 먼 예로 1970년대의 김정미, 펄 시스터스 등이 있겠다. 당대를 풍미한 이 가수들의 뒤에는 신중현이라는 거물 작곡가/프로듀서가 존재했고, 그들의 히트곡은 모두 신중현의 손에서 나왔다. 또 누가 있을까. “인디언 인형처럼”과 “빙글빙글”로 유명한 나미에게는 사랑과 평화 출신의 전설적인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인 김명곤이 있었다. 주주클럽이나 더더에서 여성 보컬이 차지했던 위치도 이런 전통의 일부에 속하는 것 같다고 보는 것이 아주 근거가 없는 주장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삐삐밴드 의 경우는 이런 흐름에 어느 정도 동참하면서도 또한 ‘한국형 모던 록 밴드’의 전형성에서 상당 부분 벗어나 있다(그래서 ‘모던 록 계보’에는 넣을 수가 없다). 이윤정 역시 밴드의 남성 멤버들에게 ‘픽업됨’으로써 밴드에 합류했지만 삐삐밴드가 당시 대중음악계, 나아가 대중문화계에서 ‘파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이윤정의 독특한 캐릭터 역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한다(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인터넷에는 그녀의 컴백 기사가 올라와 있다. 기분이 묘하다).

삐삐 밴드의 이런 독특함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국형 모던 록 밴드 내의 여성 보컬이 가져야 할 덕목’을 ‘한국형 모던 록 밴드’의 틀이 잡히기도 전에 선취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후대의 보컬들에게는 ‘외모의 경쟁력’ 정도로 순화되어 드러나는 데 그친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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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밴드 내의 여성 보컬이 이런 ‘종속적인’ 위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자우림의 김윤아나 롤러코스터의 조원선, 푸른새벽의 한희정, 스웨터의 이아립 같은 경우가 ‘대단하게’ 보이는 것은 (그들이 일궈낸 음악적 성취의 수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고라도) 밴드 혹은 팀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다른 멤버들과 동등하게 만들거나 혹은 그 이상까지 나아갔다는 점 때문이다. 한영애나 장필순, 이은미처럼 작사나 작곡과 같은 부분을 따지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개성적인 세계를 형성한 경우 또한 물론 존재한다.

말이 난 김에 좀 더 나가 보자면, 팀 내 여성 보컬의 음악적 입지가 약한 경우가 종종 나타나는 데는 일종의 ‘사회적 구조’도 한 몫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논술시험적인 생각도 든다. 어쨌거나 음악은, 좀 더 정확히 말해 ‘음악적 창작’은 지금까지도 상당수가 남성들의 몫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데도 남성들의 비중이 크며, 여성은 많은 경우 ‘아마추어적’ 애호가나 해석자의 역할에 머물곤 한다.

악기 습득의 문제도 있다. 클래식 음악의 경우에는 ‘해석’과 ‘전달’의 도구로서 악기를 배우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대중음악에서 악기를 다룬다는 것은 해석과 전달을 넘어 ‘창작의 길로 나간다’는 것을 또한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록 밴드의 경우 창작의 중심 악기는 아무래도 기타다. 그러나 여성 록 기타리스트는 드물다(거의 없다고 봐도 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자의건 타의건 간에, 록 기타를 다루는 여성은 많지 않다. 베이스나 드럼은 말할 나위도 없다(피터팬 콤플렉스의 드러머인 김경인 정도가 생각날 뿐이다).

이럴 경우 여성이 록 밴드에 참여하고 싶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다. 인디 밴드를 상투적으로 다루는 드라마에서 여성 멤버의 역할이 보컬이나 키보드(그렇다. 이것은 ‘피아노’다)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것은 나름 의미심장한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여성 힙합 DJ나 테크노 뮤지션도 드문가,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데, 거기까지 들어가면 이야기가 너무 커지니 다음으로 미루자.

럼블 피쉬의 노래를 듣다가 너무 멀리까지 온 걸까(글 쓰는 동안 계속 내 컴퓨터에서는 이 노래가 돌아갔다. 아무튼 흥겨운 노래다). 정말 이 코너의 제목대로 변죽만 울리다 마무리를 짓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걱정도 있다. 사실 이말 저말 늘어놓기는 했지만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에 대한 대답을 제대로 해 준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몇몇 ‘역할 모델’들(김윤아, 조원선, 한희정 등)의 예가 분명히 존재하며, 그 외에도 여러 주목할 만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이들도 눈에 띈다는 점은 지적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러브홀릭의 지선이나 럼블 피쉬의 최진이 등). 이는 환영할 만한 일이며, 이들이 한국에서 여성 프론트우먼의 위상을 재고할 수 있을 만한 위치로 성장하길 바란다. ‘여성 멤버로만 이루어진, 혹은 여성 멤버가 주가 되는 록 밴드’에 대해서도 몇 마디 해 볼까 싶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또 다른 글의 주제가 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다음으로 미루려 한다.

글쓴이 여우비 - contribu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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