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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ist - Metals (유니버설 뮤직 해설지 원고)

Review 저장고/팝

by mikstipe 2011. 10. 1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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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인디 씬이 배출한 2000년대의 대표적 챔버 팝/포크 록 아티스트 파이스트(Feist),
그녀가 4년 만에 우리에게 전하는 진한 멜랑콜리의 힘, 2011년 최신작 「Metals」


  대중음악이 각 나라에서 그것의 예술적인 가치를 넘어서 하나의 큰 경제적 시장을 형성하고, 신인 아티스트 한 명, 새 싱글 한 곡을 알리기 위해 메이저 레이블들이 엄청난 홍보비를 쏟아 붓는 상황으로 변해 간 이후, 어느 나라든 ‘인디 씬(Indie Scene)’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져갔다. 대중적인 히트만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정말 하고 싶은 음악들을 하면서 언더그라운드 클럽과 공연 무대를 돌며 활약하는 수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활약하고 있기에, 영국-미국 팝 씬을 좌지우지 하는 메이저 레이블들은 빛나는 ‘보석’을 더욱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새로운 음악계의 트렌드를 만들어내며 영-미 음악 씬이 반 세기 넘게 대중음악의 선두 자리에 설 수 있게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특히 2000년대에는 주류 팝 씬을 흑인 음악 트렌드가 한동안 지배하면서 백인들의 음악 카테고리에서는 그 인디 씬의 힘이 과거보다 더욱 큰 위력을 발휘했다. 개러지 리바이벌(Garage Revival)이라는 2000년대 록의 한 유행도 이미 수많은 인디 밴드들이 그 이전 몇 년 이상을 그 사운드를 연주해 왔기에 가능했고, 새로운 포크 팝/록 싱어송라이터들이 꾸준히 우수한 신예 아티스트로 등극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2000년대 후반 주류 록 씬을 강타한 바로크 팝/챔버 팝(Baroque Pop/Chamber Pop)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흐름은 1960년대의 사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 록의 초창기가 포괄했던 시도들을 다시 인디 록/포크 속으로 끌어와 음악 씬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어주었다. 

  이러한 챔버 팝-바로크 팝의 흐름 속에서 가장 앞자리에 선 밴드들이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 플릿 폭시스(Fleet Foxes)과 같은 팀이라면, 솔로 남성 아티스트로서는 러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가 있을 테고, 여러분이 지금 손에 든 이 앨범의 주인공 파이스트(Feist)는 이제 여성 뮤지션으로서 그 자리의 선두에 오를 뮤지션임이 분명하다. 물론 그녀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챔버 팝이라는 용어 속에 가둘 수는 결코 없다. 초기 두 앨범 수록곡 가운데 캐나다에서 발표된 그녀의 싱글들은 어덜트 포크 팝의 정석에 더 충실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대표작이 된 「The Reminder」에서 그녀는 더욱 다채로운 사운드 운용을 통해 비로소 그녀의 아티스트로서의 재능을 만개하기 시작했고, 이제 그녀는 단순한 포크 팝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틀을 넘어 진정한 ‘아티스트’로 도약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새로운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성장해온 파이스트의 음악여정


  1976년생으로 캐나다 노바스코시아 주 앰허스트(Amherst) 태생인 파이스트(본명: Leslie Feist)는 부모 모두에게 예술가적인 기질을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미대 교수로 재직하며 표현주의 추상화가로 활약했고, 어머니는 도예를 전공한 경력이 있었다. 하지만 부모는 파이스트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되어 이혼했고,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캘거리(Calgary)의 외가집에서 성장했다. 원래 그녀는 어린 시절엔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가졌고, 12살 때는 캘거리 동계 올림픽의 개막식을 장식한 1000명의 무용수 가운데 한 명으로 참여했었지만, 어린 시절 교회 성가대에서 활약한 경험은 그녀를 서서히 음악 쪽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 결국 그녀는 15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캘러리 지역에서 활동하던 펑크 록 밴드 플라시보(우리가 잘 아는 영국 록 밴드와는 다른 밴드임)에서 리드 보컬로 활동하며 본격적으로 음악계에 뛰어들었다. 이 밴드는 지역 경연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했고, 1993년에는 레이몬즈(The Ramones)과 라디오헤드(Radiohead)의 오프닝을 담당하기도 했다.  

  1995년 갑자기 다가온 성대 결절로 잠시 음악계를 떠나야 했던 파이스트는 1996년 토론토로 근거지를 옮겨 다시 여러 아티스트들의 백업 뮤지션으로 활약했다. 1998년에는 디바인 라이트(Divine Right)의 리듬 기타리스트로 가입해 3년간 활동했고, 1999년부터는 친구인 메릴 니스커(Merrill Nisker)가 피치스(Peaches)라는 일렉트로 펑크 아티스트로 활동할 때 그 뒤를 객원 보컬리스트로 지원해 주기도 했다. 이 시기에 그녀는 메릴과 함께 2000년부터 2년간 영국에내서도 한 동안 머문 적이 있는데, 이 때 엘라스티카(Elastica)의 리더였던 여성 록커 저스틴 프리쉬먼(Justine Frischmann)과 이제는 영국 개러지 힙합의 스타가 된 미아(M.I.A) 등과 함께 어울리며 더욱 음악적 내공을 쌓았다. 이런 와중에 그녀는 1999년 자신의 첫 인디 솔로 앨범인 「Monarch (Lay Your Jewelled Head Down)」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제프 벡(Jeff Beck)의 곡인 <New Torch> 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트랙을 스스로 작곡한 이 음반에서 <Monarch>와 <That's What I Say, It's Not What I Mean> 등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일단 자국 인디 록 팬들에게는 그녀의 이름을 알리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이 음반은 현재 절판 상태다.) 

  영국에서 돌아온 후 그녀는 2001년 여름 7곡의 신곡을 녹음한 데모 테이프를 만들었다. 그 테이프는 일명 「The Red Demos」로 불려졌지만, 그 당시에는 이 음원은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다. 대신에 그녀는 토론토에 있는 그녀의 음악 친구들과 함께 브로큰 소시얼 신(Broken Social Scene)라는 프로젝트로 활약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럽 투어를 마치면서 그녀는 이 곡들을 다시 녹음하면서 동시에 몇 곡의 커버 트랙을 추가했고, 그것이 그녀의 메이저 레이블 데뷔작이자 두 번째 앨범인 「Let It Die」(2004)였다. 앨범 완성 후 그녀는 다시 파리로 건너가 킹즈 오브 컨비니언스(Kings of Convenience)의 앨범 작업에도 게스트로 참여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고, 처음으로 솔로 아티스트로서 월드 투어를 갖기도 했다. 그 사이 앨범과 그녀의 이름은 서서히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다음 해 ‘캐나다의 그래미’라 불리는 주노 어워드(Juno Awards)에서 최우수 신인상과 최우수 얼터너티브 록 앨범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그녀의 아티스트로서의 인기의 도화선에 불과했다. 2006년 그녀는 다시 파리로 돌아가 그녀의 음악적 지원군들과 함께 새 노래들을 작업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이 그녀의 3집이자 현재의 그녀의 음악계에서의 입지를 확고하게 만들어준「The Reminder」(2007)이었다. 2007년 4월 유럽에서부터 먼저 발매된 이 작품은 첫 싱글 <My Moon My Man>에 이어 두 번째 싱글인 <1234>가 애플(Apple)사의 아이팟 나노(iPod Nano)의 CF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미국 차트 8위까지 오르는 대히트를 거두었다. 이는 인디 록 뮤지션으로서 음원 다운로드만으로 10위권에 오른 최초의 기록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그녀는 뉴욕 타임즈의 예술 섹션의 앞면을 그녀의 기사로 장식하는 화제를 모았었고, 앨범은 세계적으로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2008년 주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까지 거머쥐는 성과를 거뒀다. 이후 2009년에는 브로큰 소시얼 신의 동료 케빈 드류(Kevin Drew)가 제작한 단편 영화에도 출연했으며, 에이즈 자선 단체인 레드 핫(Red Hot Organization)의 자선 앨범 「Dark Was the Night」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번외 활동을 이어갔다. 이에 더해서 2010년 9월에는 「The Reminder」앨범 제작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필름 「Look at What the Light Did Now」를 발표, 제한 상영 후 DVD로 발표하기도 했다. 

진한 포크의 서정성과 챔버 팝 멜랑콜리가 결합한 그녀의 네 번째 앨범 「Metals」

  그녀는 지난 투어를 마친 후 다시 곡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2010년 가을 3개월간 혼자서 자신의 집 뒤에 붙은 차고에 틀어박혔다. 마음속에서는 계속 공연을 할 때의 그 열기와 고조된 기분을 다시 끌어올리려 노력했다고 말했지만, 오히려 결과물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멜랑콜리한 정서가 샘솟았다. 그렇게 일단 12곡의 노래들이 새롭게 선택되었고, 그녀와 오랜 기간 동안 함께 프로듀서로서, 작곡가로서도 함께 해왔던 칠리 곤잘레스(Chilly Gonzales)와 목키(Mocky) 등이 2011년 벽두에 합류하여 곡들의 본격적 스튜디오 녹음과 어레인지를 담당했다. 그녀 스스로도 “마치 50년간 서로를 알아오고 함께 연주해왔던 것처럼 사운드를 만들려 노력했다”고 제작 과정에서도 멤버들 사이의 깊은 유대감이 작용했음도 확인시켜주었다. 

  그 결과, 「Metals」는 사운드 면에서 지난 앨범들과 확실히 뭔가 다른 느낌을 우리에게 전한다. ‘과거보다 더 많은 혼돈과 움직임, 소음을 담았다’는 그녀의 언급은 그래서 나름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지난 앨범들이 한 곡의 기타 사운드를 담기 위해 300번도 넘는 세션을 했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녹음 과정에서 그야말로 감정이 흘러가는 대로의 결과를 거칠게, 있는 그대로 레코딩에 반영한 것이다. 그 느낌이 앨범의 분위기를 더욱 몽환적이고 고풍스럽게 끌고 간다. 스트링과 여백의 미가 강화된 것은 그녀의 지향점이 점점 더 챔버 팝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Feist - How Come You Never Go There
(Live At David Lettermen Show) 

  스트링 사운드의 지원을 받으며 우울하면서도 잔잔하지만 내재된 파워를 싣고 후반에 나름의 파괴력(?)을 표출하는 첫 트랙 <The Bad in Each Other>를 들으면 지난 앨범 사운드보다 한층 변모한 그녀의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 첫 곡의 분위기를 계승하며 더 멜랑콜리하게 몰고 가는 <Graveyard>나 앨범 발매 전에 미리 공개되었던 <How Come You Never Go There>가 전하는 것은 바로 포크 록과 소울, 블루스가 만나 전하는 진한 애수(哀愁)다. 특히 후자에서는 후반부 코러스가 합쳐질 때의 매력은 그녀의 보컬의 멜랑콜리를 더 잘 살려준다. 스트링 스트로크가 곡의 주도권을 갖고서 ‘잔잔한 펑크-개러지-챔버 팝’이라고 표현할 만한 전위적 매력을 선사하는 <A Commotion>, 어쿠스틱 기타의 거친 손길이 그대로 사운드에서 느껴지면서 그 위에서 파이스트와 백업 보컬들의 보컬 하모니가 더욱 진한 호소력을 선사하는 <The Circle Married The Line>, 앨범에서 가장 애잔하고 블루지한 매력을 담아낸 <Anti-Pioneer>, 여백의 미를 가진 채 잔잔한 보컬 속에서 서서히 점층적으로 파워를 실어가는 블루지 챔버 팝 트랙 <Undiscovered First>, 후반부의 코러스가 비장함을 끌어올리는 <Comfort Me>, 앨범의 멜랑콜리 면에서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기는 매력적인 발라드 <Get It Wrong, Get It Right>까지 앨범의 음악들은 모두 파이스트 고유의 서정미를 살리면서도 더 자연스럽고 공간을 비운 듯한 편곡과 연주를 통해 그녀의 앨범 중 가장 앰비언트(Ambient)적인 포크 록이자 챔버 팝의 감성이 풍부한 신비로움을 선사한다. 물론 이런 약간의 변화에 약간 적응이 안되는 청자들은 그녀 특유의 서정적 감성과 보컬의 매력들을 느낄 수 있는 <Caught A Long Road>나 <Bittersweet Melodies>과 같은 내면으로 침잠했지만 멜로디는 분명한 발라드를 통해 일단 귀를 적응시키면 나머지 곡들에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파이스트의 이번 앨범을 들으며 느낀 것은 그녀의 음악들이 한층 더 자연스럽고 감성적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 아티스트로서의 그녀의 위상에 더욱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틀림없이 올 연말과 내년 연초에 이 앨범에 대한 찬사가 더욱 큰 목소리로 그녀에게 돌아올 것 같다는 예감도 든다.

2011. 9 글/ 김성환(Music Journalist - 핫트랙스 매거진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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