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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tt Anderson - Black Rainbows (워너뮤직 국내반 해설지)

Review 저장고/팝

by mikstipe 2011. 10. 29.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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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제가 워너뮤직에서 발매한 이 앨범 국내반 해설지로 작성한 원고입니다.

스웨이드(Suede)의 리더이자 티어즈(The Tears)를 이끈 영국의 독보적 록 보컬리스트,
브렛 앤더슨(Brett Anderson)의 2011년 최신 솔로 앨범 「Black Rainbows」


  지난 2011년 7월 31일,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는 음악 잡지를 위해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던 지산 리조트 콘도 건물에서 재결합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온 스웨이드(Suede)와 인터뷰를 갖는 기회를 얻었다. 1990년대에 오아시스(Oasis), 블러(Blur)와 함께 국내 팬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이 밴드가 3집 「Coming Up」의 라인업 그대로 재결합 해 한국 무대에서 우리에게 연주를 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한 기분이었지만, 그들과 얼굴을 마주보며 그간의 활동과 현재의 상황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더욱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그 날 다른 매체 인터뷰로 인해 조금 늦게 인터뷰장에 들어왔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 브렛 앤더슨(Brett Anderson)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화면이나 사진에서 보았던 것만큼이나 훤칠한 키와 시크한 외모도 일단 인상적이었지만, 특유의 맺고 끊는 톤의 보이스로 질문에 응하는 모습은 그가 이미 40대 중반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세련된 영국 ‘차도남’의 매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 그가 뮤지션으로 더욱 빛이 났던 것은 그 날 헤드라이너였던 스웨이드의 공연 무대에서의 그의 모습이었다. 시종일관 무대를 뛰어다니며 공연 카메라에 표현하는 그의 열창하는 모습과 음에 반응하는 몸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열정과 혼이 실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로큰롤 뮤지션으로서의 열정, 그것이 지금까지 바로 브렛 앤더슨을 현재의 위치에 이르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라 감히 생각해보았다.  

  이처럼 브렛 앤더슨은 지난 20년간 스웨이드라는 브릿 팝 역사의 대표적 밴드의 음악적 리더이자 보컬리스트로서, 그리고 그가 2000년대에 보여주었던 다채로운 음악 활동으로서 자신의 뮤지션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보컬과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그의 양성적 이미지와 열정적 무대 매너는 1990년대 록 팬들에게는 마치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1970년대에 비견하기는 어렵다 해도 그것을 1990년대에 맞게 변화해서 구현한 것 같은 매력을 주었다. 그러한 그의 카리스마가 한 시대의 대중을 사로잡았었기에, 이제 그의 얼굴에 비록 주름이 늘고 세월의 여파로 그의 목소리에서 가끔 탁성이 들린다 해도 그 시대를 함께 숨 쉬었던 음악 팬들에게 브렛 앤더슨은 여전히 매력남으로 기억되는 것이며, 그가 2000년 중반 이후 이어가는 솔로 활동 역시 꾸준히 주목하며 환호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그 위에 스웨이드로서의 추억까지 되찾아주었으니, 이 어찌 반갑지 않은 일이겠는가.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브릿 팝 대표 록 보컬의 자리를 지켰던 브렛 앤더슨의 음악여정 

  1967년 영국 웨스트 서섹스(West Sussex) 주 헤이워즈 히스(Haywards Heath) 태생인 브렛 앤더슨은 평범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는 화가로서 활동을 했었고, 아버지 역시 광적인 클래식 음악 팬인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에 대해 눈을 떠갔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이미 브렛은 기타를 잡고 노래하는 것을 공부보다 더 즐거운 일로 여겼고, 피그즈(The Pigs), 제프(Geoff) 등 동네의 여러 개러지 밴드들을 전전하며 기타를 연주했다. 특히, 제프라는 밴드에서 그는 베이시스트인 맷 오스먼(Mat Osman)을 처음 만나 우정을 다졌다.  

  결국 학교를 졸업한 이후 브렛과 맷은 당시 그의 여자친구였던 저스틴 프리쉬먼(Justine Frischmann, 훗날 엘라스티카(Elastica)의 리더로 인기를 얻었다)과 셋이서 밴드를 결성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스웨이드의 출발이었다. 하지만 세 명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느낀 그는 음악지 NME에 기타리스트를 구한다는 광고를 냈고, 그 결과 만난 기타리스트가 바로 버나드 버틀러(Bernard Butler)였다. 드러머 사이먼 길버트(Simon Gilbert)를 영입한 후 그들은 본격적으로 1990년대 초반 영국에서 불어오던 브릿 팝의 물결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저스틴은 블러의 프론트맨 데이먼 알반(Damon Albarn)과 소위 ‘양다리’를 걸쳤고, 결국 밴드에서 해고되고 말았다.) 

  이런 초기의 우여곡절을 거쳐 스웨이드는 마침내 1993년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Suede」를 통해 영국 록 씬에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영국 매체들의 도움(?)으로 그는 앨범 발매 이전부터 그의 양성애적 정체성에 대해 가십을 쏟아냈고, 오히려 그 이야기들은 그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모리세이(Morrissey, 1980년대를 풍미했던 밴드 스미스(The Smiths)의 보컬이자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솔로 활동 중임)와 데이빗 보위를 결합한 듯한 이미지를 더욱 공고하게 해주는 데 기여했다. 결국 밴드의 데뷔작은 영국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고, 그 후 스웨이드는 앞서 언급했던 대로 1990년대의 영국 브릿 팝 씬을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비록 2집 「Dog Man Star」(1994)를 녹음한 후 그와 찰떡궁합을 보여주었던 작곡 파트너 버나드가 밴드를 떠나는 불상사가 생겼지만, 오히려 브렛은 이 상황을 자신이 밴드 전체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 결과 새 기타리스트 리차드 오크스(Richard Oakes)를 영입한 밴드는 3집 「Coming Up」(1996)을 통해 스웨이드를 더욱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음악적으로 탄탄한 밴드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3년 후에 발표된 4집 「Head Music」(1999)까지 그 성공은 이어졌다. 하지만 실험적인 스튜디오 사운드에 좀 더 집중했던 5집 「A New Morning」(2002)가 상업적 실패를 맛보면서 밴드는 첫 베스트 앨범 「Singles」(2003)을 내놓고 해체를 발표했다.   

  스웨이드의 해체 이후 브렛이 처음으로 시도했던 음악 활동은 바로 옛 파트너 버나드 버틀러와의 음악적 재회였다. 두 사람은 윌 포스터(Will Foster), 마코토 사카모토(Makoto Sakamoto), 네이턴 피셔(Nathan Fisher) 등과 함께 프로젝트 밴드 티어즈(The Tears)를 결성했고, 「Here Come The Tears」를 들고 다시 음악계로 복귀했다. 비록 영국 평론가들과 대중의 반응이 엇갈리긴 했지만, 이 앨범은 브렛과 버나드를 지지하는 음악 팬들이 영국과 세계에 많음을 확인시켜주는 데 충분했다. 하지만 앨범의 유럽 투어가 중도에 취소되면서, 그 이후의 밴드는 더 이상의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다시 혼자가 된 브렛은 인디 레이블들을 통해서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심플하게 자신의 이름을 타이틀로 쓴 첫 앨범 「Brett Anderson」은 첫 싱글 <Love Is Dead>를 영국 차트 42위에 올려놓으며 그의 건재를 보여줬고, 그의 오랜 친구 매트와 앨범의 프로듀서이자 새로운 작곡 파트너였던 프레드 벨(Fred Bell)과 함께 영국 투어를 이어갔다. 그 2년 후인 2008년에는 2집 「Wilderness」를 내놓았는데, 이 앨범은 특히 발매 전에 런던 머메이드 씨어터(Mermaid Theatre) 공연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USB스틱에 앨범 음원을 담아 배급했던 것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7일만에 녹음을 라이브 방식으로 끝낸 이 작품은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 첼로 등 다양한 악기 편성을 보여주었고, 수록곡 <Back to You>는 프랑스 배우 엠마뉴엘 시네르(Emmanuelle Seigner)와 듀엣을 해 화제를 모았다. 뒤이어 2009년에는 3집 「Slow Attack」을 연이어 발표했는데, 새로운 작곡 파트넌 레오 아브라함즈(Leo Abraham)와 함께 가사와 감정에 더욱 집중하고 오케스트레이션의 비중을 늘리는 등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그 후 작년부터 스웨이드의 재결합에 대한 소문이 서서히 들려왔고,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의 소아암 자선기금 마련 공연에 그들이 참가한 후 2010년 여름부터 스웨이드는 다시 「Coming Up」시절의 모습으로 재결합하여 현재까지 유럽, 아시아 등을 도는 월드 투어를 이어가고 있다.     

다시 밴드의 포맷에서 자연스러운 다이나믹을 전하는 4번째 솔로작 「Black Rainbows」  


  스웨이드는 다시 현역으로 복귀했지만, 그는 그와 동시에 자신의 새 솔로 앨범에 대한 구상을 이미 2010년부터 세우고 있었고, 지난 앨범에서 함께 했던 레오 아브라함즈와 함께 스튜디오로 들어가 스웨이드의 투어가 없을 때마다 틈틈이 작업을 진행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20곡 정도의 데모를 바탕으로 다시 정돈 작업을 거쳐서 총 10곡이 최종으로 앨범에 선곡되었다. 특히 이번 앨범의 사운드에 대해 브렛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restless, noisy and dynamic(들떠 있고, 소란스러우며 역동적인)’ 곡들이 담겼다는 멘트를 남긴 바 있다. 그만큼 앨범의 곡들은 지난 2장의 앨범들과 달리 플롯이나 스트링, 오케스트레이션 같은 요소들은 모두 사라지고 다시 순수한 밴드의 포맷으로 그가 돌아왔음을 확인시켜준다.  

  인트로에서 들려오는 기타 노이즈가 한 시대를 풍미한 록 보컬리스트의 귀환을 알려주는 첫 트랙 <Unsung>은 전체적으로 기타가 만들어주는 몽환적 분위기 속에 그의 보컬이 주는 매력을 한껏 감성적으로 끌어올린 곡이다. 분명 과거 스웨이드의 밴드적 분위기도 살짝 느낄 수 있으면서도 그의 솔로 앨범에서 더 두드러진 차분하고 자연스러움을 놓치지 않았다고 할까? 싱글로 첫 공개된 <Brittle Heart> 역시 록 밴드 포맷에 충실하면서 스웨이드의 향수를 슬쩍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대중적인 감성으로 가득하며 브릿 팝과 80년대식 영국 뉴 웨이브 팝의 중간 선상에 놓인 <Crash About to Happen>, 지글대는 기타 노이즈 속에서 복고적 사운드의 향수를 자극하는 <I Count The Times>, 베이스와 드럼의 리듬 구성으로 귀를 잡아끌면서 그 위에 브렛의 보컬 특유의 톤이 얹어지며 앨범의 사운드가 점점 강하게 올라감을 선언하는 <The Exiles>까지 그의 고유한 스타일이 다시 스웨이드와 티어즈 시절의 밴드 록의 형태로 지속되고 있음을 이 앨범은 보여준다. 

  한편, 드럼 연주가 입체적 공간감을 제시하면서 역시 강한 노이즈의 구름을 깔아주는 트랙인 <This Must Be Where It Ends>, 기타 디스토션 이펙트의 힘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기타 연주의 매력이 그의 퇴폐적(?) 보컬과 잘 어울리는 록 트랙 <Actors>, 마치 1980년대 U2나 빅 컨트리(Big Country) 등의 영국식 모던 록 사운드의 계보를 이어가는 듯한 느낌을 선사하는 <In the House of Numbers>, 멜로디나 반복되는 기타 리프가 마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Money>를 살짝 연상하게 만드는 곡인 <Thin Men Dancing> 등 후반부 트랙들은 전반부보다 더욱 그의 자연스러운 다이나믹이 빛나는 곡들로 채워져 있다. 만약 그간의 솔로 앨범 속의 멜랑콜리한 낭만이 그립다면, 마지막 트랙 <Possession>에서 (비록 오케스트레이션 같은 효과는 없지만) 그것의 잔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국 BBC 웹사이트는 이 앨범에 대한 리뷰 속에서 이 작품에 대해 ‘예정된 스웨이드의 앨범을 위한 (마치 전초전 성격의) 작품(a job for the planned Suede album)’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말대로 그간 그가 내놓았던 솔로 앨범들에 비하면 그래도 가장 스웨이드 시절의 낭만에 살짝 근접한 음악들이 담겨 있기에, 그들이 내한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만약 앞으로 2-3년 이내에 그들의 신보가 나오게 된다면 그것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에 대한 단초 중 하나로서 가치를 지닌다 하겠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연륜이 더 묻어나는 브렛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이 앨범 속에서 묻어나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 음반을 들을 충분한 가치를 확보한 셈이다. 

2011. 10 글/ 김성환(Music Journalist - 핫트랙스 매거진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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