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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n Folds - Retrospective: The Best Imitation of Myself (1995–2011) (소니뮤직 해설지)

Review 저장고/팝

by mikstipe 2011. 10. 2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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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국 소니뮤직에서 발매한 이 음반의 국내반 해설지입니다.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를 관통한 건반 로큰롤의 대표주자 벤 폴즈(Ben Folds),
그의 밴드 시절부터 솔로 커리어를 모두 정리한 베스트 앨범
「Retrospective: The Best Imitation of Myself (1995–2011)」


  건반 악기는 항상 대중음악의 역사에 있어서 기타와 함께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악기였다. 굳이 프로그레시브 록, 아트 록과 같은 예술 지향적 음악 장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일찍이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는 ‘불타는 피아노’라는 전설적 퍼포먼스를 남길 정도로 로큰롤에 건반 연주가 얼마나 흥을 돋울 수 있는지 보여주었고, 1970년대를 대표한 양대 ‘피아노맨’ 엘튼 존(Elton John)과 빌리 조엘(Billy Joel)의 노래 역시 만약 건반 파트를 제외하고 그들의 음악을 듣는다면 참맛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건반이 주도를 하는 대중음악이라 하더라도 완전히 신시사이저로 모든 사운드를 처리하는 일렉트로닉 장르가 아니라면 대체로 최소 기타-베이스-드럼의 기본 밴드 구성과 함께 흘러가는 것이 정석으로 굳어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1990년대 중반 주류 얼터너티브 록 씬에 파란을 몰고 왔었던 벤 폴즈와 그의 밴드 벤 폴즈 파이브(Ben Folds Five)의 등장은 신선했다. 전통적 밴드의 기본 구성을 과감히 깨고 피아노-베이스-드럼 트리오 구성으로 완성된 이들의 음악은 그래서 록보다 재즈에 더욱 경도되기 쉬운 방향성이었지만, 이들은 로큰롤의 정통성이 갖춘 흥겨움을 놓치지 않았고, 비록 기타의 디스토션이 일으키는 강렬함보다 조금은 약했을 지라도 충분한 파워와 밸런스를 그들의 음악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가 벤 폴즈 파이브를 끝낸 이후에도 그의 고유한 음악적 스타일은 꾸준히 유지되었다. 오히려 트리오 구성 시절보다 더 다채로운 악기 편성을 통해 그의 음악 세계는 확실히 확장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세계 곳곳에 그의 다양한 팬들을 만나고, 더욱 음악적인 평가를 높게 받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지난 그의 내한공연 무대에서 2시간이 넘도록 정력적인 무대를 펼치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느낀 점은 그는 끈임 없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진 뮤지션이라는 것이었다. 밝고 경쾌한 곡이든, 사색적인 곡이든, 그의 생각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음악들을 통해 그는 2000년대 세계 음악 팬들에게 매력적 순간들을 제공해왔던 우수한 뮤지션임은 분명하다.

지난 17년간 자신만의 개성으로 굵은 발자취를 남긴 벤 폴즈의 음악 여정 

  1966년생으로 노스 캐롤라이나 주 윈스턴 세일럼(Winston-Salem)에서 태어난 벤 폴즈는 9살 때부터 피아노와 인연을 맺기 시작해,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신이 주도한 스쿨 밴드에서 건반을 연주했었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프로 뮤지션으로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으로, 마조샤(Majosha)라는 밴드에서 베이시스트로 활약하기 시작한 시점부터였다. 이 밴드는 「Party Night: Five Songs About Jesus」(1988, EP)와 「Shut Up and Listen to Majosha」(1989)를 남겼지만, 그저 대학가에서만 인정받는 레벨의 밴드였다. 밴드 활동을 마친 후, 그는 이번에는 드러머로 전업(?)해 내쉬빌에서 세션 뮤지션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미국의 음악인들이 꿈꾸는 도시, 뉴욕으로 결국 건너가 배우 생활을 하는 변신을 감행했다. (그의 무대 위에서의 다양한 표정과 몸동작은 확실히 이 시기에 체득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작곡자로서 곡을 쓰기 시작했고, 마침내 소니 뮤직과 저작권 계약까지 맺게 되었다.  

  일단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맺는 행운을 얻었기에, 그는 이를 자신의 음악을 직접 연주하며 활약할 수 있는 밴드를 결성하는 계획을 실현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러기 위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 동료들을 규합했는데, 그들이 바로 베이시스트 로버트 슬레지(Robert Sledge), 그리고 드러머 대런 제시(Darren Jessee)였고, 그들 셋이 모여 우리가 기억하는 벤 폴즈 파이브가 탄생했던 것이다. 트리오 구성이었는데도 자신들의 음악이 ‘최소한 세 명이 연주하는 음악보다는 낫게 들린다’는 이유에서 밴드 이름에 ‘Five’라는 단어를 넣은 이들은 데뷔 당시 스스로의 음악을 ‘여자 같은 남성들을 위한 펑크 록(punk rock for sissies)’이라고 묘사했다. 이는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음악들이 보여준 강렬한 분노와 자신들의 음악을 차별화함을 스스로 선언한 것이다.  


  이들이 1995년 캐롤라인(Caroline)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발표한 첫 앨범 「Ben Folds Five」는 사실 싱글 <Underground>가 의외로 영국 차트에서 37위에 오르는 히트를 거둔 것 외에는 본국에서는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소니 뮤직 산하 550 Music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발표한 2집이자 본 앨범 「Whatever and Ever Amen」에서 발매 1년 후에서야 싱글 <Brick>이 빌보드 모던 록 차트 6위, 그리고 어덜트 컨텀포퍼리 차트 11위를 기록하면서 그들의 인기도는 급상승했다. 결국 이 앨범은 미국 내에서 플래티넘 레코드를 달성했고, 그들의 음악은 기타가 없는 록 음악도 얼터너티브의 시대에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새로운 공식을 록 역사에 남겨주었다. (그 후 이들의 전 레이블인 캐롤라인은 1998년 그들의 1집과 2집에 담겼던 곡들의 아웃테이크나 라이브 버전을 담은 편집앨범 「Naked Baby Photos」를 발매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2년 후인 1999년에 이들은 좀 더 재즈적인 영향력이 강한 곡들이 담긴 3집 「The Unauthorized Biography of Reinhold Messner」를 내놓았고, 이 앨범 세션에서 녹음되었던 곡인 <Leather Jacket>을 (펄 잼(Pearl Jam)의 <Last Kiss>가 수록되어 잘 알려진) 코소보 난민 구호 앨범 「No Boundaries: A Benefit for the Kosovar Refugees」에 수록하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하지만 1년간의 월드 투어를 마치고 난 후, 이들은 돌연 해체를 선언하고 말았다.    

  밴드의 해체 이후 다시 혼자가 된 벤 폴즈는 「Rockin the Suburbs」(2001)를 통해 다시 음악계에 복귀했다. 하필 미국으로서는 가장 충격적인 기억인 9.11 테러 당일에 발표된 이 음반은 그의 밴드 시절 앨범들만큼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타이틀 트랙도 모던 록 차트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2002년 라이브 앨범 「Ben Folds Live」를 내놓은 이후 그는 2년 동안 3부작 EP - 「Speed Graphic」(2003), 「Sunny 16」(2003), 「Super D」(2004) - 를 연이어 내놓으며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이어갔다. 그 후 1년 뒤, 두 번째 공식 솔로 앨범「Songs for Silverman」(2005)을 발표한 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대중의 호응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대표 싱글 <Landed>외에도 요절한 천재 뮤지션 엘리엇 스미스(Elliot Smith)를 추모하는 곡인 <Late>이 영국에서 특별한 반응을 얻기도 했다.  

  2000년대 후반으로 넘어와서도 그의 활약은 꾸준히 이어졌다. 사운드트랙 참여, EP시절의 수록곡들이 중심이 된 컴필레이션 「Supersunnyspeedgraphic, the LP」(2006)의 발표에 이어서 다시금 평단과 대중에게 찬사를 받은 그의 후기 대표작 「Way to Normal」(2008)이 발표되었다. 마침 이 때 그는 마이스페이스(Myspace)에서 주최한 ‘Front to Back' 콘서트 시리즈에 벤 폴즈 파이브 시절의 동료들과 등장해 그들의 3집 앨범 전곡을 연주하는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에는 미국 각 대학들을 돌아다니며 훌륭한 아카펠라 그룹들의 경연을 펼친 앨범 「Ben Folds Presents: University A Cappella!」를 프로듀싱하기도 했으며, 지난 2010년에는 우리에게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High Fidelity)’나 ‘어바웃 어 보이(About A Boy)’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소설가 닉 혼비(Nick Hornby)와 연합해 각각 가사와 음악을 책임진 조인트 앨범 「Lonely Avenue」를 통해서 다시금 그의 음악적 매력을 증명해 보였다. 

그의 17년 음악 여정의 하이라이트를 깔끔히 정리해 수록한 첫 공식 베스트 앨범 


  이 앨범은 제목 자체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그의 벤 폴즈 파이브로 데뷔했던 시절부터 2000년대 그의 솔로 앨범까지 그의 17년간의 음악 여정에서 그를 대표했던 트랙들이 거의 모두 담겨 있다. 이 앨범에 담겨진 총 18곡의 노래들의 트랙 리스트만 쳐다봐도 벤 폴즈의 음악을 꾸준히 들어왔던 팬들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만한 곡들이 뽑혔다는 것은 한 눈에 확인이 가능하다. 물론 그의 음악에 진정으로 빠져든 매니아들이라면 이 베스트 앨범의 18곡만으로 충분할 수 없겠지만, 그의 음악을 아직까지 진지하게 접해보지 못했던 팝 음악 팬들에게는 이처럼 확실한 벤 폴즈 음악의 개요를 담은 앨범은 여태껏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일단 벤 폴즈 파이브 시절의 노래들이 이 앨범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데뷔 앨범 「Ben Folds Five」에선 <Philosophy>와 <Underground>이 그의 초창기의 발랄한 패기를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이 시절에서 역시 가장 많은 중요도를 갖는 앨범인 2집 「Whatever and Ever, Amen」에서는 1990년대 록 팬들이 모두 좋아했던 베스트 발라드이자 빌보드 팝 싱글 차트에서도 선전했던 싱글 <Brick>과 그의 피아노 로큰롤의 진수를 선보이는 <One Angry Dwarf and 200 Solemn Faces>, 마치 빌리 조엘의 로큰롤을 듣는 듯한 세련된 복고풍 로큰롤 <Kate>가 앨범 버전으로 담겼으며, <Smoke>의 경우에는 호주 공연에서 웨스트 오스트렐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West Australian Symphony Orchestra)가 백업을 담당한 라이브 버전으로 실렸다. 하지만 3집에서는 대표 싱글이었던 <Don't Change Your Plans>만이 수록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2집의 또 다른 히트곡 <Song For the Dumped>가 포함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한편, 이 앨범이 벤 폴즈의 연대기인 만큼 나머지 곡들은 거의 다 솔로 앨범 수록곡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의 솔로 1집 「Rockin' the Suburbs」에서는 그간의 규칙과 달리 기타 연주를 함께 전면에 내세웠던 타이틀 트랙 <Rockin' the Suburbs>이 가장 돋보이며, 경쾌한 모던 록 <Annie Waits>, 스트링과 그의 피아노의 깔끔한 매력이 돋보였던 앨범의 대표 발라드 <The Luckiest>이 실렸다. 역시 이 앨범에 담겼던 곡인 드라마틱한 록발라드 <Still Fighting It>은 이번 베스트 앨범에서는 익스텐드 버전으로 수록되었다. 솔로 2집 「Songs for Silverman」에서는 앨범의 대표 싱글 <Landed>가 당연히 수록되었고, 역시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앨범 속 발라드 <Gracie>도 함께 선정되었다. 2006년 스페셜 앨범에서는 <There's Always Someone Cooler Than You>와 애니메이션 ‘Over the Hedge’에 삽입되기도 했었던 <Still>이 실렸으며, 레지나 스펙터(Regina Spektor)와의 듀엣이자 독특한 방식의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모았던 <You Don't Know Me>가 예상했던 대로「Way to Normal」앨범의 베스트 트랙으로, 그리고 닉 혼비와의 조인트 앨범에서는 1980년대 칼리지 록적 향취가 물씬 났던 트랙인 <From Above>가 선곡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앨범의 가치를 빛내주는 트랙은 맨 마지막에 숨어있다. 바로 벤 폴즈 파이브의 13년만의 새 노래가 실린 것이기 때문이다. <House>가 바로 그 트랙이다. 최근 그는 벤 폴즈 파이브의 동료들을 모아 내년을 목표로 새 앨범을 작업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바로 이에 맞춰 일단 그의 베스트 앨범을 위해 새로운 레코딩 3곡을 작업했다고 한다. (이 앨범의 3CD 스페셜 에디션에서는 그 3곡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신곡 <House>는 과거 벤 폴즈 파이브 시절의 곡보다는 훨씬 솔로 시절의 분위기의 스케일을 갖고 있으면서도 드럼과 베이스의 연주는 1990년대 밴드의 감성을 재현해주고 있어서 향후 그들의 신작에 대한 기대를 벌써부터 갖게 만든다.  

  17년이라는 나름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본연의 음악 색깔을 지키며 이를 더 세련되게 확장해왔던 벤 폴즈. 그의 커리어의 대표작들을 한 장으로 만날 수 있는 이 베스트 앨범은 지난 내한 공연의 감동을 기억하는 팬들과 그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이제 막 보이기 시작한 국내 팝-록 팬들에게 충실한 그의 음악 안내서로 구실을 하리라 믿는다. 빨리 벤 폴즈 파이브의 신보로 그의 새 음악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2011. 9 글/ 김성환(Music Journalist - 뮤직 매거진 ‘Hottracks’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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