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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호령했던 메탈 형님들께서 최근 새로 앨범을 내시는 경우가 늘었다. 화이트 스네이크 형님들, 그리고 세바스찬 바흐도 그렇고. 메가데스 형님들도 신보가 나왔으니까. 그 가운데 지난 여름에 나온 데프 레파드의 라이브 앨범은 그들에게서는 역대 처음 나온 라이브 앨범CD라 더욱 관심이 갔다. 그들의 20년 역사가 이 두 장에 잘 정리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스튜디오 이펙트의 지원이 없이 세월의 간극을 그대로 노출해야 하는 조 엘리엇(Joe Elliot) 형님의 목소리가 간혹 노래들 곳곳에서 우리를 슬프게 하기도 하지만, 이 형님들이 지금까지 이렇게 활약해왔던 것만 해도 이제는 감사할 뿐이다. 제발 더 노쇠하기 전에 내한 공연좀 해주삼. 15년전 그런 어쿠스틱 쇼케이스 같은 거 말고...

뭐, 무슨 말이 필요있는가? 신나게 1980년대, 그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

앨범 수록곡들 들어보기


  

 

 
Posted by mikstipe

# 이 글은 소니뮤직에서 발매한 본 앨범의 해설지 원고입니다.

일렉트릭 기타 연주 역사의 혁신을 이뤄냈던 기타 히어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그의 밴드 익스피리언스(Experience)의 결성 2주년을 기념했던 3일간의 공연 실황,
드디어 완전한, 그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빛을 보는 기념비적 라이브, 「Winterland」

 

  서구 로큰롤의 역사는 적어도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물결이 몰려오기 전까지는 결국 일렉트릭 기타 연주 진화(?)의 역사와 어느 정도 맥을 같이 했다 말해도 그리 허튼 소리는 아닐 것 같다. 드럼과 베이스도 로큰롤의 강한 에너지를 표출하는 데 있어서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 록 밴드의 연주에서 보컬의 목소리를 제외한 악기 파트의 연주에서 가장 전면에 나서는 악기는 기타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보컬이 잠시 숨을 고를 동안 화려한 솔로 연주와 애드리브를 통해 전면에 설 때도 있을뿐더러, 때로는 다양한 스트로크로 베이스와 드럼 못지않게 곡의 리듬감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체로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들은 그 팀의 핵심 송라이팅 담당자로서 보컬리스트 못지않은 유명세와 인기를 끌어 모았고, 초기 로큰롤 시대부터 헤비 메탈이 주류에서 정점의 인기를 구가할 때까지 수많은 기타 히어로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록의 트렌드를 변화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렇다면 그 가운데 구세대와 신세대를 아울러 누구나 공감하는, 그리고 록 역사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최고의 록 기타리스트가 누구인가를 묻는다면 록 팬들의 대답은 어떠할까? 오랜 동안 록 음악을 청취해왔던 전 세계의 모든 리스너들이라면 평론가들이건 대중이건, 심지어 뮤지션들까지도 입을 모아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이름을 외칠 것이다. 예를 들어, 1970년대와 1980년대의 하드 록-헤비메틀 기타리스트들, 그리고 심지어 이탈리안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면 거의 대부분이 어린 시절 그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언급을 종종 보게 된다. 아마도 그렇게 대답한 가장 큰 이유는 그의 음악을 통해 보여주었던 그의 연주가 그 이전 시대의 기타 연주 스타일과 분명히 달랐고 신선했기에, 그래서 모두들 일종의 ‘음악적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그는 그 이전 시대까지의 일렉트릭 연주자들이 단순히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앰프로 확장했던 수준을 보여준 것에 비해 피드 백(feedback), 와와(wah-wah), 퍼즈(fuzz), 디스토션(Distortion) 등 당대에 새로 도입된 기타 페달과 앰프를 활용한 음향 효과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리고 자신만을 위한 특별한 페달까지 제작하면서 타 기타리스트들과 분명히 다른 소리를 만들기 위해 애썼다. 그 결과 그의 연주를 다양한 장르의 후배들이 받아들이면서 이후 1970년대의 록의 다양한 서브 장르로의 분화에 엄청난 기여를 했다. (특히 후대 블루스 록 뮤지션들과 펑키 사운드를 기반으로 한 록 장르 뮤지션들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심지어 재즈 록(Jazz Rock), R&B, 힙합 등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향이 뻗어있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을 보면, 왜 사후 40년이 넘도록 여전히 그를 록 팬들이 ‘영원한 기타 히어로’로 떠받드는 지 충분히 이해가 갈만 하다고 생각한다. 

27년 생애 동안 짧지만 기념비적인 음악 궤적을 남겼던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 여정 

  1942년생으로 워싱턴 주 시애틀(Seattle) 출신인 자니 앨런 헨드릭스(Johnny Allen Hendrix, 훗날 그의 아버지가 James Marshall로 그의 이름을 개명했다.)는 어린 시절부터 비비 킹(B.B. King), 머디 워터스(Muddy Waters), 하울린 울프(Howlin' Wolf),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 같은 블루스의 거장들의 음악들을 들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그의 감상 레퍼토리에는 그와 함께 당대에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던 버디 홀리(Buddy Holly)와 같은 로큰롤 뮤지션들의 음악에도 함께 심취했다. 어린 나이에도 기타를 치고 싶다는 생각에 침실을 청소할 때 쓰던 빗자루를 들고 기타를 치는 시늉을 하며 놀았던 그가 1958년 5달러짜리 중고 어쿠스틱 기타를 구했을 때의 기쁨은 하늘로 날아갈 듯한 것이었다. 그는 당장 기타 연주를 독학으로 마스터했고. 그의 첫 밴드인 벨베톤스(The Velvetones)를 결성했다. 몇 개월 후 아버지는 다시 그에게 수프로 오작(Supro Ozark) 1560S형 기타를 선물했고, 이 기타를 들고 그는 로킹 킹즈(The Rocking Kings)라는 새 밴드에 가입했다.  
  1961년 군복무를 위해 고향을 떠난 지미는 낙하산 부대에서 활약했고, 켄터키 주 포트 캠벨(Fort Cambell)의 군부대에서 복무하던 시절에 나중에 그의 두 번째 밴드인 밴드 오브 집시스(Band of Gypsys)에 합류하는 베이시스트 빌 콕스(Bill Cox)와 함께 킹 캐주얼즈(King Casuals)를 결성해 부대 내 클럽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낙하산 하강 때의 사고로 전역을 하게 된 그는 지미 제임스(Jimmy James)라는 예명으로 세션 기타리스트 활동을 하며 본격적 직업 뮤지션 활동을 개시했다. 그리고 1965년에는 아이크 앤 티나 터너(Ike & Tina Turner), 샘 쿡(Sam Cooke), 아이슬리 브라더스(Isley Brothers), 리틀 리차드(Little Richard) 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백 밴드에서 기타 연주자로 활약했다. 그러다 리틀 리차드의 밴드에서 나와 처음 그의 프로 밴드인 지미 제임스 앤 블루 프레임즈(Jimmy James and the Blue Flames)를 결성했고, 주로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의 클럽가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그런데, 지미에게 행운은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찾아왔다. 이미 영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었던 애니멀즈(Animals)의 베이시스트 채스 챈들러(Chas Chandler)가 그의 공연에 강한 인상을 받고서 1966년 9월에 그에게 런던으로 거처를 옮겨 새 밴드를 결성할 것을 제안한 것이었다. 그렇게 런던으로 건너 온 지미는 예명을 ‘Jimi’로 수정하고 드러머 미치 미첼(Mitch Mitchell), 베이시스트 노엘 리딩(Noel Redding)과 함께 우리가 현재 기억하고 있는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Jimi Hendrix Experience)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재빨리 런던의 클럽가에서 인기몰이에 성공했고, 1967년 초 데뷔 싱글 <Hey Joe>가 영국 차트 6위에 오르는 성공을 거뒀다. 여기에 이어 발표한 정식 데뷔 앨범인 「Are You Experienced?」는 <Purple Haze>, <The Wind Cries Mary>, <Foxey Lady>, <Fire> 등 앨범의 전곡이 히트곡이 되는 대중의 찬사 속에서 당시 서서히 불어오던 사이키델릭 록의 대중적 인기를 앞당긴 앨범으로도 평가받았다.  
  타향에서의 큰 성공이후 그는 1967년 다시 미국에 금위환양하며 몬트레이 팝 페스티벌(Monterey International Pop Festival)에 참가해 트록스(Troggs)의 히트곡 <Wild Thing>을 그만의 방식으로 커버하는 무대로 단숨에 미국 록 팬들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1968년 발표된 2집 「Axis: Bold As Love」는 전작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스튜디오에서 보내며 작곡과 사운드에 투자한 작품으로 비록 공식 싱글은 <Up from the Skies>밖에 내놓지 않았지만, 오히려 앨범 속에 수록된 <Spanish Castle Magic>과 <Little Wing>은 지금도 그를 대표하는 명곡으로 록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후 지금까지 발표한 앨범들의 상업적 성과를 바탕으로 지미는 자신만의 스튜디오를 만드는 계획을 실천에 옮겼고, 그것이 바로 3집의 제목으로도 사용된 「Electric Ladyland」스튜디오였다. 뉴욕에 만들어진 이 스튜디오에서 그는 다시 스튜디오 안에서 새로운 곡들의 작업에 몰두했고, 그 결과 <Crosstown Traffic>, <Voodoo Chile>, 밥 딜런(Bob Dylan)의 커버인 <All Along the Watchtower>, <Voodoo Child (Slight Return)> 등의 명곡들을 낳으며「Electric Ladyland」는 현재도 그의 아티스트로서의 최고의 노력이 담긴 걸작으로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 앨범을 끝으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는 노엘 리딩의 탈퇴로 인해 결국 해체하고 말았다. 원래 기타리스트였으나 지미와 함께 하면서 베이스를 잡았던 노엘은 밴드 활동이 이어질수록 더욱 기타 파트에 대한 미련이 강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69년 지미는 이제는 전설로 기억되는 우드스톡 페스티벌(The Woodstock Music & Art Fair)에 집시 선 앤 레인보우즈(Gypsy Sun & Rainbows)라는 임시 밴드를 결성해 참가했다. (이 라이브 무대에서 그가 연주한 미국 국가 ‘The Star Spangled Banner’는 이 페스티벌 실황 앨범 전체의 하이라이트와 같은 구실을 했다.) 그리고 그 해 겨울에는 옛 전우 빌리 콕스와 일렉트릭 플랙(Electric Flag)의 드러머였던 버디 마일즈(Buddy Miles)와 함께 새 트리오 밴드 오브 집시스로 1969년 12월 31일, 그리고 1970년 1월 1일로 이어지는 송년(?) 공연을 뉴욕 필모어 이스트(Fillmore East)에서 가졌다. 이 실황의 음원들을 바탕으로 발표된 앨범이 실질적 그의 생전 마지막 발표 앨범으로 기록되는 「Band of Gypsys」(1970)였다. 이후 그는 빌리와 미치와 함께 익스피리언스를 재건하고 새 음반을 녹음하기 위해 스튜디오 세션을 계속 해나갔지만, 이 작업들은 불행히도 당시에는 잦은 해외 투어로 인해서 자꾸 완성이 지연되었다.  
  그러던 1970년 9월 18일, 그는 런던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부검 결과 수면제 과다복용과 구토로 인한 질식사로 판명되었지만, 여전히 그가 왜 수면제를 그렇게 한꺼번에 복용해야 했는가에 대한 이유는 여전히 미궁 속에 있다. (그녀와 마지막으로 함께했던 여성인 모니카 데네만(Monika Dannemann)에서 사망 전날 그가 수면제를 몇 알 가져갔다는 증언이 전부였다. 지난 2009년에는 지미의 매니저였고, 지미의 사망 이후 2년 뒤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마이크 제프리(Mike Jeffery)가 지미가 그와의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말에 강제로 그 수면제를 와인과 함께 먹여 살해했다는 고백을 생전에 자신에게 했다고 애니멀스의 로디였던 제임스 라이트(James "Tappy" Wright)가 자신의 저서에서 밝혔지만, 이미 당사자들이 모두 고인(故人)인 상황에서 그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최고 실황 연주로 평가받는 1968년 실황의 완전한 복원, 
그리고 그 음원의 하이라이트를 알차게 담아낸 1CD 라이브 앨범 「Winterland」 

 
지미 헨드릭스가 세상을 떠난 이후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그가 생전에 가졌던 수많은 연주 실황이나 미발표곡들은 꾸준히 공개되었지만, 당시에는 유족들의 의지보다는 음원을 소유한 음반사들의 이해관계가 더 많이 작용했었다. 다행히 1990년대 중반에 유족들이 그의 모든 음원에 대한 권리를 되찾고 설립한 Experience Hendrix LLC가 MCA레이블과 배급 계약을 맺고서 오리지널 정규 스튜디오 앨범 3장의 확장판과 함께 사망 전 그가 제작하고 있었던 미발표작 「First Rays of the New Rising Sun」(1997)을 완성해 내놓으며 공식적인 그의 카탈로그 정리 작업은 본격화 되었다.  
  그리고 지난 2009년 유족들이 소니뮤직과 새로운 배급 계약을 맺은 후부터 현재까지 총 4차례에 걸쳐서 ‘지미 헨드릭스 카탈로그 프로젝트(Jimi Hendrix Catalogue Project)는 진행되고 있다. 1차로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의 3장의 정규 앨범 스페셜 확장 버전과 여러 사후 앨범에 발표되었거나 미공개 되었던 스튜디오 레코딩만을 모은 두 번째 사후 스튜디오 앨범 「Valleys of Neptune」이 함께 공개되었고, 2차로 2010년에는 1970년대 이후 공개되었던 라이브 앨범들인「BBC Session」과 「Live At Woodstock」의 완전한 풀버전, 그리고 블루스 컴필레이션 「Jimi Hendrix: Blues」, 희귀 크리스마스 EP였던 「Merry Christmas & A Happy New Year」, 그리고 미발표 트랙들이 몇 곡 포함된 새 박스 세트 「West Coast Seattle Boy」를 내놓았다. 뒤이어 3차분으로 올해 초 2004년 한 번 발표된 바가 있는 그의 트리뷰트 앨범 「Power Of Soul: A Tribute to Jimi Hendrix」의 스페셜 에디션, 그리고 그의 사망 직전 녹음했던 미완성 데모들과 음반에 실리지 못했던 얼터너티브 테이크 등이 들어간 「South Saturn Delta」, 그리고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Fire>의 CD 싱글 버전,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던 필모어 이스트 실황 전체를 기록한 DVD 「Band of Gypsys : Live At Fillmore」가 발매되었다.    
  지금 여러분의 손에 있는 이 음반은 바로 그 네 번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1년 9월 새롭게 발매되는 라이브 앨범으로, 1968년 10월 10일부터 12일까지 총 6회에 걸쳐 가졌던 샌프랜시스코 윈터랜드 볼룸(Winterland Ballroom)에서의 실황의 하이라이트을 담고 있다. 사실 이 음원은 1987년에 해외에선 라이코디스크(Rycodisc) 레이블을 통해 「Live At Winterland」라는 2LP-1CD형태의 음반으로 일부 음원이 발표된 적이 있긴 하다. (현재 이 버전은 오래전에 절판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되는 「Winterland」는 그 때와는 분명히 차원이 다르다. 바로 이 3일간의 공연을 기록해놓은 음원 전체를 음반으로 최초 공개하는 것이 엄밀히 말해서 ‘궁극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이 한 장의 CD로 그 음원을 다 감상할 수는 없지만, 이 1CD 하이라이트 버전의 공개와 함께 4장의 CD형태의 박스 세트, 그리고 8LP+ 1CD형태의 LP버전 박스 세트까지 총 3종으로 공개되는 것이다. (나머지 버전들은 국내에 아마 수입 음반으로라도 판매 될 것 같다.) 
   그래서 총 11곡이 담겨 있는 이 1CD 하이라이트 앨범의 수록곡 순서는 1987년에 발매된 버전과는 트랙리스트가 완전히 다르게 짜여졌다고 보는 것이 현명하다. 일단 첫 날인 8월 10일 1회 공연에서는 데뷔 앨범의 타이틀 트랙이자 사이키델릭적 느낌의 인트로 파트에 이어 끈끈한 블루지한 기타 톤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Are You Experienced?>와 특유의 반복적 연주로 시작하는 인트로와 블루지 하드 록 기타 연주의 표본이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Voodoo Child (Slight Return)>이 선곡되었고, 같은 날 2회 공연에서는 서로 존경하고 친구로 여겼던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결성했던 트리오 크림(Cream)의 대표곡을 커버하면서 중반부의 솔로잉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자유롭게 풀어헤쳐버린 <Sunshine of Your Love>와 생전에 라이브 무대에서는 종종 연주되었지만 사망 전까지는 한 번도 스튜디오 버전을 공개하지 못했던 진정한 지미 헨드릭스표 블루스 트랙인 <Hear My Train A Comin'>이 11분 44초의 긴 편곡으로 선곡되었다. 그리고 둘째 날인 8월 11일 공연에서는 2회 공연에서만 데뷔 앨범의 대표곡들인 <Hey Joe>와 <Purple Haze>를 밴드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컨디션이 발휘된 연주가 녹음된 트랙들로 선곡되었다.  
   한편, 셋째 날인 8월 12일 공연에서는 공연의 오프닝이기에 멤버들을 소개하고 바로 신나게 휘몰아치는 연주로 이어지면서 세 멤버의 환상적인 연주 궁합이 듣는 이를 사로잡는 <Fire>와 「Are You Experienced?」앨범 수록곡으로 그의 음악에 대한 광적인 열정과 집착이 가사와 기타 솔로로 표현되었던 <Manic Depression>, 그리고 밥 딜런의 대표적 포크 록 명곡을 블루지 발라드 버전으로, 그것도 10분 45초라는 대곡으로 변화시킨 <Like A Rolling Stone>이 선곡되었으며, 같은 날 2회 공연에서는 들을 때마다 그의 우수에 찬 보컬과 슬픔을 가득 먹은 긴 블루스 솔로잉이 가슴을 울려대는 명곡 <Little Wing>과 그의 모든 곡들 가운데 어쩌면 가장 끈끈하고 에로틱한 감성을 뿜어내는 트랙인 <Foxy Lady>가 선곡되었다.  
   지미 헨드릭스는 로큰롤의 역사에서 또 하나의 형식미의 다양화, 그리고 혁신적 변화를 가져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테크니션이기도 하지만, 그 음악이 대중에게 감동을 준 것은 어쩌면 그가 치밀하게 계산된 사운드 이펙트와 화려한 손놀림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닐 지도 모른다. 대중은 그가 기타 연주를 통해 뿜어내는 삶과 음악에 대한 애환과 열정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그 감흥은 라이브 무대에서 극대화 되었기에, 이번에 공개되는 이 실황 앨범 「Winterland」는 이미 그를 보낸 지 40년이 지난 후에도 그 열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2011. 9. 글/ 김성환(Music Journalist - 핫트랙스 매거진 필자) 

 


Posted by mikstipe
얼터너티브 록의 살아있는 전설 펄 잼(Pearl Jam)의 2010년 실황 앨범,
그들의 20년 역사의 대표작들이 한 장에 집약된 열정의 라이브 「Live on Ten Legs」

  서구 팝 음악의 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들은 1994년 5월 너바나(Nirvana)의 리더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이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쏘아 목숨을 끊은 그 순간, 시애틀 그런지(Grunge)의 역사는 끝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비틀즈(The Beatles)라는 세기의 록 밴드가 해체한 후에도 그들의 숙명의 라이벌로 통했던 롤링 스톤스(Rolling Stones)가 2000년대에도 여전히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하는 저력을 보여줬듯, 너바나와 함께 시애틀 록의 영광의 시절을 함께 보냈던 펄 잼(Pearl Jam) 역시 지금까지 그들에게 주어진 밴드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해왔다. 두 밴드와 함께 시애틀 그런지의 4대 밴드로 통했던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와 사운드가든(Soundgarden)마저 레인 스탤리(Lane Staley)의 사망과 크리스 코넬(Chris Conell)의 긴 방황으로 인해 너무 먼 길을 돌아 얼마 전에야 돌아온 상황을 볼 때, 언제나 변함없이 대중과 호흡하는 록 밴드, 음악적으로 높게 평가받는 밴드로서 자리를 지켰다는 것만으로도 펄 잼은 록 역사의 위대한 밴드가 되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또한 그들이 꾸준히 지금까지 활동을 해왔기에 1990년대 초반 시애틀 그런지를 시발점으로 불어온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이 표방한 ‘과거 록 정신으로의 복귀’는 커트의 산화(散華) 이후에도 단지 한 줌의 재로 끝나지 않고 작은 불씨를 지켜갈 수 있었다. 그들이 90년대에 공연 요금의 인하를 위해 티켓마스터(Ticketmaster)와 한바탕 전쟁을 치렀던 것으로 시작해 사회적인 이슈에서는 항상 진보적 사고의 편에 서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했던 펄 잼의 행적들은 뜻과 열정을 함께하는 수많은 팬들을 꾸준히 공연장으로 끌어 모았다.

  밴드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 에디 베더(Eddie Vedder)가 2000년 어느 인터뷰에서 남긴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믿고 의지할 무엇을 필요로 했을 시절, 그것을 주었던 록 밴드들이 우리 모두 있었기에 우리도 역시 사람들에게 믿고 의지할 무언가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앨범을 내놓은 후 그것은 우리에겐 큰 도전이었지만, 우리는 팬들에게 응답을 내놓아야 했다. 해답을 찾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스스로 그 방법을 찾아냈던 것 같다.” 그의 말처럼 방황하는 당대의 청춘들에게 펄 잼은 절대 선동가의 모습은 아니었음에도 음악으로, 행동으로 길잡이의 역할을 해 주었다. 그리고 그 정신적 인도를 따르는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세계 록 팬들의 지지로 그들은 이제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얼터너티브 록의 살아있는 전설’과 같은 존재로 우리 곁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펄 잼과 라이브 공연, 절대 떼어놓을 수 없는 그들의 존재의 이유

  기타리스트 스톤 고사드(Stone Gossard)와 제프 아멘트(Jeff Ament)가 1980년대 후반 시애틀 언더그라운드 하드 록 밴드 마더 러브 본(Mother Love Bone)의 멤버로 활동했던 인연에서 출발한 펄 잼의 역사는 밴드의 보컬이었던 앤드류 우드(Andrew Wood)가 헤로인 중독으로 사망한 후 새로운 밴드를 규합하며 샌디애고 출신의 에디 베더를 받아들이며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1991년 데뷔작이자 얼터너티브 록의 부흥을 알렸던 걸작 「Ten」을 기점으로 폭발한 그들의 에너지는 상업적-음악적 성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던 초기 대표작들 - 「Vs.」(1993),「Vitalogy」(1995) - 과 음울함으로 침잠했던 「No Code」(1996), 그 음울함을 하드 록적 방법으로 극복하려 했던 「Yield」(1998), 아예 실험주의적 시도로 돌파구를 모색했던「Binaural」(2000) 등의 중기 앨범들의 분투를 거쳐 자신들의 초기의 에너지를 다시 회복하는 기점이 된 「Riot Act」(2002), 초기작들 못지않게 활기를 드디어 완연히 되찾으면서도 동시에 노련함을 추구한「Pearl Jam」(2006)과 최근작 「Backspacer」(2009)까지 비록 대중의 호응에서는 기복을 거치긴 했어도 꾸준한 열정과 음악적 고민 속에서 그 깊이를 더해갔다. 
 
   그러나 해외 록 밴드들의 음악을 공연보다는 음반과 영상으로 접할 기회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우리 입장에서 펄 잼에 대해 간과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시애틀 그런지 록을 대표했던 밴드들 가운데 정통 아메리칸 록의 유산과 가장 가까운 공유점을 가진 그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사실 음반보다 그들의 라이브 무대라는
사실이다. 메이저 데뷔 이후 현재까지 한 해도 투어를 거른 적이 없는 그들의 엄청난 양의 공연 기록을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겠지만, 실제 그들은 공연장을 통해 자신들의 음악을 아껴주는 팬들과 만나고 그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모습이 가장 매력적인 록 밴드다. 그리고 많은 공연을 펼치는 팀답게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 이후에 는 DVD외에 음반으로는 생각보다 흔히 만나기 힘든 라이브 앨범들의 숫자만 해도 공식 작품으로만 CD로 5장, 아이튠즈에만 공개한 2007년도 롤라팔루자(Lollapalooza) 실황 앨범까지 합치면 6장이다. 그리고 역사상 어느 록 밴드도 세우지 못한 펄 잼만의 독특한 기록이 하나 있다. 마분지 페이퍼 슬리브 형태 패키지로 미국과 유럽 지역에 한정 발매된 ‘Official Bootleg(공식 해적판)' 라이브 앨범만 지난 10년간 벌써 282장이나 된다. 이렇게 라이브 공연 기록에 애착을 갖고 혹시 여유가 없어서 자신들의 공연장에 오지 못한 팬들까지 그 현장의 열기를 전하고자 애쓰는 록 밴드를 당신은 이전에 본 적이 있는가? 그야말로 펄 잼에게 라이브 공연은 그들의 존재의 이유와 마찬가지이고, 그들이 여태껏 남겼던 수많은 라이브 음원들은 바로 그 숨길 수 없는 증거들이다.

밴드의 2000년대 투어의 베스트 실황들을 모은 2011년판 공식 라이브 앨범

  이번에 발표되는 「Live on Ten Legs」의 제목을 보고 펄 잼의 팬들이라면 왠지 낯이 익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들이 발표했던 첫 공식 라이브 음반의 제목이 「Live on Two Legs」(1998)였기 때문이다. 그 앨범의 경우는 1998년 여름에 가졌던 3개월간의 북미 투어의 하이라이트를 모은 것이라면, 이번 새 라이브 앨범은 지난 2003년부터 작년까지 이들이 가진 방대한 라이브 음원들 가운데서 선곡이 이뤄졌다. 그리고 더욱 재미있는 것은 두 라이브 앨범 사이에 겹치는 트랙이 한 곡도 없다는 점이다. 결국 이 두 장을 함께 소장하고 있다면 이들의 유일한 팝 차트 넘버 원 싱글인 <Last Kiss>를 제외하고 펄 잼 역사의 중요 히트곡들은 거의 다 라이브 버전으로 듣게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이 앨범 트랙리스트를 보면서 ‘어, 왜 이렇게 중요한 트랙이 빠졌지?’라는 의문을 가졌던 펄 잼의 팬들은 이 사실을 꼭 인지해 주시기 바란다.

  결국 「Live on Two Legs」에서 빠졌던 그들의 과거 베스트 트랙들은 이 앨범에 모두 실려 있다. 데뷔작 「Ten」에서는 그들의 시그니쳐 싱글 중 하나인 <Jeremy>와 <Alive>, 그리고 6분으로 러닝타임을 늘여 라이브의 현장감을 더한 블루스 얼터너티브 록 <Porch>가 선곡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비사이드 앨범 「Lost Dogs」에 실린 <Yellow Ledbetter> 역시 처음에는 <Jeremy> 싱글의 뒷면에 실렸던 곡이다. 어쿠스틱한 면모를 가진 연주 위에 에디 베더의 호소력 있는 보컬은 언제라 라이브 무대에서 이 곡을 베스트 파트 중 하나로 만든다. 2집 「Vs.」에서는 기타-베이스의 펑키함이 잘 살아있는 트랙들인 <Animal>과 <Rearviewmirror>가, 3집 「Vitalogy」에서는 그들의 싱글 중 가장 빈티지하고 개러지 록 느낌이 가득한 사운드를 보여준 <Spin The Black Circle>이, 그리고 지난 라이브 앨범의 발매 시점 직전에 나왔던「Yield」에서는 미디움 템포의 블루지 하드 록 트랙 <In Hiding>이 선곡되었다. 특히「The Singles」OST에 담긴 <State of Love and Trust>가 라이브 버전으로 수록된 것은 펄 잼의 골수팬들에게는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2000년대 이후에 진행된 공연 실황들이 베이스가
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들의 2000년대 앨범 수록곡들의 양이 더 많을 수밖에 없다. 「Binaural」에서는 에디의 보이스와 멤버들의 연주가 우수를 자아내는 펄 잼식 록 발라드(?) <Nothing As It Seems>가,「Riot Act」에서는 아메리칸 루츠-포크에 대한 밴드의 애정이 가득 담겼던 트랙인 <I Am Mine>이, 그리고 「Pearl Jam」앨범에서는 초기작들의 파워를 완벽하게 복원한 스피디한 곡 <World Wide Suicide>가 선곡되었기에 일단 각 앨범의 중요 트랙들은 모두 라이브로 감상하는 게 가능하다. 한편, 최근작답게「Backspacer」에서는 첫 싱글이었던 <The Fixer>와 두 번째 싱글이자 서정적인 어쿠스틱 포크 트랙 <Just Breathe>, 함께 A사이드에 수록되었던 스피디한 그런지 록 트랙 <Got Some>, 그리고 펄 잼 특유의 분위기를 가진 루츠 록 트랙 <Unthought Known>까지 4곡이 선택되었다. 

  라이브에서 항상 다른 아티스트들의 곡들을 커버하는 것 역시 펄 잼의 공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이다. 커버의 소재는 자신들에게 어린 시절 영향을 주었던 밴드들의 곡에서 찾아왔고, 이번 라이브 앨범 속에는 조 스트러머(Joe Strummer: 펑크 록 밴드 클래쉬(The Clash)의 보컬/기타리스트)가 1990년대 말에 이끌었던 밴드 메스카렐로스(The Mescaleros)의 2003년 싱글 <Redemption Song>의 뒷면에 수록되었던 <Arms Aloft>가 오프닝 트랙으로 자리잡고 있다. 오리지널 버전이 조금 얌전한(?) 펑크-개러지 록이라면, 펄 잼의 버전은 훨씬 자신들의 색깔에 맞게 기타 파트를 강조하고 거친 드럼 터치로 그런지 시대의 분위기를 덧입혔다. 또 한 곡의 커버 송 역시 펑크 록의 아이콘이었던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의 리드보컬이었던 존 리든(John Lydon : 우리는 흔히 조니 로튼(Johnny Rotten)으로 그 이름을 기억한다)이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이끌었던 밴드인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ublic Image Ltd.)의 곡을 택했다. 그들의 데뷔 싱글이자 그룹 송인 <Public Image>이 선곡되었는데, 전형적인 고전 펑크 록에 해당하는 원곡을 더욱 경쾌한 펑크 에너지로 채워놓았다.



Pearl Jam - Arms Aloft (Live At Rock Werchter 2010)

  사실 펄 잼의 라이브 음원들은 앨범 버전과 확연히 다른 엄청난 즉흥 연주나 화려한 솔로의 향연 같은 것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스튜디오 녹음에서는 아무리 원 테이크로 거칠게 녹음해도 담기 힘든 탄탄한 연주력의 록 밴드가 보여주는 생동감이 잘 살아있다. 이번 새 라이브 앨범 역시 그들이 현장에서 보여준 활력과 에너지를 충실히 담아낸 결과물이라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블 앨범이 풍성함이 아님을, 기대했던 트랙이 빠져있음을 아쉬워 할 수도 있겠지만, 그 부분은 CD장에 잘 보관해 두었던 「Live on Two Legs」CD를 다시 꺼내어 함께 감상한다면 충분히 해소될 것이라 믿는다. 언젠가 그들이 처음으로 한국 땅에서 공연을 여는 그 날을 꿈꾸며, 이 앨범으로 비행기 표도 없이 펄 잼 공연장으로 날아 가보자.

2011. 1 글/ 김성환(Music Journalist - ‘핫트랙스 매거진’ 필자)

Posted by mikstipe
정말 이건 도둑같은 발매다. 지난 달 중순까지도 도데체 발매 계획을 알리지 않았던 드래곤포스가 드디어 공식 첫 라이브 앨범을 내다니... 오는 9월 14일 미국 시장에서는 발매될 예정인 이 더블 라이브 앨범의 대표곡 3곡이 일단 먼저 로드런너 레코드 홈페이지에서 웹으로 감상할 수 있는 플레이어 위젯으로 업데이트되어 퍼온다. 좀 더 기타 사운드를 보컬 못지않게 크게 뽑아줬음하는 아쉬움(특히 <Through The Fire And Flame>의 초반부 녹음은 좀 거시기하다.)도 있지만, 이들의 휘몰아치는 연주가 스튜디오 장난은 결코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하는 매력은 있는 듯하다. 정식 발매를 기다려본다.

[Disc 1]
1. Heroes of Our Time (Live)
2. Operation Ground And Pound (Live)

3. Reasons to Live (Live)
4. Fury of the Storm (Live)
5. Fields of Despair (Live)
6. Starfire (Live)
7. Soldiers of the Wasteland (Live)

[Disc 2]
1. My Spirit Will Go On (Live)
2. Where Dragons Rule (Live)
3. The Last Journey Home (Live)
4. Valley of the Damned (Live)
5. Strike of the Ninja (Live)
6. Through the Fire and Flames (Live)
 
 


 
Posted by miksti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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