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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 세가지 소원 (100Beat - Daum 뮤직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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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stipe 2011. 7. 6.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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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포크의 전통을 1990년대 가요의 빠른 변화 속에서 녹여낸 '마지막 포크 동아리'의 대표작

지난 6월 24일부터 26일까지 포크 팝 그룹 여행스케치의 데뷔 22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연세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렸다. 현재는 22년 내내 그룹의 작곡자와 남성 보컬의 역할을 계속 지켜왔던 조병석과 남준봉만이 공식 멤버이지만, 이 3일 동안에는 그들이 한창 대학로 소극장에서 수많은 공연을 매진시켰던 시기의 모든 멤버들–이제는 작사가인 윤사라, 새 인디 듀오 나디브(Nadiv) 활동을 시작한 이선아, 그룹 탈퇴 후에도 어떤 형식이건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현정호와 김수현, 성운용, 평범한 직장인이 된 문형석–이 함께 무대를 꾸몄다. 공연을 관람하며 받은 느낌은 그들의 노래 제목처럼 '국민학교(초등학교) 동창회 가던 날'의 반가움과 같았다. 18년 전 봄 어느 날, 그들의 공연을 처음 봤을 때만큼의 완벽함에는 모자랐지만, 세월의 여유와 여전히 남아있는 그들의 음악에 대한 애정, 열정은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사실 여행스케치의 음악은 그들이 공연에서 누린 인기에 비한다면 1990년대에 한국 가요계에서 그리 명성을 누렸다고 보긴 어렵다. '별이 진다네', '옛 친구에게',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라는 음악 차트 Top 10 히트곡을 보유한 팀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기억하는 그들의 노래는 불행히도 거기까지다. 한편 한국의 주류 언론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기점으로 등장한 화려한 스타들에 눈이 가있었고, 진지하게 음악을 다루는 평론가들은 그들이 음악적으로 아마추어적이라 속단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한국 포크의 역사에서 동물원에 뒤이어 포크라는 장르가 단순히 맥없는 연가(戀歌)로만 전락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민중가요의 가사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당시 20대 젊음의 고민과 생각, 그들의 꿈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했다(그것은 히트 싱글이 아닌 그들의 앨범 전곡을 감상했을 때에 비로소 파악된다). 그러면서도 앨범마다 당시 한국 가요계에 새롭게 불어오는 트렌드, 또는 해외 팝 장르들이 갖고 있는 음악적 특색을 다양하게 활용한 곡들로 앨범을 꾸미는 음악적 노력을 기울였다(개인적으로 1990년대에 주목해야 할 작곡가 리스트에 조병석 역시 분명히 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초기 앨범의 뒤에 송홍섭이 서있었고, 6집까지 하나 뮤직의 슈퍼 세션진(조동익, 함춘호 등)이 앨범의 세션에서 수고를 했던 것으로도 그들의 음악적 퀄리티는 결코 아마추어적이지 않았다.



그럼 그들이 현재의 2인조가 되기 전까지 발표했던 9장의 앨범들 가운데 그들의 대표곡밖에 모르는 초보자들이 어떤 앨범을 선택했을 때 가장 그들의 음악을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바로 이 앨범과 4집 [다 큰 애들 이야기] 정도가 그 해답이 될 것이다. 특히 이 앨범의 가치는 더 중요하다. 초기 2장의 앨범을 통해 단순한 포크 동아리에서 하나의 프로 보컬 그룹으로 정착하는 단계를 거친 이들은 이 앨범에서 조병석이라는 음악적 리더의 지휘 아래 국내에서 보기 드문 '포크 팝 콘셉트 앨범'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램프의 요정이 네게 와서 세 가지 소원을 말하라면 뭐라고 할 것인가?'에 대한 자신들(젊은이)의 소소한, 하지만 진지한 바람을 메인 테마로 삼아 앨범은 내레이션과 노래를 오가며 마치 한 편의 '노래극'에도 비견될 흥미로운 구조로 전개된다. 그들의 대표곡 가운데 문형석이 리드 보컬을 맡았던 유일한 곡인 '옛 친구에게'는 지금 생각해보면 한 편의 하드 록 발라드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후렴 파트의 임팩트가 막강하다. 항상 그들 라이브의 종반을 책임지는 '난치병'의 사운드는 거의 포크 록과는 거리가 있는 세련된 AOR(Adult-Oriented Rock)에 가깝다. 당시 멤버들이 경도되었던 킹스 싱어즈(King's Singers)나 보이즈 투 멘(Boyz Ⅱ Men)과 같은 그룹들의 아카펠라/고전 소울적 요소들도 '국민학교 동창회 가는 날', '좋은 친구들', 그리고 동요 '산토끼'와 '나의 고향'의 가사를 어쿠스틱 기타의 매력적 스트로크 위에 새 멜로디로 전하는 '어린 시절로'에서 도입했다. '소원 셋' 이후의 후반부 곡들은 리드 보컬부터 코러스까지 완벽한 하모니로 무장한, 1970년대 징검다리-해바라기 식 화음의 매력과 대학가 노래패들의 패기를 동시에 전한다. 특히 자신들이 노래를 하는 이유에 대한 고민을 알맞게 담은 '나의 노래는'의 경건함은 지금도 들을 때마다 그들이 당시 가졌던 열정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이렇게 1990년대에도 한국의 포크-포크 팝은 다양한 진화를 통해 주류에서 어느 정도 생존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나 좋아서 하는 밴드, 옥상달빛과 같은 인디 포크 그룹들은 존재하지만, 인디 씬마저도 자꾸만 서구 인디 포크의 '찰랑거림'을 모방하는 듯한 최근 트렌드 속에서 여행스케치와 이 앨범이 제시했던 가치는 한 번쯤 다시 되돌아 봐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글: 김성환 대중음악 저널리스트, Hottracks Magazine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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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7.07 14:32 신고
    이 글 100비트에서 봤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
    중반기 앨범들을 들어보지 못했는데, 궁금하네요. 사실 저는 유명한 곡들 아는 수준이라서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