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Pet Shop Boys - Pandemonium (CD+DVD)

80팝/80년대 팝앨범리뷰

by mikstipe 2010. 6. 17. 12:29

본문

# 이 글은 제가 쓴 한국 워너뮤직 발매 라이선스 음반 해설지입니다.

신스 팝의 수호자, 모든 전자 음악 아티스트들이 존경하는 일렉트로닉 팝의 아이콘,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의 2009년 실황을 담은 CD+DVD 패키지「Pandemonium」

이 글을 쓰기 며칠 전,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가 2010년 지산 벨리 록 페스티벌에 출연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인터넷을 통해 확인했다. 그 순간, 환호의 함성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만감이 교차되는 순간이었다. ‘West End Girls’ 등의 주요 히트곡이 모두 금지곡으로 묶여서 반쪽짜리 누더기로 발매된 그들의 데뷔 앨범 LP에 만족할 수 없어 흑백 백판을 구하려 음지(?)를 헤매고 다니다 마침내 우연한 장소에서 구했을 때의 그 기쁨, 그리고 닳도록 들었던 2집 「Actually」(1987) LP와 ‘Always On My Mind’ 12인치 싱글에 대한 청소년기의 추억들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어쨌든 신스 팝과 1980년대 팝 음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자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그들의 무대를 마침내 한국 땅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개인적 추억담은 무시하더라도, 신스 팝이 주류에서 밀려나고 그 자리를 DJ들과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이 도배하던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에도 꾸준히 자신들의 길을 묵묵히 갔었던 그들의 행보는 그들을 디페쉬 모드(Depeche Mode)와 함께 ‘신스 팝의 생존자’의 위상을 넘어 1980년대 모든 전자 음악을 구사하는 아티스트들의 정신적 지주와 같은 위상으로 끌어올렸다. 사실 디페쉬 모드가 전자 음악의 어두운 면을 극대화하여 1990년대 록 음악과의 교집합을 이끌어내고, 동시에 하드코어 일렉트로니카 계열 사운드의 선구적 위상을 차지한 반면, 펫 샵 보이스의 음악은 그에 비하면 꾸준히 댄스 플로어와 팝적인 멜로디와 교집합을 형성하는 지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그것이 이들을 수많은 후배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이 존경하고 대중도 꾸준히 애정을 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해석일 것이다.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어떤 방향으로 음악에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보편적 대중은 그 속에서도 비트를 압도하는 좋은 멜로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이를 충실히 지킨 뮤지션들은 트렌드의 흐름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최근 아울 시티(Owl City)와 같은 뮤지션들이 대중의 주목을 받은 것도 이러한 경향의 연장선이라 생각한다.)

결국 펫 샵 보이스는 바로 이 점에서 최고의 재능을 발휘한 그룹이었고, 다른 동시대 아티스트들이 모두 창작력의 고갈이나 트렌드의 변화로 인한 레이블의 홀대로 인해 주류에서 밀려났을 때에도 꾸준히 정상의 자리에서 자신들이 하고픈 음악을 해왔던 팀이다. 그래서 우리는 펫 샵 보이스를 시대를 뛰어넘어 음악적 아이콘(Icon)의 자리에 올라 있는 아티스트로 이제는 당당히 평가해도 좋을 것이다.

2009년 런던 O2아레나에서 개최된 공연의 열기를 담은 그들의 2번째 공식 라이브 앨범

올해로 데뷔 25년째를 맞는 펫 샵 보이스이지만 그들의 오랜 커리어에 비한다면 이들은 거의 라이브 앨범을 내놓지 않았다. (물론 1993년 EMI에서 처음으로 공식 발매한 실황 비디오 「Performance」이후 다수의 영상물은 계속 발표되었다.) 실제 이들이 첫 라이브 앨범을 내놓은 것은 지난 2006년작 「Concrete」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 라이브 실황은 애초에 BBC에서 방송을 하기 위해 레코딩이 이뤄졌고, 공연 내용 역시 당시 발표했던 이들의 앨범 「Fundamental」(2005)이 오케스트레이션을 가미한 작품이었기 때문에 오케스트라를 대동하고 무대에 서서 온전히 그들만의 전자음만으로 이뤄진 공연 실황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성격이 달랐다. 따라서 어쩌면 진짜 ‘펫 샵 보이스다운’ 라이브 무대를 담은 실황 앨범은 이번 「Pandemonium」이 CD로서는 처음이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사실 펫 샵 보이스의 경우에도 디페쉬 모드나 (애초에 밴드 형태의 멤버 구성이 아닌) 다른 일렉트로닉 팝 밴드들의 경우처럼 기타 등의 일부 악기를 제외한다면 대체로 무대 위에서 프로그래밍된 컴퓨터들의 지원 속에 공연을 소화한다. 이런 경우 그들에게 라이브 무대는 스튜디오 작업에서 만들어낸 다채로운 사운드를 어떻게 현장에서도 완벽하게 구현하는가, 또는 리믹스하여 재구성하여 생동감 넘치는 배경 화면과 함께 전달하는 것이냐에 초점이 맞춰진다. (2007년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의 펜타포트 록페스티벌 무대, 아니면 작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 등장한 베이스먼트 잭스(Basement Jaxx)의 무대를 기억한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래서 일반 록 공연과 달리 수많은 컴퓨터들이 아티스트의 주변을 감싸거나 LED 전광판을 제외하면 그리 화려할 것이 없게 꾸며질 때가 많다. 그러나 펫 숍 보이스의 음악은 아무리 화려한 전자음이 있다 해도 보컬이 그 중심에 서는 것이기에, 크리스 로우(Chris Rowe)가 열심히 세팅을 이리 저리 바꾸는 동안에 보컬리스트 닐 테넌트(Neil Tennant)는 무대를 누비며 관객과의 소통을 책임진다. 그렇기에 여느 록 공연과 그렇게 큰 차이 없이 그들만의 따뜻하고 흥겨운 무대로 관객을 즐겁게 해준다.

이번 CD+DVD에 담긴 실황은 작년에 그들이 발표한 앨범 「Yes」발매 이후 올해까지 계속 진행하고 있는 ‘Pandemonium Tour’ 의 일환으로 지난 2009년 12월 21일 런던 O2 아레나에서 개최된 공연 실황이다. (이번 지산 록 페스티벌 공연은 이 투어의 아시아 공연 일환이며, 아시아에서는 현재 한국과 대만에서만 계획이 잡혀있다.) DVD에는 실황 전체가 모두 실렸지만, 불행히도 CD에는 시간 관계상 모든 곡들을 다 담을 수 없어 「Yes」앨범의 수록곡 ‘Building a Wall’과 ‘The Way It Used to Be’, ‘All Over the World’ 와 과거 히트곡인 ‘What Have I Done to Deserve This?’, 그리고 ‘Jealousy’의 실황을 제외했다. 이번 투어의 세트리스트의 구성에서 가장 특별했던 점은 신보의 수록곡들과 과거 히트곡들의 비중을 대등하게 편성하며 때로는 오히려 옛 히트곡의 인트로 성격으로 신곡들을 활용하고 있는데, 특히 그들의 초기 앨범인 1집 「Please」(1986)와 2집「Actually」 시기의 트랙들의 다수 선곡되어 한동안 이들의 근황을 몰랐던 올드 팬들에게도 충분히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매력도 안겨준다.


잔잔한 인트로 연주로 신보의 수록곡 ‘More Than a Dream’ 을 처리하다 오버더빙되며 바로 이어지는 공연의 첫 트랙 ‘Heart’ 역시 2집의 대표적 트랙인데, 관객들도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멜로디에 후렴을 열심히 따라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매끈하고 섹시한(?) 닐의 목소리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Yes」앨범의 두 번째 싱글 히트곡이었던 ‘Did You See Me Coming?’ 이 흥겹게 분위기를 돋우면, 역시 신보에 담겼던 ‘Pandemonium’ 과 5집 「Very」(1993)의 첫 싱글이었던 ‘Can You Forgive Her?’가 메들리로 이어진다. 두 곡이 절묘하게 이어지며 곡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무는 것이 이 리믹스의 매력 포인트다. 신보의 첫 싱글이었던 ‘Love Etc.’ 은 스튜디오 버전과 별 큰 차이 없이 진행된 후,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던) 빌리지 피플의 커버 송 ‘Go West’ 가 이어진다. 원곡보다 팀파니 사운드 이펙트를 강화하고 별도의 건반 화음을 추가한 것이 특별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의외의 선곡인 그들의 데뷔 앨범의 첫 트랙 ‘Two Divided By Zero’ 과 맨 끝 트랙 ‘Why Don't We Live Together?’ 의 메들리는 1980년대 고전적 신시사이저 팝 사운드로 이들의 풋풋하면서도 신선했던 초기 시절을 환기시켜주는데, 그 뒤를 이어 바로 「Nightlife」(1999)의 히트곡 ‘New York City Boy’ 로 이어지면서도 시대의 간극을 느끼기 힘든 것은 25년간 이들이 얼마나 꾸준히 한 길을 걸어왔는지 다시금 확인하게 한다.

중반부부터는 더욱 향수어린 이들의 과거 히트곡들이 이어지는데, 그 출발점이 바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윌리 넬슨(Willie Nelson)의 버전으로 국내에서 유명한 팝 발라드를 1988년 봄 커버해 싱글로 먼저 발표했던 ‘Always on My Mind’ 라 할 수 있다. 당시 한국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어 12인치 싱글까지 라이선스화 되었던 이 곡을 듣다보면 다시금 이들이 커버 트랙에서도 자신들의 개성을 충분히 발휘했던가를 되새기게 된다. 실황 트랙들 가운데 관객의 호응이 가장 많은 곡이기도 한데, 닐과 밴드가 함께 파트를 주고받는 후반부의 모습은 영상으로 함께 보면 더욱 멋지다. 그들이 2001년 조나단 하비(Jonathan Harvey)의 뮤지컬 음악을 작업할 때 활용한 ‘Closer to Heaven’ 을 잠시 인트로로 깔고 이어지는 트랙은 3집 「Introspective」(1988)의 히트곡 ‘Left to My Own Devices’ 인데, 오랜만에 이 곡을 라이브 버전으로 듣는 맛도 색다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놀라운 선곡들인 ‘Do I Have To?’와 ‘King's Cross’ 가 이어지는데, 전자는 ‘Always on My Mind’ 싱글의 비사이드로 수록되었던 트랙이라 2집 앨범의 확장판이 나오기까지는 정규 앨범에 실리지 못했던 트랙이며, 후자는 2집 「Actually」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슬로우 트랙으로 영국의 빈민 구역을 묘사했던 가사로 댄스 팝 속에 은근히 가려진 그들의 사회적 시선까지 확인하게 했던 곡이다. 이 두 트랙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것만 해도 펫 샵 보이스의 골수팬들에게는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Pet Shop Boys - Pandemonium Extended Trailer
(전체 영상은 앨범을 구입해서 보세요....^^;;;)

후반부로 접어들자, 이들의 데뷔작 속 히트곡이었던 ‘Suburbia’는 원곡과 살짝 믹싱을 업데이트한 사운드로 연주되고, 뒤이어 공연의 남은 시간이 모자란 것이 아쉬운 듯 ‘Se a vida é / Discoteca / Domino Dancing’ 등 과거의 히트곡들은 5분 정도 되는 시간 속에 메가 믹스(Mega-Mix) 형식으로 처리해버린다. 그런데, 후반부로 넘어갔을 때 닐이 부르는 멜로디는 왠지 낯설지 않은데 그들의 것은 아니다. 바로 콜드플레이(Coldplay)의 최근 히트곡 ‘Viva La Vida’ 를 그들의 방식으로 커버한 것이다. 크리스 마틴의 목소리와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면서 훨씬 비트를 빠르게 올려버린 것이 곡에 더욱 생동감을 준다. 그리고 모두가 기다려온 이 날의 하이라이트이자 펫 샵 보이스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 ‘It's A Sin’ 이 인트로 리믹스를 거쳐 선을 보인다. 관객의 흥도 이 때 최고조를 달리고, 이 곡을 끝으로 일단 두 사람은 무대 뒤로 내려간다. 하지만 언제나 팬들의 ‘앵콜’ 함성은 이들을 다시 불러올리게 되어 있는 법. 4집「Behaviour」(1990)의 히트곡이었던 ‘Being Boring’ 가 편안하게 귀를 자극한 후, 드디어 그들의 출세작이자 미국과 영국 시장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던 데뷔 싱글 ‘West End Girls’ 가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다. 2000년대에 걸맞은 새로운 리믹스 인트로 파트를 선보이는 이 곡으로 그들은 관객과 함께 다시 한 번 하나가 된 후, ‘런던, 사랑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무대 뒤로 사라진다.


이번 펫 샵 보이스의 라이브 CD+DVD 패키지는 지난 25년간 그들을 꾸준히 지지해왔던 열성팬들과 최근 앨범으로 그들에 대해 알게 된 젊은 세대, 그리고 1980년대 음악을 추억하는 올드 팬들 모두에게 만족을 줄 수 있을 만한 선곡과 연주를 담은 실황앨범이다. 그리고 조만간 이 앨범에 담긴 트랙들 대부분을 다시 한 번 페스티벌의 열기 속에서 들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이번 한국 공연을 관람하려고 마음먹고 있는 팬들이라면 이번 라이브 앨범을 통해 충실한 ‘예습’을 마친 후 공연장에 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 날 그 역사적 현장에서 부디 함께할 수 있기를.
 

2010. 5. 글/ 김성환 (Music Journalist - 뮤직 매거진 ‘Hottracks’ 필자)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