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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제가 한국 유니버설 뮤직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해설지의 내용이 기반이 되어 부속 내용을 추가해 완성한 다음뮤직 기획 기사입니다.


Jake Bugg Special : 음악을 통해 보여주는 새로운 젊음의 반항


2011년 글래스톤버리(Glastonbury) 페스티벌 무대에서부터 파란을 일으키며 마침내 작년에 메이저 데뷔 앨범을 발표한, 올해 막 약관의 나이에 접어든 영국 청년 뮤지션 제이크 버그(Jake Bugg)는 다른 청소년들이 뮤지션의 꿈을 꾸면서 트렌디한 록 밴드를 결성하거나 아니면 현재 더 유행하는 힙합, 소울,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향해 나아간 것과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자신의 반항심을 표출할 음악으로 반 세기 전 과거의 사운드를 선택했다. 바로 1950년대의 미국식 록커빌리와 여기서 파생된 1960년대 영국식 스키플(Skipple) 사운드, 그리고 모던한 1960년대 포크 사운드를 온몸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면 왜 이 영국의 10대 소년은 자신을 대표할 사운드로 이처럼 매우 고전적인 장르를 택했을까? 그것은 그 음악이 처음 등장했던 시대로 되돌아가본다면 어쩌면 답을 쉽게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 1950년대의 록커빌리는 기존의 힐빌리(Hillbilly) 컨트리 사운드 위에 새로 막 등장한 로큰롤의 리듬감을 얹으며 기성 세대의 사운드에 식상해진 젊은 세대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무조건 밝고 목가적이기만 했던 고정적인 틀을 탈피한 것이다. 한편, 1960년대를 대표했던 포크 록 역시 (그 시초로 꼽히는 밥 딜런(Bob Dylan)이 엄청난 야유를 감수하면서 무대 위에 일렉트릭 밴드를 데리고 나타났던 사건이 상징하듯) 기존 사운드의 전통을 과감히 깨뜨린 파격 속에 탄생한 것이지 않은가. 제이크 버그는 바로 그 점에서 타 아티스트들과 차별화된 그만의 개성을 확보했고, 새로운 유행으로서 영국 대중의 환호를 받을 수 있었다.

1950-60년대식 아날로그 사운드로 2010년대를 공략하는 ‘개성 강한 10대'

제이크 버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 문제(부모의 이혼)로 인해 불우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12살 때, 그는 TV에서 우연히 돈 맥린(Don McLean: 우리에게 ‘American Pie’로 잘 알려진 1970년대 미국의 포크 록 싱어송라이터)의 노래인 ‘Vincent’가 TV애니메이션 ‘심슨(The Simpsons)’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 곡을 카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서 삼촌에게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 이후 몇 년 동안 이런 저런 노래들을 닥치는 대로 기타로 연주하며 커버해보았고, 그의 사촌의 밴드에 들어가 베이스 기타를 연주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코드를 조합해 곡을 만드는 방법을 터득한 후, 바로 학교를 그만두고 작곡과 연주에만 몰두했다. 그에게는 이미 비틀즈(The Beatles), 자니 캐쉬(Johnny Cash), 도노반(Donovan), 에벌리 브라더스(Everly Brothers),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음악들이 훌륭한 스승이었기 때문이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행운은 찾아왔다. 그가 만든 데모 녹음을 듣고서 영국의 국영방송 BBC가 그를 아직 음반 레이블과 계약조차 맺지 못한 무명의 뮤지션들을 무대 위에 올려 음반 관계자들에게 선보이는 글래스톤버리 페스티벌의 특별 스테이지에 오를 아티스트로 선발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노래들을 그 무대에서 선보였고, 그의 모습은 머큐리(Mercury) 레이블의 관계자의 눈에 바로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맺었다. 2012년 초에는 그의 첫 디지털 싱글 ‘Trouble Town’이 공개되었고, 뒤이어 공개된 ‘Country Song’이 BBC의 여러 라디오 채널에서 소개되면서 나중에 전국구 맥주 광고에서도 배경음악으로 사용되면서 점차 영국 전역에 그의 목소리를 알려갔다.

그 와중에 또 하나의 행운이 제이크에게 찾아왔다. BBC의 음악 쇼인 ‘Later... with Jools Holland’의 에피소드에 출연해 자신의 노래 세 곡을 부를 기회를 얻은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오아시스(Oasis)를 떠나 자신의 밴드 하이 플라잉 버즈(High Flying Birds)를 이끌고 있는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가 보고 나서 그를 자신의 공연의 서포트 뮤지션으로 섭외하면서 그는 보다 많은 영국인들에게 그의 존재감을 알릴 수 있었다. 결국 여름 이후 세 번째 싱글 ‘Lightning Bolt’는 영국 오피셜 차트 26위까지 올라갔고, 다섯 번째 싱글 ‘Two Fingers’가 28위에 오르던 시점인 10월에 발매된 정규 1집 [Jake Bugg]가 영국 앨범 차트 1위까지 오르면서 그는 영국 음악 팬들에게 작년 말 가장 주목받는 신인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면 영국 음악 팬들이 반한 그의 진짜 매력은 무엇 때문일까? 첫째는 그의 독특한 보이스다. 영국의 텔리그래프(Telegraph)가 그를 가리켜 ‘이스트 미들랜드의 밥 딜런(Bob Dylan)’이라 표현했을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분명히 밥 딜런의 보컬 톤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그리고 1960년대를 빛낸 포크 뮤지션 도노반(Donovan)의 보컬 톤도 그 속에 섞여있다. 게다가 음악적 분위기에서는 다분히 ‘검은 옷의 신사’로 통했던 로커 빌리의 최고 스타 자니 캐쉬(Johnny Cash)의 음악이 들려준 음울함도 살짝 머금고 있다. 컨트리-아메리카나의 경쾌한 로커빌리 리듬에 항상 뿌리를 두면서도 로큰롤, 소울, 가스펠의 애수적 감성을 머금었던 자니의 음악적 분위기가 앨범의 첫 트랙 ‘Lightning Bolt’와 세 번째 트랙 ‘Taste It’, 그리고 ‘Trouble Town’ 등의 트랙들 속에 잘 녹아있다. 철저히 고전적인 어쿠스틱 밴드의 편곡과 리듬감이 지배하면서 그 위에 아무 이펙팅 없는 일렉트릭 기타의 울림이 가세하고 살짝 시니컬하면서 정감있는 그의 목소리가 표효한다. 또한 스트링이 살짝 섞인 애수에 찬 발라드 ‘Ballad Of Mr Jones’에서도 그런 진한 향기는 이어진다.

게다가 어쿠스틱 사운드 위에 일렉트릭 기타가 덧입혀질 때 불현듯 느껴지는 비틀즈와 오아시스의 향기는 그가 신인임에도 그의 노래들이 한국 팝 음악 팬들에게도 친숙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매력을 갖고 있다. 특히 두 번째 트랙 ‘Two Fingers’의 여유로운 영국식 스키플 비트, 살짝 트위스트를 춰도 될 만한 흥겨운 비트와 리듬감을 가진 네 번째 트랙 ‘Seen It All’이 그 대표적 트랙들이다. 어쩌면 오아시스를 뛰쳐나간 노엘 갤러거가 자신의 밴드의 오프닝으로 그를 세운 이유도 어쩌면 자신의 더 젊은 시절의 모습이 그에게 느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편, 돈 맥린의 음악을 듣고 음악을 시작했다고 말했던 그의 얘기대로, 확실히 1960년대 후반의 서정적 포크 뮤지션들에게도 일정부분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차분한 트랙들도 몇 곡 존재한다. 어쿠스틱 기타의 아름다운 아르페지오와 그의 여유로운 보컬이 함께 하는 정통 어쿠스틱 포크 트랙인 ‘Country Song’, 편곡 속에서는 조금 모던한 듯 느껴지지만, 덤덤하게 노래하다가 후렴구에서 다분히 고전적인 보컬 하모니를 오버더빙으로 선사하는 ‘Broken’, 1960년대 후반 대중적 포크 싱어들의 감정 가득 담은 호소력을 자신의 목소리로 표현하는 ‘Slide’는 과연 그가 이제 10대 후반이 맞나 의심이 갈 정도로 성숙함을 표출한다.

Track By Track with Jake's Comments

제이크 버그의 데뷔 앨범에 담겨진 수록 곡들에 대해 그가 한 곡 한 곡 직접 설명하고 있는 이 비디오는 각 트랙들이 완성된 배경이 매우 다양함을 알려주고 있다. 인터뷰 속에서 그가 말한 내용들을 트랙 별로 간단히 요지를 정리해 소개해본다. 그의 뮤지션으로서의 솔직한 모습이 곡을 설명하는 모습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기에, 이제 막 그의 음악에 빠져들었다면 꼭 챙겨보시길 바란다.

1. Lightning Bolt
이 노래는 동료 이언(Ian)과 함께 있을 때 탄생한 곡입니다. 그 때 전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고, 하루 종일 스튜디오에 있다가 차 한 잔 마시고 있을 때 이언이 기타 코드를 치기 시작했고, 난 거기에 컨트리 멜로디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5분 만에 완성되었다.

2. Two Fingers
지극히 개인적인 노래다. 성장과 일탈, 일상적인 주변의 삶에 대해 느낀 것을 가능한 멋진 가사로 표현하고 싶었다.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뻔한 디테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아서 어려운 작업이었다.
 
3. Taste It
재미있는 곡이다. 곡을 만들기 위해 스튜디오에 있었지만 사실 이 노래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완성된 곡을 들으니 특별한 느낌이 있었다. 기존에 있던 'Lightning Bolt'와 'Two Fingers'를 섞은 듯한 느낌의 곡을 만들고 싶었다.
 
4. Seen It All
직접 경험한 이야기다.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되는 가사는 어린 날의 치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랑하는게 아니라 아주 담담히 이제 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는 곡
 
5. Simple As This
돌이켜보면 아주 이상한 곡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수 많은 장애를 겪게 되고, 때로는 아무런 준비 없이 돌진하는 일이 많다. 그런 장애물을 넘을 수 있는 해답을 찾고 싶었다. 결국 찾아낸 해답은 이 노래 제목처럼 단순한 것이었다.
 
6. Country Song
침대 위에서 만든 곡이다. 당시 너무 심심해서 코드 세 개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수입 한 푼 없고, 직업도 없고 학교도 그만 둔 상태에서 임대주택에 사는 내 인생이 너무 우울하고 따분했다. 그 상황에서 무언가 환상을 주는 곡을 쓰고 싶었다.
 
7. Broken
꽤 오랜 시간이 걸려 만든 곡이다. 사실 처음 떠오른 악상이 있었으나 조금씩 변하다가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완성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곡도 데모 버전으로 녹음한 곡이었는데, 그 후 다른 사운드로도 몇 번 녹음했지만 이 버전이 더 나았다. 코러스와 사운드 효과가 좋은 곡이다. 기타와 보컬 파트만 해놓고 내가 사라져서 나머지 파트는 다른 사람들이 완성했다.
 
8. Trouble Town
처음 만든 싱글이다. 사실은 이언과 함꼐 스튜디오에 있었는데, 그가 실수로 마이크를 켜놓은 채로 스튜디오를 떠났고, 그 때 녹음된 사운드가 이 곡이다. 이걸 레이블로 보냈더니 좋다고 그대로 앨범을 내자고 했고, 전 '안돼요! 다시 녹음해요'라 말했다. 그런데 레이블 측이 그 버전을 BBC 라디오1(Radio 1)에서 그 노래를 플레이했다. 어떻게 그 상태로 라디오에 나올 수 있나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웠다.
 
9. Ballad Of Mr. Jones
무척 어두운 노래로 가상의 이야기다. 스트레스 풀기에 썩 좋은 컨셉은 아니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사람들이 슬퍼하는 일, 도피하고 싶어하는 일들을 떠올리며 이 노래를 만들었다.
 
10. Slide
노래하기 무척 어려운 곡이다. 라이브에서는 한 키를 높여 노래하고, 앨범에서는 한 키를 낮춰 녹음했다. 여전히 지금도 노래하려면 매우 힘들다. 그래서 첫 테이크에 끝내지 않으면 목소리에 문제가 있을 것임을 알고 녹음했다. 밴드와 라이브로 연주를 시작했는데, 헤드폰으로 밴드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내 목소리에 맞춰 잘 따라와주었다.
 
11. Note To Self
이 노래의 현악 부분은 무언가 색다른 느낌이 들어서 연주하면서도 즐거웠다. 내 목소리를 많이 활용하고 싶었다.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사실 그런 이들은 조언을 듣지 않을 것이기에, 스스로에게 메모를 남기는 곡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12. Someplace
이 노래를 작곡했을 떄 난 겨우 15살이었다. 그래서 순수하면서 전형적 가사에 단순한 코드를 가진 곡을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레이블 측에서 앨범에 넣고 싶어하길래 동의했다.
 
13. Fire
내 아이폰으로 녹음한 곡이다. 그래서 내 이름이 프로듀서로 올라가 있다.

이제 겨우 약관의 나이에 접어들었음에도, 제이크 버그는 1950-60년대의 고전적 장르의 매력을 그저 폼으로 배우지 않고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체득해 들려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그저 과거의 장르를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자니 캐쉬가 로커빌리를 갖고 그랬던 것처럼 음악을 통한 새로운 ‘젊음의 반항’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글 : 김성환(Music Journalist - B.Goode/Paranoid/100Beat Contribu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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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보컬의 영입과 함께 더욱 세련된 날개를 펼친 스피드 파워 메틀 밴드 

 헤비메틀 씬에서 영국 런던 출신의 밴드 드래곤포스가 처음 세계 록 음악 팬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던 것은 그들의 3번째 앨범 「Inhuman Rampage」(2006)과 첫 싱글 <Through the Fire And Flame>이 공개된 이후부터였다. 1999년 기타리스트 허먼 리(Herman Li)와 역시 작곡을 담당하는 기타리스트 샘 토트만(Sam Totman)을 주축으로 결성된 후 데뷔작 「Valley of the Damned」(2003),「Sonic Firestorm」(2004)을 발매했을 당시에도 사실 이들은 유럽과 일본 메틀 매니아들의 주목을 받긴 했다. 그러나 그들이 원래 지향했던 유럽식 스피드 메틀과 파워 메틀이 접목된 악곡 위에 마치 ‘속주 그 자체를 위해 연주하는 것 같은’ 거침없는 질주감, 그리고 초대 보컬리스트
지피 쓰레트(ZP Theart)가 보여준 2000년대 이후 메틀에서는 쉽게 찾기 힘들었던 시원한 샤우팅 보컬 창법이 절정을 이룬 이 싱글이 비디오 게임 '기타 히어로 3(Guitar Hero Ⅲ: Legends of Rock)'의 고난도 미션곡으로 쓰이면서 그들은 게임 매니아들의 입소문까지 덤으로 얻으며 미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그 외에도 기타 연주와 관련된 여러 게임들에서 이 곡은 주요 컨텐츠가 되었고, 그들은 미국 시장에서 디스터브드(Disturbed)와 슬립낫(Slipknot) 등과의 투어에 동반하는 행운까지 얻었다. 또한 4집 「Ultra Beatdown」(2008)은 <Heroes of Our Time>을 그래미 최우수 헤비메틀 퍼포먼스 부문에 후보로 오르면서 그들의 음악을 ‘닌텐도 메틀(Nintendo Metal)’이라 비웃던 일부 록 팬들의 시선까지 바꿔놓았다.
 
3개 대륙을 도는 열정적인 투어를 마친 후, 이들은 2009년 연말부터 다시 새 앨범 작업을 시작했지만, 2010년 원년 보컬리스트 지피 쓰레트의 탈퇴 선언은 밴드의 팬들에게 걱정을 안겨주었다. (비록 라이브에서 스튜디오만큼의 음역을 완벽하게 소화하진 못했다는 일부의 비판도 있었지만) 밴드의 음악적 색깔에 트윈 기타만큼이나 큰 영향을 주었던 그를 대체할 보컬이 누구일까에 대한 궁금증은 결국 2011년 3월 2일, 아이언 메이든을 위한 오프닝 무대에서 새 보컬리스트 마크 허드슨(Marc Hudson)을 선보이면서 시원하게 해소되었다. 라이브에서 과거의 히트곡들을 원래 음역으로 거의 완벽히 소화하는 그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들은 팬들의 환호를 받았고, 새 앨범에 대한 기대감을 확실히 높여주었다.




Dragonforce - Cry Thunder (Official Video)


마침내 지난 4월 15일 전세계에 공개된 그들의 5집 「The Power Within」은 그들이 2년 동안 작업한 결과물답게 그들의 고유한 스피드 파워 메틀의 기조를 바탕으로 좀 더 다양한 시도로 확장된 (보너스 트랙 포함) 13곡의 음악들이 담겼다. 첫 싱글 <Cry Thunder>는 과거처럼 무작정 달려가는 속주라기보다는 유럽식 메틀 특유의 안정된 트윈 리드 기타 연주의 매력을 한껏 선보이는 그들의 새로운 대표작이다. 마크의 보컬 역시 멤버들과의 하모니를 바탕으로 고음과 저음 모두에서 다이나믹한 매력을 선보인다. <Wings of Liberty>에서 보여주는 중반부의 피아노와 드라마틱한 솔로 연주 브릿지의 여유, 오리지널 버전에서는 헬로윈과 감마레이가 부럽지 않을 트윈 기타와 보컬의 조화가 짜임새 있게 펼쳐지고 어쿠스틱 버전에서는 감미로운 멜로디의 매력이 더 돋보이는 <Seasons>, 스피드 메틀의 전형이지만 더욱 탄탄한 리듬 파트의 매력을 담아낸 <Last Man Stands>, 디지털 버전과 일부 지역 음반에만 보너스 트랙으로 수록된 허먼과 샘의 매력적인 트윈 기타 합주곡 <Avant La Tempete>까지 전체적으로 마크의 가입과 오랜 휴식은 그들에게 더욱 발전된 연주력과 악곡의 아이디어들을 제공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0년대 후반 다시 미국 시장에까지 유럽식 스피드의 매력을 전파한 드래곤포스는 이제 더욱 탄탄한 날개를 확보했다. 이번 앨범으로 그들의 날개는 더욱 높게 비상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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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를 위로한 아름답고 가시돋친 포크 팝
 
주얼(Jewel)의 이 앨범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이 음반에 대한 개인적 기억을 잠시 이야기하고자 한다. 한창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부터 조안 오스본(Joan Osbourne) 등 여성 싱어 송라이터들이 대거 등장해 히트하고 있었던 1996년 봄, 잠시 미국 보스턴에 3개월 정도 머물렀다. 그때 우연히 하숙집에서 본 VH1 채널을 통해 그녀의 존재를 알았다. 그리고 얼마 후 MTV의 한 프로그램 얼터너티브 네이션(Alternative Nation)을 통해 주얼을 또 만난다. 흑백으로 처리된 묘한 분위기의 영상 ‘Who Will Save Your Soul’을 보고난 후 한 번 놀랐다. 당시 여성 뮤지션들은 얼터너티브 성향으로, 기타 톤이 들어간 로킹한 사운드가 대세였다. 주얼은 완전히 달랐다. 홀연히 어쿠스틱 기타 한 대를 들고 포크 록을 들려주다니!! 

그러다 우연히 보스턴 대학교 근처 중고 음반점에서 그녀의 데뷔 앨범인 [Pieces of You]의 프로모션용 테이프를 단돈 2달러에 구했을 때, 또 한 번 놀랐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내면서도, 포크 특유의 날카로운 냉소와 위트가 가득 담긴 가사까지 겸한 경우는 트레이시 채프먼(Tracy Chapman)의 1집 이후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행운은 겹친다고 마침 그녀가 보스턴 투어를 왔고, 돈 없던 어학 연수생은 본공연 대신 한 시내 서점에서 이루어진 어쿠스틱 쇼케이스로 그녀의 음악을 감상하는 데 만족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올 때 그녀의 CD는 당연히 내 가방에 담겨 있었다. 그녀가 막 40위로 데뷔한 싱글 차트가 실린 빌보드 매거진과 함께. 그 후부터 그녀는 연이은 히트곡을 터뜨렸고, 이 앨범을 2년 만에 다이아몬드 레코드로 만들어버렸을 때, 난 마치 내가 키운 뮤지션이 성공하는 듯한 기쁨을 맛보았다. 

장황하게 그녀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말한 이유는 당시 대중음악 시장에 주얼이 등장한 과정이 실제로도 그만큼 드라마틱했음을 언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995년 벽두에 메이저 레이블을 통해 처음 음반 시장에 데뷔했지만, 그녀는 1년 이상 정말 ‘인디스러운’ 행보로 팬들과 만났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그녀를 알게 된 미국인들이 그 음악을 챙겨 듣다가 다들 푹 빠져버려 점차 확산되기 시작했고, 결국 진정한 ‘대중의 힘’으로 스타덤에 올랐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다른 여성 뮤지션들이 거친 언어까지 써가며 남성 본위의 록 신을 자신만의 능력으로 돌파해갈 때, 그녀는 다시 존 바에즈(Joan Baez)와 조니 미첼(Joni Mitchell) 시대의 포크 정서를 가져왔다. 부활한 포크 안에서, 주얼은 현실적인 인간관계와 소소한 일상, 놓치기 쉬운 인생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섬세하게 노래했다. 어쩌면 그녀의 20년 인생이 앨범 속에 구현되어 대중과 평단 모두의 찬사를 이끈 것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주얼은 알래스카의 대 자연에서 성장해왔다. 부모와 함께 기타를 붙들고 무대 위에 서서 노래하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천직으로 알았고, 청소년기에 미국 전역을 아버지와 함께 떠돌면서 시인의 꿈을 키우다가 작곡에 눈을 뜬 캐릭터이다. 

 
아마도 국내에서는 영화 ‘배트맨 앤 로빈’의 삽입곡 ‘Foolish Games’을 듣고 이 앨범을 구매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사실 방송에서 나온 사운드트랙 버전은 스트링이 진하게 가미된 새 버전이었다. 그래서 조금 템포가 느리며 건반이 더 중심에 선 앨범 버전이 개인적으로는 더 맘에 든다. 그러나 이 앨범의 핵심을 들으려면 ‘Foolish Games’와 빌보드 2위 히트곡 ‘You Were Meant for Me’로 만족해선 안 된다. 

사랑의 포로가 된 여성의 마음을 이보다 더 시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울 만큼 잘 묘사한 ‘Near You Always’, 출근도 하지 말고 함께 침대에 있자는 강력한 호소(?)를 너무도 감미롭게 보내는 ‘Morning Song’ 등 앨범에는 달콤하고 매력적인 포크곡이 실려 있다. 한편 식물인간 소년을 바라보는 소녀의 시선이 그녀의 드라마틱한 보컬과 함께 소설처럼 펼쳐지는 ‘Adrian’, 청소년기에 쌓였을 아버지에 대한 애증과 반항이 묘사된 ‘Daddy’, 우리가 싫어하는 모든 것들이 결국 우리 자신의 일부라고 풍자적으로 역설하는 타이틀 트랙 ‘Pieces of You’ 등 주옥 같은 노래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주얼은 1990년대에도 데뷔 앨범을 통해 포크 본연의 자세로 오직 어쿠스틱 악기로만 전곡을 표현해낸 독보적인 음악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2집 [Spirit](1998)부터 상업적 굴곡을 거치다가 팝 성향의 앨범 5집 [Goodbye Alice in Wonderland](2005) 이후 음악의 방향을 완전히 바꿨다. 결혼 후 내시빌에 정착해 발표한 이후 앨범들에선 거의 컨트리 분위기로 변화해 활동 중이다. 그 이후의 앨범들도 다 좋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음악이 가장 빛났던 시절은 포크와 팝의 아름다움이 순수하게 담겼던 이 음반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그녀는 사라 맥라클란(Sarah McLachlan)과 함께 분노가 아닌 서정으로도 ‘얼터너티브의 시대’에 또 다른 ‘얼터너티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1990년대를 회고할 때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아티스트다. 



P.S. 최근 그녀는 LIfe Time 채널용 TV영화에서 자니 캐쉬의 아내로 더 유명했던 준 카터 캐쉬 역할을 맡아 준의 가족사와 가족 그룹 The Carter Family의 활동, 그리고 자니와 준의 관계 등을 연기했다. 조만간 TV방영 및 특별 시사회 예정. 한국에선 언제쯤 볼 수 있을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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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폴즈와 함께 나눈 성숙한 호흡
 
1990년대 릴리스 페어(Lilith Fair)라는 축제로 대표되었던 여성 싱어 송라이터들의 맹활약은 2000년대, 그리고 2010년대에 와서는 비록 과거와 같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래도 2000년대 후반 등장한 사라 바렐리스(Sara Bareilles)의 성공은 콜비 커레이(Colbie Caillat)과 함께 2000년대 후반 미국 포크 록 여성 싱어송라이터 신이 거둔 가장 큰 대중적, 그리고 음악적 성과였다. 그녀는 캐롤 킹(Carole King)을 시작으로 이미지가 형성되어온 피아노 중심의 여성 싱어 송라이터의 계보를 잇는 존재다. 그녀의 음악 스타일 역시 마치 토리 에이모스(Tori Amos)의 음악 속에 담긴 단아한 부분, 노라 존스(Norah Jones)의 음악 속에서의 고풍스러움, 그리고 피오나 애플(Fiona Apple)이나 바네사 칼튼(Vanessa Carlton)의 음악 속의 건반이 만드는 리듬 그루브가 결합된 인상을 준다.

1979년 캘리포니아 유레카(Eureka) 태생인 사라 바렐리스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교 합창단 리미티드 에디션(Limited Edition)에서 재능을 보였다. 또한 UCLA대학에 재학하던 시절에는 아카펠라 그룹 어웨이큰 아 카펠라(Awaken A Capella)를 결성해 교내 대학생 음악 경연대회에서 두 번이나 우승을 이끌어냈다. 대학 졸업 후 사라는 로스 앤젤레스의 바나 클럽에서 연주를 했고, 그 기간 동안 완성한 두 개의 데모 테이프를 바탕으로 2004년 인디 레이블에서 첫 앨범 [Careful Confession]을 발표했다. 앨범에서 영화 OST였던 'Undertow'와 그녀의 대표 싱글 'Gravity'가 인디 신에서 좋은 반응을 얻자, 가능성을 본 에픽(Epic) 레이블이 2005년 계약을 맺고 그간에 만든 곡들을 더욱 잘 다듬고 새 곡을 작업할 시간을 주었다. 그렇게 완성된 앨범이 바로 메이저 데뷔작 [Little Voice](2007)였다.

메이저 데뷔 앨범은 꽤 성공했다. 싱글 ‘Love Song’이 세계 22개국 음원 차트와 싱글 차트에서 1위 기록을 남겼다. 이어 후속 싱글 ‘Bottle It Up’의 반응 또한 뜨거워 결과적으로 미국 시장에서만 1백만 장 넘게 팔린 앨범이 되었다. 그 후 3년 뒤에 발표한 2집 [Kaleidoscope Heart](2010)는 앨범 자체로는 전작과 같은 많은 판매고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데뷔와 함께 앨범 차트 1위에 등극했고 ‘King of Anything’, ‘Uncharted’, ‘Gonna Get Over You’ 등의 싱글이 호응을 얻으며 준수한 성공을 이어갔다. 해외에서도 데뷔 때보다 더 원숙해진 그녀의 음악성이 잘 표현된 음반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금 소개하는 5곡짜리 EP 신보 [Once Upon Another Time]의 탄생은 지난 해의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가 작년 미국 NBC TV의 아카펠라 경연대회 프로그램 ‘Sing-Off’ 시즌 3의 심사위원으로 선발되었던 것과 관계가 있다.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다시 만난 그녀의 데뷔 시절 우상, 선배 싱어송라이터 벤 폴즈(Ben Folds)와 함께 신곡을 작업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었다. 두 사람 모두 건반 연주를 중시한다는 공통점이 있고, 포크 록과 루츠를 음악적 모티브로 로큰롤에 담는 지향점도 비슷하다. 이미 그녀는 초창기에 벤 폴즈의 투어에서 오프닝을 맡았던 경력이 있기에, 두 사람은 빠르게 의기투합하여 2011년 9월부터 내시빌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마치 라이브 레코딩처럼 작업을 진행했다. 비록 그들에게 주어진 건 낡은 4트랙 레코더와 제한된 장비였지만, 두 사람은 그것을 한계가 아닌 자연스러운 음악의 일부로 승화했다.

거의 아카펠라에 가까운 방식으로 만들어진 첫 트랙 ‘Once Upon Another Time’은 철저히 중반까지 그녀의 목소리가 곡을 지배하며 후반부의 코러스가 합세하는 파트에서는 가스펠 같은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녀가 자신의 음악을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 멋진 시도다. 두 번째 곡이자 올해 미국의 레코드 스토어 데이를 맞아 7인치 45회전 싱글로도 특별히 발매된 ‘Stay’에서는 스트링 세션을 통해 고풍스런 빈티지 스탠다드 팝의 감성을 끌어낸다.
역시 스트링의 지원 속에서 그간의 그녀의 곡들보다 조금 어둡게 흘러가는 ‘Lie to Me’는 이번 작업을 통해 그녀의 내면에 있는 ‘펑크 록의 태도’를 끄집어냈다는 그녀의 말처럼 비트와 보컬의 오묘한 결합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이전부터 보이긴 했지만 그녀의 음악 속에 존재하는 클래식 소울의 감성이 벤 폴즈의 편곡 스타일과 만나 더욱 강화된 ‘Sweet As Soul’, 오직 건반과 그녀의 섬세한 목소리의 매력으로 감상적으로 차분하게 진행하는 발라드 ‘Bright Lights And Cityscapes’은 음반의 끝을 아름답게 마무리한다.


전체적으로 앨범을 듣고 난 느낌은 지난 두 장의 앨범에서 조금 ‘톰보이’ 같던 그녀가 앨범 커버의 모습처럼 ‘성숙한 여성’의 섬세함을 더 크게 뿜어내는 음악으로 변모했다는 것이다. 이전 앨범보다 비록 덜 대중적이란 느낌은 주겠지만, 그녀의 음악이 계속 성숙해가고 있다는 점에서는 매우 만족스러운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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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한 사운드의 위력
 
홍일점 보컬 요시오카 키요에(吉岡 聖恵), 기타를 담당하는 리더 미즈노 요시키(水野 良樹), 그리고 기타와 하모니카를 담당하는 야마시타 호타카(山下 穂尊)로 구성된 포크 팝/록 트리오 이키모노가카리(いきものがかり)는 2012년 현재 일본인들이 남녀노소 구분 없이 가장 친근하게 즐겨 들는 대중적인 밴드 음악의 대표주자라고 불러도 무방할 위치에 올라섰다. 2010년도 가을 그들이 발표한 첫 베스트 앨범 [いきものがかり~メンバ-ズBESTセレクション~](멤버스 베스트 셀렉션)은 발매된 지 2년간 연속으로 오리콘 앨범 연간 차트에서 10위 안에 드는 진기록을 세우며 스테디 셀러가 되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것은 증명될 수 있다. 2010년에만 오리콘 집계기준 90만장 이상, 2011년에는 약 40만장을 팔았으니, 한 해 백만 장 넘는 앨범이 1장 이상 나오기 힘든 현재 일본 음반업계의 상황에선 엄청난 성과다. 게다가 연말이면 개최되는 일본의 주요 가요 시상식과 쇼 무대에서 몇 년째(뮤직 스테이션 슈퍼 라이브 6년, 홍백가합전 4년) 연속으로 출연하고, 현재까지 발표한 모든 정규 앨범을 최소 플래티넘(25만장) 이상 판매했다는 것에서도 적어도 이들의 대중적 인기가 일본 내에서 어떤지 확인할 수 있다.

 

카나가와현이 고향으로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한 반으로 만나 중-고등학교를 거쳐 친구로 맺어진 요시키와 호카타는 함께 교실 금붕어에 먹이를 주는 ‘생물관리부’ 당번을 맡은 것에서 착안해 그룹의 이름 ‘이키모노가카리’를 결정했고, 고교 시절부터 소위 ‘전철역 앞 거리 공연’을 진행하다 많은 경쟁 밴드들과 차별을 위해 동급생의 여동생 키요에를 전담 보컬로 영입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2003년부터 거리에서 라이브 하우스로 무대를 옮긴 이들은 3장의 인디즈 앨범을 통해 존재감을 알려나갔고, 마침내 2006년 메이저 데뷔 싱글 ‘Sakura’(벛꽃)로 처음 전국적 히트를 거뒀다. 그 후 7번째 싱글 ‘茜色の約束’(자주빛 약속)부터 시작해 포크 록 발라드와 경쾌한 리듬과 깨끗한 기타 스트로크를 강조하는 업비트 로큰롤이라는 그룹 음악의 양면성을 대표했던 더블A 싱글 ‘Yell/じょいふる(Yell/Joyful)’(2009) 등 현재까지 (비록 1위 싱글은 없었어도) 16연속 Top 10 싱글 히트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NHK의 아침 드라마로 전국민적 인기를 얻었던 [ゲゲゲの女房](게게게의 아내)의 오프닝 주제가 ‘ありがとう’(고마워)가 거둔 대중적 반응은 2011년 내내 이 곡을 일본인들의 노래방 애창곡 중 하나(2011년 연간 오리콘 가라오케 차트 6위)로 만들었다.

 

 

지난 2월 29일 현지에서 발매되자마자 1위를 차지하며 2주 만에 27만장을 넘긴 그들의 정규 5집인 이 앨범 역시 1970년대식 일본 포크/뉴 뮤직(서양 1980년대의 장르 용어와는 다른 개념. 음악적으로 포크 록에 더 가깝다)의 전통에서 영향 받은 선 굵은 멜로디에 다채로운 악기로 세련되게 편곡하는 그들의 사운드 공식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다만 좀 더 대중성이 강해졌다 할까? 특히 스트링 섹션을 배경에 깔고, 미디엄 템포의 드러밍 위에 키요에의 힘과 감성을 둘 다 놓치지 않는 보컬의 울림을 통해 가사의 감흥을 전달하는 그들의 발라드 트랙에서의 과거 전략들이 더 강조되었다. ‘ありがとう’의 감흥을 이어가는 앨범의 첫 곡 ‘步いていこう’(걸어서 가자)가 대표적이며, 야마시타의 하모니카 연주가 낭만적 향수를 전하는 ‘地球’(지구), 사랑스러운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어쿠스틱 팝 트랙 ‘おやすみ’(잘 자)도 키요에 보컬의 장점을 잘 살려준다. 한편, ‘じょいふる’의 경쾌함으로 그들을 좋아하게 된 이들에게는 일본 록 특유의 드라이빙한 질주감이 어쿠스틱 감성으로도 잘 구현된 ‘笑ってたいんだ’(웃고 있고 싶어), 항상 열정적인 이들의 라이브 무대에 가장 잘 어울릴 화끈한 브라스 로큰롤 트랙 ‘Kiss Kiss Bang Bang’ 등이 흥을 돋워줄 것이다.

 

앨범 주요트랙 들어보기

 

워낙 멜로디 중심이고 다양한 악기가 동원되어도 깔끔한 편곡으로 다듬어지는 이키모노가카리의 음악이기에, 진지한 실험적 구성이나 테크니컬한 연주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지나치게 ‘대중지향’이라는 시선을 받을 소지는 있다. 하지만 이들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착착 귀에 감기는 (주로 요시키가 담당하는) 감성적 멜로디 제조 능력, 그리고 뜨거운 사랑의 욕망보다 ‘함께 있음’이 주는 따뜻함과 관계에서 주는 위안에 의미를 두는 노랫말에 있다. 바로 그 부분이 고독에 지치고 현실에 힘겨워하는 현재 일본인들의 마음을 보편적으로 다독여 오늘날의 인기를 이끌어냈다 생각하기에, 언어의 벽을 넘어 (가사와 함께) 그들의 따뜻한 음악을 받아들이면 기존 J-Pop 마니아를 넘어 보통 음악 팬들도 충분히 그 매력에 공감할 수 있는 음반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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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의 기타는 녹슬지 않았네
 
  1998년 2대 보컬 새미 해거마저 그룹을 떠났고, 이후 익스트림의 보컬리스트 게리 세론을 영입해 발표했던 [Van Halen Ⅲ]는 우려가 쏟아지던 작품이었다. 얼터너티브 록이 융성한 1990년대 중반까지도 멀쩡히 잘 나가던 밴 헤일런의 명성은 그렇게 흔들렸다. 2003-2004년 새미와 한시적인 재결합 투어가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에디 밴 헤일런-알렉스 밴 헤일런 형제와 새미-마이클 앤소니 사이의 갈등의 벽은 더 쌓여버렸고, 이 투어를 끝으로 두 사람은 결국 밴드에 돌아가지 않았다 (에디의 여전한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건강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던 시점이긴 했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지난 2007년 밴드의 원년 보컬 데이비드 리 로스가 돌아왔고, 에디의 아들 울프강이 밴드의 베이스 자리를 차지할 만큼 성장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2000년대 말에 가진 그들의 투어는 흥행 면에서는 짭짤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데이비드의 복귀는 밴 헤일런의 골수 팬들에게 절반의 ‘환호’이자 절반의 ‘안도’라고 보면좋을 것이다. ‘안도’라는 말을 쓴 것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사실 전세계의 밴 헤일런을 좋아하는 음악 팬들에게 ‘밴 헤일런의 보컬은 데이비드와 새미 중 과연 누가 최고인가?’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연말 이 곳에 기고하는 필자들의 송년 모임에서도 이 주제는 언급되었다. 개인적으로 난 새미에 한 표를 던졌다). 이 논쟁은 어느 한 쪽의 승리로는 결코 끝날 수 없지만, 이처럼 데이비드와 그들의 [1984] 앨범 때까지의 음악을 선호하는 사람들, 그리고 [5150](1986) 이후 새미의 보컬과 그 시절의 음악을 선호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새 앨범이 조만간 공개될 것을 기대하며 데이비드의 팬들은 과거 ‘Ain’t Talking ‘Bout Love’ ‘Panama’ ‘Jump’와 같은 초기 사운드의 재현을 기대했을 것이고, 새미의 팬들은 비록 이제 더 이상 라이브에서 ‘Dreams’ ‘Runaround’ ‘Top of the World’와 같은 곡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밴드 사운드의 명맥을 제대로 이어간다는 차원에서 기대감 속에 신작을 기다렸을 것이다.

 

혹시 뮤직비디오로 선공개된 첫 곡 ‘Tattoo’의 (분명 그게 밴 헤일런 기존 사운드의 일부임이 분명한데도) 약간 미적지근한 멜로디에 실망했던 분들이 있다면, 실질적으로 앨범의 시작은 그 다음 트랙부터임을 말해주고 싶다. 데뷔 이전인 1976년 데모를 위해 작곡했던 트랙인 ‘She's The Woman’부터 밴드는 정말 신나게, 제대로 헤비하게 ‘질주하고’ 있으니까. 다시 말해서 밴드가 14년 만에 내놓는 새 스튜디오 앨범의 모습은 다분히 과거의 밴 헤일런, 다시 말해 데이비드가 원래 재적하던 시절의 분위기를 잘 재현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1990년대 후반 밴드가 짓눌렸던 얼터너티브 록 시대에 대한 부담감은 깨끗이 사라지고, 클래식 하드 록/메탈의 공식에 충실한 앨범이다.

 

에디의 기타 역시 특별히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의 주특기인 속주와 경쾌한 화려한 양손 태핑과 멋진 리프를 쏟아내며 테크닉이 녹슬지 않았음을 과시한다. 데이비드의 보컬도 재결합 공연 당시 유튜브 영상에서 들었던 것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세월의 간극을 느끼기 힘든 깔끔함이 있다. 스피디한 태핑 인트로로 시작해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China Town’, 과거 시절의 ‘Panama’를 살짝 머리 속에 지나가게 만드는 ‘Blood And Fire’, 진한 아밍 인트로와 공격적 스트로크로 시종일관 밀어붙이는 ‘Bullethead’, 1990년대식 밴 헤일런 사운드를 더 속주 중심으로 텐션을 올린 ‘Honeybabysweetiedoll’, 에디의 양손 태핑과 화려한 연주력이 빛나는 ‘Outta Space’까지 밴드의 초창기 분위기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며 밴드의 30년 관록을 충실히 전한다.

 

앨범 대표곡 듣기

 

정말 이처럼 매력적 기타 리프와 애드리브, 클래식 하드 록 선율이 명쾌하게 주도하는 음반을 주류에서 만난 것이 얼마 만일까. 현재의 트렌드에 발맞추지 않고 그들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더 어필하는 차원으로 완성했기에, 그들의 컴백을 기다린 팬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작품이다. 발매일이 한 달이 다 되어가는데 이 앨범을 신보 리뷰에 소개하는 이유는 바로 그 반가움 때문이라 봐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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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리뷰를 쓰기 전에 이미 그녀의 3-4-5집을 동시에 재발매하기로 한 소니뮤직의 계획덕분에 그 해설지 3장을 전부 내가 쓰게 되었다. 이 리뷰는 4집의 해설지와 아주 약간 겹치긴 하나, 앨범의 곡 설명 파트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많이 다르다.

 

 

트렌드와 소울을 업그레이드한 디바의 마지막 걸작
 
‘휘트니 휴스턴’이라는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198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세계 팝 음악 신에서 소위 ‘디바(Diva)’, 여성 팝-알앤비 보컬의 상징과도 같다. 물론 ‘디바’의 역사는 가스펠과 재즈 시대부터 시작해서 꾸준히 각 시대의 명인(名人)들을 낳았다. 하지만 그 과거의 역사를 모두 집약하면서 동시에 그 이후의 트렌드의 표본으로까지 자신의 위상을 끌어올린 여성 보컬리스트는 휘트니 휴스턴을 전후로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그녀는 단지 과거의 다른 여성 팝 디바들의 위상을 계승한 성과를 뛰어 넘는다. 1990년대-2000년대 등장한 팝-알앤비 후예들의 대부분은 그녀에게서 자신의 음악 활동의 영감을 얻었음을 자신 있게 고백할 만큼, 그녀의 음악적 스타일이 팝의 역사에 미친 영향력은 크다.

 

비록 그녀의 개인사는 결혼 이후 불행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지난 2010년 내한공연으로 한국을 다녀가며 보여주었던, 불행했던 과거를 추스르고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를 보면서 팬들은 비록 그녀의 보컬은 과거와 같지 않더라도 근작 이후의 활발한 활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 시간으로 지난 2월 11일, 그래미 전야제 갈라 파티를 위해 묵었던 LA 베벌리 힐튼 호텔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그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그 기대는 결국 무너졌다. 결국 우리에게는 그녀와 우리의 추억을 되새기며 그녀가 남긴 음악들을 다시 듣는 일만 남게 되었다.

 

음악을 오래 들은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그녀의 기본 이력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것이기에 이 글에서는 굳이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잘 모르시는 분들은 다음 뮤직 Music Bar에서 그녀에 대한 ‘레전드 프로파일’을 검색해 읽어보시길. 매우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다만 그녀는 사운드트랙 세 장과 정규 앨범 여섯 장으로 자신의 노래를 사람들에게 전했다. 그 가운데 초기 두 장의 앨범이 1980년대 분위기에 맞게 좀 더 백인지향적 팝에 가까웠다면, 1990년대에는 3집 [I’m Your Baby Tonight](1990)부터 트렌디 알앤비적인 지향을 서서히 늘린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3집이 당대에 최고 주가를 올리던 베이비페이스(Babyface)와 엘에이 리드(L.A.Reid) 콤비를 초빙해 트렌디한 알앤비와 1980년대식 분위기를 반반 섞었다면, 지금 소개하는 4집 [My Love is Your Love]은 과거의 고음 중심의 창법을 벗어나 트렌디 알앤비에도 걸맞은 다양한 보컬을 선보인 앨범이다. 

 

 

물론 이 앨범은 한국에서는 머라이어 캐리와의 듀엣으로 화제가 되었던 애니메이션 [이집트의 왕자(The Prince of Egypt)]의 주제가 ‘When You Believe’가 수록된 정도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지만, 페이스 에반스(Faith Evans), 켈리 프라이스와 함께한 첫 싱글 ‘Heartbreak Hotel’처럼 뻗어나가는 보컬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녀가 얼마나 소울풀한 감정을 잘 살릴 수 있나를 증명한 수작이었다. 로드니 저킨스(Rodney Jerkins)의 당시 주특기였던 톡톡 튀는 리듬 프로듀싱이 빛나는 미디움 댄스 트랙 ‘It’s Not Right But It’s Okay’와 ‘If I Told You That’에서도 트렌드에 발을 맞추며 자신의 장점도 유지하는 지혜로움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타이틀 트랙 ‘My Love Is Your Love’는 그녀와 와이클레프 장의 역량이 멋진 화학적 융합을 보였던 작품으로, 그녀가 진짜 ‘소울’의 의미를 터득했음을 깊은 음색의 맛으로 느낄 수 있다. 물론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와 여류 작사가 다이언 워렌(Dianne Warren)의 발라드 ‘I Learned From The Best’, 베이비페이스의 슬로우 알앤비 발라드 ‘You’ll Never Stand Alone’이라는 백인 팬들을 위한 안전망도 잘 깔아놓았다.

 

앨범 주요 트랙 듣기

  

이 앨범에서 그녀는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디바의 노련함을 보였고, 2000년 그래미 6개 부문의 후보에 올라 최우수 알앤비 여성 보컬상을 거머쥐며 음악적 인정도 받았다. 그래서, 2000년대에 심각해진 개인적 문제들이 그녀를 망가뜨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후 그녀의 좋은 앨범들을 더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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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다음뮤직-100Beat용 원고로 작성한 글입니다. 리뷰 제목을 다음뮤직(백비트)측에서 고쳐서 여기에는 제가 원래 보낸 원고의 제목을 달았습니다.


2000년대를 관통한 J-Pop 여성 팝 보컬의 안전지향적 신작
 
일본의 대중음악 역사에서 알앤비와 힙합 사운드가 주류 장르로 확실히 부각되는 데에는 오히려 한국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무리 구보타 토시노부(久保田 利伸)와 같은 스타가 1990년대부터 미국 시장을 노렸던 적이 있었다 해도 막상 1990년대의 주류 J-Pop 속에서는 미국식 뉴 잭 스윙이나 트렌디 어번 사운드의 리듬감이나 비트는 별로 느낄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하지만 1999년 우타다 히카루(宇多田 ヒカル)의 [First Love]가 대히트를 기록한 후, 일본의 주류 프로듀서들은 서구 스타일과 완전히 근접하거나 아니면 팝적인 분위기에서 알앤비 스타일의 느낌을 낼 수 있는 보컬리스트들을 찾았다. 특히 주류 제이팝 여성 보컬리스트들은 그 흐름에 적극 동참했다. 미샤(Misia), 소웰루(Sowelu)로 출발해 이토 유나(伊藤 由奈), 주주(Juju), 아오야마 테루마(靑山 テルマ), 아주(Azu)에 이르기까지 팝적인 멜로디 위에 알앤비 창법을 선사하는 여자 보컬리스트는 현재까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그 가운데 우타다 만큼의 아이콘 대접을 받지는 못하지만 작사 및 작곡에 참여하는 싱어 송라이터로 꾸준히 한 길을 가며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는 여성 보컬리스트가 바로 쿠라키 마이(倉木 麻衣)다.

비잉(Being)계의 ‘타이업 전략’에 걸맞게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의 주제곡으로 그녀의 곡이 다수 사용되어 애니메이션 국내 마니아들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는 쿠라키 마이는 1982년 치바 태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휘트니 휴스턴과 마이클 잭슨의 영향을 받아 가수 데뷔를 결심했다. 고교 시절 자신의 데모 테이프를 기자 스튜디오(Giza Studio)에 보내 계약을 따 내는 데 성공했고, 일본 데뷔 이전에 미국 시장에서 싱글 ‘Baby I Like’을 먼저 발표했다. 그 후 일본 내에서는 1999년 싱글 ‘Love, Day After Tomorrow’로 정식 데뷔, 다음해 데뷔작 [Delicious Way](2000)가 발매 첫 주에 2백 20만 장을 팔아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다. 그 후에도 4장의 앨범을 모두 1위에 올려놓았고, 현재까지 발표한 총 10장의 앨범 중 8장 이상이 골드 레코드(10만장) 이상을 기록했다. 싱글 ‘Stay By My Side’(2000), ‘Winter Bells’(2002)가 각각 오리콘 차트 주간 1위에 올랐으며, 지금까지 발표한 모든 싱글이 10위 내에서 데뷔할 만큼 일본 음악 팬들의 지지도는 굳건하다.


사실 그녀의 음악은 특별히 강한 흑인음악적 느낌을 주진 않는다. 최근 싱글은 더욱 대중적으로 흐르고 있지만, 우타다 히카루와는 다르게 가늘지만 파워가 실린 보컬은 충분히 강한 흡입력을 갖고 있다. 이번 새 앨범에서도 그 능력은 주요 트랙들에서 여전히 잘 발휘되고 있다.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의 가장 최근 엔딩 테마로 쓰인 미디움 템포의 팝 발라드 ‘Your Best Friend’, 1980년대 미국식 크로스오버 팝 발라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애상적 발라드 ‘もう一度(한 번 더)’, 건반 중심의 발라드 분위기로 시작해 록/댄스 비트로 전환되는 드라마틱한 트랙 ‘1000万回のキス (1000만 번의 키스)’ 등 이미 싱글로 작년에 공개되었던 발라드 트랙들은 확실히 앨범의 중심을 잡는다. 역시 싱글 비사이드 곡이었던 가벼운 신스 팝 ‘Step By Step’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중국인 보컬 알렉스 루(Alex Lu)와의 듀엣곡이자 중-일 우호 40주년 기념 영화였던 ‘내일에 걸쳐 놓는 사랑’의 주제곡인 ‘Brave Your Heart’도 국내 취향에 맞는 감미로운 발라드다.

 

'Your Best Friend' 뮤직비디오 보기

'Brave Your Heart' 뮤직비디오 보기


전체적으로는 대중적인 발라드에 집중하고 있기에 일반 음악 팬들에겐 듣기 편안하지만, 최근의 흐름에 발맞춰 음원으로 잘 팔릴 안전한 팝 지향으로 수록곡들을 채운 것은 초창기 히트곡들이 보여준 알앤비/어번 비트에서 흐르던 그녀의 보컬 매력을 평범하게 만드는 것 같아 조금 아쉽다. 이제 일본 대중음악계도 ‘팔리는 음악’을 만들어야 주류에서 살아남는 시대에 도달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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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J-Pop이 제시했던 아이돌 댄스 팝의 표본
 
비록 J-Pop의 역사 속에서 아이돌 팝은 1960년대 이후부터 항상 한 자리를 차지했지만, 그 흐름이 가장 주류에서 가장 크게 부각되고 음악적으로도 괜찮은 작품들을 내놓았던 시기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벽두까지가 아닐까 싶다. 이 시기의 J-Pop 아이돌 보컬들은 과거의 단순한 엔카 풍을 벗지 못한 멜로디와 소녀풍의 발랄한 ‘떼창’에서 과감히 벗어나 전문 프로듀서들이 제작한 유로 하우스나 일렉트로닉 팝을 취했다. 또는 1990년대 뉴 잭 스윙 성향을 살짝 가미한 음악을 선보이면서, 주류 팝에 근접한 사운드로 새 옷을 입었다. 대표적으로는 평범한 아이돌 걸 그룹 슈퍼 몽키스가 에이벡스(AVEX)로 이적한 후, 아무로 나미에라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솔로 아이돌 보컬리스트와 맥스(MAX)라는 4인조 팀으로 탈바꿈한 사례가 있다. 아울러 진짜 아이돌 걸 그룹 포맷으로 10대 중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가장 많은 포텐셜을 터뜨리며 자신들의 전성기를 일궜던 4명의 소녀들이 존재했다. 그들의 이름이 바로 스피드(Speed)였다.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을 통해 처음 6인조로 기획된 그룹이지만, 2년 간의 활동 끝에 최종 멤버로 선택된 멤버들은 다음과 같다. 메인 보컬인 시마부로코 히로코(島袋 寛子, Hiro)와 이마이 에리코(今井 絵理子, Elly), 서브 보컬 우에하라 다카코(上原 多香子, Taka), 보컬과 그룹의 안무를 기획하는 아라가키 히토에(新垣 仁絵, Hitoe). 1996년 1월 그룹 이름을 스피드로 정한 후, 그 해 8월 첫 싱글 ‘Body & Soul’로 일본 음악계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히로코와 에리코의 가창력은 아이돌계의 보편적인 수준을 넘어선 힘이 있었다. 아울러 가창력과 함께 그들에게는 귀엽고 친근한 비주얼이 있었다. 남녀 구분 없이 일본 10대, 20대의 절대적 인기를 얻게 되면서 두 번째 싱글 ‘Steady’(1996)은 127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첫 밀리언 셀러로 기록됐다. 그 여세를 몰아 2000년까지 정규 앨범 3장([Starting Over](1997), [RISE](1998), [Carry On My Way](1999))을 모두 멀티 밀리언셀러로 만들었다.

그러나 1999년부터 멤버들의 솔로 활동이 시작되면서 각자의 커리어를 위해 결국 2000년 공식 해체를 선언하게 된다. 이후 그룹의 네 멤버들은 모두 솔로 앨범을 발표했으며, 히로는 솔로 활동과 재즈 프로젝트 코코도르(Coco d'Or) 활동을 병행한 바 있다. 이들은 2000년대 중반까지 공식적으로는 해체 상태였음에도 고베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2001년 자선 싱글과 단 한 번의 야외 라이브 공연을 통해 24시간 재결성을 이루기도 했고, 2003년에는 ‘Save The Children’ 기금 마련을 위해 1년간 재결합 활동을 하며 4집 [Bridge](2003)를 발표했다. 그리고 2008년 완전 재결합을 이룬다. 지금까지 앨범 소식은 없지만 최근작 ‘リトルダンサー(리틀 댄서)’까지 여섯 장의 싱글을 내놓으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사실 수록곡 리스트를 보면 분명 이 앨범이 베스트 앨범인 것은 맞지만, 이것은 컴필레이션이 아닌, 그들의 과거 히트곡들을 2009년 20대 중후반의 목소리로 진짜 ‘리메이크’한 앨범이다. 과거의 스피드 팬들 중 일부는 과거 정규 앨범 속 10대 중반의 그녀들의 목소리가 그리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과거의 노래들을 성숙해진 목소리로 만나는 것은 즐거운 감회를 안긴다. 첫 번째 넘버 원 싱글 ‘Go! Go! Heaven’(1997), 1990년대 일본에서 겨울 노래의 대명사로 통했던 ‘White Love’(1997), 지금도 졸업 시즌을 대표하는 일본 가요로 리스트 상위에 올라가는 ‘My Graduation’(1998)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 편곡에서 크게 변화가 별로 없는 것이 특징인데, 그것이 거꾸로 원곡의 가치를 증명한다. 프로듀서 미즈시마 야스타카(水島康貴)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록 댄스부터 펑키한 댄스 팝, 서정적 팝 발라드들은 이미 10년 전의 편곡과 프로듀싱이 얼마나 훌륭했는지를 확인하는 기회가 된다.

물론 스맙(SMAP)이 20년을 훨씬 넘게 뛰고 있고, 해체기를 거쳤어도 스피드가 무리없이 15년을 넘겨 활동중인 것은 그 무대가 국내 시장 분위기와는 다른 J-Pop 신이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아이돌이라 해도, 그리고 그들이 아무리 방송과 예능에 초점을 두고 활동했어도, 무엇보다도 우수한 ‘노래’ 자체에 우선했기에 가능한 생존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일본까지 건너가 히트곡도 내놓는 우리 아이돌 걸그룹들 중엔 과연 어떤 팀이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앨범을 다시 들으며 갖는 내 궁금증이다.



Speed - Wake Me Up! (2009 Ver. New PV)

<Bonus Track>
그리고, 이 앨범 발매 몇 개월 전인 작년 5월에 발표된 싱글 [S.P.D]를 추가로 소개한다. 이 곡은 그들로서는 최초로 힙합 분위기의 외국 작곡가의 곡을 받아 작업한 노래인데, 기존의 그들 곡의 분위기와는 약간 달라서인지, 오리콘 최고 순위는 8위였다. 하지만 그들의 새로운 매력을 느낄 수 있다.



Speed - S.P.D.(Splendid. Pop. Dance) (TV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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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다음뮤직-100Beat에서 기획한 '커버곡 특집' 기사 속에서 제가 담당했던 원고만을 추린 글입니다.

  

    


모범 커버 샘플러 30

11.
Carpenters 'Calling Occupants of Interplanetary Craft', 1977 / 원곡 Klaatu, 1976
한국 아트 록 매니아들이 아꼈던 캐나다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클라투가 데뷔 앨범에 수록해 호사가들에게 "비틀스가 얼굴을 감춘 밴드"란 오해(?)까지 낳는데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한 노래. 이 곡은 원곡이 발표된 지 1년 만에 카펜터스에 의해 커버되었고, 불행히도 한국에선 이 커버가 음반으로 먼저 소개되었다. 원곡이 비틀스적 색채를 간직한 웅장한 영국식 아트 록에 가깝다면, 카펜터스는 관현악 편곡의 스탠다드 팝으로 커버하여 인트로 부분에 외계인과 DJ의 대화를 삽입하는 아이디어를 발휘했다. 무엇보다 캐런 카펜터의 달콤한 보이스로 애니 헤이슬럼(Annie Haslem)처럼 아트 록을 하면 어땠을까 상상하게 만드는 게 이 곡의 최고 매력이다. (김성환) 


  

    


불량 커버 샘플러 10

4.
Limp Bizkit 'Faith', 1998 / 원곡 George Michael, 1987
조지 마이클이 왬!(Wham!)의 아이돌 이미지를 벗고서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입지를 세우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데뷔 앨범 [Faith]의 타이틀 트랙은 경쾌한 어쿠스틱 로커빌리 기타 스트로크와 패기의 완급을 조절할 줄 알았던 그의 섹시한 보컬이 담겨 있어서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림프 비즈킷이 데뷔 앨범에서 커버한 버전은 밴드의 대중적 친밀도는 높여주었을지언정 음악적인 성과를 낳진 못했다. 하드코어식 그루브로 밀어붙이는 리듬감이 너무 뻔하게 예측할 수준이었다. 프레드 더스트의 보컬이 약간 성의 없이 들리는 것도 그런 이유일까? (김성환)


  

    


커버 - 나만의 컬트 혹은 길티 플레저

Great White 'Once Bitten, Twice Shy', 1989 / 원곡 Ian Hunter, 1975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라는 속담을 뜻하는 제목을 가진 이 노래는 1975년 이안 헌터가 발표했던 곡으로, 영국차트 14위까지 기록했었다. 록커빌리에서 시작해 중반부를 지나 컨트리 하드 록으로 변모해가는 이 트랙을 그레이트 화이트는 원곡의 느낌을 그대로 유지하고 1980년대 팝 메탈의 감성만 추가하는 방향을 택했다. 팝 메탈의 감성, 그리고 블루스 하드 록의 감성을 함께 보유했던 그레이트 화이트 특유의 성향과 원곡의 성향이 너무 잘 맞았기에 크게 변화를 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 커버트랙은 빌보드 팝 싱글 차트 5위까지 오르는 대히트를 통해 밴드에게 최고의 시절을 안겨주었다.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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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싱글 Top 10]
9. Maroon 5 feat. Christina Aguillera 'Moves Like Jagger'
  제목 참 잘 지었다. 롤링 스톤스를 아는 모든 세계인들은 ‘(믹) 재거처럼 움직인다’는 말의 의미를 충분히 연상할 수 있다. 그의 무대 위의 느릿한 몸놀림은 ‘섹시함’과 동격이지 않았던가. 그리고 3집 [Hands All Over]에서 힘이 빠졌다고 느꼈던 마룬 5의 재능이 아직 완전히 녹슬지는 않았음을 이 곡은 증명한다. 게다가 오디션쇼 ‘The Voice’에 애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크리스티나의 보컬이란 지원군까지 얻었으니, 가뜩이나 히트한 록 싱글도 없던 2011년에 이런 곡이 히트를 안 하면 어떤 곡이 할 수 있었을까? (김성환)

 


[국내 앨범 Top 40]
18. 트램폴린 [This Is Why We Are Falling for Each Other]
  처음엔 차효선의 원 맨 밴드로 출발했던 트램폴린이 선사하는 신스 팝/뉴 웨이브는 데뷔 앨범 「Trampauline」에 이어 기타리스트 김나은을 영입하면서 만든 이번 2집을 통해 진정한 1980년대식 신스 팝의 향수를 완벽하게 복원했다. 첫 트랙 'Little Animal'에서 선사하는 철저한 복고적 신시사이저의 활용과 기타의 센스는 21세기에 휴먼 리그나 O.M.D.를 한국에 불러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다음 앨범에선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도 이 매력을 구현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김성환)





[해외 앨범 Top 20]
10. Foo Fighters [Wasting Light]
  데이브 그롤(Dave Grohl)은 정말 영민한 뮤지션이다. 특히 푸 파이터스로 너바나의 그늘을 떨치고 자신의 음악을 시작한 이후부터 그의 영민함은 더욱 빛났다. 초기엔 그런지의 진지함을 의도적으로 깨는 곡들을 만들어 대중과 친밀해지고,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오히려 진정 그들이 보여주고 싶었던 헤비함과 클래식 록 시대의 향수를 끌어내는 방향으로 이행하는 그의 전략은 얼터너티브 록에 서서히 질려가는 모든 대중에게 15년 이상 자신들의 음악을 계속 각인시켰다. 일단 그들의 새 앨범이 해외와 국내 평단에서 높게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제대로 하드록 적인 곡들인 데다가 대중적으로도 모난 데가 없기 때문이다. 검은 리듬이 팝 씬을 지배한지 너무 오래 경과되어 언제나 인디 록 신보들만 열심히 뒤지고 있던 이들에게 이런 메인스트림 록 음반의 등장은 정말 반갑지 않겠는가? 특히 <Rope>나 <Adriana>를 들으면서 보스턴(Boston)이나 1980년대의 AOR밴드들의 향수까지 뽑아낼 줄 아는 데이브와 부치 빅의 재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던 작품이다.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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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립 가능한 포크와 힙합
 
  한 해에도 수많은 신인들이 쏟아져 나오는 대중음악 시장에서 자신의 노력만으로 그 이름을 알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홈레코딩으로 능력만 있다면 혼자서 음악을 만드는 게 가능해졌고, 유튜브나 인터넷으로 자신의 음악을 충분히 알릴 기회는 생겼음에도 여전히 그들은 메이저 레이블에 데모 테이프를 보내고 계약을 따내고 싶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 오랜 기간 동안 자신만의 방식으로 꾸준히 길을 닦아 데뷔 6년 만에 마침내 대중의 반응을 얻고 이를 바탕으로 메이저 데뷔작까지 발표한 한 싱어 송라이터가 있다. 그가 바로 영국 출신의 약관의 남성 뮤지션 에드 시런이다. 

  1991년 웨스트 요크셔 할리팩스(Halifax) 태생인 에드는 어린 시절부터 기타를 배웠고, 고교시절에 이미 작곡을 할 능력을 갖췄다. 그리고 초등학생 때 밴 모리슨(Van Morrison)의 음악을 들으며 부모와 함께 데미안 라이스(Damian Rice)의 공연을 보러 가는 등 이미 자신의 음악적 취향이 매우 뚜렷했기에, 그의 음악이 포크적 성향을 갖는 것은 당연했다. 결국 그는 15살에 그의 자신의 첫 EP [The Orange Room]을 자비로 내놓고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개시했다. [Ed Sheeran](2006), [Want Some?](2007) 등의 EP를 계속 발표하면서 아직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어도, 심지어 관객이 5명밖에 없는 무대에서도 공연을 했다. 그렇게 점점 늘어간 공연 횟수가 2009년에는 312건이나 되었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과거 밴 모리슨이 한 해에 200회의 공연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서 자신이 그 기록을 넘어서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결국 2009년 네 번째 EP [You Need Me]가 처음 영국 앨범 차트 200위권에 진입했고, 저스트 잭(Just Jack)이나 랩퍼 이그잼플(Example) 등 이미 메인스트림에 진입한 아티스트들이 그의 공연과 동영상을 보고 함께 무대에 서자는 러브콜을 보냈다. 마침내 2010년에는 처음으로 평단이 주목했던 [Loose Change]EP가 선을 보였고, 여기서 공개된 싱글 ‘The A Team’이 대중에게 서서히 어필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그의 팬들은 점점 늘어났고, 그 가운데는 영국 축구선수 리오 페르디난드와 엘튼 존 경도 포함되어 있었다. 2장의 EP를 디지털로 더 발표한 그는 올해 1월 발표한 마지막 인디 EP [No. 5 Collaborations Project]를 통해 그라임(Grime) 힙합 아티스트들과의 협연으로 화제를 모았고, 어떤 홍보활동과 레이블의 지원 없이 첫 주에 7000장을 파는 기록을 세웠다. 그 결과로 그는 3개월 뒤 1000명 이상의 관객 앞에서 최초로 공연을 했고, 바로 어사일럼(Asylum) 레이블이 그에게 손을 내밀어 데뷔 앨범 [+]가 완성된 것이다. 


  이렇게 오랜 숙련의 기간을 거쳤기 때문에 에드 시런의 음악은 데뷔작이라 느끼기 힘들 만큼 깔끔하고, 세련되고, 탄탄하다. 어쿠스틱 기타 중심으로 심플하게 진행되는 ‘The A Team’는 국내 여성 팬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며, 피아노와 보컬만으로 구성된 ‘Wake Me Up’, 적당한 드럼 비트가 텐션을 실어주는 최근 싱글 ‘Lego House’ 등의 곡을 들으면 그를 ‘제 2의 제이슨 므라즈, 또는 제임스 모리슨’이라 쉽게 단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머지 업비트의 곡들을 들으면 그의 힙합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 곡들도 많다. 어쿠스틱 기타 중심의 어번 리듬 위에 마치 랩처럼 플로우를 담아 노래하는 그의 보컬이 인상적인 ‘Grade 8’, 밴드가 연주하는 힙합 비트 위에서 앨범에서 가장 랩다운(?) 그의 운율이 에미넴(Eminem)이 부럽지 않은 트랙인 ‘You Need Me, I Don't Need You’ 등에서 앞으로 그의 음악에서 기대할 부분을 더 많이 찾게 된다.

  오랜 각고의 노력을 통해 드디어 에드 시런은 첫 메이저 앨범으로 고국을 넘어 세계 시장에 자신을 알릴 기회를 얻었다. 어쿠스틱 포크 록의 감성, 그리고 어쿠스틱 힙합의 감성까지 함께 가진 이 싱어 송라이터의 미래는 바로 자신이 가진 두 가지 장점을 어떻게 갈고 닦느냐에 따라 달려있을 것 같다. 일단 첫 단추는 잘 꿰고 가고 있기에 기대감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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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한국 소니뮤직에서 발매한 이 음반의 국내반 해설지입니다.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를 관통한 건반 로큰롤의 대표주자 벤 폴즈(Ben Folds),
그의 밴드 시절부터 솔로 커리어를 모두 정리한 베스트 앨범
「Retrospective: The Best Imitation of Myself (1995–2011)」


  건반 악기는 항상 대중음악의 역사에 있어서 기타와 함께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악기였다. 굳이 프로그레시브 록, 아트 록과 같은 예술 지향적 음악 장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일찍이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는 ‘불타는 피아노’라는 전설적 퍼포먼스를 남길 정도로 로큰롤에 건반 연주가 얼마나 흥을 돋울 수 있는지 보여주었고, 1970년대를 대표한 양대 ‘피아노맨’ 엘튼 존(Elton John)과 빌리 조엘(Billy Joel)의 노래 역시 만약 건반 파트를 제외하고 그들의 음악을 듣는다면 참맛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건반이 주도를 하는 대중음악이라 하더라도 완전히 신시사이저로 모든 사운드를 처리하는 일렉트로닉 장르가 아니라면 대체로 최소 기타-베이스-드럼의 기본 밴드 구성과 함께 흘러가는 것이 정석으로 굳어져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1990년대 중반 주류 얼터너티브 록 씬에 파란을 몰고 왔었던 벤 폴즈와 그의 밴드 벤 폴즈 파이브(Ben Folds Five)의 등장은 신선했다. 전통적 밴드의 기본 구성을 과감히 깨고 피아노-베이스-드럼 트리오 구성으로 완성된 이들의 음악은 그래서 록보다 재즈에 더욱 경도되기 쉬운 방향성이었지만, 이들은 로큰롤의 정통성이 갖춘 흥겨움을 놓치지 않았고, 비록 기타의 디스토션이 일으키는 강렬함보다 조금은 약했을 지라도 충분한 파워와 밸런스를 그들의 음악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가 벤 폴즈 파이브를 끝낸 이후에도 그의 고유한 음악적 스타일은 꾸준히 유지되었다. 오히려 트리오 구성 시절보다 더 다채로운 악기 편성을 통해 그의 음악 세계는 확실히 확장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세계 곳곳에 그의 다양한 팬들을 만나고, 더욱 음악적인 평가를 높게 받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지난 그의 내한공연 무대에서 2시간이 넘도록 정력적인 무대를 펼치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느낀 점은 그는 끈임 없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진 뮤지션이라는 것이었다. 밝고 경쾌한 곡이든, 사색적인 곡이든, 그의 생각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음악들을 통해 그는 2000년대 세계 음악 팬들에게 매력적 순간들을 제공해왔던 우수한 뮤지션임은 분명하다.

지난 17년간 자신만의 개성으로 굵은 발자취를 남긴 벤 폴즈의 음악 여정 

  1966년생으로 노스 캐롤라이나 주 윈스턴 세일럼(Winston-Salem)에서 태어난 벤 폴즈는 9살 때부터 피아노와 인연을 맺기 시작해,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자신이 주도한 스쿨 밴드에서 건반을 연주했었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프로 뮤지션으로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으로, 마조샤(Majosha)라는 밴드에서 베이시스트로 활약하기 시작한 시점부터였다. 이 밴드는 「Party Night: Five Songs About Jesus」(1988, EP)와 「Shut Up and Listen to Majosha」(1989)를 남겼지만, 그저 대학가에서만 인정받는 레벨의 밴드였다. 밴드 활동을 마친 후, 그는 이번에는 드러머로 전업(?)해 내쉬빌에서 세션 뮤지션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모든 미국의 음악인들이 꿈꾸는 도시, 뉴욕으로 결국 건너가 배우 생활을 하는 변신을 감행했다. (그의 무대 위에서의 다양한 표정과 몸동작은 확실히 이 시기에 체득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동시에 작곡자로서 곡을 쓰기 시작했고, 마침내 소니 뮤직과 저작권 계약까지 맺게 되었다.  

  일단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맺는 행운을 얻었기에, 그는 이를 자신의 음악을 직접 연주하며 활약할 수 있는 밴드를 결성하는 계획을 실현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러기 위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 동료들을 규합했는데, 그들이 바로 베이시스트 로버트 슬레지(Robert Sledge), 그리고 드러머 대런 제시(Darren Jessee)였고, 그들 셋이 모여 우리가 기억하는 벤 폴즈 파이브가 탄생했던 것이다. 트리오 구성이었는데도 자신들의 음악이 ‘최소한 세 명이 연주하는 음악보다는 낫게 들린다’는 이유에서 밴드 이름에 ‘Five’라는 단어를 넣은 이들은 데뷔 당시 스스로의 음악을 ‘여자 같은 남성들을 위한 펑크 록(punk rock for sissies)’이라고 묘사했다. 이는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음악들이 보여준 강렬한 분노와 자신들의 음악을 차별화함을 스스로 선언한 것이다.  


  이들이 1995년 캐롤라인(Caroline)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발표한 첫 앨범 「Ben Folds Five」는 사실 싱글 <Underground>가 의외로 영국 차트에서 37위에 오르는 히트를 거둔 것 외에는 본국에서는 별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소니 뮤직 산하 550 Music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발표한 2집이자 본 앨범 「Whatever and Ever Amen」에서 발매 1년 후에서야 싱글 <Brick>이 빌보드 모던 록 차트 6위, 그리고 어덜트 컨텀포퍼리 차트 11위를 기록하면서 그들의 인기도는 급상승했다. 결국 이 앨범은 미국 내에서 플래티넘 레코드를 달성했고, 그들의 음악은 기타가 없는 록 음악도 얼터너티브의 시대에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새로운 공식을 록 역사에 남겨주었다. (그 후 이들의 전 레이블인 캐롤라인은 1998년 그들의 1집과 2집에 담겼던 곡들의 아웃테이크나 라이브 버전을 담은 편집앨범 「Naked Baby Photos」를 발매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2년 후인 1999년에 이들은 좀 더 재즈적인 영향력이 강한 곡들이 담긴 3집 「The Unauthorized Biography of Reinhold Messner」를 내놓았고, 이 앨범 세션에서 녹음되었던 곡인 <Leather Jacket>을 (펄 잼(Pearl Jam)의 <Last Kiss>가 수록되어 잘 알려진) 코소보 난민 구호 앨범 「No Boundaries: A Benefit for the Kosovar Refugees」에 수록하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하지만 1년간의 월드 투어를 마치고 난 후, 이들은 돌연 해체를 선언하고 말았다.    

  밴드의 해체 이후 다시 혼자가 된 벤 폴즈는 「Rockin the Suburbs」(2001)를 통해 다시 음악계에 복귀했다. 하필 미국으로서는 가장 충격적인 기억인 9.11 테러 당일에 발표된 이 음반은 그의 밴드 시절 앨범들만큼 평단의 찬사를 받았고, 타이틀 트랙도 모던 록 차트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2002년 라이브 앨범 「Ben Folds Live」를 내놓은 이후 그는 2년 동안 3부작 EP - 「Speed Graphic」(2003), 「Sunny 16」(2003), 「Super D」(2004) - 를 연이어 내놓으며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이어갔다. 그 후 1년 뒤, 두 번째 공식 솔로 앨범「Songs for Silverman」(2005)을 발표한 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대중의 호응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대표 싱글 <Landed>외에도 요절한 천재 뮤지션 엘리엇 스미스(Elliot Smith)를 추모하는 곡인 <Late>이 영국에서 특별한 반응을 얻기도 했다.  

  2000년대 후반으로 넘어와서도 그의 활약은 꾸준히 이어졌다. 사운드트랙 참여, EP시절의 수록곡들이 중심이 된 컴필레이션 「Supersunnyspeedgraphic, the LP」(2006)의 발표에 이어서 다시금 평단과 대중에게 찬사를 받은 그의 후기 대표작 「Way to Normal」(2008)이 발표되었다. 마침 이 때 그는 마이스페이스(Myspace)에서 주최한 ‘Front to Back' 콘서트 시리즈에 벤 폴즈 파이브 시절의 동료들과 등장해 그들의 3집 앨범 전곡을 연주하는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에는 미국 각 대학들을 돌아다니며 훌륭한 아카펠라 그룹들의 경연을 펼친 앨범 「Ben Folds Presents: University A Cappella!」를 프로듀싱하기도 했으며, 지난 2010년에는 우리에게 영화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High Fidelity)’나 ‘어바웃 어 보이(About A Boy)’의 원작자로 잘 알려진 소설가 닉 혼비(Nick Hornby)와 연합해 각각 가사와 음악을 책임진 조인트 앨범 「Lonely Avenue」를 통해서 다시금 그의 음악적 매력을 증명해 보였다. 

그의 17년 음악 여정의 하이라이트를 깔끔히 정리해 수록한 첫 공식 베스트 앨범 


  이 앨범은 제목 자체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그의 벤 폴즈 파이브로 데뷔했던 시절부터 2000년대 그의 솔로 앨범까지 그의 17년간의 음악 여정에서 그를 대표했던 트랙들이 거의 모두 담겨 있다. 이 앨범에 담겨진 총 18곡의 노래들의 트랙 리스트만 쳐다봐도 벤 폴즈의 음악을 꾸준히 들어왔던 팬들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만한 곡들이 뽑혔다는 것은 한 눈에 확인이 가능하다. 물론 그의 음악에 진정으로 빠져든 매니아들이라면 이 베스트 앨범의 18곡만으로 충분할 수 없겠지만, 그의 음악을 아직까지 진지하게 접해보지 못했던 팝 음악 팬들에게는 이처럼 확실한 벤 폴즈 음악의 개요를 담은 앨범은 여태껏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벤 폴즈의 대표곡 플레이리스트


  일단 벤 폴즈 파이브 시절의 노래들이 이 앨범의 1/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데뷔 앨범 「Ben Folds Five」에선 <Philosophy>와 <Underground>이 그의 초창기의 발랄한 패기를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이 시절에서 역시 가장 많은 중요도를 갖는 앨범인 2집 「Whatever and Ever, Amen」에서는 1990년대 록 팬들이 모두 좋아했던 베스트 발라드이자 빌보드 팝 싱글 차트에서도 선전했던 싱글 <Brick>과 그의 피아노 로큰롤의 진수를 선보이는 <One Angry Dwarf and 200 Solemn Faces>, 마치 빌리 조엘의 로큰롤을 듣는 듯한 세련된 복고풍 로큰롤 <Kate>가 앨범 버전으로 담겼으며, <Smoke>의 경우에는 호주 공연에서 웨스트 오스트렐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West Australian Symphony Orchestra)가 백업을 담당한 라이브 버전으로 실렸다. 하지만 3집에서는 대표 싱글이었던 <Don't Change Your Plans>만이 수록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여기에 2집의 또 다른 히트곡 <Song For the Dumped>가 포함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한편, 이 앨범이 벤 폴즈의 연대기인 만큼 나머지 곡들은 거의 다 솔로 앨범 수록곡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의 솔로 1집 「Rockin' the Suburbs」에서는 그간의 규칙과 달리 기타 연주를 함께 전면에 내세웠던 타이틀 트랙 <Rockin' the Suburbs>이 가장 돋보이며, 경쾌한 모던 록 <Annie Waits>, 스트링과 그의 피아노의 깔끔한 매력이 돋보였던 앨범의 대표 발라드 <The Luckiest>이 실렸다. 역시 이 앨범에 담겼던 곡인 드라마틱한 록발라드 <Still Fighting It>은 이번 베스트 앨범에서는 익스텐드 버전으로 수록되었다. 솔로 2집 「Songs for Silverman」에서는 앨범의 대표 싱글 <Landed>가 당연히 수록되었고, 역시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앨범 속 발라드 <Gracie>도 함께 선정되었다. 2006년 스페셜 앨범에서는 <There's Always Someone Cooler Than You>와 애니메이션 ‘Over the Hedge’에 삽입되기도 했었던 <Still>이 실렸으며, 레지나 스펙터(Regina Spektor)와의 듀엣이자 독특한 방식의 뮤직비디오로 화제를 모았던 <You Don't Know Me>가 예상했던 대로「Way to Normal」앨범의 베스트 트랙으로, 그리고 닉 혼비와의 조인트 앨범에서는 1980년대 칼리지 록적 향취가 물씬 났던 트랙인 <From Above>가 선곡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앨범의 가치를 빛내주는 트랙은 맨 마지막에 숨어있다. 바로 벤 폴즈 파이브의 13년만의 새 노래가 실린 것이기 때문이다. <House>가 바로 그 트랙이다. 최근 그는 벤 폴즈 파이브의 동료들을 모아 내년을 목표로 새 앨범을 작업할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는데, 바로 이에 맞춰 일단 그의 베스트 앨범을 위해 새로운 레코딩 3곡을 작업했다고 한다. (이 앨범의 3CD 스페셜 에디션에서는 그 3곡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고 한다.) 신곡 <House>는 과거 벤 폴즈 파이브 시절의 곡보다는 훨씬 솔로 시절의 분위기의 스케일을 갖고 있으면서도 드럼과 베이스의 연주는 1990년대 밴드의 감성을 재현해주고 있어서 향후 그들의 신작에 대한 기대를 벌써부터 갖게 만든다.  

  17년이라는 나름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본연의 음악 색깔을 지키며 이를 더 세련되게 확장해왔던 벤 폴즈. 그의 커리어의 대표작들을 한 장으로 만날 수 있는 이 베스트 앨범은 지난 내한 공연의 감동을 기억하는 팬들과 그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이제 막 보이기 시작한 국내 팝-록 팬들에게 충실한 그의 음악 안내서로 구실을 하리라 믿는다. 빨리 벤 폴즈 파이브의 신보로 그의 새 음악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 

2011. 9 글/ 김성환(Music Journalist - 뮤직 매거진 ‘Hottracks’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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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제가 워너뮤직에서 발매한 이 앨범 국내반 해설지로 작성한 원고입니다.

스웨이드(Suede)의 리더이자 티어즈(The Tears)를 이끈 영국의 독보적 록 보컬리스트,
브렛 앤더슨(Brett Anderson)의 2011년 최신 솔로 앨범 「Black Rainbows」


  지난 2011년 7월 31일,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는 음악 잡지를 위해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던 지산 리조트 콘도 건물에서 재결합 이후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온 스웨이드(Suede)와 인터뷰를 갖는 기회를 얻었다. 1990년대에 오아시스(Oasis), 블러(Blur)와 함께 국내 팬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이 밴드가 3집 「Coming Up」의 라인업 그대로 재결합 해 한국 무대에서 우리에게 연주를 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행복한 기분이었지만, 그들과 얼굴을 마주보며 그간의 활동과 현재의 상황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더욱 즐거운 일이었다.  

  특히, 그 날 다른 매체 인터뷰로 인해 조금 늦게 인터뷰장에 들어왔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 브렛 앤더슨(Brett Anderson)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화면이나 사진에서 보았던 것만큼이나 훤칠한 키와 시크한 외모도 일단 인상적이었지만, 특유의 맺고 끊는 톤의 보이스로 질문에 응하는 모습은 그가 이미 40대 중반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할 만큼 세련된 영국 ‘차도남’의 매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 그가 뮤지션으로 더욱 빛이 났던 것은 그 날 헤드라이너였던 스웨이드의 공연 무대에서의 그의 모습이었다. 시종일관 무대를 뛰어다니며 공연 카메라에 표현하는 그의 열창하는 모습과 음에 반응하는 몸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열정과 혼이 실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로큰롤 뮤지션으로서의 열정, 그것이 지금까지 바로 브렛 앤더슨을 현재의 위치에 이르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라 감히 생각해보았다.  

  이처럼 브렛 앤더슨은 지난 20년간 스웨이드라는 브릿 팝 역사의 대표적 밴드의 음악적 리더이자 보컬리스트로서, 그리고 그가 2000년대에 보여주었던 다채로운 음악 활동으로서 자신의 뮤지션으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했다. 보컬과 무대 위에서 드러나는 그의 양성적 이미지와 열정적 무대 매너는 1990년대 록 팬들에게는 마치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1970년대에 비견하기는 어렵다 해도 그것을 1990년대에 맞게 변화해서 구현한 것 같은 매력을 주었다. 그러한 그의 카리스마가 한 시대의 대중을 사로잡았었기에, 이제 그의 얼굴에 비록 주름이 늘고 세월의 여파로 그의 목소리에서 가끔 탁성이 들린다 해도 그 시대를 함께 숨 쉬었던 음악 팬들에게 브렛 앤더슨은 여전히 매력남으로 기억되는 것이며, 그가 2000년 중반 이후 이어가는 솔로 활동 역시 꾸준히 주목하며 환호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그 위에 스웨이드로서의 추억까지 되찾아주었으니, 이 어찌 반갑지 않은 일이겠는가.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브릿 팝 대표 록 보컬의 자리를 지켰던 브렛 앤더슨의 음악여정 

  1967년 영국 웨스트 서섹스(West Sussex) 주 헤이워즈 히스(Haywards Heath) 태생인 브렛 앤더슨은 평범한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는 화가로서 활동을 했었고, 아버지 역시 광적인 클래식 음악 팬인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에 대해 눈을 떠갔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이미 브렛은 기타를 잡고 노래하는 것을 공부보다 더 즐거운 일로 여겼고, 피그즈(The Pigs), 제프(Geoff) 등 동네의 여러 개러지 밴드들을 전전하며 기타를 연주했다. 특히, 제프라는 밴드에서 그는 베이시스트인 맷 오스먼(Mat Osman)을 처음 만나 우정을 다졌다.  

  결국 학교를 졸업한 이후 브렛과 맷은 당시 그의 여자친구였던 저스틴 프리쉬먼(Justine Frischmann, 훗날 엘라스티카(Elastica)의 리더로 인기를 얻었다)과 셋이서 밴드를 결성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스웨이드의 출발이었다. 하지만 세 명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느낀 그는 음악지 NME에 기타리스트를 구한다는 광고를 냈고, 그 결과 만난 기타리스트가 바로 버나드 버틀러(Bernard Butler)였다. 드러머 사이먼 길버트(Simon Gilbert)를 영입한 후 그들은 본격적으로 1990년대 초반 영국에서 불어오던 브릿 팝의 물결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저스틴은 블러의 프론트맨 데이먼 알반(Damon Albarn)과 소위 ‘양다리’를 걸쳤고, 결국 밴드에서 해고되고 말았다.) 

  이런 초기의 우여곡절을 거쳐 스웨이드는 마침내 1993년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Suede」를 통해 영국 록 씬에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영국 매체들의 도움(?)으로 그는 앨범 발매 이전부터 그의 양성애적 정체성에 대해 가십을 쏟아냈고, 오히려 그 이야기들은 그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모리세이(Morrissey, 1980년대를 풍미했던 밴드 스미스(The Smiths)의 보컬이자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솔로 활동 중임)와 데이빗 보위를 결합한 듯한 이미지를 더욱 공고하게 해주는 데 기여했다. 결국 밴드의 데뷔작은 영국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고, 그 후 스웨이드는 앞서 언급했던 대로 1990년대의 영국 브릿 팝 씬을 대표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비록 2집 「Dog Man Star」(1994)를 녹음한 후 그와 찰떡궁합을 보여주었던 작곡 파트너 버나드가 밴드를 떠나는 불상사가 생겼지만, 오히려 브렛은 이 상황을 자신이 밴드 전체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 결과 새 기타리스트 리차드 오크스(Richard Oakes)를 영입한 밴드는 3집 「Coming Up」(1996)을 통해 스웨이드를 더욱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 음악적으로 탄탄한 밴드라는 이미지를 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3년 후에 발표된 4집 「Head Music」(1999)까지 그 성공은 이어졌다. 하지만 실험적인 스튜디오 사운드에 좀 더 집중했던 5집 「A New Morning」(2002)가 상업적 실패를 맛보면서 밴드는 첫 베스트 앨범 「Singles」(2003)을 내놓고 해체를 발표했다.   

  스웨이드의 해체 이후 브렛이 처음으로 시도했던 음악 활동은 바로 옛 파트너 버나드 버틀러와의 음악적 재회였다. 두 사람은 윌 포스터(Will Foster), 마코토 사카모토(Makoto Sakamoto), 네이턴 피셔(Nathan Fisher) 등과 함께 프로젝트 밴드 티어즈(The Tears)를 결성했고, 「Here Come The Tears」를 들고 다시 음악계로 복귀했다. 비록 영국 평론가들과 대중의 반응이 엇갈리긴 했지만, 이 앨범은 브렛과 버나드를 지지하는 음악 팬들이 영국과 세계에 많음을 확인시켜주는 데 충분했다. 하지만 앨범의 유럽 투어가 중도에 취소되면서, 그 이후의 밴드는 더 이상의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다시 혼자가 된 브렛은 인디 레이블들을 통해서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심플하게 자신의 이름을 타이틀로 쓴 첫 앨범 「Brett Anderson」은 첫 싱글 <Love Is Dead>를 영국 차트 42위에 올려놓으며 그의 건재를 보여줬고, 그의 오랜 친구 매트와 앨범의 프로듀서이자 새로운 작곡 파트너였던 프레드 벨(Fred Bell)과 함께 영국 투어를 이어갔다. 그 2년 후인 2008년에는 2집 「Wilderness」를 내놓았는데, 이 앨범은 특히 발매 전에 런던 머메이드 씨어터(Mermaid Theatre) 공연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USB스틱에 앨범 음원을 담아 배급했던 것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7일만에 녹음을 라이브 방식으로 끝낸 이 작품은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 첼로 등 다양한 악기 편성을 보여주었고, 수록곡 <Back to You>는 프랑스 배우 엠마뉴엘 시네르(Emmanuelle Seigner)와 듀엣을 해 화제를 모았다. 뒤이어 2009년에는 3집 「Slow Attack」을 연이어 발표했는데, 새로운 작곡 파트넌 레오 아브라함즈(Leo Abraham)와 함께 가사와 감정에 더욱 집중하고 오케스트레이션의 비중을 늘리는 등 새로운 시도를 많이 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그 후 작년부터 스웨이드의 재결합에 대한 소문이 서서히 들려왔고,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의 소아암 자선기금 마련 공연에 그들이 참가한 후 2010년 여름부터 스웨이드는 다시 「Coming Up」시절의 모습으로 재결합하여 현재까지 유럽, 아시아 등을 도는 월드 투어를 이어가고 있다.     

다시 밴드의 포맷에서 자연스러운 다이나믹을 전하는 4번째 솔로작 「Black Rainbows」  


  스웨이드는 다시 현역으로 복귀했지만, 그는 그와 동시에 자신의 새 솔로 앨범에 대한 구상을 이미 2010년부터 세우고 있었고, 지난 앨범에서 함께 했던 레오 아브라함즈와 함께 스튜디오로 들어가 스웨이드의 투어가 없을 때마다 틈틈이 작업을 진행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20곡 정도의 데모를 바탕으로 다시 정돈 작업을 거쳐서 총 10곡이 최종으로 앨범에 선곡되었다. 특히 이번 앨범의 사운드에 대해 브렛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restless, noisy and dynamic(들떠 있고, 소란스러우며 역동적인)’ 곡들이 담겼다는 멘트를 남긴 바 있다. 그만큼 앨범의 곡들은 지난 2장의 앨범들과 달리 플롯이나 스트링, 오케스트레이션 같은 요소들은 모두 사라지고 다시 순수한 밴드의 포맷으로 그가 돌아왔음을 확인시켜준다.  

  인트로에서 들려오는 기타 노이즈가 한 시대를 풍미한 록 보컬리스트의 귀환을 알려주는 첫 트랙 <Unsung>은 전체적으로 기타가 만들어주는 몽환적 분위기 속에 그의 보컬이 주는 매력을 한껏 감성적으로 끌어올린 곡이다. 분명 과거 스웨이드의 밴드적 분위기도 살짝 느낄 수 있으면서도 그의 솔로 앨범에서 더 두드러진 차분하고 자연스러움을 놓치지 않았다고 할까? 싱글로 첫 공개된 <Brittle Heart> 역시 록 밴드 포맷에 충실하면서 스웨이드의 향수를 슬쩍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대중적인 감성으로 가득하며 브릿 팝과 80년대식 영국 뉴 웨이브 팝의 중간 선상에 놓인 <Crash About to Happen>, 지글대는 기타 노이즈 속에서 복고적 사운드의 향수를 자극하는 <I Count The Times>, 베이스와 드럼의 리듬 구성으로 귀를 잡아끌면서 그 위에 브렛의 보컬 특유의 톤이 얹어지며 앨범의 사운드가 점점 강하게 올라감을 선언하는 <The Exiles>까지 그의 고유한 스타일이 다시 스웨이드와 티어즈 시절의 밴드 록의 형태로 지속되고 있음을 이 앨범은 보여준다. 

  한편, 드럼 연주가 입체적 공간감을 제시하면서 역시 강한 노이즈의 구름을 깔아주는 트랙인 <This Must Be Where It Ends>, 기타 디스토션 이펙트의 힘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기타 연주의 매력이 그의 퇴폐적(?) 보컬과 잘 어울리는 록 트랙 <Actors>, 마치 1980년대 U2나 빅 컨트리(Big Country) 등의 영국식 모던 록 사운드의 계보를 이어가는 듯한 느낌을 선사하는 <In the House of Numbers>, 멜로디나 반복되는 기타 리프가 마치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Money>를 살짝 연상하게 만드는 곡인 <Thin Men Dancing> 등 후반부 트랙들은 전반부보다 더욱 그의 자연스러운 다이나믹이 빛나는 곡들로 채워져 있다. 만약 그간의 솔로 앨범 속의 멜랑콜리한 낭만이 그립다면, 마지막 트랙 <Possession>에서 (비록 오케스트레이션 같은 효과는 없지만) 그것의 잔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영국 BBC 웹사이트는 이 앨범에 대한 리뷰 속에서 이 작품에 대해 ‘예정된 스웨이드의 앨범을 위한 (마치 전초전 성격의) 작품(a job for the planned Suede album)’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말대로 그간 그가 내놓았던 솔로 앨범들에 비하면 그래도 가장 스웨이드 시절의 낭만에 살짝 근접한 음악들이 담겨 있기에, 그들이 내한 인터뷰에서 밝힌 대로 만약 앞으로 2-3년 이내에 그들의 신보가 나오게 된다면 그것이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에 대한 단초 중 하나로서 가치를 지닌다 하겠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연륜이 더 묻어나는 브렛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이 앨범 속에서 묻어나는 것만으로 우리는 이 음반을 들을 충분한 가치를 확보한 셈이다. 

2011. 10 글/ 김성환(Music Journalist - 핫트랙스 매거진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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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Beat 필자들이 기고 중인 다음 뮤직에서는 '스페셜 기획연재' 코너가 있다. 최근에는 영화음악 특집으로 '그 장면에 흐르던 노래'라는 기획 연재를 진행중이다. 1달 전부터 기획이 들어가 여러 필자들의 의견을 받아 최종 카테고리를 정하고, 곡을 추천한 사람이 해당 부분에 칼럼을 쓰는 형태다. 그 가운데 내가 쓴 부분들만 다 모아봤다. 개인적으로 내가 정말 즐겨봤던, 절대로 그 장면을 잊지 못하는 것들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전체 내용을 보고 싶으신 분은 이 링크를 클릭해서 1편부터 보세요....
-> '그 장면에 흐르던 노래' 가기

플레이리스트로 여기 소개된 4곡 듣기



Flashdance... What a Feeling - Irene Cara [플래시댄스] (1983)

  스타의 꿈을 향해 힘든 현실을 딛고 노력하던 제니퍼 빌즈가 마침내 선 오디션장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춤을 선보일 때, 인트로부터 후렴, 절정부까지 그 장면 전체를 물 흐르듯 관통하는 이 노래가 없었다면 영화 [플래시댄스(Flashdance)]가 확실한 클라이맥스를 연출해 낼 수 있었을까? 게다가 이 노래를 부른 주인공은 영화 [페임(Fame)]으로 처음 스타덤에 올랐던 디스코 시대의 딸 아이린 카라이지 않았던가. 모든 조합이 ‘이보다 좋을 수 없는’ 댄스 뮤직의 금자탑이다. (김성환)


(I've Had) the Time of My Life' - Bill Medley & Jennifer Warnes
 
[더티 댄싱] (1987)

  영화 [더티 댄싱(Dirty Dancing)]은 살사 등 라틴 댄스의 유행을 1980년대 후반 복고적으로 되살렸을 뿐 아니라 춤이 갖는 관능적 속성을 청소년의 성장 스토리와 자연스럽게 결합했다. 모든 댄스 씬에 1960년대 초반 팝의 고전들이 흐르지만, 주인공 패트릭 스웨이지가 파티장에 돌아와 제니퍼 그레이와 함께 무대 위에서 보여준 마지막 댄스 씬 장면에서는 관록의 보컬들인 빌 메들리와 제니퍼 원스의 듀엣을 통해 사랑의 완성과 (기성세대를 넘어선) 젊음의 열정의 승리를 아름답게 담아냈다. (김성환)




Makin' Whoopee - Michelle Pfeiffer [사랑의 행로] (1989)

  [사랑의 행로(Fabulous Baker Boys)]는 시애틀의 재즈 클럽을 배경으로 재즈 피아노 연주자 형제의 삶 속에 들어온 한 여성 보컬리스트를 통해 사랑과 형제애, 그리고 인생에 대한 반추를 묘사했던 작품이다. 특히, 두 형제를 연적으로 만든 여성 보컬 수지 다이아몬드 역의 미셀 파이퍼는 연기와 영화 속 노래 모두 확실히 책임졌다. 특히 빨간 드레스를 뽐내며 피아노 위에서 부르던 이 곡의 관능미는 그 어떤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의 곡보다 매력적이었다. (김성환)



Can't Fight the Moonlight - LeAnn Rimes [코요테 어글리] (2000)


  영화 [코요테 어글리(Coyote Ugly)]는 뉴저지 소녀 바이올렛의 뉴욕 상경 성공기를 제리 브룩하이머의 상업적 감각으로 매끈하게 담아낸 작품이었다. 항상 무대 공포증에 시달렸던 그녀가 자신의 (스스로를 가뒀던) 한계를 넘어 오디션 무대를 통해 멋진 노래로 표현하는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젊음의 성장은 자신의 틀을 깰 때 이뤄짐을, 공연 무대라는 ‘마법’의 공간을 통해 역설한다. 다이앤 워렌의 매끈한 멜로디, 리앤 라임스의 과감한 댄스 그루브는 이 순간에 맞는 최상의 배경음악이었다.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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