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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소니뮤직의 해설지가 될 뻔한 글이었으나, 라이센스 발매 계획이 취소되고 수입으로 돌려지면서 과연 종이에 찍힐 지 미지수가 되어버렸습니다. ㅠㅠ


1970~1980년대를 대표했던 여성 록의 기수, 앤-낸시 윌슨(Ann-Nancy Wilson),
두 자매가 이끌어온 집념의 밴드 하트(Heart)의 2012년 최신작, [Fanatic]


  2012년의 대한민국 홍대의 여러 인디 록 밴드에서도 여성 멤버들이 보컬리스트는 물론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에 이르기까지 주요 멤버로 활약할 정도로, 이제 여성이 록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절대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서구 대중음악 씬에서도 1990년대 이후부터는 수없이 많은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록 음악을 택했고, 이제 여성이 프론트 우먼, 또는 밴드에서 음악의 중심, 즉, 작사/작곡의 중심에 서서 활약하는 밴드들은 부지기수가 되었다. 

  그러나 40년 전만 해도 여성 뮤지션들이 남성 중심의 록계에 뛰어들어 자신들의 지분을 갖고 활약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물론 1970년대 이전에도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과 그레이스 슬릭(Grace Slick)과 같은 여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1970년대로 넘어오면서 록 씬의 주류가 블루스/사이키델릭 사운드보다는 더욱 강한 하드 록/헤비메틀로 이동하자 다시 록계에서 여성 뮤지션들의 활약은 위축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도 몇몇 여성 뮤지션들은 남성들에게 뒤지지 않는 그들만의 파워 속에 여성 특유의 섬세함을 배합해 그 견고한 벽을 뚫고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그 가운데 가장 선봉에 섰던 두 명의 여성 록커들이 바로 이 앨범의 주인공인 하트(Heart)의 영원한 안방마님들인 앤 윌슨(Ann Wilson), 낸시 윌슨(Nancy Wilson) 자매였다. 

  한 명은 보컬리스트로서, 한 명은 작곡에도 참여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로서, 두 자매가 1970년대 데뷔 초기에 보여준 뮤지션으로서의 카리스마는 이후 등장하는 하드 록 씬의 여성 뮤지션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들의 초기 음악 속에서 두 자매 스스로도 가장 큰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그리고 현재까지도 그들 음악의 뿌리 속에 들어있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영향력은 그들의 음악을 설명할 때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실제로 앤 윌슨은 한동안 ‘여성 로버트 플랜트’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레드 제플린이 외형적으로는 직선적인 하드 록의 전형을 선사한 것으로 기억되지만 그들의 음악 속에는 분명 진한 블루스와 포크 록의 감성이 녹아 있었던 것처럼, 하트의 음악들도 1970년대의 음악들에서는 그 특색이 가장 두드러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하트는 1970년대 말의 슬럼프를 딛고 1980년대 주류 팝 씬에서 제 2의 전성기를 보내던 무렵에는 그 초기의 특색을 잃어버렸던 것처럼 기억될 수도 있다. 그들의 1970년대는 잘 모른채 1980년대의 히트곡인 ‘These Dreams’(1985)나 ‘‘Alone’(1987)과 같은 팝/록 발라드, 그리고 그 당시의 히트 앨범들만으로 하트를 기억한다면 당연한 추론이자 귀결이다. 그러나 헤비메틀 씬이 대중화를 일으키기 시작하기 전, 이 당시 록 밴드들이 주류에서 생존하는 데 있어 신시사이저의 적극적 활용, 그리고 대중적 히트곡을 위한 주류 작곡가들과의 협업과 같은 명제는 피하기 힘든 부분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런 메이저 레이블의 압박이라는 조건 속에서도 나름 팝/록의 근간을 제대로 지켰던 음반을 냈다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얼터너티브 록이 다른 모든 록 장르를 ‘구식처럼’ 만들었던 시대가 지나가고, 다양한 록 장르들이 이젠 주류부터 인디까지 고유의 개성을 지키며 각자의 생존법을 모색하는 2010년대에 그들이 지난 앨범 [Red Velvet Car](2010)로 자신들의 생존과 음악적 기개가 저물지 않았음을 보였을 때, 미국 음악 팬들은 빌보드 앨범 차트 10위 등장이라는 화답으로 그 복귀를 반겨주었던 것이다. 비록 우리는 한동안 하트를 잊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미국에서는 하트의 위상은 그만큼 클래식 록, 올드 팝 팬들에게 절대적이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준 순간이었다.


40년 가까이 미국 록 씬에서 두 번의 전성기와 함께 그 이름을 지켰던 하트의 음악 여정
  물론 하트의 역사가 두 자매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맞지만, 이 밴드의 전신이었던 디 아미(The Army)는 사실 1963년에 워싱턴 주에서 처음 결성된 팀이었다. 이 밴드는 이름을 호커스 포커스(Hocus Pocus), 화이트 하트(White Heart) 등으로 개명해 활동하다가 결국 1970년대 하트로 밴드 이름을 줄이면서 새 보컬리스트를 뽑는 오디션을 실시했다. 여기에 시애틀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프로 보컬리스트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던 앤 윌슨이 응해 최종 선발된 것이 현재

우리가 아는 하트의 진정한 출발점이라 봐도 무방하다. 앤은 밴드 가입 후 당시 기타리스트였던 마이크 피셔(Mike Fisher)와 사랑에 빠졌고, 마이크가 베트남전 군 징집을 피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도피하자 앤이 나머지 멤버들을 설득해 아예 밴드의 활동 근거지를 밴쿠버로 옮겨버렸다. 이 때가지도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던 앤의 여동생 낸시 윌슨은 대학생이 된 이후 일단 솔로 포크 싱어로 활동을 시작했으나, 1974년에 본격적으로 밴드에 합류했다. 그녀가 기타리스트로 가입을 하면서 마이크는 그룹 활동의 일선에서 물러났고, 그 후 두 자매는 밴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존재로 부각되며 밴드를 밴쿠버 지역의 인기 밴드로 올려놓았다. 

  이 때, 그들의 활동을 지켜봤던 프로듀서 마이크 플리커(Mike Flicker)가 데모 테이프를 만드는 것을 지원해주면서 그는 결국 밴드의 전담 프로듀서로 하트의 활동을 지원해 주기 시작했다. 결국 1975년 머쉬룸/캐피톨(Mushroom./Capitol)레이블과 계약을 맺고서 첫 앨범 [Dreamboat Annie](1976)을 제작했고, 이 앨범에서 ‘Crazy on you’, ‘Magic man’, ‘Dreamboat Annie’가 연이어 히트를 거두면서 단숨에 캐나다를 넘어 고국인 미국 시장에서까지 스타덤에 올랐다. 강력하지만 멜로디가 강조된 하드 록 트랙들과 컨트리 포크의 감성도 포함된 음악들이 섞인 이 앨범은 현재까지도 음악적으로 그들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명반이자 1970년대 록의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캐나다에서 더블 플래티넘, 미국에서 플래티넘 디스크를 기록했다.) 1년 후 레이블을 소니뮤직(당시는 CBS) 산하 포트레이트(Portrait)로 옮겨 발표한 2집 [Little Queen](1977) 역시 그들의 성공을 계속 이어주었는데, 그들의 곡 가운데 가장 헤비한 리프를 가진 싱글이었던 ‘Barracuda’와  ‘Little Queen’ 등이 히트를 거두며 미국 내에서만 3백만 장 이상을 파는 대 히트를 거뒀다. 

  하지만 팝 음악계에는 한창 디스코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었고, 모든 클래식 록 밴드들이 그 때문에 휘청대던 시기에 하트는 계속 기존 남성 멤버들의 탈퇴와 새 멤버들의 가입이 이어지는 어지러운 내부 사정을 겪었다. 이전 레이블이 그들이 남긴 음원으로 만든 애매했던 3집 [Magazine](1978), 싱글 ‘Straight On’과 타이틀 트랙이 준수한 히트를 거두었던 4집 [Dog & Butterfly](1978)까지는 그래도 사정이 좋았다. 하지만 1980년대로 넘어오면서 발표한 5집 [Bebe Le Strange]는 싱글 ‘Even It Up’과 골드 레코드 히트에 그쳤고, 1981년에 발표한 첫 라이브 앨범 [Greatest Hits Live]에 이어 내놓은 두 장의 앨범들 – [Private Audition](1982), [Passionworks](1983)은 각각 싱글이었던 ‘This Man Is Mine’과 ‘How Can I Refuse’ 정도를 빼고는 그리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실패의 기간으로만 치부될 수는 없었던 시간이었다. 83년 앨범부터 레코딩에 참여한 새 멤버 두 사람이 밴드의 색깔에 좀 더 메인스트림 록의 기운을 넣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새 베이시스트와 드러머가 된 마크 안데스(Mark Andes)와 데니 카마시(Denny Carmassi)는 각각 팝/록 밴드 파이어폴(Firefall)과 몬트로즈(Montrose)에서 활약했던 멤버들로, 더욱 안정되고 스트레이트한 1980년대 주류 AOR분위기의 사운드로 밴드의 음악을 바꿔 놓았다.

  포트레이트에서 방출된 후 다시 첫 번째 앨범을 냈던 캐피톨 레이블로 돌아간 하트는 ‘심플하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로 8집 [Heart](1985)를 셀프 타이틀로 발표했다. 바로 여기서부터 그들의 제2의 전성기가 펼쳐졌다. 그들은 다른 주류 록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좀 더 적극적으로 MTV를 공략했다. 당대의 뉴 웨이브/신스 팝 밴드들의 원색적 분위기를 뮤직비디오에 가미했고, 사운드 역시 로킹함은 리듬 파트의 탄탄함으로 유지하되 건반 사운드를 강조하여 싱글 트랙들에선 과거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의 하트를 연출한 것이다. ‘What about love(10위)’, ‘Never(4위)’ 등 오랜만에 그들에게서 Top 10 싱글들이 터져나왔고, 세 번째 싱글이자 낸시가 리드 보컬을 맡았던 정말 부드러운 록 발라드 ‘These dreams’가 최초로 밴드에게 빌보드 Hot 100 1위의 영예를 안겨주면서 그들은 확실하게 후배 팝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화려한 메인스트림 복귀에 성공했다.

  이어서 발표된 두 장의 앨범들 – [Bad Animals](1987), [Brigade](1990) – 은 그들의 당대의 인기를 지속하게 해준 작품들이었고, 전자에 담긴 록 발라드 ‘Alone’이 싱글 차트 3주 1위와 함께 세계적 히트를 거두면서 지명도 역시 최고조로 올라갔다. 후자에서도 ‘All I Wanna Do Is Make Love to You(당시 국내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라이선스 음반에 담기지 못했으나, 라디오 방송에서는 꾸준히 소개되었다는 것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음)’가 2위를 기록하며 팝 메탈/헤비메탈의 중흥기였던 1990년대 벽두까지 그들의 인기도 지속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20년 이상 지혜로운 생존법을 터득했던 하트에게도 시련은 닥쳐왔다. 한동안 극악의 체중관리로 겨우 유지했던 앤의 몸은 점점 불어가기 시작했고, 1993년 앨범 [Desire Walks On]은 싱글 ‘Will You Be There (In the Morning)’이 40위권에 진입한 것 외에는 전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모두가 자신들의 고향 후배들인 그런지 록밴드에 빠진 시기였기 때문이었고, 80년대에 그녀들을 보좌한 멤버들이 하나 둘씩 곁을 떠나던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낸시마저 결혼 후 육
아를 위해 시간을 갖기로 결심하면서 몇 년간의 휴식을 가지면서 하트의 역사는 어쿠스틱 라이브 앨범 [The Road Home](1995)으로 끝을 맞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도 낳았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 두 자매는 비정기적으로 자신들의 어쿠스틱 프로젝트 팀 러브몽거스(Lovemongers)를 통해 가끔씩 얼굴을 비추었고, 90년대 말에는 투어를 다닐 수 없는 낸시의 상황을 감안해 낸시가 없는 라인업으로 하트의 투어를 앤 혼자서 이끌기도 했다. 

  그 후 낸시가 돌아오고 다시 밴드가 새 멤버들로 정비되어 밴드가 세 번째 출발점에 선 것은 지난 2002년부터였다. 그 후 2년 뒤에 공개한 12번째 정규 앨범인 [Jupiter’s Darling](2004)은 그들의 인기를 바로 회복시켜주진 못했지만, 아직 두 자매의 보컬과 송라이팅 능력이 녹슬지 않았음을, 그리고 ‘Oldest Story in The World’등 강력한 트랙들로 다시 포크 록에 기반한 하드 록으로 회귀하는 방향성을 처음 제시한 음반이었다. 그리고 지난 2010년 소니 레거시(Legacy) 레이블로 복귀해 처음 발표했던 13번째 앨범 [Red Velvet Car]는 ‘There You Go’나 ‘WTF’ 등 더욱 그룹 음악의 초기 원류로 돌아간 듯한 자연스럽고 빈티지한 사운드, 어쿠스틱 사운드의 적절한 활용을 통해 더 이상 라디오에서의 반응을 의식하지 않는, 진정한 록 팬들을 위한 밴드로 돌아온 하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2년 현재 두 자매의 곁을 지키는 멤버들은 2000년대부터 그들과 함께 했던 드러머 벤 스미스(Ben Smith), 기타리스트 크렉 바톡(Craig Bartock), 키보디스트 데비 세어(Debbie Shair), 그리고 올해 새로 가입한 베이시스트 댄 로스차일드(Dan Rothchild)다.


앤-낸시 자매의 오랜 음악적 내공이 더욱 강렬하고 원숙하게 진화하고 있는 신작
[Fanatic]


  두 자매와 밴드에게는 통산 14번째 정규 앨범이 되는 새 앨범 [Fanatic]은 지난 앨범 발표 후 가진 투어 속에서 그들이 묵었던 호텔 방에서, 그리고 캘리포니아 지역의 여러 스튜디오를 거치며 그래미를 수상한 바 있는 프로듀서 벤 밍크(Ben Mink)의 손으로 다듬어졌다. 수록곡은 요새 대부분의 새 앨범의 분량을 생각한다면 달랑 10곡에 불과할 지 모르지만, 이 음반은 1990년대를 끝으로 하트에 대한 정보를 접하지 못했거나, 2000년대 이후의 그들의 음반을 전혀 듣지 못했던 음악 팬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안겨줄 작품이다. 물론 여기서 ‘충격’이라 함은 ‘긍정적 충격’을 말한다. 그들의 1970년대 음악적 뿌리인 포크 록과 블루스에 기반한 하드 록에 충실한, 그러나 자신들이 나이를 먹었음을 잊지 않는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사운드 면에서 ‘날것과 같은 거친 매력’을 선사한다. 후배 밴드들의 개러지 무브먼트를 통한 선배들의 트리뷰트와는 질적으로 다른 진짜 ‘클래시컬한 하드 록’이 무엇인지 목소리와 음악으로 시범을 보인다, 

  인트로부터 범상치 않은 타이틀 트랙이자 첫 곡 ‘Fanatic’은 사랑과 예술, 진실, 그리고 믿음 등 그들이 마음을 두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항상 ‘광적이었던’ 윌슨 자매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린 곡이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모두의 예상을 깨는 이런 블루지 리프 중심의 파워풀한 하드 록 트랙을 2012년에 듣는다는 것도 반갑지만, 그리 과거에 뒤처지지 않는 파워를 선보이는 앤의 보컬 역시 매력적이다. 군인 가정에서 태어난 자신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아버지의 시선으로 전쟁에서 귀향한 군인의 마음을 그려낸 ‘Dear Old America’는 로버트 플랜트나 지미 페이지가 듣는다고 해도 만족할 만한 스트링과 기타-드럼 연주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마치 하트가 제작한 제플린의 ‘Kashimir’의 트리뷰트이자 속편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자신들의 투어 버스 운전사의 깡마르고 노쇠한 모습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Skin And Bones’는 루츠/블루스 록의 기초 위에서 강한 기타 사운드와 드럼 비트의 거친 매력이 잘 살아있는 매력적인 트랙이며, 일렉트로닉적 감각을 살짝 더했지만, 사운드와 비트는 헤비 록에 가까운 응집력을 보여주는 ‘Million Miles’, 다시 한 번 제플린의 향기를 강하게 내뿜으며 파워 코드 연주와 스트링의 격정을 동시에 들려주는 드라마틱한 트랙 ‘Mashallah’, (마치 1980년대 어떤 한국 헤비 록 밴드의 음반에 쓰여있었던 문구에 빗대어 말하자면) ‘블랙 키스(The Black Keys)와 화이트 스트라입스(The White Stripes)를 지옥으로 보내주마!’를 외치는 것 같은 원초적 하드 록의 에너지를 들려주는 ’59 Church’까지 앨범의 하드한 트랙들은 그간 쉽게 맛보지 못했던 밴드의 초창기의 마력을 21세기 버전으로 선사한다.

대표곡 들어보기



  한편, 캐나다를 대표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새라 맥라클란(Sarah McLachlan)을 초대해 함께 듀엣으로 노래하는 포크 록 트랙 ‘Walkin’ Good’, 어쿠스틱 밴드 세팅을 근간으로 오직 낸시의 일렉트릭 연주만을 곁들여 자신들의 초창기 밴쿠버 시절을 회상하며 노래하는 하드 록 발라드 ‘Rock Deep (Vancouver)’, 앤의 보컬부터 모든 파트가 일렉트릭 기타의 잔잔함에서 묵직한 긴장감으로 점층되는 흐름을 뒷받침하며 한 편의 송가적 분위기를 만들어낸 ‘Pennsylvania’, 그들의 1970년대 대표곡들의 위엄에 그리 뒤지지 않는 스케일 큰 대미를 장식하는 어쿠스틱 사운드 중심의 헤비 슬로우 록 ‘Corduroy Road’ 등 밴드의 부드러운 면을 대변하는 곡들도 2000년대의 앨범들을 능가하는 거칠고 고전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물론 이런 사운드의 앨범이 갑자기 젊은 음악 팬들의 반응을 일으켜 하트를 세 번째로 메인스트림의 정상에 올려줄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이것은 유행에 따른 음악이 아닌, 정말 고전적 사운드의 본질에 충실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음악은 40년 내공을 지닌 앤과 낸시 자매만이, 아니, 하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운드였기에, 그런 하트의 신곡들을 2012년에 이렇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클래식 록 팬들에겐 올해 최고의 선물 중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하다.


2012. 9 글/ 김성환 (Music Journalist – Hottracks/Paranoid/100Beat Contribu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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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글스의 싱어 수잔나 홉스가 정말 오랜만에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 오는 7월 21일 발표할 그녀의 세 번째 솔로 앨범 [Someday]는 거의 16년만의 신작인 셈. 새 앨범 발매를 기념하면서 여러 관련 사이트들을 통해 그녀는 앨범 속 신곡 일부를 미리 맛배기로 듣고 다운로드 받아갈 수 있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 여기 그 두 곡을 포스팅 해놨으니, 들어보시고 맘에 드시면 엠베딩한 창의 'Download Now'를 힘차게 클릭하시기 바란다. 작년 뱅글스 새 앨범도 괜찮았는데,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는 언제나 맘에 들 뿐더러 곡도 괜찮은 것 같다.

 

Always Enough



Pictur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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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년 엘에이 리드-베이비페이스 콤비의 프로듀싱으로 완성한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을 통해서 단숨에 스타덤에 올라 <Superwoman>, <Secret Rendezvous>, <Romantic> 등을 히트시켰던 여성 보컬리스트 캐린 화이트의 17년 만의 새 앨범. 여전히 그녀 목소리는 듣기 좋구나. 
 


Karyn White - Carpe Diem Pla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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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프로파일 17탄 - Prince
 
  사실 1980년대 초, 중반까지만 해도 프린스라는 뮤지션은 (우리에게는 물론이고) 서양에서도 조금은 왜곡된 인식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성적 자극이 강조된 노랫말, 뮤직비디오에서 느껴지는 퇴폐적인 이미지는 그를 단순히 시각적 이미지로 어필하려는 ‘연예인’으로 보게 만들기 충분했으며, 특히 ‘사전 심의’라는 이름으로 음악의 표현의 자유에 무자비하게 칼을 휘둘러대던 대한민국의 1980년대에서 그의 앨범들은 매번 최소 한 두 곡 이상의 금지곡을 삭제한 채 불완전한 모습으로 발매되는 경우가 많았다(그 금지곡들까지 듣고 싶어 중학생 때 서울 세운상가까지 상경(?)하여 기어이 [Purple Rain]의 낡은 수입 원판 LP를 구했던 개인적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또한 당시 국내 음악 매체들에서까지도 프린스는 음악 분석의 대상이기보다는 항상 ‘그가 또 누구를 유혹했다’는 가십들로 더 많이 지면을 장식한 스캔들 메이커였다.

  그러나 프린스가 그런 단편적 가십들로는 결코 평가할 수 없는 탁월한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임은 분명하다. 당시 음악 기사들에서 그에 대해 언급할 때 항상 상투적으로 등장했던 "스물 몇 가지의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뮤지션"이라는 표현은 (물론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임에도) 지금 생각해보면 좀 손발이 오그라들긴 한다. 하지만 그는 (이제 30년을 훌쩍 넘긴) 화려한 커리어 속에서 소울과 훵크와 블루스의 전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동시에 백인 록의 감각까지도 당의정(糖衣錠)으로 입힐 줄 아는 사운드의 미학을 지속적으로 선보였다. 프린스를 제외하고 당대에 과연 누가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처럼 무대에서 블루지한 록 기타를 휘두르는 동시에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이 부럽지 않은 무대 위의 ‘Sex Machine’으로 빙의할 수 있었던가. 사실, 이런 비유들 따위로 왈가왈부할 것 없이 대표곡 ‘Purple Rain’의 8분이 넘는 풀 버전을 한 번 감상해 보면 그의 음악이 가진 기본적 뼈대를 잘 파악할 수 있다. 백인들도 반했던 선이 분명한 멜로디 속에 그만이 낼 수 있는 독특한 끈적함이 담긴 섹시한 보이스, 그리고 진한 기타 선율 속에서 현대 대중음악의 본류는 분명 흑인들에게서 왔음을 다시금 확인하게 될 것이다. 

  미네아폴리스를 여전히 영원한 고향으로 여기고 살아가는 프린스가 약관의 나이로 메이저 레이블 워너 브러더스와 계약을 맺고 데뷔한 것이 1978년이다. 그는 데뷔작 [For You]에 이어 나중에 샤카 칸(Chaka Khan)
의 커버 트랙이 더 히트했던 ‘I Feel for You’가 수록된 셀프 타이틀 앨범 [Prince](1979)로 흑인 음악 씬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긴 했지만, 결국 그가 현재와 같이 음악적 추앙을 받는 아티스트로 인정받게 된 앨범은 당연히 1980년대에 발표한 3장 - [1999](1983), 사운드트랙 [Purple Rain](1984), 그리고 [Sign O' The Times](1987)이라고 말할 수 있다.

  먼저 ‘Little Red Corvette’과 ‘1999’를 통해 제대로 스타덤을 맛보게 해준 [1999]에서 프린스는 소위 ‘일렉트로 훵크(Electro-Funk)’라고 정의할 만한 자신만의 트레이드마크 사운드를 확고하게 구축했다. 그리고 흑인 아티스트가 남긴 기막힌 록 필름으로 기록된 영화 [퍼플 레인]의 사운드트랙 성격의 앨범 [Purple Rain]은 그를 최강의 팝 아티스트로 평가받게 만든 역작이었다. ‘When Doves Cry’, ‘Let's Go Crazy’ 등 5곡의 톱 40 히트곡을 양산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마이클 잭슨과는 다른 관점에서 백인 팝의 말랑함에 허리를 굽히지 않는 크로스오버의 진수를 보여줬다는 것이 이 앨범의 핵심적 매력이었다. 그리고 당시 앨범이 국내에 소개되지 못해 기억 속에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Sign O' The Times]는 프린스가 1980년대에 선사한 모든 음악적 실험의 스펙트럼들을 펼쳐 보이면서도 대중적 매력도 잊지 않았던 멋진 더블앨범이었다. 시나 이스턴(Sheena Easton)과의 듀엣 ‘U Got the Look’과 ‘I Could Never Take the Place of Your Man’의 훵키 록 비트의 매력은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다.

  물론 프린스는 항상 자신의 음악적 기반을 바탕으로 꾸준한 사운드 실험을 했고, 그에 따라 원 맨 밴드의 형태로 활동하기도 했었고, 1980년대에는 레볼루션(Revolution)이라는 백밴드를,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는 뉴 파워 제너레이션(New Power Generation)이라는 백밴드를 대동하는 변화도 시도했었다. 그가 'Cream'과 타
이틀 트랙을 히트시켰던 [Diamonds and Pearls](1991)와 또 하나의 명곡 '7'을 낳았던 [Love Symbol](1992)를 발표한 이후, 그러니까 확고한 음악적 자유를 쟁취한다는 목표로 때늦은 투쟁을 하느라 1980년대의 화려한 기운을 1990년대에 놓쳐버린 이후, 과거의 탁월한 창작력이 많이 소진한 느낌도 있긴 하다. 그러나 자신의 레이블 NPG로 음반을 배급하는 2000년대로 넘어와 발표했던 [Musicology](2005)가 더블 플래티넘이라는 인기와 그래미 2개 부문 수상이라는 영예를 얻게 해주었던 걸 생각해보면, 프린스가 정말 칼을 갈고 만든 음반은 언제든 걸작으로 등극할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인기라는 측면에서는 화려했던 1980년대를 더 이상 재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프린스가 지난 30여 년간 흑인음악 원류의 정통성을 자신만의 독창성으로 체득해 이후 흑인 음악의 변화를 이끈 1980년대의 진정한 아이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 힙합이 서서히 주류로 진입해 들어오고, 말랑한 크로스오버 알앤비 히트곡들이 사라진 자리에 훵키 리듬의 매력이 다시 돌아오는 데에 그의 음악이 미친 영향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마이클 잭슨이 흑인음악을 1980년대에 주류 팝 시장에서 외형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세계 음악 시장에서 주류가 되도록 기여한 아티스트라면, 프린스는 그렇게 세계화된 흑인음악의 뿌리와 줄기가 무엇인지를 가장 쉽게 대중에게 알려주고 후대 뮤지션들의 존경 속에 계승되도록 만든 아티스트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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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와 산소의 화학적 결합처럼
 
  현재 전 세계 어디에서든 흑인이 아닌 사람들이 알앤비나 소울을 자신의 음악을 표현할 장르로 삼는다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그러나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흑인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이 사운드를 백인들이 그대로 시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주목할 사건이었다. 결국 라이쳐스 브라더스(Righteous Brothers), 래스컬즈(Rascals), 박스 탑스(the Box Tops), 미치 라이더(Mitch Ryder) 등의 선구적 뮤지션들의 활약으로 그러한 시도는 흑-백 모두에게 인정 받는 하나의 서브 트렌드로 변모하였다. 이를 가리켜 우리는 푸른 눈을 가진 이들(백인)의 소울 음악, 즉 블루 아이드 소울(Blue Eyed Soul)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흐름을 70년대와 80년대 중-후반까지 이어가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던 듀오가 이 앨범의 주인공 대릴 홀과 존 오츠(Daryl Hall & John Oates)다. 지난 1984년 미국 음반협회(RIAA)로부터 역사상 가장 (음반판매량으로) 성공한 팝 듀오로 공인 받은 이 듀오는 당대의 흐름에 맞게 소울의 기본 틀에 백인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다른 트렌드 - 하드 록(Hard Rock)이나 뉴 웨이브(New Wave) - 들을 적절히 융합했고, 이것으로 인해 흑-백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대중성과 음악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펜실바니아 포츠타운 출신인 대릴 홀과 뉴욕 출신의 존 오츠는 대학시절인 1967년에 처음 만나 서로 흑인 음악에 대한 애정이 같음을 확인한 후 함께 음악활동을 하기로 다짐했고, 그 결의는 2년 후 두 사람이 필라델피아에서 다시 만나 실천에 옮겨졌다. 일단 2집 [Abandoned Luncheonette](1973)과 'She's Gone'으로 자신들의 이름을 대중들에게 조금 인식시켜준 이들은 75년에 나온 4번째 셀프 타이틀 앨범에서 싱글 'Sara Smile'이 처음 Top 10 히트를 거두며 대중에게 인정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진정한 스타덤은 1980년대 벽두에 들어선 시점에 발표한 앨범 [Voices]에서 시작되었다. 라이처스 브라더스의 고전 ‘You've Lost That Lovin' Feeling’, 폴 영(Paul Young)에 의해 리메이크되는 ‘Every Time You Go’가 수록된 이 앨범을 통해 이들은 전세계적 인기 듀오로 거듭났다. [Private Eyes] (1981), [Big Bam Boom](1984) 등 4장의 앨범에서 연이어 1위 싱글을 내놓으며 1980년대 중반 대릴 홀이 솔로로 나서며 휴식기를 가지기 전까지 그 열풍은 이어졌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최고작으로 [Voices]를 꼽고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 리뷰를 통해 이 앨범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들이 다른 블루아이드 소울 그룹들과 차별화된 가장 큰 특징인 ‘록과 트렌드의 반영’을 이 앨범이 가장 잘 담아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트렌드’란 80년대 초반을 강타한 어덜트 록/신스팝 등을 말한다.) 대히트 싱글 ‘Maneater’의 리듬감은 분명 60년대 필리 소울에 있지만, 대릴 홀의 보컬은 소울풀한 느낌을 과거에 비해 줄이고 건조함을 늘인 것이 특징이다. 소울 보컬 하모니는 받쳐주고 있지만 과감하게 소울 리듬보다 록 비트에 의지한 ‘Art of Heartbreak’, 아예 더욱 뉴웨이브 분위기에 기댄 록 트랙 ‘Family Man’이 앨범의 그런 특징을 잘 설명한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을 자칭 ‘Rock & Soul’이라 일컬었듯, 신시사이저 연주로 블루 아이드 소울 편곡의 매력을 극대화하고 대릴의 절창이 빛나는 앨범의 베스트트랙 ‘One on One’과 건반 연주와 중반부의 기타 솔로가 매력적인 소울 록 발라드 ‘Open All Night’ 등은 왜 이들이 블루 아이드 소울의 진정한 계승자였는가를 새삼 확인시켜준다.

대표곡 듣기


비록 이제 두 사람은 과거의 영광은 뒤로한 채 공연 활동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들이 1980년대 초반에 남긴 5-6장의 음반들은 다른 당대의 아티스트들이 넘볼 수 없었던 고유의 독특한 사운드로 팝 역사 속에 남아있다. [H2O]란 앨범 타이틀처럼 두 사람의 음악적 결합은 수소와 산소의 화학적 결합, 그 이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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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제가 다음뮤직-100Beat 원고로 작성한 글입니다.


헤어 메탈 시대의 마지막 전성기를 대표했던 대중친화적 사운드의 결정체
 
  본 조비(Bon Jovi)가 제대로 된 스타덤을 얻은 1986년을 기점으로 그들처럼 주류에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싶어하는 헤비메탈 밴드들(일명 '헤어 메탈(Hair Metal), 글램 메탈(Glam Metal)' 밴드라 불리기도 했다)은 좀 더 라디오친화적인 깔끔한 멜로디라인과 보컬 하모니의 활용, 매끈한 사운드 프로듀싱, 그리고 자신들의 외모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이미지 메이킹으로 소위 80년대 초반 'L.A. 메탈'의 기본 스타일을 계승하면서도 록 차트를 넘어서 팝 차트에서까지 막강한 인기도를 확보해나갔다. 포이즌(Poison), 신데렐라(Cinderella) 등이 그 흐름을 대표하며 차트에서 순항했고, 이 분야의 원조(?) 머틀리 크루(Motley Crue)는 그들의 초기에 보였던 이미지 메이킹의 과격함을 누그러뜨렸으며, 이어서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 등의 경우에서 보듯 선배 메탈 밴드들 역시 주류에서의 인기도 확보를 위해 어느 정도 그 이미지의 속성을 활용한 사례도 많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늦둥이(?)로 1989년 메이저 레이블 콜럼비아(Columbia)를 통해 데뷔한 헤비메탈 그룹 워런트(Warrant)는 일부 골수 헤비메탈 마니아들에게는 한 때 지나친 대중지향적 사운드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적어도 당시의 메탈계의 트렌드를 음악 그 자체로 확실히 대표했다는 점에서는 1980년대 록 씬을 논하며 고찰할 필요는 있는 팀이라 생각한다. 1984년 기타리스트 에릭 터너(Erik Turner)와 베이시스트 제리 딕슨(Jerry Dixon)을 주축으로 결성된 워런트는 1986년 보컬리스트 제니 레인(Janie Lane), 또 한 명의 기타리스트 조이 알렌(Joey Allen)이 새로 가입하고 드러머 스티븐 스위트(Steven Sweet)가 가입하면서 확실한 라인업이 정착되었다. 그리고 데모 테이프가 페이슬리 파크(프린스가 설립한 레이블), A&M에서 퇴짜를 맞았음에도 결국 1988년 대형 메이저 레이블에 소속되는 행운을 얻었다. 그리고 1988년 발표했던 본 앨범, 그리고 1990년 말 발표한 2집이자 타이틀 트랙과 'I Saw Red', 'Uncle Tom's Cabin' 등을 연이어 히트시켰던 [Cherry Pie]를 모두 2백만 장 이상 판매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그런지 록 시대에 내놓은 헤비하면서 진지해진 3집 [Dog Eat Dog](1992)가 상업적 실패를 거두면서 대중의 시선에서 서서히 잊혀졌고, 그 후 해체와 재결합, 멤버 교체 등을 거쳐 지금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현재는 보컬을 제외하고 모두 원년 라인업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밴드의 '얼굴'이자 송라이터 역할도 했던 보컬리스트 제니는 2008년 그룹을 다시 탈퇴했고, 올해 8월 11일, 캘리포니아의 어느 호텔방에서 알코올 중독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그들의 데뷔작인 본 앨범 [Dirty Rotten Filthy Stinking Rich]는 1980년대 후반 헤어 메탈, 글램 메탈이 어디까지 대중친화적으로 매끈하게 다듬어졌는가를 확인하는 데 완벽한 표본이 되어줄 음반이다. 헤비메탈의 금속성은 유지되었지만 너무 말끔하게 다듬어진 사운드 어레인지, 그리고 꽃미남 보컬 제니의 기교는 많지 않지만 고음과 저음에서 모두 만족스러운 가창력, 그리고 멤버들의 안정된 연주력은 '메탈'을 넘어 10곡의 깔끔한 'Popular Song'을 완성해냈다. 가장 헤비한 편인 타이틀 트랙 'D.R.F.S.R.'과 싱글 지향적인 록 앤섬 'Down Boys', 흥겹고 신나는 멜로디 라인으로 빛나는 'Big Talk'와 같은 업템포의 곡들부터 당대 A/C 계열 팝송들보다도 더 깔끔하고 훌륭한 멜로디를 지닌 'Heaven'과 'Sometimes She Cries' 같은 파워 발라드까지 대중적 친밀도에나 음악적 완성도 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매력을 전하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앨범 대표곡 듣기


사실 이 음반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 듣게 된 것은 두 달이나 지나 너무 늦게 제니 레인의 부고를 접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인천에 있었던 전설의 음악감상실 '심지'에서 본 조비와 함께 그들의 음악은 리퀘스트 면에서는 최고를 달렸던 그들이지만, 이제는 과연 얼마나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며 현재의 30대-40대는 살고 있을까? 1980년대의 메탈 히어로들이 한 명씩 이렇게 떠나가는 소식을 들으며 다시금 그 때를 추억하는 건 그것이 아무리 신파적이라 해도 인지상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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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호령했던 메탈 형님들께서 최근 새로 앨범을 내시는 경우가 늘었다. 화이트 스네이크 형님들, 그리고 세바스찬 바흐도 그렇고. 메가데스 형님들도 신보가 나왔으니까. 그 가운데 지난 여름에 나온 데프 레파드의 라이브 앨범은 그들에게서는 역대 처음 나온 라이브 앨범CD라 더욱 관심이 갔다. 그들의 20년 역사가 이 두 장에 잘 정리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스튜디오 이펙트의 지원이 없이 세월의 간극을 그대로 노출해야 하는 조 엘리엇(Joe Elliot) 형님의 목소리가 간혹 노래들 곳곳에서 우리를 슬프게 하기도 하지만, 이 형님들이 지금까지 이렇게 활약해왔던 것만 해도 이제는 감사할 뿐이다. 제발 더 노쇠하기 전에 내한 공연좀 해주삼. 15년전 그런 어쿠스틱 쇼케이스 같은 거 말고...

뭐, 무슨 말이 필요있는가? 신나게 1980년대, 그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 보자.

앨범 수록곡들 들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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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제가 Daum 뮤직 - 100Beat 리뷰를 위해 작성한 원고입니다.


9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던 미국 아레나 록 간판 밴드의 최고 히트 앨범
 
하드록과 클래식 헤비메탈이 융성했던 197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등장한 아레나 록(Arena Rock) 트렌드는 1970년대 초반에 록계를 평정했던 선배 거물 록 밴드들의 음악들에 비해서 좀 더 라디오 친화적인 사운드를 추구했다. 그 출발점이라 봐도 좋을 보스턴(Boston)의 데뷔 앨범 [Boston](1975)을 시작으로, 이후 몇몇 (당시를 기준으로) 신진 하드록 밴드들은 데뷔 당시와 달리 당시 늘어나고 있던 앨범 록 트랙(Album Rock Track) FM 채널들은 물론 Top 40 채널에서도 통할만한 소위 '라디오 친화적'인 사운드로 변화를 시도했다. 명쾌한 멜로디 라인, 장황한 애드리브가 아닌 딱 짜인 리프와 간결하지만 인상적인 솔로로 정의할 수 있는 기타 연주, 그리고 종종 섞이는 파워 발라드 트랙들을 통한 여성 팬 층의 확보는 이런 밴드들의 공연에 점점 더 많은 관객들을 끌어 모았다. 또한 이들은 대형 경기장(Arena)을 도는 투어를 계속하며 뉴 웨이브와 신스팝의 물결이 득세했던 1980년대 중반까지도 적어도 미국에서만큼은 자신들의 스타덤을 지켰다. 이런 아레나 록의 대표적 거물 밴드로 보스턴 외에도 저니(Journey), 스틱스(Styx), 포리너(Foreigner) 등을 들 수 있겠는데, 그 가운데 경력상 가장 오랜 커리어를 갖고 있는 밴드가 바로 알이오 스피드웨건(REO Speedwagon)이다.

일리노이 주 시카고 출신의 알이오 스피드웨건은 191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미국에서 생산되었던 픽업트럭이자 불자동차의 명칭에서 그룹의 이름을 따왔고, 그 이름처럼 초기에는 매우 강력한 하드록 사운드를 추구했었다. 하지만 1970년대 중반에는 지금도 밴드를 지키고 있는 보컬리스트 케빈 크로닌(Kevin Cronin)이 잠시 밴드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우여곡절을 거치는 바람에 대중의 확실한 주목을 받기에는 많은 시간을 소비해버렸다. 다행히 1976년작 [REO] 앨범이 처음 록 팬들에게 인정받으면서 그 이름을 서서히 알려나갔고, 케빈의 맑고 멋진 울림을 가진 보이스를 바탕으로 확실하게 아레나 록 방향으로 선회하면서 [You Can Tune A Piano, but You Can't Tuna Fish](1978)에서 'Roll With The Changes'를 첫 Top 40 싱글로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들의 실질적인 전성기는 바로 이 앨범 [Hi Infidelity]가 1981년 빌보드 Top 200 앨범 차트에서 15주간 연속으로 정상을 차지하면서 찾아왔다. 그리고 그 대중적 성공가도는 [Good Trouble](1982), 또 하나의 그들의 대표 히트작이자 그들의 대표 발라드 'Can't Fight This Feeling'을 낳았던 [Wheels Are Turnin'](1984), 그리고 [Life As We Know It](1987)까지 어느 정도 지속되었다. 비록 그 이후 1990년대에 발표한 앨범에서는 과거의 영예를 지속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꾸준한 라이브 활동을 통해 그들을 기억하는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미국에서만 현재까지 9백만 장이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거뒀던 [Hi Infidelity]는 1980년대 록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세련된 대중성을 담보하면서도 동시에 록 앨범으로도 절대 모자람이 없는 작품이다. 이 앨범만큼 순수한 로큰롤의 에너지와 일반 팝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감성적 록 발라드의 균형이 조화를 이룬 작품도 사실 드물 정도다. 물론 국내 팬들에겐 넘버 원 싱글이자 파워 발라드의 전형을 제시했던 'Keep On Loving You'와 보컬 하모니와 후반부의 강렬한 기타 연주가 듣는 이를 사로잡는 'Take It On the Run', 특히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In Your Letter' 등 앨범의 소프트 트랙들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종일관 긴장을 유지시키는 드럼 비트 위에서 굴러가는 케빈의 시원한 보컬과 화려한 키보드와 기타의 솔로 배틀까지 록 트랙이 갖춰야할 매력을 고루 갖춘 첫 싱글 'Don't Let Him Go'와 일면 컨트리/서던 록의 리듬감을 동원하면서 심플한 경쾌함을 유지하는 'Out Of Season', 클래식 로커빌리 특유의 드라이빙한 매력을 하드록 타입으로 되살려낸 'Shakin’ It Loose' 등의 업비트 트랙들의 매력도 훌륭하다.

앨범 대표곡 듣기


한국에선 록 음악에 빠져드는 마니아들일수록 더 강력하고 헤비한 사운드나 얼터너티브/펑크/인디 록적인 가치와 태도를 가진 음악에만 매몰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앨범은 그런 리스너들에게 헤비함과 반항, 저항적 태도만이 로큰롤의 매력의 전부임은 아님을 음악 그 자체로 증명한다. 이 앨범은 '상업성'이라는 말에도 절대 부끄럽지 않을 퀄리티를 갖고 팝 차트를 호령했던 록 음악의 황금기를 다시금 추억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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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다음 뮤직과 100비트 사이트에 기고한 해당 앨범에 대한 제 리뷰입니다.


얼터너티브 록의 선구자이자 80년대 컬리지 록의 상징, 그들의 초기사운드의 진수를 담은 베스트 앨범
 
"우리 팬들과 친구들에게: 밴드 알이엠(R.E.M.)으로서, 그리고 오랜 세월 함께한 친구이자 동료로서, 우리는 오늘 밴드를 끝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이뤄냈던 놀라운 성과들과 (팬들에 대한) 큰 감사의 마음을 갖고 이 마지막 지점에서 떠납니다. 우리의 음악에 감흥을 얻으셨던 모든 분들에게, 우리의 음악을 들어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조지아 주 아텐스(Athens) 출신의 록 밴드 알이엠은 지난 9월 21일 밴드 공식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31년간의 역사를 마감했다. 모두의 예상을 깬 조용한(?) 퇴장이다. 어떤 거물 밴드들처럼 굿바이 앨범 발표 후 굿바이 월드투어만 1-2년 하는 팀과는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그런데, 그들은 1980년대 미국 록 평론가들이 여전히 명반으로 꼽는 데뷔작 [Murmur]를 내놓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요란함이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들의 상업적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Out Of Time], [Automatic For The People] 시기에도 그들은 언론에 자신들을 과시함은 전혀 없이 그냥 묵묵히 앨범을 내고, 투어를 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비록 드러머 빌 베리(Bill Berry)의 탈퇴 이후 상당 기간 고전을 겪었음에도) 31년간 그들이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음악을 하며 앨범이 흥행을 하건, 그렇지 않건 최선을 다해 록 팬들과 소통했다. 그렇기에 'Losing My Religion', 'Shiny Happy People', 'Everybody Hurts' 등 그들이 남긴 중기 이후의 히트곡들은 그저 이 위대하지만 한 번도 위대함을 과시하지 않았던 록 밴드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 밴드가 록의 역사에서 갖는 가장 중요한 의의는 점점 하드함과 테크니컬함, 글램적 화려함이 록의 전부인 줄 알았던 1980년대에 크의 1차 폭발이 가졌던 의미를 계승하여 1990년대 미국 얼터너티브 록의 토대를 1980년대 칼리지 록이라는 기틀로 다졌다는 것에 둘 수 있다.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가 만드는 지적인 가사와 카리스마를 갖춘 보컬, 피터 벅(Peter Buck)의 개성만점의 기타 사운드, 포크와 개러지 록의 절묘한 조화 속에 전통과 모던함을 겸비한 알이엠의 음악은 우리가 빌보드 차트로 그들을 알기 훨씬 전부터 미국 대학생들의 열광적인 호응과 평론가들의 호평을 동시에 얻었다(그래서 그들의 1980년대 앨범들은 여전히 롤링스톤(Rolling Stone) 매거진이나 피치포크(Pitchfork) 등에서 조사한 이 시대의 명반 리스트에 다수 끼어있다).


지금 소개하는 이 앨범은 1988년 이들이 워너 브라더스 레이블로 이적하자마자 이들의 1980년대를 함께한 I.R.S. 레이블 시절의 대표곡 12곡을 콤팩트하게 뽑아 만든 이들의 최초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비록 이후에도 EMI 레이블은 90년대 초반에 발표한 [The Best Of R.E.M.]을 비롯해 몇 가지 초기 컴필레이션을 발표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앨범만큼 그들의 대표곡들을 아주 간결하게 들으면서도 그들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앨범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데뷔앨범 [Murmur]에 담겼던 'Radio Free Europe'이 들려주는 포스트 펑크적 분위기에서부터 'Talk About The Passion'과 '(Don't Go Back To) Rockville'에서 보여주는 포크-컨트리적 서정성이 이들의 초기 사운드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또 이들을 본격적으로 메인스트림에 진입하게 한 싱글 'The One I Love'와 이들의 숨은 베스트 트랙인 'Fall On Me'에서 보여준 군더더기 없는 연주 속에 담긴 우수는 마이클의 보컬의 매력을 최고로 끌어올린 트랙들이다. 한편, 마지막 트랙인 'It's The End OF The World As We Know It'은 이들이 항상 행동으로도 보여주었던 세상에 대한 비판적 지성을 풍자적으로 잘 결합한 가사와 흥겨운 리듬을 통해 역설적으로 묘사한다.

앨범 대표곡 듣기


대부분의 국내 알이엠의 팬들은 1990년대가 접어든 이후에야 그들의 전성기 앨범들로 그들에게 빠져든 경우들이 많다. 물론 진정한 알이엠의 골수 팬이라면 이미 이 음악들을 마스터했겠지만, 그들의 한창 때의 모습만을 기억하는 팬들이나, 학습으로만 그들의 뛰어남을 배운 록 팬들에게 이 앨범은 10년 전부터 그 뿌리는 이미 굳게 땅 속에 뻗어 있었음을 확인하는 증거가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록의 한 시대를 빛낸 한 밴드에게 경의를 표한다. 굿바이 알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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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글은 Daum 뮤직-100Beat 에 기고한 제 원고입니다.


'닭장용 음악'으로만 규정짓기에는 아쉬운 1980년대 유로 일렉트로 댄스 팝의 대표적 앨범


  평소에 주변의 열혈 마니아들처럼 MBC TV [무한도전]을 즐겨보는 것은 아니나, 지난 달 화제를 모았던 '서해안고속도로 가요제' 이후 이적과 유재석의 콤비인 '처진 달팽이'가 만들고 부른 '압구정 날라리'를 즐겨 듣고 있다. 1980년대 팝 음악을 아직까지도 즐겨 듣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이 곡은 음악적 완성도에 대한 면은 유보하더라도 1980년대 유로 댄스 팝을 추억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안성맞춤인 트랙이기 때문이다(방송에서 그들도 그런 콘셉트의 곡을 만들자는 의견을 초반부에 주고받았었다. 그런데 가사는 1990년대 압구정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조금 어색하다). 이런 1980년대 유로 댄스 팝(일명 '닭장 댄스 뮤직')에 대해서 매우 단순하고 반복적인 신시사이저와 일렉트릭 드럼을 활용한 리듬에 유흥만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곡들이라 폄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흥의 기능 역시 대중음악의 한 가지 속성임을 생각할 때, 이전 시대의 디스코를 기반으로 그에 딱 맞는 가볍고 경쾌한 멜로디와 리듬, 비트를 만들었던 1980년대 유로 댄스 팝 뮤지션들과 그들의 사운드에 대한 재평가는 분명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런 뮤지션들 가운데 지금까지도 우리 머리 속에 대표적으로 기억되는 존재는 누구일까? 아무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팀이 디터 볼렌(Dieter Bohlen)과 토마스 앤더슨(Thomas Anderson)으로 구성된 독일 출신의 댄스 팝 듀오 모던 토킹(Modern Talking)일 것이다. 한국에서 12인치 싱글로 발매되면서 이런 포맷의 음반 제작의 붐을 몰고 왔던 그들의 데뷔 싱글 'You're My Heart, You're My Soul'로 시작해 'Cherri Cherri Lady', 'Jet Airliner' 등 1985년부터 1988년까지 유럽과 아시아에서 연이어 히트 퍼레이드를 이어갔던 이들의 행보는 그 뒤를 이은 여러 댄스 팝 그룹들과 함께 1980년대 팝의 한 흐름으로 자리했었다. 그리고 그룹 활동 면에서도 이들은 (비록 10년 이상의 해체기가 있었다고 해도) 이들은 고향인 독일에서 최고의 댄스뮤직 밴드로의 위상을 놓치지 않았으며, 현재까지 이들의 앨범이나 싱글이 차트 10위 내에 들었던 국가는 약 27개국이 넘으며, 1998년 재결합한 이후 2003년 다시 해체할 때까지 발표했던 5장의 앨범들도 단지 과거의 영광에 의존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고유한 색채에 현재 유럽 클럽 트렌드에 발맞춘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보여주었다. 한 마디로 '유로 댄스 팝의 아이콘'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행보였다. 

  그 가운데 여기 소개하는 이들의 정규 3집 앨범 [Ready For Romance]는 그들의 여러 정규 앨범들 가운데 앨범 전체의 구성과 완성도 면에서 가장 '범 대중적인' 앨범이다. 소위 12인치 싱글 'Extend Version'의 축소 버전을 모은 싱글 컬렉션이 아니라, 앨범 버전으로 틀어도 FM 라디오에서도 바로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 만한 간결함의 매력을 이들이 제대로 이뤄낸, 그래서 앨범 단위로 들어도 전혀 질리지 않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앨범을 대표하는 두 곡의 대표적 싱글 'Brother Louie' (이 곡의 1998년 버전은 MBC TV [황금어장(무릎팍도사/라디오스타)]의 인트로로 사용 중)와 'Atlantis Is Calling (S.O.S. For Love)'이 있다. 사실 지금의 댄스 팝들에 비한다면 이 곡들의 BPM은 클럽에서 사용하기엔 조금 느린 감도 있다. 하지만 1, 2집에서 이들이 보여준 비트에 조금 여유를 주면서도 댄서블한 리듬감을 놓치지 않았고, 초기보다 더 세련된 신시사이저 이펙트의 활용은 지금 감상해도 당시의 다른 댄스 뮤직들에 비해 그리 촌스러움을 느끼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두 곡에 못지않게 당시 히트했던 'Doctor For My Heart'와 'Just We Two (Mona Lisa)'의 댄스 비트와 멜로디 구성도 앨범 전체의 흐름에 안정감을 준다. 또한 'Lady Lai'나 'Keep Love Alive'와 같은 신스 팝 발라드에서 보여주는 토마스 앤더슨의 가성과 진성을 오가는 로맨틱한 보이스 역시 앨범을 관통하는 매력이다.

  개인적으로 2010년대의 신시사이저-오토튠 가득한 최근의 일렉트로닉 댄스 팝을 듣다가도 자꾸 1980년대의 댄스 팝을 다시 찾게 되는 이유는 이 시대의 댄스 팝 속에 비록 기계음이지만 좀 더 인간적인 정감이 숨어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바로 모던 토킹의 이 앨범이야말로 그런 '따스함'을 흥겨움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묻히면 아까운 1980년대 댄스 팝 앨범이다.

[글: 김성환 대중음악 저널리스트, 월간 '핫트랙스 매거진'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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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있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집단 고고스의 역사

흔히 여성 멤버로만 구성되어 주류에 등장했던 최초의 록 밴드를 꼽으라면 작년에 영화로도 국내에 소개되었던 밴드이자 조운 제트(Joan Jett), 리타 포드(Lita Ford)라는 여성 로커들을 배출했던 런어웨이즈(Runaways)를 언급한다. 물론 정답이다. 그러나 그들은 바다 건너 일본에서의 폭발적 인기에 비해서는 미국 본토에서의 앨범 성적은 너무 초라했다.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너무 강력한 언더그라운드 하드 록-펑크를 구사했고, 뒤로 갈수록 사운드는 더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가 헛된 것은 아니어서, 그 이후 미국의 대중음악 매니지먼트는 여성들만으로 구성된 록 밴드도 상품성의 가치를 가짐을 확인하고 뉴욕의 언
더그라운드 클럽을 뒤져 제 2의 런어웨이즈가 될 팀을 찾았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1980년대의 전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빌보드 Top 200 앨범 차트 역사 이래 최초로 전원 여성 멤버로 구성된 록 밴드가 1위를 기록하는 이변을 연출했던 재능 있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집단 고고스(Go-Go's)가 세계에 알려졌다.

1978년 보컬리스트 벨린다 카라일(Belinda Carisle), 기타리스트 샬롯 캐피(Charlotte Caffey)와 제인 위들린(Jane Wiedlin)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고고스는 걸스쿨(Girlschool)과 텍스톤즈(Textones)와 같은 당시 언더그라운드 여성 하드 록 밴드들을 거친 베이시스트 캐시 발렌타인(Kathy Valentine), 드러머 지나 쇽(Gina Schock) 등으로 멤버를 정비하고 1981년 데뷔작 [Beauty And the Beat]를 히트시키면서 주류 입성에 성공했다. 다음 해 발표된 2집 [Vacation]까지 연이어 히트행진은 이어졌지만, 역시 20대 초반에 성공을 맛본 젊은 처녀들은 런어웨이즈 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돈과 환락의 맛에 빨리 빠져 들어버렸다(특히 보컬리스트 벨린다는 당시에 스케줄조자 제대로 지키기 힘들 만큼 술과 약물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3집 [Talk Show](1984)를 끝으로 밴드는 해체했고, 그 후 벨린다와 제인은 솔로로, 샬롯은 자신의 밴드 지레이시즈(G'Races) 등으로 활동하다 1990년대 초반 지금 소개하는 이 베스트 앨범을 위해 한정 재결합했다. 이후에도 서로의 소중함을 확인한 이들은 재결합 투어 활동을 이어갔고, 2000년대에는 4번째 앨범 [God Bless The Go-Go's]로 그들의 건재함을 과시한 후, 올해로 데뷔작 발매 30주년을 맞는 투어 'Ladies Gone Wild'로 미국 팬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이 베스트 앨범은 발매 당시 주요곡만 담은 1CD 버전, 2CD 버전으로 각각 발매되었다. 그 가운데 그들이 단순한 로큰롤 밴드가 아니라 1970년대 후반 뉴욕 언더그라운드 여성 펑크 록 씬에서 출발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 2CD 버전이 더 우수하다. 'Johnny Are You Queer', 'Remember (Walking In The Sand)'와 같이 그들이 지금도 라이브에서 자주 연주하지만 정규 앨범에선 찾을 수 없는 곡들이 여기 라이브 버전으로 담겨 있으며, 물론 앞서 언급한 그들의 싱글 히트곡들-'We Got the Beat', 'Our Lips Are Sealed', 'Vacation', 'Head Over Heels' 등-은 당연히 모두 수록되어 있다. 특히 그들 곡 가운데 가장 우울하고 강한 이미지를 가진 'Lust to Love'와 멤버들의 탄탄한 연주력을 보여주는 서프(Surf) 펑크 록 트랙 'Get Up And Go' 등은 꼭 챙겨 듣기를 바란다. 맨 마지막 세 곡은 당시에 새로 작곡, 녹음해 수록한 곡들이다.

그들과 뱅글스(Bangles) 이후에 아직도 주류에서 성공한 전원 여성 멤버 록 밴드가 없기에 데뷔 30년이 넘은 지금도 고고스의 록 역사에서의 가치는 빛난다. 50대 아줌마가 되어서도 여전히 로큰롤을 연주하는 이들이 정말 '나는 전설이다!'라 외칠 자격이 있지 않을까?


[글: 김성환 대중음악 저널리스트, Hottracks Magazine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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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발표된 컨템포러리 재즈계열 음반들 가운데 국내에서의 대중적 반응이나 개인적인 취향에서도 매우 만족했던 음반 중 하나. GRP레이블을 설립하면서 디지털 녹음 방식과 CD 포맷의 도입, 그리고 도시형 컨템포러리 재즈 지향을 추구했던 데이브 그루진은 이 앨범 속에서 신시사이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1980년대다운, 약간은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약간은 시크했을) 고유의 분위기를 풍겨냈다. 특히 1980년대에는 '황인용의 영팝스', '원종배의 영팝스' 프로그램이나 기타 여러 방송에서 이 앨범 속 음악들을 정말 많이도 시그널 뮤직으로 써먹었다. 바로 그 음악들을 아래에 모두 붙여보았으니 함 들어보시라. 나와 같은 시대에 음악을 들은 40대 분들이라면 무지 친숙할 것이니까. 



 

Dave Grusin & GRP All-Star Band - St. Elsewher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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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사이저로 멜로디와 목소리의 따뜻함을 담아내다
 
 
1980년대 팝 음악의 거의 모든 장르에서 사운드 편곡 면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대표적 특징을 꼽는다면 아마도 ‘신시사이저 활용의 보편화’라고 해야 정답일 것이다. 실제 주류 흑인 아티스트들의 펑키한 R&B 음악들부터 AOR/헤비메탈 밴드들의 사운드에도 신시사이저의 활용은 당시엔 필수 항목이었으니, 어쩌면 1980년대 전반부 팝 음악계를 지배했던 장르가 신스 팝(Synth Pop)이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1970년대까지도 아무나 구입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니었고, 공연을 위해 운반하기에도 매우 조심스러웠던 신시사이저는 전자 기술의 발달에 따라 점점 소형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악기를 갖고 혼자 자신의 음악을 완성해내는 원 맨 밴드 뮤지션들이 1980년대 일렉트로닉 팝 씬에서 다수 탄생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큰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그리고 2011년 현재까지도 자신의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뮤지션이 바로 하워드 존스라 할 수 있다.

  1953년 영국 태생인 하워드 존스는 14년간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하다 21살부터 언더그라운드 프로그레시브 록, 재즈, 훵크 밴드를 거치며 대중 뮤지션이 되었고, 어느 날 아내의 교통사고에 대한 보상금 대신 받은 신시사이저로 자신의 음악을 직접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완성된 첫 작품이 1984년 초에 발매된 데뷔작 [Human's Lib]이다. 이 앨범의 성공을 바탕으로 그는 2집 [Dream Into Action](1985), 3집 [One to One](
1986), 4집 [Cross That Line](1989), 5집 [In The Running](1992)까지 꾸준히 미국, 영국 Top 40 히트 싱글을 내놓는 대중적 뮤지션으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얼터너티브 록의 시대인 1990년대에는 그는 철저히 고전을 할 수 밖에 없었지만, [People](1998) 이후 자신의 레이블 디톡스(Dtox)를 설립해 [Revolution of the Heart](2005), [Ordinary Heroes](2009)를 내놓고 유럽 시장과 일본을 중심으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당시 해외 매체에서는 그를 ‘신스 팝 속에 따뜻한 인간미를 담는 뮤지션’이라는 문구로 자주 표현했다. 그 말대로 이 앨범을 듣게 되면 일부 색소폰 연주를 제외하고 모든 것이 신시사이저만으로 연주된 것임에도 (3집 이후부터는 편곡에 실제 악기의 비중을 늘렸다.) 그의 따뜻한 보이스와 깔끔한 멜로디 덕분에 당시나 지금이나 냉랭함이나 빈 느낌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앨범의 대표 히트곡 ‘New Song’이나 ‘What Is Love?’, 그의 초기 명곡 ‘Pearl In The Shell’ 등은 밴드 편곡의 감각을 원 맨 밴드의 신시사이저 연주로 치환할 수 있는 그의 재능을 확실히 증명한다. 또한 감성적 건반 터치와 보컬을 강조하는 발라드 - ‘Hide & Seek’, ‘Don't Always Look At The Rain’ 등 - 는 이후 그의 멜로디 메이커로서의 장점을 처음 과시했던 아름다운 곡들이다.

Listen!!


   세계적으로 대중적 히트는 ‘Things Can Only Get Better’나 ‘No One Is to Blame’이 담긴 2집이 더 크게 거두었지만, 그가 왜 아직도 1980년대의 대표적 신스 팝 뮤지션으로 기억되는가를 알고 싶다면 이 앨범을 꼭 들을 필요가 있다. [글: 김성환 대중음악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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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소녀가 남긴 80년대 틴 팝의 수작
 
로큰롤 역사의 출발점부터 항상 10대들은 항상 자신들의 '우상(Idol)'
을 찾았고, 항상 각 시대마다 그 세대에 맞는 새로운 팝 아이돌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1980년대로 접어들어 댄스 팝의 첫 번째 전성기가 도래하면서, 각 나라의 청소년들은 본격적으로 자신들과 같은 생각을 표현해 줄 ‘10대 아이돌’을 찾기 시작했다. 이에 각국의 뮤직 비즈니스도 발 빠르게 대응했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 뉴 키즈 온 더 블록(New Kids on the Block)을 만났었고,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를 만났으며, 현재는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를 만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당신의 기억 속에 남은 1980년대 틴 아이돌은 누구인가? 내한공연까지 하러 와서 음료수 광고를 찍고 간 티파니(Tiffany), 한국의 소녀들을 설레게 했던 토미 페이지(Tommy Page) 등이 당시에 10대였던 어른들에겐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동년배들을 뛰어 넘은 당대의 음악적 평가를 받았던, 비록 성년 이후에는 자신이 10대에 보여준 재능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지만 꾸준히 음악 활동의 길을 놓지 않는 한 소녀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바로 그녀가 데뷔 당시 만 16세였던 데비 깁슨(Debbie Gibson)이다.

그녀가 당시의 다른 10대 틴 팝 보컬들과 함께 인기를 얻으면서도 유독 음악적으로도 주목받은 이유는 작사, 작곡을 모두 그녀의 손으로 끝낼 수 있는 싱어-송라이터였다는 점이다. 1970년 뉴욕 태생으로 다섯 살 때부터 가사와 멜로디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던 이 소녀는 정식 음악 교육을 받으며 나중에 스튜디오를 집에 차리고 직접 데모 트랙을 만들어냈다. 그 재능을 간파한 아틀랜틱 레코드는 재빨리 그녀와 계약을 맺었고, 그 결과 발표된 데뷔 앨범이 미국 내 3백만 장, 세계적으로 8백만 장의 판매고를 올린 [Out of The Blue]였다.

사실 그 시절 국내에서는 이 음반보다 2집 [Electric Youth](1989)의 반응이 더 뜨거웠다. 아름다운 발라드 ‘Lost in Your Eyes’가 들어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앨범 전체의 유기적 통일성과 완성도 면에서는 이 음반이 더욱 완벽하다. 어려서부터 60년대 소울, 모타운 음악들을 좋아했었기에 그녀의 댄스 팝은 전자음의 도배가 아닌, 80년대 펑키 알앤비(R&B) 타입의 그루브가 잘 유지되고 있다. ‘Only In My Dreams’와 ‘Shake Your Love’에서 보여지는 퍼커션 비트는 매우 역동적이고, ‘Staying Together’에서는 기타 스트로크와 혼 섹션도 적절히 잘 섞어놓는다. 타이틀 트랙 ‘Out of the Blue'와 첫 넘버 원 싱글인 발라드 ‘Foolish Beat‘ 역시 소녀적 감수성의 산물로 보기에는 구성이 은근히 탄탄하다(이 곡은 프로듀싱까지 그녀가 다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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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아이돌 스타들이 그룹 활동 이후의 연예계 수명을 위해 자꾸 다른 분야에만 눈을 돌리는 현재 한국의 가요 씬을 보며, 데뷔 20년이 훨씬 지났어도 어쨌든 자신이 ‘음악인’으로 남고 싶다면 과연 무엇을 먼저 갈고 닦아야 하는지 이 앨범은 그 모범을 제시한다. [글: 김성환 대중음악애호가]


2011년 현재의 데비 깁슨과 티파니의 모습. 두 사람은 올 초 함께 Syfy채널의 오리지널 무비이자 어린이용 공상과학 코미디(?)에 주연을 맡았다. 근데 데비에 비해 컨트리 씬에 정착했다는 티파니는 좀 심하게 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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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출신 보사노바 재즈 팝 소울 보컬리스트의 출세작
 
  1980년대 후반 영국의 소피스틱 팝(Sophistic Pop: 당시 영국 쪽에서 유행한 부드러운 재즈 성향 리듬을 가진 메인스트림 팝. 소울의 도회적 분위기가 녹아있으며, 신시사이저가 중요한 악기로 사용된 점에서는 신스 팝/뉴 로맨틱스와도 연관성이 있다)과 삼바, 보사노바 리듬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준 여성 보컬리스트 바시아(본명 Basia Trzetrzelewska)는 폴란드 출신이라는 그녀의 특이한 출신성분(?) 덕분에 처음에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다른 영국의 전통적 여성 보컬들과 다른 톤의 변화가 변화무쌍하고 동구권의 느낌이 서린 그녀의 보컬은 재즈, 소울, 라틴을 커버하는 특유의 능력을 보였다.

  80년대 초반 영국으로 건너와 그룹 매트 비앙코(Matt Bianco)에서 활동하기도 했던 그녀는 한때는 연인이었고 지금도 음악적 동반자인 대니 화이트(Danny White)와 함께 밴드를 나와 바로 이 데뷔 앨범 [Time And Tide]를 발표했다(두 사람은 2004년에 다시 매트 비앙코의 리더 마크 라일리(Mark Reilly)와 함께 재결합 앨범 [Matt's Mood]를 내기도 했다). 이 앨범이 타이틀 싱글 ‘Time And Tide’의 히트로 영국을 넘어 오히려 미국 시장에서 플래티넘 레코드를 기록하면서 그녀의 음악은 차트 히트의 폭 이상으로 세계 팝 팬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이후 2집 [London, Warsaw, New York](1990)에서는 ‘Cruising For Bruising’이 당시 한국 FM방송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3집 [The Sweetest Illusion](1994)의 발표 이후 베스트 앨범 외에 솔로 활동이 전무했던 그녀와 대니는 2009년에 4집 [It's That Girl Again]으로 팬들의 곁에 돌아왔다. 

앨범 대표곡 들어보기

라틴 팝의 기운이 물씬 나는 첫 곡 ‘Promises’의 발랄함, 80년대 후반의 영국식 소피스틱 팝 발라드의 표본인 타이틀 트랙 ‘Time And Tide’, 어쿠스틱 보사노바 사운드와 그녀의 보컬이 조화를 이룬 ‘From Now On’, 그리고 심혜진이 출연했던 당시 국내 CF 배경음악으로도 인기를 얻었던 여성 재즈 보컬 아스트러드 질베르토(Astrud Gilberto)에 대한 트리뷰트 송 ‘Astrud’, 그루비한 라틴 분위기의 팝 트랙들인 ‘New Day For You’ 등 듣는 이의 마음을 남국에 와있는 듯 즐겁게, 또는 추운 날 난로 옆에 서있는 것처럼 따뜻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대중적이면서 음악적으로도 모자람이 없는 앨범이다. [글: 김성환 대중음악 애호가]

이 블로그에서 <Promises> 뮤직비디오 보기: http://mikstipe.tistory.com/2460889

<LP버전 발매 당시 커버. 다행히 국내에는 이 커버 그대로 당시 LP발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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