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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큰 애정을 가진 아티스트를, 뮤지션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풀어내야 하는가, 그리고 팬이 아닌 막연한 대중이 가진 오해를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에 대해 항상 고민이다. 그 첫 단초로 시작된 글.

나만의 베스트 앨범 - 자우림
 
자우림(紫雨林)은 가장 이상적인 록밴드일지 모른다. 한국의 주류 대중음악 시장에서 록 밴드의 기본이랄 수 있는 음반과 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도, 주류 미디어에서의 노출 속에서도 밴드 정체성의 손실 없이 10여 년 이상을 잘 적응하고 때로는 잘 이용한 드문 경우다. 사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를 넘어 현재까지 한국 땅에서는 얼마나 많은 록커들과 밴드들이 주류에 나와 대중적 인기를 얻는 과정에서 수없이 정체성 손실을 감수해야 했던가. 하지만 그들은 주류 가요 프로그램에 나오기 위해 대중적 히트를 겨냥한 통속적인 록 발라드 공식을 써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주류 틴 팝 그룹들과 소위 ‘아이돌 밴드’들과 함께 여전히 주류 가요 쇼 프로그램에 섰던 몇 안 되는 록 밴드였다. 또한 왕년의 뮤지션들이 예능과 토크쇼에서 사람들을 웃겨야 하는 시대에도 그들은 생존을 위해 오락-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웃겨야 하는 강박에 빠진 적이 없었다. 지난 15년간 밴드로서는 그 방식이 어떠했든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 핵심인 예능 프로그램에 몇 개월 나오고 명예 졸업한 것이 전부이지 않나.

사실 ‘나는 가수다’ 출연 이전까지 김윤아의 이름이 ‘자우림’인줄 알고 있었다는 아주 평범한 음악 팬들이 아직도 있었을 정도다. 그만큼 자우림은 거의 보컬리스트 김윤아의 ‘독박’으로 유지되었다. 물론 이것은 역으로 록 밴드의 보컬리스트를 맡은 (외모적으로 어필이 가능한) 여성 뮤지션이 갖는 어드밴티지로 해석될 수도 있고, 그게 지금까지 자우림의 인기를 견인하는 데 도움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녀 역시 뮤지션의 본분에서 그리 어긋난 행보를 보인 적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그들 이후에 나타난 거의 모든 한국 록 밴드의 여성 보컬들이 그녀와 좋든 싫든 비교되는 운명에 놓일 정도로 여전히 김윤아는 창작 능력과 개성있는 가창력을 갖춘 여성 싱어송라이터이자 밴드의 한 멤버로 자신만의 독특한 위치를 구축해놓았다. 물론 다른 록 밴드의 여성 보컬들이 결국 ‘탈퇴의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에 비해, 그녀가 지혜롭게 솔로 활동과 그룹 활동을 겸할 수 있는 것은 그룹의 음악의 작곡의 절대 다수를 그녀가 만들어야 하는 밴드 내에서의 독특한 위치에 기인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음악적으로는 자우림이 독보적으로 주류 가요 신에서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딱 꼬집어 ’얼터너티브 록/모던 록’으로 정의할 수만은 없는 자우림만의 고유의 음악적 스타일과 분위기를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유지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중 몇 곡은 범 대중적 히트곡으로 만든 결과를 이뤄낸 덕분인지도 모른다. 소위 그들의 ‘3대 히트곡’이라 불리는 ‘헤이 헤이 헤이’, ‘매직카펫라이드’, 그리고 ‘하하하송’은 한국의 인디 록 밴드들에 대해 전혀 관심 없었던 사람들까지 노래방에서 마이크로 선곡하는 레퍼토리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들의 팬이 된 이들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자우림 앨범의 나머지 대표곡들은 과연 얼마만큼 기억되고 있을까? 바로 그 궁금증에서 이번 자우림의 '나만의 베스트 앨범'의 선곡은 출발했다. 일단 선곡 기준은 이들을 ‘나는 가수다’로 처음 알게 된 분들까지도 음악 CD 1장의 러닝타임에 맞춰 공CD에 구워 들을 수 있게 하려는 이 코너의 의도에 맞췄다. 그러다보니 모든 앨범에서 공평한 비율로 선곡할 수는 없었음을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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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앨범 [Purple Heart](1997)부터 자우림은 당대에 가요 차트에 이름을 올렸던 다른 록 밴드와 완전히 다른 공식을 선보였다. 언제나 공연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노래이자 당시로서도 파격적인 노랫말을 가진 ‘일탈’이 대중에겐 가장 잘 알려지긴 했다. 그러나 밴드의 음악이 가진 양면성의 공식은 ‘안녕 미미’와 ‘격주 코믹스’를 통해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자우림은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밴드였다. 1) 재즈와 블루스 정서에 얼터너티브 록을 섞고, 의도적으로 침잠하는 우울함을 담은 곡들, 2) 역시 의도적인 관조적 유머를 통해 우회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밝은 리듬 전개를 가진 펑크-로큰롤.

일종의 컨셉트 앨범의 성격을 가진 2집 [연인](1998)에서는 다분히 라디오헤드의 ‘Creep’의 영향력이 느껴지는 ‘미안해 널 미워해’가 히트하긴 했지만, 이들의 진정한 음악적 성과는 3부작 타이틀 트랙 ‘연인’ 시리즈가 담보했다. 그 가운데 피날레를 장식하는 3부는 자우림식 ‘아트 록’이라 해도 무방할 우수한 편곡이 돋보였다. 앨범에서 딱 1-2곡 정도 보컬을 소화하는 기타리스트 이선규의 특유의 걸걸한 보컬이 김윤아와 감칠맛 나는 대조를 이루는, 노숙자들을 위한 노래 ‘이런 데서 주무시면 얼어 죽어요’는 지금도 공연에서 자주 연주된다. 왕따와 청소년 자살 문제를 그들은 일찍이 ‘낙화’라는 록 발라드에서 제기하기도 했다. 3집 [The Wonderland](2000)은 여러 음악 외적인 이유로 김윤아(또는 자우림)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들이 극단으로 갈리기 시작한 출발점이 됐다. 하지만 건질 노래가 많은 앨범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흥겨운 노래 ‘매직 카펫 라이드’ 도 좋지만, 사실 ‘뱀’을 개인적으로 베스트 트랙이라 생각한다. 이선규의 블루지한 기타, 리듬 파트의 완벽한 뒷받침, 그리고 김윤아의 끈적한 보컬 소화력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여기까지가 자우림이 평단과 일반 록 팬들에게 공히 호평을 받았던 시기라면, 그 이후부터는 충실한 고정 팬들의 반응과 평단의 차가운 시선이 교차한 4-6집 시기가 이어진다. 4집 [4](2002)에서는 다분히 크랜베리스의 영향이 반영된 ‘팬이야’가 그 차가움의 진원지였지만, 그들의 곡들 중 가장 거칠게 질주하는 매력이 있는, 뱀파이어 스토리 ‘VLAD’같은 트랙도 있었다. 자우림이 너무 대중적이자 ‘자의식 과잉’으로 갔다고 비판을 받았던 5집 [All You Need Is Love](2004)는 역설의 앨범이다. 비판의 중심 타깃이 되었던 ‘하하하송’이 지금도 노래방 애창곡으로 통한다는 사실은 아마 영원한 아이러니로 남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블루스 그런지 록 트랙이자 앨범의 대미를 장식해준 ‘Truth’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김윤아의 결혼 직후 발매되었음에도 신혼의 분위기(?)는 전혀 느낄 수 없이 우울의 극단을 달린 6집 [Ashes To Ashes](2006)에서는 ‘You And Me’라는 방송에 매우 적합했던(?) 트랙이 있긴 했으나, 선곡된 나머지 트랙들과 균형을 맞출 곡이 없다고 느껴져 이 리스트에선 과감히 제외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그룹의 색깔은 더 견고해졌지만, 팬들을 제외한 일반 대중과 평단에는 버림받는 듯했다. 그리고 7집 [Ruby Sapphire Diamond](2008)이 나왔다. 초창기보다 노련하고 세련된 음악적 에너지와 감각으로 재무장했음을 보여준 작품으로, 최근 앨범 가운데 가장 짜임새 있는 앨범이라 생각하고 있다. 김윤아의 드라마틱한 보컬의 특성을 잘 살린 뮤지컬 타입 록 트랙 ‘Carnival Amour’, 1980년대 팝음악의 향수를 그 시절 포스트 펑크/뉴 웨이브 타입의 연주로 묘사한 ‘20세기 소년 소녀’, ‘위대한 탄생’에 김윤아가 멘토로 참여한 후 알려질 기회를 얻은 팝/록 트랙 ‘Something Good’이 근래 이들의 공연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곡들이다. 추천하고 싶은 곡은 ‘27’이다. 이선규의 짝사랑(?!)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한다. 의외로 자우림이 상큼하고 찰랑한 모던록을 구사한다고 느끼게 됐던 곡이다.

현재까지 마지막 앨범은 ‘나는 가수다’와 함께 최근 그들을 주류 가요 방송에서 다시 만나게 해준 8집 [음모론](2011)이다. 대표곡 ‘Idol’보다 두드러지는 노래가 있다. 앨범 제목의 모티브가 된 곡이자 그들이 여전히 좋은 곡을 뽑아내는 능력을 가졌음을 원숙하게 선보이는 트랙 ‘EV1’이다. 여담으로, 앞으로도 영원히 그들을 상징하는 노래이자 족쇄로 남을 ‘Hey Hey Hey’는 그들이 원래의 편곡 의도를 존중해 OST ‘꽃을 든 남자’ 속 버전이 아닌 라이브 앨범 [True Live](2001)에 담긴 실황 버전을 골랐다.

지금도 자우림에 대해선 여전히 찬사와(음악 내적인 문제보다는 김윤아와 관련된 외적인 요소가 더 많이 도마에 오르는) 비판의 시선들이 공존한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몇 가지가 있다. 자우림은 대한민국이라는, 록 밴드에게는 너무나 척박했던 주류 가요계에서 해외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이식한 밴드다. 1990년대 해외 음악계는 여성 보컬이 전면에 선 록 밴드가 유행했던 시기였고, 곧 자우림을 통해 국내에서도 익숙한 문화가 되었다. 그리고 자우림은 결과물의 기복이 어떻든 16년 동안 록 밴드가 가져야 할 기본적 자세를 잃지 않고 주류 안에서 꾸준히 정도(正道)를 지켰던 밴드다. 사운드홀릭 사장님 구태훈의 설득에 못 이겨 마지못해 나간 [나는 가수다]에서도 그들다운 ‘고집과 오기’로 마침내 대중의 환호를 끌어낸 것은 바로 그 ‘기본기’가 덕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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