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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하나뮤직 to 푸른 곰팡이 : 대한민국 최강의 작가주의 음악 공동체


#아래 글은 지난 5월 인천 바텀라인에서 배영수 인천in 기자와 함께 진행한 '동아기획 vs 하나뮤직' 음악 감상회를 위해 작성했던 원고의 오리지널 버전입니다. 고 조동진님을 추모하며, 그리고 9월 16일 푸른곰팡이 연합 공연을 기념하는 의미로 제 블로그에 이 글을 올립니다. 최대한 관련 자료를 종합헤 팩트를 정리하려고 노력했습니다만, 만약 오류가 있다면 지적해 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필자 주)


동아기획이 1980년대 한국 언더그라운드 뮤직 씬을 대표했던 레이블이라면, 하나뮤직은 그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작가주의’ 정신을 1990년대로 계승하고 발전시켰던 레이블이라 할 수 있다. 비록 1990년대 이후 주류 가요 시장의 변화는 이러한 지향의 레이블의 생존을 힘겹고 위태롭게 만들었지만, 하나뮤직은 조동진과 조동익이라는 큰 음악적, 정신적 지주 아래에서 2번의 쓰러짐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그들의 정체성을 지켰고, 이제는 푸른곰팡이라는 새 이름 아래에서 그들의 길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 이 시간에는 그 역사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눠 이야기해 보려 한다. 


Part 1: 하나뮤직의 기틀을 놓은 세 사람, 조동진, 조동익, 조원익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하나뮤직이 탄생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목에 언급한 세 사람에 대해 알고 갈 필요가 있다. 이 세 명의 음악인들은 마치 ‘삼두마차’를 끄는 세 마리의 말처럼 하나뮤직의 기틀을 닦고 완성하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1)조동진









조동진은 하나음악이라는, 그리고 현재도 푸른곰팡이로 이어지는 거대한 음악 패밀리를 형성하게 만든 장본인이자 시조(始祖)이며,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했다. 그는 1970년대 미8군 무대와 여러 클럽 밴드를 거쳤고, 오리엔트 프로덕션에서 전속 작곡/세션으로도 활동했다. 그 리고 한 때는 세시봉 시대의 뮤지션들의 음악 세션을 담당했던 그룹 ‘동방의 빛’(강근식-기타, 이호준-건반, 유영수-드럼, 조원익-베이스)에서 세컨드 기타리스트로 음악 활동을 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군복무관계로 팀을 떠났고, 제대 후에는 강근식의 프로덕션에서 광고음악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던 1979년 [조동진 1]을 발매하고 여기서 <행복한 사람>이 준수한 히트를 거두면서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80년대로 넘어와서 2집 [조동진 2](1980)을 내놓은 후, 그는 그의 음반 제작에 꾸준히 관여했던 오리엔트 프로덕션 직원 출신인 구자영을 통해 동아기획을 설립한 김영 사장과 연결되었다. 그 결과 3집 [조동진 3](1985)는 동아기획을 통해 발매가 되었고, 그를 선배로 따르고 좋아했던 음악인들 – 시인과촌장, 들국화, 등 – 이 동아기획을 자신의 터전으로 선택하는데 그는 나름 기여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3집 발매 후 1986년 발매한 1,2집의 재녹음 버전(여기의 세션에는 조동익과 이병우, 김광민 등이 참여했다.) 제작 이후에 그는 동아기획과는 서서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이기보다는 자연스레 결별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고 조동진 본인은 회고하고 있다.


(2) 조동익

조동진의 동생이었던 조동익은 1984년 겨울 한 후배의 소개로 알게 된 기타리스트이자 송라이터 이병우를 만났고, 그와 금방 친해지면서 함께 그룹 어떤날을 결성했다. 그가 만들어놓은 ‘하늘’이라는 곡의 앞부분에 그가 가사를 붙이면서 두 사람의 송라이팅 공조가 시작되었다고. 이병우가 이미 기타를 잘 쳤기에 그는 그룹 결성 후에는 베이스를 연주하는 것으로 돌아섰고, 1년만의 연습으로 1986년 시인과 촌장의 2집에서 베이스 세션을 맡았다고 한다.

  사실 그는 그 이전부터 집에 있는 4트랙 녹음기로 혼자 노래를 만들고 있었는데, 그렇게 만든 ‘어떤 날’이라는 곡을 형 조동진이 듣고 자신의 2집에 수록할 것을 제안하면서 그의 곡이 처음 프로 가수의 음반에 실리게 되었다. 또한 형이 광고 음악 작업 당시 처음 알게 되어 친해진 들국화의 최성원도 그의 곡인 <너무 아쉬워 하지마>를 듣고 자신이 동아기획에서 기획하고 있었던 [우리 노래 전시회 1](1984)에 듀오 어떤 날을 참여하게 권유했다. 또한 이 옴니버스 앨범 전반의 기타 세션에도 참여했다. 이후 어떤 날은 후속 옴니버스 앨범인 [우리노래전시회 Ⅱ](1987)에서도 <그런 날에는>이란 곡으로 참여했다. (이 곡은 1년 후 어떤 날의 정규 2집 [어떤 날Ⅱ](1988)에도 재녹음되어 실렸다.) 비록 두 장의 앨범으로 그룹 활동은 끝을 맺었지만, 두 사람이 만든 음악들은 포크와 퓨전 재즈에 기반한 깔끔하고 세련된 연주와 편곡, 그리고 관조와 낙관의 감성을 머금은 가사의 매력으로 한국 가요의 수준을 유재하 이후 또 한 번 끌어올렸다고 평가할 수 있다.      

  어떤 날의 해체 이후에 그는 동아기획, 조원익이 개입한 서울음반 등에서 발표된 여러 가요 음반들에서 베이스 세션을 담당했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반의 유명한 가요 음반들 속에서 그의 크레딧을 발견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이 과정 속에서 그는 시인과촌장의 멤버였던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꽤 자주 연주 파트너 관계를 맺었고, 여기에 손진태(기타)와 김현철(키보드)이 결합해 완성된 그룹이 동아기획에서 음반이 발매된 프로젝트 그룹 야샤(Yasha)였다.  

  1992년 이전 서울음반에서 발매된 하나뮤직 계열 가수들의 음반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하나뮤직이 본격적으로 런칭하면서 그는 세션과 편곡 파트에서 하나뮤직 아티스트들의 모든 음반에 관여하면서 레이블의 실질적 프로듀서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솔로 1집 [동경](1994)을 통해서 어떤 날이라는 틀의 밖에서도 그는 뛰어난 싱어송라이터임을 증명해 보였다. 1990년대 후반에는 ‘장미빛 인생’, ‘No.3’, ‘내 마음 속의 풍금’ 등의 영화 음악 작곡가로서도 활동영역을 넓혔다. (이 때의 곡들을 하나로 모아 정리한 음반이 솔로 2집 [Movie]다.) 어쨌든 하나뮤직의 음악적 내용의 총지휘자로서 그가 갖는 위치는 현재 푸른곰팡이에서도 유효하다. 


(3) 조원익(+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우리노래전시회 4)

  조원익은 앞서 조동진 부분에서 설명했듯 1970년대 밴드 동방의 빛의 베이시스트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밴드가 끝난 이후에는 뮤지션으로 특별한 활동의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조동진과는 계속 연이 닿아있었다. 결국 그가 서울음반 문예부장을 맡게 된 이후, 조동진은 동아기획을 떠나서 서울음반 쪽으로 자신과 어떤 날의 발매 루트를 옮기게 되었다. (어떤 날 2집 [어떤날 Ⅱ](1988)조동진 4집 [조동진](1990)) 그리고 동아기획 쪽으로 음반 데뷔를 했던 장필순의 3집 [이 도시는 언제나 외로워...](1992) 등의 음반들도 서울음반을 통해 공개되었다.


  



  

한편, 서울음반이 1989년부터 시작된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조동진은 이 대회의 1회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의 본선 기념 음반을 제작하게 되면서 조원익은 조동익과 그의 음악적 세션 동료들을 불러 참가곡들의 편곡을 의뢰했다. 이것을 계기로 조규찬, 고찬용, 정혜선, 박인영 등 이 대회의 입상자들은 조동진-조동익이 주도한 음악적 공동체의 ‘젊은 피’로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한편, 포크 계열의 아티스트들 가운데 서울음반에서 앨범을 내면서 조동익과 그의 세션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들에게 이끌린 동물원의 멤버들(김창기, 김광석, 유준열 등)도 이후 하나뮤직의 타이틀을 달고 음반을 냈건 그렇지 않건 이 공동체와 많은 교류를 가졌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한 번 주목해 봐야 할 앨범이 바로 동아기획과 하나뮤직의 마지막 교차점이었던 옴니버스 앨범 [우리노래 전시회 4](1991)다. 역시 최성원의 기획으로 완성된 앨범이지만 음반은 동아기획 라벨이 아닌 서울음반을 통해 나왔다. 편곡 역시 조동익이 주도하고 있으며, 동아기획 쪽의 주찬권과 16년 차이가 참여하고 있지만 조동익, 고찬용과 낯선사람들, 박인영, 김창기의 곡들이 앨범의 중심임을 확인할 수 있다. 동아기획이 1990년대로 넘어와 1980년대의 ‘음악 공동체’의 모습보다는 좀 더 메이저 레이블의 운영 체제로 변화해가기 시작했던 것에 비한다면 하나뮤직은 바로 동아기획이 1980년대에 가졌던 그 정체성을 그대로 계승하는 모습을 갖춰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조동진과 조동익의 울타리 안으로 여러 아티스트들이 모여들게 되었을 즈음에 두 사람에게 모 대기업이 자본 투자를 제의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마침내 1992년 하나뮤직은 공식적 음악 레이블로 출범하게 되었다. 조원익은 그 시점에 조동진의 부탁으로 서울음반에서 나와 1990년대 중반까지 실질적으로 하나뮤직이 음반사로서의 실질적인 운영을 맡게 되었다. 조동진과 조동익 모두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아니었기에, 제작자로서의 조원익의 경험과 활동은 음반 레이블로서의 하나뮤직엔 꽤 중요한 부분이었다. 


Part 2. 하나뮤직 1기(1992~1995) : 1990년대 포크와 퓨전 팝의 산실

  조동진의 2003년 인터뷰에 근거하면 하나뮤직의 탄생에는 놀랍게도 ‘대기업 자본’이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한다. 바로 선경 그룹(현재의 SK)에서 운영했던 SKC가 (자신들이 당시 국내 음반사들의 CD를 직접 제조하고 있었기에)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줄 프로덕션을 만들어볼 것을 조동진과 조원익에게 제안을 했던 것이다. 두 사람 역시 ‘우리 생각으로 우리가 주축이 되서 프로덕션을 하나 만들어서 우리 입맛에 맞는 음반들을 만들어 보는’ 꿈을 갖고 있었기에 일은 빠르게 진행되었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하나뮤직 레이블의 공식적 출발점이다.

  실질적인 레이블로서의 하나뮤직의 첫 음반은 제 1회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차지하며 하나뮤직의 식구로 들어온 정혜선의 1집이었다. 그리고 이후 조동익과 이병우의 솔로 음반들 외에도 장필순, 이무하, 한동준, 권혁진 등의 포크 계열 뮤지션들, 김광민, 정원영, 낯선사람들과 같은 퓨전 계열 뮤지션들이 하나뮤직을 통해 음반을 발표했다. (조규찬의 경우는 분명 하나뮤직의 식구였던 것은 맞지만, 정규 1집부터의 매니지먼트는 다른 곳이었기에 애매한 위치에 있다.) 그 밖에 에이틴(A-Teen)이라는 록 밴드, 그리고 역시 유재하음악경연대회 우승자인 유희열이 만든 토이(Toy)의 1집, 심지어 클래식 작곡가 이건용의 라이브 음반도 하나뮤직을 통해 발매되었다. 

  한편, 이 시기에도 조동익과 그의 세션 밴드 팀(함춘호(기타), 윤영배(기타), 박용준(키보드), 김영석(드럼) 등)은 킹 레코드 쪽으로 음반을 내놓은 포크 계열 아티스트들의 음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데, 김광석이 생전에 발표한 모든 음반들, 안치환이 민중가요 가수의 범위를 넘어 확실하게 포크 록 아티스트로 거듭나는 음반(특히 3~4집)들에서, 여행스케치를 포크 동아리에서 프로 그룹으로 끌어올린 음반들(특히 2집~4집)은 하나뮤직의 음악적 특성이 레이블 밖에서도 크게 작용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창 서태지와 아이들로 상징되는 신세대 댄스 뮤직이 주류에서 열풍을 일으키며 가요계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던 시점에 하나뮤직이 내놓은 계열 장르의 음악들은 상업적으로는 큰 수익을 올려놓지 못했고, 결국 하나뮤직은 1995년 1차 폐업을 하게 된다. 

  

[1992~1995 하나뮤직 대표 아티스트 & 앨범]


]  

  

   


# 정혜선 1집 (1992) : 대표곡 <오, 왠지>, <나의 하늘> 

  정혜선은 소위 ‘여자 전인권’ 혹은 ‘한영애’를 연상시키는 개성있는 보컬과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능력을 모두 갖춘 실력파 뮤지션이었으나 홍보반을 제외하고 미발매된 2집(1995, 킹)을 끝으로 결혼과 함께 음악계를 떠났다가 얼마 전 푸른곰팡이를 통해 EP를 내고 컴백함. 


# 정원영 1집 (1993) : 대표곡 <가버린 날들>, <거리에 서서>

  고 3때 가수 이장희의 눈에 띄어 밴드 '석기시대','사랑과 평화','위대한 탄생' 등에서 키보디스트로 참여. 그 후 미국으로 유학 가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귀국. 퓨전 재즈의 본질을 지키면서 가요적 멜로디 감각을 더한 음악을 들려줌. 방송인, 실용음악과 교수로 활동 중. 대학 제자들과는 ‘정원영 밴드’로 활동중. 





# 낯선사람들 1집 (1993) : 대표곡 <낯선 사람들>, <해의 고민>, <무대 위에>

  1990년 제2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거리 풍경’으로 대상을 차지한 고찬용과 그가 활동했던 인천대학교 음악동아리 “포크 라인”의 멤버들로 결성되었던 5인조 보컬 그룹. 멤버였던 이소라는 김현철과의 듀엣 <그대안의 블루>의 히트 이후 동아기획으로 옮겨 솔로 커리어 시작. 아카펠라부터 퓨전 재즈까지 풍부한 해석 능력을 보이는 고찬용의 작,편곡 감각이 일품.


# 하나 옴니버스 1,2,3집 (1992/1993)

  ‘우리노래전시회’의 계보를 잇는 하나뮤직의 소속 뮤지션들을 주축으로 한 옴니버스 앨범 시리즈. 하나뮤직과 연관을 맺은 패밀리들의 중요 대표곡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고, 심지어 김민기와 최성원, 손진태 등 동아기획 계열이었던 아티스트들의 곡들도 만날 수 있다. 1998년에는 세 음반의 하이라이트만 모은 1장짜리 베스트 앨범도 발매되었다.


Part 3. 하나뮤직 2기(1997~2003) : 레이블의 재건과 하나뮤직 2세대의 발굴 

  1995년 하나뮤직이 일단 레이블 사업을 접은 후 주축 아티스트들인 조동진과 장필순은 [조동진 5](1995), [장필순 4](1995)을 킹레코드의 타이틀로 내놓으면서 자신들의 커리어를 지켰다. 그러나 2년간 구심점 없이 서로 흩어져있는 하나뮤직 패밀리에 대해 조동진은 큰 아쉬움을 갖고 있던 즈음, 과거 그들이 하나뮤직 스튜디오로 사용했던 서울 논현동의 공간이 다시 임대로 나왔음을 확인한 후 그와 (더 클래식의 멤버이기도 했던) 박용준은 함께 이 곳을 임대했다. 이후 하나뮤직은 신나라 레코드 등에서 선수금 형태로 제작비를 받아 ‘하나뮤직그룹’이라는 이름을 갖고 소속 아티스트들의 음반들을 제작해 나갔다. 

  이 시기에는 과거 하나뮤직 패밀리들의 신작들(장필순, 조동익, 김창기, 엉클(한동준-권혁진))도 발매되었지만, 더 중요한 부분은 [하나뮤직 Project]라는 이름 아래 4장의 동일 주제에 기반한 곡들을 모은 레이블 옴니버스 앨범들이 발매되는 방식으로 하나뮤직의 2세대 신인 뮤지션들의 발굴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특히 [하나뮤직 Project 2 : New Face](1999)는 오롯이 8명의 (당시의) 신인 아티스트들의 곡들만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 옴니버스들을 통해 윤영배, 이규호, 오소영, 이다오, 조동진의 막내 여동생 조동희, 재즈 피아니스트 김세운 등이 하나뮤직의 미래를 짊어질 뮤지션들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 중 이규호와 오소영은 각각 정규 1집을 이 시기에 발표했다.) 그러나 CD에서 음원으로 넘어가는 음반업계의 상황, 그리고 주류 가요와 매우 거리를 둔 그들의 아티스트 지향적 음악들의 상업성의 한계로 인해 역시 하나뮤직은 재정상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긴 침묵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1997~2003 하나뮤직 대표 아티스트 & 앨범]


  

  

(앨범 커버는 좌측 상단부터 글 내용 순서대로 배치.)


# 장필순 5집 (1997) : 대표곡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 <스파이더맨>

동아기획에서 출발, 하나뮤직의 식구가 되면서 포크/포크 록을 자신의 중심으로 삼고 레이블의 주축 아티스트가 된 그녀의 얼터너티브 록으로의 음악적 스펙트럼의 확장이 처음 시도된 작품. 이후 [Soony 6](2002), [Soony 7](2013)을 통해 그 세계는 더욱 확장됨.


# 이규호 1집 - Alterego (1999) : 대표곡 <거짓말> 

제 5회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한 이후 5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탄생한 음반. 정갈한 발라드, 아이리쉬 팝, 록/포크 록 등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지만 본인만의 고유한 분위기와 스타일을 담았다. 이후 15년 만에 2집 [Spade One]을 공개해 매니아들의 호평을 받음.


# 김창기 1집 - 하강의 미학 (2000) : 대표곡 <넌 아름다워>, <형과 나>, <너의 자유로움으로 가>

과거 동물원의 멤버로서 1집부터 6집까지의 타이틀곡을 책임졌고, 김광석 등 주변 뮤지션들에게 명곡들을 선사했던 싱어송라이터였던 김창기는 이 첫 솔로앨범을 통해 더 솔직하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독백들을 풀어놓았다. 조동익 밴드의 연주 역시 그의 조금은 뻣뻣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잔잔하고 아름답게 다듬는데 일조했다.


# 오소영 1집 - 기억상실 (2001) : 대표곡 <기억상실>

  1994년 제6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가을에는>으로 동상을 수상하면서 음악계에 입문. 이 앨범을 통해 역시 전곡을 자신의 손으로 완성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재능을 보여주었다. 장필순의 계보를 잇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보컬에서는 그녀만의 고유의 영역이 존재한다. 


Part 4 : 인디레이블 ‘푸른곰팡이’로의 부활 (2011~)

  2003년 [Project vol.4 : Dream]을 끝으로 하나뮤직은 사실상 휴지기에 들어갔다. 2000년대 중반 조동진, 조동익, 장필순 등 주축 가수들이 제주도에 은둔하면서 하나음악은 그것으로 과거의 화석으로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러나 2011년 그 역사는 ‘푸른곰팡이’라는 새로운 인디 레이블 형태로 부활했다. 원래 이 레이블 이름은 조동익이 2004년 젊은 색깔의 음악을 표출하기 위해 만든 하나뮤직의 서브 레이블 개념으로 출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2011년 하나뮤직 패밀리의 일원인 김정렬(새바람이 오는 그늘을 거쳐 현재 더 버드(The Bird)의 리더)과 박용준, 송혁규 백제예술대학 교수가 뜻을 모아 푸른 곰팡이 공동대표를 맡게 되면서 레이블의 운영은 본격화했다. 여기에 옛 하나뮤직 식구들이 다시 모여들어서 현재의 구성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이 레이블에는 조동진, 조동익은 물론 장필순, 한동준, 고찬용, 박용준, 이무하, 정혜선 등 1세대와 이규호, 오소영, 윤영배, 조동희, The Bird, 소희 등 2-3세대 뮤지션들이 소속되어있다. 조동희의 1집 [비둘기](2011)가 이 레이블의 공식 첫 음반이라고 한다면, 현재까지 20여장의 앨범들을 지난 6년간 지속적으로 발표하면서 하나뮤직의 향수를 기억하는 음악 팬들과 인디 뮤직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특히 윤영배의 3집 [위험한 세계](2013)과 조동진의 복귀작 [나무가 되어](2016)은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하면서 평단에게 작품성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2011~2016 푸른 곰팡이 대표 아티스트 & 앨범들] (리스트)


# 조동희 1집 - 비둘기 (2011) / # 고찬용 2집 - Look Back (2012)

# The Bird - The Bird (2012) / # 윤영배 3집 - 위험한 세계 (2013) 

# 이규호 2집 - Spade One (2013) / # 장필순 7집 - Soony Seven (2013)

# 옴니버스 - 강의 노래 (2015) / # 조동진 - 나무가 되어 (2016)


  

 

 

 

 

P.S. 현재 레이블의 대표는 조동희가 담당하고 있으며, 2017년 9월 16일 오후 7시에 푸른곰팡이의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멤버들이 모여 갖는 공연 ['꿈의 작업 2017' 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가 진행된다. 원래는 방광암으로 투병중이었던 조동진도 무대에 오를 계획이었으나, 지난 8월 28일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이번 공연은 그를 추모하는 의미의 공연으로 진행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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