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건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전제에서 조금은 기대를 하긴 했지만, 사실 지난 주말부터 갑자기 이 영화에 대한 묘한 관심이 더욱 생겨버렸다. 그 이유는 인터넷을 검색하다, 일간스포츠(중앙일보 산하라는 건 다 아시죠?) 모 기자가 소위 '최진실 법'이라 불리는 인터넷 관련 법안을 옹호하면서 그것이 미칠 부작용에 대해서는 말도 안되는 궤변으로 댓글을 씹어댄(!) 문제의 글을 보고 분개하던 차에, 그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고고 70']의 리뷰를 보면서 발견한 영화 속 모델이 된 어느 인물의 분개에 찬 항의글을 읽게 되면서였다.
바로 그 글의 주인공은 영화 속에서 '주간 서울'의 대표 기자이며 팝 컬럼니스트이자 60년대 그룹사운드의 대표적 후원자로 묘사된 '이병욱'의 실제 모델로서, 영화 속 내용대로 당시엔 '그룹사운드의 대부'로 통했고, 클럽 닐바나의 밴드 섭외 담당을 맡기도 했으며, 80년대에는 빌보드지 한국 특파원을 하면서 80년대를 풍미했던 대중음악 잡지인 월간 '음악세계'에 기사를 올리고, 영향력을 행사했었던 인물, 바로 서병후씨다. (다시 말해,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의 MC인 타이거 JK(Tiger JK)의 아버지다.) 그의 분노에 찬 글을 보면서 약간은 "흥분하셨다"는 생각은 들긴 했지만, 논리상 틀린 부분은 없었기에 어느 정도 공감을 했고, 그래서 과연 어떤 부분이 왜곡될 뻔(!), 아니면 왜곡 되었는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어서 이 영화를 꼭 보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결국, 오늘 그 영화를 봤고, 이제 한 번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지식보다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가 거의 '성경'처럼 봤을거라는 확신이 선 대중음악 사료 저서인 '한국 팝의 고고학 1960-1970'의 내용을 기준으로) 영화 속 내용과 당시 실제 상황의 차이점을 한 번 비교해 보도록 하겠다.
Part 1. 영화의 시대적 배경과 당시 상황에 대한 묘사
어쩌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볼 수 있지만, 스토리의 기본 축을 이루고 있는 1970년대 초반(1970년부터 대략 75년 사이로 보여지는)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묘사는 거의 일치한다. 일단 이 영화 스토리의 기본 축인 록 밴드 데블스(The Devils)는 당시 실존했던 밴드라는 것은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다녀온 10대 음악 팬들도 이제는 아시리라 생각되는데, 밴드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일단 밴드 외부의 상황 묘사의 일치도부터 파악해보자.
(1) 일단, 밴드가 활동한 주 무대인 클럽 닐바나(Nirvana) 역시 실제 당시의 '고고 타임' 영업에서 선구적 지위를 누린 실존 클럽이다. 그리고 실제 우리의 역사 속에서 벌어진 장발 단속, 퇴폐문화 단속이라는 차원에서 실시된 뮤지션들의 무더기 검거도 당근 존재했다. 단, 영화 속에서 멤버들이 붙잡혀가 고문을 받는 장면의 묘사는 오히려 75년 신중현씨까지 엮여들어간 대마초 파동의 상황을 미리 약간 끌어다 쓴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밴드가 74년에 대마초 사건으로 활동정지를 당한것은 사실이나, 영화 속 내용처럼 밴드가 해산 상태나 다름없을 시절의 사건이라 보기는 어렵다.)
(2) 그리고 수백곡의 노래들이 금지곡이 되는 상황을 묘사한 부분도 실제로 그렇게 된 시기는 75년 6월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9호' 발동 이후에 실행된 것이기에 조금 애매한 부분도 존재한다. 특히, '한국 록의 고고학'책에서 묘사한 부분에서 보면 금지곡의 선정과 관련하여 이를 영화속에서처럼 이병욱이 삼청동에 끌려가서 검토를 하라고 지시받은 일이 있었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단지 '한국팝의 고고학' 책 속 서병후의 인터뷰에 따르면 80년대가 다 되어서야 공연윤리 심의위원회에 참여한 적은 있다고 고백한 부분은 나온다. 이 점을 부풀려 버린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3) 한편, 당시 나이트 클럽들의 이름은 실제 이름들과 동일하다. 영화 속에서 언급된 풍전호텔, 그리고 밴드 멤버들 중 한 명(누군지는 영화 보시는 분들을 위해 밝히지 않겠다.)이 연주 중 화재로 사망한 것으로 나오는 대왕호텔도 실제 청량리에 존재했다. 그리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데블스 외의 다른 밴드들 - 특히, 당
시 서울에서 뜨고 있는 것으로 나왔던 피닉스(Pheonix)도 실제 닐바나 무대의 초기를 장식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으며, 당시에는 '하드 로크 대왕'이란 별칭을 들을 정도로 강한 하드 록 레파토리들을 주로 선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이들의 정식 음반은 74년에 딱 한 장 발매되었다고.)
(4) 실제로 서병후씨는 당시에는 '주간 서울'이 아니라 '주간 경향'의 기자로 활약했다. 그리고 밴드가 그룹사운드 대회에 첫 출전했던 장소인 시민회관이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건 거의 다 아시는 사실이겠고.
Part 2. 데블스(The Devils)와 와일드 걸즈(Wild Girls)에 대한 묘사
'한국 록의 고고학 1960년대'편을 읽어보면, 실제 데블스의 멤버들이었던 사람들 - 영화속 '상규'의 모델인 김명길(보컬, 기타 - 영화 속 조승우가 이 분을 연기한 셈이다.), 영화속 '경구'의 모델인 최성근(베이스, 테너 색소폰), 영화속 '동수'의 모델인 홍필주(트럼펫) - 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그래서 실제 데블스의 커리어에 대해서 영화 속과 비교를 해본다면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1) 영화 속에서 조금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이 이들이 맨 처음 6인조 밴드로 결성된 것이 대구 왜관의 기지촌 동네로 묘사가 되는데, 일부분은 맞고, 일부분은 오류가 있다. 영화 속에선 상규가 대구에서 활동하던 최초 밴드가 3인조로 나오지만, 그들은 4인조였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대구에서 의기 투합해 함께 서울로 바로 상경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이
들은 그 후 파주(용주골)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지인이 다리를 놓아 종로 2가의 라틴 쿼터라는 살롱에서부터 본격적 서울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를 자세히 보면 데블스의 베이시스트가 인천에 다녀왔다는 얘기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이유는 애초에 이들이 4인조로 처음 밴드의 전신 앰비션스(Ambitions)를 결성했을 때, 그들의 근거지가 인천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영화 속 어디에도 없다.
(2) 영화 속에서는 이들이 방송 출연은 전혀 안한 것처럼 묘사되고 있지만, 라디오 방송이나 TV방송 - 특히, MBC라디오의 '젊음을 가득히'의 전속 밴드 - 으로도 활동한 기록이 있다. 그리고 이들의 서울 첫 무대인것 처럼 묘사되는 '제 2회 플레이보이 컵 보컬 그룹 경연대회(1970)' 에서 밴드가 보여준 무대, 그리고 '구성상'을 수상한 장면들은 대체로 일치한다. (결국 그 '관 끌고 나오는 쇼'는 실제 상황이다.) 근데, 실제로 그들은 '가수왕상'(근데 이게 1등상은 아닌듯하다)을 함께 탔다.
<멋진 해골쇼. 역사적 기록을 영상 속에서 멋지게 재현해 낸 또 하나의 장면으로
기록될 만하다.>
(3) 영화 속에서 상규가 병역 기피자였다는 부분도 사실이다. 결국 그는 대마초 사건 이후 방위병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구 클럽에서 입영통지서를 불태우는 장면은 작가의 상상력 같다.)
(4) 영화 속에서 고고춤을 알리는 주역으로 등장하는 미미(신민아)를 묘사하는 부분이 아마 서병후씨에게는 매우 기분 나쁜 부분이었을 것이다. 서병후씨의 항의를 받아들여 결국 개봉판에서 이들의 이름이 '와일드 걸즈'로 바뀐 것이지, 시사회 버전과 원 시나리오에서는 이들 3인조 보컬 팀의 이름이 '와일드 캐츠(Wild Cats)'였다고 한다. 그런데, 실제 와일드 캐츠는 멤버 중 누구도 데블스와 관련은 전혀 없다. 왜냐면 이 팀은 서씨가 클럽 무대를 위해 조직에 관여했던 댄스팀으로, 우리가 <마음약해서>로 아는 그 보컬팀도 아니며, 그 리더였던 여성는 그 후 서병후씨의 아내이자 타이거 JK의 어머니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당시 데블스와 와일드 캐츠가 함께 닐바나 클럽 무대에 섰을 수는 있겠지만, 그들이 데블스의 영향권에서 만들어진 팀이라고 묘사한 부분은 사실이 아니며, 영화 스토리대로라면 서병후씨의 아내가 대구 왜관 기지촌 클럽 식당 시다바리인 가수지망생으로 묘사되는 셈이니, 당사자가 불쾌했을만도 하다.
(5) 그리고, 영화 속 거의 끝 무대에서 미미가 이은하의 <밤차>를 부르는데, 이 곡은 78년에 발표가 된 트랙이라 너무 일찍 끌어다 쓴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실제 이은하 버전의 세션에 실제 데블스의 멤버들이 참여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신민아, 영화 속에서 열심히 춘다. 항상 작품마다 연기력의 찬사는 별로 못받으나,
열심히 하는 그녀의 자세는 참 봐줄만 하다.>
이렇게 실제 존재했던 밴드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실제 역사적 사실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를 알아보는 것도 나름대로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면이긴 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감수에 상당히 신경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서병후씨의 반응처럼 실존인물에 근거를 둔 캐릭터 묘사에서 항의가 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무시한 처사는 작가와 감독이 영화에 쏟은 열의를 퇴색하게 만드는 것 같아 좀 씁슬하다. 그러나 우리 대중문화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인 1970년대를 직설적으로 건드리면서도 음악영화의 오락성도 그대로 잘 유지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런 배경지식의 진위여부에 관심이 없다면) 정말 흥에 겨워 볼만한 작품이라는 건 분명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80년대 헐리우드 음악 영화를 보는 듯한 (감동이라기보다) 재미(!)를 느꼈으니까. 그리고, 뭐니뭐니해도 음악 녹음이 참 잘됐다. 현장감 있으면서도 사운드가 잘 뽑아진 한국의 음악 영화는 참 오랜만이다..
P.S. 아.. 갑자기 영화 속에서 흘러나온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의 <I've Been Loving You Too Long>이 듣고 싶어지는구나....^^;;